한국 현대시 100년을 맞아 '10대 시인'을 선정했다고 한다(선정과정은 http://news.hankooki.com/lpage/culture/200710/h2007101420053984290.htm 참조). 그 리스트를 보니 선자들이 고심했다고는 하나 별로 '이변'이라 할 만한 것은 없어 보인다. 이미 교과서에 다들 수록돼 있는 시인들이고 그들의 시이기 때문에(윤동주의 <서시> 대신에 <또다른 고향>이 대표시로 선정된 것 정도가 일반 독자들의 취향과 차이나는 것이겠다. 물론 서정주의 경우에도 <동천>보다 더 친숙한 건 <국화 옆에서>일 테고). 자료삼아 기사를 옮겨놓으면서 드는 생각은 차라리 11-20위까지의 시인들 명단이 궁금하다는 것. 생존 시인들까지도 포함해서. 오히려 그게 '진짜' 리스트가 아닐까란 생각마저 든다.   

한국일보(07. 10. 15) 한국 현대시 10대시인 뽑았다

1908년 최남선의 신시(新詩) <해에게서 소년에게>를 기점으로 올해 100년을 맞은 한국 현대시사(詩史)의 대표 시인 10명은 누구일까. 한국시인협회(회장 오세영ㆍ이하 시협)가 문학평론가로 활동하는 국문과 교수 10명에게 작고 시인을 대상으로 10대 시인 및 대표작 선정을 의뢰한 결과 김소월 <진달래꽃>, 한용운 <님의 침묵>, 서정주 <동천>, 정지용 <유리창>, 백석 <남신의주 유동 박시봉방>, 김수영 <풀>, 김춘수 <꽃을 위한 서시>, 이상 <오감도>, 윤동주 <또다른 고향>, 박목월 <나그네>가 뽑혔다.

선정 작업은 평론가들이 각자 한국 현대시사에서 가장 의미있는 성과를 남겼다고 생각하는 작고 시인 10명과 시인별 대표작을 추천하고, 이들 후보군에서 추천을 많이 받은 순서대로 10대 시인 및 대표작을 정하는 방식으로 이뤄졌다. 문화 외적인 요소가 개입할 소지를 최소화하기 위해 생존 작가는 논의 대상에서 제외했다.

선정 위원엔 최동호(고려대), 이숭원(서울여대), 정과리(연세대), 이광호(서울예대), 유성호(교원대), 오형엽(수원대), 방민호(서울대), 문혜원(아주대), 홍용희(경희사이버대), 이재복(한양대) 교수가 참여했다. 오세영 시협 회장은 "오늘날 시대정신이 선호하는 시인들이 누군지 알아보고, 아울러 시에 대한 대중적 관심을 환기시키고자 했다"며 선정 취지를 밝혔다.

10대 시인의 대표시는 11월24일 서울 국립극장에서 열릴 예정인 시예술 행사 '시인만세'에서 시 낭송, 음악, 무용 등 다채로운 방식으로 공연된다. 기획 및 총연출은 연극인 이윤택씨가 맡는다. 시협 창립 50주년 및 '시의 날' 제정 20주년 기념을 겸한 이번 행사는 한국일보, 시협, JEI재능교육이 공동 주최한다.(이훈성기자)

한국일보(07. 10. 15) [한국 현대사 10대 시인] <1>김소월

오늘부터 주 5회(월~금)씩 2주에 걸쳐 한국 현대시 100년을 빛낸 10대 시인의 대표시를 소개합니다. 선정에 참여한 문학평론가 10명이 해설을 맡았습니다. 시 전문은 해당 시인의 정본(正本) 혹은 그에 준하는 작품집에 수록된 내용을 따르고 그 출처를 밝힙니다. <편집자 주>

진달래꽃
- 김소월 -

나 보기가 역겨워
가실 때에는
말없이 고히 보내드리우리다

영변에 약산
진달래꽃
아름 따다 가실 길에 뿌리우리다

가시는 걸음걸음
놓인 그 꽃을
사뿐히 즈려 밟고 가시옵소서

나 보기가 역겨워
가실 때에는
죽어도 아니 눈물 흘리우리다

출처 : 권영빈 엮음, <김소월시전집>, 문학사상사, 2007 (*출처의 편자는 '권영빈'이 아니라 '권영민'이다.)

△1902년 평북 구성 출생. 본명 정식(廷湜) △1915년 오산학교 입학. 이곳에서 시 스승인 김억(金億)을 만남 △배재고보 졸업, 도쿄상대 중퇴 △1920년 <창조>에 ‘낭인의 봄’ 등 발표하며 데뷔 △1922년 <학생계>에 ‘진달래꽃’ 발표 △1924년 <영대>에 ‘산유화’ 발표 △1925년 유일한 시집 <진달래꽃> 발간 △1934년 12월 음독 자살할 때까지 154편의 시를 남김

◆'진달래 꽃' 작품해설
1922년 <개벽>에 발표된 김소월의 <진달래꽃>은 남녀 간의 사랑의 기쁨과 이별의 슬픔을 노래한 낡은 시가 아니다. 이 시는 1920년대라는 시대적 단위를 넘어서서 사랑의 보편성을 노래한 20세기 한국의 명시라 평가해도 무리가 아니다.

이 시에서 주목되는 것은 우선 형식과 언어이다. 알려진 것처럼 7ㆍ5조 또는 3ㆍ4ㆍ·5음절의 3음보를 기반으로 하고 있는 이 시는 매연 3행 모두 12연의 기ㆍ승ㆍ전ㆍ결의 구조적 완결성을 지니고 있다. 미적 형식으로서 견고한 완결성이 이 시에 풍요로운 생명력을 불어넣는다. 누구나 사용할 수 있는 일상적 어휘들 또한 시적인 완결성을 위해 긴밀하게 변주되어 하나의 명편이 탄생된 것이다.

다음으로 논할 수 있는 것은 여성적인 화자의 목소리가 전해 주는 절절한 호소력이다. 여성적인 화자의 목소리로 말하고 있다고 해서 이 시의 화자가 여성이라고 단정할 수는 없다. 그러나 매 연의 마지막을 장식하고 있는 곡진한 종결 어미들은 모두 이별의 정서를 절실하게 전하는데 있어서 유감이 없다. 남성도 사랑하던 사람과 이별하는 순간에는 이처럼 여성적인 어조로 말하게 될 것이다.

그렇다면 이 시의 화자는 지금 이 순간의 이별을 말하고 있는 것일까. 일단 그렇지 않다고 말할 수 있다. 왜냐하면 ‘가실 때’라고 분명히 화자가 말하고 있기 때문이다, 화자가 역겨워서 ‘가실 때’는 님이 가시는 미래의 그 어느 때이다. 언젠가 닥쳐올지 모를 이별의 슬픔을 예견하면서 사랑의 기쁨을 말하고 있다는 것이 이 시의 묘미이다. 사랑의 기쁨을 직접적인 언사로 말하지 않는 것이 한국인들이 우회적으로 사랑을 고백하는 방식일 것이다.

마지막으로 말하고 싶은 것은 이 시의 화자가 이별의 그 순간 눈물을 흘리느냐 흘리지 않느냐의 문제이다. 이 시는 ‘죽어도 아니 눈물 흘리우리다’로 끝나고 있다. 이별을 부정하는 ‘아니 눈물’을 흘린다고 했으니 그것은 이별의 눈물은 흘리지 않겠다고 말한 것으로 해석된다. 부정의 눈물이 통곡의 눈물보다 더 깊은 호소력을 갖는다는 것을 김소월은 깨달았던 것이다. 김소월을 한국의 대표적인 서정 시인으로 만든 작시법의 비밀이 여기에 있다고 하겠다.(최동호 문학평론가ㆍ고려대 교수)

07. 10. 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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람혼 2007-10-16 04:2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흠, 투표 분위기일까요? ^^; 저는 제 성향(?)상 이상, 김수영, 김춘수에 한 표씩을 '행사'하고 싶습니다.^^

로쟈 2007-10-16 08:30   좋아요 0 | URL
분위기까지야... 10위까지의 랭킹은 다들 비슷할 거 같고, 각자의 취향이 드러나는 건 11-20위권에서가 아닐까라는 게 제 생각입니다. 20명 정도 꼽으려면 한국시의 애독자이기도 해야겠고...

릴케 현상 2007-10-16 12:1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10대시인 선정과정에서 이렇게 나왔군요^^ --->김종삼은 말할 것도 없고, 이상화 김영랑 이육사 김현승 이용악 조지훈 신동엽 박재삼 기형도 등 이날 입에 오르내린 시인들은 이 중 누구를 최종 명단에 올리더라도 전혀 어색하지 않은 시적 성취를 보여줬다는 평이다.

로쟈 2007-10-16 16:51   좋아요 0 | URL
새로운 이름들이 아니어서 좀 식상합니다.^^;

기인 2007-10-16 13:0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오; 등단연도는 아닌 것 같고, 1위부터 10위 순위인가 보죠? 헐;; 투표라.. 어렵네요;; 1위를 뽑는 것은 어렵고 20명 꼽는 것이 더 쉬울 것 같기는 한데.. 그래도 아마; 백석? ^^;

로쟈 2007-10-16 16:52   좋아요 0 | URL
사실 1-7명까지는 쉽게 견적이 나오는데, 그 이후 20위까지가 유동적인 듯하고 그래서 각자의 취행을 더 잘 반영해주지 않을까 싶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