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침에 전철에서 읽은 기사를 옮겨놓는다. '비싼 공연'의 사회학을 다룬 경향신문의 '경향2' 커버스토리이다. '이 정도 공연은 봐줘야 수준이 맞다'라는 '문화귀족'들의 허위의식이 최근에 '비싼 공연'을 부추기고 있다는 내용도 포함돼 있다. 상징적 폭력(=구별짓기)의 수단으로서 예술감상과 향유가 남용되는 것은 유구한 일이긴 하나 꼴사나온 일이기도 하다. 꼴사나운 만큼 달라지면 좋겠지만 유구한 만큼 쉬운 일은 아닐 것이다(예술/공연 대신에 다른 것이 그 일을 대신할 테니까). 다만 나는 TV를 통해서 가급적 많은 공연들을 보여주는 것이 한 가지 방법은 아닐까 생각해본다.   

경향신문(07. 10. 04) '문화귀족'이십니까?

‘그 공연 보셨어요.’뉘집 개 이름도 아닌 ‘60만원짜리, 45만원짜리, 20만원짜리’의 고가(高價) 공연들이 불과 몇년 사이에 장삼이사의 밥상머리 화제가 됐다. 11월에 예정된 것만 봐도 귀빈석 기준 ‘크리스티안 틸레만&뮌헨 필하모닉 오케스트라 초청공연’(24만원), ‘오페라 라 트라비아타’(31만원), ‘로마극장 초청 오페라 아이다’(32만원) 등 고가 공연들이 즐비하다.

해외 유명 공연의 수입 붐과 뮤지컬의 급부상, 기업의 문화마케팅 등이 얽혀 빚어낸 ‘고가 공연’의 사회적 프리미엄은 갈수록 오를 기세다. 문제는 고가 공연을 둘러싼 사회의 분위기다. ‘어느 동네 사느냐’가 계층을 구별하는, 부정할 수 없는 기준이 됐듯 값비싼 공연의 관람여부가 신분이나 계층을 가늠하는 또 하나의 잣대가 돼가고 있다.

‘이 정도 공연은 봐줘야 수준이 맞다’는 인식이 넘쳐난다. 이벤트사를 운영하는 여성 사업가 손씨(36)는 “사업상 만나는 사람들 대화에서 기죽지 않으려고 LG아트센터나 예술의전당의 값비싼 공연을 찾아다닌다”면서 “‘넌 안봤냐’고 물으며 과시하는 그들도 공연 자체에 별 관심 없기는 매한가지”라고 고백했다.

아이들 사이에서도 예외는 아니다. 맞벌이 주부 김씨(40)는 몇달 전 초등학교 3학년 딸의 성화에 시달려야 했다. 해외팀이 공연한 ‘태양의 서커스 퀴담’을 보여달라는 재촉 때문이었다. 아이는 공연을 본 친구가 “잘난 척 한다”면서 “나도 보여달라”고 아우성이었다. 공연 티켓가격은 VIP패키지석 20만원, 등급이 가장 낮은 A석도 5만5000원에 이르렀다. 3인 가족 관람료를 계산하다 빤한 살림에 엄두가 나지 않아 포기했다.

최근 이런 분위기는 더욱 심화되고 있다. 지난달 난생 처음 대형뮤지컬을 보기 위해 세종문화회관을 찾은 최씨(25). 그는 “공연만을 감상하는 분위기가 아니어서 불편했다”며 “객석에 들어선 순간 상류층의 냄새가 나는 듯해 위화감마저 느꼈다”고 털어놨다. ‘고가 공연족’들은 일명 ‘체육관 공연장’처럼 저가 좌석이 많은 공연은 ‘어중이떠중이가 많이 온다’며 관람을 꺼리기도 한다.

기업의 문화마케팅도 일조하고 있다. 국립극장 2층 귀빈용 로비에선 ‘그들만의 공연’을 즐기기 위한 풍경이 심심찮게 벌어진다. 금융사나 유명백화점이 초대한 고객들이 공연시작 전 다과를 즐기며 ‘럭셔리한’ 분위기를 맛본다. 한 기업의 문화마케팅 관계자는 “이 부류에 끼기 위해 수천만원이나 되는 구매 상한액을 일부러 채우는 고객도 있다”고 귀띔했다.



문화비평가들은 “고가 공연을 둘러싼 사회적 욕망에는 왜곡된 ‘허위의식’이 깔려있다”면서 “마치 명품을 사듯 공연을 소비하는 사람들, 또 이런 와중에 박탈감을 느끼는 사람들간의 갈등이 문제”라고 지적했다. 프랑스 사회학자 피에르 부르디외가 일찌감치 묘파했던 ‘(문화로) 구별짓기’가 공연장 안팎에서 벌어지고 있는 것이다.(김희연기자)

경향신문(07. 10. 04) ‘비싼 공연’ 소비하는 ‘껍데기 문화’

최근 무대공연을 둘러싸고 ‘티켓 가격’이 곧 ‘작품의 질’이고 ‘나의 문화수준’이란 기형적 공식이 생겨났다. 문화비평가 정윤수씨는 ‘고가 공연’을 부추기는 배경으로 문화적 허위의식을 꼽았다. “대형 공연장에서 화려한 공연을 ‘소비’하는 순간 자신이 마치 일류 문화 트렌트에 합류한 것으로 착각하는 허위의식이 팽배하고 있다”는 것. 그는 “공연작품에 대한 감동이나 이해와는 점점 멀어지고 소비만 하게 되는 게 문제”라고 지적했다.

▲‘비싼 공연’이 문화적 스타일의 완성?

문화 ‘향유’가 아닌 ‘소비’의 부작용이 나타나고 있다. 올초 세종문화회관에서 공연된 프랑스 뮤지컬 ‘로미오 앤 줄리엣’의 VIP석 가격은 25만원으로 뮤지컬 공연 중에서도 고가였다. 작품에 대한 평가는 “괜찮다” “기대에 못미친다” 등으로 엇갈렸지만 공연마다 기립박수가 터져나왔고 성황을 이뤘다. 공연 관계자들조차 “환호성 치는 관객들이 작품을 제대로 봤는지 모르겠다”며 “‘프랑스 뮤지컬’이란 간판에 뒤로 넘어가는 분위기”라고 말했다.

한달 공연 관람비로 150만~200만원을 쓰는 싱글족 이씨(37)는 VIP석이나 적어도 로열석을 고집한다. 그는 “공연보기는 사치스러운 취미생활”이라며 “비용이 부담스럽긴 하지만 그만큼 만족감을 느낀다”고 말했다. 또 자신은 “공연을 즐기는 축에라도 끼지만 명품을 휘감고 VIP석에 앉은 사람들 중에 제대로 공연을 감상하는 사람들은 드물다”고 귀띔했다.



예술의전당의 세계적인 오케스트라 연주회에서도 상황은 비슷하다. 수십만원짜리 VIP석이 비어 있거나 그 날의 연주 수준과는 무관하게 유명세만으로 낯뜨거운 기립박수가 코미디처럼 벌어진다. 클래식 칼럼니스트 정준호씨는 “고가의 티켓가격이 터무니 없이 책정되는 것만은 아니다”라며 “생활수준도 높아졌고 해외 유명 단체의 공연이 늘어나면서 고가공연이 생겨난 일면도 있다”고 설명했다. 그러나 그는 “고가 공연이 늘어난 만큼 과거에 비해 무대 위 연주자들과 공연을 완성하는 관객의 수준이 따라 오르지 않은 게 문제”라고 평했다.

오페라와 오케스트라 연주회, 대형 뮤지컬 등의 ‘고가 공연’은 과거엔 일반인들과 별 상관없는 것이었다. 그러나 공연 물량이 늘어나고 TV광고, 기업문화마케팅 등이 계속되면서 대중의 관심사가 됐다. 하지만 증폭된 관심과 달리 이들 공연에 접근은 쉽지 않다.

김창남 성공회대 교수(신문방송학과)는 “‘아날로그 공연’에서 벌어지는 양극화는 당장 경제적인 문제로 비춰질 수 있지만 이런 괴리감은 사회적 갈등을 야기할 수 있다”고 내다봤다. “서구사회의 경우 다양한 문화적 스펙트럼이 존재해 갈등이 해소될 여지가 많지만 우린 ‘모 아니면 도’ 식의 쏠림현상이 강해 갈등의 골이 깊어질 수 있다”는 것이다.

▲1000원짜리 공연에 14만명 몰린 이유

고가 공연 시장이 팽창할수록 제대로 된 무대 공연을 보고자 하는 잠재된 욕구 또한 만만치 않다. 세종문화회관이 올해 마련한 ‘천원의 행복’ 공연에 쏠린 관심이 말해준다. 대극장에서 매달 한차례씩 관람료 1000원으로 클래식, 뮤지컬, 국악, 무용 등을 볼 수 있는 프로그램에 지난 9개월간 14만명의 신청자가 몰렸다. 세종문화회관 사이트가 다운되고 업무가 마비됐을 정도다. 공연을 기획한 이창기 팀장은 “공연장 마당에서 이벤트성으로 잠깐 펼치는 공연들로는 사람들의 문화적 갈증을 해소할 수 없다”면서 “제대로 된 공연장에서 한편의 작품을 감상하며 문화를 맛보게 하는 공익적 프로그램과 시스템이 뒷받침될 때”라고 강조했다.

기업의 획일적인 문화마케팅도 앞으로는 다양화돼야 한다는 의견이 많다. 그동안 생색내기용으로 고가 공연을 선호하며 “비싸야 잘 팔린다”는 공연계 제작 메커니즘 형성에 일조했다는 비난을 면하기 어렵다는 주장이다. 뮤지컬제작사 쇼팩의 송한샘 대표는 “문화 후원이란 명분을 내세우지만 실제 10만원 이하의 공연이나 국내 창작물은 거들떠보지도 않는다”며 “거품의 중심에 기업이 있다”고 지적했다. 지난 9월부터 시행된 기업의 문화접대비 손비처리 수혜도 일부 고가 공연에나 해당되는 ‘그림의 떡’이란 얘기다.

물론 이에 반대하는 시각도 있다. 지금은 과도기이기 때문에 공연시장 발전을 위해서는 기업이 후원금만큼 고가의 티켓을 되가져가는 규모라도 커져야 한다는 주장이다. 기업 문화마케팅을 돕는 클립서비스 설도권 대표는 “기업 입장에서 이윤을 주는 VIP고객에게 문화마케팅을 하는 것은 너무나 당연한 일”이라며 “그나마 아직까지도 활발하지 않아 더욱 활성화돼야 한다”고 말했다. 그는 “시장이 충분히 커지면 다양한 형태의 문화마케팅이 개발된다”며 “중저가 공연이나 여성을 타깃으로 한 대학로 공연 등으로 관심이 옮아갈 것”이라고 기대했다.

부천필하모닉의 지휘자 임헌정 교수(서울대음대 작곡과)는 “문화예술은 ‘정신적 영양소’로 인간의 몸이나 사회가 균형이 깨지면 말썽이 생기듯 문화 향유와 소통에도 균형이 이뤄져야 한다”고 강조했다. 문화평론가 이영미씨는 “과거 고급문화, 대중문화로 나뉘던 것이 요즘은 비싼 것과 비싸지 않은 공연으로 갈라지고 있다”며 “여기에서 벗어나 각자의 취향이 만들어지고 이를 드러낼 수 있는 힘이 생긴다면 더이상 자기를 속이는 ‘껍데기 취향’에 좌우되지 않게 될 것”이라고 말했다.(김희연기자)

경향신문(07. 10. 04) '수준높은 공연·저렴한 티켓’ 행복찾기

해외에는 공연문화의 격차와 갈등 해소를 위해 어떤 프로그램과 대안의 움직임이 있을까. 일본의 경우 극단 ‘시키’가 성공적인 사례로 꼽힌다. 기업과 손잡고 초등학생을 위한 무료공연을 수년간 계속해오고 있다. 니혼생명이 1964년 도쿄에 ‘닛세이 명작극장’을 세우고 극단 시키의 어린이용 뮤지컬 무료공연을 후원하고 있다.

당시 니혼생명 사장 히로세 겐은 “젊은이나 어린이들에게 제대로 된 무대 공연을 볼 기회를 만들어줘야 한다. 그 감동은 반드시 앞날에 도움이 될 것”이라며 극장 설립은 물론 공연비용까지 부담하기 시작한 것이다. 이후 도쿄뿐 아니라 오사카, 나고야, 요코하마 등 10여개 도시에서 무료공연이 펼쳐지며 현재까지 공연횟수 4229회, 초대 어린이수 665만명을 기록하고 있다.

예술상품의 공공성을 국가가 정책적으로 내세우는 프랑스는 공연작품의 유통까지 세밀하게 관리하는 방식이다. 수준 높은 공연물을 1만원 미만의 티켓 값으로 누구나 볼 수 있게 시스템화했다.

문화관광부 산하 예술경영지원센터 국제교류팀 장현주 차장은 “프랑스 5개 국립극장에서는 대규모 국가 브랜드 공연 사업을 펼치는 반면 나머지 60여개 지역별 국립드라마센터에서는 각 지역민들을 위한 공연 서비스에 중점을 둔다”고 소개했다. 빈민지역이나 낙후된 위성도시에서도 국가가 수준을 보증하는 공연들이 서민 관객을 만난다. 또 파리 바스티유 오페라의 경우 2005~2006년 시즌 동안 오페라 공연에 입석을 마련, 1인당 6500원 정도로 모두 1만2000 좌석을 판매하는 등 다양한 아이디어를 내고 있다.

한국문화관광정책연구원의 양건열 연구원은 “영국은 ‘영국예술위원회(Arts Council)’를 중심으로 방대한 사업을 펼치고 있는가 하면 미국은 상업적인 공연시장에 맡기는 등 각기 성격이 다양하다”고 말했다. 미국은 특히 기업의 후원문화가 활발하다. 뉴욕필하모닉의 경우 2005~2006 시즌 동안 1만2000건의 개인 및 단체기부를 받았을 정도다. 기부금 수입만으로 175억원을 올렸다.

국내 대극장과 기업 등에서도 잠재된 문화욕구를 충족시키기 위한 다양한 방법을 모색하고 있다. 세종문화회관이 진행하고 있는 ‘천원의 행복’(사진) 프로그램 이후 KT 광화문 아트홀의 ‘천원의 나눔’, 울산현대예술관 ‘천원의 공연’ 등이 생겨났다.(김희연기자)

07. 10. 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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드팀전 2007-10-04 17:52   좋아요 0 | URL
로쟈님 오늘은 늦었는데요 .^^ 무화과나무님이 선수를 ㅋㅋ
오늘 잠깐 서점에 갔다가-일과 일 사이에 약간 뜨는 시간- 카라마조프형제들 3권 맨 마지막에서 로쟈님의 이름을 확인했지요.ㅋㅋ 본명 라스콜리니코프 ㅎㅎㅎ 앞으로도 신세질테니 감사의 말을 전한다는.. 후배였나봅니다 ㅋㅋㅋ
테리 이글턴의 <성스러운 테러>를 보고 있는데,아주 재미있네요.로쟈님께 탱스투를 했어야 하는데..담에는 꼭. 부산에는 비옵니다.영화제 개막식은 빗속에서 하려나

로쟈 2007-10-04 18:50   좋아요 0 | URL
아까 '문화귀족'을 검색할 때 아무런 페이퍼도 안 뜨던데, 부분적으로 옮겨놓으셨군요. 뭐, 아주 같지는 않으니까요.^^; <성스러운 테러>는 재미있게 읽은 책이지만 별로 읽는 사람이 없는 것 같더니 부산에 한분 계셨군요.^^ 땡스투는 담에 해주시길.^^

수유 2007-10-04 23:43   좋아요 0 | URL
아시아 순회 공연일지라도 우리나라 티켓 값이 높죠..여러 요인들이 있겠지만...
여튼..그러나 가고싶은 공연은 여기저기 뜨고 나는 가고싶어하고 사정은 안되고 그렇습니다... 10월의 바흐 페스티벌은 약간 고가이지만 한번쯤은 가야되는데 어떨지 모르겠습니다.

로쟈 2007-10-05 22:46   좋아요 0 | URL
이럴 때 귀가 고급이지 않은 게 고민을 덜어주는군요.^^

자꾸때리다 2007-10-05 09:02   좋아요 0 | URL
바흐 페스티벌 저고 가고 싶어서 안달이 났었는데 도무지 가격 때문에 포기..ㅜ.ㅜ
근데 10월과 11월에 열리는 엘리야후 인발의 몬테카를로 필과 크리스티앙 텔레만의 뮌헨 필 공연은 거의 같은 수준의 A급 지휘자와 악단인데도 최저 가격으로 봤을 때 하나는 2만원이고 하나는 7만원 이더군요.

기인 2007-10-05 11:27   좋아요 0 | URL
헐.. 책도 파피루스로 만들어서 몇십만에 팔거나.. 전집류로 '쌔끈'하게 비싸게 팔아야 하겠네요.. 아니, 지금 그렇게 팔고 있군요;;;
흠.... 소극장 창작극들 좋은데요~ 가끔 배우보다 관람자가 적어서 민망하기도 하고. ^^;

로쟈 2007-10-05 22:47   좋아요 0 | URL
'고급 공연'을 가끔은 아주 저렴하게 볼 수 있는 여건만 마련된다면 '비싼 공연'의 문제점들도 상쇄되지 않을까 싶네요...

푸른신기루 2007-10-07 00:38   좋아요 0 | URL
10만원짜리 공연을 보면서도 공연예절은 10원짜리도 안 되는 분들 많아요
기사에 적힌 가격들을 보니 10만원은 껌값인가 싶기도..;;
아르바이트를 하다보면 공연의 가격과 공연 보는 예절이 비례하는 건 아님을 참 절실히 느끼곤 합니다

로쟈 2007-10-07 10:35   좋아요 0 | URL
티내기(구별짓기)에 아직 덜 숙달한 모양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