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건강은 타고난 복'이라고 옛어른들은 말씀하셨지만 오늘날의 상식은 좀 다르다. 특별한 '통뼈'가 아니라면 건강은 '사회경제적 지위'에 따라 결정된다, 는 게 요즘의 통념이 아닐까? 그런 통념을 실증적으로 뒷받침해주는 책들이 출간되고 있다. '사회의제화를 위한 국민보고서'를 부제로 달고 있는, '건강불평등에 관한 대국민 보고서이자 한국판 건강불평등 르포르타주' 이창곤의 <추적, 한국 건강불평등>(밈, 2007)에 대한 소개기사를 옮겨놓으면서 몇 자 보탠다.
한국일보(07. 09. 29) 경제력 따라 건강이 달라진다… 그 불편한 진실
사람들은 사회경제적 지위에 따라 건강 정도가 다르다. <추적, 한국 건강불평등>은 사람들이 어렴풋이 느껴왔고, 1990년대 말 IMF 경제위기 이후 양극화가 심화하면서 체감하고 있는 이 문제를 깊이 파고든다.
건강에 해로운 흡연을 예로 들어보자. 흡연이 원인의 75%를 차지하는 폐암으로 인한 사망률은 낮은 계층이 높은 계층의 2.3~8.1배에 이른다. 학력과 소득, 직업 등에 따라 흡연의 정도나 금연에 참여하는 수준이 다르기 때문이다. 막노동꾼 떠돌이 등 저소득층의 삶에는 흡연이 깊숙이 자리잡고 있다. 이들에게는 몇 천원의 담배 외에는 삶의 팍팍함과 고단함을 손쉽게 풀 수 있는 수단이 없다. 보건소의 금연클리닉은 들어본 적도 없다. 반면 교사 건축설계사 사업가 등 안정적인 직업과 고소득 계층은 건강에 대한 관심도 높고 금연도 쉽게 한다.
부모의 사회경제적 지위는 아이의 건강에 결정적이다. 아이를 낳기 직전까지 어머니의 영양상태와 물질적 환경이 아이의 건강을 좌우하기 때문이다. 저체중아는 건강불평등을 보여주는 좋은 사례다. 강원대 손민아 교수의 조사에 따르면 아버지의 학력은 저체중아 출생과 깊은 관련이 있다. 학력은 보통 경제력의 잣대로 간주된다. 아버지가 초등학교 졸업 이하인 경우 대졸 이상보다 저체중아를 얻을 확률이 1.69배 높다. 고졸 아버지는 1.1배, 중졸은 1.44배 높다.
서울 강북구에 사는 사람이 질병, 사고 등으로 숨질 가능성은 서울 서초ㆍ강남구에 사는 사람보다 30%가 더 높다. 성과 나이가 똑같을 경우 전국에서 사망률이 가장 낮은 곳은 서울 서초구이며 가장 높은 곳은 경남 합천군으로, 두 지역의 격차는 갑절이나 됐다. 2000년부터 2004년까지 5년간 전국 234개 시군구의 사망등록자료를 토대로 조사한 결과다. 강남에 사는 사람들은 교육수준이 높고, 좋은 직업, 높은 소득을 올리는 사람이 상대적으로 많다. 또 다른 지역보다 인구 당 운동시설이 더 많을 수 있다.
건강이 좋지 못한 저소득층이 당연히 의료이용 수준이 높을 것 같지만 연구결과에 따르면 그렇지 않다. 특히 큰 돈이 들어가는 암 치료에서는 고소득층의 이용이 더 많다. 저소득층은 병에 더 잘 걸리고 치료는 덜 받으니 건강이 더 불량할 수 밖에 없다. 지난해 초 <한겨레>에 연재된 기획기사를 뼈대로 하고 있는 이 책은 우리 사회나 정부가 건강불평등 문제에 관심을 좀더 갖고 해결책을 마련할 것을 촉구하고 있다.(남경욱기자)
07. 09. 30.
P.S. 같이 읽어볼 만한 책으로는 리처드 월킨스의 <건강불평등, 사회는 어떻게 죽이는가?>(당대, 2004)와 마이클 마멋의 <사회적 지위가 건강과 수명을 결정한다>(에코리브르, 2006), 그리고 최근에 나온 사라 네틀턴의 <건강과 질병의 사회학>(한울, 2007) 등이 있다. 평균수명이 길어지는 만큼(그만큼 병치레 기간이 길어질 거란 얘기도 된다. 우리는 건강하게 오래 사는 게 아니라 병원에서 오래 버티게 될 것이다) '건강불평등'과 '사회적 건강'(과연 어떤 사회가 건강한 사회인가?)의 문제를 진지하게 생각해볼 필요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