토요일 오후에서야 가까스로 '글의 감옥'에서 벗어났다. 많은 분량은 아니었음에도 주말에 세 편의 원고를 몰아서 쓰는 건 정신적으로 너무 곤욕스럽다(지난 이틀 내내 마지막 30초에 쫓기며 바둑을 두는 기분이었다. 그렇다고 해서 뭐 날밤을 샜다거나 하는 건 아니지만). 그러나 보니 어느덧 달이 바뀌고 계절이 바뀌었다. 당장 개강준비로 읽어야 할 책들이 턱밑까지 쌓여 있다. 그러는 와중에 또 사회적 독서의 목록도 '의무감'으로 만들어놓아야 한다.

사실 7, 8월의 사회적 독서 목록(http://blog.aladin.co.kr/mramor/1366681)을 보니 내가 읽지 못한 책들이 대다수이고 그나마 구입한 책이 절반 가량이다. 휴가도 못 갈 만큼 바쁘기도 했으니까 변명의 여지가 없는 건 아니지만 좀 부끄러운 것도 사실이다(대신에 다른 책들을 읽었던 걸 위안으로 삼는다). 어차피 사놓은 책들은 언제 읽어도 읽게 되는 것인지? 그런 사정을 염두에 두니까 '9월의 사회적 독서'라고 선뜻 말하지 못하겠다. 게다가 마지막 주는 추석 연휴이니 실질적으로 3주밖에 안되는 데다가 첫주는 개강이라 다들 바쁘지 않겠는가. 해서 '9, 10월의 사회적 독서'라고 해두고, 주제별로 몇 권의 책 정도를 꼽아보도록 한다.  

 

 

 

 

첫번째 주제는 '제국'이다. 이미 이에 대해서는 '제국에 대한 아주 간단한 입문'(http://blog.aladin.co.kr/mramor/1504292)과 '로버트 카플란과 제국의 보병들'(http://blog.aladin.co.kr/mramor/1507526) 같은 페이퍼에서 다룬 바 있다. 거기에 덧붙여서 홉스봄의 4부작 중 <제국의 시대>(한길사, 1998), 앙드레 슈미드의 <제국 그 사이의 한국 1895-1919)>(휴머니스트, 2007), 그리고 사회주의 저널 '먼슬리 리뷰'의 한국어판 <제국의 새로운 전선>(필맥, 2007)을 '역사'와 '시사'를 보완하는 의미로 같이 꼽아둔다(네그리와 하트의 <제국>은 그 자체로 덩치가 너무 크기에 여기서는 다루지 않는다).

 

 

 

 

두번째 주제는 혁명이다. 특히 올해 90주년이 되는 러시아의 10월 혁명이 주제이다(10월 혁명은 구력으로 환산한 것이어서 오늘날의 달력으론 11월 7일이 혁명기념일이다). 예의상 관련서들을 한권 정도는 읽어줘야 하지 않을까. 이미 여러 차레 페이퍼를 쓴 바 있지만 지젝의 <혁명이 다가온다>(길, 2006)가 핵심적이지만 가독성이 떨어지기에 대중적으로는 이번에 새로 나온 스티브 스미스의 <러시아혁명>(박종철출판사, 2007) 정도를 권한다. 저명한 러시아사가 리처드 파이프스의 <공산주의>(을유문화사, 2006), 로버트 서비스의 <스탈린, 강철권력>(교양인, 2007)과 함께 영어권 학자들의 시각을 일람할 수 있도록 해준다. 그리고 김학준의 <러시아 혁명사>(문학과지성사, 개정판1999)는 아직까지는 국내에서 나온 가장 두꺼운 책이다. 올가을에 관련서들이 더 나오면 좋겠다.

Lenin Reloaded: Toward a Politics of Truth sic vii ([sic] Series)

가령 지젝 등이 편집한 <재장전된 레닌(Lenin Reloaded)>(2007) 정도의 책이 나와주었으면 싶다.

 

 

 

 

세번째 주제는 정치의 계절에 읽는 고전으로 마키아벨리의 <군주론>이다. 다양한 번역본이 나와 있는데, 가장 많이 팔리고 있는 건 강정인 등이 옮긴 <군주론>(까치글방, 2003)이다(영역본을 옮긴 것이다). 역시나 강정인 교수 등이 쓴 해제 <군주론>(살림, 2005)를 참조해볼 수 있겠고, 레오스트라우스의 <마키아벨리>(구운몽, 2006)은 <군주론>을 이미 읽은 독자들이 읽어볼 만한 책이겠다(마키아벨리의 <로마사논고>(한길사, 2003)와 같이 읽어야 한다). 산본마쓰의 <탈근대군 주론>(갈무리, 2005)는 "1960년대 신좌파의 등장, 프랑스 구조주의 철학, 탈식민주의 등 다양한 포스트모더니즘 이론을 꼼꼼하게 읽고 이들의 인식론적 오류와 실천적 결함을 철저하게 비판"하고 있는 책이다. 탈근대에 다시 씌어질 수 있는 <군주론>이란 어떤 것인지 가늠해보게 한다.

 

 

 

 

네번째 주제는 계절이 계절이니만큼 '고독'이다. 정치를 '고독산업'이라고도 부르는 강준만의 <고독한 한국인>(인물과사상사, 2007), 리즈먼의 고전적인 사회학서 <고독한 군중>(문예출판사, 1999), 전설적인 산악인 라인홀트 메스너의 <검은 고독, 흰 고독>(이레, 2007) 등 고독의 메뉴는 다양하다. 노베르트 엘리아스의 <죽어가는 자의 고독>(문학동네, 1998)도 일독해볼 수 있겠고, 폴 오스터의 초기 에세이집 <고독의 발명>(열린책들, 2001)도 꼽아볼 수 있겠다. 마르케스의 소설 <백년의 고독>이나 릴케, 김현승의 시까지 거론하게 되면 끝이 없을 듯하므로 각자의 고독은 각자가 챙기시길...

07. 09. 01.

 

 

 

 

P.S. '사회적 독서'에서 '고독'을 주제로 다룬다고 하니까 뭔가 어색하긴 하다. 아마도 더 어색한 건 '단독자의고독'을 다룬 키에르케고르(키르케고르)의 책들을 읽는 것이 될 것이다. 다산글방에서 다시 나오고 있는 임춘갑 선생 번역의 키에르케고르가 이제 다섯 권이 되었다(<이것이냐 저것이냐>가 아직 안 나온 것인가?). 이번 가을에는 (열외로) 키에르케고르도 한두 권 읽어보도록 해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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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roreo 2007-09-01 17:28   좋아요 0 | URL
김학준저작의 <러시아혁명사>가 아니라 번역일 뿐이라고 알고 있습니다만. 작년 <한겨레신문>의 한 칼럼에서 그런 뉘앙스의 글을 보았습니다. "전두환때 정치특보"였던 이라면 마땅히 김학준을 가리키는 진술인에요. 원저자를 아실 수 있는지요?

로쟈 2007-09-01 17:33   좋아요 0 | URL
아마도 편저성이 강하다는 뜻일 테구요, 저자가 참조한 책들은 책에 소개돼 있었던 것으로 기억됩니다. 요는 여기저기서 발췌/번역도 하고 본인이 채워넣기도 하고 그랬다는 얘기지요...

허리우스 2007-09-02 00:26   좋아요 0 | URL
음 찜할께요. 매번 관심가는 책들을 소개해주셔서 감사드립니다. 건승하시죠.

로쟈 2007-09-02 10:50   좋아요 0 | URL
관심가는 주제시라니까 다행이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