컬처뉴스에서 가라타니 고진의 <세계공화국으로>(도서출판b, 2007)에 대한 서평기사를 옮겨온다. 온라인에서 읽을 수 있는 가장 자세한, 그리고 가장 유익한 기사이다. 고진의 책은 책상에 쌓여 있는 40여 권의 책들 가운데서도 가장 눈에 띄는 자리에(맨 위에!) 놓여 있는데, 다른 책들에 치이다 보니 나는 뜨문뜨문 듬성듬성 읽게 된다. 고진의 '가장 쉬운 책'이라고도 하니까 보다 많은 분들이 일독해 보시길 권한다.

컬처뉴스(07. 07. 20)  GO진! 다시 "맑스로 돌아가자!"

미국의 평론가 고(故) 수전 손택은 자신만의 위대한 작가 분류법을 이렇게 밝힌 적이 있다. “위대한 작가는 남편 아니면 애인, 둘 중 하나다.” 이런 구분법에 따르면 내게 가라타니 고진(1941~   )은 애인이었다. 『마르크스 그 가능성의 중심』(1978)에서부터 『유머로서의 유물론』(1993)까지 근 16여 년간이었다. 이 기간은 그가 나쓰메 소세키에서부터 자크 데리다까지, 동서고금의 복잡다단한 사상을 쉼 없이 넘나들면서 깔끔히 정리해내 ‘생각하는 기계’(Thinking Machine)라는 별명을 얻게 된 시기와 겹친다.

그랬던 고진이 언젠가부터 남편이 되려고 애쓰기 시작했다. 내 기억으로는 지역화폐체제(Local Exchange Trading System, LETS)에서 힌트를 얻어 ‘새로운 연대자 운동’(New Associationist Movement, NAM)을 주장한 2000년경부터였다. 그 해 2월과 11월 그는 『윤리21』과 『NAM-원리』를 출간했고, 2004년 5월과 7월에는 앞선 두 저작의 내용을 확장시켰다고 할 만한(또는 앞선 두 저작의 ‘심화’라고 할 만한) 『네이션과 미학』과 『역사와 반복』을 ‘가라타니 고진 저작집’(定本柄谷行人集)의 4권과 5권으로 출간했다.

얼마 전 번역되어 나온 『세계공화국으로』(조영일 옮김)는 이른바 ‘고진의 남편-되기’의 정점에 해당하는 책이다. 우리는 이제 여러 사상들을 현기증 날 만큼 빠르게 넘나드는 솜씨를 과시하는 연인으로서의 고진을 더 이상 보지 못할지도 모른다. 때로는 변덕스러워 보이고, 때로는 신뢰할 수 없어 보이지만, 그만큼 위험해 짜릿한 느낌을 맛보여주는 연인으로서의 모습을.

『세계공화국으로』의 고진이 남편처럼 보이는 이유, 그러니까 믿음직함, 이해할 수 있음, 관대함, 점잖음 같은 안정감을 주는 이유는 본인 스스로 서문에서 밝혔다시피, 과거와 미래의 독자들을 위해 자신의 이론을 체계적으로 제시하려고 애쓰며 지금까지 자신이 써온 곳을 콤팩트하고 알기 쉽게 정리하고 있기 때문이다. 즉, 이제 그는 자신의 목소리를 직접 드러내며, 그만큼 자신의 의견에 책임을 지려고 한다.

그러나 ‘놀던 가락’이 어디 가지는 않는 법, 『세계공화국으로』의 고진 역시 짜릿한 느낌을 선사해 준다. 다만 그 느낌이 위험함이 아니라 대범함에서 온다는 게 다르다. 그리고 그 대범함의 핵심에는 “맑스로 돌아가자”라는 구호가 놓여 있다. 이런 점에서 『세계공화국으로』의 고진은 프랑스의 맑스주의 철학자 루이 알튀세르를 떠올리게 만든다. 알튀세르 역시 “맑스로 돌아가자”라는 구호를 내세웠기 때문이다. 그러나 철학자로서의 알튀세르와 NAM 운동가로서의 고진은 다르며, 그래서 더욱 흥미롭다.

알튀세르가 맑스로 돌아가려 했던 이유는 무엇보다도 1956년 소련공산당 제20차 당대회 이후 서구 공산당에까지 불어닥친 ‘탈스탈린주의’의 경향 속에서, 맑스주의에 대한 경제주의적 해석(사회의 모든 문제를 토대-상부구조의 문제로 환원해 설명하려는 조류), 인간주의적 해석(인간의 자유 의지나 의도 따위를 지나치게 강조하는 조류), 역사주의적 해석(흔히 맑스-레닌주의의 역사발전론 5단계로 대표되는 사회구성체의 변증법적‧선형적 발전을 신봉하는 조류)과 삼중의 투쟁을 벌이기 위해서였다. 그가 보기에 이 세 가지 조류의 해석은 진정한 혁명적 실천을 가로막는 장애물이었기 때문이다.

 

 

 

 

 

  

 

 

이와 달리 고진은 자본주의의 세계화로 인해 국가사회주의(공산주의)와 복지국가자본주의(사회민주주의)가 소멸되거나 쇠퇴한 신자유주의 주도의 세계라는 맥락에서 다시 맑스로 돌아가려고 한다. 즉, 공산주의와 사회민주주의의 실패로 인해 대안체계를 둘러싼 이념과 상상력이 온데간데없이 사라져버린 시대, 그래서 더 이상 혁명이 아니라 ‘저항’만이 운위되는 시대에서 다시 맑스로 돌아가려고 하는 것이다. 

알튀세르는 당시로서 파격적으로 보였을지언정 어쨌든 맑스주의의 ‘내부’에서 맑스로 돌아가려고 했다. 과학사가인 가스통 바슐라르의 개념(인식론적 단절)을 빌려와 청년 맑스와 장년 맑스를 구분하고, 정신분석학자인 자크 라캉의 개념(거울 단계)을 빌려와 이데올로기론을 갱신하고 생산양식의 재생산을 문제삼았지만, 어쨌든 알튀세르는 맑스주의의 언어로 이들을 소화하려고 했다. 그래서 훗날 알튀세르는 다른 전통의 사유를 맑스주의에 끌어온 자신의 시도를 일종의 ‘불장난’이라고 말할 수 있었을 게다.

그러나 고진은 맑스주의의 ‘외부’에서 맑스로 돌아가려고 한다. 고진은 자신이 동반자로 삼은 대표적 두 인물, 독일의 역사학자 칼 비트포겔과 헝가리의 경제인류학자 칼 폴라니의 논의를 맑스주의의 언어로 윤색하지 않는다. 왜냐하면 『세계공화국으로』에서 고진이 제시하려고 하는 주장은 더 이상 맑스의 텍스트 ‘내’에서 말할 수 있는 것이 아니며, 맑스를 비판하지 않고서는 말할 수 없는 것이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그 주장은 도대체 무엇일까? 고진은 “자본=네이션=국가를 넘어서는 길, 바꿔 말하면 ‘세계공화국’에 이르는 길”을 사유하려고 하며, 이를 위해서 “자본, 네이션, 국가가 어떻게 존재하는 것인가”를 명확히 하려고 한다. 그의 설명에 따르면 자본의 존재양식은 맑스에 의해 어느 정도 밝혀졌다. 그러나 네이션과 국가에 대해서는 그렇지 못하다. 그래서 그는 맑스가 『자본』에서 한 작업을 국가나 네이션에 대해서도 해야 한다고 주장하며, 이런 맥락에서 비트포겔과 폴라니의 논의를 끌어들이는 것이다.

또 한번 그렇다면, 맑스가 『자본』에서 한 작업은 무엇일까? 고진은 맑스가 상품교환이라는 기초적인 ‘교환양식’에서 시작해 복잡한 자본주의 체제의 총체를 해명하려고 했다고 본다. 따라서 맑스가 『자본』에서 한 작업을 국가나 네이션에 대해서도 해야 한다는 말은 국가나 네이션에도 그 기초가 되는 ‘교환양식’이 있으며, 그렇기 때문에 그 교환양식의 역사적 변형과 접합을 추적해 국가와 네이션의 총체를 해명해야 한다는 말이 된다. 요컨대 “생산양식에서 교환양식으로”가 고진표 “맑스로 돌아가자”의 핵심이다.

이런 점에서 보면 『세계공화국으로』의 고진은 “프로이트로 돌아가자”라고 말한 자크 라캉과 오히려 더 비슷해 보이기도 한다. 라캉에 따르면 사람들의 흔한 오해와는 달리 프로이트의 업적은 무의식의 발견에 있지 않다. 프로이트의 위대함은 무의식 자체가 오직 자신의 문법과 논리에 복종하고 있다는 것을, 더 간단히 말하면 무의식은 비논리의 영역이 아니라 그 자체로 또 다른 논리의 영역이라는 것을 밝혀냈다는 데 있다는 것이다. 라캉은 이를 입증하기 위해 정신분석학의 외부에서 프로이트로 돌아가려고 했으며, 그래서 스위스의 언어학자 페르디낭 드 소쉬르와 프랑스의 인류학자 클로드 레비-스트로스를 벗삼은 것이었다.

이뿐만이 아니다. 맑스주의의 생산양식 개념을 교환양식 개념으로 다시 쓰는 고진의 작업은 프로이트에게서 생리학의 마지막 자취를 제거한 라캉의 작업을 연상케 하기도 한다. 생리학의 자취를 제거함으로써 라캉이 프로이트의 이론을 단순한 심리치료 기법이 아니라 주체(인간 존재)에 대한 일반 이론으로 승화시켰듯이, 생산양식을 교환양식으로 치환함으로써 고진은 맑스의 이론을 단순한 자본주의 분석이 아니라 “보편적으로 사회구성체의 역사를 다루는” 일반 이론의 차원으로 끌어올리려 하고 있다.

마지막으로 그렇다면, 고진의 시도는 성공했는가? 일단 그의 시도는 짜릿할 만큼 생각할 거리들을 많이 던져준다. 무엇보다도 교환양식의 네 가지 형태(네이션의 교환원리로서의 증여-답례, 국가의 교환원리로서의 탈취-재분배, 자본의 교환원리로서의 상품교환, 그리고 새로운 사회를 뒷받침할 이념형으로서의 교환 X)라는 개념은 국가와 네이션의 기원을 새로운 관점에서 볼 수 있도록 해주며, 더 나아가서는 이 네 가지 교환양식의 상이한 접합이라는 관점에서 자본주의 체제의 구성 자체를 다시 볼 수 있도록 해준다. 특히 이는 자본주의 체제를 극복하기 위한 전략의 방향을 (재)설정하는 데 도움이 될 것이다.

고진 자신이 폭넓은 일반 독자들을 위해 작정하고 쉽게 썼다는 책에 대해 자세한 내용을 쓰는 것이 적잖이 뻘쭘해 대략 고진의 시도가 갖는 이론적 의의에 초점을 맞춰 글을 쓰다보니 더 많은 내용소개를 담지 못했는데, 『세계공화국으로』에는 앞서 말한 생각할 거리들말고도 다른 방향으로 훨씬 더 뻗어나갈 수 있는 아이디어들이 수없이 많다. 이 책은 정말로 쉬우니 꼭 읽어보시라는 당부를 전하며, 이쯤에서 총평으로 글을 마무리해야겠다. 혼인빙자 사기죄로 고소당할 일은 없을 것 같으니 고진 선생, 계속 정진(GO)하시길! 그리고 독자분들도 남편으로서의 고진을 한번 믿어보시길! 다만 인생에서처럼 사유에서도 남편과 연인 둘 다 필요한데, 둘 중에 하나를 택해야 한다는 것이 심히 애석할 뿐!(이재원 그린비 편집장)

07. 07. 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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드팀전 2007-07-23 12:51   좋아요 0 | URL
지금 제 책상에서도 이 책이 기다리고 있는데...호기심을 자극하는 리뷰네요.알라딘에는 아직 리뷰가 없었지요? 아마?

로쟈 2007-07-23 13:09   좋아요 0 | URL
두 건이 올라와 있는데요.^^

yoonta 2007-07-23 13:21   좋아요 0 | URL
고진 말대로 이 책은 정말 수월하게 페이지가 넘어가네요. 알라딘 리뷰로는 allnaru님의 페이퍼가 있더군요. 로쟈님과 드팀전님의 리뷰나 페이퍼도 기대하고 있는 중이랍니다.^^

람혼 2007-07-23 14:13   좋아요 0 | URL
알튀세르와 라캉 각각의 'retour' 테마를 가라타니의 작업과 연결시키는 논의가 '남편-애인론'보다 더욱 흥미로운 글이군요.^^ 기사 잘 읽었습니다. '맑스를 넘어선 맑스'의 이른바 가라타니식 판본이라고 할까요, <윤리 21>, <트랜스크리틱> 이후 그의 행보는 사람을 신나게 만드는 무언가가 있는 듯 하지만... 어쨌든 맑스 '외부'에서의 맑스로의 접근도 물론 가라타니의 중요한 '기여부분' 중의 하나이겠지만, <마르크스 그 가능성의 중심>에서부터 <은유로서의 건축>을 지나 <세계공화국으로>에 이르기까지 그가 끈질기게 천착하고 있는 맑스의 저 'Verkehr' 개념에 관한 강조와 (재)해석 역시 가라타니의 주요 작업이라는 사실도 간과되어서는 안 될 것이라는 생각이 듭니다. 말하자면, 맑스[-가라타니]의 'Verkehr' 개념이야말로 가라타니가 맑스 '내부'에서 맑스에게로 접근해간 또 하나의 중요한 통로일 테니까요.

드팀전 2007-07-23 16:24   좋아요 0 | URL
^-^ 그렇군요..ㅋㅋ 저야 그냥 교양차원에서 읽는거니까.학문적인 리뷰는 나오기 힘들어요.^^ 대신...평범한 사람들한테..이 책 읽어봐라 나도 하는데..정도의 소구력은 갖지 않을까해요.

로쟈 2007-07-24 15:59   좋아요 0 | URL
리뷰를 쓰실 분들이 여럿 계시군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