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겨레의 '18도'를 편의점에서 사들고 와서 훑어보다가 가장 호기심을 갖게 된 책은 '다윈의 대답'이라는 제목을 달고 나온 시리즈이다. 가격이 2만 8500원이라고 돼 있어서 꽤 두툼한 책인 줄 알았더니 4권 합계가 그렇다는 것이고 각 권은 130쪽 안팎 분량에 정가 7500원짜리 책이다. 그러니까 문고본 컨셉에 해당한다.

 

 

 

 

예일대출판부에서 나온 시리즈라고 해서 찾아보니까 'Dawinism Tdoay'라는 원 시리즈 제목이 풍기는 인상과는 약간 어긋나게 지난 1998-9년부터 나온 책들이다(그러니까 지난 세기의 시리즈이다!). 한겨레의 간략한 소개에 따르면, "예일대 출판부에서 펴내 화제를 부른 ‘다윈이즘 투데이 시리즈’의 번역본 <다윈의 대답>(이음). 편집자들은 ‘사회과학적 논제의 패러다임을 진화생물학으로 뒤집는다’는 도전적 표제를 내걸었다.(...) 실제로 책은 인문·사회과학과 진화생물학이 충돌하는 현대사회의 쟁점들에 대한 다윈주의자들의 도발적 ‘대답’을 담고 있다."

"‘다윈주의 자체는 좌도 우도 아니다’며 기존 좌·우파 모두를 비판하고 나선 1권의 저자 피터 싱어는 “적자생존이 아니라 협동”을 인간의 본성이라 주장한다. ‘왜 인간은 농부가 되었는가?’(2권), ‘남자 일과 여자 일은 따로 있는가?’(3권), ‘낳은 정과 기른 정은 다른가?’(4권)로 이어지는 책들은 제목에서 이미 ‘한 판 벌어질 듯한’ 흥미를 자극한다. 이를테면 “여성의 성공을 방해하는 보이지 않는 ‘유리 천장’은 고의적인 남녀차별 장치가 아니라 오랜 기간 누적된 본질적 성차에서 비롯된 것”이라며, 여성주의자들을 도발한다."

이만한 시놉시스라면 좀더 풍부한 내용을 담을 수 있지 않을까란 아쉬움은 든다. 원서가 80여쪽 정도의 분량으로 구성돼 있는데 그보다는 좀더 두툼했으면 하는 것이다(그러니까 번역본 분량으론 한 200쪽 가량). 물론 이런 푸념은 먹어보기도 전에 양이 부족하다고 말하는 것이긴 하지만. 

번역본의 첫 권을 장식하고 있는 건 피터 싱어의 책으로 '변하지 않는 인간의 본성은 있는가?'를 부제로 단 <다윈의 대답1>이다. 원제는 '다윈주의 좌파: 정치, 진화 그리고 협동'으로 돼 있다. '프로이트 좌파'와 계열체를 이루는 원제 자체가 내겐 더 매력적인데 요즘 '좌파'란 말이 별로 호감을 주지 않는 국내 정세를 반영한 듯도 하다. 그래도 목차만 보면 저자의 관심사가 무엇인지 대번에 알 수 있다. 마지막 제안으로 그가 덧붙이고 있는 게 '오늘날 다윈주의 좌파의 숙제'인 것이다.

 

 

 

 

시리즈의 첫번째 권으로 출간됐지만 원저 자체는 2000년에 나왔다. 그러니까 영어본 시리즈의 '첫권'과는 무관하다. 그럼에도 <다위니즘1>의 자리를 차지한 데에는 물론 저자인 피터 싱어의 지명도가 고려됐을 법하다(기억에 싱어는 호주 철학자이다). 알다시피 저명한 윤리학자인 싱어의 책들은 국내에 (거의 놀라울 만큼) 많이/자주 번역돼 있기 때문이다(지명도에 비하면 베스트셀러 학자라고도 할 수 없는데, 좀 기이한 일이다). <다윈의 대답>을 제외하더라도 최근 2년간 그의 이름을 달고 나온 책들이 5권이나 된다. '철학 가판대의 숨겨진 베스트 싱어'라 할 만하다.

나머지 2, 3, 4권의 저자는 모두 생소하며 (알라딘에는) 목차 또한 떠 있지 않아서 자세한 내용은 알지 못하겠다. 대신에 나로 하여금 다윈이즘에 입문하도록 해준 도킨스의 신간이나 덧붙이도록 한다. 작년에 나온 책 <신이라는 망상>이 그의 최신간이다(http://en.wikipedia.org/wiki/The_God_Delusion). 제목 그대로 종교(유신론)에 대한 한 다윈주의자의 신랄한 비판을 담고 있다(종교계와 사이가 안 좋은 걸로 치면 도킨스도 도올 급인 듯하다). 그러한 도킨스의 '무신론'을 유신론적 다윈주의의 입장(?)에서 비판한 책도 <도킨스의 신>이란 제목으로 나와 있다(http://en.wikipedia.org/wiki/Dawkins'_God:_Genes,_Memes,_and_the_Meaning_of_Life). 얼른얼른 번역되면 그 또한 좋지 아니한가?..

07. 02. 23.

P.S. 그러고 보니 언젠가 소개한 적이 있는 아래의 책도 아직 나오지 않았군. 책장에만 꽂아두기엔 좀 아쉽다. 번역본이 나와야, 멍석이 깔려야 떠들어볼 수 있을 텐데...

P.S.2. 고대하던 책이 드디어 출간됐다. <리처드 도킨스: 우리의 사고를 바꾼 과학자>(을유문화사, 2007). <이기적 유전자>를 낸 출판사에서 그래도 '책임감'을 갖고 출간한 듯하여 미덥다.

간단한 소개에 따르면, "<이기적 유전자> 출간 30주년을 기념하여 펴낸 책. 리처드 도킨스가 과학자로서, 합리주의자로서, 작가이자 대중 지식인으로서 활동하면서 사회에 미친 다방면의 영향들을 살펴보고 있다. 과거 도킨스의 대학원생이었고 지금은 생물학자들인 앨런 그래펀과 마크 리들리가 엮은 이 책에는 리처드 도킨스를 깊이 분석하거나 그와의 개인적인 일화를 회상하는 과학자, 철학자, 저술가의 글들이 실려 있다."

거기에 보태는 스티븐 핀커의 추천사: "내게 가장 심오한 과학적 영향을 끼친 인물은 진화생물학자인 리처드 도킨스였다." 얼른 원서와 나란히 꽂아두어야겠다...

07. 03. 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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열매 2007-02-23 13:13   좋아요 0 | URL
피터 싱어의 책 중 <전쟁 대행 주식회사>는 다른 Singer의 책인데요^^;

로쟈 2007-02-23 13:17   좋아요 0 | URL
수정했습니다. 언젠가 싱어가 둘 있다는 건 확인해놓고 깜박했네요.^^;

2007-02-23 13:41   URL
비밀 댓글입니다.

로쟈 2007-02-23 13:42   좋아요 0 | URL
**님/ 제가 '개봉박두'라고 해도 되겠군요.^^

자꾸때리다 2007-02-23 23:17   좋아요 0 | URL
알리스터 맥그래스... 옥스퍼드의 성공회 역사신학자... 물리학도 출신... 전 별로 안 좋아하지만 대단한 인물임은 맞는 것 같음...근데 맥그래스가 유신론적 다윈주의라는 이야기는 첨 듣는 이야기삼... 이 사람은 지적 설계 운동하고 맥이 닿아 있는 사람이라 하워드 반틸 류의 유신론적 진화론은 별로 안 좋아할텐데...(아주)

로쟈 2007-02-23 23:29   좋아요 0 | URL
맥그레스에 대한 진술은 부정확할 수도 있습니다. 제가 기댄 건 "Alister E. McGrath is one of the world's leading theologians, with a doctorate in the sciences." 같은 소개구절들이었기 때문에요...

2007-02-24 02:37   URL
비밀 댓글입니다.

로쟈 2007-02-24 08:39   좋아요 0 | URL
**님/ 축하드립니다. 정신 없으실 텐데, 내주면 곧 강의부터 하시겠네요(보통 책도 오기 전에 학기가 시작하죠?^^). 싱어와는 나름의 인연이 계시군요. 푸코에 대한 소개를 고대하고 있겠습니다...

2007-02-24 14:02   URL
비밀 댓글입니다.

로쟈 2007-02-24 09:02   좋아요 0 | URL
**님/ 그 기사는 몇 달째 걸려있어서 남세스럽게 하더군요.^^;

미생지신 2007-02-25 17:43   좋아요 0 | URL
한겨레의 18도를 편의점에서 사 오셨다는 말씀은 18도만 따로 판다는 말씀인지 금요일자 한겨레를 사셨다는 것인지 궁금합니다. 제가 편의점에 잘 안 가서...ㅡㅡ.

로쟈 2007-02-25 18:13   좋아요 0 | URL
따로 팔리가 있겠습니까?^^ 주된 목적이 '18도'에 있다 보니 그렇게 적었네요...

자꾸때리다 2007-03-19 11:57   좋아요 0 | URL
아 잘못 알았습니다. 맥그래스는 물리학도가 아니라 분자생물학도 출신이군요. 22세 옥스퍼드 분자생물학 박사 24세 옥스퍼드 신학 박사.

자꾸때리다 2007-05-10 23:27   좋아요 0 | URL
아 죄송합니다. 맥그래스 유신론적 진화론자 맞습니다. ㅡㅡ;;