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 있었던 문단의 가장 큰 행사는 물론 작가 조정래 선생의 <아리랑> 100쇄 출간 기념회였다. 그 자리에 있었던 건 아니지만(나는 지난 연말 한 시상식 자리에서 작가를 볼 수 있었다), 아무 내색 없이 지나갈 수도 없는 노릇이어서 인터뷰 기사를 하나 스크랩해 놓는다. 오마이뉴스가 가장 자세한 내용을 전하고 있다.

오마이뉴스(07. 01. 29) "작가가 정치하는 건 문학에 대한 배반"

"작가도 현실 발언해야 한다. 단, 자기 이익과 상관없이 정의로워야 한다." 대하소설 <아리랑> 100쇄를 맞은 소설가 조정래(64)씨가 따끔하게 꼬집었다. 현실 발언을 하되, 현실 정치에 직접 참여하는 것엔 철퇴를 가했다. 그는 "정치가는 강이 없는데도 다리를 놓겠다는 사람"으로 타고난 거짓말쟁이라며, 오류투성이인 "정치가와 함께 하는 건 문학에 대한 배반"이라고 일갈했다.

조씨는 또 '민족'이라는 단어를 빼자는 움직임이 일고 있는 '민족문학작가회의' 움직임과 관련해서도 '민족'은 중요하다고 지적했다. 조씨는 "세계화와 신자유주의는 자본의 논리"라며 "민족이란 문제를 폐기처분하는 건 통일 이후 해도 된다. 폐기하지 맙시다. 폐기해야 한다는 건, 그건 신사대주의"라고 단언했다.

총 12권인 대하소설 <아리랑> 100쇄 출간 기념 기자간담회가 29일(월) 웨스틴 조선호텔에서 열렸다. 1994년 출간한 <아리랑>은 13년 만에 (1권 기준) 100쇄를 찍었다. '쇄'는 출판사가 책을 인쇄할 때마다 찍는 판 숫자. <아리랑>을 출간한 해냄 출판사는 <아리랑>이 총 330만부가 팔렸다고 밝혔다.

<아리랑> 100쇄 출간 기념 기자간담회에 참석한 조정래씨는 자신이 "인간에 대한 애정과 존엄성을 지키려 했고, 나를 태어나게 한 모국에 대한 애정과 민족, 역사에 대해 천착하려 노력했다"며 세 가지를 지키려 애썼다고 토로했다. 조씨는 "<아리랑>을 쓰면서, 독자와 못 만날 거란 생각은 전혀 못 했다. 어찌 독자가 안 읽겠나 확신이 있었다"며 "작가들이 독자 찾아가려 몸부림치고 끌어당기려 애쓰면 그 열정이 독자한테 전달된다. 그게 문학의 힘"이라고 강조했다.

조정래씨는 또 대하소설을 쓰는 어려움도 털어놨다. "1만5천매 대하소설 첫 장 쓰려면 20장 30장을 파지 내는데 이틀 걸려 첫 장 썼다. 그게 1만5천 분에 1이다. 내가 언제 이걸 다 쓸까 생각하면, 그 느낌이 터널 속에 들어가는 막막한 느낌이다." <아리랑>을 쓰는데, 대하소설 쓰기가 지긋지긋하고 하도 치 떨리게 힘들어서 후배에게 넘기려고 한 일화도 털어놨다. 아끼는 후배에게 '한강시대'를 대하소설로 쓰라고 취재방법까지 가르쳐줬는데 안 써서 결국 자기가 썼다며, 그게 <한강>이라고 말하며 씁쓸하게 웃었다.

그동안 가장 힘들었던 일로 조씨는 검찰에 고발당했던 일과 몸이 아팠던 일을 꼽았다. <아리랑>을 4분에 3가량 썼을 때인 1994년, 고발당하는 바람에 검찰에 소환 당해 조사 받고 그러느라 글 쓰는 걸 중단당해 정말 고통스러웠다고 말했다. 또 매일 35매에서 40매를 쓰다 보니, 오른쪽 관절이 아프고 손가락 끝까지 마비돼 고생한 일도 털어놨다.

작가 조정래씨는 또 '위기'라고까지 일컬어지는 우리 문학의 현실에 대해, "젊은 작가들 소설이 전부 주인공이 '나'이고 일인칭 소설인 건 문제"라고 꼬집었다. 주인공을 '나'라고 설정하면 전부 '나'를 중심으로 움직이는 바람에 소설 속 인물이 능동적이 아니라 피동적인 인물이 돼버린다는 것이다. 그는 "후배들에게 3인칭 소설을 쓰라고 얘기했다"며 "인생을 다면적이고 총체적으로 받아들이고 독자가 감동 받게 하려면 인물이 다양해야 한다. 그런 소설이 어찌 영혼을 흔드는 소설이 되겠냐"고 따끔하게 지적했다.

또 "80년대 지났다고 역사시대마저 지나진 않았다. 일본 소설이 인기인 건 일본소설의 감각이 다른 데 대한 호기심으로 일시적 현상"이라며 "한국작가는 자기와 싸워야 하고 또 (핸드폰, 인터넷 같은) 문명의 이기와 싸워야 한다"고 준엄하게 꾸짖었다. 조씨는 결국엔 그 무엇도 문학을 어쩌지 못하고 "그동안 작가는 끊임없이 자기 세계를 탐구해야 한다"며 "문학은 인간이 언어를 쓰는 한 그 생명은 영원할 것"이라고 일갈했다.

또 이문열씨가 <호모 엑세쿠탄스>에서 정치적 견해를 피력하고, 소설가들이 현실 정치에 발언하고 참여하는 것에 대해서도 조정래씨는 딱 잘라 말했다. 조씨는 "우리 모두에겐 모든 사람이 정치ㆍ경제에 대해 감시ㆍ감독하고 발언할 자유가 있는데, 특히 작가는 대중을 대변하고 감시 감독할 책무가 있다"며 "현실 발언해야 한다. 다만 '얼마나 정의로운가', '객관성 있는가'가 중요하다"고 지적했다. "작가가 현실 발언할 때는 작가가 자기 이익과 상관없이 정의로울 때"여야 한다는 것이다.

그는 또 "정치가란 강이 없는데도 다리를 놓겠다는 사람"이라고 후르시초프가 한 말을 인용하며, 정치가는 타고난 거짓말쟁이라고 꼬집었다. 따라서 "지식인, 작가는 그들을 감시, 감독해야 한다"고 준엄한 목소리로 말했다. 하지만 작가가 직접 정치계에 입문하는 것에 대해선 "작가는 인류 스승이고 '산소'라고 한다"며 "정치세력과 함께 하는 게 작가의 소임은 아니다. 정치가와 오류를 같이 범하는 건 문학에 대한 배반"이라고 일갈했다.

한편, 조씨는 앞으로는 대하 소설은 쓰지 않을 생각으로, 지금은 초등학생부터 중학생까지 읽을 만한 50권짜리 아동물을 집필 중이라며, "손자들에게 지금 같은 나쁜 글을 읽힐 수 없어서"라고 집필 이유를 밝혔다. 아동물은 국내 15명, 해외 15명 위인 이야기와 전래동화 20권까지 합해서 50권짜리로, 현재 출판사측에 원고를 넘긴 '단재 신채호'를 비롯해 앞으로 만해 한용운, 안중근 등을 다룰 예정이다. 조씨는 앞으로 2, 3년간 이 기획 저술에만 몰두할 것이라고 말했다.

07. 01. 29.

P.S. 어느 평론가의 비유이기도 하지만, 조정래는 '발로 쓰는 작가'이다. 원고지 1만 5천매를 머리로 메꾼다는 건 가능하지도 않을 뿐더러 넌센스이다(나는 젊은 작가들이 머리를 쥐어짜서 소설을 쓴다고 하면 한대 때려주고 싶다). 청소년 시절 작가를 꿈꾸기도 했지만, 내가 '작가의 길'을 멀리하게 된 이유이기도 하다(그나마 다시 생각해보게 된 건 에세이 소설을 쓰는 쿤데라를 읽으면서였다). "1만5천매 대하소설 첫 장 쓰려면 20장 30장을 파지 내는데 이틀 걸려 첫 장 썼다. 그게 1만5천 분에 1이다." 내가 경의를 표하는 건 그 막막함에 대해서이다.

한편, 우리 어린이들이 '아동문학가' 조정래 할아버지의 위인전과 전래동화를 읽게 될 날도 머지 않은 듯하다. 대하장편소설 작가에서 아동문학가로의 변신이라... 국내의 아동문학 시장규모로 보아 이게 <아리랑>보다 더 대박이 날는지도 모르겠다. '작가는 무엇으로 사는가'를 묻는 '전업작가' 지망생들에게 여러 모로 모범이 될 만하다...

P.S. 말이 나온 김에 조정래 선생의 칼럼도 하나 옮겨놓는다.

한겨레(07. 01. 30) [조정래칼럼] 어차피 인생무상이다

출생률 저하 세계 1위, 교통사고 발생률 세계 1위, 이혼율 세계 1위, 사교육비 부담 세계 1위. 이다지도 세계 1위가 많으니 얼마나 자랑스럽고 복된 일인가. 이것이 대한민국이라는 나라의 실태고 우리들의 자화상이다. 이 네 가지의 세계 1등이 가진 공통점이 있다. ‘나’만을 앞세운 이기주의에 뿌리를 대고 있다는 점이다. 그리고 그 자랑스럽지 못한 일들이 사회문제로 계속 지적되고 거론되는데도 줄어들기는커녕 더 늘어나고 있다는 사실이다. 그것은 우리 모두가 ‘나’만을 내세우며 얼마나 살벌하게 살아가고 있는지를 비춰주는 거울이다.

그런데 특히 우려스러운 것은 급격한 출생률 저하다. 2∼3년 사이에 세계 1위를 차지한 이 사태는 이 나라의 미래를 잿빛으로 색칠하게 되어 있다. 앞으로 10년 후부터 노령인구는 늘어나고 노동력은 부족해져 우리가 소망해 마지않는 국민소득 3만 달러의 세상은 영원한 환상이 될지도 모른다는 것이다.

그런데 아이를 많이 낳지 않으려는 데는 확실하고 분명한 이유가 있다. 교육비가 너무 많이 들어 제대로 키울 수가 없기 때문이라는 것이 절대적이다. 그 다음에 곁들여지는 것이 직장여성을 위한 육아시설의 부족이다. 그러니까 출생률 저하 세계 1위와 사교육비 부담 세계 1위는 직결된 문제인 것이다.

그렇다면 아이를 낳고 싶어도 낳지 못하게 할 만큼 위력을 발휘하는 사교육은 왜 그렇게 기승을 부리는 것일까. 정부의 교육정책 잘못 때문인가? 학교 선생들이 실력 없는 무능력자들이라서 그런가? 아니다. 전혀 그것이 아니다. 남들보다 내 자식이 잘 되어야 한다는 모든 부모들의 대책없는 이기심이 무한경쟁을 일으키며 빚어낸 비극이다.

저 1960년대를 거쳐 70년대 초반까지만 해도 학원이란 학교공부가 좀 모자라는 학생들이 보충을 하려고 다니던 곳이었다. 그런데 그 목적이 차츰 변하기 시작해 이젠 남들보다 1점이라도 더 따기 위해 필수적으로 다녀야 하는 혈전장이 되어 버렸다. 그 이기심의 무한경쟁의 회오리에 휘말려 공교육은 무력하게 초토화되고 말았다.

우리 민족이 지닌 몇 가지 미덕 중 하나로 교육열을 든다. 그렇다. 일제 식민지시대에 만주며 연해주에 유랑했던 동포들은 먹는 것보다 자식들 가르치는 것을 앞세울 정도였다. 그래서 연변에 중국의 소수민족들 중에서 최초로 조선족 대학이 섰고, 옛소련 시대에 중앙아시아에서 러시아인 다음으로 높은 계층을 이루었던 것이 고려인이었다. 그리고 세계적인 기적이라고 하는 우리의 경제발전이 논밭 팔고 소 팔아 자식들 가르친 그 힘에서 비롯되었다는 것을 우리는 잘 알고 있다.

그러나 아무리 좋은 일도 정도가 넘치고 또 넘쳐 ‘광적’인 상태로 들어가면 문제가 생긴다. 우리의 교육열은 이미 오래전에 이성의 선을 넘어서 광란의 상태에 빠져 있다. 미국에 조기유학 가 있는 것이 우리나라가 1등이고, ‘기러기 아빠’라는 새 풍속도가 생겨나지 않았는가. 그리고 초등학교 고학년부터 영어를 가르친다고 하니까 부모들이 앞서 뛰기 시작해 1학년부터 학원으로 내몰았고, 몇년이 지나니까 유치원생들까지 영어를 배우느라고 허덕거리고 있다.

몇 해 전 어느 텔레비전에서 유럽 여러나라 고등학생들이 과외도 안 받고 학원도 안 다니며 학교공부만 충실히 하는 것을 시리즈로 보여주며 우리의 교육열이 얼마나 병적인지를 지적했었다. 인생 어차피 한 번 사는 거고, 무상하다.(작가, 동국대 석좌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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짱꿀라 2007-01-30 00:1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조정래 선생님의 작품을 대할 때면 머리가 숙여집니다.

마노아 2007-01-30 00:1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거목이란 생각이 듭니다. 경탄해 마지 못하겠어요.

하이드 2007-01-30 00:2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오호- 오늘 점심시간 조선호텔 앞 스타벅스.에 앉아 커피 마시며 책 보고 있는데, 바로 뒷자리에 온 어떤 여자분. 보라색노란색 보자기에 책을 잔뜩 싸가지고 오면서, 조정래 선생님 뵙고 왔다고 그러던데, 이 행사 다녀오던 길이었나보네요. '그 연세에 어찌나 카랑카랑하시던지...' 까지 듣고 일어나야 했긴하지만서도요.

닉네임을뭐라하지 2007-01-30 09:1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황석영 선생님 말씀에 따르면 글은 엉덩이로 쓰는 거죠? ㅎ
아, 아무튼 소설 쓰기 위해선 발이 튼튼하든지 엉덩이가 튼실해야되겠군요. 흐음.
잘 봤습니다- (그러나 저러나 저 대하소설은 언제쯤 손에 집을 수 있을는지...)

니브리티 2007-01-30 13:3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글은 손으로 쓰는 거죠.(아닌가?) 혹시나 그런 작가를 만나더라도 정말 때리지는 마세요...^^ 그런 작가도 나름 자신의 몸으로 체득한 글쓰기 방식일 테니까요...

로쟈 2007-01-30 14:0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santa님/ 저는 많이 읽진 못했습니다.^^;
마노아님/ 저도 경탄스럽습니다...
하이드님/ 아 조선호텔 '앞'에 자주 들르시는군요.^^
연랑님/ 그렇죠, '엉덩이'도 한몫 하죠. 번역할 때는 특히나.^^;
니브리티님/ 네, 손품도 팔아아요.^^ 저는 '머리'쓰면서 문학의 위기 운운하는 친구들이 좀 그렇다는 얘기였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