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주 문학 신간들 가운데 단연 눈에 띄는 것은 윤대녕의 신작 소설집 <제비를 기르다>(창비, 2007)이다. 나는 지난주에 구내서점에 들어와 아직 서고에 있던 책을 사들고 왔다. 윤대녕의 작품들을 찬찬히 따라 읽어온 건 아니지만 짐작에 그의 가장 뛰어난 작품집이 될 듯하다.

 

 

 

 

소개에 따르면 책은 윤대녕의 네 번째 소설집이다, 라고 적었지만, 알라딘의 착오인 듯하다. 내가 모르는 이유가 있지 않는 한 <제비를 기르다>는 다섯번째 소설집이다. 지난 94년 <은어낚시 통신>(문학동네, 1994)이 나온 후 12년이 지났으니까 적은 수는 아니지만 그렇다고 다작이랄 수도 없겠다. 중간에 장편소설들과 산문집 등이 끼여 있어서 많게 여겨졌었나 보다.

두번째 소설집 <남쪽 계단을 보라>(세계사, 1995/2003)에 이은 세번째 작품집은 <많은 별들이 한 곳으로 흘러갔다>(생각의나무, 1999; 양장본 2001/2005)이며, 네번째가 <누가 걸어간다>(문학동네, 2004)이다. 나는 둘러보니 두번째, 네번째 작품집을 안 갖고 있는데, 언제 한번 모아놓고 통독해볼 생각은 있다. 그의 장편소설들을 나는 읽은 바 없지만(<은어낚시통신>에서도 강한 인상은 받지 못했었다) 견문에 그가 작가로서 더 뛰어난 기량을 보여주는 건 중단편들에서가 아닌가 싶다. 그런 면에서 이번에 나온 소설집을 더 주목하게 되는 것이고.

알라딘의 표준적인 소개에 따르면, "이번 소설집은 태어나 만나고 사랑하고 헤어지고 병들고 죽음에 이르는 인간사에 대한 포용 혹은 긍정의 시선으로 충만하다. 수록된 여러 작품에 죽음을 앞둔 인물이 등장하지만('탱자', '제비를 기르다', '편백나무숲 쪽으로') 그들을 감싸고 있는 소설의 정조는, 슬픔은 슬픔이되 어둡지 않고 환하다. 초기 윤대녕 소설을 설명해주던 '감각'과 '내면'의 세계가 타인에 대한 연민과 애틋한 시선으로 확장되었음을 확인할 수 있"다. 바로 그런 면에서도 그의 작품세계가 보다 성숙한 단계로 접어든 게 아닌가 싶다.

이번주 언론리뷰들에서 다들 크게 다루고 있지만 특히 동아일보에는 작가와의 인터뷰가 게재되었기에 잠시 옮겨온다(아무래도 작가의 육성이 어필하는 바가 있으므로). 인터뷰어는 김지영 기자이다.

-‘윤대녕 소설’ 하면 비현실적이면서 묘하게 연애감정 생기는 여성이 떠오르는데, 이번에는 별로 없네요.

지난해 어머니가 많이 아프셨어요. 어머니 곁에 있다 보니 여자의 일생이 뭘까 생각해 보게 되더라고요. 결혼하고, 아이 낳고, 가족을 돌보고, 나이 들어가고…. 막연했던 여성의 이미지가 피부로 느껴졌달까.” (‘제비를 기르다’의 어머니는 철마다 가출해 길에서 몸으로 구르다가 돌아오기를 반복하면서 나이를 먹고, ‘탱자’의 고모는 첫사랑의 상처를 안은 채로 굴곡진 삶을 살아간다).

-예전 작품엔 구차한 생활과는 관계없어 보이는 하늘하늘한 여성들이 대부분인데 이번엔 여자들이 그악스럽게 집안을 꾸려갑니다.

몇 년 전부턴 인물을 구체적으로 묘사하고 싶은 마음이 생겨났어요. 그렇게 독자와의 거리를 좁히고 싶었고. 앞서 나온 책들은 여성 독자들한테서 종종 ‘공감할 수 없다’는 얘길 들었는데, 최근작들은 여성 독자의 호응이 많아요. 여성에 대해 알기엔 상당히 오랜 시간이 걸리나 봐요. 나뿐 아니고 모든 남성이….”(웃음)

-한편으로 고단한 삶이면서도, 넉넉하게 받아들이는 성찰을 발견합니다.

“‘탱자’의 병든 고모는 실제 고모님의 부음을 듣고 쓴 작품이에요. 큰 충격이었지요. 죽음에 대한 어렴풋한 관념이 육화했다고 할까요. 인생과 인간에 대해 좀 더 넓게 생각해 보게 된 것 같습니다.”

-등단 17년에 많은 작품을 냈지만, 윤대녕 하면 첫 소설집 ‘은어낚시통신’을 떠올리는 사람들이 많습니다.

“그래서 솔직히, 손해 볼 때가 많다는 느낌도 들어요. ‘은어낚시통신’을 보면 저 스스로도 신통하다 싶긴 한데,(웃음) 문장이 거칠고 구조도 매끄럽지 못한 부분도 눈에 띄고…. 작품집의 이미지가 강해서인지 지금껏 그 인상이 이어지네요. 한편으로 그런 생각도 해요. 그때 ‘존재의 시원으로의 회귀’라는 평이 나왔는데, 내가 그동안 많이 걸어왔지만 결국 그 주제의식에서 벗어나지 못하겠구나 하는 생각. 그건 결국 내가 추구해 온 철학적 구현이라는 생각.

-여전히 사람들은 길을 떠나네요. 그 여정에서 낯선 이들을 만나고….

로드 로망! 난 이게 왜 그렇게 좋은지 모르겠어요. 길을 떠난다는 게 결국 살아가는 것이고, 죽음을 준비해 가는 것이라는 생각이 들어요. 나는 지금 어떤 길 위에 서 있는가 하면, 익숙했던 과거와 결별하고 새로운 모색을 하는 지점에 와 있는 것이죠. 삶의 한가운데를 지나가고 있다는 느낌.”

짧은 인터뷰이긴 하지만 '윤대녕적인 것'이 무엇인지에 대해서 잘 요약해주고 있다. 그의 인물들은 대개가 삶을 '사는 자'들이 아니라 '지나가는 자'들이다. "길을 떠난다는 게 결국 살아가는 것", 거꾸로 말하면 살아간다는 게 결국은 길을 떠난다는 것이라는 게 그의 '작가적 세계관'이지만 엄밀하게 말해서 길(떠남)은 삶의 비유일 뿐이지 삶 자체는 아니다. 이 비유가 갖는 시적/서정적 울림이 내가 생각하기에 '대녕본색'에 해당한다. <제비를 기르다>에 실린 중단편들은 그 '대녕본색'을 유장하고도 아득하게 그려보이기에 충분히 주목할 만하다. 내가 동의하는 세계는 아니지만 충분히 현혹될 만한 '아름다움'이 거기엔 펼쳐져 있다.

07. 01. 27.

P.S. 소설가란 직함을 갖고는 있지만, 내 식으로 분류하자면 윤대녕은 '시인'에 속한다. 시를 쓰는 시인이 아니라 '시적인 것'을 쓰는 시인 말이다. 작품집에 실린 '작가의 말'에서 그는 그 '시적인 것'의 일단을 적어놓았다.

그리고 삼년 만에 다시 소설집을 낸다. 각별히 고독을 챙기며 살았던 지난해에 여러 편의 중단편을 쓸 수 있었다. 자정에 작업실에서 퇴근할 때 막사발에 냉수를 받아놓고 아침에 출근하면 그것을 마셨다. 하루하루 그 일을 되풀이하면서 내가 과연 삶의 한가운데로 가고 있나를 산짐승처럼 틈틈이 살폈다. 길을 잃으면 안되겠기에 보다 숨을 낮추고 되도록 말을 꺼렸다. 그렇게 생의 한가운데를 어두운 숲처럼 더듬더듬 관통하면서 나는 '그 모든 어찌할 수 없음'에 대한 억누를 수 없는 그리움을 자주 체험했다. 삶의 정체는 결국 그리움이었을까?(...) 그 어찌할 수 없는 그리움들을 밖으로 떨쳐내기 위해서라도 나는 또한 쓰지 않으면 안되었던 것이다.

작가는 삶이라는 '어두운 숲'을 관통해나가는 '산짐승'이다. 그리고, 그에게 소설쓰기란 '그 모든 어찌할 수 없음'에 대한 그리움을 밖으로 떨쳐내는 일이다. 그것이 소설적인 것이 아닌 시적인 것으로 귀결되는 것은 아주 자연스러우며 그가 장편소설보다 중단편소설에서 그만의 세계를 더 잘 끌어낼 수 있다는 것도 지극히 당연하다. 해서, 어지간한 시집들 대신에 <제비를 기르다>를 권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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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비80 2007-01-27 16:07   좋아요 0 | URL
저는 노골적으로 '윤대녕빠'라고 스스로를 말하는 독자군에 속합니다. 그의 책을 읽으며 속절없이 나락으로 떨어지는 병을 앓으면서도 쉽사리 그의 책을 덮지 못하겠더라구요. 시적 문체로 먼 곳의 것들을 기억하고 호명하는 소설가들 중 단연 백미는 윤대녕이 아닐까 합니다. 이미 <편백나무숲 쪽으로>와 <탱자>는 계간지를 통해 읽었는데 서둘러 소설집도 사 둘 생각입니다.

로쟈 2007-01-27 16:04   좋아요 0 | URL
줄여서 '윤빠'라고 하더군요.^^ 어느 기자의 서평대로 서너 번은 물리지 않고 읽으시겟습니다..

읽는기계 2007-01-27 16:29   좋아요 0 | URL
기자가 깜빡한 모양인데 <제비를 기르다>는 다섯번째 소설집입니다. 제가 알기론 <남쪽 계단을 보라>가 두번째 소설집입니다. 윤대녕이 시인으로 분류된다는 데 동감입니다. 소설에 취한다는 것이 그의 소설을 읽을 때면 드는 기분입니다. 그래서 그런지 모르지만 개인적으로 윤대녕의 소설을 읽을 때 작가와 사적인 만남을 갖고 싶은 충동(?)을 느끼곤 합니다. 소개하신 작가의 말을 보니 <제비를 기르다>는 수도생활을 한 산짐승의 자취를 담아낸 소설인 듯 하군요. 얼른 사서 읽어야겠습니다. 언젠가 저 산짐승의 성차와 '로드 로망'의 미학 사이 함수관계를 푸는 것이 저 혼자만의 과제입니다.^^

로쟈 2007-01-27 16:33   좋아요 0 | URL
알라딘의 착오구요, 저도 왠지 작품집 수가 좀 적다 싶었습니다.^^

수유 2007-01-27 18:08   좋아요 0 | URL
정말 오랜만의 소설집이 아닌가 합니다. 그의 옛 팬으로서 좋은 평을 받는 소설집이기에 더 반갑군요^^ 작가의 말도 그럴듯 합니다. 제 손이 움직이기에 말이죠.

드팀전 2007-01-28 12:02   좋아요 0 | URL
저도 옛날에는 윤대녕을 좋았했었지요.지금은 좋고 말고 할것도 없이 .... 90년대 그의 인기가 너무 높아서 지금은 잊혀진듯 또 기억되고 그런 상태인가 봅니다.책장을 바라보면 윤대녕 소설집을 살펴봤는데..^^ 꽤나 많네요.<은어낚시><지나가는자의 초상><누가걸어간다>..거기에 98년 현대문학상,2003년 이효석문학상.윤대녕이 상을 받아서 마치 윤대녕 책 같군요.에 서있군요.그러나 역시 제가 윤대녕에게 꼽힌 건 96년 이상문학상의 <천지간>이었습니다.TV문학관에서도 했었는데..심은하가 주인공했다니까요.^^

sommer 2007-01-28 15:52   좋아요 0 | URL
그의 로망의 '에로스'를 더불어 좋아했었는데요, 여행하는 자는 에로스적 감정에 사로잡힌다는 백 석의 어느 시구절과 더불어서 말이죠...

로쟈 2007-01-28 17:12   좋아요 0 | URL
'지나가는 자', '지나가고 싶은 자'들은 매혹될 만한 작가죠. 저는 '시인'으로 높이 평가하기로 했습니다...

다락방 2007-01-28 22:35   좋아요 0 | URL
아, 저도 어제 신문에서 그의 신간이 나왔다는 기사를 읽고 살까 말까를 망설였는데, 로쟈님의 페이퍼를 보니 구입해도 무리가 없겠네요 :)

비로그인 2007-01-31 13:49   좋아요 0 | URL
저는 윤대녕작가가 세상에 발표한 작품을 거의 다 읽었습니다.
매번 마음이 너무 불편했습니다. 한권 읽고 다시는 보지 말아야지 하다가 다시 작품집이 나오면 사고 말았죠. 그 문체의 매력을 쉽게 잊을 수가 없어서요.
작품들과 작가의 사진이 영 매치가 안되는 분들이 가끔 있는데 제겐 윤대녕과 은희경이 그렇더군요. 그 섬세함이 어디서 비롯된 것 인지... 이 책도 결국은 사게 되겠네요.

로쟈 2007-02-01 00:02   좋아요 0 | URL
다락방님/ 아로님을 보시길!
아로님/ 윤빠시군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