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자 한겨레에 실은 칼럼을 옮겨놓는다. 언젠가 <젊은 베르테르의 슬픔>의 판본 문제를 언급한 적이 있는데, 문학기행차 독일에 오면서 이 문제를 다시 짚어보았다. 오늘은 프랑크푸르트로 이동하여 괴테하우스(괴테의 생가)를 방문하고 내일은 <베르테르>의 공간적 배경인 베츨라를 찾아볼 참이다. 그리고 모레는 바이마르로 이동하려고 하니 이번 문학기행의 1/3이 괴테와 관련한 일정이다. 독문학에서 괴테의 비중과 위상을 고려하면 불가피한 일이기도 하다...

한겨레(18. 10. 19) 우린 어떤 베르테르를 읽어왔나

한국에 가장 많이 번역된 독문학 작품이라면 헤세의 <데미안>과 함께 단연 괴테의 <젊은 베르테르의 슬픔>(이하 베르테르)을 꼽을 수 있다. <젊은 베르터의 고뇌>라는 제목의 번역을 포함해서 과도한 중복 번역의 사례로 지목될 만큼 많은 번역본이 나와 있다. 1774년 괴테 나이 스물 다섯 살에 발표된 <베르테르>는 알려진 대로 대단한 사회적 반향을 불러일으킴으로써 괴테 자신의 운명에도 지대한 영향을 미친 작품이다. 게다가 셰익스피어의 햄릿이 그러하지만 베르테르 역시 작가보다 더 유명한 주인공의 하나다.

그런 <베르테르>를 어떻게 읽고 이해할 것인가. 새삼스러운 질문을 던지는 것은 괴테의 <베르테르>가 두 가지 판본으로 존재하기 때문이다. 1774년에 나온 초판과 1787년에 나온 개정판이 그것이다. 초판본이 나온 이후에 오·탈자를 교정한 판본들이 더 나왔지만 적극적인 개고 과정을 거쳐서 나온 1787년판을 통상 결정판으로 간주하며, 대부분의 한국어판 <베르테르> 역시 이 1787년판을 옮긴 것이다. 하지만 두 판본 간의 차이가 사소하지 않다면, 그리고 출간과 함께 독일을 포함하여 유럽 독서계에 충격을 던진 작품은 1774년판이라는 점을 고려하면 판본의 문제는 좀 더 세심하게 고려되어야 한다.

두 판본 사이의 가장 큰 차이는 한 여주인을 사랑한 하인의 에피소드가 초판본에는 빠져 있다는 점이다. 다르게 말하면, 베르테르에게 치명적인 사랑의 모델이 되는 인물을 괴테는 개정판에 의도적으로 집어넣었다. 베르테르는 이 하인을 세 차례 만나는데 그때마다 사랑의 단계에 대해서 알아나간다. 처음 만났을 때 베르테르는 여주인에 대한 하인의 지고지순한 사랑에 감동하여 진정한 사랑이 어떤 것인지 비로소 깨달았다고 말한다. 베르테르에게 연애 경험이 없지 않았음에도 불구하고 하인은 새로운 경지의 사랑을 그에게 일깨워준 것이다. 베르테르가 로테를 만나서 사랑의 감정을 키워나가는 것은 하인과의 만남 이후에 벌어진 일이다.

마치 사랑의 교사 같은 역할을 하는 하인의 존재는 로테에 대한 베르테르의 감정을 모방적인 것으로 읽게 한다. 하인은 여주인에 대한 연모의 감정이 탄로 나서 여주인의 오빠에게 해고당하고, 이후에 자신을 대신하여 여주인을 모시게 된 다른 하인을 질투심에 살해하고 만다. 베르테르는 살인범으로 체포되어 끌려가는 하인을 보고서 애통해하며 적극적으로 변호하고자 한다. 동병상련을 느끼며 베르테르가 자신의 운명을 하인에게 투사하고 있다는 점을 분명하게 알려주는 장면이다. 더불어 그의 감정이 자발적이거나 직접적이라기보다는 모델에 의해 매개된 것이 아닌가 의심하게 한다. 다시 말하자면 이러한 설정이 빠져 있는 것이 1774년판이다.

주인공 베르테르가 세계문학사상 가장 섬세한 감정의 소유자로 등장한다는 점을 고려하면 그가 자발적으로 행동하는 것인지, 아니면 어떤 모델의 행동을 흉내 낼 뿐인지는 중요한 차이가 아닐 수 없다. 그리고 이 차이는 괴테도 의식했을 차이다. 개정판을 낼 무렵의 괴테는 이미 30대 후반으로, 1786년부터 1788년 사이의 이탈리아 여행을 통해서 고전주의자로 변모해가던 괴테다. 초판본을 내면서 ‘질풍노도‘ 운동의 대표자로 떠오르게 되는 젊은 날의 괴테와는 어느 정도 거리를 두게 된 괴테이기도 하다. 개정판 <베르테르>가 그러한 변화를 반영한 판본이라면 초판본과는 구별해주는 것이 온당하다고 여겨진다. 우리가 어떤 <베르테르>를 읽어왔으며 또 읽고 있는 것인지부터 확인해볼 필요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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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온 2018-10-19 06:0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마침 제가 읽고 있는 책에서 베르테르를 거론하고 있네요.

로쟈 2018-10-19 12:12   좋아요 0 | URL
즐독하시길.~

그렇게혜윰 2018-10-19 11:0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이 3권이 1774년 판본이군요. 개정판을 읽어봤으니 셋 중에 한 권 읽어봐야겠습니다. 고맙습니다^^

로쟈 2018-10-19 12:12   좋아요 0 | URL
1774년판 번역은 보물창고판 1종밖에 없어요. 나머지는 모두 개정판 번역입니다.

그렇게혜윰 2018-10-19 15:56   좋아요 0 | URL
혹시몰라 책정보 보니 원작이 1774로 되어 있길래 다 그런 줄 알았는데요?? 그럼 알라딘에서 정보 수정을 해야겠네요!

카알벨루치 2018-10-19 12:3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새로운 사실을 알게되었네요 괴테가 초판본을 내고 사회적인 반향이 너무 커서 자신도 놀랬겠다는 생각이 드네요 독자들의 리액션때문에 작품이 달라질수도 있는군요 귀한 정보 감사합니다 그리고 늘 감사합니다~로쟈님

로쟈 2018-10-19 14:13   좋아요 1 | URL
네 케스트너(작품에서 알베르트)도 초판본에서 더 부정적으로 그려지고 개정판은 케스트너와 사를로테 부프(로테) 부부를 고려해서 수정하기도 합니다.

그렇게혜윰 2018-10-19 15:5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다시 보니 모두 원제1774로 나오네요. 제목만 1774인가 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