까마득하게 잊고 있던 시 한편을 떠올리게 됐다. 바스코 포파(1922-1991)의 시집 <절름발이 늑대에게 경의를>(문학동네, 2006)이 이번에 출간되었기 때문인데, 내게 포파는 무엇보다도 '작은 상자'의 시인으로 기억돼 있다. 그가 유고슬라비아(지금은 세르비아)의 시인이라는 건 이 참에 알게 됐다(동유럽쪽이란 기억만 갖고 있었다). 마치 오 헨리 단편에서처럼 한 20년만에 절친한 친구를 만난 것처럼 반갑다. 바삐 시인과 그의 시에관한 자료들을 검색해보고 몇 가지를 옮겨놓는다. 일단은, 그의 대표작 중 하나인 '작은 상자'를 다시 읽어보는 게 순서일 것이다(아래는 서재에서 책을 읽고 있는 바스코 포파). 영역시도 연이어 붙여놓으면서.  

 

작은 상자

작은 상자는 이제 젖니가 나고
키가 작고
면적도 부피도 작다.
그게 작은 상자가 갖고 있는 전부다.

작은 상자는 점점 커져서
이제 작은 벽장도 갖게 되었는데,
옛날에는 작은 상자가 그 작은 벽장 속에 들어 있었다.

작은 상자는 날마다 조금씩 크고 쉬지 않고 커졌다.
이젠 그 속에 방과
집과 마을과 땅과
그리고 전에 작은 상자가 들어 있던 세계까지 갖게 되었다.

작은 상자가 제 어렸을 때를 떠올리며
너무나 그 시절로 돌아가고 싶었기 때문에
다시 작은 상자는 작은 상자로 되돌아갔다.

작은 상자 속에는
아주 작은 세계만 있다.
당신은 작은 상자를 호주머니에 넣을 수도 있고
그러다가 그걸 잃어버릴 수도 있다.

그러니 작은 상자를 조심해야 한다.

The Little Box by Vasko Popa

The little box gets her first teeth
And her little length
Little width little emptiness
And all the rest she has

The little box continues growing
The cupboard that she was inside
Is now inside her

And she grows bigger bigger bigger
Now the room is inside her
And the house and the city and the earth
And the world she was in before

The little box remembers her childhood
And by a great longing
She becomes a little box again

Now in the little box
You have the whole world in miniature
You can easily put in a pocket
Easily steal it lose it

Take care of the little box  

다시 읽어보니까 초현실주의의 분위기가 그대로 전해진다. 이 시집에 주목하고 있는 리뷰는 드문데, 서울신문의 소개기사를 참고로 옮겨놓는다.

서울신문(06. 12. 29) 은유·환상의 유고 詩세계

전쟁의 포성으로만 기억되는 유고슬라비아. 그들의 문학은 어떤 모습일까. 그동안 좀처럼 접하기 어려웠던 만큼 유고슬라비아 문학은 우리에게 낯설고 신기하기만 하다.

문학동네에서 펴낸 유고슬라비아 시인 바스코 포파의 시집 ‘절름발이 늑대에게 경의를’(오민석 옮김)은 호기심의 한 끝을 풀어주기에 충분하다. 포파는 현대 유고슬라비아 문학을 대표하는 초현실주의 시인. ‘작은 상자’를 비롯, 그의 대표시 몇편이 국내에 소개된 적은 있지만 시집의 형태로 전모를 선보이기는 처음이다.

Self-portrait as a wolf, by Anthony Weir

“…암늑대가 살아 있는 한, 할머니는/ 리넨 천 같은 왈라키아 발음으로/ 나를 작은 늑대라고 부를 것이다// 늑대는 나에게 비밀스레/ 날고기를 먹였고 나는 성장하여/ 언젠가 무리를 이끌 것이었다// 나는 내 눈이/어둠 속에서 불타오르기 시작할 것을/믿었다…”

포파의 ‘늑대의 눈’이란 시의 한 대목이다. 포파는 세르비아 전통에서 문학의 전범을 찾는다. 이 시집에 실린 ‘늑대 시편’이 그 한 예다. 세르비아 부족신화에서 늑대는 숭배와 경의의 대상으로 등장한다. 세르비아인들은 늑대의 전사적 기질을 동경한다. 죽은 자의 영혼이 늑대로 부활한다고 믿는 그들은 코소보 평원을 자유롭게 누비는 늑대를 자신의 조상으로 여긴다. 그런 맥락에서 보면 늑대는 시적 화자의 먼 조상이며 한편으론 시인의 자아이기도 하다.

그러나 서글프게도 이 늑대는 죽음이라는 절대 폭력과 싸우는 절름발이 늑대다. 시인은 이 실존적인 두려움을 극복하기 위해 세르비아의 애국성인 성(聖) 사바의 존재를 새삼 일깨운다. “별들이 그의 머리 주위를 돌며/ 그에게 살아 있는 후광을 만들어준다// 천둥과 번개가/ 보리수 꽃 흩뿌려진/ 그의 붉은 턱수염 안에서 숨바꼭질을 한다…”(‘성 사바’ 중에서)



세르비아 국민이 그토록 추앙하는 성 사바가 보여준 공동체적 삶이야말로 포파가 초현실주의 언어를 통해 닿고자 했던 이상향이 아닐까. 이 시집은 유고슬라비아 출신의 미국 시인 찰스 시믹이 번역한 영역본 선집을 우리말로 옮긴 것. 그가 비록 포파 시의 가장 이상적인 번역자로 알려져 있지만 이중 번역의 아쉬움은 남는다.(김종면 기자)

06. 12. 30.

P.S. 아쉬움을 덜어줄 만큼 더 소개되기를 기대해본다. 이제 우리가 갖게 된 유고(세르비아) 문학. 작년에 원전 번역으로 출간된 이보 안드리치의 <드리나강의 다리>(문학과지성사, 2005)와 바스코 포파의 시집. 그리고 에미르 쿠스투리차의 초현실주의적(!) 영화들. 그 쿠스투리차가 2006년에 찍은 영화는 특이하게도 다큐멘터리 <마라도나>이다. 하긴, 유고와 아르헨티나는 '마술적 리얼리즘'을 공유하는 나라들이므로 이 둘의 조합이 어색하지만은 않겠다. 작은 '축구신동' 마라도나, 축구장에선 그를 조심해야 했었지...


댓글(5)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드팀전 2006-12-30 10:38   좋아요 0 | URL
오..저 시가 오늘 아침 마음에 들어오네요.바스락 바스락...

로쟈 2006-12-30 12:19   좋아요 0 | URL
우리는 각자의 작은 상자를 갖고 있는지도 모르죠...

Joule 2006-12-30 21:42   좋아요 0 | URL

작은 상자, 저 시를 꽤 오래 찾아다녔더랬어요. 한 번 첫눈에 반한 사람은 시간이 흘러 길에서 우연히 다시 만난대도 또다시 눈길이 가는 것처럼 시도 그래요.


nada 2006-12-30 21:45   좋아요 0 | URL
쿠스트리차와 마라도나라니. 마라도나의 짧은 목에 걸린 은 목걸이마냥 생경하군요. 마이클 만의 알리 꼴 나는 거 아닐까요.

로쟈 2006-12-31 00:18   좋아요 0 | URL
joule님/ 맞습니다.^^
꽃양배추님/ 좀 의외이긴 하지만 생경하지는 않은데요.^^ 그리고 극영화가 아니라 그냥 다큐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