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녀의 한 다스 지식여행자 16
요네하라 마리 지음, 이현진 옮김 / 마음산책 / 2007년 3월
구판절판


'애국주의는 깡패들의 마지막 방패'라는 말을 쓴 18세기 영국의 문호이자 영어사전 편찬자 새뮤얼 존슨 박사에 대해, 앰브로스 비어스 Ambrose Bierce는 <악마의 사전 The Devil's Dictionary>에서 "아니, 애국주의는 깡패들의 마지막이 아니라 첫 방패지."라고 반론하면서, "야심가라면 누구든 불붙이고 싶은 물건이요, 한 번 불 붙으면 훨훨 타오를 쓰레기"라고 재정의한다. 또한 애국자에 대해서는 이렇게 표현했다. "정치가에게는 바보처럼 속임당하고 정복자에게는 손쉽게 이용당하는 인간." (뒤에 계속)-233쪽

(앞에서 계속)
원래 인간은 생명체 고유의 자기 보존 능력을 가지고 있다. 그런 의미에서 인간은 지극히 이기적이며 자기중심적인 존재다. 기본적으로 자기, 자기 가족, 자기 민족처럼 자기와 관련된 것을 소중히 여길 줄 안다. 태어나 자란 나라를 사랑한다는 것은 지극히 자연스러운 감정인 것이다. 따라서 일부러 목청 높여 주장하고 선동하는 것은 마치 성욕을 부추기는 것처럼 경솔하고 요상스러운 행위라는 뜻이 아닐까.
관념 조작에 가장 빈번하게 동원되는 것이 바로 이 '나라'며 '민족'이라는 '불 지피기 쉽고 타오르기 쉬운' 도구다. 이보다 좀 더 체계적인 수단으로는 배타적인 종교, 혹은 이데올로기를 들 수 있다. 이 또한 일종의 '이민족'을 만들기 위한 장치다. 사람을 사람으로 여기지 않게 하는 마법이라고나 할까. 사람과 사람 사이에 장벽을 만드는 엄청난 힘을 가진 마법.-233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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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izuaki 2008-09-13 07:1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요네하라 마리의 <마녀의 한 다스>와 <프라하의 소녀 시대>를 읽었다. 고상하고 마음이 따뜻한 아줌마로 보이고, 행복하게 살다 갔다는 느낌이 들었다. 살짝 고종석의 에세이랑 비슷한 느낌? 아줌마가 쓴 고양이 이야기도 읽어 보고 싶다.
 
형이상학
아리스토텔레스 지음, 김진성 옮김 / 이제이북스 / 2007년 11월
절판


모든 인간은 본래 앎을 욕구한다.-29쪽

일반적으로 아는 사람과 모르는 사람을 구분하는 기준은 가르침의 능력이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는 기술이 경험보다 더 학문에 가깝다고 생각한다. 기술을 가진 사람들은 남을 가르칠 수 있지만 경험한 사람들은 그렇지 못하기 때문이다.-34쪽

영문을 몰라 의아하게 생각하는 사람은 자신이 모른다고 생각한다. 그래서 그들이 무지에서 벗어나려고 철학을 했다면, 그들은 분명 쓸모를 위해서가 아니라 이해를 위해 앎을 추구했다. 이는 벌어진 일을 통해 확인된다. 다시 말해 사람들은 안락과 오락을 위해 필요한 모든 것이 거의 다 갖추어졌을 때, 그러한 앎을 찾아 나섰다. 이렇듯 우리는 분명히 어떤 다른 쓸모 때문에 지혜를 찾지 않는다. 마치 남이 아니라 자신을 위해 있는 사람을 '자유인'이라 부르듯이, 이런 앎만이 모든 앎들 가운데 또한 '자유롭다'고 우리는 말한다. 그것만이 제 자신을 위해 있기 때문이다.-39쪽

일반적으로 지혜는 보이는 것들의 원인을 찾지만 우리는 이 점을 내버려 두었다. 우리는 보이는 것들의 실체를 설명한다고 생각하면서 다른 종류의 실체들(이데아)이 있다고 주장하지만, 어떻게 이것들이 보이는 것들의 실체인지에 대해선 빈말을 한다. "나눠 가짐"은 앞서 말했듯이 아무 것도 뜻하지 않기 때문이다.-89쪽

일반적으로 '있음'의 여러 가지 뜻을 구분하지 않은 채 있는 것들의 요소들을 찾아낼 수는 없다. 특히 사물들이 어떤 요소들로 이루어져 있는지를 묻는 방식으로 요소들을 탐구할 경우에 말이다. 정말이지 '입힘'이나 '입음' 또는 '곧음'이 어떤 요소들로 이루어져 있는지는 알아낼 수 없으며 알아낼 수 있다면 오로지 실체들의 경우에만 알아낼 수 있을 뿐이다. 그러므로 있는 것들 모두의 요소들을 찾는 것이나, 이것들을 가지고 있다고 생각하는 것은 옳지 않다.-91쪽

진리에 대한 연구는 어떤 점에서는 어렵지만, 어떤 점에서는 쉽다. 이는 한편으로는 어느 누구도 진리를 딱 맞게 얻을 수 없지만 다른 한편으로는 모두가 진리를 얻지 못하지는 않아서 본성에 관해 무엇인가 참인 것을 말하고, 개인적으로는 전혀 또는 조금 밖에 진리에 이바지하지 못하지만 모두 한데 모이면 꽤나 많은 양이 된다는 점에서 드러난다. 그래서 진리가 '누가 도대체 큰 문을 못 맞추랴'란 속담의 큰 문과 같은 것이라면 진리는 쉬울 것이다. 그러나 전체를 가질 수 있지만 부분을 가질 수 없다는 것은 진리의 어려움을 보여 준다.-97쪽

우리는 먼저 나눔의 방식에 따라 얻어지는 정의들에 관하여 연구해야 한다. 정의 속에는 이른바 '맨 처음의 무리(類)'와 '차이성(種差)들'이라 불리는 것들 말고는 어떤 것도 있지 않기 때문이다. (중략) 예를 들어 '두 발 달린 동물'에서 '동물'은 무리이며 '두 발 달림'은 차이성이다.-332쪽

우리는 실체들의 원인들, 원리들, 요소들을 찾고 있다고 앞서 얘기했다. 어떤 실체들은 모든 사람들이 인정하는 것들이지만, 어떤 실체들에 대해선 특정의 사람들이 저마다 다른 견해를 나타냈다. 자연적인 실체들은, 예를 들어, 불, 흙, 물, 공기 따위의 단순한 물질들, 또 식물과 그 부분들, 그리고 동물과 그 부분들, 마지막으로 물리적인 우주와 그 부분들은 다들 실체로 인정하였다. 반면, 어떤 사람들은 독자적으로 꼴들과 수학적인 대상들이 실체라고 주장하였다. 그리고 '있다는-것은-무엇-이었는가'와 '바탕이 되는 것'이 또한 실체라는 결론에 이른 논의들도 있었다. 더 나아가, 무리가 여러 가지 꼴들보다, 그리고 보편적인 것이 개별적인 것들보다 더 많이 실체이기도 했다. 그런데, 이데아들은 보편자와 무리와 관련되어 있다. 왜냐하면 이데아들은 같은 이유로 실체인 듯하기 때문이다. (뒤에 계속)-353쪽

(앞에서 계속)그리고, 본질은 실체이고 정의는 이 본질에 대한 규정이므로 우리는 정의와 '제 본성으로 말미암아 있는 것'을 다루었다. 정의는 규정이고 이 규정은 부분들을 가지므로 우리는 또한 이 '부분'에 관항 어떤 것들이 실체의 부분들이고, 어떤 것들이 그런 것들이 아닌지 그리고 실체의 부분들이 아울러 정의의 부분들인지를 살펴보아야 했다. 더 나아가, '보편적인 것'도 무리의 실체가 아니다. 이데아들과 수학적인 대상들에 대해서는 나중에 살펴보기로 하자. 왜냐하면 어떤 사람들은 감각되는 실체들뿐만 아니라 이것들도 실체라고 주장하기 때문이다.-354쪽

어떤 것들은 그것을 가짐으로써, 어떤 것들은 그것을 만들어 냄으로써, 어떤 것들은 그것을 만들어 낼 수 있는 것임으로써, 또 어떤 것들은 그것이나 다른 반대되는 것들을 얻거나 잃음으로써 '반대된다'고 말해진다. 그런데, 모순되는 것들, 결여, 반대성들, 그리고 관계 맺은 것들이 맞놓인 것들이고, 이 중 모순되는 것들이 으뜸가는 맞놓임이다. 그리고 반대되는 것들은 중간 것을 허용하지만 모순되는 것들 사이에는 아무것도 있지 않다. 그러므로 분명히 모순과 반대는 같지 않다.-427쪽

일반적으로, '여기에 있는 것'들이 언제나 변하고 결코 같은 상태에 머물러 있지 않는다는 사실을 진리에 관한 판단 기준으로 삼는 것은 이치에 어긋난다. 오히려, 언제나 같은 상태에 있으며 어떠한 변화도 겪지 않는 것들로부터 출발하여 진리를 사냥해야 한다. 천체들이 바로 그런 것들이다. 이것들은 한때는 이렇게 보이다가 다른 때는 그것과 다르게 보이지 않는다. 항상 같은 것이며 어떠한 변화도 공유하지 않는다.-465쪽

세 종류의 '이론에 관련된 학문'들이, 즉 자연학, 수학, 신학이 있다. 이론학의 무리가 가장 나은 것이며, 이 가운데서도 마지막에서 언급된 것이 가장 낫다. 왜냐 하면 신학은 있는 것들 중 가장 고귀한 것을 다루며, 또 각 학문은 자신에 고유한 인식 대상에 따라 더 낫다고 또는 더 못하다고 말해지기 때문이다.-470쪽

우리의 연구는 실체에 관한 것이다. 우리가 찾고 있는 것은 바로 이 실체의 원리 및 원인이다. 왜나하면 우주를 일종의 전체로 볼 때, 실체가 그 중 으뜸가는 부분을 이루기 때문이다. 그리고 우주를 잇따라 있는 것으로 보더라도 실체가 으뜸가는 것이며, 그 다음에 질이고, 그 다음에 양이다. -495쪽

실체는 세 가지다. 그 중에 감각되는 실체가 있다. 그리고 이 실체 중 어떤 것은 (즉 해, 달, 별 등의 천체들은) 영원하며, 어떤 것은 사라진다. 사라지는 실체는 온갖 동식물들처럼 사람들이 다들 실체로 인정하는 것들이다. 이런 감각되는 실체의 요소들을 이것들이 하나이든 여럿이든 우리는 파악해야 한다. 그리고 남은 한 종류의 실체는 움직이지 않는 것인데 사람들은 이것이'따로 떨어져 있는 것이라고 말한다. 여기서 어떤 사람들은 이것을 두 가지로 나누며, 어떤 사람들은 꼴(이데아)과 수학적인 대상들을 한 가지로 놓으며 또 어떤 사람들은 이 가운데 수학적인 대상만을 놓는다. 앞의 두 가지 실체는 자연학의 대상이다. 그것들은 움직임을 가지기 때문이다. 세 번째 종류의 실체는 이것과 앞의 두 실체에 공통된 원리가 없다면 다른 어떤 학문의 대상이다.-496쪽

수학 계열의 학문들이 아름다움이나 좋음에 대해 아무것도 말하지 않는다고 주장하는 사람들은 잘못 생각하고 있다.(중략) 아름다움의 최고 형태는 질서, 균형, 일정함인데, 이런 것들을 바로 수학 계열의 학문들이 가장 많이 증명한다. 그리고 이것들이 많은 사물들의 원인으로서 나타나기 때문에 분명히 수학 계열의 학문들은 또한 어떤 점에서 그런 종류의 원인을, 즉 '아름다움'이란 뜻의 원인을 다룬다.-546쪽

이들은 이데아들을 '보편적인 것'들로 놓으며, 동시에 그것들을 '따로 떨어져 있는' 것들로, 그리고 '개별적인 것'들로 만든다. 이럴 수 없음은 이미 다룬 바 있다. <실체들이> 보편적이라고 주장하는 사람들이 이 두 가지 특징을 한 가지 것에다 결합시키는 까닭은 실체들이 감각 대상들과 같다고 보지 않기 때문이다. 그들은 감각 세계의 개별적인 것들은 흐르는 상태에 있어서, 그것들은 어느 것도 멈춰 있지 않지만, 보편적인 것은 그것들과 따로 있으며 그것들과 다른 어떤 것이라고 생각했다. 앞에서 우리가 말했듯이, 소크라테스는 이런 것을 정의들을 통해 부추겼다. 그러나 그 자신은 개별적인 것들로부터 따로 떼어놓지 않았다. 따로 떼어 놓지 않았다는 점에서 그의 생각은 옳았다. -585쪽

사물은 그것이 늘 있어왔다 하더라도 언젠가 생겨난 것이라면, 자신을 이루는 것으로부터 생겨나 있어야 한다. 그리고 모든 것은 잠재/가능 상태로 (어떤 것인) 것에서 나와 그것이 되는 바의 것이 된다. 왜냐하면 그것은 '...ㄹ 수 없는 것'으로부터는 생겨날 수도 생겨나 있을 수도 없는 것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ㄹ 수 없는 것'은 발휘/실현될 수도 있고, 그렇지 않을 수도 있다. (아래에 계속)-598쪽

(위에서 계속) 이렇다면 수나 '밑감을 갖는 다른 어떤 것'은 그것이 아무리 늘 있어 왔다고 할지라도 있지 않을 수 있다. 마치 '여러 해 동안 있는 것'이 '하루밖에 있지 못하는 것'과 마찬가지로 있지 않을 수 있는 것처럼 말이다. 이렇다면, 끝없이 긴 시간 동안 있어 온 것도 있지 않을 수도 있을 것이다. 그러므로 그런 것들은 영원할 수 없을 것이다. 다른 자리의 논의에서 다뤘던 바대로, '있지 않음을 허용하는 것'은 영원하지 않기 때문이다. 방금 말한 것이, 즉 '어떤 실체도 그것이 (신처럼 오로지) 발휘/실현 상태로 있는 것이 아니라면 영원할 수 없다'는 주장이 보편적으로 맞다면, 그리고 요소들은 실체의 밑감이라면, 어떤 영원한 실체도 '자신 안에 들어 있으면서 자신을 이루고 있는 요소들'을 가질 수는 없을 것이다.-598쪽

이 모든 점들은 이치에 맞지 않는다. 서로 충돌하기도 하고 이치에 맞는 점들과 충돌하기도 한다. 여기서 마치 시모니데스의 '긴 말'을 보는 듯하다. 정말이지 긴 말은 노예들이 그렇듯 건전한 것을 전혀 말하지 못할 때 나온다.-609쪽

이런 (이치에 어긋난) 점들이 (이데아론에) 따르며, 또 아직 더 많은 점들을 모을 수 있을 것이다. 그들이 수들의 생성과 관련하여 많은 어려움을 겪으며, 어떤 방식으로도 체계적으로 연결하지 못한다는 사실은, 몇몇 사람들의 주장과는 달리, 수학적인 대상들은 감각 대상들로부터 따로 떨어져 있지 않다는 점을 보여 주고, 또 그것들은 원리들이 아니라는 점을 보여 준다.-625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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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izuaki 2008-08-24 19:0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다 읽었다~!!
8월 2일에 시작해서 8월 24일까지.
음음 솔직히 어려웠다. 원문에서 빼는 것은 {}, 주석자가 삽입하는 것은 ()로 쓰는 것은 관례에 따른 것인 듯 한데, 같은 뜻의 단어들도 ()에 넣어서 혼란스러웠다. 원문에 대한 집착은 그런대로 납득이 갔지만, 고유어에 대한 집착은 공감하기 어렵다. 고유어를 쓴다고 글이 쉬워지는 건 절대로 아닌데 말이지.
책 내용을 한 마디로 줄이는 건 뒷표지의 역자의 말인 듯 해서 마지막으로 여기에 적어 둔다.
"아리스토텔레스는 형이상학을 학문으로서 최초로 정립한 철학자였다. 그는 오늘날 철학의 분과와 같은 이름으로 불리는 저술 <형이상학>에서 이론철학의 가장 근본적인 문제들을 다루면서 정점에 이른 자신의 사상을 보여준다. <형이상학>에서 그가 묻는 근본 물음은 '있다'는 것은 무엇인가이다. 이 있음의 의미를 파헤치면서 그는 '있는 것'들의 으뜸 가는 원인(또는 원리)들을 찾아 나선다.
이런 탐구 과정에서 있는 것들 중에서도 실체가 양, 질, 관계 등의 다른 모든 범주들의 원인으로, 실체들 중에서도 으뜸 실체인 꼴(형상)이 다른 모든 실체들의 원인으로, 으뜸 실체 중에서도 영원불변의 신이, 천구들을 움직이는 이성(nous)들과 더불어 있는 것들 모두의 궁극적인 원인으로 드러난다. 신은 모든 존재와 변화의 시작점에 '자신은 움직이지 않으면서 다른 모든 것들을 움직이는 으뜸가는 것'으로서 서 있다."
 
시모츠마 이야기 - 양키 소녀와 로리타 소녀
타케모토 노바라 지음, 기린 옮김 / 도서출판두드림 / 2005년 9월
품절


아마가사키(尼崎)는 뭐라 설명하기 힘든 그런 동네랍니다. 오사카(大阪)와 효고(兵庫) 현 중간에 있는 이 동네는 도회지는 아니지만 어느 정도는 열려 있다고 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그 열려 있다는 것이 문제입니다.
주민의 대부분은 양키이거나 전에 양키였던 사람들입니다. 아마가사키 시민의 대댜수가 아마가사키에서 태어나 역시 아마가사키에서 태어나고 자란 양키 출신 부모에 의해 당연하다는 듯이 양키로 키워집니다.
시내에는 제법 많은 상가들이 있지만 대부분 빠찡코 가게와 수상한 짝퉁 의류를 취급하는 가게들뿐입니다. 음식점은 어디든 가격이 싼 편이어서 라면 한 그릇을 100엔이면 먹을 수 있는 가게가 널려 있습니다. 고깃집 (어찌 된 일인지 이상하게 많아요)을 포함해 모든 음식점들이 가격파괴로 승부를 걸고 있습니다. 이렇게 표현하면 무척 활기찬 동네라고 생각할 수도 있겠군요. 하지만 절대로 그렇지 않습니다.
(아래에 계속)-25-26쪽

(위에서 계속)
아마가사키 사람들은 매출을 높이기 위해서 무조건 다른 곳보다 싸게 파는 방법 이외에는 생각하지 못합니다. 사는 사람도 싼 거 외에는 관심이 없습니다. 품질이나 부가가치 등은 아마가사키 사람들에게는 전혀 중요한 문제가 아니지요. 지난번에 광우병 파동이 났을 때 다른 도시의 고깃집들은 파리만 날린다는 뉴스가 나오는데도 아마가사키의 싸구려 고깃집에는 사람들이 넘쳐나는 겁니다. 터무니없이 싼 가격에 고기를 파는 걸 보면 혹시? 어쩌면! 하는 생각을 할 수도 있을 텐데, 아마가사키 사람들은 그런 생각을 전혀 하지 않습니다. (아마가사키 사람들은 TV뉴스는 아예 보지 않습니다. 신문도 스포츠 신문밖에 있지 않아요.)
상점가를 오가는 사람들은 대부분 아래위 모두 추리닝 차림입니다. 이건 아마가사키에서는 지극히 당연한 일입니다. 아마가사키에서 태어난 사람들은 아마가사키에서 자라고 결혼해서 아이를 낳고, 아마가사키에서 그렇게 살다 그렇게 가는 것입니다.
(아래에 계속)-26-27쪽

(위에서 계속)
아마가사키는 효고 현에 속해 있습니다. 하지만 어째서인지 전화번호 국번을 효고의 078이 아니라 오사카의 06을 씁니다. 아마가사키 사람들은 오사카의 시외국번을 쓸 수 있어 편리하다며 뭣도 모르고 좋아하지만 저는 좀 복잡한 기분이랍니다.
오래 전부터 효고 현은 고베를 중심으로 부자들이 사는 상류층 지역이라는 이미지를 굳혀왔습니다. 그래서 추리닝 천국 아마가사키를 효고 현으로 인정하고 싶지 않은 거라고 저는 추측하고 있어요. 기회를 틈타 아마가사키를 잡동사니 처리반인 오사카에 떠넘겨 버리고, 부자동네라는 이미지를 확고히 하고 싶다는 것이 효고 현의 본심이 아닐까요? 아마도 효고현에 있어서 아마가사키는 없었던 걸로 하고 싶은, 앞으로도 가능하다면 없는 걸로 하고 싶은 지역인 거죠. 그래서 효고 현은 아마가사키의 시외국번 06을 계속 묵인하고 있는 겁니다. 오사카가 "있잖아, 아마가사키 말인데 오사카로 편입시킬까 하는데 주지 않을래?" 라고 한다면, 효고 현은 선심 쓰듯 아마가사키를 오사카에 선뜻 줘버릴지도 모릅니다.
(아래에 계속)-27-28쪽

(위에서 계속)
저의 가장 큰 콤플렉스는 이런 아마가사키에서 태어나 자랐다는 것입니다. 아마가사키에서는 쇼핑을 해도 살 만한 게 없어서 오사카로 나가야 했는데, 상점에서 상품을 예약하기 위해 집주소를 쓸 때마다 얼마나 창피스럽던지...... 아마가사키 시라고 쓰는 것만으로도 다들 저를 불쌍히 쳐다보는 것처럼 생각되거든요. 예쁜 옷차림을 하고 있어도 "그래 봤자 너는 추리닝 나라에서 온 애야" 라며 편견이 담긴 비웃음을 받는 기분이 되고 마는 겁니다. -28~29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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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izuaki 2008-06-11 07:4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효고 현 아마가사키 얘기가 재밌어서 옮겨왔다. 여기가 마츠모토 씨와 하마다 씨와 야스다 군의 고향이어서 말이지.;;
 
삼대 외 - 한국소설문학대계 5
염상섭 외 / 동아출판사(두산) / 1995년 1월
품절


생각할수록 경애란 이상한 계집애다. 지금 말눈치로 보아서는 노는 계집과 다름없고, 자기에게 성욕적으로 덤비는 것같이밖에는 보이지 않았다. 그뿐 아니라 어제 상훈이에게 끌고 간 것이라든지, 또 전일에 상훈이 앞에서 키스를 한 것이라든지, 혹은 자기와 상관한 남자들을 모두 서로 대면시키려는 말눈치로 보면 일종의 변태성욕을 가진 색마나 요부 같다. 그러나 별안간 호령을 하고 함부로 윽박지르는 것을 보면 그것이 혹시 히스테리증의 발작인지는 모르겠으나, 어떻게 생각하면 불량 소녀의 괴수로서 무슨 불한당의 두목 같기도 하다. 옛 책이나 탐정소설에서 볼 수 있는 강도단의 여자 두목이라면 알맞을 것 같다. 사실 청인의 상점이 쭉 들어섰고 아편쟁이와 매음녀 꼬이는 음침하고 우중충한 이 창골 속을 휘돌아 들어갈수록 병화는 강도들의 소굴로 붙들려 들어가는 듯한 음험한 불안과 호기심을 느끼는 것이었다. -218-219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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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izuaki 2008-06-09 11:4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홍경애가 사는 북미창정이 요즘의 북창동인 모양인데, 저 '청인의 상점'이랑 '아편쟁이', '매음녀' 얘기에 그만 솔깃하고 말았다. 지금도 중국식료품점이랑 룸살롱이 즐비한 동네 아닌가! 식민지 시절의 데카당한 서울은 생각할수록 매력이 있단 말이지.

eppie 2008-06-10 15:58   좋아요 0 | URL
동의해요. 정말 매혹적인 공간이에요. :]

mizuaki 2008-06-11 07:45   좋아요 0 | URL
에피 님, 덧글 고맙습니다. 앞으로도 가끔씩 놀러와주세요. ^^
 
고전 소설 속 역사 여행 - 개정증보판
신병주.노대환 지음 / 돌베개 / 2005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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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실 의병은 대부분 군사 지식이 없는 사람들이었기 때문에 실제 전투에서 혁혁한 성과를 거두는 경우는 많지 않았다. 의병 항쟁 당시 60세 환갑이었던 고경명은 적병과 무모한 전면전을 펴다가 패배해 목숨을 잃고, '군사의 행진에 기율이 없고 이르는 곳에 진영의 설비가 없어 마침내 패하게 되었다'는 평가를 들어야 했다. 하지만 개별 전투의 승리 여부에 상관없이 이들 의병의 활동은 왜군들에게 커다란 부담을 안겨 주었으며 조선군 전체의 사기 진작에 큰 역할을 하였다. 그 때문에 지봉 이수광은 왜란에서 국가를 지켜낸 것은 오로지 의병들이었다면서 다음과 같이 의병의 공로를 부각시켰다. "명령이 통하지 않아서 거의 나라가 없어진 지 달이 넘었을 때에 영남의 곽재우, 김면, 호남의 김천일, 고경명, 호서의 조헌 등이 앞장서서 의병을 일으키고 원근에 격문을 전하니 이로부터 백성들이 비로소 나라를 받들려는 마음이 있게 되었고 고을의 사자들은 곳곳에서 군사를 모집하였다. 의병장으로 칭호하는 자가 무려 백 명이나 되었는데 왜군을 초멸하고 국가를 회복한 것은 오로지 의병의 힘이었다. - 지봉유설 "-51쪽

선조는 공신들의 공을 평가하는 자리에서도 왜적을 평정한 것은 오로지 중국 군대의 힘이었고, 우리나라 장사(將士)는 중국 군대의 뒤를 따르거나 혹은 요행히 잔당의 머리를 얻었을 뿐 제 힘으로는 한 명의 적병을 베거나 하나의 적진을 함락하지 못하였으며 그나마 이순신과 권율 정도가 조금 나은 편이라고 지적하였다. (중략) 그래도 선조에게서 약간의 공적을 평가받았으며 전장에서 명예롭게 전사한 이순신은 오히려 행복한 편에 속한다. 의병장들의 실제 운명은 더욱 비참하였다. 의병들의 공이 컸다는 것은 관군의 역할이 미미하였다는 것을 인정하는 것인데, 그것은 정권 담당자들에게 큰 부담이 될 수밖에 없었다. 또, 백성들의 큰 신망을 받고 있던 이들이 혹시 어수선한 시국과 전란을 틈타 모반을 꾸미지 않을까 하는 불안감도 있었다. 실제로 전란 중 곳곳에서 도적이 일어나고 모반 사건도 발생하였다. 이들은 세력을 규합하기 위해 이름난 의병장들의 이름을 파는 경우가 있어 정부는 촉각을 곤두세우고 있었다. 여기에 의병장들의 공을 시기하는 사람들의 입김까지 작용함으로써 적지 않은 전쟁 영웅들이 희생을 당하였다.-59쪽

이름조차 알려지지 않은 수많은 의병들도 표창을 받기는커녕 전란이 끝난 후에도 고향으로 돌아가 생업에 종사할 수 없었다. 정부에서 이들을 강제로 군인으로 만들어 전선에 배치하거나 수시로 동원하였기 때문이다. 이로 인해 의병들의 원망과 고통은 극에 달하였다. 이런 상황을 지켜본 이수광은 국가가 백성들의 신뢰를 크게 잃어 차후에 또 전란이 생기면 의뢰할 수 없을 것이라고 한탄하였다. -61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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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izuaki 2008-04-26 04:2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의병에 대한 역사는 국가의 필요에 의해 많이 왜곡된 것 같다. 결국 전란이 끝난 후에는 위험인물로 찍혀 희생당했다는 것을 여기서 처음 알았다. 예나 지금이나 애국주의 선동에 넘어가면 결국 자기만 손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