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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화들이 말해주는 그림 속 드레스 이야기
이정아 지음 / 제이앤제이제이 / 2018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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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림에 대한 책을 읽으면서 이렇게 불편하기는 처음이다. 사회주의, 페미니즘, 운동권 스타일의 좌익 민족주의에 거부감이 있는 사람은 읽지 말 것을 권한다. 실려있는 그림들이 예뻐서 글이 더 아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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텐 드럭스 - 인류의 역사를 바꾼 가장 지적인 약 이야기
토머스 헤이거 지음, 양병찬 옮김 / 동아시아 / 2020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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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서 동아리를 하면서 제일 좋은 점은 다양한 분야의 책을 읽게 된다는 것이다. 우리 동아리는 회원들이 돌아가면서 책을 추천하는데, 나 혼자서는 읽을 일이 없을 종류의 책들을 다른 분에게 이끌려서 읽고, 아, 이런 것도 참 재미있네, 라고 느낀 일이 많다. 회원들의 첫 번째 추천 도서를 다 읽고, 두 번째 책을 추천해야 할 순서가 돌아왔을 때, 올해 읽은 책 목록에 과학 분야의 책이 없는 것이 신경 쓰였다. 이번에는 꼭 과학 책을 골라야겠다고 생각하고, 온라인 서점의 과학 코너를 둘러보면서, 인기 있고 평이 좋은 책으로, 토머스 헤이거의 ‘텐 드럭스’를 찾아 왔다.

 

저자인 토머스 헤이거는 오레곤 보건대학에서 미생물학과 면역학으로 석사 학위를 받은 과학자 출신으로, 저술가로 진로를 바꾸어 저널리즘을 다시 공부한 후, 여러 매체에 과학 기사들을 쓰고 다수의 저서를 출판했다. 2019년에 나온 ‘텐 드럭스’는 각종 매체에서 호평을 받고 대중적 인기를 끌었으며 15개 언어로 번역 출간되었다고 한다. 한국어 번역을 맡은 양병찬은 서울대 경영학과를 나와 대기업에 다니다가, 중앙대 약대를 졸업하고 약국을 경영했던 특이한 이력을 가진 번역자인데, 과학적으로 정확하면서도 읽기 편한 훌륭한 번역을 보여준다. 특히 원문의 영어 표현들을 적극적으로 병기해서 독자의 이해를 도운 점을 높이 평가하고 싶다.

 

책의 내용은 약의 개발과 사용에 얽힌 역사적 사건들인데, 약리학 교과서에서는 찾아보기 어려울 다양하고 흥미진진한 이야기들을 풍부하게 제공하고 있다. 특히 주역인 과학자들을 포함한 수많은 등장인물을 개성적이고 생생하게 묘사하고 있어서, 영화나 소설을 보듯이 푹 빠져서 읽을 수 있었다. 그러면서도, 의학과 약학의 역사적 큰 흐름을 적절하게 짚어 주고, 과학적 사실에 대해서 신뢰할 만한 정보를 제공하고 있다는 것은 이 책의 또 다른 미덕이다. 곁에 두고 다시 읽고 싶은 책이고, 많은 사람들에게 걱정 없이 추천할 수 있는 책이다.

 

흥미 있게 읽은 에피소드들이 무척 많았지만, 거대 제약회사들이 의사들과 전문가들을 자기편으로 만들어, 때로는 사실을 왜곡하기까지 하면서 막대한 돈을 벌어들이고 있다는 내용이 특히 기억에 남는다. 내 주위에도 콜레스테롤 강하제를 계속 복용하는 사람들이 많은데, 혈중 콜레스테롤 농도와 심장병 발병이 그렇게 밀접하지는 않다는 이야기는 놀라웠다. 콜레스테롤 강하제를 꼭 먹어야 하는 것처럼 분위기를 만든 것은 사람들이 수십 년 동안 계속 약을 먹게 함으로써 막대한 이윤을 올리는 제약회사들이라는 것이다. 그렇다면, 6개월마다 계속 추가접종을 해야 한다는 코로나 백신도 의심의 눈으로 볼 수 있지 않을까? 세상에 존재하는 수많은 호흡기계 감염증 중에, 코로나19 바이러스 감염증이 특별히 위험하다고 믿어야 할 이유는 있을까? 전 세계 사람들이 오로지 그것만이 살 길이라는 듯이 코로나 백신 접종에 열을 올리고 있는 현재 상황의 뒤에는 거대 자본의 이익이 존재하고 있는 것이 아닐까 하는 생각을 했다. 

아편의 옹호자 가운데는 의학사에서 가장 이상하고 매혹적인 인물 중 하나로, Philippus Aureolus Teopharstus Bombastus von Hohenheim이라는 인상적인 이름을 가진 스위스의 연금술사 겸 혁명적인 치유사가 있었다. 오늘날 그는 파라켈수스Paracelsus로 더 알려져 있다. 그는 일종의 의학 천재인 동시에 부분적인 반골, 사기꾼, 신비주의자, 정신병자로서, 치료제와 치료도구가 가득 찬 가방을 둘러멘 채 거대한 검(전하는 이야기에 따르면, 칼자루의 끝 부분에는 불로장생의 영약Elixir of Life이 들어 있었다고 한다)을 들고 유럽 전역을 떠돌아다닌 전설적인 인물이었다. 그는 마을에 들어설 때마다 주민들을 불러 모아 의술을 팔고 병자를 고치고 이단적인 새 이론을 주장하고, 지역의 치유사들에게서 정보를 수집하고, 그 당시의 정통 의학을 비난했다.
- P32

자금성의 부유한 엘리트 층은 (전국민에게 적용되는) 마약 포고령에서 예외가 된 자들로서, 아편 흡입을 거리낌 없이 계속했다. 이는 마지막 황제의 부인인 위안룽(媛容)의 스토리로 이어졌다. 1906년에 태어나 열여섯 살의 나이에 무심한 젊은 황제 푸이에게 시집간 아리따운 젊은 여성은, 방자하고 공허하고 애정이라곤 눈곱만큼도 없는 삶을 영위했다. (중략) 1946년 제국은 먼지가 되었고, 위안룽은 습관과 중국공산당원들 모두에게 수감되었다. 공산당원들은 그녀를 구경거리로 삼았다. 황후를 독방에 가두고, 능멸하고, 아편에 손을 대지 못하게 했다. 병사와 소작농들은 감옥 옆을 줄줄이 통과하며 창살 속을 들여다보며 비웃고 킥킥거리도록 허용되었다. 위안룽은 심각한 금단증상을 겪었고, 토사물과 대변 범적인 누더기 옷을 걸친 채 가상의 시종들을 향해 중얼거리고 흐느끼고 고함을 질렀다. 간수들은 그녀에게 청격함과 영양 보충을 불허하여, 1946년 영양실조와 금단증상으로 사망하도록 방치했다.
- P53

1860년대의 남북전쟁 시기에 모르핀 주사는 전장의 주요 의약품으로 자리 잡아, 부상당한 병사들의 통증을 완화하고 (진지에서 맹위를 떨치는) 이질과 말라리아를 치료했다. 애국적인 시민들은 군대를 위해 아편을 재배했으므로, 북부와 남부의 집 정원에는 아편꽃이 만발했고 생아편은 모르핀으로 가공되어 전선으로 긴급 수송되었다.
- P63

오늘날의 아편제중독자들은 간혹 하층민, 즉 대도시의 마약쟁이나 농촌의 백인 쓰레기로 간주된다. 그러나 1880년대의 모르핀 중독자들(참전용사는 논외로 함)은 대체로 중상류층, 전문가, 사업가로 구성되어 있었다. 그들은 한때 통증을 호소하다가, 의사들에게 모르핀을 자가주사 하도록 교육받았다. 의사 자신도 그런 ‘헌신적인 모르핀 사용자’ 중 하나였다. 1885년의 한 추산에 따르면, 뉴욕시 의사의 최대 3분의 1이 중독자였다. 모르핀은 여러모로 여성용 약물이었다. 여성들은 월경통과 히스테리에서부터 우울증 등 다양한 문제의 해결책으로 모르핀을 권고받았다. (중략) 한 역사가의 지적에 따르면, "1870년대에 미국 남부의 전형적인 중독자는 부유한 여성 백인이었으며, 예외 없이 의학적 사용을 통해 중독되었다."
- P65

이윽고 천연두가 더욱 맹위를 떨치자, 몬태규가 속한 동아리의 귀족 중 상당수가 자신의 자녀를 접종해달라고 부탁하기 시작했다. 그 선봉에 선 사람은 왕세자비였다. 장차 조지2세의 왕비가 될 독일 출신의 카롤리네(Caroline von Ansbach)는 메리와 마찬가지로 매우 지적인 여성이었다. 그녀는 독일의 위대한 사상과 고트프리트 필헬름 라이프니츠를 비록해 당대 최고이 지성들과 편지를 주고 받았다. 볼테르는 카롤리네를 ‘왕비복을 입은 철학자’라고 불렀다. 그러니 그녀와 메리가 죽이 맞은 것은 결코 놀랄 일이 아니었다. 메리의 딸에게 일어난 일을 두 눈으로 지켜본 후, 카롤리네는 슬하의 왕손들을 접종시키는 데 온통 정신이 팔려 있었다. 그녀는 시아버지인 조지1세에게 허락을 해달라고 나청했ㄷ찌만 거절당했다. 명색이 국왕인데, 안전성의 증거도 없는 기술에 왕실의 명운을 걸 수는 없었다. 카롤리네는 다른 실험을 주선할 수밖에 없었는데, 그 대상자는 뉴게이트 감옥에서 지원한 죄수들이었다.
- P84

1722년 봄, 카롤리네 왕세자비가 왕으로부터 ‘딸 중에서 가장 나이가 많은 두 명을 접종해도 좋다’라는 허락을 받았다. 그 허락은 손녀들에게만 적용되었고, 왕위를 물려받을 손자에게 적용되려면 아직도 넘어야 할 산이 많았다. 왕세자의 두 딸이 접종을 받은 후 생존하자 대중은 열광했다. 왕실의 증명은 두 가지 상반되는 결과를 얻었다. 첫째로, 증가하고 있는 영국의 귀족은 자신의 자녀를 위해 접종을 주선했고, 이는 파급효과를 통해 점점 더 많은 의사로 하여금 접종을 수행하도록 했다. 그리하여 더 많은 일반 대중에 혜택을 누리게 되었다. 두 번째 결과는 접종을 거부하는 대중의 저항운동으로, 오늘날 벌어지고 있는 백신 반대 운동의 직계 조상이었다.
- P87

법률(인용자 주: 1914년의 마약방지법)이 시행되기 전, 대부분의 의사들은 약물중독을 의학적 문제로 간주하고, 그것을 치료하는 것이 자신들의 임무라고 생각했다. 그들은 모르핀이나 헤로인을 약물중독 환자에게 처방함으로써, 마약의 품질을 관리하고 용량을 낮춤과 동시에 마약에서 서서히 벗어나도록 도와줬다. 그러나 해리슨법은 마약중독을 질병이 아니라 범죄로 간주했으므로 마약을 이용하여 마약중독을 치료한다는 것은 합법적인 ‘전문적 관행’이 아니었다. 따라서 ‘중독자에게 마약을 처방한 의사들은 범죄자’라는 명제는 괴상망측하지만 참이 되었다. 해리슨법이 통과된 지 몇 년 안에, 약 2만 5000명의 의사들이 마약 관련 혐의로 기소되었고, 그중 약 3000명이 유죄를 선고받아 철창신세를 졌다. 늘 그렇듯, 합법적인 용량을 구할 수 없는 중독자들은 거리로 쏟아져나갔다. 그에 따라 해리슨법이 통과된 후 불법약물 시장이 번성했다. 범죄와 약물이 빚어낼 오랜 로맨스의 시작이었다.
- P129

제2차 세계대전에 관한 영화를 한 번이라도 관람한 사람이라면, 의무병이 병사의 상처에 백색 분말을 미친 듯 살포하는 긴장된 장면을 기억할 것이다. 그 가루약이 바로 설파제였다. (중략) 제2차 세계대전 때 상처감염 때문에 죽은 병사의 수는 제1차 세계대전 때에 비할 바 아니었다. 상처감염의 광기와 싸우겠다던 도마크의 꿈이 실현되었던 것이다.
- P160

‘정신질환자를 사회에 재통합시킨다’라는 꿈은 흐트러지기 시작했다. 비교적 젊은 환자들 -특히 가정에 복귀할 수 없다고 생각되는 환자들- 의 증가는 교도소 수감자 수 증가로 귀결되었다. 최근 조사에 따르면 오늘날 여성 수감자 중 4분의 3, 남성 수감자 중에는 절반 이상이 정신질환으로 진단받았다고 한다. 미국의 모든 도시의 많은 소도시의 거리에서 정신질환이 있는 노숙자를 볼 수 있다.
- P207

최근 열린 심포지엄에서 한 의사가 말했듯이, "미국인들은 고통을 회피하려 한다." 우리는 언제부턴가 -부분적으로 의약품의 품질 덕분에- 통증에 익숙하지 않게 되어, 이제 그것을 감당하는 것을 꺼리고 있다. 그리고 그것은 신체적 통증에 국한되지 않는다. 경미한 불안증에서부터 경미한 우울증에 이르기까지, 우리는 모든 종류의 심리적 불편감Psychic discomfort에 대한 저향력이 떨어졌다. 미국인의 어떤 종류의 불편함에 직면하든 의사에게 약을 달라고 조르고, 의사들은 대수롭지 않게 약을 처방해준다.
- P280

아편중독자의 존재에 있어서 아편유사제는 음식이나 물만큼이나 기본적인 요소이며 생화학적인 팩트다. 중독자의 몸은 아편유사제에 화학적으로 의존한다. 왜냐하면 아편유사제는 인체의 화학을 실제로 바꿔, 주기적으로 시동을 걸어주지 않으면 제대로 작동할 수 없도록 만들기 때문이다. 혈중 약물 농도가 임계치 밑으로 내려가면 약물에 대한 굶주림이 생겨 중독자를 불안과 초조에 빠트린다. 이때 약물을 공급해 주지 않으면 불안과 초조가 악화되어 사망을 초해라 수도 있다. 엄밀히 말해서 그것은 병사가 아니라 아사라고 할 수 있다. 다음과 같은 점을 명심하기 바란다. "아편유사제를 거부당한 중독자들은 단지 불편한 게 아니라, 아편유사제에 굶주리고 잇는 것이다."
- P281

제약사들이 ‘더욱 광범위한 환자들에게 돌아가는 미미한 혜택’을 강조하는 연구를 지원하자, 심장병 전문의와 심장병 재단도 이에 가세했다. 콜레스테롤의 역할과 콜레스테롤 관리가 심장병에 미치는 영향에 관한 오랜 회의론은 제약사가 지원하는 연구, 제약사가 뒷받침하는 컨퍼런스, 제약사의 감언이설에 넘어간 의학 전문가들의 열광 앞에 눈녹듯 사라졌다. (중략) 간단히 말해서, 오늘날의 대형 제작사들은 ‘짭짤한 이윤을 약속하는 치료법’에 대한 증거를 들이대는 데 일가견이 있고, 부정적 증거를 깔아뭉개는 데 능란하며, 의사와 대중들에게 제품을 선전하는 데 탁월한 솜씨를 발휘한다. 어떤 비평가들은 제약사들을 가리켜 "자신들의 배를 채우기 위해 우리의 건강을 파멸시키는 주모자들"이라고 하는데, 이것을 ‘빅파마 음모론Big Pharma conspiracy theory‘이라고 한다.
- P297

당신이 지금껏 몰랐던 질병 -엄청나게 위험하지는 않지만 널리 확산되어 있고, 평생 동안 예방약을 복용하면 괜찮은-은 앞으로도 계속 등장할 것이다. 그런 질병들이 갑자기 등장하는 이유는 ‘유달리 위험한 질병’이어서가 아니라 ‘제약사들의 배를 불리는 질병’이기 때문이다.
- P3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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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사를 바꾼 10가지 약 세계사를 바꾼 시리즈
사토 겐타로 지음, 서수지 옮김 / 사람과나무사이 / 2018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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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해하기 쉽고 요점이 분명하다.

이 병은 1494년부터 그 이듬해에 걸쳐 프랑스 샤를8세가 나폴리를 포위했을 당시 유행했다는 최초의 기록이 남아 있다. (중략) 프랑ㅅ군 진영에 있떤 용병들은 프랑스와 영국, 독일, 스위스, 폴란드, 헝가리 등 각자 자신들의 고향으로 돌아갔다. 이후 그들은 이 무시무시한 병을 유럽 전역에 골고루 퍼뜨렸다. 매독은 러시아에서는 ‘폴란드 병‘, 폴란드에서는 ‘독일 병‘, 네덜란드에서는 ‘스페인 병‘, 영국과 이탈리에서는 ‘프랑스 병‘으로 불렸다. 정체불명의 꺼림찍한 질병을 남의 나라 탓으로 돌리고 싶어 했떤 마음은 예나 지금이나 매한가지였던 모양이다. - P1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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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기적 유전자 - 40주년 기념판
리처드 도킨스 지음, 홍영남.이상임 옮김 / 을유문화사 / 2018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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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대학 신입생 때 <이기적 유전자>를 처음 읽었다. 생물학 관련 교양 과목들의 필독 도서여서 내 또래의 이과 대학생들 대부분이 읽었을 것 같다. "생명의 이해"라는 꽤 재미있었던 3학점 짜리 수업에서, 이 책과 <우리 유전자 안에 없다>를 가지고 레포트를 써서 제출했던 기억이 난다.



   24년 만에 다시 읽은 <이기적 유전자>는 그 때와는 사뭇 다른 느낌으로 다가왔다. 스무 살 때는 그냥 열심히 공부하면서 읽었던 책인데, 마흔넷에 다시 보니 대박 재미있다!!!. 그 동안 나의 인생, 나의 라이프 스타일이라는 것이 만들어졌기 때문에, 이 책에 나오는 설명들을 나의 삶에 대입시켜서 생각해 보는 것이 엄청나게 재미있었다. 지금까지 경험하고 관찰해 온 많은 인간 행동과 사회 현상들이 도킨즈의 이론을 통해 심플하면서도 분명하게 설명되고 해석된다. 이 책에서의 도킨즈는 머리가 좋고 유머러스하며, 냉철하지만 망설임 없이 싸움에 임한다. 책 전체에 매력이 철철 넘친다.이제 중년이 된 20여 년 전의 대학생 독자가 혹시 이 책을 다시 읽을까 생각하며 나의 리뷰를 보고 계신다면, 꼭 다시 읽어 보시기를  권한다. 



지금 바닷속을 유유히 떠다니는 자기 복제자(replicators)를 찾는 것은 부질없는 일이다. 그들은 이미 먼 옛날에 자유를 포기하고 말았기 때문이다. 오늘날 자기 복제자는 덜거덕거리는 거대한 로봇 속에서 바깥세상과 차단된 채 안전하게 집단으로 떼지어 살면서, 복잡한 바깥세상과 의사소통하고 원격 조정기로 바깥세상을 조종한다. 그들은 당신 안에도 내 안에도 있다. 그들은 우리의 몸과 마음을 창조했다. 그리고 그들이 살아 있다는 사실이야말로 우리가 존재하는 궁극적인 이론적 근거이기도 하다. 자기 복제자는 기나긴 길을 지나 여기까지 왔다. 이제 그들은 유전자라는 이름으로 계속 나아갈 것이며, 우리는 그들의 생존 기계(survival machine)다.
- P75

개체는 안정적이지 않다. 정처 없이 떠도는 존재다. 염색체 또한 트럼프 카드의 패처럼 섞이고 사라진다. 그러나 섞인 카드 자체는 살아남는다. 바로 이 카드가 유전자다. 유전자는 교차에 의해서 파괴되지 않고 단지 파트너를 바꾸어 행진을 계속할 따름이다. 물론 유전자들은 계속 행진한다. 그것이 그들의 임무다. 유전자들은 자기 복제이고 우리는 그들의 생존 기계다. 우리의 임무를 다하면 우리는 폐기된다. 그러나 유전자는 지질학적 시간을 살아가는 존재이며, 영원하다.
- P100

사자는 영양을 잡아먹고 싶어 하나 영양은 전혀 생각이 다르다. 보통 이것을 자원에 대한 경쟁이라고는 보지 않는 경향이 있으나, 논리적으로 생각해 보면 그렇게 보지 않을 이유가 없다. 이때의 자원은 고기다. 사자의 유전자는 자기의 생존 기계의 먹이로서 그 고기를 ‘원한다’. 영양의 유전자는 자기의 생존 기계를 위해 일하는 근육이나 기관으로서 그 고기를 필요로 한다. 그 고기의 두 가지 용도는 서로 양립할 수 없는 것이므로 이해관계가 대립하는 것이다.
- P179

대개의 경우 (영역 동물의: 인용자 주) 암컷은 영역이 없는 수컷과는 짝짓기 하려고 하지 않는다. 그뿐만 아니라 짝지은 수컷이 다른 수컷에게 패해 그 영역의 주인이 바뀌면 암컷이 재빠르게 그 승자에게 들러붙는 일도 종종 있다. 성실하게 일부일처제를 지키는 종의 경우에도 암컷이 수컷 그 자체와 결속하기보다는 오히려 수컷이 소유하는 영역과 결혼하는 것인지도 모른다.
- P230

복지 국가란 지금까지 동물계에 나타난 이타적 시스템 중 아마도 가장 위대한 것일 것이다. 그러나 어떠한 이타적 시스템도 본질적으로 불안정하다. 그것은 그 시스템을 착취할 만반의 준비를 갖춘 이기적 개체에게 남용당할 여지를 갖고 있기 때문이다. 자기가 키울 수 있는 것 이상의 아이를 낳은 사람들은 대개의 경우 무지 때문에 그렇게 된 것이므로, 그들이 의식적으로 악용을 꾀한다고 보기는 어렵다. 다만 나는 다수의 아이를 낳도록 의도적으로 선동하는 지도자나 강력한 조직에 대해서는 그 혐의를 풀 수 없다고 생각한다.
- P237

여성이 자기가 낳은 아이가 어른이 될 평균 확률이 동갑내기 손자가 어른이 될 확률의 1/2보다 낮아지는 연령에 도달할 때, 자기 아이보다 오히려 손자 쪽으로 투자하게 하는 유전자가 유리하게 되어 번창할 것이다. 이 유전자는 손자 네 명당 한 명의 비율로 전해지는 반면, 그것과 경쟁 관계에 있는 유전자는 자식 두 명당 한 명에게 옮겨지지만, 손자의 기대 수명이 이 관계를 역전시키기 때문에 ‘손자에 대한 이타적 행동’을 유발하는 유전자가 유전자 풀 속에 널리 퍼지게 된다. 자기 아이를 계속 낳는 여성은 손자에게 충분히 투자할 수 없을 것이다. 그러므로 중년기에 이른 여성이 번식 능력을 상실하도록 작용하는 유전자가 점점 증가했을 것이다.
- P255

(물고기의-인용자) 암컷은 수컷이 아직 준비되지 않은 상태에서 난자를 빨리 방출했다고 해도 큰 문제는 없다. 난자는 비교적 크고 무거워서 잠시 동안 한 덩어리가 되어 머물러 있기 때문이다. 따라서 물고기의 암컷은 먼저 산란하는 ‘위험’을 감수할 여유가 있다. 반면 물고기의 수컷은 이런 위험을 감수할 수가 없다. 왜냐하면 수컷이 서둘러 정자를 방출해 버리면 암컷이 준비되기 전에 정자가 흩어져 버릴 것이고 그러면 암컷은 난자를 방출할 가치가 없으므로 산란하지 않을 것이기 때문이다. 확산 문제 때문에 수컷은 우선 암컷이 난자를 방출하기를 기다렸다가 정자를 뿌리는 수밖에 없다. 그러나 그 덕분에 암컷은 실로 귀중한 몇 초를 얻을 수 있다. 그 사이에 사라짐으로써 난자를 수컷에게 떠맡겨 수컷을 트리버스의 딜레마에 빠뜨릴 수 있다. 그래서 이 이론은 수컷의 자식 돌보기가 왜 물속에서는 일반적인 현상이고 건조한 육상에서는 보기 드문 일인지를 깔끔하게 설명한다.
- P304

현재까지 핸디캡 원리를 타당한 모델로 만들려는 수리유전학자들의 시도는 모두 실패로 끝났다. 이는 핸디캡 원리가 타당성 없기 때문이거나, 도전한 수리유전학자들이 총명하지 못했기 때문일 것이다. 그들 중에는 메이너드 스미스도 포함된다. 내 생각으로는 전자일 가능성이 높은 것 같다.
- P311

바이러스는 도망친 ‘반역’ 유전자에서 진화한 것으로, 이제는 정자와 난자라고 하는 일반적 운송 수단에 얽매이지 않고 생물의 몸에서 몸으로 직접 공중을 여행하는 신세가 되었다는 가설이 제기되었다. 이 가설이 옳다면 우리 자신을 바이러스의 집합체로 간주해도 좋을 것이다. 이 바이러스의 일부는 상리 공생적 협력 관계를 맺고 정자와 난자에 실려 몸에서 몸으로 이동한다. 이들이 관례적인 ‘유전자’다.
- P346

인간의 비대한 대뇌와 수학적으로 사고하는 성향이 더 교활하게 사기를 치거나 남의 사기를 좀 더 잘 간파하기 위한 메커니즘으로 진화했을 가능성도 있다. 돈은 지연된 호혜적 이타주의의 공식적인 징표다.
- P356

밈 풀(meme pool) 속에서의 신의 밈이 나타내는 생존 가치는 그것이 갖는 강력한 심리적 매력의 결과다. 실존을 둘러싼 심원하고 마음을 괴롭히는 여러 의문에 그것은 표면적으로는 그럴듯한 해답을 준다. 그것은 현세의 불공정이 내세에서는 고쳐진다고 말한다. 우리의 불완전함을 ‘영원한 신의 팔’이 구원해 준다고 한다. 이는 마치 의사가 처방하는 가짜 약과 같이 상상을 통해 그 효력을 갖는다. 이것이 신의 관념이 세대를 거쳐 사람의 뇌에 그렇게 쉽게 복사되는 이유 중 하나다. 인간의 문화가 만들어내는 환경 속에서, 신은 높은 생존 가치 또는 감염력을 가진 밈의 형태로만 실제한다.
- P365

맹신이라는 밈은 이성적인 물음을 꺾어 버리는 단순한 무의식적 수단을 행사하여 불멸의 존재가 되는 것이다. 맹신은 어떤 것도 정당화할 수 있다. 만약 어떤 사람이 다른 신을 믿고 있거나 같은 신을 믿고 있거나 같은 신을 믿더라도 다른 의식을 행한다면 맹신은 그 사실만으로도 그가 죽어야 한다고 선고할 수 있다. 십자가에 매달거나, 화형을 시키거나, 십자군의 검으로 찌른다거나, 베이루트의 노상에서 사살한다거나, 벨파스트의 술집에서 폭탄을 날린다거나, 그 무엇이든 정당화시킬 수 있다. 맹신의 밈은 특유의 잔인한 방법을 통해 스스로 번식해 간다. 애국적 맹신이든 정치적 맹신이든 종교적 맹신이든 모두 마찬가지다.
- P373

우리가 사후에 남길 수 잇는 것은 유전자와 밈 두 가지다.
- P375

우리는 유전자의 기계로 만들어졌고 밈의 기계로서 자라났다. 그러나 우리에게는 우리의 창조자에게 대항할 힘이 있다. 이 지구에서는 우리 인간만이 유일하게 이기적인 자기 복제자의 폭정에 반역할 수 있다.
- P378

크리스마스에 영국과 독일 부대가 중간 지대에서 일시적으로 전투를 중단하고 같이 술을 마신 일은 잘 알려진 사실이다. 그러나 비공식적으로 암암리에 ‘우리도 살고 남도 살리자 live and let live‘라는 불가침 협정이 모든 전선에서 1914년부터 적어도 2년간 착실히 지켜졌다는 사실은 별로 잘 알려져 있지 않은데, 나에게는 이 사실이 더 흥미롭게 느껴진다.
- P416

TFT(tit for tat)류의 전략에서 중요한 것은 경기자가 배신에 의해 벌을 받는다는 것이다. 보복의 위협은 항상 존재해야 한다. 보복할 수 있음을 과시하는 것은 ’우리도 살고 남도 살리자‘ 방식의 주목할 만한 특징이다. 양 진영에서의 일급 사격수들은 적군 병사들이 아니라 적군 병사들 가까이에 있는 무생물의 표적을 향해 놀랄 만한 사격 솜씨를 과시한다. 이 기교는 서부 활극 영화에도 나온다. (촛불을 쏘아 끄듯이). 왜 최초의 두 원자 폭탄이 (그 개발을 담당했던 일류 물리학자들이 강하게 반대했음에도 불구하고) 현란한 촛불 사격과 같은 방식으로 사용되지 않고 두 도시를 파괴하였는가에 대해서는 아직까지 누구도 만족스러운 해답을 갖고 있지 않은 듯하다.
- P418

여태까지 병목형 생활사가 왜 분명히 구분된 단위 운반자로서 생물 개체의 진화를 촉진하는가에 대해 세 가지 이유를 살펴보았다. 이 세 가지에는 각각 ‘제도팜으로의 회귀’, ‘주기의 규칙성’, ‘세포의 획일성’이라는 이름표를 붙일 수 있다.
- P478

옌Yan Wong은 옥수퍼드대학 뉴 칼리지 소속 내 학부생 제자였는데, 그가 나한테 배운 것보다 내가 그한테 배운 것이 훨씬 많다. 옌은 대학원 시절에는 애런 그라펜Alan Grafen의 제자였는데, 앨런도 학부생 때는 내 제자였고 학부를 졸업하고도 내 제자가 되었으며 지금은 내 지적 스승이 되었다. 그리 옌은 내 학생이기도 하고 내 손주 학생 -앞서 여러 가지 방법으로 표현되는 근연도에 대한 멋진 밈적 비유- 이기도 하다. 물론 문화가 유전되는 방향은 이런 간단한 말로 나타낼 수 있는 것보다 훨씬 복잡하지만 말이다.
- P495

개인적으로 나는 오히려 컴퓨터 프로그램이 (체스의-인용자) 세계 선수권을 석권할 것을 기대한다. 인간성humanity은 겸손humility의 교훈을 필요로 하고 있는 것이다.
- P514

철학 교육을 지나치게 받은 일부의 사람들은 도움이 되지 않는 경우에도 그 학문적 도구로 여기저기 들쑤시고 싶어 안달이 나는 모양이다. ‘고도의 문학적, 학문적 취미를 가졌으나 자신의 분석적 사고로 이해할 수 있는 범위를 훨씬 넘어서는 교육을 받아 온 많은 사람들’이 ‘허황된 철학 이야기’에 매력을 갖는다는 메더워의 말이 생각나다.
- P515

형제가 공유하고 있는 1/2은 모든 개체가 공유하는 90퍼센트( 그 수치가 어떻든 간에)를 빼고 난 나머지 유전자의 1/2을 말한다는 것이다.
- P531

로즈, 카민, 르원틴은 "우리 유전자 안에 없다"에서 ‘환원주의’라는 두려움의 존재를 만들어 냈다. 그리고 최고의 환원주의자는 ‘결정론자’일 것이며, 더 적합하게는 ‘유전자 결정론자’일 것이라고 말한다. (중략) 이들이 이해하지 못하는 것은 (아마도 믿기 어렵겠지만), 유전자가 인간 행동에 통계적으로 유의미한 수준에서 영향력을 행사한다는 견지와, 그 영향력이 다른 요인에 의해 무효가 되거나 전혀 반대 양상이 나타나거나 하는 식으로 조정될 수 있다는 견지를 동시에 갖는 것이 전혀 문제될 것이 없다는 점이다. 유전자는 자연선택을 거쳐 진화한 모든 행동 양상에 통계적으로 유의미한 영향력을 반드시 행사한다. (아래에 계속) - P596

(위에서 계속)
로즈 등도 다른 모든 형질이 자연선택을 거쳐 진화한 것과 마찬가지로 인간의 성적 욕구가 자연선택을 거쳐 진화했다고 믿을 것이다. 따라서 유전자가 다른 무엇에라도 영향을 미치는 것과 마찬가지로, 성적 욕구에 영향을 미치는 유전자가 있었다는 것에도 동의해야만 한다. 그러나 이들은 아마도 사회적으로 필요하다 싶을 때에는 별문제 없이 성적 욕구를 억제할 수 있을 것이다. 이것은 이원적 아닌가? 분명히 아니다. 그리고 ‘이기적인 자기 복제자의 폭정에 대한 반역’을 내가 옹호하는 것도 이원적이 아니다.
- P59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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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란 무엇인가 홍신사상신서 30
E. H. 카 지음 / 홍신문화사 / 1991년 7월
평점 :
절판


  유명한 책인데 이제서야 읽었다. 술술 잘 읽히는 재미있는 책이다. 외교관과 저널리스트로 일선에서 활약했던 저자의 경력이 이런 식으로 재미있게 말하는 방법에 영향을 주었는지도 모르겠다.


  중반으로 가면서 1970년대 한국에서 인기가 있었던 이유를 알 것 같았다. 낡은 유럽  대신 세계의 변화를 주도하는 다른 지역들에 대한 저자의 긍정적인 시각이 한국 독자들을 으쓱하게 해 줬겠지. 그러나, 이 책이 많이 읽혔음에도 불구하고 이 책의 진정한 장점인 객관적이고 냉철한 시각은 당시의 한국 독자들에게 제대로 전해지지 않은 듯하다. 학교에서 내가 배웠고 언론과 대중이 퍼뜨리는 역사는, '역사란 무엇인가'에 대한 저자의 대답과는 너무나 멀리 떨어져 있다.


  내가 좋아하는 칼 포퍼에 대한 비판이 여기저기 나타나서 재미있었다. 포퍼의 조심스러운 태도보다 카의 낙관론이 더 매력적이라고 느끼는 사람들도 있겠지만, 나는 아니다. 포퍼를 처음 읽은 고등학교 때부터도 그랬고, 나이를 먹고 거짓말쟁이 선동가들에게 질린 후인 지금은 더욱 더 그렇다. 

이 자리에서 내가 목적하는 바는 두 가지 중요한 진리, 즉 첫째로, 역사가가 연구하는 입장을 먼저 파악하지 않으면 그 역사가의 연구를 제대로 이해할 수도 평가할 수도 없다는 것, 둘째로, 이러한 입장은 그 자체가 사회적 역사적 배경에 뿌리를 두고 있다는 사실을 밝히는 것뿐이다.
- P52

누구든 역사를 쓰거나 읽을 의무가 있는 것도 아니고, 역사가 아닌 과거에 대해서도 훌륭한 책을 쓸 수 있다. 그러나 "역사"라는 말은 사회 속에 있는 인간의 과거에 대한 연구과정에만 사용할 수 있다는 것이 나의 생각이다.
- P63

역사가가 참으로 관심을 갖는 것은, 특수한 것이 아니라 특수한 것 속에 있는 일반적인 것이다.
- P84

역사가가 역사에 나타는 인물의 사생활에 대해서 도덕적 판단을 내릴 필요가 없다는 것은 새삼 논할 필요도 없을 것이다. (중략) 개인적 도덕이 무의미하다든가, 도덕의 역사가 역사상의 합법적인 한 부분이 아니라는 뜻은 아니다. 그러나 역사가는 그의 책에 나타나는 여러 개인의 사생활에 대해 도덕적 판단을 내리는 샛길로 빠져서는 안 된다. 역사가에게는 따로 할 일이 있는 것이다.
- P98

현대사에 있어서의 난점은, 사람들이 아직도 모든 선택의 여지가 남아 있던 시기를 기억하고, 그런 선택이 기정사실에 의해서 불가능해졌다고 생각하는 역사가의 태도를 받아들이기 어렵다고 깨닫기 때문이다. 이것은 순전히 감정적이고 비역사적인 반응이다.
- P129

역사적 사건의 절정이 아니라 골짜기를 지나가는 집단이나 국민 사이에서는 역사에 있어서의 기회나 우연의 역할을 강조하는 이론이 우세하게 마련이다. 시험성적 따위는 제비뽑기와 같다고 생각하는 견해는 열등생들 사이에 늘 인기가 있게 마련이다.
- P133

인간은 선배들의 경험에서 이익을 얻을 수 있고 (반드시 이익을 얻는다는 것은 아니지만), 역사에 있어서의 진보는 자연에 있어서의 진화와 달리 획득된 자산의 전승을 기초로 한다는 것이 역사의 전제이다.
- P157

오늘날에는 ‘완전한 역사’를 쓸 수 있다는 액튼의 자신감에 동조하는 역사가는 없을 것이다. 그러나 다른 역사가들에 비해서 보다 영속적이고, 또 완전성과 객관성이 더 많은 역사를 쓰는 역사가들은 있다. 그런 사람들은 과거와 미래에 대한 장기적인 안목이라고 할 만한 것을 가진 역사가들이다. 과거를 다루는 역사가는 미래에 대한 이해를 향해서 접근함으로써 비로소 객관성에 접근할 수 있는 것이다.
- P165

"영불해협에 폭풍우가 일면, 대륙은 고립된다."라는 빅토리아 시대의 섬나라 근성을 드러낸 김빠진 낡은 농담이 오늘날 기분 나쁠 만큼 절박한 여운을 갖고 있다. 이번에는 바깥 세계에서 폭풍우가 일어나고 있는 것이다. 영어 사용권의 여러 나라 사람들이 모여 앉아서 다른 나라나 대륙이 그 황당한 행동으로 인해 우리 문명의 은혜와 축복으로부터 고립되어 있느니 없느니 하고 평이한 일상 영어로 떠들어 대는 동안, 우리는 마치 이해할 능력도 성의도 없어서 세계의 현실적인 움직임으로부터 고립되어 있는 것 같다.
- P204

우리의 대정치가들과 대경제학자들은 우리에게 교훈을 줄 때, 급진적이고 원대한 사상을 경계하고, 무엇이넉 혁명의 냄새가 나는 것은 멀리해야 하며, 앞으로 나아갈 때는 (반드시 나아가야 한다면) 가능한 한 천천히, 신중하라는 경고 이외에는 우리에게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지난 4백 년 동안에 그 예를 찾아볼 수 없을 만큼 세계가 급속히, 또한 근본적으로 모습을 바꾸어 가고 있는 이 시기에, 이것은 너무 심한 몰이해로 여겨진다. (중략) 나는 격동하는 세계, 전통 때문에 갈등하는 세계를 바라보며 어느 위대한 과학자의 오래 된 말을 빌려서 답할 것이다. "그래도 그것은 움직인다."라고.
- P2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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