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록 그들이 나를 존재케 하였지만, 나의 부모님께. 그리고 그들 각자의 존재가 비록 자신에게는 해가 되지만, 나머지 우리들에게는 큰 이득이 되는, 나의 형제들에게. - P7
우리는 각자 존재하게 됨으로써 해를 입었다. 그 해는 사소한 것이 아니다. 왜냐하면 가장 좋은 삶의 질조차도 매우 나쁘기 – 대부분의 사람들이 인식하는 정도보다 훨씬 나쁘기 – 때문이다. 비록 우리의 존재를 막는 것은 명백히 이미 늦어 버렸지만, 미래의 가능한 사람들의 존재를 막는 것은 아직 늦지 않았다. 새로운 사람들을 창조하는 것은 그래서 도덕적으로 문제가 있다. 이 책에서 나는 이러한 주장들을 찬성하여 논하겠다. 그리고 왜 그러한 주장들에 대한 통상의 반응 – 분개는 아닐지라도 쉽사리 믿지 않는 반응 – 이 결함이 있는 것인지를 살펴볼 것이다. - P9
나는 이 책을, 그것이 존재하게 될 사람들의 수에 (많은) 차이를 가져올 것이라는 환상을 가지고서 쓴 것이 아니라, 그것이 받아들여지건 아니건 간에 말할 필요가 있는 것은 말해야 한다는 생각에서 쓴 것이다. - P10
특정한 사람이 존재하게 되는 것이 가능성이 매우 낮은 일이라는 인식을, 존재하게 되는 것이 항상 심각한 해악이라는 인식과 결합하면, 존재하게 된 것은 진짜 운이 나쁜 일이라는 결론이 산출된다. 해를 입는다는 것만으로도 충분히 나쁘다. 그렇게 해를 입을 가능성이 아주 희박할 때 그 해를 입는다는 것은 더욱 나쁜 일이다. - P26
친출생 편향은 많은 방식으로 드러난다. 예를 들어 (결혼해서건 아니면 그냥 동거해서건) 아이를 낳아야 한다고 보며, 불임이 아니라면 아이를 낳지 않는 건 퇴행적이거나(backward) 아니면 이기적이라고 본다. ‘퇴행적이라고’ 보는 것은 개체발생론적 패러다임이나 개인의 발달 패러다임을 활용한다. 즉 아이들은 아이들을 낳지 못하지만 어른들은 낳는다는 것이다. 그래서 (아직) 번식을 시작하지 않았다면, 그 사람은 온전한 어른이 아니다. 그러나 이것이 적절한 패러다임인지는 절대 명백하지 않다. 첫째로, 언제 아이를 갖지 않아야 할지를 알고 이 앎에 따라 자제력을 발휘하는 것은 성숙의 징표이지 미성숙의 징표가 아니다. 아이들을 기를 준비가 되어 있지 않으면서도 아이를 갖는 지나치게 많은 수의 (청소년기) 아이들이 있다. (아래에 계속) - P28
(위에서 계속) 둘째 역시 첫째 논점과 관련되어 있다. 계통발생적인(phylogenetic) 관점에서 출산하려는 충동은 극도로 원시적이다. 만일 ‘퇴행적인’이 ‘원시적인’으로 이해된다면, 출산하는 것이 퇴행적이다. 그리고 합리적인 동기를 가지고서 출산하지 않는 것은 진화적으로 더 최근 일이고 더 진보된 일이다. - P28
존재하게 되는 해악을 가하는 것을 피하고자 출산을 삼가는 곳에서는 그들의 동기는 이타적인 것이지 이기적인 것이 아니다. 더구나 아이를 갖고자 하는 이가 이타적인 동기라고 여기는 어떠한 것도, 이득을 보는 이로 아이들을 생각한다면 철저하게 오도된 것이고, 이득을 보는 이가 다른 사람이거나 국가라면 부적합한 것이다. - P29
아이를 가짐으로써 자신의 가치를 높이는 것은 인질을 잡음으로써 자신의 가치를 높이는 것과 같을 수 있다. 우리는 그렇게 가치를 높이는 일이 불공정하며 그런 행위에 보상하지 않기로 결정할 수 있다. 그렇게 하면 아이들의 삶을 더 나쁘게 만들 수 있지만, 그러한 결과를 방지하는 비용이 아이를 갖지 않은 사람들의 어깨에 지워져야만 하는가? - P32
많은 이들은 삶을 즐기기 때문에 존재하게 되어서 행복해한다. 그러나 (중략) 어떤 이가 자신의 삶을 즐긴다는 사실은 그 사람의 존재를 비존재보다 더 낫게 만들지 않는다. 왜냐하면 그 사람이 존재하게 되지 않았더라면 그 삶을 사는 기쁨을 아쉬워할 사람이 없을 것이고 그리하여 그 기쁨의 부재는 나쁘지 않을 것이기 때문이다. 이와는 대조적으로 삶을 즐기지 않을 경우에 존재하게 된 것을 후회(regret)하는 것은 이치에 닿는다. 이 경우 존재하게 되지 않았다면 누구도 그 사람이 사는 삶으로 인해 고통을 겪지 않았을 것이다. 그것은 좋다. - P94
아주 운 좋은 삶(charmed life)은 너무나 드물어서 그런 삶이 하나 있을 때마다 비참한 삶은 수백만이 있다. 어떤 이들은 그들의 아이들이 그 불운한 이들 가운데 끼게 되리라는 사실을 안다. 그러나 어느 누구도 그들의 아이가 소위 운좋은 극소수에 속하히라는 것은 모른다. 존재하게 된 사람 누구에게도 커다란 괴로움이 기다리고 있다. 가당 특권적인 사람 누구에게도 커다란 괴로움이 기다리고 있다. 가장 특권적인 사람들조차도 참을 수 없는 괴로움을 겪고, 강간당하고 폭행당하거나 잔인하게 살해당할 아이를 낳을 수 있다. - P138
법적 권리(a legal right)의 다른 것과 구별되는 특성(distinctive features)은 그릇된 일이 될 수도 있거나 여겨지기도 하는 일을 할 자유를 허용한다는 점이다. 예를 들어 표현의 자유에 대한 법적 권리는 모든 이들이 훌륭하고 현명하다고 여기는 표현을 보호하기 위해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적어도 일부 사람들은 사악하고 멍청하다고 여기는 표현을 보호하기 위해 존재하는 것이다. - P152
사람들의 삶이 지속할 가치가 없지 않은 한, 그들의 삶을 갑자기 중단시키는 것은 그들의 삶을 더 못하게 만든다. 존재하게 된 것의 다른 모든 해악에다가 때 이른 죽음이라는 해악을 또 더하게 되는 것이다. 그러나 멸종은 이런 방식으로 발생할 필요는 없다. 실제로 추가적인 사람들을 창조하는 것을 억제하는 것이, 미래의 사람들의 삶이 갑자기 중단되지 않도록 하는 최선의 방법이다. 그 삶이 갑자기 중단될 어떠한 사람들도 아예존재하지 않게 될 것이니 말이다. - P271
인류가 끝이 나게 될 때가 언제이건 마지막 사람들은 심각한 비용을 치를 것이다. 그들은 죽임을 당하거나 인구가 감소하고 사회 기반 시설이 붕괴되어 고통을 겪을 것이다. 모든 사정이 동일하다면, 이런 일이 더 나중에 벌어진다고 해서 아무것도 얻어지지 않는다. 동일한 괴로움이 발생한다. 그러나 만일 멸종이 더 일찍 일어난다면 치르지 않아도 되는 비용이 있다. 현재 세대와 마지막 세대 사이에 존재하게 되는 중간의 새 세대들이 치르는 비용 말이다. 더 이른 멸종을 찬성하는 논거는 따라서 강하다. - P272
도덕적 행위자와 합리적 숙고자를 담고 있는 세계가 뭐가 그렇게 특별한가? 인간이 그들과 같은 존재를 담고 있는 세계를 가치 있게 여긴다는 것은 실제로 세계에 관해서 이야기해 주는 것보다는 자기 중요성에 관한 부적절한 그들의 감각에 더 많은 것을 이야기해 준다. (중략) 만일 우리가 도덕적 행위자성, 합리성, 그리고 다양성과 같은 용인이 세계를 고양시킨다고 생각한다 해도 그것들의 가치가 인간 삶과 함께 오는 어마어마한 양의 괴로움을 능가한다고 보는 것은 매우 설득력이 없다. - P274
어떤 견해의 반직관성은 그 자체로는 그 견해에 반대하는 결정적인 고려 사항이 될 수 없다는 점을 주목할 필요가 있다. 이것은 직관들은 흔히 심히 믿을 수 없는 것 –그저 편견의 산물- 이기 때문이다. 한 시대와 장소에서 심하게 반직관적으로 여겨지는 견해가 다른 시대와 장소에서는 명백히 참으로 여겨진다. 노예제가 그르다는 견해 또는 ‘다른 인종간의 출산’에는 아무것도 그른 바가 없다는 견해는 한때 대단히 그럴 법하지 않고 반직관적인 것으로 생각되었다. 그 견해는 지금은 적어도 세계의 많은 곳에서 자명한 것으로 여겨진다. - P280
그러므로 어떤 견해나 그 함의가 반직관적이라고 생각하는 것 또는 심지어 모욕적이라고 생각하는 것만으로는 충분하지 않다. 싫어하는 결론을 뒷받침하는 논증을 검토해야 한다. 더 많은 사람들을 창조하는 것이 그르다는 견해를 거부한 사람들 대부분은 그 결론을 뒷받침하는 논증을 뜯어보지 않고서 그렇게 했다. 그들은 그냥 간단히 이 견해를 틀린 것으로 가정해 버렸다. - P280
그런 가정을 하면 안 되는 한 가지 이유는 그 결론이 대부분의 사람들이 받아들일 뿐만 아니라 또한 상당히 합당한 견해에서 도출되는 것이라는 점이다. 내가 2장에서 설명했듯이 쾌락과 고통의 비대칭성은 새로운 사람들을 창조하는 일에 관한 중요한 몇 가지 도덕적 판단들에 대한 최선의 설명이다. 나의 모든 논증은 그 비대칭성을 드러내고 그것이 어떤 결론으로 이르는지를 보여준 것뿐이다. - P280
대단히 그럴 법한 전제에 기초한 강력한 논증이 있으며, 그 결론을 따르면 괴로움을 겪는 사람에게 아무것도 박탈하지 않고서 괴로움을 감소시킬 수 있는데도, 그 결론이 단지 우리의 판단을 훼손하는 원시적인 심리적 특성 때문에 거부되는 때에는 그 결론의 반직관성은 그것에 반대하는 이유로 고려되어서는 안 된다. - P285
의문의 여지없이 일부 사람들은 이것으로 납득하지 못할 것이다. 그들이 나의 논증이 터무니없다(그들의 생각)는 것을 공준으로 여기는 것이 그 이유라면, 내가 그들을 납득시키기 위해 말할 수 있는 것은 없다. 내가 나의 결론을 위해 동원할 수 있는 논증이 무엇이건간에 그들은 그것이 산출하는 결론에 의해 그 논증이 논박된 것으로 여길 것이다. 그러나 이것은 나의 논증의 결함을 입증하는 것이 아니다. 그것은 내 결론의 부정(否定)이 독단의 지위를 획득했다는 점만을 입증할 뿐이다. 독단적인 사람을 납득시키기 위해 말할 수 있는 것은 아무것도 없다. - P285
존재하게 되는 것이 항상 해악이라는 견해에도 우리가 아이를 갖지 않아야 한다는 견해에도 그럴 법하지 않은 점이 전혀 없다고 생각하는 일부 사람들이 있고 나도 그들 중 하나이다. 인류의 큰 부분이 이 견해를 공유하게 될 가능성은 작다. 그것은 매우 유감스러운 일이다. 그 가능성이 작아서 현재와 인류의 궁극적 종말 사이에 야기될 어마어마한 양의 괴로움 때문에. - P285
나의 견해에도 낙천적인 부분이 있다. 인류를 비롯한 유정적 삶은 결국 끝나게 될 것이다. 인간의 종말을 나쁜 것으로 판단하는 이들에게는 종말이 일어날 것이라는 예측은 염세적이다. 이와 반대로 더 이상 사람들이 없다면 더 좋을 것이라는 나의 평가와 더 이상 사람들이 없데 되는 때가 올 것이라는 나의 예측은 낙천적인 평가를 낳는다. 사태는 지금 나쁘지만 언제까지나 나쁘지는 않을 것이다. - P287
출산에 대한 자율적인 결정과는 달리 삶을 지속할지 죽을지에 관한 자율적인 결정은 문제의 삶을 사는 사람들에 의해 내려진다. (내가 3장에서 논했듯이) 사람들의 삶이 그들이 생각하는 것보다 더 못하다는 것이 참이라면, 그들의 삶이 지속할 가치가 있는지에 관한 그들의 평가는 잘못되었을 수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것은 우리가 사람들에게 범하도록 허용해야만 하는 잘못된 판단이다. 그 잘못된 판단의 결과는 그들이 오롯이 감수한다. 이는 자신의 후손이 생각하는 것보다 자신의 후손의 삶이 더 나을 것이라고 잘못 생각하는 실수와는 다르다. - P300
어떤 이의 삶은 나쁠 수 있지만, 그 삶을 끝내는 것이 자신의 가족과 친구들에게 어떤 영향을 미칠지를 고려해야 한다. (중략) 상이한 사람들은 상이한 무게의 짐을 견뎌낼 수 있다. 그 사람에게 계속 살라고 가족들이 기대하는 것이 부당한 경우조차도 있을 수 있다. 다른 경우에는 그 사람의 삶은 나쁠 수 있지만 자살하여 자신의 가족과 친구들의 삶을 이미 그러한 것보다 한층 더 못하게 만들 정도로 나쁘지는 않을 수 있다. - P303
내가 도달한 결론은 많은 사람들에게 심하게 염인적인(misanthropic) 것으로 여겨질 것이다. 나는 삶이 불쾌함과 괴로움으로 가득 차 있다고, 아이를 갖는 것을 피해야 한다고, 더 나중이 아니라 더 일찍 인류가 끝나는 것이 최선이라고 논증했다. 그것은 염인주의(厭人主義)처럼 들릴지도 모른다. 그러나 나의 논증의 압도적인 취지는 인간에게 적용된다면 염인적인 것이 아니라 인류애적인(philanthropic) 것이다. (중략) 유정적 삶을 존재하게 하는 것은 그 삶을 갖게 되는 존재에게 해악이다. 나의 논증은 그 해악을 가하는 것이 그르다고 시사한다. 해악을 가하는 것에 반대하여 논증하는 일은 해악을 입는 사람을 싫어해서가 아니라 그 사람을 배려하기 때문에 이루어진다. - P306
(역자 후기) 이미 있는 사람들에게 더 이득이 된다는 것만으로 친출생주의 근거가 확보된다고 믿는 사람든 인간을 한낱 수단으로 대우하는 셈이다. 왜냐하면 베너타의 결론은 도덕적 결론이기 때문이다. 실천적 이유 중에서 도덕적 이유는 다른 모든 이유에 우선한다. 친구의 돈을 훔쳐서는 안 된다는 도덕적 이유와 돈이란 더 많이 가질수록 이득이 된다는 실천적 이유를 동일 평면에 놓고 무게를 가늠하는 사람은 이유를 잘못 검토하고 있는 것이다. 누군가를 존재케 하는 것이 그 누군가에게 도덕적 잘못이 된다면, 그 행위를 통해 이미 존재하는 사람이 통상적인 이득을 더 본다는 것은 결론에 영향을 미치는 근거로 제시될 수 없다. - P316
(역자 후기) 이 책은 단지 철학적 흥밋거리가 아니라 실천과 직결되는 함의를 갖는다. 우선 베너타의 논증은 무엇보다도 출산의 문제를 도덕적으로 숙고하는 개인에게 중요한 도전을 제기한다. 만일 베너타의 논증이 타당하다고 생각한다면 자신이 잘못이라고 여기는 일을 할 수는 없을 것이다. 이러한 도전은 출산을 한 번도 하지 않은 이들뿐만 아니라, 이미 출산을 한 번 이상 했다 하더라도 추가로 출산을 할 것인가를 고민하는 이들, 그리고 다른 이들에게 개인적으로 출산을 독려하거나 사회적으로 출산을 하지 않으면 불리하게 대우하는 정책을 지지하는 것의 도덕적 타당성을 검토하고자 하는 이들에게도 제기된다. 더 나아가 사회가 취할 수 있는 정책에도 도전을 제기한다. - P317
(역자 후기) 이 책의 결론이 적어도 유력하다면 출산에 관련된 기본권이 단지 행복을 추구할 권리와 신체의 자유만이 아니게 된다. 양심의 자유 역시 관련된다. 도덕적으로 큰 잘못을 범하지 않겠다는 개인의 판단을, 다른 사람의 권리가 침해되지 않음에도 불구하고 국가가 조종하여 각종 제재와 불이익을 부과하여 다른 판단으로 대체하는 것은 양심의 자유 침해라고 볼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어떤 사람들은 아무 숙고조차 하지 않을 것이므로 겉보기에는 도전을 전혀 마주하지 않는 것처럼 보이지 않을 것이다. 그러나 도덕의 문제는 도덕을 무시한다고 해서 거기 없는 것이 아니다. 인생에서 대단히 중요한 문제를 이성적 숙고를 통해 결정하기를 바라는 이들에게 이 책의 논의는 간과해서는 안 될 중요한 정거장을 제공할 것이다. - P3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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