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생의 베일 ㅣ 민음사 세계문학전집 137
서머셋 모옴 지음, 황소연 옮김 / 민음사 / 2007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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페이지가 술술 넘어가는 읽기 편한 책. 어리석고 경박하다고 자신을 비난하는 것은 공평하지 않다는 키티의 항변은 어리석고 경박한 사람의 말 치고는 너무 지혜로워 보여서 좀 어색했다. 인간이란 게 원래 이렇게 일관성이 없는 존재인 걸까? 다른 등장인물들에 비해서 키티라는 인물이 유독 일관성이 없이 튀는 느낌이어서, 작가 자신이 여성 인물을 잘 이해 못하고 있는 것 같기도 하다. 찰스 타운센트나 월터 페인을 해부대에 펼쳐놓듯이 보여주는 데 비해서, 키티는 뭔가 알듯말듯하다. 

"내가 어리석고 경박하고 천박하다고 해서 날 비난하는 건 공평하지 않아요. 난 그렇게 자랐어요. 내가 아는 모든 여자들은 다 그래요. ....교향곡 연주회가 지루하다는 사람에게 음악에 대한 기호가 없다고 힐책하는 것과 같아요. 내가 갖지 못한 품성을 내 탓으로 돌리고 나를 비난하는 게 공평한가요? 난 내가 아닌 존재인 척하면서 당신을 속이려고 한 적 없어요. 난 그냥 예쁘고 명랑해요. 장터 노점에서 진주 목걸이나 담비 외투를 찾지 마요. 주석 트럼펫이나 장난감 풍선을 찾으라고요." - P182

키티는 매일 워딩턴을 만났다. 워딩턴이 하루 일과를 끝내고 언덕을 어슬렁거리며 올라와 페인 부부의 방갈로를 찾았던 것이다. 그렇게 일주일이 흐르자 다른 상황에서라면 1년은 족히 걸려 생겼을 친밀감이 그들 사이에 싹텄다. 한번은 키티가 그가 없으면 어떻게 지내야 할지 막막할 거라고 말하자 그가 웃음을 터트리며 말했다.
"현실의 땅 위에 조용하고도 평화롭게 걸어다니는 사람은 부인과 내가 유일합니다. 수녀들은 하늘 위를 걷고 당신의 남편은.... 암흑 속을 걷죠." - P145

그(인용자주-워딩턴)는 (중국학을 날뛰는 산토끼처럼 미친 학문이라고 욕하며) 자신이 중국어 학자가 아니라고 부인했지만 중국말을 자유자재로 구사했다. 그는 글은 거의 읽지 못했지만 일상 대화 속에서 말을 배웠다. 그래서 가끔 키티에게 중국 소설이나 중국 역사 속의 이야기를 들려주었는데, 다소 우쭐대는 농담조로 말하긴 했어도 그것들은 꽤나 재미있고 애정이 담겨 있었다. 아마도 그는 유럽 인들이 야만적이고 그들의 삶은 어리석다고 여기는 중국인의 시각을 무의식적으로 차용한 듯했다. 현명한 사람이라면 그 어리석음 속에서 진실을 구분해 낼 수 있다는, 중국에서나 통할 법한 생각이었다. 한번 눈여겨볼 가치가 있는 생각이었다. 키티는 중국인들에 대해서라면 퇴폐적이고 더럽고 입에 담기도 싫은 족속이라는 말 빼고는 들은 적이 없었다. 그녀는 마치 커튼의 한쪽 끝이 들어 올려진 틈새고 꿈에서도 본 적 없는 다채롭고 장대한 세상을 언뜻 본 것만 같았다. - P1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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펠로폰네소스 전쟁사 - 그리스어 원전 완역본 ㅣ 원전으로 읽는 순수고전세계
투퀴디데스 지음, 천병희 옮김 / 도서출판 숲 / 2011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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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4년 만에 다시 읽었다. 예전에 수업 들으며 써 두었던 메모들이 도움이 되었고, 전보다 훨씬 더 재미있었다. 이 전쟁의 기록을 '영원을 향한 재산'으로 인류에게 남겨주기 위한 신의 손이 투퀴디데스의 삶을 이끌었던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까지 든다. 인간의 본성인 온갖 어리석음과 잔혹함이 뒤엉킨 속에서도 지혜가 빛을 발하는 순간들이 있다. 


내가 생각하는 재미있는 포인트들


- 2권. 페리클레스 장례식 연설. 고등학교 때 칼 포퍼의 <열린 사회의 그 적들>에 인용된 이 연설을 보고 가슴이 뛰었던 기억이 난다. 민주주의를 위한 뜨거운 헌사.


- 2권. 아테나이의 역병. 전염병 배울 때 빠지지 않고 나오는 얘기라 관련 전공자에게는 매우 친숙함. 아테나이 지도자들이 교외를 포기하고 도시로 사람들을 피난시키면서, 위생의 문제를 미처 생각하지 못했다는 것에서, 근대 과학의 힘이 얼마나 위대한 것인지를 느끼게 된다.


-3권. 레스보스 섬의 뮈틸레네 함락. 뮈틸레네의 민중들이 간발의 차이로 몰살의 위기를 벗어나게 되는 이야기가 엄청 재미있음. 선원들이 속도를 내도록 재물을 약속하는 이야기는 이규보의 '주뢰설'을 연상시키는데, 설마 서양의 설화가 중국을 거쳐 한국에도 영향을 준 건 아니겠지. 


-3권. 플라타이아이 함락. 전권에 걸쳐서 테바이가 주축이 된 보이오티아 기병대는 무적 이미지로 그려지는데, 그들에게 용감하게 맞서며 끈질기게 저항했던 아테나이의 충직한 동맹 도시 플라타이아이가 잔혹하게 파괴되는 장면이 마음 아프다. "플라타이아이는 아테나이의 동맹국이 된 지 93년 만에 그렇게 끝장났다."라는 간결한 기술에 플라타이아이를 돕지 않은 아테나이에 대한 작가의 비판이 들어가 있다고 배웠다.


-3권. 케르퀴라 내전과 반대파에 대한 숙청. 이건 전권을 통틀어 제일 끔찍한 이야기인데, 이후의 역사 속에서 계속 반복되어 오고 있는 일이라 더 끔찍하다. 가까이에 함께 사는 적은 멀리 있는 외국인과는 비교할 수도 없이 증오스럽고, 묵은 원한이 쌓이면 인간은 끝도 없이 잔인해진다. 


-4권. 퓔로스와 스팍테리아 섬에서의 아테나이의 뜻밖의 행운. 데모스테네스의 비참한 최후를 생각하면 더욱 생각이 많아지는 부분이다. 행운이 왔을 때 만족할 줄 알아야 하는데, 그게 참 어렵다.


-5권. 4권에서 대활약했던 브라시다스의 죽음. 기동력이 있고 언변이 뛰어난, 스파르타 인 답지 않은 장군이라고 배웠다. 전쟁도 잘 하지만 선동도 잘 하고 거짓말도 능청스럽게 한다. 죽고 나서 칼키디케의 영웅이 되는 결말도 좀 어이없고 재미있다.


-5권. 멜로스 대화. 별도로 쓴 논문이었다가 여기에 십입된 것으로 보인다고 배웠다. 희망의 잔혹함에 대한 이야기가 인상적이다. 멜로스가 불쌍하지만, 곧 아테나이 인들이 그 업보를 받을 거라고 생각하면 좀 오싹하기도 하고.


-6권과 7권. 시켈리아 원정. 쉬라쿠사이 군이 전투를 거듭하면서 점점 세지는 게 재미있음. 페르시아 전쟁의 시켈리아 판 같기도 하고. 투퀴디데스가 8권에서 다시 언급하는 것처럼, 쉬라쿠사이가 작은 아테나이 같기도 하다. 그리고, 아테나이 군대의 눈물 없이는 볼 수 없는 비참한 최후. 마지막에는 너무 마음이 아파서 진도가 안 나갔다. 


-8권. 배신자 알키비아데스의 사기성 넘치는 행보가 웃김. 최대한 감정을 억제하고 이 인물을 있는 그대로 보여주려는 투퀴디데스의 노력이 존경스럽다. 멸망으로 굴러떨어져가는 아테나이의 정치적 혼란상도 재미있음. 

1권 22장
내가 기술한 역사에는 설화가 없어서 듣기에는 재미가 없을 것이다. 그러나 과거사에 관해 그리고 인간의 본성에 다라 언젠가는 비슷한 형태로 반복될 미래사에 관해 명확한 진실을 알고 싶어 하는 사람은 내 역사 기술을 유용하게 여길 것이며, 나는 그것으로 만족한다. 이 책은 대중의 취미에 영합하여 일회용 들을 거리고 쓴 것이 아니라 영구 장서용으로 쓴 것이기 때문이다. (인용자 주 – 원문은 ‘영원을 향한 재산’) - P45

1권 23장
지난날 최대의 전쟁은 페르시아 전쟁이었다. 하지만 이 전쟁은 두 번의 해전과 두 번의 지상전으로 일찌감치 결판이 났다. 그러나 펠로폰네소스 전쟁은 아주 오랫동안 지속되었을 뿐 아니라 그것이 지속되는 내내 헬라스에 미증유의 고통을 안겨주었다. 그토록 많은 도시가 비헬라스인들 또는 헬라스인들 자신에게 함락되어 폐허가 된 적은 없었다. 어떤 도시는 함락된 뒤 주민이 완전히 바뀌기까지 했다. 그토록 많은 난민이 발생한 적도, 전쟁이나 당파싸움으로 그토록 많은 인명이 손실된 적도 없었다. - P45

2권 8장
양쪽 모두가 원대한 포부를 품고 전쟁에 전력을 쏟았다. 당연한 일이었다. 무슨 일이든 처음 시작할 때는 누구나 열성을 다하는 법인 데다, 당시에는 펠로폰네소스에도 아테나이에도 전쟁이 뭔지 몰라 전쟁이 싫지 않은 젊은이들이 많았기 때문이다. - P147

2권 17장
친척 집에서 피난생활을 할 수 있는 사람은 몇 안 되고, 대부분은 시내의 공터나, 아크로폴리스와 엘레우시니온 신전과 출입이 엄격히 통제된 일부 장소를 제외한, 신과 영웅들의 모든 신전에서 살았다. 아크로폴리스 밑에 펠라르기콘이라는 지역이 있는데, 그곳에 살면 저주받는다 하여 거주가 금지된 곳이었다. 어떤 퓌토 신탁의 끝부분도 같은 취지의 말을 한다. "펠라르기콘 지역은 사용하지 않는 편이 더 낫느니라." 하지만 사태가 위급하여 사람들은 그곳에도 집을 짓고 살았다. 내 생각에 이 신탁은 사람들이 예상한 것과는 정반대로 이루어진 듯하다. 아테나이에 재앙이 닥친 것은 사람들이 이 지역에 불법적으로 정착했기 때문이 아니라 전쟁 때문에 사람들이 그곳에 살 수밖에 없었으니 말이다. - P156

2권 22장
페리클레스는 그들이 현재 상황에 화가 나 올바르게 판단할 수 없을뿐더러 나가 싸우지 않는다는 자신의 결정이 옳다는 확신에서 민회나 다른 회의를 일절 열지 않았으니, 사람들이 모여서 토론하면 이성보다는 분노의 영향을 받아 나쁜 결정을 내리지 않을까 두려웠기 때문이다. 그동안 그는 도시를 수호하며 되도록 은인자중했다. 그럼에도 그는 계속 기병대를 내보내 적군의 정찰대가 도시 근교 농촌에 침입하여 해코지하는 것을 막고자 했다. - P159

2권 43장 페리클레스 연설
온 세상이 탁월한 사람들의 무덤입니다. 고향 땅에 세운 비문만이 이분들에 관해 증언하는 것이 아니라 외국 땅에서도 이분들에 대한 기억은 기념비가 아니라 사람들 마음속에 살아 있기 때문입니다. - P174

2권 64장 페리클레스 연설
여러분은 또 아테나이가 온 세상에 가장 명성을 드날리는 것은 어떤 역경에도 굽히지 않고 어느 국가보다 전쟁의 인명 손실과 노고를 더 많이 감내함으로써 역사상 최대의 힘을 갖게 되었기 때문이라는 점을 명심하십시오. 후세 사람들은 우리의 이 힘을 영원히 기억할 것입니다. 만물은 쇠퇴하게 되어 있는 터라 우리 또한 언젠가는 쇠퇴한다 해도, 후세 사람들은 우리가 헬라시은들 중에서 가장 많은 헬라스인들을 지배했고, 가장 큰 전쟁들에서 각각의 국가 또는 모든 국가에 굳건하게 맞섰으며, 우리가 살던 도시는 모든 것이 완비된 헬라스 최대의 도시였다고 기억할 것입니다. - P188

2권 65장
그는 2년 6개월을 더 살았고, 전쟁에 관한 그의 선견지명은 그가 죽은 뒤 더욱 인정받았다. 왜냐하면 페리클레스는 아테나이인들이 은인자중하며 함대를 증강하고, 전쟁 동안에는 제국을 확장하려 하지 않고, 도시를 위험에 빠뜨릴 모험을 하지 않는다면 승리할 것이라고 말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아테나이인들은 모든 점에서 정반대로 했으며, 분명 전쟁과 무관한 다른 업무에서도 개인적인 이익이나 야망에 이끌린 나머지 아테나이에도 그 동맹국들에도 해로운 정책을 추구했다. (중략) 페리클레스는 명망과 판단력을 겸비한 실력자이자 청렴결백으로 유명했기에 대중을 마음대로 주물렀으며, 대중이 그를 인도한 것이 아니라 그가 그들을 인도했다.(아래에 계속) - P190

(위에서 계속)
그는 또 부적절한 수단으로 권력을 손에 넣기 위해 아첨할 필요가 없었다. 실제로 그는 높은 명망을 누리고 있어 대중에게 화를 내며 그들이 한 말을 반박할 수 있었다. 예컨대 그는 그들이 지나칠 만큼 자신들을 과신하는 것을 볼 때면 충격적인 발언으로 그들을 불안하게 만드는가 하면, 그들이 공연히 낙담하는 것을 볼 때면 그들에게 자신감을 회복시켜주곤 했다. 그리하여 이름은 민주주의이지만 실제 권력은 제일인자의 손에 있었다. 그러나 페리클레스의 후계자들은 수준이 그만그만했으며, 서로 일인자의 자리를 차지하려고 국가 정책조차 민중의 기분에 맡겼다. - P190

3권 27장
그 사이 뮈틸레네인들은 아무리 시간이 지나도 펠로폰네소스에서 함대가 나타나지 않는 데다 식량이 떨어진 까닭에 아테나이인들과 협상하지 않을 수 없었다. 그 과정은 다음과 같다. 살라이토스도 함대가 도착할 것이라는 희망을 포기하고는 전에는 경무장만 하던 민중에게 중무장을 지급했다. 아테나이인들을 공격하기 위해서였다. 그런데 일단 무구를 손에 넣자, 민중은 더 이상 정부에 복종하기를 거부했다. 그들은 한데 모여 지배계층이 식량을 공개하고 모두에게 분배하기를 요구하면서, 그러지 않으면 자기들이 협정을 맺고 아테나이인들에게 도시를 넘겨 주겠다고 했다. - P245

3권 47장 디오도토스 연설
그러나 반란에 가담하지도 않았고 무기를 손에 넣자마자 자진하여 도시를 여러분에게 넘겨준 뮈틸레네 민중을 죽인다면 첫째, 여러분은 은인을 죽이는 죄를 저지르게 될 것이고, 둘째 지배계층이 가장 원하는 일을 하게 될 것입니다. 죄 있는 자나 죄 없는 자나 똑같은 별을 받게 된다고 미리 여러분이 밝힌 까닭에, 지배계층이 반란을 일으키면 민중은 처음부터 그들 편이 될 테니 말입니다. 설령 민중에게 죄가 있더라도 그들에게는 죄가 없는 듯 행동해야 합니다. 그래야만 여전히 우리의 동맹군인 하나의 계층이 우리의 적으로 변하는 것을 막을 수 있습니다. - P262

3권 49장
아테나이인들은 격렬한 토론을 벌이다가 거수표결에 들어갔는데, 표수는 거의 같았지만 디오도토스의 안이 가결되었다. 그들은 즉시 다른 삼단노선을 급파했는데, 먼저 떠난 삼단노선보다 늦게 도착하여 도시가 파괴된 모습을 보게 되지 않을까 두려웠기 때문이다. 첫 번째 삼단노선은 하룻밤 하루 낮쯤 앞서가고 있었다. 뮈틸레네 사절단은 이 두 번째 함선에 포도주와 보릿가루를 대주며 먼저 파견된 함선을 따라잡으면 후하게 보답하겠노라고 약속했다. 그래서 선원들은 항해를 서둘렀는데, 항해 도중 포도주와 올르브유에 갠 보릿가루로 끼니를 대신하고 교대로 취침하며 계속해서 노를 저을 정도였다. 다행히 역풍은 불지 않았다. 먼저 떠난 함선은 내키지 않는 임무를 띠고 가는지라 항해를 서두르지 않았고 나중에 떠난 함선은 그렇게 항해를 서두른 덕분에, 첫 번째 함선이 한발 먼저 도착하여 파케스가 결의문을 읽고 결의 사항을 집행하려는 순간 입항하여 학살을 막을 수 있었다. - P263

3권 68장
라케다이몬인들은 플라타이아이인들이 자신들에게 불의한 짓을 했다고 믿고 그들을 다시 한 명씩 앞으로 불어내어, 이번 전쟁 중에 라케다이몬인들과 그들의 동맹군에게 도움을 준 적이 있느냐는 같은 질문을 던졌고, 그런 적이 없다고 대답하는 자는 예외 없이 모두 끌고 나가 죽였다. 그들은 자그마치 2백명 이상의 플라타이아이인들과, 함께 포위당한 아테나이인 25명을 그렇게 죽였다. 여자들은 노예가 되었다. 도시는 당쟁 때문에 추방당한 메가라인들과 플라타이아이인들 중에 살아남은 親라케다이몬파가 1년 동안 점유하게 해주었다. 그 뒤 그들은 도시를 기초부터 완전히 허물고 헤라 신전 옆에 사방 2백 푸스의 숙박소를 지었는데, 1층에도 2층에도 사방에 방을 넣었다. (중략) 플라타이아이는 아테나이의 동맹국이 된 지 93년 만에 그렇게 끝장났다. - P279

3권 81장
에우뤼메돈이 함선을 이끌고 도착해 이레를 머무르는 사이 케르퀴라인들은 자신들이 적으로 간주한 시민들을 계속 학살했다. 희생자들에게는 민주정부를 전복하려 했다는 죄명이 씌워졌다. 그러나 더러는 개인적인 원한 때문에 죽었고, 더러는 빚을 준 까닭에 채무자의 손에 죽기도 했다. 죽음은 온갖 모습으로 다가왔고, 그러한 상황에서 있을 법한 모든 일이, 아니 더 끔찍한 일들이 일어났다. 아버지가 아들을 죽이기도 했고, 신전에서 끌려나와 신전 옆에서 살해되는 사람들도 있었다. - P286

3권 82장
이번 내란(인용자 주 – stasis)은 그처럼 잔혹한 양상을 띠었고, 처음 발생한 내란인 만큼 충격적이었다. 실제로 나중에는 헬라스 세계전체가 동란에 휘말려들었다고 할 수 있다. 나라마다 서로 경쟁관계인 정파가 있어서, 민중파 지도자들은 아테나이인들을, 소수파는 라케다이몬인들을 불러들였기 때문이다. 평화 시 같으면 불러들일 핑계도 생각도 없었겠지만, 각 정파가 반대파에게 피해를 주면서 자신에게 유리한 동맹을 맺을 수 있는 전시에는 변혁을 꾀하는 자들이 외부에서 원군을 불어들이는 것은 자연스러운 일이 되었다.(아래에 계속) - P286

(위에서 계속) 이런 내란은 헬라스의 도시들에 크나큰 고통을 안겨주었는데, 이런 고통은 사람의 본성이 변하지 않는 한 잔혹함에서 정도의 차이가 있고, 주어진 여건에 따라 양상이 달라져도 되풀이되고 있으며 언제나 되풀이될 것이다. 번영을 누리는 평화 시에는 도시든 개인이든 원하지 않는데 어려움을 당하도록 강요받는 일이 없으므로 더 높은 도덕적 수준을 유지한다. 그러나 일상의 필요가 충족될 수 없는 전쟁은 난폭한 敎師(인용자 주 – 난폭함의 교사, 폭력의 교사)이며, 사람의 마음을 대체로 그들이 처한 환경과 같은 수준으로 떨어뜨린다. - P286

3권 82장
여러 도시의 정파 지도자들은 한쪽에서는 대중의 정치적 평등을, 다른 쪽에서는 건전한 귀족정치를 내세우며 그럴듯한 정치 강령을 표방했다. 그러나 그들은 말로는 공공의 이익에 봉사한다면서도 사실 공공의 이익을 전리품으로 여겼다. 그들은 반대파보다 우위를 차지하기 위해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경쟁하며 극단적인 잔혹 행위를 일삼았으며 정의나 국익을 무시하고 반대파보다 더 잔인하게 보복했다. 그들은 그때그때 자신이 속한 정파를 즐겁게 해주는 것만을 행동 기준으로 삼았으며, 당장의 야망을 충족시키기 위해서는 불법적인 투표로 유죄판결을 내리거나 폭력으로 권력을 탈취할 준비가 되어 있었다. 그리하여 어느 쪽도 종교적 경건함 같은 것은 존재하지 않았고, 수치스러운 행위를 미사여구로 정당화할 수 있는 자들은 명망이 높아졌다. 중립을 지키려던 시민들은 투쟁에 참가하기를 거절했기 때문이든, 그들만이 살아남게 될까 시새움을 샀기 때문이든, 극단으로 흐르는 두 정파의 희생양이 되었다. - P288

4권 46장
이런 일들이 일어난 것과 같은 시기에 에우뤼메돈과 소포클레스는 아테나이 함선을 이글고 퓔로스를 떠나 시켈리아로 항해하던 중 케르퀴라 섬에 들러 시내의 케르퀴라인들과 손잡고 이스토네 산에 둥지를 튼 케르퀴라인들 토벌 작전에 나섰다. 이들은 내란이 일어난 뒤 본토에서 건너와 여러 농촌 지역을 차지하고는 큰 손해를 끼쳤다. 아테나이인들은 그들의 요새를 공격하여 함락했다. 그러자 높은 곳으로 떼 지어 달아나던 그들은 용병 부대를 넘겨주고 자신들의 무구를 인도하고 아테나이 민중의 처분을 기다린다는 데에 동의했다. 장군들은 휴전협정을 맺고 그들을 아테나이로 호송할 수 있을 때까지 구금하기 위해 프튀키아 섬으로 태우고 가며, 만약 그들 중 한 명이라도 도주하려다 체포되는 날에는 휴전조약은 그들 모두에게 효력을 상실한다는 조건을 달았다.
(아래에 계속)
- P348

(위에서 계속)
케르퀴라의 민중파 지도자들은 포로가 아테나이에 도착하면 아테나이인들이 죽이지 않을까 염려되어 (인용자 주 – 죽이지 않을 것을 염려하여) 다음과 같은 음모를 꾸몄다. 그들은 섬세 있는 포로 가운데 몇 명에게 가까운 친구들을 들여보내, 아테나이 장군들이 지금 포로들을 케르퀴라의 민중파에게 넘겨주려 하니 되도록 속히 도주하는 것이 상책이며 자기들이 배를 대주겠다고 호의를 가장해 설득하게 했던 것이다. - P348

4권 47장
설득이 주효하여, 그들이 배를 대주자 포로들은 출항하려다 체포되었다. 그리하여 휴전조약은 효력을 잃었고, 포로들은 모두 케르퀴라인들에게 넘겨졌다. 일이 이렇게 된 데에는 아테나이 장군들의 책임이 작지 않았다. 그들은 비록 자신들은 시켈리아로 가야 하지만 아테나이로 포로들을 호송하는 명예를 다른 사람들이 차지하는 것을 원하지 않는다는 점을 분명히 했는데, 이러한 태도가 음모자들을 대담하게 행동하도록 부추기고, 음모자들의 논리가 설득력 있게 들리도록 했으니 말이다. 포로들을 넘겨받자 케르퀴라인들은 큰 건물에 가두었다. 나중에 그들이 포로들을 20명씩 한데 묶은 채 데리고 나가 두 줄로 나란히 늘어선 중무장보병 사이를 지나가게 하니, 개인적으로 원한이 있는 자가 보일 때마다 이들이 치고 찔렀다. 그리고 채찍을 든 자들이 그들 옆에서 걸어가며 조금이라도 늑장을 부리면 몰아세웠다. - P348

4권 48장
모두 60명이 건물에서 끌려나가 그렇게 살해되었지만, 건물 안에 잇던 포로들은 그런 줄도 모르고 이들이 이감되는 줄로 알았다. 그러나 결국 누구에게 전해 듣고 사실을 알게 된 포로들은 아텐이인들에게 자기들이 죽기를 원한다면 손수 죽여달라고 간청했다. 이제 포로들은 건물 밖으로 나가기를 거부했고, 누가 들어오면 한사코 막겠다고 말했다. 케르퀴라인들 또한 억지로 문 안으로 밀고 들어가려 하지 않고, 건물 꼭대기로 올라가 지붕을 헐더니 아래로 기왓장을 던지고 화살을 쏘아대기 시작했다. (아래에 계속) - P349

(위에서 계속)
안에 있던 포로들은 할 수 있는 데까지 방어했다. 그러나 그들은 대부분 자신들을 향해 쏜 화살을 목구멍 안으로 밀어넣거나, 마침 건물 안에 있던 침대들에서 뜯어낸 끈이나 입고 있던 옷을 찢어 만든 띠로 목을 매달아 자살하기 시작했다. 이런 처참한 고통이 진행되는 사이 밤이 되어, 거의 밤새도록 그들은 온갖 방법으로 죽어갔는데, 더러는 자살하기도 하고 더러는 지붕 위에 있는 자들이 쏜 화살을 맞고 죽었다. 날이 밝자 케르퀴라인들은 짐마차들에 포로들의 시신을 아무렇게나 던져넣고 도시 밖으로 싣고 나갔다. 요새 안에서 사로잡힌 여자들은 노예로 팔려갔다. 산속 케르퀴라인들은 케르퀴라의 민중파에 의해 이렇게 몰살당했고, 그토록 격렬하던 내전도 적어도 이번 전쟁 동안에는 그렇게 막을 내렸다. 다른 정파에는 이렇다 할 만한 것이 아무것도 남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 사이 아테나이인들은 원래 목적지인 시켈리아로 항해해가서 그곳 동맹군과 힘을 모아 전쟁을 계속했다. - P349

4권 80장
국가 노예들에 대한 그들의 정책은 언제나 자신들의 안전에 주안점을 두었다. 실제로 그들은 건장하고 젊은 국가 노예들의 수가 늘어나는 것이 두려워 다음과 같은 조치를 취하기까지 했다. 라케다이몬인들은 전쟁터에서 라케다이몬을 위해 가장 훌륭하게 봉사했다고 주장하는 국가 노예들에게는 자유를 줄 테니 빠짐없이 출두하라고 포고했다. 그러나 그것은 책략이었다. 그들은 자신이 누구보다도 자유의 몸이 될 권리가 있다고 주장하는 자들이야말로 라케다이몬에 반기를 들 가능성이 가장 높은 자라고 생각했던 것이다. 그리하여 약 2천 명이 뽑혔는데, 이들은 자신이 자유의 몸이 된 줄 알고 머리에 화관을 쓰고는 신전들 주위를 돌았다. 그러나 라케다이몬인들은 얼마 뒤 그들을 제거해버렸는데, 그들이 각자 어떻게 살해당했는지 아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그래서 라케다이몬인들은 이번 기회에 7백 명의 국가 노예들을 기꺼이 내보내며 브라시다스 밑에서 중무장보병으로 복무하개 했다. - P373

5권 11장
브라시다스를 들어올려 싸움터 밖으로 구출한 자들은 아직 숨을 쉬고 있는 그를 시내로 옮겼다. 그는 자신의 부대가 승리했다는 소식을 들었지만 얼마 뒤 죽었다. 나머지 군대는 클레아리다스와 함께 추격에서 돌아와 적군 전사자들의 무구를 벗기고 승전비를 세웠다. 그 뒤 국비로 브라시다스의 장례식이 치러졌는데, 동맹군 전원이 완전무장하고 호송하는 가운데 지금 장터 있는 곳 앞에 그를 묻어주었다. 암피폴리스인들은 그의 무덤 주위에 담을 쌓고 그 뒤로 그를 영웅으로 모시며 재물을 바쳤고, 그의 명예를 높이고자 경기대회를 창설하고 해마다 제사를 지내주었다. 또한 그에게 자신들의 식민시 창건자라는 칭호를 부여하며 하그논을 위해 세운 건물들을 허물고, 하그논이 그곳을 창건했다는 사실을 상기시키는 것을 모조리 없애버렸다. - P423

5권 14장
실제로 암피폴리스 전투가 끝나고 림피아스가 텟살리아에서 철수한 직후부터 어느 쪽도 전투를 다시 시작하지 않았고, 양쪽 다 마음이 평화에 가 있었다. 아테나이인들은 델리온에서 타격을 입은 데다 얼마 뒤 암피폴리스에서도 타격을 입은 터라, 이전에 운이 따라줄 때는 최후의 승리를 거둘 수 있다고 믿고 자신감에서 화평 제의를 거부했지만, 이제는 더 이상 그런 자신감이 없었다. 동시에 그들은 자신들의 잇단 실패에 고무되어 동맹국이 대거 반기를 들지 않을까 두려워했고, 퓔로스 사건 뒤 유리한 환경에서 평화조약을 맺지 못한 것이 후회스러웠다.
(아래에 계속) - P424

(위에서 계속)
라케다이몬인들도 나름대로 그럴 이유가 있었으니, 전쟁이 그들의 계획대로 진행되지 않았던 것이다. 아테나이의 영토를 유린하면 몇 년 안에 아테나이의 힘을 꺾을 수 잇으리라고 믿었다. 그러나 대신 스팍테리아 섬에서 스파르테로서는 전대미문의 재앙을 당했고, 퓔로스와 퀴테라를 거점으로 그들의 영토에 대한 약탈 행위가 자행되었으며, 국가 노예들은 계속해서 도주했다. 또한 남아 있는 자들도 국외에 잇는 친구들의 사주를 받아 과거에 그랬듯 현재 상황을 이용해 반란을 일으킬 가능성을 안고 있었다. - P424

5권 15장
그런 점들을 고려하여 양쪽은 평화조약을 맺기로 결심했다. 라케다이몬인들이 그러기를 더 열망했는데 섬에서 포로로 잡힌 자들을 돌려받아야 했던 것이다. 이들 포로 가운데 스파르테인들은 정부 요인ㄷㄹ이거나 요인들의 친족이었기 때문이다. - P425

5권 26장
나는 사건의 의미를 이해할 만한 나이에 정확히 알려고 주의를 기울이며 전쟁을 처음부터 끝까지 체험했으며, 또 암피폴리스에서 군대를 지휘하다가 20년 동안 조국에서 추방되기도 했다. 그래서 양쪽 사정을, 추방된 사람의 입장에서 특히 펠로폰네소스 쪽 사정을 잘 볼 수 있었는데, 그런 여가는 내가 본 것을 냉정하게 고찰할 기회도 주었다. 그래서 나는 지금 10년 전쟁 뒤에 불화를 겪고 조약이 파기되고 뒤이어 전쟁이 시작된 경위를 기술하려 한다. - P434

5권 103장. 멜로스 대화. 아테나이 발언
위기를 맞으면 희망이 위안이 되겠지요. 다른 재원을 충분히 갖고 희망에 기댄다면 희망 때문에 해를 입기는 해도 파멸하지는 않겠지요. 그러나 가진 것을 한판에 모두 거는 사람은 망한 뒤에야 희망이 무엇인지 알게 되겠지요. (희망은 본시 낭비벽이 심하다오.) 그래서 희망이 무엇인지 알고 조심할 수 있을 때는 이미 그에게 남은 것이라고는 아무것도 없지요. 여러분은 미약하고 백척간두에 서 있는 만큼 스스로 그런 함정에 빠지지 않도록 조심하시오. 그 밖에도 여러분은 다급해진 자들의 흉내를 내지 마시오. 그들은 인간적인 수단으로 아직 자신을 구할 수 있는데도 눈에 보이는 희망이 사라지면 눈에 보이지 않는 것들, 이를테면 예언이나 신탁처럼 희망을 품게 하여 파멸로 인도하는 온갖 것들에 의지하지요. - P484

6권 13장. 니키아스 연설
여러분도 아시다시피 대개 욕심은 실패하고 선견지명은 성공하는 법입니다. 그러니 여러분은 지금 백척간두에 서 있는 조국을 위해 이번 발의에 반대표를 던지시고, 시켈리아의 헬라스인 이주민이 효과적인 장벽인 자신들과 우리 사이의 경계를 계속해서 존중하는 한 자신들의 나라에 살며 스스로 자신들의 업무를 처리하는 쪽으로 결의하십시오.
- P503

6권 18장. 알키비아데스 연설
다른 제국들의 경우도 마찬가지겠지만, 우리가 이만한 제국을 세울 수 있었던 것은 헬라스인들이든 비헬라스인들이든 우리에게 도움을 요청하면 우리가 언제나 적극적으로 도와주었기 때문입니다. (중략) 그리고 우리는 우리 제국이 얼마나 커지기를 원하는지 딱 잘라서 말할 수 없습니다. 현 단계에서 우리는 지금 우리에게 예속된 자들은 통제하고 다른 자들은 예속시킬 계획을 세울 수밖에 없습니다. 우리가 남을 지배하지 않으면 남이 우리를 지배할 위험이 있기 때문입니다. 잠자코 있는 것은 여러분이 선택할 수 있는 일이 아닙니다. 다른 사람들은 그렇게 할 수 잇어도, 여러분은 그럴 수 없습니다. 여러분이 그에 맞춰 생활 방식을 완전히 바꾸기 전에는 말입니다. 그러니 그곳에서의 전쟁이 이곳에서의 우리 힘을 증강시켜준다고 확신하고 출항합시다. - P504

6권 33장 헤르모크라테스 연설
헬라스인들이든 비헬라스인들이든 본국에서 멀리 파견된 대군이 성공한 예는 드뭅니다. 침략군이 현지 주민과 그들의 이웃보다 수가더 많은 경우는 없으며(위협을 느끼고 모두가 똘똘 뭉치기 때문입니다), 침략군이 이국에서 보급이 잘 이루어지지 않아 실제로 그 때문에 자멸해도 승리의 영광은 그들이 공격하려 한 자들에게 돌아가기 때문입니다. 아테나이인들 자신의 경우가 그렇습니다. 페르시아 침략군이 뜻밖에도 대패한 뒤 그들이 강국으로 떠오른 이유는, 페르시아인들이 아테나이를 목표로 출정했다고 믿어졌기 때문입니다. 하거늘 우리의 경우에도 같은 일이 일어나지 말란 법이 어디 있습니까. - P518

6권 39장 아테나고라스 연설
민주정체는 현명하지도 공정하지도 못한 체제이며, 재산가가 통치자로서는 최적임자라고 말하는 사람들도 있을 것입니다. 그러나 내가 말하고자 하는 바는, 첫째, ‘민중’은 국가 전체를 뜻하는 반면 소수자에 의한 정부인 ‘과두정체’는 국가의 일부를 의미할 뿐이며, 둘째, 국고를 관리하는 데는 부자들이 최적임자이고 조언자로는 지성인들이 최적임자이며, 여러 가지 논의를 듣고 결정하는 데는 대중이 최적임자인데 민주정체에서는 이들이 개별적으로도 집단적으로도 동등한 지분을 갖는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과두정체는 위험은 대중에게 분담시키면서도 이익은 소수자가 대부분 차지하거나 독차지합니다. - P525

6권 69장
그래서 그들이 앞으로 나아가, 쉬라쿠사이인들은 자신들의 조국을 위해 그리고 그들 각자는 자신의 생명과 앞으로의 자유를 위해 싸웠다. 한편 아테나이인들은 남의 나라를 정복하고 패배시킴으로써 자신들의 나라에 해를 끼치지 못하게 하려고 싸웠다. 아르고스인들과 그 밖의 다른 자치 동맹군은 아테나이인들이 목표로 한 것을 정복하도록 도와줌으로써 그 대가로 두고 온 조국을 다시 볼 수 있기 위해 싸웠다. 종속된 동맹군은 주로 당장 목숨을 구하려고 최선을 다해 싸웠는데(그것은 이기지 않으명 기대할 수 없었다), 그 밖에도 그들은 자신들이 아테나이가 계속해서 정복하도록 도와주면 자신들에 대한 억압에 줄어들 것이라는 희망도 품었다. - P547

7권 29장
그래서 이렇듯 재정적인 어려움을 겪고 잇던 아테나이인들은 추가 지출을 줄이기 위해, 너무 늦게 도착하여 데모스테네스와 동행할 수 없게 된 트라케인들을 바로 돌려보냈던 것이다. 귀국하는 그들을 인솔하는 책임은 디에이트레페스가 맡았는데, 그는 에우리포스 해협을 통과하게 되어 있는 만큼 바닷가를 따라 항해하면서 적군에게 되도록 많은 피해를 입히라는 지시를 받았다. (중략) 그는 뮈칼렛소스에서 16스타디온쯤 떨어져 있는 헤르메스 신전에서 몰래 숙영하고 날이 새자 그다지 크지 않은 도시를 공격하여 함락했다. (중략) 트라케인들은 시내로 쳐들어가 집과 신전을 약탈하고 노소 불문하고 주민을 도륙하기 시작했다. 그들은 아이든 여자든 만나는 족족 죽였고, 짐 나르는 가축과 다른 생명체도 보이는 족족 죽였다. 이들 트라케인은 두려워할 것이 없을 때는 야만족 중에서도 가장 피에 굶주린 부족이기 때문이다.(아래에 계속) - P602

(위에서 계속)
그래서 그들은 이때 사방이 아비규환이고 온갖 형태의 죽음이 널브러져 있는 것으로도 모자라, 그곳에서 가장 큰 학교로 쳐들어가 막 교실에 들어간 아이들을 모조리 도륙했다. 그리하여 지금까지 겪은 어떤 재앙보다 더 크고 더 갑작스럽고 더 무시무시한 재앙이 온 도시를 덮쳤다.

7권 30장
그사이 테바이인들이 이 소식을 듣고 구원하러 달려와서는 트라케인들이 멀리 가기 전에 따라잡아 약탈품을 되찾고 그들을 싣고 온 함선이 정박한 에우리포스 해협의 바닷가로 겁에 질린 그들을 추격했다. 그들 가운데 죽은 자들은 대부분은 헤엄칠 줄 몰라 배에 오르려다가 죽었고, 배를 탄 자들은 육지에서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는지 보고는 화살의 사정거리 밖에다 함선을 정박시켰다.
(아래에 계속)
- P602

(위에서 계속)
퇴각할 때 트라케인들은 질서정연했는데, 그들은 먼저 공격해오는 테바이 기병대에 맞서 감자기 달려나갔다가 밀집대형을 이루고 후퇴하는 트라케 특유의 작전을 펼침으로써 자신들을 잘 지켜냈던 것이다. 그래서 이 과정에서 죽은 자들은 많지 않았지만, 상당수가 약탈하려고 시내에 남아 있다가 잡혀 죽었다. 트라케인들은 1천3백명 중에서 모두 250명이 죽었다. 테바이인들과 다른 동맹군으로 구성된 구원 부대에서는 테바이의 보이오티아 연맹 지휘관 중 한 명인 스키르폰다스를 포함하여 약 20명의 기병과 중무장보병이 죽었다. 뮈칼렛소스는 인구의 대다수를 잃었다. 뮈칼렛소스는 그런 재앙을 당했다. 도시의 규모를 고려할 때 그것은 전쟁 중에 발생한 어떤 재앙보다 더 동정을 살 만한 사건이었다. - P602

7권 86장
쉬라쿠사이인들과 그들의 동맹군은 군대를 한데 집결시킨 다음 전리품을 챙기고 되도록 많은 포로를 끌고 도시로 돌아갔다. 그들은 끌고간 아테나이인들과 그들의 동맹군 포로를 채석장들에 수용했는데 그것이 이들을 붙들어두는 가장 안전한 방법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그들은 니키아스와 데모스테네스는, 귈립포스의 반대를 무릅쓰고 목을 베었다. 귈립포스가 반대했던 이유는, 승리한 데다 적정들을 라케다이몬으로 끌고 가기까지 한다면 그야말로 금상첨화가 되리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중략) 일부 쉬라쿠사이인들은 니키아스가 고문당하면 자신들과 접촉한 사실을 토설하여 모두의 성공에 재를 뿌리지 않을까 두려워했다고 한다. (중략) 그래서 이들이 동맹군을 설득하여 그를 처형하게 했다. 그러나 그렇게 비참한 최후를 맞는다는 것은 적어도 우리 시대의 헬라스인들 중에서는 그에게 가장 어울리지 않는 것이었다. 그는 평생토록 덕을 함양하고 실천하는 일에 헌신했으니 말이다. - P649

7권 87장
쉬라쿠사이인들은 채석장들에 수용된 포로를 가혹하게 다루었다. 그들은 좁은 구덩이에 다수가 한꺼번에 갇혀 있는 데다 지붕이 없어서 처음에는 뙤약볕과 숨 막히는 더위 때문에 고생이 심했고, 가을로 접어들면서는 밤공기가 싸늘해지자 급변하는 기온 탓에 환자가 속출했다. 공간이 협소한 까닭에 그들은 모든 것을 한곳에서 처리하지 않을 수 없었다. 게다가 부상이나 기온 변화 등으로 죽은 자들의 시신이 켜켜로 쌓여 있어 악취가 진동했다. 그들은 또 굶주림과 갈증에 시달렸다. 8개월 동안 그들에게는 1인당 하루에 물 1코튈레(4분의 1리터)와 곡식 2코튈레씩 배급되었기 때문이다. 그들은 그런 곳에 갇힌 자들이 겪을 것으로 생각되는 온갖 고통을 겪었다. 약 70일 동안 포로들은 모두 그렇게 살았다. 그 뒤 아테나이인들과 그들 편에서 싸운 시켈리아나 이탈리아의 헬라스인 이주민을 제외하고 나머지는 모두 노예로 팔렸다. 포로들의 수를 정확히 말하기는 어렵겠지만 분명 7천 명을 밑돌지는 않았다. - P650

8권 1장
이 소식이 아테나이에 전해지자, 사람들은 현장에서 사건을 직접 목격하고 도주해온 병사들한테서 정확한 보고를 받고도 한동안 믿으려 하지 않았다. 그들은 자신들의 군대가 전멸했다는 것이 여전히 믿어지지 않았던 것이다. 그 뒤 그것이 사실임을 알게 되자 그들은 마치 자기들은 거기에 찬성표를 던지지 않은 양 원정을 촉구한 정치가들을 원망했으며, 예언자들과 점쟁이들과 그 밖에 그때 여러 가지 방법으로 신탁을 풀이하며 자신들에게 시켈리아를 정복할 수 있으리라는 희망을 불어넣었던 모든 사람들에게 격분했다. 어느 쪽을 보아도 고통밖에 없어서, 이번 사건으로 그들은 두려움에 떨었고 유례없이 경악했다. - P654

8권 1장
하지만 그들은 자원이 남이 있는 한 항복하지 않았고, 대신 어디든 구할 수 있는 곳에서 선재를 구해와 함대를 의장하고, 군자금을 모으고, 동맹국들, 특히 에우보이아가 여전히 우군으로 남도록 노력하기로 결정했다. 또 국고 지출에 경제와 개혁의 원리를 도입하고, 그때그때 필요에 따라 의제를 사전 협의할 수 있도록 원로회를 선출하기로 결의했다. 민주정체에서 흔히 그러하듯, 민중은 이제 공포감이 휩싸인 나머지 어떤 종류의 규율도 받아들일 각오가 되어 있었다. 그리고 그들은 결의 사항들을 이행하기 시작했다. 여름은 그렇게 지나갔다. - P655

8권 82장
그 밖에도 이런저런 말을 듣고 사모스의 아테나이인들은 즉시 알키비아데스를 이전의 장군들과 함께하도록 장군으로 뽑아서 모든 것을 그에게 일임했다. 그들은 저마다 자신이 무사히 구원받고 4백 인을 응징하게 될 것이라는 현재의 희망을 세상 어떤 것과도 바꾸지 않았을 것이다. 그런 약속에 현혹되어 그들은 적군이 지척에 있다는 사실도 무시하고 당장이라도 페이라이에우스 항을 향해 출발하고자 했다. 그러나 알키비아데스는 다수가 재촉하는데도 가까이 있는 적군에게 등을 돌리고 페이라이에우스 항으로 항해하기를 딱 잘라 거절했다. 그는 이제 장군으로 선출된 만큼 먼저 배를 타고 팃사페르네스를 찾아가 전쟁을 수행하 계획을 짜야 한다고 말했다. (중략) 사실 알키비아데스는 아테나이인들을 팃사페르네스에 대한 압력 수단으로, 팃사페르네스를 아테나이인들에 대한 압력 수단으로 이용했던 것이다. - P714

8권 86장
그리고 5천 인도 모두 번갈아 정부에 참여하고 있으며, 병사들의 가족들은 카이레아스가 모함하려고 보고한 것과 달리 학대받기는커녕 아무 피해도 입지 않고 안전하게 자신의 재산을 즐기고 있다고 했다. 사절단은 그 밖에도 많은 말을 했지만, 청중은 더 이상 들으려 하지 않았다. 대신 병사들은 다시 분통을 터뜨리며 이런저런 제안을 했는데, 대부분이 페이라이에우스를 공격하자고 했다. 이때 알키비아데스가 처음으로 조국에 크게 공헌했다고 할 수 있을 것이다. 사모스의 아테나이인들이 본국의 동포들을 공격하려고 출항하려 했을 때그랬더라면 적군은 의심의 여지없이 당장 이오니아 지방과 헬레스폰토스를 점령했을 것이다) 알키비아데스가 그들을 제지했으니 말이다. 그 순간 다른 사람은 아무도 군중을 제지할 수 없었을 것이다. 그러나 그는 그들이 본국의 동포들을 공격하려고 출항하는 것을 막았으며, 私感에서 사절단에게 분통을 터뜨리는 것은 창피한 짓이라고 나무라며 그러지 못하게 제지했다. - P718

8권 96장
에우보이아에서 무슨 일이 벌어졌는지 전해지자 아테나이인들은 전에 없이 공황 상태에 빠졌다. 당시에는 엄청나 보이던 시켈리아의 대참사도, 그 밖의 다른 일도, 아테나이인들을 이처럼 두려움에 휩싸이게 하지는 않았다. 하긴 어떻게 절망하지 않을 수 있겠는가? 사모스에 있는 군대는 반란을 일으켰고, 예비 함선들도 거기에 승선할 선원도 남아있지 않았으며, 본국에서는 당파싸움으로 언제 내전이 벌어질지 모르는 마당에 함대를 잃고, 설상가상으로 앗티케 자체보다 더 중요한 생명선인 에우보이아마저 잃는 이런 엄청난 타격을 받았는데. 그러나 그들의 가장 크고 가장 직접적인 두려움은 적군이 승리에 고무되어 지킬 함대도 없는 페이라이에우스 항으로 곧장 자신들을 공격해 오지 않을까 하는 것이었다. 그리고 그들은 당장이라도 적군이 그곳에 나타날 것으로 예상했다. - P729

8권 96장
아닌 게 아니라 펠로폰네소스인들이 좀 더 대담했더라면 어렵지 않게 그렇게 할 수 잇었을 것이다. (중략) 그러나 전에도 여러 번 그런 적이 있었지만, 이번에도 라케다이몬인들은 아테나이인들에게 가장 상대하기 편한 적이라는 사실이 드러났다. 특히 해양 국가인 아테나이에는 민족성의 현격한 차이가 큰 도움이 되었는데, 말하자면 아테나이인들은 민첩하고 진취적인 데 반해 라케다이몬인들은 느리고 모험을 싫어했다. 이 점은 쉬라쿠사이인들에 의해 입증되었다. 그들은 아테나이인들과 성격이 가장 비슷했고, 그래서 이들을 상대로 가장 잘 싸웠던 것이다. - P7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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케이크와 맥주 ㅣ 민음사 세계문학전집 394
서머싯 몸 지음, 황소연 옮김 / 민음사 / 2021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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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주 재미있게 읽었다. 날카로운 관찰자의 시각으로 한 시대의 모습을 유머러스하면서도  품위 있게 보여준다. 


윌리 어셴든이 젊었을 때도 50이 넘어서도 한결같이 훌륭하게 느껴진다고 평한 소설들 중 한국어 번역이 나오지 않은 필딩의 <아멜리아>를 뺀 다섯 편을 다 읽었다는 게 뿌듯하다. 나, 소설도 잘 골라서 읽고 있었구나ㅎ. 그 다섯 편은 스턴의 <트리스트럼 샌디>, 새커리의 <허영의 시장>, 플로베르의 <마담 보바리>, 스탕달의 <파르마의 수도원>, 톨스토이의 <안나 카레니나>이다. 



(아래는 스포일러)



신사 계층의 사람들이 모두들 경멸하는 분수 모르는 장사꾼을 "완벽한 신사"라고 칭하는 하층 계급 출신 옛 미녀의 말을 통해, 세상의 가치관에 묵직한 질문을 던지는 마무리가 압권이다. 

여섯 살 딸의 죽음을 한 사람은 예술로, 한 사람은 육체의 쾌락으로 극복하며 각자 다른 길을 찾아서 헤어지는 젊은 부모의 모습이 서늘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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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이 발간되었을 때 나는 여러 대상에게서 공격을 받았다. 내가 토머스 하디를 모델로 에드워드 드리필드라는 인물을 만들어냈다는 의혹 때문이었다. 그것은 나의 의도가 아니었다. 나는 토머스 하디를 조지 메러디스나 아나톨 프랑스만큼이나 염두에 둔 적이 없다. (중략) 나는 열여덟 살 때 ‘테스’를 읽고 젖 짜는 아가씨와 결혼하리라 결심할 만큼 그것에 열광했지만, 대부분 의 동시대인들과 달리 하디의 다른 작품들은 그다지 좋아하지 않았고 문체도 별로 높이 평가하지 않았다. - P9

나는 토머스 하디를 딱 한 번 만났다. 장소는 레이디 세인트헬리어의 만찬 자리였다. (중략) 당시 나는 인기 있고 잘나가는 극작가였다. 그 자리는 전쟁 전 사람들이 열곤 했던 성대한 만찬 파티들 중 하나였다.(중략) 스물네 명의 참석자들은 모두 신분이나 정치적 입지, 혹은 예술적 성취도가 남다른 사람들이었다. 숙녀들이 응접실로 물러갔을 때 나는 우연히 토머스 하디의 옆자리에 앉아 있었다. (중략) 우리가 무슨 이야기를 나누었는지는 기억나지 않지만 사십오 분 정도 이야기를 나눈 것은 분명하다. 대화가 끝날 무렵 그는 나를 크게 칭찬하고 나서 직업이 뭐냐고 물었다. (내 이름을 들은 적이 없었던 모양이다.) - P10

듣자 하니 작가 두세 명이 앨로이 키어라는 인물이 본인을 겨냥해 만들어졌다고 생각하는 모양이다. 그것은 그들이 오해다. 이 인물은 여러 가지가 복합된 초상이다. 외모는 한 작가에게서 따왔고, 상류 사회에 대한 집착은 다른 작가에게서, 활력은 세 번째 작가에게서, 운동 능력의 자긍심은 네 번째 작가에게서, 그 외에 많은 부분은 나 자신에게서 빌려 왔다. (중략) 자신의 작품을 홍보하기 위해 갖은 수단을 동원하는 작가를 표현할 때 나는 다른 사람에게 초점을 맞출 필요가 없었다. 그러기에 이것은 너무나 흔한 관행이다. 누구나 공감할 수밖에 없는 문제다. - P10

로이는 처음부터 유리한 고지에서 출발했다. 그는 오랫동안 홍콩에서 식민 장관을 지낸 뒤 자메이카 총독으로 퇴임한 공무원의 외아들이었다. (중략) 로이는 아무런 빚도 지지 않고 대학을 졸업했다. 이미 그때부터 검약하는 습관이 몸에 배어 쓸데없는 지출을 자제했다. 그는 좋은 아들이었다. 자기가 받은 값비싼 교육이 부모의 희생으로 이루어졌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 P16

그 집안의 섬세하고 허약한 외아들을 가르친 것이 로이에게는 젊은 나이에 큰 세상으로 진입하는 발판이 되었다. 그는 이 경험을 십분 활용했다. 주간지로 상류 사회를 엿본 작가의 작품은 한계를 가질 수밖에 없지만 그의 작품에서는 그런 결함을 찾아볼 수 없다. 그는 공작들이 서로 어떻게 대화하는지, 국회의원과 대리인, 마권업자, 대리 주차원에게 각각 어떤 호칭으로 대우를 받는지 정확히 알고 있었다. 그의 초기 소설에 등작하는 총독, 대사, 수상, 왕족, 귀부인의 경쾌한 면모에는 어떤 매력이 살아있다. (중략) 귀족들의 행위가 더 이상 진지한 소설의 적당한 소재가 될 수 없는 시류 탓에 언제나 시대의 흐름에 극도로 민감한 로이가 후반기 소설들을 사무 변호사, 공인 회계사, 농산물 브로커의 내적 갈등에 치중할 수밖에 없었던 것을 나는 늘 애석하게 생각한다. - P17

많은 작가들이 단어에 심취해 있다 보니 대화 중에 단어를 지나치게 고르는 나쁜 버릇을 가지고 있다. 이들은 무의식적으로 너무 정성껏 문장을 만들어 의도하는 바를 가감 없이 정확하게 말한다. 그래서 어휘 구사력이 단순하고 민감한 욕구에 국한된 상류 사회 사람들은 이들과 의사소통에 다소 어려움을 겪게 되고, 그 결과 이들하고 어울리는 것을 망설이게 된다. 로이는 이러한 종류의 제약을 받은 적이 없었다.
- P36

현자는 모름지기 상용구를 많이 쓰고 유행하는 형용사를 쓰며 그 상황에 딱 들어맞는 표현을 써서 환담에 소탈한 광채를 더하고 깊이 생각할 필요가 없게끔 한다. 지구상에서 효율성을 가장 따지는 미국인들은 이러한 요령을 완벽의 경지로 끌어올려 방대한 범위에서 간결하고 진부한 문구들을 무수히 만들어 냈고, 그 덕분에 서로 무슨 소리를 하는지 한시도 생각하지 않고 즐겁고 활기찬 대화를 이어 갈 수 있을 뿐만 아니라 이로써 이성은 큰 사업과 간통 같은 더 중요한 문제의 몫으로 자유롭게 남겨둔다 - P37

"그럼 그때나 지금이나 대단하다고 생각한 건 무엇인가?"
"글세, ‘트리스트럼 샌디’, ‘아멜리아’, ‘허영의 시장’, ‘마담 보바리’, ‘파르마의 수도원’, ‘안나 카레니나’, 그리고 워즈워스와 키츠, 베를렌."
"내가 이렇게 말하면 어떨지 모르겠지만 그다지 독창적인 생각은 아닌 것 같군."
"그렇게 말해도 무리는 아니지. 내가 봐도 독창적이지 않으니까." - P44

내 숙부는 교구 목사였다. 숙모는 독일인이었는데, 신분이 대단히 높았지만 가난한 집안 출신이어서 결혼할 때 가져온 것이 17세기 조상 중 한 분이 제작한 쪽매붙임 책상 하나와 컵 세트뿐이었다. 내가 그 집에 살 때는 컵들이 몇 개 남지 않아 응접실에서 장식품으로 쓰이고 있었다. 나는 전체적으로 웅장한 문장이 새겨진 그 컵들을 좋아했다. 컵에는 숙모가 점잖게 설명해 준 결합 문장이 무수히 많았는데 문장을 받치는 동물들이 정교하고 왕관에서 솟아난 투구는 굉장히 낭만적이었다. 숙모는 소박한 노부인으로 온화한 기독교인의 성향을 지녔지만, 봉급 외에 부수입이 거의 없는 평범한 목사와 결혼한 지 삼십 년이 넘은 처지에도 자신의 ‘고귀한 태생’을 결코 잊지 않았다. - P52

한번은 오늘날 금융계에서 이름이 널리 알려진 런던의 부유한 은행가가 이웃집을 빌려 여름휴가를 보낸 적이 있었다. 숙부는 그를 찾아갔지만 (복자 협회의 기부금을 얻어 보려는 마음이었을 것이다.) 숙모는 그가 장사꾼이라는 이유로 방문하지 않았다. 아무도 숙모를 거만하다고 생각하지 않았다. 지극히 당연한 처사라고 생각했다. 그 은행가에게는 내 또래의 사내아이가 있었는데, 자세한 경위는 기억나지 않지만 나는 그 아이와 친해지게 되었다. 내가 그 아이를 목사관에 데려와도 되느냐고 물었을 때 이어졌던 대화가 아직도 기억난다. 망설임 끝에 허락이 떨어졌지만 그 아이의 집에는 가지 말라는 금지령이 내려졌다. 숙모는 나더러 다음에는 석탄 상인의 집에 가겠다고 하겠구나 했고, 숙부는 이렇게 말했다. "나쁜 언사를 행실을 망친단다." - P53

호드마시 부인은 초대한 작가들의 책을 읽은 적이 없었고 화가들의 그림 또한 본 적 없었지만 그들과 어울리는 것을 즐겼고 그 과정에서 예술계의 사정에 밝아지는 것을 좋아했다. 그러던 중 그 자리에서 부인의 가장 유명한 이웃 에드워드 드리필드가 잠시 화제에 올랐고, 내가 한때 그와 잘 아는 사이였다고 말하자 부인은 많은 손님들이 런던으로 돌아가는 월요일에 그분 댁을 방문해 점심을 같이 하자고 제안했다. 나는 난색을 표했다. 드리필드를 만난 것이 삽십오 년도 더 지난 일이라 그가 나를 기억할 리 만무했고, 기억한다 해도 (이 말은 입 밖에 꺼내지 않았지만) 즐거운 기억은 아닐 거라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다. - P64

하지만 그 자리에 문학열을 뜨겁게 불태우는 스캘리언 경이라는 청년이 있었다. 나라를 다스리는 법률가의 소임에 충실하기보다 탐정 소설 창작에 기운을 빼는 자였다. 그는 드리필드를 만나고 싶은 호기심을 주체하지 못하고 호드마시 부인이 말을 꺼내자마자 아주 훌륭한 제안이라고 나섰다. 파티의 주빈은 젊고 뚱뚱한 공작 부인이었는데, 그녀마저 그날 런던의 약속을 취소하고 오후에 출발하는 것을 감수할 만큼 그 유명한 작가를 열렬히 숭배하는 모양이었다.
"그럼 우리 넷이 되겠네요." 호드마시 부인이 말했다. "더 많으면 그들도 난처할 거예요. 드리필드 부인에게 즉시 전보를 보내죠." - P65

"대체 드리필드 부부가 뭘 잘못한 거야?" 나는 메리앤에게 물었다.
메리앤은 열여덟 살 때 목사관에 왔다. 어린 나를 목욕시켰고, 필요하면 자두잼에 가루 설탕을 뿌려 주었고, 학교에 갈 때 책가방을 싸 주었고, 아플 때는 병간호를 해 주었고, 심심할 때는 책을 읽어 주었고, 말썽을 부리면 꾸짖기도 했다. 하녀인 에밀리는 철부지 덜렁이라 메리앤은 에밀 리가 나를 돌보았ㅇ면 내가 어찌 되었을지 알 수 없다고 했다. (중략)
"도련님이 내 조카는 아니지만 나라도 그런 사람들과 어울리게 가만두지 않았을 거예요! 도련님한테 자전거를 같이 타자고 했다니 원. 하여간 사람들이 별짓을 다하지."
- P86

나는 조지 경을 알고 있었다. 이름은 조지 켐프였고, ‘경’이라는 말은 배포가 워낙 커서 붙은 별명이었다. 그는 이 고장 석탄 상인이었다. 부동산업에도 손을 댔고, 석탄선 한두 척에 지분을 가지고 있었다. 자기 땅에 지은 새 벽돌집에 살면서 자기 마차를 몰았다. 그는 뾰족한 턱수염을 기른 투실투실한 남자였다. 발그레한 혈색에 파란 눈은 부리부리했다. 돌이켜 보면 옛날 네덜란드 그림에 흔히 보이는 붉은 얼굴의 유쾌한 상인과 흡사했다. 복장은 언제나 화려하기 그지없었다. - P90

마을 의사의 아내가 숙모를 만나러 왔을 때의 일이 기억난다. 에밀 리가 들어와서는 숙부에게 조지 켐프 씨가 와서 숙부를 뵙기를 청한다고 말했다.
"하지만 현관문 벨 소리가 났는데, 에밀리." 숙모가 말했다.
"네, 그 사람이 현관문으로 왔어요."
순간 분위기가 어색해졌다. 모두들 뜻밖의 사건에 어찌 대처해야 할지 몰라 난색이었다. 누구는 현관문으로 오고 누구는 옆문으로 오고 누구는 뒷문으로 와야 하는지 아는 에밀리마저도 조금 당황한 표정이었다. 심성이 착한 숙모는 누군가 잘못된 위치에 서는 일이 벌어져 진심으로 난감했던 것 같다. 하지만 의사의 아내는 기가 차다는 듯 살짝 콧방귀를 꼈다. 마침내 숙부가 정신을 차리고 마음을 다잡았다.
"내 서재로 안내해, 에밀리." 숙부가 말했다. "아를 마시는 대로 가볼 테니까." - P91

모두들 그랬듯 나도 조지 경을 조롱하고 깔보았다는 것을 덧붙여 둔다. 그가 거리에서 나를 붙잡아 세우고 내 이름을 불러 대면서 우리 사이에 신분의 차이가 없는 양 이야기할 때면 화가 났다. 그는 내게 아들들이 나랑 같은 또래라면서 같이 크리켓을 해 보라는 말도 했다. 하지만 그의 아들들은 하버샴의 중등학교에 다녔고 당연히 나는 그 아이들과 아무런 관련이 없었다. - P92

메리앤의 이야기는 충격적이면서도 흥미진진했지만 도무지 믿기지가 않았다. 소설을 너무 읽은 데다 사랑을 알기에는 학교 공부가 너무 많아서 사랑이란 그저 젊은 사람들이나 하는 것으로 막연히 알고 있었는데, 턱수염이 난 데다 내 또래의 아들들을 둔 남자가 그런 감정을 느낄 수 있다니 상상조차 못한 일이었다. 그런 것은 결혼하면 끝나는 게 아니던가. 서른이 넘은 사람들이 사랑을 한다니 속이 좀 울렁거렸다.
"그래도 두 사람이 실제로 무얼 한 건 아니지?" 나는 메리앤에게 물었다.
"듣자 하니 그 로지 갠이라는 여자는 하지 않은 게 거의 없는 모양이던데요. 그리고 상대는 조지 경만이 아니었어요." - P92

"그런데 왜 그 여자는 아기가 안 생겼지?"
내가 읽은 소설에서는 예쁜 여자가 어리석은 짓에 휩쓸리면 반드시 아기를 낳았다. 원인이 되는 장면은 애매모호하게 설명되었고 가끔은 숨김표로 암시되었지만 그 결과는 불가피했다.
"처신을 잘했다기보다 운이 좋았다고 봐야죠." 메리앤은 그렇게 말하고는 퍼뜩 정신을 차리고 바쁘게 접시를 닦던 손길을 멈추었다. "우리 도련님이 필요 이상으로 많은 걸 아네."
"당연히 알지." 나는 거드름을 피우며 말했다. "참 나, 나도 이제 다 컸어. 왜 이래?" - P93

마흔 살에 정치인이었던 사람이 일흔 살이 되면 정치 거물이 된다. 너무 늙어 점원도 정원사도 즉결 심판 치안 판사도 못 하는 나이가 되어서야 한 나라를 다스릴 만큼 성숙해진다. 그럴 만도 한 것이 예로부터 노인들은 그들이 젊은이들보다 더 현명하다고 젊은이들을 끊임없이 세뇌했고, 젊은이들은 그것이 허튼소리임을 깨달을 즈음엔 이미 늙은이가 되어 그 기만적 행태에 편승해 이익을 봐 왔다. 또한 정치인들의 세계에 발을 들여놓은 사람치고 국가를 다스리는 데 별다른 지능이 요구되지 않는다는 것을 모를 수가 없다. (결과만 봐도 판단이 가능하다.) 하지만 작가들은 왜 나이가 들어 갈수록 존경을 받아야 하는지 나는 오랫동안 의구심을 품어 왔다. - P143

만약 이십 년째 주목할 만한 작품을 쓰지 못하는 노작가라면 경쟁자로서 젊은 작가에게 아무런 위협이 되지 못하므로 그의 가치를 극찬해도 괜찮다는 점에서 합리적 찬사라는 생각을 한 적은 있다. 알다시피 두렵지 않은 경쟁자를 칭찬하는 것은 만만찮은 경쟁자를 견제하는 좋은 방법이다. 그러나 이는 인간성을 너무 폄하하는 시각일 수 있고, 싸구려 냉소주의라는 비판을 자초하고 싶은 생각은 없다. 곰곰이 숙고한 끝에 내린 결론은 이렇다. - P144

평균 나이를 넘긴 노작가가 노년에 보편적으로 칭송받는 진짜 이유는 지식인들이 서른 살이 넘으면 글을 전혀 읽지 않기 때문이다. 나이가 들수록 젊었을 때 읽은 책들은 화려한 빛을 발하기 마련이니 그 책을 쓴 저자의 가치는 해마다 높아진다. 물론 계속 글을 쓰고 대중의 시선 안에 머무는 노작가여야 한다. 걸작을 한두 편 쓴 것으로 충분하다고 생각해서는 안 된다. 걸작들을 떠받칠 받침대로 변변찮은 작품을 사오십 편쯤 펴내야 한다. 시간이 걸리는 일이다. 매력으로 독자를 사로잡을 수 없다면 무게로 독자를 압도하겠다는 각오로 대량 생산을 해야 한다. 내 생각대로 긴 수명이 천재성이라면 당대에 에드워드 드리필드만큼 긴 수명을 오래도록 뚜렷하게 누린 작가는 드물다. - P144

"그 사람의 어떤 점이 마음에 들었어요?"
로지의 시선이 벽에 걸린 사진으로 흘러갔다. 무슨 이유에서인지 그동안 내가 못 보고 지나친 사진이었다. 크게 확대된 조지 경의 사진이 조각된 도금 액자에 들어 있었다. (중략) 풍성한 콧수염은 끝에 왁스를 발랐고, 능청스러운 눈빛으로 으스대며 활보하는 걸음새였다. 한껏 차려입고 더비 경마장에 가는 펍 주인 같았다.
"그건 말이지." 로지가 말했다. "그이는 언제나 완벽한 신사였거든." - P29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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팩트풀니스 (50만 부 뉴에디션) - 우리가 세상을 오해하는 10가지 이유와 세상이 생각보다 괜찮은 이유
한스 로슬링.올라 로슬링.안나 로슬링 뢴룬드 지음, 이창신 옮김 / 김영사 / 2024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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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들은 세계가 점점 나빠진다고 말하면서 실제로 무슨 생각을 할까? 내가 보기에는 생각을 아예 ‘안 하는’ 것 같다. 사람들은 생각이 아닌 느낌을 말할 뿐이다. 내가 이렇게 명확하고 멋진 자료를 여럿 제시해도 세계가 점점 좋아진다는 데 동의하기가 여전히 불편하게 ‘느껴진다’면 아마도 거대한 문제가 아직 사라지지 않았다는 걸 알기 때문일 것이다. 세계가 점점 좋아진다는 말이 마치 만사 오케이라거나 심각한 문제가 없는 척 외면하라는 말처럼 ‘느껴지고’, 그러다 보니 그런 말이 터무니없어 보이고 스트레스가 되기 때문이 아닐까 싶다. (중략) 그러나 이미 이룩한 발전을 외면하는 것도 마찬가지로 터무니없고 스트레스다. - P99

유엔의 릴리프웹ReliefWeb은 재해 지역 지원 사업에서 세계의 조정자 역할을 한다. 앞선 세대의 재해 피해자들은 그저 상상만 하던 일이다. 비용은 4단계 납세자들이 충당한다. 우리가 자부심을 느길 만한 일이다. 우리 인간은 마침내 자연재해에서 스스로를 보호할 방법을 찾았다. 그러나 자연재해 사망자가 급격히 감소하는 추세 역시 우리는 잘 알지 못한다. (중략) 릴리프웹에 비용을 대는 4단계 사람들은 안타깝게도 우리가 자연재해 추셀ㄹ 질문한 바로 그들이다. 이들 중 91%가 자신이 비용을 대는 사업이 성공한 줄 모르고 있었다. 재해가 발생할 때마다 언론은 끊임없이 최악의 사태인 양 보도하기 때문이다. - P156

카메라가 잿더미에서 끄집어낸 아이의 시체를 훑을 때 나는 두려움과 비통함에 지적 능력이 마비된다. 그 순간만큼은 세상의 어떤 도표도 내 감정에 영향을 미칠 수 없고, 어떤 진실도 내게 위안을 주지 못한다. 그 순간에 세상이 더 좋아진다고 주장한다면, 피해자와 그 가족의 참담함을 하찮게 여기는 것이 되기 쉬워 대단히 비윤리적이다. 이런 상황에서는 큰 그림을 잊고 모든 수단을 동원해 그들을 도와야 한다. 거창한 진실과 큰 그림은 그 위험이 지나갈 때까지 기다려야 한다. 하지만 그 후에는 다시 과감하게 사실에 근거해 세계를 바라봐야 한다. 뇌를 식히고 수치를 비교하면서 우리 자원이 미래의 고통을 멈추는 데 효과적으로 쓰이는지 점검해야 한다. 자원 배분의 우선순위를 정할 때 공포를 기준으로 삼아서는 안 된다. 우리가 두려워하는 위험이 지금은 국제적 공조 덕에 우리에게 가장 적은 해를 끼치는 경우도 많기 때문이다. - P157

세계는 실제보다 더 무서워 보인다. 우리는 주목 필터나 언론에 걸러진 무서운 것을 보고 듣기 때문이다. 어떤 대상의 위험성은 우리가 느끼는 두려움이 아니라, 실제 위험과 그것에 노출되는 정도를 합쳐 결정한다. 두려움을 느끼면 세상이 다르게 보인다. 공포가 진정될 때까지 가급적 결정을 유보하라. - P174

1, 2단계 나라에서 아이들의 목숨을 살리는 것은 의사나 병실 침대가 아니다. 병실 침대와 의사는 수를 세기 쉽고 정치인은 병원 개원식을 무척 좋아하지만, 아이들의 생존율을 높이는 거의 유일한 방법은 병원 밖에서 해당 지역 간호사, 산파, 교육받은 부모 등이 예방 조치를 취하는 것이다. 특히 엄마의 역할이 중요하다. 데이터를 보면 세계적으로 아동 생존율 증가의 절반은 엄마들의 탈문맹에서 나왔다. 지금은 아동 생존율이 더 높아졌다. 처음부터 아예 병에 걸리지 않기 때문이다. 훈련받은 산파가 여성의 임신과 출산을 돕고, 간호사는 아기에게 면역력을 심어준다. 아기는 잘 먹고, 부모는 아기를 늘 따뜻하고 청결하게 관리한다. 그리고 아기 주변 사람들은 손을 씻고, 엄마는 약통에 붙은 지시 사항을 읽을 줄 알게 되었다. - P184

니엠은 나를 태우고 도시 중앙에 있는 공원으로 갔다. 거기엔 황동 판이 붙은 1m 정도 높이의 돌이 있었다. 나는 농담이겠지 싶었다. 서양에서는 베트남전쟁 반대 시위가 활동가 세대를 하나로 통합하는 역할을 할 정도였다. 내가 담요와 의료 기구를 보낸 것도 거기에 자극 받았기 때문이었다. 이 쟁에서 150만 명 넘는 베트남인과 5만8000명 넘는 미국인이 목숨을 잃었다. 도시가 그런 대재앙을 기억하는 방식이 고작 이런 식이라니! 내가 실망하는 기색을 보이자 니엠은 나를 태우고 더 큰 비가 있는 곳으로 향했다. 3.5m가 넘는 대리석 비로, 프랑스 식민 통치에서 독립한 것을 기념하는 것이었다. 나는 여전히 시큰둥했다.(아래에 계속) - P187

(위에서 계속)니엠은 내게 비다운 비를 볼 준비가 되었느냐고 물었다. 그리고 나를 태우고 조금 더 가더니 창밖을 가리켰다. 나무 꼭대기 너머로 금색으로 덮인 거대한 돌탑이 보였다. 100m 가까이 되어 보였다. "여기가 전쟁 영웅을 추모하는 곳이에요. 멋지죠?" 베트남이 중국을 상대로 싸운 전쟁을 기리는 비였다. 중국과의 전쟁은 싸움과 휴전을 반복하며 2000년 동안 지속되었다. 프랑스가 점령한 기간은 200년이었다. 대미항전은 고작 20년 지속되었다. 비의 크기는 그런 기간을 완벽하게 반영했다. 나는 여러 개의 비를 비교한 뒤에야 비로소 지금 베트남 사람들에게 베트남전쟁은 상대적으로 의미가 작다는 걸 이해할 수 있었다. - P187

"아이한테 망치를 주면 모든 것이 못으로 보인다"는 말이 있다. 가치 있는 전문성을 지닌 사람은 그 전문성을 활용할 곳을 찾고 싶어한다. 그래서 전문가는 더러 어렵게 얻은 지식과 기술을 본래의 활용 영역을 넘어선 곳에도 적용할 방법을 고민한다. - P273

경제와 사회가 크게 발전한 나라라고 해서 다 민주국가는 아니다. (산유국도 아닌) 한국은 어느 나라보다 빨리 1단계에서 3단계로 넘어갔고, 그 시기는 줄곧 군부 독재가 이어졌다. 2012-2016년에 빠른 경제성장을 이룬 나라 열 곳 중 아홉 곳은 민주주의 수준이 낮았다. 경제성장과 보건 의료 발전에 민주주의가 반드시 필요하다고 주장한다면, 그와 모순되는 현실에 부딪히기 쉽다. 따라서 우리가 좋아하는 다른 어떤 목적을 달성하는 데 민주주의가 우월한 수단이라고 주장하기보다 민주주의 자체를 목적으로 지지하는 편이 바람직하다. - P286

단순한 생각과 단순한 해결책을 조심하라. 역사는 단순한 유토피아적 시각으로 끔찍한 행동을 정당화한 사람으로 가득하다. 복잡함을 끌어안아라. 여러 생각을 섞고 절충하라. 문제는 하나씩 사안별로 해결하라. - P288

세계의 중요한 문제를 이해하려면 개인에게 죄를 추궁하기보다 시스템에 주목해야 할 때가 많다. 비난 본능은 일이 잘 풀릴 때도 발동되어 칭찬 역시 비난만큼 쉽게 나온다. 일이 잘 풀릴 때 우리는 아주 쉽게 그 공을 개인이나 단순한 원인으로 돌리는데, 이때도 대개는 문제가 훨씬 복잡하다. 세계를 정말로 바꾸고 싶다면, 세계를 이해해야지 비난 본능에 좌우돼서는 안 된다. - P295

그리고 무엇보다 우리 아이들에게 겸손과 호기심을 가르쳐야 한다. 여기서 겸손이란 본능으로 사실을 올바르게 파악하기가 얼마나 어려운지 아는 것이고, 지식의 한계를 솔직히 인정하는 것이다. 아울러 "모른다"고 말하는 걸 꺼리지 않는 것이자, 새로운 사실을 발견했을 때 기존 의견을 기꺼이 바꾸는 것이다. 겸손하면 모든 것에 대해 내 견해가 있어야 한다는 압박감도 없고, 항상 내 견해를 옹호할 준비를 해야 할 필요도 없어 마음이 편하다. - P357

호기심이란 새로운 정보를 마다하지 않고 적극 받아들이는 자세를 말한다. 아울러 내 세계관에 맞지 않는 사실을 끌어안고 그 것이 내포한 의미를 이해하려고 노력하는 것이다. 실수를 부끄러워하기보다 실수에서 호기심을 이끌어내자. ‘내가 그 사실을 어쩌면 이렇게 잘못 알 수 있을까? 그렇다면 여기서 무엇을 배울 수 있을까? 사람들이 멍청이가 아니고서야 왜 그런 해결책을 썼을까?‘ 호기심을 품으면 늘 재미있는 사실을 발견할 수 있어 꽤 흥미진진하다. - P357

사실에 근거한 경험 법칙
1. 간극. 다수를 보라.
2. 부정. 나쁜 소식을 예상하라.
3. 직선. 선은 굽을 수도 있다.
4. 공포. 위험성을 계산하라.
5. 크기. 비율을 고려하라.
6. 일반화. 범주에 의문을 품어라.
7. 운명. 느린 변화도 변화다.
8. 단일 관점. 도구 상자를 챙겨라.
9. 비난. 손가락질을 자제하라.
10. 다급함. 하나씩 차근차근 행동하라. - P36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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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너지지 않기 위하여 - 어느 포로수용소에서의 프루스트 강의
유제프 차프스키 지음, 류재화 옮김 / 밤의책 / 2021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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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프스키가 '게르망트 쪽'부터 작품을 읽기 시작했다는 이야기가 반가웠다. 도서관에 있는 앞의 권들이 대출 중이어서 나도 거기서부터 시작했었다. 시작한 부분이 흥미로웠던 덕분에 긴 작품을 끝까지 잘 읽을 수 있었던 것 같다. 강의 내용을 읽어가는 동안 오래 전에 읽었던 작품의 내용들이 생각나면서 중요한 포인트들이 깔끔하게 정리되는 것을 느꼈다. 배경을 생각하면 더욱 감동적인 강의.

우리는 1939년 10월부터 1940년 봄까지 하리코프 근처, 10-15 헥타르에 이르는 스타로벨스크 포로수용소에 수용되어 있던 폴란드 장교들이었다. 우리는 지적 노동을 해서라도 무너지지 않아야 했다. 우리를 잠식하는 쇠약과 불안을 극복하고 뇌에 녹이 스는 것을 막아야 했다. 그리하여 우리 중 몇 사람이 군사학과 역사학, 문학 강의를 시작했다. 그런데 이 강의들이 당시 윗선에 있던 이들에게는 반혁명적인 것으로 비쳤는지, 강의를 기획했던 몇몇 이는 우리가 모르는 어딘가로 보내졌다. 그러나 강의는 중단되지 않았고, 더욱 은밀하고 정교한 모의가 이루어졌다. - P10

1940년 4월, 스타로벨스크 포로수용소에 수용돼 있던 이들이 몇 개의 무리로 나뉘어 북쪽으로 이송되었다. 같은 시기, 총 수용 인원이 1만 5000명에 이르는 두 대형 수용소인 코젤스크와 오스타시코프의 포로수용소가 모두 비워졌다. 결국 그 지역에 남은 포로는 1940-1941년에 볼로그다 근처 그라조베츠 수용소에 있던 400여 명의 장교와 군인들뿐이었다. 우리는 처음 스타로벨스크 수용소에 수용된 4000여 명 중 마지막까지 살아남은 79명인 셈이었다. 스타로벨스크의 다른 동료들은 흔적도 없이 사라졌다. - P10

여러 차례의 탄원 끝에 우리가 공식적으로 강의할 수 있게 허락받은 장소는 식당뿐이었다. 여기에 조건이 붙었다. 사전 검열을 받듯이 강의록을 미리 보여줘야 한다는 것이었다. 작은 방이 동료 포로들로 가득찼고, 강사들은 각자 기억하고 있는 것을 그들에게 최대한 들려주었다. (중략) 에를리히 박사는 책의 역사를 강의했다. (중략) 영국의 역사와 여러 민족의 이주 역사에 대해서는 (중략) 카밀 칸타크 수사가 강의했다. 건축의 역사는 바르샤바 공고대학의 시엔느니츠키 교수가 맡았다. (중략) 오스트로프스키 중위는 남아메리카에 대한 강의를 맡아주었다. 그렇다면 나는? 나는 폴란드의 회화 및 프랑스 문학을 강의하기로 했다. - P11

영하 45도까지 떨어지는 추위 속 노역으로 완전히 녹초가 된 채 마르크스와 엥겔스, 레닌의 초상화 밑에 다닥다닥 붙어 앉아, 당시 우리의 현실과는 너무나 동떨어진 주제에 대한 강의를 열중해 듣던 동료들의 모습이 지금도 눈에 선하다. 당시 나는 감동에 젖어 프루스트를 생각하곤 했다. 코르크 벽 탓에 난방이 조금 과하게 된 방에서 죽은 그가, 혹독한 추위 속에서 종일 일하고 돌아온 폴란드 포로들이 게르망트 공작 부인 이야기나 베르고트의 죽음, 또 내가 기억할 수 있는 한 그대로 전해주고자 했던 그 소중하고 아름다운 내면 묘사를 그토록 집중해서 듣고 있는 것을 본다면 얼마나 놀라고 감격할까, 하고 말이다. - P12

이 에세이는 소련에서 보낸 몇 해 동안 우리가 살아남을 수 있게 도와준 프랑스 예술에 바치는, 내 소박한 감사의 공물(貢物)이다. 1944년, 유제프 차프스키. - P13

나는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 중 한 권을 먼저 읽기 시작했다. (아마 ‘게르망트 쪽’이었던 것 같다.) 사교계에 입문하는 장면을 길게 묘사한 구절이 있었는데, 몇백 페이지는 되었던 것으로 기억한다. 나의 프랑스어 실력은 그렇게 대단한 편은 못 되어서 이 작품의 정수를 맛보거나 이전에는 본 적 없는 특유의 형식을 다 이해할 수는 없었다. 그럼에도 뭔가가 일어나고 있다는 것만은 알 수 있었다. (중략) 무한히 계속되는 지엽적 요소들로 이루어진 어마어마한 문장들, 다양하고 서로 동떨어져 전혀 예측할 수 없는 조합들, 얽히고설킨 주제들, 그리고 이 모든 것들을 어떤 서열이나 체계없이 다루는 기묘한 방식들, 극도의 정밀함과 풍요로움... 나는 마침내 이런 스타일이 갖는 가치를 감지하기에 이르렀다. - P40

(사실주의의 마지막 단계라 할) 자연주의와 그 대척점에 있는 상징주의는 19세기 말에 무척 풍부하고도 미묘하며 다양한 예술운동을 만들어냈다. 둘은 서로 부딪고 얽히면서 깊이 상호 작용했디만, 교과서에는 이런 흐름이 너무 제한적인 분류로 도식화되어 있을 뿐이다. 말라르메는 자연주의의 창시자 가운데 한 사람인 공쿠르 형제와 평생을 교유했으며, 졸라와도 가까이 지냈다. (중략) 화가 드가는 말라르메와 내밀하게 사귄 친구였다. 이른바 양립 불가능한 것들이 서로 얽혀서 짜여 있던 당시 예술의 형식을 훨씬 고양된 형태로 표현한 것이 바로 드가였다. 드가는 들라크루아와 앵그르를 함께 좋아하고 찬미했다. - P44

프루스트의 관점은 이런 19세기 말의 경향에서 나온 것이다. 19세기 말은 프랑스 예술이 최고의 순간을 맞았던 때로, 수많은 천재적 작가들을 배출한 시기다. 시대를 다 찢어발길 것처럼 뿌리 깊은 모순과 대치가 만연한 가운데 예술은 이를 모두 극복하고 마침내 어떤 종합의 단계에 이르렀다. ‘추상성’과 ‘실재 세계를 즉각적으로 받아들이는 정확한 감각’이 하나가 된 것이다. 그런데 이러한 ‘종합’은 추상적이고 지적인 요소들로 만들어내는 개념에서 나오는 것이 아니라, 한 분석가의 매우 사적인, 못내 예민한 경험으로부터 비롯되는 것이다. - P46

문학에서는 상징주의로 대표되고 회화에서는 고갱으로 대표되는 非자연주의 운동은 그 충만하면서도 짧은 시기를 끝내고 1907년에 마침내 입체주의에 이른다. 다시 말해, 현실에 대한 연구는 더 이상 이루어지지 않는 예술이 탄생한 것이다. (중략) 입체주의는 이탈리에서 일어난 미래주의와 충돌했다. (중략) 하지만 개인적인 불행, 또는 강도 높은 노동, 아니 그의 병 탓에, 아니 그 덕분에 프루스트는 자신만의 세계에 유폐되어 있었다. 자기 작품에만 빠져 있던 프루스트는 당시의 예술 경향에서 완전히 벗어나 독립적인 예술 세계를 추구할 수 있었다. - P47

세계대전 이후에는 입체주의와 미래주의, 또는 그로부터 파생한 사조들이 세력을 만방에 떨쳤다. (중략) 그런 그들이 보기에 프루스트의 작품은 첫눈에도 자기들과는 전혀 다른 세계에서 온 것 같았다. 과장과 허식으로 가득했고, 옛 부르주아의 분위기를 풍겼으며, 낡아빠진 스노비즘으로 가득 차 있었다. 전쟁 이후 파리는 물론 유럽 전역에 쇄도한 ‘야만족’에게 프루스트는 당황스럽고 받아들이기 힘든, 기묘한 무엇이었다. - P47

프루스트는 젊어서부터 파리에서 가장 우아하다고 알려진 유명 살롱에 출입했다. 알레비 태생의 스트라우스 부인은 당시 프랑스 상류층 부인들 가운데 가장 지적인 여성이라 할 만했는데, 그녀는 프루스트를 ‘나의 작은 시동’이라고 불렀다. 당시 검고 아름다운 눈을 가진 열여덟 살 소년이었던 프루스트는 격주마다 열리는 이 모임에 참석해 항상 그녀의 옆자리에 앉았다. 나중에 그는 카이야베 부인과 아나톨 프랑스가 연 살롱의 단골이 되기도 했다. 프루스트는 카이야베 부인의 살롱에서 당시 정치계와 문학계 인사들을 여럿 만났다. 또한 포부르생제르맹의 가장 은밀하고 폐쇄적인 사교계에도 발을 들여놓았다. - P50

프루스트의 어머니는 1904-1905년 무렵에 사망했다. 프루스트가 최초로 겪은 큰 불행이자, 아픈 상처였다. 사교계에 드나들고, 예민한 데다 병약하며, 모든 게 미완이고 카오스 같았던 프루스트의 삶은 그의 글쓰기를 더 힘들게 만들었고 병세 또한 악화시켰다. (중략) 프루스트는 문학에 자신을 붙들어두기 위해 어마어마한 글쓰기 노동을 시작한다.
- P54

이와 유사한 여러 묘사들 속에서(인용자 주 – 할머니의 장례식 장면) 이 위대한 작가의 ‘괴물성’이 진가를 드러낸다. 정확하고 냉정하게 분석하는 능력. 아마 그의 인생에서 가장 비극적인 순간이었을 텐데도 세세한 것들까지 극적이고 유머러스하게 묘사하는 가공할 능력. 나는 죽어가는 어머니의 침상에서 온몸이 부서지는 고통을 느끼면서도 그 모든 세세한 것, 그 모든 눈물 그리고 주변인들의 우스꽝스러운 모습을 비롯한 그 모든 결점을 다 보았을 프루스트를 상상해 본다. - P93

귀족 세계에 대한 그의 내밀한 지식에 감탄하다 보면 자연스레 톨스토이가 또다시 생각난다. 톨시토이도 ‘전쟁과 평화’나 ‘안나 카레니나’에서 여러 페이지에 걸쳐 통찰력 있는 묘사를 하는데, 프루스트의 묘사보다는 조금 덜 사실적이다. 프루스트는 실명을 쓴 실제 역사 인물 마틸드 공주부터 시작하여, 게르망트 공작 부부와 공작의 동생 샤를뤼스 남작 등을 중심으로 ‘게르망트 부부라는 태양’ 주변을 선회하는 궤도의 2열 혹은 3열에 위치한 주요 인물들, 그리고 그들의 부모와 친구들 이야기까지 아우르는 이른바 ‘귀족들의 갤러리’를 만들어 속물과 벼락부자와 여러 어리석은 자들이 가진 무한히 미묘한 면들을 속속들이 그려낸다. - P95

프루스트는 특유의 대단한 섬세함으로, 게르망트 공작 부부의 젊은 군인 조카가 지닌 자질을 짚어낸다. 음악과 문학에 광적으로 몰두하던 이 조카는 본능적인 충동 속에서도 고상한 성격을 간직한 채, 전장에서 영웅적으로 전사한다. - P100

코르크로 벽을 다 막은 방 안에서 그는 ‘살아 죽은’ 채로 묻힌다. (중략) 죽을 때까지 자신의 ‘절대’인 예술에 복무하기 위해서다. 그래서 마지막 권인 ‘되찾은 시간’은 기쁨의 눈물들로 뒤범벅되어 있으며, 이는 단 한 알의 소중한 진주를 사기 위해 전 재산을 팔아치운 사람이 부르는 승전가다. 하루살이처럼 덧없는 모든 것, 찢어지는 듯한 고통, 세상의 모든 기쁨과 청춘과 명성 그리고 에로티시즘의 공허함이 창조자의 기쁨과 비교된다. 한 문장 한 문장 직조하며 매 페이지를 만지고 또 만지는 이 존재는 결코 전적으로 닿을 수 없는, 닿는 것이 영영 불가능한 무언가를 찾아가고 있을 뿐이다. - P111

만일 우리가 삶과 죽음에 대한 프루스트의 마지막 생각을 알고 싶다면, 다시 말해 그토록 긴 경험이 한 존재 안에 축적되면서 생긴 생각을 알고 싶다면, 죽음이 실제로 그에게 다가왔을 때 쓴 글을 보면 될 것이다. 작중인물인 베르고트가 중요한 단서일 수 있다. - P120

스완과 베르고트가 모두 사랑한 네덜란드의 위대한 화가 베르메르의 전시회 기간 중 베르고트는 죽음을 맞는다. 프루스트가 죽기 몇 년 전에 그의 동료이자 친구인 장루이 보두아예가 네덜란드 회화전에 그를 데려갔다는 사실을 나는 우연히 알게 되었다. 프루스트는 그곳을 찾았다가 심장에 심각한 이상이 생겼음을 감지한다. - P123

베르고트가 마지막으로 작가 의식의 시험을 치르는 곳이 바료 여기다. "이 작은 황색 벽면, 이 작은 황색 벽면. 베르고트는 낮은 소리로 중얼거렸다. 내 책을 바로 이렇게 썼어야 하는데. 같은 문장을 다시 쓰고, 다시 쓰고, 그렇게 더 풍부하게 만들었어야 하는데. 이 벽면처럼 말이야. 이렇게 거듭 덧칠을 해서 말이야. 내 문장은 너무 건조해. 너무나 작업이 덜 됐어." - P124

열병에 가까운 그 어마어마한 노력이 결국에는 스스로의 죽음을 재촉하게 말 것이라는 걸 프루스트 역시 모르지는 않았을 테다. 그러나 그는 그러겠다고 결심했고, 더는 건강에 신경 쓰지 않았으며, 그리하여 죽음에 초연하게 되었다. 그렇게 무리를 했으니, 작업이 한창인 가운데 죽음이 찾아온 것도 당연한 일이었다. 어느 날 아침에 그는 침대에서 죽은 채로 발견되었다. 머리맡 탁자 위에는 약병이 쓰러져 있고 거기서 흘러나온 액체가 작은 종잇조각 하나를 검게 물들였는데, 전날 밤 쓴 것이 분명한 그 메묘에는 특유의 신경질적인 가는 글씨체로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의 부차적 등장인물일지 모르는 이름 하나가 적혀 있었다. 그 이름은 ‘포르슈빌’이었다. - P1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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