면도날 ㅣ 민음사 세계문학전집 214
서머싯 몸 지음, 안진환 옮김 / 민음사 / 2009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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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머릿속 세계사에서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와 '길 위에서' 사이에 있던 간극을 메워준 책. 1차대전 후 벨 에포크가 종말을 고한 프랑스와 경제 공황으로 신분의 격차가 무너진 미국을 오가며, 자본 계급 출신 미국인들의 다양한 인생 행로를 보여준다. 노년에 이른 작가의 날카로운 인간 관찰과 세련된 유머 감각이 빛을 발한다. 최근에 서머싯 몸을 시리즈로 읽고 있는데, 이 책에 나온 엘리엇 템플턴이 제일 기억에 남는다. 

젊은 시절 유럽에 처음 왔을 때는 소개장을 들고 명사들을 찾아다니며 발판을 만들기 시작했고, 이후 그러한 발판은 프랑스와 영국의 가난한 귀족 집안들과 사업 관계를 맺으면서 더욱 튼튼해져 갔다. 그가 소개장을 들고 찾아간 상류층 미국계 부인들은 그의 출신을 특히 마음에 들어 했다. 버지니아 주의 오래된 가문 출신인 데다 어머니 쪽 조상이 미국 독립선언서에 서명한 인물 중 하나였기 때문이다. 그는 잘생긴 외모에 성격도 쾌활하며, 춤도 잘 추고 사격 솜씨도 훌륭하고 테니스 실력도 뛰어났다. (중략) 싹싹하고 사교적인 면에서 그를 능가할 사람은 없었다. 갑자기 파티에 못 온다는 손님이 생겨서 파티 주최자가 마지막 순간에 그를 초대하더라도 그는 전혀 개의치 않았다. 따분하기 그지없는 늙은 부인 옆에 앉혀 놓아도 붙임성 있게 굴며 즐거움을 선사했다. - P16

물론 그는 속물이었다. 대단한 속물, 부끄러움을 모르는 속물이었다. 그는 자신이 원하는 파티에 초대받기 위해서라면 또는 성질은 고약하나 명성이 자자한 귀부인과 사귀기 위해서라면 공공연한 모욕도 참아냈고, 딱지를 맞아도 개의치 않았으며, 어떤 무례함도 감수했다. (중략) 마치 진귀한 야생란을 찾기 위해서 홍수와 지진과 열병과 적대적인 원주민의 위험도 기꺼이 감수하는 식물학자 같았다. 1914년에 일어난 전쟁은 그에게 결정적인 기회를 주었다. 전쟁이 발발하자 그는 야전 의무대에 들어가 처음에는 플랑드르에서, 나중에는 아르곤에서 복무했다. 1년 후에는 옷에 붉은색 훈장을 달고 돌아와 파리의 적십자사에서 한자리를 차지했다. (중략) 그는 파리에 있는 회원제 클럽 가운데 최고급 클럽 두 군데의 회원이었다. 그는 프랑스 상류층 부인들 사이에서 ‘스 셰르 엘리엇(경애하는 엘리엇)’으로 통했다. 마침내 목적을 이룬 것이다. - P17

"미국 사람들은 너무 경솔하게 소개장을 써요. 소개장을 들고 찾아온 사람들을 만나기가 싫다는 뜻은 아닙니다. 하지만 내 친구들까지 귀찮게 만들 필요는 없잖습니까."
그는 그들에게 커다란 장미 바구니나 초콜릿 상자를 보내는 것으로 보상을 하기도 했지만, 때로는 그것으로 부족한 경우도 있었다. 바로 그럴 때 나한테 파티에 참석해 달라고 부탁했다. 그럴 때 보면 나한테 투덜댔던 사실은 까맣게 잊은 사람 같았다. 그는 내가 우쭐해질 만한 듣기 좋은 말을 초대장에 썼다.
"다들 당신을 무척 뵙고 싶어 한답니다. 모모 부인은 굉장히 교양이 높으신 분으로, 당신 작품을 하나도 빼놓지 않고 읽으셨다는군요."
모모 부인을 만나 보면 그녀는 내 작품 ‘페린 씨와 트레일 씨’를 매우 감명 깊게 읽었다고 말했고 내 희곡 ‘연체동물’에 찬사를 보냈다. 앞의 것은 휴 월폴의 작품이고 뒤의 것은 허버트 헨리 데이비스의 작품이다. - P20

신부는 지혜로움과 인자함이 담긴 태도로 종교적 신념에 대해 이야기했다. 그는 관대하고 아량이 넓으며 현대적인 견해를 갖고 있었다. 또 가톨릭교회가 마치 교양 있고 점잖은 사람이라면 당연히 가입해야 하는 상류사회 클럽인 것처럼 이야기했다. 그로부터 6개월 후 엘리엇은 가톨릭에 귀의했다. 가톨릭으로 개종하고 또 성당의 자선 활동에 아낌없이 기부하면서, 그의 앞에는 이전까지 굳게 닫혀 있던 많은 문들이 열렸다. 그가 집안의 신앙을 버리게 된 것에는 다른 이유도 있었을지 모르지만, 어쨌거나 일단 개종한 다음에는 독실한 신앙심을 보였다. 그는 상류층 인사들이 다니는 교회 미사에 일요일마다 참석했고, 정기적으로 신부에게 고해했으며, 정기적으로 로마도 방문했다. 어느 정도 시간이 흐르자 그는 교황의 수행인에 임명됨으로써 그러한 열성에 대해 보상받았다. - P24

"나는 별로 영향력이 없습니다. 그 애는 어렸을 적부터 늘 자기 마음대로였어요." (중략)
벌써 술을 상당히 마신 넬슨 박사는 약간 언짢은 표정으로 그녀를 쳐다보았다. 붉은 얼굴이 더 붉어져 있었다. "저는 대단히 바쁘게 지냈습니다. 제게도 해야 할 일이 있으니까요. 그 애가 마땅히 갈 곳도 없고, 또 애 아버지가 제 친구였기 때문에 맡은 겁니다. 다루기 힘든 아이였어요."
그러자 브래들리 부인이 톡 쏘듯이 말했다.
"어떻게 그렇게 말씀하실 수가 있어요? 마음씨는 아주 좋은 아이예요."
"말다툼을 하지는 않지만 자기 하고 싶은 대로 다 하는 아이를 부인이라면 어떻게 다루시겠습니까? 무섭게 화를 내면, 그저 죄송하다는 말만 해서 제 속을 뒤집어 놓는단 말입니다. 만약 내 자식이었으면 아마 두들겨 패 줬을 겁니다. 하지만 하늘 아래 혈육이라곤 없는 어린애한테 어떻게 손찌검을 하겠습니까. 잘 보살펴 줄 거라고 친구가 믿고 맡긴 아들인데 말입니다." - P49

브래들리 부인은 쓴웃음을 지었다.
"성적 방종을 가능하게 해 주는 갖가지 장소가 마련되어 있고 결혼을 위한 길에는 장애물뿐인 나라에 살고 있다는 게, 오빠는 퍽 마음에 들 거예요."
"그럼 물론이지. 결혼은 가정의 무사함과 나라의 안정이 달린 중요한 문제야. 하지만 결혼이라는 것도, 혼외 관계가 용인될 뿐만 아니라 정당하게 인정되어야만 그 권위가 유지될수 있는 거야. 루이자, 매춘이라는 게 말이다..."
"그만해요. 지저분한 간통의 사회적, 도덕적 가치에 대한 오빠의 견해 같은 거 듣고 싶은 생각 없으니까."
그 다음에 엘리엇이 이사벨과 래리가 계속 만나는 것을 중단시킬 방법을 하나 제안했다. - P137

브래들리 부인은 나름대로 강한 소신과 상식을 가진 여자였다. 그녀는 이 세상에서 살아가려면 모름지기 관습을 따라야 하고 남들이 모두 하는 것을 혼자만 하지 않으면 불안정한 삶을 살 수밖에 없다고 믿었다. 또한 그녀의 소신에 따르면, 남자는 마땅히 일을 해야 하고, 열심히 노력하여 아내와 가족들이 그의 신분에 맞는 생활을 유지할 수 있도록 만들어야 했다. 또 자식들이 성년이 되어 웬만큼 안정적인 생활을 꾸릴 수 있을 만큼 좋은 교육을 시키고, 죽을 때는 아내가 충분히 먹고 살 수 있을 만큼의 유산을 남겨 주는 것이 남자의 책무였다. - P145

지중해 연안에는 유럽 각지에서 온 왕족들이 많이 살고 있었다. 온화한 기후에 이끌려 온 사람도 있고, 망명해 온 사람도 있고, 어떤 불명예스러운 과거나 부적절한 결혼 때문에 외국에서 사는 것이 더 편해서 와 있는 사람도 있었다. 이 지역에는 로마노프가와 오스트리아 합스부르크가, 스페인 부르봉가의 자손들, 시칠리아의 귀족 두 명과 파르마 귀족이 살고 있었다. 또 윈저 왕가 사람들, 브라간사 왕가의 공작들, 스웨덴이나 그리스의 왕족도 있었다. 엘리엇은 그들을 자주 초대했다. (중략) 내가 엘리엇을 보면서 무엇보다도 감탄한 점은, 그가 신분 높은 인사들을 대할 때 우아함과 예의를 한껏 갖추면서도, 모든 사람은 평등하게 태어난다고 가르치는 나라의 국민으로서 독립적이고 당당한 태도를 잃지 않았다는 사실이다. - P207

"교황께서 저를 위해 우리 가문의 옛 칭호를 부활시켜 주셨답니다. 미처 말씀드릴 기회가 없었군요."
"당신의 뭘요?"
나는 놀란 나머지 미처 정중하게 물어보질 못했다. 엘리엇은 기분이 약간 상했는지 눈썹을 추켜세웠다.
"모르셨습니까? 저는 외가 쪽으로 라우리아 백작의 후손입니다. 라우리아 백작은 스페인 펠리페 2세를 수행하여 영국에 가서 메리 1세의 시녀와 결혼했지요."
"그 피의 메리 여왕 말인가요?"
"그건 이교도들이 부르는 말이지요."
엘리엇은 딱딱한 목소리로 대답하고 곧 다시 말을 이었다. - P216

나는 그에게 성 마틴의 훌륭한 행동과 그가 꼭 알맞은 때에 팔아치워서 번 돈을 마치 주식 중개인한테 수수료를 주듯 하느님께 바친 것 사이에 무슨 연관 관계가 있느냐고 묻고 싶었지만 그만두었다. 어쨌거나 나처럼 상상력이 부족한 사람은 상징이란 것을 이해하기 힘들 때가 많다. 엘리엇은 계속했다.
"그 성당 사진을 교황께 보여 드렸더니, 자상하게도 교황께서는 한눈에 봐도 제 안목이 나무랄 데 없이 훌륭하다는 것을 알겠다고 하시면서, 지금처럼 타락한 시대에 저처럼 독실한 신앙심과 뛰어난 예술적 감각을 겸비한 사람을 만나게 되어 참으로 기쁘다고 하시더군요. 저로서는 그야말로 평생 잊지 못할 영광스러운 순간이었습니다. 그리고 얼마 후 저한테 귀족 작위를 내려 주시겠다고 하시기에 얼마나 놀랐던지요!" - P218

그리고 경제공황에 대응하는 미국인들의 태도에 실망했다고 말했다. 눈앞에 닥친 불행에 좀 더 침착하게 행동할 줄 알았다는 것이었다. 본래 남의 불행을 의연하게 보아 넘기는 것보다 쉬운 일은 없는 법이다. 나는 과거 그 어느 때보다도 부자가 되어 있는 엘리엇이 냉정하고 호되게 미국인들을 비판할 자격은 없다는 생각이 들었다. - P219

나는 여자의 직감을 믿는 편이 아니다. 여자의 직감은 그 여자가 믿고 싶어 하는 것과 너무도 잘 맞아떨어지기 때문에 도무지 믿을 수가 없다. 이사벨과 나눈 오랜 대화의 결말을 생각하니 나도 모르게 웃음이 나왔다. 문득 수잔 루비에가 떠올랐다. 며칠 동안 만나지 못했다. 지금 무얼 하고 잇을까? 특별히 할 일이 없다면 나와 저녁을 먹고 영화를 보는 것도 나쁘지 않을 것이다. 나는 택시를 잡아서 그녀의 아파트로 가자고 했다. - P282

그레이가 말했다.
"소피, 정말 안됐어요."
이사벨이 차갑게 대꾸했다.
"난 아닌데. 물론 충격적인 일이죠. 저만큼 소피를 가엾게 여겼던 사람도 없을 거예요. 우린 아주 어릴 때부터 친구였잖아요. 하지만 정상적인 사람이라면 그런 일을 겪고도 충분히 회복될 수 있다구요. 소피가 그렇게 망가진 건 그런 기질을 갖고 있었기 때문이에요. 천성적으로 불안정한 기질이 있었기 때문이라고요. 밥에 대한 사랑도 좀 지나쳤잖아요. 만약 품성이 올바른 사람이었다면 제대로 된 삶을 꾸려 나갈 수 있었다는 얘기죠." - P327

"상류사회는 죽었습니다. 그래도 예전에는 미국이 유럽을 대신해서 서민들이 동경할 만한 귀족 사회를 만들어 낼 수도 잇을 거라고 생각했지요. 하지만 공황 때문에 이제는 그럴 가능성이 완전히 사라졌습니다. 가엾은 내 조국은 손도 못 쓰고 중산층 사회로 전락하고 있지요. 글쎄 지난번에 미국에 갔을 때는 택시 기사가 나한테 형제라도 되는 것처럼 말을 걸더군요. 믿어지십니까?"
리비에라 역시 1929년에 일어난 공황의 여파에서 회복되지 못한 상태였지만, 엘리엇은 계속해서 파티를 열고 파티에 참석하고 있었다. 게다가 예전에는 로트실트 가가 아닌 이상 유대인의 집에는 절대 드나들지 않았지만, 이제는 가장 성대한 파티들이 선민들, 즉 유대인들에 의해 열리고 있었고, 엘리엇은 파티가 열리면 참석하지 않고는 못 배기는 사람이었다. (중략) 유배당한 왕족들도 그들의 인생을 즐기고 있었다. 게다가 영화배우를 만나 보는 것을 최대의 꿈으로 품고 있는 모양이었다. - P335

조제프는 40년 동안 엘리엇의 곁에서 그를 모신 사람이었다. 그러나 그런 계층의 사람들이 대부분 그러하듯, 슬픈 척 행동하는 그에게서 주인의 불행에 대해 내심 흡족해하는 기색이 보였다.
"스 포브르 무슈(가엾은 주인 어른)."
그가 한숨을 쉬며 말했다.
"좀 유별난 구석은 있지만 사실은 아주 좋은 분입니다. 그런데 이제 가실 날이 머지않으신 것 같습니다."
그는 엘리엇이 금방 죽기라도 할 것처럼 말했다.
"그동안 그분 덕분에 잘 먹고살았을 텐데, 조제프?"
내가 다소 험악하게 말했다.
"그렇게 보이겠지요."
그가 슬픈 목소리로 대꾸했다. - P373

나는 무슨 수를 써서라도 가엾은 엘리엇에게 그가 그토록 열망하는 초대장을 안겨주고 싶었다. 식사가 끝나자 에드나는 친구들을 정원으로 데리고 나갔다. 좋은 기회가 될 것 같았다. 나는 예전에 그 집에 며칠 동안 묵은 적이 있으므로 구조를 잘 알고 있었다. 분명히 아직 초대장이 몇 장 남아 있을 것이다. 바로 비서실에 말이다. 나는 얼른 비서실로 갔다. 초대장 한 장을 슬쩍 빼내어 주머니에 넣어 두었다가 엘리엇의 이름을 써서 보낼 생각이었다. 어차피 건강 때문에 참석할 수 없을 테지만 초대장을 받는 것만으로도 무척 기뻐할 게 분명했다. 그러나 문을 열어 보고 나는 움찔 놀랐다. 아직 점심 식사 중일 거라고 생각했던 에드나의 비서가 자리를 지키고 있었기 때문이다. 키스 부인이라 불리는 이 중년의 스코틀랜드 여자는 옅은 갈색 머리의 미혼 여성으로, 주근깨 난 얼굴에는 코안경을 걸치고 있었다. 어떤 상황에서든 순결만큼은 지킬 것 같은, 그런 여자였다. - P382

"공작 부인하고 친하게 지내고 싶으셨으면 좀 더 현명하게 행동하셨겠죠. 부인이 운전수하고 자고 다닌다고 떠벌리진 않으셨을 거라고요. 그 운전수한텐 아내도 있고 아이들도 셋이나 되는데."
"그런데 그게 사실입니까?"
키스 부인은 코안경 너머로 나를 보았다.
"선생님, 저는 21년째 비서 일을 하면서, 제가 모시는 분들이 순결하고 정숙하다고 믿는 것을 규칙으로 삼아 왔어요. 사실, 예전에 모시던 분 중에 남편이 사자 사냥을 하려 6개월 동안 아프리카에 가 있는 사이에, 임신 3개월째라는 게 밝혀져서 믿음이 크게 흔들린 적도 있긴 했죠. 하지만 그 부인이 파리로 짧게, 그것도 아주 비싼 돈을 주고 여행을 다녀온 후로 모든 게 해결됐답니다. 그때 그 부인과 제가 얼마나 다행스러워했는지 아세요?" - P383

"그분은 신사예요. 제가 신사라고 인정하는 사람은 몇 명 안 되거든요. 이 집에 와서 공작 부인의 돈으로 살찐 배를 채워 가는 신사들은 신사로 안 보죠."
원래 지체 높은 사람들은 누구나 자신의 귀가 되어 줄 충실한 부하를 두고 있는 법이다. 이런 부하들은 무시나 모욕에 매우 민감하기 때문에 스스로 부당한 대우를 받았다고 생각하면 그 상대를 정확히 겨냥하여 주인에게 그 사람에 대한 혹평을 끊임없이 늘어놓는다. 그렇게 해서 주인까지 그 사람을 미워하게 만드는 것이다. 따라서 이런 사람들과는 되도록 좋은 관계를 유지하는 것이 좋다. 그것을 누구보다도 잘 알고 있던 엘리엇은 언제나 가난한 친척들과 늙은 하녀들, 충실한 비서들에게 다정한 말을 건네고 진심 어린 미소를 보냈다. 틀림없이 키스 부인과도 유쾌한 농담을 주고받고, 크리스마스에는 초콜릿 한 상자나 휴대용 화장품 케이스, 핸드백 등을 선물로 보냈을 것이다.
"키스 부인, 그러니까 이렇게 부탁하는 겁니다."
(아래에 계속) - P384

(위에서 계속)
키스 부인은 코안경을 올려 오뚝한 코에 똑바로 걸쳤다.
"저더러 주인을 배신하라는 건 아니겠죠, 몸 선생님? 게다가 제가 배신한 걸 알면 그 노인네는 당장 절 해고할 거예요. 초대장은 책상에 있어요. 봉투에 들어 있죠. 저는 그냥 창밖을 보고 풍경을 즐기고 있을게요. 자리에 너무 오래 앉아 있어서 다리가 저리니까요. 제가 등을 돌리고 있을 때 일어난 일에 대해서는 하나님이든 사람이든 저한테 책임을 묻지 못하겠죠."
키스가 다시 자리에 돌아와 앉았을 때 초대장은 이미 내 주머니에 들어가 있었다.
"오늘 만나서 반가웠습니다, 키스 부인."
내가 손을 내밀며 말했다.
"가장무도회 때 무슨 옷을 입으실 겁니까?‘
"저는 목사의 딸이에요, 선생님. 그런 바보 같은 일은 상류층에게나 양보해야죠." - P385

중백의와 영대를 걸친 모습을 보니 키도 크고 체격도 우람했다 파티에서는 짓궂으면서도 다정한 웃음으로 주름져 있던 붉은 얼굴도 그날은 엄숙해 보였다. 예전에 기병 장교였지만 이제는 그런 흔적이 전혀 찾아볼 수 없었고, 자신의 신분 그대로 성당의 고위 성직자처럼 보일 뿐이었다. 조제프가 성호를 긋는 모습을 보고도 나는 그리 놀라지 않았다. - P391

우리는 계단을 내려갔다. 조제프와 하녀들이 현관에서 기다리고 있었는데, 하녀들은 눈물을 흘리고 있었다. 모두 세 명의 하녀들이 한 명씩 앞으로 나와 무릎을 꿇고 주교의 반지에 키스를 했다. 그는 두 손가락으로 그들을 축복했다. 조제프도 아내가 옆에서 쿡 찌르자 앞으로 나와 무릎을 꿇고 반지에 키스를 했다. 주교가 엷은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자넨 불가지론자라면서?"
조제프는 당황해서 어쩔 줄 몰라 했다.
"그렇습니다, 몽세녜르."
"걱정할 것 없네. 주인에게 충성을 바치는 훌륭한 하인이었으니, 하느님도 그런 잘못된 생각쯤은 너그럽게 봐주실 거야."
나는 그와 함께 밖으로 나가 차문을 열어 주었다. 그는 차에 올라타면서 내게 고개를 숙여 인사하고는 인자한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우리의 가엾은 친구는 시간이 얼마 남지 않았습니다. 겉보기에는 결점도 많았지만, 본디 마음이 너그럽고 주변 사람들에게도 친절하셨지요." - P394

"서재에 가면 메모판이 있을 겁니다. 그걸 갖고 와서 좀 받아 적어 주시죠." (중략)
그는 눈을 감고 잇었지만 입가에는 장난기 어린 미소가 떠올라 있었다. 나는 그가 뭐라고 할지 몹시 궁금해졌다.
"엘리엇 템플턴 씨는 하느님과의 선약 때문에 노베말리 공작 부인의 친절한 초대에 응할 수 없는 것을 유감스럽게 생각합니다.
그는 유령처럼 희미하게 키득거렸다. (중략) 그는 여전히 내가 훔쳐 낸 초대장을 들고 있었다. 들고 있기가 힘든 것 같아서 그의 손에서 빼내려고 했지만 너무 꽉 쥐고 있어서 빼낼 수가 없었다. 뒤이어 들려온 그의 힘찬 목소리에 나는 화들짝 놀랐다.
"더러운 할망구."
이것이 그의 마지막 말이었다. 그러고는 혼수상태에 빠져들었다.
- P397

"현명한 우리 구교에서는 믿는 것처럼 행동하면 믿음을 갖게 되고, 의심이 생겨도 신실하게 기도하면 의심이 사라지며, 성찬의 아름다움에 빠지면 평화가 내려온다는 것을 깨달았지요. (중략) 우리 수도원에서 2-3 주 지내보는 게 어떨까요?우리 평수사들과 함께 밭일을 해도 되고, 우리 도서관에서 책을 읽을 숟 있습니다. 탄광이나 독일의 농장에서 일하는 것 못지않게 흥미로운 경험이 될 겁니다. (중략) 당신은 신앙과 거리가 멀다고 생각하지만 제가 보기에 그 거리는 얇은 종잇장 두께에 불과합니다." (중략)
알자스 시골에 있는 수도원이었는데 경치가 참 예뻤어요. 엔스하임 신부는 수도원장에게 인사를 시킨 다음 제가 쓸 방을 보여줬죠. - P418

이사벨에게 칵테일을 건네다가 테이블에 있는 책이 눈에 들어왔다.
"이야! 래리의 책이잖아."
내가 소리쳤다.
"오늘 아침에 왔는데, 너무 바빠서 들춰 보지도 못했어요. 오전 내내 수십 가지 일을 처리해 놓고 점심엔 밖에 나가서 밥을 먹고 오후에는 몰리뉴에 갔었거든요. 언제쯤이나 볼 시간이 날지 모르겠네요."
작가는 열과 성을 다해 몇 달에 걸쳐 책 한 권을 완성하는데, 독자는 이 세상에 할 일이 하나도 없어질 때까지 그 책을 아무 데나 놓아둔다고 생각하니 우울해졌다. - P49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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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학이 필요한 순간 - 경제학은 어떻게 사람을 살리는가
김현철 지음 / 김영사 / 2023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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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대 경제학의 트렌드를 알 수 있어서 유익했다. 실험과 데이터를 중시하는, 자연 과학 스타일의 경제학 연구 성과들을 알기 쉽게 소개해 준다.


<덧붙임>

저자의 강연을 들을 기회가 있었는데 독서,예술, 스포츠를 포함한 다양한 학교 활동을 강조하고, 수능에 대해서는 굉장히 적대적으로 말하더라. 본인처럼 예술, 체육 성적을 포함한 내신 성적 전교1등을 간단하게 하는 게 불가능한, 재능이 부족한 사람들에게, 수능이 얼마나 소중한 기회인지 전혀 이해를 못 하는 것 같았다. 본문 내용 중에 육아 비용이 너무 비싸다면서, 50대-60대 저학력 여성인 육아 도우미가 30대 대졸 여성 평균보다 더 많은 임금을 받는 것을 비판하는 부분도 그렇고, 인간의 개인적인 경험들이 만들어내는 무지와 편견은 극복하기가 무척 어렵다는 것을 실감했다.

경제학은 2000년대 들어 비약적인 발전을 거듭했습니다. 양질의 데이터와 연구 방법론의 발전은 실증 경제학 연구의 신뢰성을 크게 발전시켰죠. 이를 소위 경제학의 ‘신뢰성 혁명 Credibility Revolution’이라 부릅니다.
신뢰성 혁명은 우선 양질의 데이터가 확보될 수 있기에 가능했습니다. 선진국뿐 아니라 개발도상국에서도 우수한 데이터가 급격히 증가했습니다. 또 ‘자연 실험 Natural Experiment’이나 ‘사회 실험 Field Experiment’과 같은 기법을 이용하여, 정책 혹은 프로그램의 인과성을 입증하는 연구가 발전을 거듭했습니다.
이에 하버드대학교의 저명한 경제학자인 라즈 체티 Raj Chetty는 "경제학은 과학이다"라는 글을 ‘뉴욕타임스’에 기고했습니다. 가용한 데이터가 늘어남에 따라, 경제학은 더욱 실증적이고 과학적인 분야가 되어가고 있다고 이야기했죠. - P17

우리나라 정부가 시행하는 수많은 프로그램 중 어떤 것이 작동하고, 어떤 것이 작동하지 않는지에 대한 근거는 대부분 부족합니다. 당위와 직관이 아닌 데이터와 근거에 기반한 정책을 만들어야 합니다. 마치 의사가 환자의 상태를 면밀히 조사해 진단한 후, 의학적 근거에 기반해 치료하듯이 말입니다. 암세포만을 떼어내는 외과 의사의 날카로운 칼과 같은, 사람을 살리는 정책을 만드는 일에 이 책이 기여했으면 좋겠습니다. - P21

제 책을 읽으시는 분들은 아마도 크고 작은 성취를 이룬 분들일 것입니다. 어렵게 살고 계신 분들은 한가하게 독서할 시간조차 없는 경우가 대부분이겠죠. 아이에게 이렇게 이야기해주셔도 좋겠습니다.
"인생 성공의 8할이 운이래. 우리 가족의 성취도 사실 대부분 운이야. 우리의 힘으로만 이룬 게 아니니까 겸손하게 살아야 해. 그리고 실패했다고 생각해도 좌절하지 말자. 운이 좀 나빴던 것뿐이야. 또 운이 나빴던 사람들을 적극적으로 도우며 살자꾸나. 혹시 스스로 성취한 것처럼 자랑하는 사람이 있으면 부러워하지 말고 불쌍히 여기렴. 착각 속에 사는 사람이니까." - P30

자녀가 잘못했을 때, 어떤 부모는 "우리 애가 원래는 착한데 친구를 잘못 만나서 이렇게 됐어"라고 안타까워하기도 합니다. 물론 나쁜 친구의 영향도 있겠지만, 서로 친해져서 사고를 치는 아이들은 애초에 유유상종인 경우도 많은 게 사실입니다.
또 교육열 높은 부모는 자식이 공부 잘하는 친구를 만나길 원하기도 합니다. 공부를 잘하는 학생의 친구는 공부를 잘할 확률이 높으니까요 (연관성). 그런데 공부 잘하는 친구의 영향을 받아 성적이 오른 것인지 (친구 효과), 두 사람이 공유한 특성 때문에 서로 친구가 될 것인지 (유유상종) 쉽게 구분이 되질 않습니다. 만일 유유상종의 힘이 친구 효과를 아보한다면 이러한 부모의 바람은 별 소용없는 일일 것입니다.
인과성, 그러니까 ‘친구 효과’를 밝혀낸 최초의 실마리는 대학 룸메이트 연구에서 시작되었습니다. - P90

하위권 학생의 경우 같은 반에 상위권 학생이 늘어나도 성적에 큰 변화가 없습니다. 반면 상위권 학생은, 비슷하게 공부 잘하는 친구들이 늘어나면 큰 자극을 받아 성적이 오릅니다. 전교 1등은 전교 2등과 짝을 이뤘을 때 성적이 가장 많이 오릅니다. 하위권 학생들은 오히려 중위권 학생이 많아질 때 성적이 오르는 경향을 보였습니다. - P94

특별히 해고될 염려도 거의 없고, 자리를 지키고 있는 한 임금이 지속적으로 상승하는 연공제의 폐해가 큽니다. 젊은 세대한테 지나치게 불리한, 공정하지 못한 제도입니다. 운 나쁘게 실직한 사람들이 새로운 직장을 찾기에도 불리해 실직의 부정적 영향이 커집니다. 기업의 경쟁력에도 부정적 영향을 줄 수밖에 없지요.
다만, 동시에 실직해도 큰 걱정이 없는 세상이 되어야 합니다. 사회안전망을 크게 강화해야 합니다. 서울시에서 시범 사업 중인 ‘안심 소득’은 확실하게 소득을 보장합니다. 가령 소득이 없는 3인 가구에 월 170만 원을 지급합니다.
유연한 노동시장을 통해 기업은 능력 있는 노동자를 고용할 수 있고 경쟁력을 높이며, 국가는 충분한 소득 보장을 제공하는 방향으로 사회가 발전할 수 있었으면 합니다. - P107

그렇다면 육아가 조부모의 건강에 미치는 영향은 어떻게 측정할 수 있을까요? 손주를 돌보는 조부모와 그렇지 않은 조부모의 건강을 비교하면 될까요? 답은 ‘아니요’입니다. 왜냐하면 건강한 노인이 손주를 돌볼 수 있기 때문입니다. 아픈 노인은 아무래도 애초에 손주를 돌보기가 어렵겠죠.
즉, 우리는 ‘육아-건강’ 채널을 알고 싶지만, 그 반대로 ‘건강-육아’ 채널이 동시에 존재하고 있는 겁니다. 이렇게 두 집단을 비교하는 (틀린) 방법으로 분석을 해보면, 손주를 돌보는 조부모는 건강해진다고 잘못 이해하게 되죠. 건강하니까 손주를 돌볼 수 있는 것인데 말입니다. 이를 학술 용어로 ‘역인과관계 Reverse Causality’라고 합니다. - P112

부모님이 편찮으셔서 전담 간병인을 고용하고자 하면 월 평균 300-400만 원 정도 비용이 든다는 사실에 많은 분들이 깜짝 놀랍니다. 입주 육아 도우미의 비용도 비슷한 수준입니다.
반면 대한민국 30대 여성의 중위소득은 320만 원 정도입니다. 대부분 학력 수준이 상대적으로 낮은 50-60대 이상 돌봄 노동자의 임금이 평균 대졸 30대 여성의 임금보다 큽니다.
돌봄 노동자 공급 부족에서 나온 기현상입니다. - P131

정책은 설계 단계인 타당성 조사와 시범 사업에서부터 그 효과를 충분히 입증한 뒤 시행해야 합니다. 가령 정부가 성적 장학금 제도를 도입하려 한다면, 제가 했던 것과 같이 먼저 소규모 실험을 해보는 것입니다. 만일 실패한다면 다른 방법을 찾으면 됩니다. 그러나 우리 현실은 이상과 거리가 멉니다. 수많은 정책을 당위와 직관, 빈약한 증거를 토대로 도입합니다.
- P159

지금까지 국민의 부담을 줄여주려는 선한 의도를 가진 보장성 확대 정책의 장단점을 생각해보았습니다. 많은 사람이 혜택을 보는, 경증 질환 치료를 저렴하게 하는 정책은 필요성이 낮지만 선거 기간 표심에 영향을 줍니다. 반면 소수의 사람이 혜택을 보고 목돈이 드는, 중증 질환 치료비를 줄여주는 정책은 꼭 필요하지만 득표에 별 도움이 되지 않죠. 그 탓에 건강보험이 가장 아픈 사람을 충분히 보호하는 역할을 제대로 감당하지 못하고 있습니다. 이러한 한계를 넘어설 수 있도록, 정책 입안자와 국민의 분별력 있는 의지가 필요합니다. - P184

이 연구는 생산성 높은 사람들이 ‘고임금, 주 5일’ 직장으로 몰리고, 생산성 낮은 사람들이 ‘저임금, 주 4일’ 직장으로 분포되는 현상을 예측하게 합니다. 생산성 낮은 사람들이 몰리는 ‘저임금, 주 4일’ 회사는 장기적으로 생산성이 더 낮아져 생존하기 어려울 것입니다. - P221

여성 전용 주차장도 오답입니다. 정답은 어린아이와 노약자 동반 가족을 위한 주차장입니다. 남녀 모두가 혜택을 누릴 수 있기에 불필요한 젠더 갈등이 생길 여지가 없습니다. 하지만 돌봄을 주로 여성이 담당하는 현실이니 대부분의 혜택은 여성이 누릴 것입니다. - P234

팬데믹 대처 과정에서 정부 및 언론의 국민과의 의사소통도 문제였습니다. 우리는 코로나19 감염 사례와 사망 보도를 거의 매일 접하면서 살았습니다. 그 결과 코로나19의 위험을 실제보다 훨씬 크게 인식했죠. 이를 ‘노출 효과’ 혹은 ‘가용성 편향 availability bias’이라고 부릅니다.
실제로 대다수 국민이 일반 폐렴, 자살, 교통사고보다 코로나19의 위험을 크게 인식했을 겁니다. 이런 편향된 인식은 이를 대비하는 정책에도 잘못된 영향을 줍니다. 정부가 국민의 가장 중요한 위험에 대처하기보다는 사람들이 가장 큰 두려움을 해소하는 데 역량을 집중하게 만들기 때문입니다. - P238

놀랍게도 우리에게는 학생들의 학력과 관련한 체계적인 자료가 부재합니다. 사실 전국 단위 시험 결과가 있어야 하는데, 우리나라의 유일한 전국 단위 시험인 학업 성취도 평가는 중학교 3학년과 고등학교 2학년을 대상으로 하고, 그나마도 전체가 아닌 3% 샘플입니다. 더구나 초등학생은 전국 단위 시험이 없어 등교 제한이라는 전무후무한 사건이 벌어졌는데도 그것이 학생들의 학업 성취에 미친 영향을 알 길이 없습니다.
학생들에게 지나친 시험 부담을 주는 것은 문제지만, 코로나19 사태를 겪으며 저는 적어도 1-2 년에 한 번씩 학생들의 성취를 체계적으로 수집하는 것은 필요한 일이라는 생각을 하게 되었습니다. 아울러 학생들의 학력뿐만 아니라 이른바 비인지 기능(가령 사회성, 끈기 등)에 대한 체계적 조사도 필요하다고 생각합니다. - P255

요약하면, 우리나라에서의 등교 제한은 고등학생의 ‘평균’ 학업 성취도를 낮추지 않았지만 학습 불평등은 증가시켰습니다. 잘하는 친구들은 더 잘하고, 못 하는 친구들은 더 못 하게 되었습니다. 왜 그랬을까요? 완벽하게 알 수는 없지만 다음과 같은 추론이 가능합니다.
상위권 학생들에게 공교육은 애초에 사교육 같은 대체 학습에 비해 효과적이지 않았을 가능성이 높습니다. 그렇기에 팬데믹으로 등교하지 않는 동안 본인 수준에 맞는 공부를 해서 성적이 올랐을 수 있습니다. 또 상위권 학생의 부모는 이 기간 아이들의 학업에 더욱 적극적으로 나섰을 것입니다.
반면 하위권 학생들에게 등교는 공부할 수 있는 ‘최소한의’ 환경을 제공합니다. 학교를 가지 않으니 학업에 손을 놓아버렸을 수 있습니다. 부모가 교육에 적극적일 가능성도 낮습니다. - P26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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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약용 - 유교 문명의 새로운 구상과 실천 ㅣ 창비 한국사상선 14
정약용 지음, 백민정 편저 / 창비 / 2026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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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비의 한국사상선 제14권 ‘정약용 – 유교 문명의 새로운 구상과 실천’은 다산 정약용이 쓴 많은 글들을 분석하고 발췌하여 (1)삶의 이력과 관료 활동, (2)지적 교류와 학문의 배경, (3)서학의 충격과 문제의식, (4)유교 인간학의 체계화, (5)정치사상과 국정운영론의 다섯 개 항목으로 나누어 소개하는 책이다. 책의 앞부분에서 정약용의 삶과 사상을 소개하고, 이어서 그의 중요한 저술들을 쉬운 현대어로 번역하여 제공한다. 풍부한 각주를 통한 보충 설명, 시대상을 곁들인 상세한 연보, 마지막의 찾아보기까지 독자를 위한 친절한 배려가 가득한 책이다. 만듦새가 아름답고 분량이 부담스럽지 않으며, 독서하는 동안 인물과 마주앉아 깊은 이야기를 나누는 듯한 생생함이 느껴져서, 기회가 되면 시리즈의 다른 책들도 읽어보고 싶다.

 

책을 읽기 전에 내가 정약용에 대해 가지고 있던 인상은 ‘불우한 지식인’이라는 것이었다. 넘치는 재능으로 정조의 총애를 받았으나, 왕의 죽음 이후 반대 당파에 의해 죄인으로 몰려 죽을 위기에 처했다가, 간신히 목숨만 건진 채 유배지로 내쫓긴 불운한 인물이라고 생각했었다. 그 인상은 책을 읽고 나서 정반대로 바뀌었다. 부유하고 교육열 높은 가정에서 태어나 과거 공부에 몰두할 수 있었던 것, 국왕의 총애를 받으며 권력의 핵심에서 활동했던 것, 유배 후에도 유배지인 호남 지방에서 위세를 떨치던 외가의 비호를 받으며 교육과 학문 연구에 매진할 수 있었던 것, 모두 이 인물의 대단한 행운을 보여준다고 느꼈다. 이러한 행운 위에 그의 천성이라고 할 수 있는 강렬한 성취 지향이 더해져, 정약용은 조선 후기를 대표하는 지식인이라는 확고한 지위에 도달했던 것이다.

 

정약용의 현실순응적이고 출세지향적인 가치관은 그가 자손들에게 남긴 글에서 솔직하게 드러난다. 노년에 자신의 장례를 손수 준비하며 지은 ‘자찬묘지명’에는 출세 가도를 달렸던 젊은 시절의 업적들이 상세하게 기록되어 있는데, 자신을 높여준 정조를 ‘성인’으로 추앙하는 태도가 대단히 인상적이고, 해배된 이후인 노년에 다시 등용될 기회가 왔을 때 이를 방해한 서용보에 대한 구구절절한 비난이 쓴웃음을 자아낸다. 벼슬길이 완전히 막혔다고 생각했던 유배기에는 유학 연구자로 이름을 떨치는 것과 자식들을 잘 되게 하는 것이 그의 주된 야망이었던 듯한데, 자식들이 문학이나 좋아하고 경전 공부를 열심히 하지 않으니, 이대로는 자신의 필생의 저작인 ‘주역’ 연구서와 ‘상례’ 연구서가 빛을 보지 못할까 두렵다고 꾸짖는 ‘시이자가계’를 통해 이를 들여다볼 수 있다. 시속을 비판하고 오직 주나라 이전 성인의 시대를 그리워하며, 정통 유학을 깊이 연구하던 그의 자세는 교조적 유교 사상이 지배하던 조선의 상황에서는 누구나 칭찬하지 않을 수 없는 태도였을 것이다.

 

관료로서나 학자로서나 세상에 드러나는 높은 업적을 이루기 위해서는 일단 몸부터 지켜야 했을 것이나, 원한에 찬 당쟁의 피바람이 몰아치던 헬조선에서 살아남는 것은 재능이 넘치는 정약용에게도 호락호락한 일이 아니었다. 천주교 문제로 남인들이 죽어 나가던 위기에서 그는 누구보다도 격렬하게 천주교를 비난하는 것으로 살 길을 도모했다. ‘변방사동부승지소’에서 “그 모발 하나라도 죄역이 되지 않는 것이 없고, 해괴하고 두려운 것이 조수가 사람 속에 있는 것같이 분명하여 하루도 구차하게 함께 거처할 수 없으니”라고 천주교를 비난하는 것을 보고 있으니, 그가 말하는 사악한 이역 학문인 천주학이 조선이 멸망한 후에도 오래 살아남고, 그가 한사코 거리를 두려 한 순교자 친지들이 천주교의 성인으로 공경받고, 정약용 자신도 천주교 계열의 학자들에게 널리 연구되어, 가톨릭대학 교수의 손으로 쓰인 정약용에 대한 책을 내가 읽고 있는 아이러니가 재미있어진다.

 

정약용의 글 중에 일반 독자에게 가장 널리 알려진 것은 고등학교 교과서와 참고서에 단골로 실리는 ‘여유당기’와 ‘수오재기’일 것이다. 마흔 전후, 정조가 죽고 인생이 극적 전환을 맞이하던 시기에 쓴 이 두 글에는 앞으로 험난한 삶을 헤쳐 나가야 할 자신에게 주는 중요한 지침이 담겨 있다. “맹자가 ‘지킴은 무엇이 큰 것인가? 자신을 지키는 것이 큰 것이다(守孰爲大 守身爲大).’ 라고 했으니 그 말씀이 진실하다.”, “내가 노자의 말을 살펴보니 ‘겨울에 시내를 건너는 것처럼 신중하게 하고(與), 사방의 이웃이 나를 엿보는 것을 두려워하듯이 경계하라(猶).’고 했는데, 아, 이 두 마디 말은 나의 병을 고치는 약이 아니겠는가.”라는 문장들은 헬조선의 어둠 속에서 목숨과 가문과 빛나는 명예를 지켜낸 승리자의 가르침으로 다시 한번 눈여겨볼 만하다.

 

*이 글은 출판사의 독서모임 이벤트에 참가하여 제공받은 책을 읽고 쓴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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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생의 베일 ㅣ 민음사 세계문학전집 137
서머셋 모옴 지음, 황소연 옮김 / 민음사 / 2007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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페이지가 술술 넘어가는 읽기 편한 책. 어리석고 경박하다고 자신을 비난하는 것은 공평하지 않다는 키티의 항변은 어리석고 경박한 사람의 말 치고는 너무 지혜로워 보여서 좀 어색했다. 인간이란 게 원래 이렇게 일관성이 없는 존재인 걸까? 다른 등장인물들에 비해서 키티라는 인물이 유독 일관성이 없이 튀는 느낌이어서, 작가 자신이 여성 인물을 잘 이해 못하고 있는 것 같기도 하다. 찰스 타운센트나 월터 페인을 해부대에 펼쳐놓듯이 보여주는 데 비해서, 키티는 뭔가 알듯말듯하다. 

"내가 어리석고 경박하고 천박하다고 해서 날 비난하는 건 공평하지 않아요. 난 그렇게 자랐어요. 내가 아는 모든 여자들은 다 그래요. ....교향곡 연주회가 지루하다는 사람에게 음악에 대한 기호가 없다고 힐책하는 것과 같아요. 내가 갖지 못한 품성을 내 탓으로 돌리고 나를 비난하는 게 공평한가요? 난 내가 아닌 존재인 척하면서 당신을 속이려고 한 적 없어요. 난 그냥 예쁘고 명랑해요. 장터 노점에서 진주 목걸이나 담비 외투를 찾지 마요. 주석 트럼펫이나 장난감 풍선을 찾으라고요." - P182

키티는 매일 워딩턴을 만났다. 워딩턴이 하루 일과를 끝내고 언덕을 어슬렁거리며 올라와 페인 부부의 방갈로를 찾았던 것이다. 그렇게 일주일이 흐르자 다른 상황에서라면 1년은 족히 걸려 생겼을 친밀감이 그들 사이에 싹텄다. 한번은 키티가 그가 없으면 어떻게 지내야 할지 막막할 거라고 말하자 그가 웃음을 터트리며 말했다.
"현실의 땅 위에 조용하고도 평화롭게 걸어다니는 사람은 부인과 내가 유일합니다. 수녀들은 하늘 위를 걷고 당신의 남편은.... 암흑 속을 걷죠." - P145

그(인용자주-워딩턴)는 (중국학을 날뛰는 산토끼처럼 미친 학문이라고 욕하며) 자신이 중국어 학자가 아니라고 부인했지만 중국말을 자유자재로 구사했다. 그는 글은 거의 읽지 못했지만 일상 대화 속에서 말을 배웠다. 그래서 가끔 키티에게 중국 소설이나 중국 역사 속의 이야기를 들려주었는데, 다소 우쭐대는 농담조로 말하긴 했어도 그것들은 꽤나 재미있고 애정이 담겨 있었다. 아마도 그는 유럽 인들이 야만적이고 그들의 삶은 어리석다고 여기는 중국인의 시각을 무의식적으로 차용한 듯했다. 현명한 사람이라면 그 어리석음 속에서 진실을 구분해 낼 수 있다는, 중국에서나 통할 법한 생각이었다. 한번 눈여겨볼 가치가 있는 생각이었다. 키티는 중국인들에 대해서라면 퇴폐적이고 더럽고 입에 담기도 싫은 족속이라는 말 빼고는 들은 적이 없었다. 그녀는 마치 커튼의 한쪽 끝이 들어 올려진 틈새고 꿈에서도 본 적 없는 다채롭고 장대한 세상을 언뜻 본 것만 같았다. - P1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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펠로폰네소스 전쟁사 - 그리스어 원전 완역본 ㅣ 원전으로 읽는 순수고전세계
투퀴디데스 지음, 천병희 옮김 / 도서출판 숲 / 2011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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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4년 만에 다시 읽었다. 예전에 수업 들으며 써 두었던 메모들이 도움이 되었고, 전보다 훨씬 더 재미있었다. 이 전쟁의 기록을 '영원을 향한 재산'으로 인류에게 남겨주기 위한 신의 손이 투퀴디데스의 삶을 이끌었던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까지 든다. 인간의 본성인 온갖 어리석음과 잔혹함이 뒤엉킨 속에서도 지혜가 빛을 발하는 순간들이 있다. 


내가 생각하는 재미있는 포인트들


- 2권. 페리클레스 장례식 연설. 고등학교 때 칼 포퍼의 <열린 사회의 그 적들>에 인용된 이 연설을 보고 가슴이 뛰었던 기억이 난다. 민주주의를 위한 뜨거운 헌사.


- 2권. 아테나이의 역병. 전염병 배울 때 빠지지 않고 나오는 얘기라 관련 전공자에게는 매우 친숙함. 아테나이 지도자들이 교외를 포기하고 도시로 사람들을 피난시키면서, 위생의 문제를 미처 생각하지 못했다는 것에서, 근대 과학의 힘이 얼마나 위대한 것인지를 느끼게 된다.


-3권. 레스보스 섬의 뮈틸레네 함락. 뮈틸레네의 민중들이 간발의 차이로 몰살의 위기를 벗어나게 되는 이야기가 엄청 재미있음. 선원들이 속도를 내도록 재물을 약속하는 이야기는 이규보의 '주뢰설'을 연상시키는데, 설마 서양의 설화가 중국을 거쳐 한국에도 영향을 준 건 아니겠지. 


-3권. 플라타이아이 함락. 전권에 걸쳐서 테바이가 주축이 된 보이오티아 기병대는 무적 이미지로 그려지는데, 그들에게 용감하게 맞서며 끈질기게 저항했던 아테나이의 충직한 동맹 도시 플라타이아이가 잔혹하게 파괴되는 장면이 마음 아프다. "플라타이아이는 아테나이의 동맹국이 된 지 93년 만에 그렇게 끝장났다."라는 간결한 기술에 플라타이아이를 돕지 않은 아테나이에 대한 작가의 비판이 들어가 있다고 배웠다.


-3권. 케르퀴라 내전과 반대파에 대한 숙청. 이건 전권을 통틀어 제일 끔찍한 이야기인데, 이후의 역사 속에서 계속 반복되어 오고 있는 일이라 더 끔찍하다. 가까이에 함께 사는 적은 멀리 있는 외국인과는 비교할 수도 없이 증오스럽고, 묵은 원한이 쌓이면 인간은 끝도 없이 잔인해진다. 


-4권. 퓔로스와 스팍테리아 섬에서의 아테나이의 뜻밖의 행운. 데모스테네스의 비참한 최후를 생각하면 더욱 생각이 많아지는 부분이다. 행운이 왔을 때 만족할 줄 알아야 하는데, 그게 참 어렵다.


-5권. 4권에서 대활약했던 브라시다스의 죽음. 기동력이 있고 언변이 뛰어난, 스파르타 인 답지 않은 장군이라고 배웠다. 전쟁도 잘 하지만 선동도 잘 하고 거짓말도 능청스럽게 한다. 죽고 나서 칼키디케의 영웅이 되는 결말도 좀 어이없고 재미있다.


-5권. 멜로스 대화. 별도로 쓴 논문이었다가 여기에 십입된 것으로 보인다고 배웠다. 희망의 잔혹함에 대한 이야기가 인상적이다. 멜로스가 불쌍하지만, 곧 아테나이 인들이 그 업보를 받을 거라고 생각하면 좀 오싹하기도 하고.


-6권과 7권. 시켈리아 원정. 쉬라쿠사이 군이 전투를 거듭하면서 점점 세지는 게 재미있음. 페르시아 전쟁의 시켈리아 판 같기도 하고. 투퀴디데스가 8권에서 다시 언급하는 것처럼, 쉬라쿠사이가 작은 아테나이 같기도 하다. 그리고, 아테나이 군대의 눈물 없이는 볼 수 없는 비참한 최후. 마지막에는 너무 마음이 아파서 진도가 안 나갔다. 


-8권. 배신자 알키비아데스의 사기성 넘치는 행보가 웃김. 최대한 감정을 억제하고 이 인물을 있는 그대로 보여주려는 투퀴디데스의 노력이 존경스럽다. 멸망으로 굴러떨어져가는 아테나이의 정치적 혼란상도 재미있음. 

1권 22장
내가 기술한 역사에는 설화가 없어서 듣기에는 재미가 없을 것이다. 그러나 과거사에 관해 그리고 인간의 본성에 다라 언젠가는 비슷한 형태로 반복될 미래사에 관해 명확한 진실을 알고 싶어 하는 사람은 내 역사 기술을 유용하게 여길 것이며, 나는 그것으로 만족한다. 이 책은 대중의 취미에 영합하여 일회용 들을 거리고 쓴 것이 아니라 영구 장서용으로 쓴 것이기 때문이다. (인용자 주 – 원문은 ‘영원을 향한 재산’) - P45

1권 23장
지난날 최대의 전쟁은 페르시아 전쟁이었다. 하지만 이 전쟁은 두 번의 해전과 두 번의 지상전으로 일찌감치 결판이 났다. 그러나 펠로폰네소스 전쟁은 아주 오랫동안 지속되었을 뿐 아니라 그것이 지속되는 내내 헬라스에 미증유의 고통을 안겨주었다. 그토록 많은 도시가 비헬라스인들 또는 헬라스인들 자신에게 함락되어 폐허가 된 적은 없었다. 어떤 도시는 함락된 뒤 주민이 완전히 바뀌기까지 했다. 그토록 많은 난민이 발생한 적도, 전쟁이나 당파싸움으로 그토록 많은 인명이 손실된 적도 없었다. - P45

2권 8장
양쪽 모두가 원대한 포부를 품고 전쟁에 전력을 쏟았다. 당연한 일이었다. 무슨 일이든 처음 시작할 때는 누구나 열성을 다하는 법인 데다, 당시에는 펠로폰네소스에도 아테나이에도 전쟁이 뭔지 몰라 전쟁이 싫지 않은 젊은이들이 많았기 때문이다. - P147

2권 17장
친척 집에서 피난생활을 할 수 있는 사람은 몇 안 되고, 대부분은 시내의 공터나, 아크로폴리스와 엘레우시니온 신전과 출입이 엄격히 통제된 일부 장소를 제외한, 신과 영웅들의 모든 신전에서 살았다. 아크로폴리스 밑에 펠라르기콘이라는 지역이 있는데, 그곳에 살면 저주받는다 하여 거주가 금지된 곳이었다. 어떤 퓌토 신탁의 끝부분도 같은 취지의 말을 한다. "펠라르기콘 지역은 사용하지 않는 편이 더 낫느니라." 하지만 사태가 위급하여 사람들은 그곳에도 집을 짓고 살았다. 내 생각에 이 신탁은 사람들이 예상한 것과는 정반대로 이루어진 듯하다. 아테나이에 재앙이 닥친 것은 사람들이 이 지역에 불법적으로 정착했기 때문이 아니라 전쟁 때문에 사람들이 그곳에 살 수밖에 없었으니 말이다. - P156

2권 22장
페리클레스는 그들이 현재 상황에 화가 나 올바르게 판단할 수 없을뿐더러 나가 싸우지 않는다는 자신의 결정이 옳다는 확신에서 민회나 다른 회의를 일절 열지 않았으니, 사람들이 모여서 토론하면 이성보다는 분노의 영향을 받아 나쁜 결정을 내리지 않을까 두려웠기 때문이다. 그동안 그는 도시를 수호하며 되도록 은인자중했다. 그럼에도 그는 계속 기병대를 내보내 적군의 정찰대가 도시 근교 농촌에 침입하여 해코지하는 것을 막고자 했다. - P159

2권 43장 페리클레스 연설
온 세상이 탁월한 사람들의 무덤입니다. 고향 땅에 세운 비문만이 이분들에 관해 증언하는 것이 아니라 외국 땅에서도 이분들에 대한 기억은 기념비가 아니라 사람들 마음속에 살아 있기 때문입니다. - P174

2권 64장 페리클레스 연설
여러분은 또 아테나이가 온 세상에 가장 명성을 드날리는 것은 어떤 역경에도 굽히지 않고 어느 국가보다 전쟁의 인명 손실과 노고를 더 많이 감내함으로써 역사상 최대의 힘을 갖게 되었기 때문이라는 점을 명심하십시오. 후세 사람들은 우리의 이 힘을 영원히 기억할 것입니다. 만물은 쇠퇴하게 되어 있는 터라 우리 또한 언젠가는 쇠퇴한다 해도, 후세 사람들은 우리가 헬라시은들 중에서 가장 많은 헬라스인들을 지배했고, 가장 큰 전쟁들에서 각각의 국가 또는 모든 국가에 굳건하게 맞섰으며, 우리가 살던 도시는 모든 것이 완비된 헬라스 최대의 도시였다고 기억할 것입니다. - P188

2권 65장
그는 2년 6개월을 더 살았고, 전쟁에 관한 그의 선견지명은 그가 죽은 뒤 더욱 인정받았다. 왜냐하면 페리클레스는 아테나이인들이 은인자중하며 함대를 증강하고, 전쟁 동안에는 제국을 확장하려 하지 않고, 도시를 위험에 빠뜨릴 모험을 하지 않는다면 승리할 것이라고 말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아테나이인들은 모든 점에서 정반대로 했으며, 분명 전쟁과 무관한 다른 업무에서도 개인적인 이익이나 야망에 이끌린 나머지 아테나이에도 그 동맹국들에도 해로운 정책을 추구했다. (중략) 페리클레스는 명망과 판단력을 겸비한 실력자이자 청렴결백으로 유명했기에 대중을 마음대로 주물렀으며, 대중이 그를 인도한 것이 아니라 그가 그들을 인도했다.(아래에 계속) - P190

(위에서 계속)
그는 또 부적절한 수단으로 권력을 손에 넣기 위해 아첨할 필요가 없었다. 실제로 그는 높은 명망을 누리고 있어 대중에게 화를 내며 그들이 한 말을 반박할 수 있었다. 예컨대 그는 그들이 지나칠 만큼 자신들을 과신하는 것을 볼 때면 충격적인 발언으로 그들을 불안하게 만드는가 하면, 그들이 공연히 낙담하는 것을 볼 때면 그들에게 자신감을 회복시켜주곤 했다. 그리하여 이름은 민주주의이지만 실제 권력은 제일인자의 손에 있었다. 그러나 페리클레스의 후계자들은 수준이 그만그만했으며, 서로 일인자의 자리를 차지하려고 국가 정책조차 민중의 기분에 맡겼다. - P190

3권 27장
그 사이 뮈틸레네인들은 아무리 시간이 지나도 펠로폰네소스에서 함대가 나타나지 않는 데다 식량이 떨어진 까닭에 아테나이인들과 협상하지 않을 수 없었다. 그 과정은 다음과 같다. 살라이토스도 함대가 도착할 것이라는 희망을 포기하고는 전에는 경무장만 하던 민중에게 중무장을 지급했다. 아테나이인들을 공격하기 위해서였다. 그런데 일단 무구를 손에 넣자, 민중은 더 이상 정부에 복종하기를 거부했다. 그들은 한데 모여 지배계층이 식량을 공개하고 모두에게 분배하기를 요구하면서, 그러지 않으면 자기들이 협정을 맺고 아테나이인들에게 도시를 넘겨 주겠다고 했다. - P245

3권 47장 디오도토스 연설
그러나 반란에 가담하지도 않았고 무기를 손에 넣자마자 자진하여 도시를 여러분에게 넘겨준 뮈틸레네 민중을 죽인다면 첫째, 여러분은 은인을 죽이는 죄를 저지르게 될 것이고, 둘째 지배계층이 가장 원하는 일을 하게 될 것입니다. 죄 있는 자나 죄 없는 자나 똑같은 별을 받게 된다고 미리 여러분이 밝힌 까닭에, 지배계층이 반란을 일으키면 민중은 처음부터 그들 편이 될 테니 말입니다. 설령 민중에게 죄가 있더라도 그들에게는 죄가 없는 듯 행동해야 합니다. 그래야만 여전히 우리의 동맹군인 하나의 계층이 우리의 적으로 변하는 것을 막을 수 있습니다. - P262

3권 49장
아테나이인들은 격렬한 토론을 벌이다가 거수표결에 들어갔는데, 표수는 거의 같았지만 디오도토스의 안이 가결되었다. 그들은 즉시 다른 삼단노선을 급파했는데, 먼저 떠난 삼단노선보다 늦게 도착하여 도시가 파괴된 모습을 보게 되지 않을까 두려웠기 때문이다. 첫 번째 삼단노선은 하룻밤 하루 낮쯤 앞서가고 있었다. 뮈틸레네 사절단은 이 두 번째 함선에 포도주와 보릿가루를 대주며 먼저 파견된 함선을 따라잡으면 후하게 보답하겠노라고 약속했다. 그래서 선원들은 항해를 서둘렀는데, 항해 도중 포도주와 올르브유에 갠 보릿가루로 끼니를 대신하고 교대로 취침하며 계속해서 노를 저을 정도였다. 다행히 역풍은 불지 않았다. 먼저 떠난 함선은 내키지 않는 임무를 띠고 가는지라 항해를 서두르지 않았고 나중에 떠난 함선은 그렇게 항해를 서두른 덕분에, 첫 번째 함선이 한발 먼저 도착하여 파케스가 결의문을 읽고 결의 사항을 집행하려는 순간 입항하여 학살을 막을 수 있었다. - P263

3권 68장
라케다이몬인들은 플라타이아이인들이 자신들에게 불의한 짓을 했다고 믿고 그들을 다시 한 명씩 앞으로 불어내어, 이번 전쟁 중에 라케다이몬인들과 그들의 동맹군에게 도움을 준 적이 있느냐는 같은 질문을 던졌고, 그런 적이 없다고 대답하는 자는 예외 없이 모두 끌고 나가 죽였다. 그들은 자그마치 2백명 이상의 플라타이아이인들과, 함께 포위당한 아테나이인 25명을 그렇게 죽였다. 여자들은 노예가 되었다. 도시는 당쟁 때문에 추방당한 메가라인들과 플라타이아이인들 중에 살아남은 親라케다이몬파가 1년 동안 점유하게 해주었다. 그 뒤 그들은 도시를 기초부터 완전히 허물고 헤라 신전 옆에 사방 2백 푸스의 숙박소를 지었는데, 1층에도 2층에도 사방에 방을 넣었다. (중략) 플라타이아이는 아테나이의 동맹국이 된 지 93년 만에 그렇게 끝장났다. - P279

3권 81장
에우뤼메돈이 함선을 이끌고 도착해 이레를 머무르는 사이 케르퀴라인들은 자신들이 적으로 간주한 시민들을 계속 학살했다. 희생자들에게는 민주정부를 전복하려 했다는 죄명이 씌워졌다. 그러나 더러는 개인적인 원한 때문에 죽었고, 더러는 빚을 준 까닭에 채무자의 손에 죽기도 했다. 죽음은 온갖 모습으로 다가왔고, 그러한 상황에서 있을 법한 모든 일이, 아니 더 끔찍한 일들이 일어났다. 아버지가 아들을 죽이기도 했고, 신전에서 끌려나와 신전 옆에서 살해되는 사람들도 있었다. - P286

3권 82장
이번 내란(인용자 주 – stasis)은 그처럼 잔혹한 양상을 띠었고, 처음 발생한 내란인 만큼 충격적이었다. 실제로 나중에는 헬라스 세계전체가 동란에 휘말려들었다고 할 수 있다. 나라마다 서로 경쟁관계인 정파가 있어서, 민중파 지도자들은 아테나이인들을, 소수파는 라케다이몬인들을 불러들였기 때문이다. 평화 시 같으면 불러들일 핑계도 생각도 없었겠지만, 각 정파가 반대파에게 피해를 주면서 자신에게 유리한 동맹을 맺을 수 있는 전시에는 변혁을 꾀하는 자들이 외부에서 원군을 불어들이는 것은 자연스러운 일이 되었다.(아래에 계속) - P286

(위에서 계속) 이런 내란은 헬라스의 도시들에 크나큰 고통을 안겨주었는데, 이런 고통은 사람의 본성이 변하지 않는 한 잔혹함에서 정도의 차이가 있고, 주어진 여건에 따라 양상이 달라져도 되풀이되고 있으며 언제나 되풀이될 것이다. 번영을 누리는 평화 시에는 도시든 개인이든 원하지 않는데 어려움을 당하도록 강요받는 일이 없으므로 더 높은 도덕적 수준을 유지한다. 그러나 일상의 필요가 충족될 수 없는 전쟁은 난폭한 敎師(인용자 주 – 난폭함의 교사, 폭력의 교사)이며, 사람의 마음을 대체로 그들이 처한 환경과 같은 수준으로 떨어뜨린다. - P286

3권 82장
여러 도시의 정파 지도자들은 한쪽에서는 대중의 정치적 평등을, 다른 쪽에서는 건전한 귀족정치를 내세우며 그럴듯한 정치 강령을 표방했다. 그러나 그들은 말로는 공공의 이익에 봉사한다면서도 사실 공공의 이익을 전리품으로 여겼다. 그들은 반대파보다 우위를 차지하기 위해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경쟁하며 극단적인 잔혹 행위를 일삼았으며 정의나 국익을 무시하고 반대파보다 더 잔인하게 보복했다. 그들은 그때그때 자신이 속한 정파를 즐겁게 해주는 것만을 행동 기준으로 삼았으며, 당장의 야망을 충족시키기 위해서는 불법적인 투표로 유죄판결을 내리거나 폭력으로 권력을 탈취할 준비가 되어 있었다. 그리하여 어느 쪽도 종교적 경건함 같은 것은 존재하지 않았고, 수치스러운 행위를 미사여구로 정당화할 수 있는 자들은 명망이 높아졌다. 중립을 지키려던 시민들은 투쟁에 참가하기를 거절했기 때문이든, 그들만이 살아남게 될까 시새움을 샀기 때문이든, 극단으로 흐르는 두 정파의 희생양이 되었다. - P288

4권 46장
이런 일들이 일어난 것과 같은 시기에 에우뤼메돈과 소포클레스는 아테나이 함선을 이글고 퓔로스를 떠나 시켈리아로 항해하던 중 케르퀴라 섬에 들러 시내의 케르퀴라인들과 손잡고 이스토네 산에 둥지를 튼 케르퀴라인들 토벌 작전에 나섰다. 이들은 내란이 일어난 뒤 본토에서 건너와 여러 농촌 지역을 차지하고는 큰 손해를 끼쳤다. 아테나이인들은 그들의 요새를 공격하여 함락했다. 그러자 높은 곳으로 떼 지어 달아나던 그들은 용병 부대를 넘겨주고 자신들의 무구를 인도하고 아테나이 민중의 처분을 기다린다는 데에 동의했다. 장군들은 휴전협정을 맺고 그들을 아테나이로 호송할 수 있을 때까지 구금하기 위해 프튀키아 섬으로 태우고 가며, 만약 그들 중 한 명이라도 도주하려다 체포되는 날에는 휴전조약은 그들 모두에게 효력을 상실한다는 조건을 달았다.
(아래에 계속)
- P348

(위에서 계속)
케르퀴라의 민중파 지도자들은 포로가 아테나이에 도착하면 아테나이인들이 죽이지 않을까 염려되어 (인용자 주 – 죽이지 않을 것을 염려하여) 다음과 같은 음모를 꾸몄다. 그들은 섬세 있는 포로 가운데 몇 명에게 가까운 친구들을 들여보내, 아테나이 장군들이 지금 포로들을 케르퀴라의 민중파에게 넘겨주려 하니 되도록 속히 도주하는 것이 상책이며 자기들이 배를 대주겠다고 호의를 가장해 설득하게 했던 것이다. - P348

4권 47장
설득이 주효하여, 그들이 배를 대주자 포로들은 출항하려다 체포되었다. 그리하여 휴전조약은 효력을 잃었고, 포로들은 모두 케르퀴라인들에게 넘겨졌다. 일이 이렇게 된 데에는 아테나이 장군들의 책임이 작지 않았다. 그들은 비록 자신들은 시켈리아로 가야 하지만 아테나이로 포로들을 호송하는 명예를 다른 사람들이 차지하는 것을 원하지 않는다는 점을 분명히 했는데, 이러한 태도가 음모자들을 대담하게 행동하도록 부추기고, 음모자들의 논리가 설득력 있게 들리도록 했으니 말이다. 포로들을 넘겨받자 케르퀴라인들은 큰 건물에 가두었다. 나중에 그들이 포로들을 20명씩 한데 묶은 채 데리고 나가 두 줄로 나란히 늘어선 중무장보병 사이를 지나가게 하니, 개인적으로 원한이 있는 자가 보일 때마다 이들이 치고 찔렀다. 그리고 채찍을 든 자들이 그들 옆에서 걸어가며 조금이라도 늑장을 부리면 몰아세웠다. - P348

4권 48장
모두 60명이 건물에서 끌려나가 그렇게 살해되었지만, 건물 안에 잇던 포로들은 그런 줄도 모르고 이들이 이감되는 줄로 알았다. 그러나 결국 누구에게 전해 듣고 사실을 알게 된 포로들은 아텐이인들에게 자기들이 죽기를 원한다면 손수 죽여달라고 간청했다. 이제 포로들은 건물 밖으로 나가기를 거부했고, 누가 들어오면 한사코 막겠다고 말했다. 케르퀴라인들 또한 억지로 문 안으로 밀고 들어가려 하지 않고, 건물 꼭대기로 올라가 지붕을 헐더니 아래로 기왓장을 던지고 화살을 쏘아대기 시작했다. (아래에 계속) - P349

(위에서 계속)
안에 있던 포로들은 할 수 있는 데까지 방어했다. 그러나 그들은 대부분 자신들을 향해 쏜 화살을 목구멍 안으로 밀어넣거나, 마침 건물 안에 있던 침대들에서 뜯어낸 끈이나 입고 있던 옷을 찢어 만든 띠로 목을 매달아 자살하기 시작했다. 이런 처참한 고통이 진행되는 사이 밤이 되어, 거의 밤새도록 그들은 온갖 방법으로 죽어갔는데, 더러는 자살하기도 하고 더러는 지붕 위에 있는 자들이 쏜 화살을 맞고 죽었다. 날이 밝자 케르퀴라인들은 짐마차들에 포로들의 시신을 아무렇게나 던져넣고 도시 밖으로 싣고 나갔다. 요새 안에서 사로잡힌 여자들은 노예로 팔려갔다. 산속 케르퀴라인들은 케르퀴라의 민중파에 의해 이렇게 몰살당했고, 그토록 격렬하던 내전도 적어도 이번 전쟁 동안에는 그렇게 막을 내렸다. 다른 정파에는 이렇다 할 만한 것이 아무것도 남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 사이 아테나이인들은 원래 목적지인 시켈리아로 항해해가서 그곳 동맹군과 힘을 모아 전쟁을 계속했다. - P349

4권 80장
국가 노예들에 대한 그들의 정책은 언제나 자신들의 안전에 주안점을 두었다. 실제로 그들은 건장하고 젊은 국가 노예들의 수가 늘어나는 것이 두려워 다음과 같은 조치를 취하기까지 했다. 라케다이몬인들은 전쟁터에서 라케다이몬을 위해 가장 훌륭하게 봉사했다고 주장하는 국가 노예들에게는 자유를 줄 테니 빠짐없이 출두하라고 포고했다. 그러나 그것은 책략이었다. 그들은 자신이 누구보다도 자유의 몸이 될 권리가 있다고 주장하는 자들이야말로 라케다이몬에 반기를 들 가능성이 가장 높은 자라고 생각했던 것이다. 그리하여 약 2천 명이 뽑혔는데, 이들은 자신이 자유의 몸이 된 줄 알고 머리에 화관을 쓰고는 신전들 주위를 돌았다. 그러나 라케다이몬인들은 얼마 뒤 그들을 제거해버렸는데, 그들이 각자 어떻게 살해당했는지 아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그래서 라케다이몬인들은 이번 기회에 7백 명의 국가 노예들을 기꺼이 내보내며 브라시다스 밑에서 중무장보병으로 복무하개 했다. - P373

5권 11장
브라시다스를 들어올려 싸움터 밖으로 구출한 자들은 아직 숨을 쉬고 있는 그를 시내로 옮겼다. 그는 자신의 부대가 승리했다는 소식을 들었지만 얼마 뒤 죽었다. 나머지 군대는 클레아리다스와 함께 추격에서 돌아와 적군 전사자들의 무구를 벗기고 승전비를 세웠다. 그 뒤 국비로 브라시다스의 장례식이 치러졌는데, 동맹군 전원이 완전무장하고 호송하는 가운데 지금 장터 있는 곳 앞에 그를 묻어주었다. 암피폴리스인들은 그의 무덤 주위에 담을 쌓고 그 뒤로 그를 영웅으로 모시며 재물을 바쳤고, 그의 명예를 높이고자 경기대회를 창설하고 해마다 제사를 지내주었다. 또한 그에게 자신들의 식민시 창건자라는 칭호를 부여하며 하그논을 위해 세운 건물들을 허물고, 하그논이 그곳을 창건했다는 사실을 상기시키는 것을 모조리 없애버렸다. - P423

5권 14장
실제로 암피폴리스 전투가 끝나고 림피아스가 텟살리아에서 철수한 직후부터 어느 쪽도 전투를 다시 시작하지 않았고, 양쪽 다 마음이 평화에 가 있었다. 아테나이인들은 델리온에서 타격을 입은 데다 얼마 뒤 암피폴리스에서도 타격을 입은 터라, 이전에 운이 따라줄 때는 최후의 승리를 거둘 수 있다고 믿고 자신감에서 화평 제의를 거부했지만, 이제는 더 이상 그런 자신감이 없었다. 동시에 그들은 자신들의 잇단 실패에 고무되어 동맹국이 대거 반기를 들지 않을까 두려워했고, 퓔로스 사건 뒤 유리한 환경에서 평화조약을 맺지 못한 것이 후회스러웠다.
(아래에 계속) - P424

(위에서 계속)
라케다이몬인들도 나름대로 그럴 이유가 있었으니, 전쟁이 그들의 계획대로 진행되지 않았던 것이다. 아테나이의 영토를 유린하면 몇 년 안에 아테나이의 힘을 꺾을 수 잇으리라고 믿었다. 그러나 대신 스팍테리아 섬에서 스파르테로서는 전대미문의 재앙을 당했고, 퓔로스와 퀴테라를 거점으로 그들의 영토에 대한 약탈 행위가 자행되었으며, 국가 노예들은 계속해서 도주했다. 또한 남아 있는 자들도 국외에 잇는 친구들의 사주를 받아 과거에 그랬듯 현재 상황을 이용해 반란을 일으킬 가능성을 안고 있었다. - P424

5권 15장
그런 점들을 고려하여 양쪽은 평화조약을 맺기로 결심했다. 라케다이몬인들이 그러기를 더 열망했는데 섬에서 포로로 잡힌 자들을 돌려받아야 했던 것이다. 이들 포로 가운데 스파르테인들은 정부 요인ㄷㄹ이거나 요인들의 친족이었기 때문이다. - P425

5권 26장
나는 사건의 의미를 이해할 만한 나이에 정확히 알려고 주의를 기울이며 전쟁을 처음부터 끝까지 체험했으며, 또 암피폴리스에서 군대를 지휘하다가 20년 동안 조국에서 추방되기도 했다. 그래서 양쪽 사정을, 추방된 사람의 입장에서 특히 펠로폰네소스 쪽 사정을 잘 볼 수 있었는데, 그런 여가는 내가 본 것을 냉정하게 고찰할 기회도 주었다. 그래서 나는 지금 10년 전쟁 뒤에 불화를 겪고 조약이 파기되고 뒤이어 전쟁이 시작된 경위를 기술하려 한다. - P434

5권 103장. 멜로스 대화. 아테나이 발언
위기를 맞으면 희망이 위안이 되겠지요. 다른 재원을 충분히 갖고 희망에 기댄다면 희망 때문에 해를 입기는 해도 파멸하지는 않겠지요. 그러나 가진 것을 한판에 모두 거는 사람은 망한 뒤에야 희망이 무엇인지 알게 되겠지요. (희망은 본시 낭비벽이 심하다오.) 그래서 희망이 무엇인지 알고 조심할 수 있을 때는 이미 그에게 남은 것이라고는 아무것도 없지요. 여러분은 미약하고 백척간두에 서 있는 만큼 스스로 그런 함정에 빠지지 않도록 조심하시오. 그 밖에도 여러분은 다급해진 자들의 흉내를 내지 마시오. 그들은 인간적인 수단으로 아직 자신을 구할 수 있는데도 눈에 보이는 희망이 사라지면 눈에 보이지 않는 것들, 이를테면 예언이나 신탁처럼 희망을 품게 하여 파멸로 인도하는 온갖 것들에 의지하지요. - P484

6권 13장. 니키아스 연설
여러분도 아시다시피 대개 욕심은 실패하고 선견지명은 성공하는 법입니다. 그러니 여러분은 지금 백척간두에 서 있는 조국을 위해 이번 발의에 반대표를 던지시고, 시켈리아의 헬라스인 이주민이 효과적인 장벽인 자신들과 우리 사이의 경계를 계속해서 존중하는 한 자신들의 나라에 살며 스스로 자신들의 업무를 처리하는 쪽으로 결의하십시오.
- P503

6권 18장. 알키비아데스 연설
다른 제국들의 경우도 마찬가지겠지만, 우리가 이만한 제국을 세울 수 있었던 것은 헬라스인들이든 비헬라스인들이든 우리에게 도움을 요청하면 우리가 언제나 적극적으로 도와주었기 때문입니다. (중략) 그리고 우리는 우리 제국이 얼마나 커지기를 원하는지 딱 잘라서 말할 수 없습니다. 현 단계에서 우리는 지금 우리에게 예속된 자들은 통제하고 다른 자들은 예속시킬 계획을 세울 수밖에 없습니다. 우리가 남을 지배하지 않으면 남이 우리를 지배할 위험이 있기 때문입니다. 잠자코 있는 것은 여러분이 선택할 수 있는 일이 아닙니다. 다른 사람들은 그렇게 할 수 잇어도, 여러분은 그럴 수 없습니다. 여러분이 그에 맞춰 생활 방식을 완전히 바꾸기 전에는 말입니다. 그러니 그곳에서의 전쟁이 이곳에서의 우리 힘을 증강시켜준다고 확신하고 출항합시다. - P504

6권 33장 헤르모크라테스 연설
헬라스인들이든 비헬라스인들이든 본국에서 멀리 파견된 대군이 성공한 예는 드뭅니다. 침략군이 현지 주민과 그들의 이웃보다 수가더 많은 경우는 없으며(위협을 느끼고 모두가 똘똘 뭉치기 때문입니다), 침략군이 이국에서 보급이 잘 이루어지지 않아 실제로 그 때문에 자멸해도 승리의 영광은 그들이 공격하려 한 자들에게 돌아가기 때문입니다. 아테나이인들 자신의 경우가 그렇습니다. 페르시아 침략군이 뜻밖에도 대패한 뒤 그들이 강국으로 떠오른 이유는, 페르시아인들이 아테나이를 목표로 출정했다고 믿어졌기 때문입니다. 하거늘 우리의 경우에도 같은 일이 일어나지 말란 법이 어디 있습니까. - P518

6권 39장 아테나고라스 연설
민주정체는 현명하지도 공정하지도 못한 체제이며, 재산가가 통치자로서는 최적임자라고 말하는 사람들도 있을 것입니다. 그러나 내가 말하고자 하는 바는, 첫째, ‘민중’은 국가 전체를 뜻하는 반면 소수자에 의한 정부인 ‘과두정체’는 국가의 일부를 의미할 뿐이며, 둘째, 국고를 관리하는 데는 부자들이 최적임자이고 조언자로는 지성인들이 최적임자이며, 여러 가지 논의를 듣고 결정하는 데는 대중이 최적임자인데 민주정체에서는 이들이 개별적으로도 집단적으로도 동등한 지분을 갖는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과두정체는 위험은 대중에게 분담시키면서도 이익은 소수자가 대부분 차지하거나 독차지합니다. - P525

6권 69장
그래서 그들이 앞으로 나아가, 쉬라쿠사이인들은 자신들의 조국을 위해 그리고 그들 각자는 자신의 생명과 앞으로의 자유를 위해 싸웠다. 한편 아테나이인들은 남의 나라를 정복하고 패배시킴으로써 자신들의 나라에 해를 끼치지 못하게 하려고 싸웠다. 아르고스인들과 그 밖의 다른 자치 동맹군은 아테나이인들이 목표로 한 것을 정복하도록 도와줌으로써 그 대가로 두고 온 조국을 다시 볼 수 있기 위해 싸웠다. 종속된 동맹군은 주로 당장 목숨을 구하려고 최선을 다해 싸웠는데(그것은 이기지 않으명 기대할 수 없었다), 그 밖에도 그들은 자신들이 아테나이가 계속해서 정복하도록 도와주면 자신들에 대한 억압에 줄어들 것이라는 희망도 품었다. - P547

7권 29장
그래서 이렇듯 재정적인 어려움을 겪고 잇던 아테나이인들은 추가 지출을 줄이기 위해, 너무 늦게 도착하여 데모스테네스와 동행할 수 없게 된 트라케인들을 바로 돌려보냈던 것이다. 귀국하는 그들을 인솔하는 책임은 디에이트레페스가 맡았는데, 그는 에우리포스 해협을 통과하게 되어 있는 만큼 바닷가를 따라 항해하면서 적군에게 되도록 많은 피해를 입히라는 지시를 받았다. (중략) 그는 뮈칼렛소스에서 16스타디온쯤 떨어져 있는 헤르메스 신전에서 몰래 숙영하고 날이 새자 그다지 크지 않은 도시를 공격하여 함락했다. (중략) 트라케인들은 시내로 쳐들어가 집과 신전을 약탈하고 노소 불문하고 주민을 도륙하기 시작했다. 그들은 아이든 여자든 만나는 족족 죽였고, 짐 나르는 가축과 다른 생명체도 보이는 족족 죽였다. 이들 트라케인은 두려워할 것이 없을 때는 야만족 중에서도 가장 피에 굶주린 부족이기 때문이다.(아래에 계속) - P602

(위에서 계속)
그래서 그들은 이때 사방이 아비규환이고 온갖 형태의 죽음이 널브러져 있는 것으로도 모자라, 그곳에서 가장 큰 학교로 쳐들어가 막 교실에 들어간 아이들을 모조리 도륙했다. 그리하여 지금까지 겪은 어떤 재앙보다 더 크고 더 갑작스럽고 더 무시무시한 재앙이 온 도시를 덮쳤다.

7권 30장
그사이 테바이인들이 이 소식을 듣고 구원하러 달려와서는 트라케인들이 멀리 가기 전에 따라잡아 약탈품을 되찾고 그들을 싣고 온 함선이 정박한 에우리포스 해협의 바닷가로 겁에 질린 그들을 추격했다. 그들 가운데 죽은 자들은 대부분은 헤엄칠 줄 몰라 배에 오르려다가 죽었고, 배를 탄 자들은 육지에서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는지 보고는 화살의 사정거리 밖에다 함선을 정박시켰다.
(아래에 계속)
- P602

(위에서 계속)
퇴각할 때 트라케인들은 질서정연했는데, 그들은 먼저 공격해오는 테바이 기병대에 맞서 감자기 달려나갔다가 밀집대형을 이루고 후퇴하는 트라케 특유의 작전을 펼침으로써 자신들을 잘 지켜냈던 것이다. 그래서 이 과정에서 죽은 자들은 많지 않았지만, 상당수가 약탈하려고 시내에 남아 있다가 잡혀 죽었다. 트라케인들은 1천3백명 중에서 모두 250명이 죽었다. 테바이인들과 다른 동맹군으로 구성된 구원 부대에서는 테바이의 보이오티아 연맹 지휘관 중 한 명인 스키르폰다스를 포함하여 약 20명의 기병과 중무장보병이 죽었다. 뮈칼렛소스는 인구의 대다수를 잃었다. 뮈칼렛소스는 그런 재앙을 당했다. 도시의 규모를 고려할 때 그것은 전쟁 중에 발생한 어떤 재앙보다 더 동정을 살 만한 사건이었다. - P602

7권 86장
쉬라쿠사이인들과 그들의 동맹군은 군대를 한데 집결시킨 다음 전리품을 챙기고 되도록 많은 포로를 끌고 도시로 돌아갔다. 그들은 끌고간 아테나이인들과 그들의 동맹군 포로를 채석장들에 수용했는데 그것이 이들을 붙들어두는 가장 안전한 방법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그들은 니키아스와 데모스테네스는, 귈립포스의 반대를 무릅쓰고 목을 베었다. 귈립포스가 반대했던 이유는, 승리한 데다 적정들을 라케다이몬으로 끌고 가기까지 한다면 그야말로 금상첨화가 되리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중략) 일부 쉬라쿠사이인들은 니키아스가 고문당하면 자신들과 접촉한 사실을 토설하여 모두의 성공에 재를 뿌리지 않을까 두려워했다고 한다. (중략) 그래서 이들이 동맹군을 설득하여 그를 처형하게 했다. 그러나 그렇게 비참한 최후를 맞는다는 것은 적어도 우리 시대의 헬라스인들 중에서는 그에게 가장 어울리지 않는 것이었다. 그는 평생토록 덕을 함양하고 실천하는 일에 헌신했으니 말이다. - P649

7권 87장
쉬라쿠사이인들은 채석장들에 수용된 포로를 가혹하게 다루었다. 그들은 좁은 구덩이에 다수가 한꺼번에 갇혀 있는 데다 지붕이 없어서 처음에는 뙤약볕과 숨 막히는 더위 때문에 고생이 심했고, 가을로 접어들면서는 밤공기가 싸늘해지자 급변하는 기온 탓에 환자가 속출했다. 공간이 협소한 까닭에 그들은 모든 것을 한곳에서 처리하지 않을 수 없었다. 게다가 부상이나 기온 변화 등으로 죽은 자들의 시신이 켜켜로 쌓여 있어 악취가 진동했다. 그들은 또 굶주림과 갈증에 시달렸다. 8개월 동안 그들에게는 1인당 하루에 물 1코튈레(4분의 1리터)와 곡식 2코튈레씩 배급되었기 때문이다. 그들은 그런 곳에 갇힌 자들이 겪을 것으로 생각되는 온갖 고통을 겪었다. 약 70일 동안 포로들은 모두 그렇게 살았다. 그 뒤 아테나이인들과 그들 편에서 싸운 시켈리아나 이탈리아의 헬라스인 이주민을 제외하고 나머지는 모두 노예로 팔렸다. 포로들의 수를 정확히 말하기는 어렵겠지만 분명 7천 명을 밑돌지는 않았다. - P650

8권 1장
이 소식이 아테나이에 전해지자, 사람들은 현장에서 사건을 직접 목격하고 도주해온 병사들한테서 정확한 보고를 받고도 한동안 믿으려 하지 않았다. 그들은 자신들의 군대가 전멸했다는 것이 여전히 믿어지지 않았던 것이다. 그 뒤 그것이 사실임을 알게 되자 그들은 마치 자기들은 거기에 찬성표를 던지지 않은 양 원정을 촉구한 정치가들을 원망했으며, 예언자들과 점쟁이들과 그 밖에 그때 여러 가지 방법으로 신탁을 풀이하며 자신들에게 시켈리아를 정복할 수 있으리라는 희망을 불어넣었던 모든 사람들에게 격분했다. 어느 쪽을 보아도 고통밖에 없어서, 이번 사건으로 그들은 두려움에 떨었고 유례없이 경악했다. - P654

8권 1장
하지만 그들은 자원이 남이 있는 한 항복하지 않았고, 대신 어디든 구할 수 있는 곳에서 선재를 구해와 함대를 의장하고, 군자금을 모으고, 동맹국들, 특히 에우보이아가 여전히 우군으로 남도록 노력하기로 결정했다. 또 국고 지출에 경제와 개혁의 원리를 도입하고, 그때그때 필요에 따라 의제를 사전 협의할 수 있도록 원로회를 선출하기로 결의했다. 민주정체에서 흔히 그러하듯, 민중은 이제 공포감이 휩싸인 나머지 어떤 종류의 규율도 받아들일 각오가 되어 있었다. 그리고 그들은 결의 사항들을 이행하기 시작했다. 여름은 그렇게 지나갔다. - P655

8권 82장
그 밖에도 이런저런 말을 듣고 사모스의 아테나이인들은 즉시 알키비아데스를 이전의 장군들과 함께하도록 장군으로 뽑아서 모든 것을 그에게 일임했다. 그들은 저마다 자신이 무사히 구원받고 4백 인을 응징하게 될 것이라는 현재의 희망을 세상 어떤 것과도 바꾸지 않았을 것이다. 그런 약속에 현혹되어 그들은 적군이 지척에 있다는 사실도 무시하고 당장이라도 페이라이에우스 항을 향해 출발하고자 했다. 그러나 알키비아데스는 다수가 재촉하는데도 가까이 있는 적군에게 등을 돌리고 페이라이에우스 항으로 항해하기를 딱 잘라 거절했다. 그는 이제 장군으로 선출된 만큼 먼저 배를 타고 팃사페르네스를 찾아가 전쟁을 수행하 계획을 짜야 한다고 말했다. (중략) 사실 알키비아데스는 아테나이인들을 팃사페르네스에 대한 압력 수단으로, 팃사페르네스를 아테나이인들에 대한 압력 수단으로 이용했던 것이다. - P714

8권 86장
그리고 5천 인도 모두 번갈아 정부에 참여하고 있으며, 병사들의 가족들은 카이레아스가 모함하려고 보고한 것과 달리 학대받기는커녕 아무 피해도 입지 않고 안전하게 자신의 재산을 즐기고 있다고 했다. 사절단은 그 밖에도 많은 말을 했지만, 청중은 더 이상 들으려 하지 않았다. 대신 병사들은 다시 분통을 터뜨리며 이런저런 제안을 했는데, 대부분이 페이라이에우스를 공격하자고 했다. 이때 알키비아데스가 처음으로 조국에 크게 공헌했다고 할 수 있을 것이다. 사모스의 아테나이인들이 본국의 동포들을 공격하려고 출항하려 했을 때그랬더라면 적군은 의심의 여지없이 당장 이오니아 지방과 헬레스폰토스를 점령했을 것이다) 알키비아데스가 그들을 제지했으니 말이다. 그 순간 다른 사람은 아무도 군중을 제지할 수 없었을 것이다. 그러나 그는 그들이 본국의 동포들을 공격하려고 출항하는 것을 막았으며, 私感에서 사절단에게 분통을 터뜨리는 것은 창피한 짓이라고 나무라며 그러지 못하게 제지했다. - P718

8권 96장
에우보이아에서 무슨 일이 벌어졌는지 전해지자 아테나이인들은 전에 없이 공황 상태에 빠졌다. 당시에는 엄청나 보이던 시켈리아의 대참사도, 그 밖의 다른 일도, 아테나이인들을 이처럼 두려움에 휩싸이게 하지는 않았다. 하긴 어떻게 절망하지 않을 수 있겠는가? 사모스에 있는 군대는 반란을 일으켰고, 예비 함선들도 거기에 승선할 선원도 남아있지 않았으며, 본국에서는 당파싸움으로 언제 내전이 벌어질지 모르는 마당에 함대를 잃고, 설상가상으로 앗티케 자체보다 더 중요한 생명선인 에우보이아마저 잃는 이런 엄청난 타격을 받았는데. 그러나 그들의 가장 크고 가장 직접적인 두려움은 적군이 승리에 고무되어 지킬 함대도 없는 페이라이에우스 항으로 곧장 자신들을 공격해 오지 않을까 하는 것이었다. 그리고 그들은 당장이라도 적군이 그곳에 나타날 것으로 예상했다. - P729

8권 96장
아닌 게 아니라 펠로폰네소스인들이 좀 더 대담했더라면 어렵지 않게 그렇게 할 수 잇었을 것이다. (중략) 그러나 전에도 여러 번 그런 적이 있었지만, 이번에도 라케다이몬인들은 아테나이인들에게 가장 상대하기 편한 적이라는 사실이 드러났다. 특히 해양 국가인 아테나이에는 민족성의 현격한 차이가 큰 도움이 되었는데, 말하자면 아테나이인들은 민첩하고 진취적인 데 반해 라케다이몬인들은 느리고 모험을 싫어했다. 이 점은 쉬라쿠사이인들에 의해 입증되었다. 그들은 아테나이인들과 성격이 가장 비슷했고, 그래서 이들을 상대로 가장 잘 싸웠던 것이다. - P7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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