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태준 전집 6 - 사상의 월야, 법은 그렇지만 - 장편, 깊은샘 신서 15 이태준 문학전집 18
이태준 지음 / 깊은샘 / 1988년 10월
구판절판


"할머니, 여기 정서방은 왜 없수?"
할머니는 얼른 대답하지 않으셨다. 상전이라기보다는 무슨 上官처럼 떠받들던 이감리의 한많은 백골을 자기 등으로 져다가 그의 선영에 봉안해 놓고 돌아설 때 우둔한 가슴에나마 감개의 불길이 가시지 않았다. 전날 이감리의 말씀을 들으면
"의병 그들이야 욕하지 말라. 그들이 끓는 피야 얼마나 귀한 거냐. 다만 그들을 거느린 사람들이 시세를 분별하지 못하니....."
한이라는 것이었다. 나리님이 생병이 들어 돌아간 생각만 하면, 원수 같은 그들이지만, 나리님 자신으로도 그들을 의로운 사람들이긴 피차가 마찬가지라 일컬었고, 이제와 불둑거리는 심사를 휩쓸려볼 데가 따로는 없는 것이라, 의병대에 뛰어들고 말은 것이다. ‘돌다리’가 어딘지 돌다리 접전에 죽었다는 말도 있고, 거기서는 살았으나 행방을 모른다는 말도 있는 것이다.-44쪽

특히 송빈이에게 깊이 가슴에 새겨진 것은 伊藤博文 작이라는 漢詩 구절이었다.

男兒立志出鄕關 사나이 뜻이 서서 향관을 떠난 바에
學若無成死不還 배워 이룸이 없이야 죽은들 돌아올 것가.
埋骨豈期墳墓地 뼈 묻기를 어찌 분묘지에 기약하리요
人間到處有靑山 인간 이르는 곳마다 푸른 산은 있도다.


-70쪽

이들도 시험이 끝난 날 저녁이다. 은주 어머니는 송빈이와 은주더러 활동사진 구경이나 갔다오라 하였다. 송빈이는 우미관으로 갈까 단성사로 갈까 하는 은주를 데리고 조선호텔로 온 것이다. 전에 윤수아저씨를 따라 한 번 와본 적이 있는 로오즈 가아든으로였다. 호텔 후원에는 여러 가지 장미가 밭으로 피었는데, 오십 전만 내고 들어오면 꽃구경은 물론이요 이왕직 악대의 음악 연주도 있고, 아이스크림도 주고 나중에는 활동사진으로 금강산 구경까지 하는 것이었다.
송빈이는, 장미꽃과 장미꽃 사이를 은주와 가지런히 앉으며, 노서와 소설에 흔히 나오는 리라꽃 그늘을 걷는 애인과 애인의 환상을 그려볼 때, 금시 살이 찌듯 소담한 행복감에 마음이 무거웠다. 같이 의자에 앉았고, 같이 음악을 듣고, 같이 아이스크림을 먹고, 같이 금강산의 절경을 바라보고, 폭포가 나오면 같이 손뼉을 치고, 그러다가 송빈이 손은 은주의 손을 덥석 잡아보았다. 보드라운 은주의 손도 잡히지만 않고 꼭 잡아 주기도 하는 것이었다.-129쪽

아침 여섯시면 鍾峴 천주교당에서 으레 종소리가 울려왔다. 뎅- 뎅.... 단조한 금속의 소리나, 고통과 원망과 고독과 피곤으로 찬 송빈이의 귀에는 그냥 최고 최대의 음악이었다.
"여기 인생의 진리와 위안이 있으니 오라." 부르는 것 같고 "참아라, 믿어라, 오직 사랑해라"하고, 인종의 신념을 돋아주는 것도 같았다. 송빈이는 종소리가 나면 벌떡 일어나 무릎을 꿇었다.
"종교란 인류가 불행하기 때문에 생겼을 거다! 그러면, 종교란 인류이 불행을 구할 수 있어야 할 것 아닌가? 종교!"
송빈이의 외로운 마음은 무엇에나 의지부터 하고 싶었다.(아래에 계속)-162-163쪽

(위에서 계속)송빈이는 하루 아침 다섯시에 일어났다. 아침 미사종이 울리기 전에 천주교당으로 올라왔다. 처음 와 보는 데다, 거의 남산의 중턱 만큼이나 높은 지대여서 장안이 눈 아래 즐비하게 깔린다. 교당은 가까이 와 보니 높다는 것보다는 장엄스러운 편이었다. 서울의 여명은 먼저 이 교당 첨탑에 비치는 것이며 좌우 낭하의 홍예문들은 거기가 곧 천국에 들어가는 문처럼 위엄스러웠다. 새벽 하늘의 이슬이나 받아 먹고 사는 듯한 눈 맑인 神父들이 검은 법의자락을 끌며 깊은 사색에 쌓여 거닐었고 한두 사람씩 모여드는 평신도들도 아직 먹고 자기는 항간에서 하되 언제든지 우리의 돌아올 데는 여기라는 듯이 뒤 한번 돌아다들 보지 않고 극히 평화스럽고 담박한 얼굴들이었다. 송빈이는 그네들이 다 회당 안으로 사라질 때까지 먼 발치서 바라보았다. 종이 울렸다. 각일 각 어둠이 물러가는 장안은 돋아오르는 해로 인해서가 아니라, 여기서 울리는 종소리 때문에 광명에 차지는 것 같았다. 장안은 내려다볼수록 웅성거리기 시작했다. 연기가 일어나고 갖은 수레가 달리고 즐비한 기와집들, 거만스럽게 울둑불둑 솟은 고층 건축들.
(아래에 계속)-162-163쪽

(위에서 계속)
"모두 사람들은 사는 거다! 현실적으로 굳세게 사는 거다! 유팔진이와 장은주도 저아래서 현실적으로 행복을 경영하며 있다! 사람은 물론 너 나 할 것 없이 죽고 만다. 죽을 바엔 애써 무엇하랴? 하는 것 그것 역시 厭世가 아닌가? 자살은 패배다! 패배자다!"
송빈이는 주먹을 불끈 쥐었다. 웅성거리는 장안은 웅성거리는 군중의 얼굴들로 보였다.
"지금은 차서 넘치는 이 서울 장안도 고려 땐 한낱 보잘것없는 산촌에 불과했을 것이다! 사람의 힘이란 얼마나 큰 거냐. 이 무한한 가능성에 찬 것이 사람의 힘이요, 그 중에도 사내의 힘이요, 그 중에도 청년의 힘일 것이다! 한낱 계집애를 원망함으로써 입맛을 잃고 학문을 게을리하고 청운의 뜻을 저버리고, 아! 내 아버지의 망명고혼을 생각해선들!"
송빈이는, 한 폭의 지도처럼 서울을 짓밟는 기세로 종현을 뚜벅뚜벅 내려왔다.
"지금은 첫째도 공부요, 둘째도, 세째 네째도 공부다!"-162-163쪽

송빈이는 또 한편 학교(인용자주-휘문고보. 민비의 조카이며 구한말의 세도가인 민영휘가 설립)에도 불평이 커가기 시작했다. 말이 중학생이지 나이 삼십이 넘은 사람까지 있어 평균 이십대의 청년들이었고, 이들의 정신적 요구가 중학교 학과에나 만족할 리 없는데, 그나마 학과에 충실한 선생보다는 밤낮 시간에 들어오면 학교자랑과 교주의 예찬과 운동선수의 자랑으로 흐지부지였다.
송빈이는 첫째 교주에게 존경보다는 그와 반대였다. 그가 전날 평안감사로 가서 어떤 치적을 남기고 왔다는 것은 전에 順川에서도 들었거니와, 그런 어른으로 가끔 신문에 보면 효자나 열녀가 나면 으레 상급을 내리는 것이었다. 아직도 자기는 한 城主인 양 남의 아들 남의 아내에게 금시계니 금반지니를 내리는 것이었다. 송빈이 또래 몇은
"우리 같음 그까짓 것 받지 않겠다!"
하고 비웃은 일이 있다.
"오늘날에야 자기가 하상 무언데? 자기가 상을 준다면 고작 자기가 경영하는 교직원이나 학생에게지 민중이나 백성들에게 무슨 권한이 있을 것인가?"
송빈이는 자기한테 그처럼 고마우신 교장선생께까지 불평은 번져나가기 시작했다.-168-171쪽

(위에서 계속)
이런 일이 있었다. 여름 방학이 머지 않았는데 갑자기 평양으로 수학여행을 간다하였다. 시기로 보나, 처소로 보나, 전례가 없는 행사라 단순한 수학여행이 아니었다. 중앙에서 배재에서 부랴부랴 축구선수를 끌어다가 교표와 교복단추를 바꿔 달아 놓더니, 이 벼락 축구팀을 평양으로 데리고 가는 것이었다. 여행단에게 교장의 훈시는 근래에 드문 열변으로 이런 구절이 튀어나오기까지 하였다.
"학교팀이든 사회팀이든 모주리 이겨야 한다! 아뭏든 평양을 꺾어 놓구 와야 한다! 평양을 못 꺾구 오면 우린 교주 선생을 대할 면목이 없는 거다! 그야 반대루 평양만 휩쓸구 올라오면 우리 학교는 장래에 큰 서광이 비칠 것이다."
이 서광이란 재단법인을 의미하는 줄은 또 교주가 평양과 격진 감정을 일학년생들도 다 직각하였다. (아래에 계속)-168-171쪽

(위에서 계속) 물론 학교 하나를 영구한 반석 위에 세워 놓기 위해서는 수단의 여하를 가리지 않는 늙은 교장의 눈물겨운 노력에는 차라리 감격할 이유도 한편에는 없지 않으나 그러나 수단이 교육가로서는 최선의 것이 아니었고, 그의 밑에 있는 교직원과 팔백 명 학생이 너무나 이용당하는 것이었다.
무슨 운동시합을 이기면 전교학생이 학교에보다 교주댁 마당으로 먼저 들어갔고, 가서는 그 여러 마님들과 아씨들까지 치장을 차리고 나타나도록 한 시간이건 두 시간이건 뜰 아래 서 있어야 했고, 이윽고 가족사진이나 찍는 것처럼 의자가 정된이 된 두에 교주를 중심으로 전 가족이 앉을 자리에 앉고 설 자리에 서야, 그제야 교장이 나서서 시합 경과를 보고하였고 "교주만세"를 세 번 부르는 것이었다. 그리고 운동부에 금일봉을 내리라는 분부를 받고, 최경례를 하고 나오는 것이었다. 원족을 갔다가도 교주댁 산소 앞이면 그냥 지나지 않았고 교주의 생일날에도 학생들은 몇 주일동안 창가를 연습해 가지고 가 불러야 하였다. (아래에 계속)-168-171쪽

(위에서 계속) 한 번은 오후 첫시간인데 갑자기 집합종이 울렸다. 선생들도 눈이 뚱그래 사무실로들 달려갔다. 장난은 종을 치는 소사가 아니라 좀더 높은 데 있었다. 교주께서 바람을 쏘이시려 장충단 공원으로 가셨다가 넓은 마당을 보니 팔백 명 학생을 한 번 한 뜰에 세워놓고 보시고 싶다는 전화가 왔다는 것이었다.
학교는 소사 하나만 남고 장충단으로 쓸어나왔다. 두 체조선생은 이번에 교주께서 흡족히 보신다면 말만 있어 내려오던 운동장 늘리는 것은 실현될 것이라고 학생들이 발을 하나 잘못 맞추어도 서슬이 시퍼래 눈을 부르떴다. 장충단에 이르자 교주께 경례를 하고, 교가를 부르고 곧 합동 체조가 시작되는데 교주께서 학생들을 웃저고리는 벗기라는 분부가 내렸다. 체조선생은 곧 분부대로 호령을 내렸다. 팔백 명 학생이 일시에 웃저고리를 벗어 한 걸음 앞에 내려 놓는데 오직 한 학생만이 꼼짝않고 웃저고리채 서 있는 것이었다. 그는 송빈이었다.
(아래에 계속)-168-171쪽

(위에서 계속)
체조선생은 대뜸 송빈이에게로 달려왔다. 뺨부터 철썩 붙였다.
"귓구멍 맥혔어? 누깔두 없니?"할수없이 송빈이는 단추를 끌렀다. 샤쓰가 아니라 그냥 맨살의 가슴이 나왔다.
"뭐냐 이건?"
"가슴이올시다."
"이놈아 학교서 지정해 준 내읠 어째 안 입었니?"
"사지 못했습니다.""교줏댁 부인네들도 계신데 이게 무슨 추태냐?"
"그래 못 벗었습니다."
"내의라도 학교서 지정한 게 있는 이상 교복이다. 교측이다. 넌 교측을 위반한 놈이야."
"어떡허랍니까?"
"빨리 단추를 다시 채지 못해? 냉큼 저리 나가!"
"네."
"저 산속에 가 있다 끝나거든 나헌테 와."
송빈이는 단체에서 빠져나와 교주께서 여러 남녀 부하들과 앉아 있는 반대쪽 산으로 올라왔다.
"공부허다 말구 나와 이건 다 뭔가? 제 돈 갖다 제 밥 먹구 공부하는 학생들을 저희 치렛거리 무슨 儀仗兵으로 아는 셈인가?"
교주의 일종 관병식은 한 시간 뒤에 끝이 났다.
-168-171쪽

송빈이는 돈이라고 모두 오 원이 달지 말지 한 것을 주머니 속에 더듬어 만져보는데, 누가 어깨를 툭 친다.
"이리 나와."
양복쟁이다. 형산인 줄은 이내 알았다. 뒤를 돌아보니 승객들이 까맣게 연대었다. 나서면 모처럼 중간에 끼인 위치는 잃어 버리고 말 것이다.
"왜요?"
"나서기 싫다 말이지? 그럼 그냥 서 있어 봐."
하더니, 잠자코 가 버린다. 송빈이는 속으로 형사치고는 꽤 순하다 생각하였다.
이내 행렬이 움직이기 시작했다. 송빈이도 옆에 놓았던 빠스켙을 들고 움짓움짓 나섰다. 배에 걸친 사닥다리에 올라가려 할 때다 옆에서 아까와는 다른 양복쟁이가 소매를 잡아다린다.
"도향 증명."
"도항 증명요?"
송빈이는 놀랄 수밖에 없다.
"도항 증명두 없이 배를 탈랴구 그래?"
"어디서 맡습니까?"
"저어기 수상서루 가 맡아 와."
하고 정거장 쪽을 가리킨다.보니까 그쪽으로 두리번거리며 뛰어가는 사람이 한둘이 아니다. 송빈이도 그쪽으로 뛰는 수밖에 없다. 긴 부두를 다 나와서도 이백미터 경주는 되게 뛰어야 했다. 형사들은 조선사람의 얼굴은 그처럼 잘 집어내면서 왜 미리 알려 주지 않았는지 원망스러웠다. (아래에 계속)-184-187쪽

(위에서 계속) 하기는 아까 그 행렬에서, 나서라던 형사가 도항증 이야기를 하려고 그랬는지 모른다.
송빈이는 그 종이쪽에 渡航證이라는 도장을 찍어 주는 데로 와서는 다시 한 번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노동자들, 옷주제 망칙한 그의 아내들, 그의 어머니들, 갓을 쓴 노인도 있는 그의 아버지들, 그리고 양복쟁이들, 한마당 욱실거리며 저마다 도항증을 얻으려고 애쓰는 정경이다. 이런 현실이 따로 기다리고 있는 것을 송빈이는 전혀 몰랐다. 배가 떠날 시간은 가까워 오는데 줄지어 늘어선 것만 해도 오십 명은 된다. 게다가 이내 도장만 찍어 주는 것이 아니라 원적이 어디냐? 이름이 무어냐? 무엇하러 가느냐? 시시콜콜이 캔다. 제 원적, 제 성명 하나 얼른 써 놓는 사람도 몇이 안된다. 급하기만 한 여러 가지 사투리들은 무슨 메누리가 아일 나러 왔다간다느니, 아들이 무슨 공장에서 병들어 죽어간다고 편지가 왔다고 꾸겨진 하도롱 봉투를 꺼내드는 늙은이, 몇 사람의 학생들을 내놓고는 모두 그들의 차림과 같이 궁상들이다. (아래에 계속)-184-187쪽

(위에서 계속) 무엇을 표준으로 가리는 것인지 도장을 찍어주지 않고 밀어내는 사람도 여럿인데 송빈이도 그만 이 밀어내는 축에 끼어졌다. 왜 서울서 학교를 마치지 않고 가느냐는 것이다.
"옳지! 휘문이 이번에 동맹휴학을 했지? 거기 주모자루 퇴학을 당헌 게지?"
하고 형사는 송빈이의 눈 속을 찌르듯이 들여다보는 것이다.
"왜 대답을 못해? 이번 맹휴에 주모자지? 경성 종로 경찰서루 전보 한 장이면 대뜸 알 수 있는 거야. 그따위 불온분잔 더구나 진재 직후라 절대루 도항 안시켜."
하고, 다시는 말대꾸도 안하는 것이다. 송빈이는 눈앞이 캄캄하다. 부두에서는 배 떠나는 징소리가 울려온다. 도항증을 받아쥔 사람들은 미친 듯이 뛴다. 신짝이 벗어져 달아났으나 집기는커녕 돌아볼 새도 없이 버선 바닥으로 뛴다. 내 아들 나 보러 가는데 왜 안 보내주냐고 악을 쓰는 노파도 있다. 저녁배나 타게 해 달라고 "나으리 나으리" 하고 조르는 사람도 있다.(아래에 계속)-184-187쪽

(위에서 계속) 양복을 입고 금테안경을 쓰고 꽤 신사로 차린 사람인데
"이거 적선허시는 일레루...... 나리께서 도장 한 번 찍어 주심 만사가 핍니다그려. 살려 주수!"
하고 인사 체면 없이 쩔쩔매는 사람도 있다. 사실 빌어서 되는 일이라면 송빈이도 빌어 보고도 싶다. 주위에 보는 사람이라고는 다 남이다. 누구 앞에 구구스럽게 애결했다는 무슨 표적이 붙는 것도 아니다. 어떻게 해서든 도항증만 얻어 가지고 이 자리만 떠나면 고만이다.
"빌어 봐? 누구헌테 어떻게 빌어야 허나? 무엇을 잘못했다구 빌어야 허나?"
뱃시간이 지나자 형사들은 하나도 곁을 안 주고 어디론지 뿔뿔이 흩어져 버리는 것이었다.
송빈이는 낯선 부산의 거리거리를 우울히 헤맸다. 혹시라도 아는 사람을 만나 도항증을 얻을 무슨 길이 생길까 하는 일루의 희망도 품어 사람의 얼굴마다 자세히 살폈으나, 낯익은 얼굴은 만날 수 없었다.
점심때가 지나서는 정거장 대합실에서 한 사람을 만났다. 이 어쩌다 한 사람의 낯익은 얼굴이란 아침에 배를 타려고 행렬에 끼어섰을 때 송빈이더러 "이리 나와" 하던 형사였다.
(아래에 계속)-184-187쪽

(위에서 계속)
송빈이는 그의 앞으로 가 모자를 벗었다.
"오 오마에까! 왜 아침배에 못 떠났어?"
하고, 다 알고 있다는 듯이 샛노란 윗수염을 찡긋해 조소를 보인다.
"저어......"
"무엇하러 가는 거야?"
"공부 갑니다."
"공부?"
"제가 아침엔 누군지 몰라뵙구..... 잘못했습니다."
"동경 유학 가는 사람들은 대개가 건방지단 말야!"
"잘못했습니다."
"돈나 에라이 히도데모 이찌도와 민나 보꾸나 데니 가까루까라나! (아무리 훌륭한 사람이라도 한번은 모두 내 손에 걸리는 거니까!)"
송빈이는 모기소리 만큼
"나리님!"
해 보았다. 그는 또 씽긋 웃었다.
"이담 동경서 사각몰 쓰구 나올 때두 날더러 나리님 그럴까?"
"......"
송빈이는 차마 "그러믄요" 소리까지는 나와지지 않았다.
"흥 저거 보지! 당장 궁허니까 나리님이지 도항증만 손에 받어 쥐어 보지! 그 자리서 속으룬 욕을 헐 걸? 아니 지금두 속으론 내가 밉지?"
하고, 눈알까지 노란 것이 쏘아볼 뿐 아니라 단장 끝으로 송빈이의 배를 꾹 찌르는 것이었다. 송빈이는 침없는 목을 꿀꺽 삼키고 돌아서고 말았다.
(아래에 계속)-184-187쪽

(위에서 계속)
저녁때야 송빈이는 白山商會를 생각해냈었다. 부산에 있는 큰 물산객주로 전에 송빈이가 있던 원산의 그 물산객주와 빈번한 거래가 있어 송빈이는 그 주인을 안다. 기억에 떠오르는 ‘草梁;이란 이름의 동네를 찾아가니 과연 백산상회가 그저 있을 뿐 아니라 주인도 송빈이를 알아보았다. 주인은 이내 경찰서에 전화를 걸더니 사환애를 보내어 고등계 주임의 명함을 얻어다 주는 것이었다.
이 명함은 도항증을 맡을 것도 없었다. 도항증을 보여야 할 목에서마다 도항증보다도 오히려 묻는 말이 없이 통과되었다.
배에 올라 삼등실로 내려가려는 모퉁이에서였다. 그 노란 수염의 ‘나리님 형사’와 부딪쳤다. 그는 잡담 제하고 소매를 끌었다. 송빈이도 아무말 없이 명함을 내밀었다. 분명한 도장까지 찍힌 저희 상관의 것이라 멀쑥해지며 다른 데로 가 버렸다.
-184-187쪽

불탄 자리 벽돌집이 문허진 자리, 진재의 자취는 처참한 채 그냥 버려져 잇섰다. 이런 초토의 거리거리가 한 시간쯤 지나 모수리는 떠러지고 벽은 금이 낫스나마 우뚝우뚝한 고층 건축의 밀집지구가 닥치더니 동경역이엿
다. 신문에서 사진을 본 기억이 잇는 굉장히 긴 동경역이엿다.
송빈이는 정거장을 나서니 막연하엿다. 주머니 돈이라고는 톡톡 털어 일원 육십전이엿다. 마조 보히는 제일 큰 건물의 층수를 한번세여보고는 다시 대합실로 드러와 우선 세면소를 차저 세수를 하엿다. 식당에 가 미소시루의 조반을 사먹고 고리짝은 찻는대야 짐만 될 것이니까, 그냥 정거장을 나와버렷다. 날씨는 아침부터 몹시 무더웟다. 송빈이는 日比谷公園(인용자주-히비야공원)에서 이틀밤을 잣다. 그러고 사흘만에 "가구라사끼(인용자주-神樂坂 카구라자카)" 근처에 있는 어떤 新聞店 에 들엇다. 지나다가 요행히 배달부 한 명을 급히 쓴다는 광고를 발견햇던 것이다.
(아래에 계속)-194-197쪽

(위에서 계속)
여기 신문은 서울처럼 신문사에서 직접 배달하는 것이 아니라, 어떤 신문이든지 한데 마터다 파는 신문판매점이 따로 잇섯다. 그래서 배달부는 여러 가지 신문을 한거번에 돌라야 되는데 송빈이가 마튼 삼백 부 가량 나가는 구역에도 동경조일(東京朝日), 시사신문(時事新聞), 미야꼬(都), 야마도(やまと), 니로꾸(二六) 등 다섯 가지의 신문이엿다. 한 구역 안에서 어떤 집은 조일, 어떤 집은 야마도, 또 어떤 집은 어느것의 夕刊만, 어떤 집은 어느 것의 朝刊만, 그리고 또 어떤 집은 어느것과 어느것 두 가지씩 이러케 복잡하니까 배달부가 갈릴 때마다 여간 두통거리가 아니엿다 송빈이는 조석으로 사흘 여섯 차레를 쪼차다니고야 겨우 혼자 도를 수가 잇섯다. 월급은 십팔원, 밥과 잠은 신문점에서 마터주고 한달에 십이원씩을 제한다고 하니 잘해야 오륙원이 떠러지는 버리엿다.
(아래에 계속)-194-197쪽

(위에서 계속)
밥이 적고 간이 안 마젓지만 먹는 것보다는 잠이 더 걱정이엿다. 이층 팔조방에서 여섯 배달부가 몰려 자는데 어떤 사람은 이부자리도 업슬 뿐 아니라 제마다 잇다처도 따로 잘 자리가 업섯다. 송빈이의 새 이부자리는 공동이부자리가 되여버렷다. 아모튼 눕기만 하면 잠은 쏘다지는데 겨우 굿잠이 될 만하면 발길에 채이는 것이다 벌떡 고개를 들어보면 으레 박갓테선 조간을 날러온 신문사 화물자동차나 자동자전차의 투드럭소리가 요란하고 잇섯다. 시계는 누가 금새 서너시간이나 돌려 노흔 것처럼 어느듯 두점 반에서 세시 사이에 가 잇는 것이였다. 눈까풀이 찰덕인 것을 억지로 부비면 눈알은 모래가튼것 가텃다. 보히지 안는 신문을 기게적으로 접다가 끄덕 졸아버리면 그만 첫장부터 수효를 다시 세봐야 한다. 꾸물거리면 주인이 "빠가!" 소리를 지른다.
‘핫비’를 입고 신문을 메고 비는 자조 와 마를 새가 별로 업는 ‘지까다비’에 발을 너코 골목에 나서면 그제야 아침바람에 이마가 식으며 정신이 돌기 시작하는 것이다.
(아래에 계속)-194-197쪽

(위에서 계속)
처음 골목에 드러서면 신문과 우유배달부뿐이다가 한 시간쯤 지나 다섯시가 가까워 오면 벌써 ‘낭아야’에서 들은 멀리 잇는 공장에 일갈 남편을 위해 안해들은 나와 조반을 짓기 시작하는 것이다. 그네들은 쌀을 씻다 말고, 불을 피다 말고, 신문을 바드려 으레 "오하요" 아니면 "고꾸로사마" 하고 인사를 해 주엇다. 여기 여자들은 퍽 친절한 것, 구차한 노동자들도 신문 한 가지씩은 으레 보는 것, 호화롭기만 한 것 가튼 동경도 그 근처에는 수만흔 근로대중이 날이 밝기 전부터 동원되여 잇는 것, 송빈이는 신문을 돌라보기 때문에 실지로 보고 깨다른 것이엿다.
(아래에 계속)-194-197쪽

(위에서 계속)
저녁신문을 도를 때는 또 한가지 다른 세계가 눈에 띄엿다. 남자들이 공장에 가 버리를 한다고 여자들은 집에서 남편이나 아들의 월급봉지만 바라고 그냥 안젓지 안엇다. 무슨 인쇄물을 마터다 접기 무슨 종이갑을 마터다 부치기, 부자이기 전에는 內職업는 집이 별로 업섯다. 송빈이가 놀란 것은 서울서 아니 철원서와 원산와 평안도 순천에서까지 보고 저 자신까지 쓰고 하던 그 비누갑과 그 치약갑과 약봉지들이 바로 여기서 부처지는 것이엿다.
"아 생산이란 이처럼 중대한 거로구나!"
"상품이란 이처럼 중대한 거로구나!"
하고 기피 생각하지 안흘 수 업섯다.
송빈이는 저녁을 먹으면 틈 잇는 대로 가까운 ‘간다’로 나려가서 책사 구경을 하엿다. 진재에 대부분이 타버렷다고는 하나 책사라기보다 책곡간 가튼 집들로만 한 동네를 이루어 잇섯다. 뽑아들면 모다 읽고 시푼 것 뿐이엿다. 그러나 책을 살 돈도 업거니와 책은 한두 권 산다 치더라도 읽을 처소가 업는 것이다.-194-197쪽

뻬닝호프씨는 그 여러 고핵생 중에 송빈이를 특히 자기 갓까히 잇게 하며 귀애하는 것 가텃다.
"저는 사각모에의 허영은 업습니다. 나 읽고 시푼 책을 읽을 수 잇스면 고만입니다."
하는 송빈이에게
"아니 나는 이군에게 꼭 와세다의 제복을 입혀보고 시푼데!"
하고 제복과 수업료와 교과서 갑슬 사십여원이나 월급 이외에 그냥 물어 주엇고 송빈이가 전문부일망정 조대의 제복을 입는 날 그는 자기 아들이나처럼 기뻐했다. 자기 사진긔로 사진을 찍어 주엇고, 자기 부인과 함?께 자기 집에서 송빈이의 장래를 축복하는 저녁까지 내엿다. 그는 또 송빈이와 틈만 잇스면 이야기하기를 조와하엿다. 그는 조선에 와본 적도 업거니와 들은 이야기도 금강산 박게는 업섯다. 심지여 조선에도 글자가 잇스냐고까지 뭇는 정도엿다 더욱
"나는 이군만은 첫인상부터 조흐나 조선청년들에겐 대체로 호감을 못 갓는다."
하엿다.
(아래에 계속)-205-208쪽

(위에서 계속)
"조선청년을 어듸서 만히 보섯습니까? 또 무엇 때문입니까?"
"조선청년들이 우리 스코트 홀 강당이 세가 싼 바람에 가끔 그들의 집회를 여기서 열엇섯는데 보면 대체로 평화적이 아니다. 조선학생들은 연단에 올라가면 공연히 싸우듯 큰소리를 내고 연단을 부시듯 차고 발로 구르기까지 하다가 결국은 싸홈도 버러진다. 그뿐인가, 으레 걸상이 한둘씩은 부서진다. 구두들은 도모지 털지도 안는지 강당안은 흙투성이가 된다. 마당에 나와서도 담배 피던 것을 불도 끄지 안코 사방에 함부로 던진다. 가래침을 여기저기 뱃는다. 작년 봄부터는 될수잇는대로 강당을 빌리지 안키로 하고 잇다."
송빈이는 몹시 흥분하였다. 대뜸
"선생께서 관찰이 그다지 단순하시 덴 놀랄 박게 업습니다."
하엿다. (중략)
그후 메칠 안 잇서서 스코트 홀 회게가 빼닝호프씨의 방으로 드러오더니
"조선학생들이 또 와서 강당을 빌리라고 합니다. 참 귀찮습니다."
한다. 송빈은 등사를 찍다 말고 귀가 번쩍 띄여 뻬닝호프씨의 입을 초조하게 쳐다보앗다.
(아래에 계속)-205-208쪽

(위에서 계속)
"왜 그들은 우리 스코트 홀만 땃인가?"
"여기 아님 本鄕(인용자주-혼고. 도쿄대학이 있는 지역) 불교청년회관이드랫는데 불교청년회관은 改築中이어서 금년 안엔 쓸 수가 없답니다."
"그래두 다신 그네들헌텐 안 빌리기로 작정한 것이니까."
하고 베닝호프씨는 타이프라이터만 계속하엿다. 회게가 그만 나가 버리는 것을 보고 송빈은 손에 등사잉크를 닥그며 베닝호프씨의 압흐로 갓다.
"선생님?"
"뭐요?"
"강당을 빌려 주십시오."
(중략)
"그것보다두 난...."
하면서 회전의자를 돌려 안즈며 어조를 고친다.
"이군?"
"네?"
"이군이 와세다전문부를 마치며 내 미국에 보내주지."
(아래에 계속)-205-208쪽

(위에서 계속)
"저를요?"
"그럼! 이군은 체격이 조타구 내 안해두 칭찬을 허는데 체육에 취미가 업나?"
"체육요?"
"미국 가 체육을 연구허구 와 여기 체육부를 마터 가지구 우리와 함께 스코트 홀 사업을 해 줬스면 조켓는데."
"동경서요?"
"암!"
"그리구 여기 잇는 동안은 아무런 단체에두 들지 말구 유학생회에두 참가 말구 예수만 진실히 밋구?"
송빈이는 고개를 떨구엇스나 오래 생각할 것도 업는 일이엿다.
"감사합니다. 절 그러케까지 유망히 봐 주시는 덴 감사합니다. 그러나 유감입니다만 지금 말슴하신 모든 게 제 자신에겐 무의미합니다."
"무의미!"
뻬닝호프씨는 불근 눈알이 소스며 두 손을 두 바지 포케트에 찔으며 일어섯다.
"그런 계획으로 절 도와주신 거라면 이미 바든 은혜만 해두 저로선 가풀 길 업는 부채올시다. 더 적당한 사람을 골라 이 자리에 쓰시기 바랍니다."
이리하여 송빈은 다시 압길이 막연하나 이날저녁으로 스코트 홀에서 나와버리고 말앗다.
(아래에 계속)-205-208쪽

(위에서 계속)


근고

이 소설에 나오는 시대가 대단 복잡햇섯고 이야기가 사실을 존중햇던만치 주인공의 이 앞으로의 모든 것은 좀더 신중히 생각할 여유가 필요하게 되엿습니다. 독자와 신문사에 미안합니다만 우선 상편으로 쉬이겟습니다.
작자



-205-208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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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izuaki 2010-09-20 16:4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식민지의 고아 소년이 문학의 길을 걸어가게 되는 여정을 다룬 자전적 소설. 20년대 풍물이 흥미진진하다. ^^
제일 놀란 건 오늘날의 신문유학생이 그 때에도 있었다는 사실.

중퇴전문 2010-11-09 02:2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이태준 잘 읽었습니다.

mizuaki 2010-11-11 00:56   좋아요 0 | URL
오랜만입니다. ^^
성북동에 이태준이 살던 옛 집이 있는데 분위기 있는 전통 찻집으로 영업중이랍니다. 한 번 가 봤지만 퍽 괜찮아서, 이태준이 마음에 드셨다면 추천합니다.

중퇴전문 2010-11-18 23:3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미주아키님의 '퍽 괜찮은' 이유 한두개만 들려주시면 안 될까요.ㅋ

그래도 꼭 가보긴 하겠습니다.

mizuaki 2010-11-19 01:17   좋아요 0 | URL
살림집 느낌이 남아 있어서 좋았어요. 겨울 밤에 갔는데 바닥이 따뜻하고 차와 한과가 맛있는 것도 좋았고, 주인은 출타 중이지만 '작가의 집'이라는 느낌이 들었어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