젊은 베르테르의 슬픔 민음사 세계문학전집 25
요한 볼프강 폰 괴테 지음, 박찬기 옮김 / 민음사 / 1999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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젊은 청년이 어떤 아가씨에게 연정을 품고, 날이면 날마다 아침 일찍부터 밤늦게까지 그녀를 따라다니며, 모든 정력과 재산을 쏟아부으면서, 자기가 그녀를 위해 온몸을 바치고 있음을 줄곧 나타내려고 한다고 하자. 그런데 그때 속물 하나가, 즉 어떤 공직에 종사하는 남자가 나타나서 그 젊은이에게 이렇게 말한다고 하자. <여보시오, 젊은 양반, 내 말 좀 들어봐요! 사랑을 하는 것은 인간으로서 당연한 일이겠지만, 단 인간다운 사랑을 해야 돼요. 자기의 시간을 둘로 나눠서 한쪽은 일하는 데 쓰고, 다른 한쪽, 즉 쉬는 시간을 여자에게 바치도록 해야지요. 당신의 제산을 헤아려보고 꼭 필요한 경비를 뺀 다음, 나머지를 가지고 여자에게 선물을 하는 것쯤은 나도 말리지 않아요. 그것도 너무 자주 해서는 못쓰고 여자의 생일이라든가 세례일 같은 날에만 해야지요.>
(아래에 계속)-24-26쪽

(위에서 계속)
만약에 그 젊은이가 그런 충고에 따른다면 그는 쓸만한 인물은 될 것이다. 나도 그런 젊은이라면 어떤 영주에게나 직원으로 채용해 달라고 추천하고 싶어진다. 그러나 애인으로서의 그는 그것으로 끝장이다. 만일 그가 예술가라면 그의 예술도 마지막이지. 아아, 나의 벗들이여, 무엇 때문에, 천재의 물결이 둑을 뚫고 터져나와 큰 홍수를 이루며 콸콸 쏟아져 내려와서, 그대들의 영혼을 뒤흔들어놓는 일이 이렇게도 드물단 말인가! 사랑하는 벗들이여, 천재의 흐름 양쪽 기슭에는 태연자약한 신사들이 산다. 그들은 자기들의 亭子나 튤립 꽃밭, 채소밭 등이 혹시나 못 쓰게 될까 봐, 서둘러 둑을 쌓고 토목 공사를 하는 등, 앞으로 닥쳐올 위험을 미리 방지하고 있다.-24-26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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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izuaki 2012-11-07 09:4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스물 다섯 살의 괴테가 쓴 자기파괴적인 사랑의 기록.
솔직히 읽는 내내, 이런 게 좋냐? -_- 라는 느낌이었다.
난 그냥 천재의 물결이 정자와 튤립꽃밭과 채소밭을 망치지 않도록 둑이나 쌓으련다. ^^
 
전쟁과 평화 3
레오 니콜라예비치 톨스토이 지음 / 일신서적 / 1988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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러시아가 이미 절반이나 정복당하고 모스크바의 주민들이 멀리 떨어진 여러 縣으로 피난하고 조국의 방어를 위해서 민졍이 잇따라 궐기했을 때 모든 러시아인은 노소의 구별 없이 한결같이 자기를 희생하는 것과 조국의 위급을 구하는 것과 조국의 비운을 한탄하고 눈물 흘렸을 것이라고, 당시에 살아 있지 않았던 우리들이 생각하는 것은 당연하다. 당시를 전하는 이야기와 記事들도 전부 예외 없이 러시아 국민의 자기 희생과 조국애와 절망과 비애와 영웅적인 행위만을 이야기하고 있다. 그러나 실제는 그렇지가 않았던 것이다. 우리들이 그렇게밖에 생각하지 못하는 것은 과거의 사건 속에서 다만 당시의 일반적인 역사적 관심만을 보고 모든 사람이 지니고 있던 개인적이고 인간적인 관심을 보지 않기 때문이다. 그런데 실제에 있어서는 현재의 모든 개인적인 관심이라는 것은 일반적인 관심보다 훨씬 중대한 의의를 가지고 있는 것이어서 그 때문에 일반적인 관심은 조금도 느껴지지 못할 정도이다. (아니, 전혀 눈에 띄지 않는다고 해도 좋을 정도이다.)(계속)-154-156쪽

당시 대다수의 사람들은 사태의 전반적인 推移 따위엔 주ㅢ를 쏟지 않고, 다만 눈앞의 개인적인 관심에 의해서만 움직여지고 있었던 것이다. 더군다나 그러한 사람들이 당시에 있어서의 가장 유익한 動力이었던 것이다.
사태의 전반적인 추이를 알려고 시도하거나자기 희생 정신과 영웅적 행위에 의해서 시국에 참여하려 했던 사람들은 당시의 사회에 있어서 가장 무익훈 분자였었다. 그들은 온갖 것을 뒤집어 보고 있었다. 그들이 나라를 위해서라는 생각으로 한 짓은 모조리 무익한 망동이라는 결과로 끝났다. 이를테면 피예르나 마모노프가 기부한 연대는 결국 러시아의 마을들을 약탈하고 돌아다닌 데 지나지 않았으며, 또 모처럼 귀부인들의 손으로 만들어졌으면서도 한 번도 부상자에게 닿지 않았던 린트 천 같은 것이 그것이었다. 영리한 체하거나 悲憤慷慨를 좋아하고 러시아의 현상을 말하기를 일삼던 사람들까지도 부지불식간에 말에 겉치레와 허위를 동반하고 혹은 누구의 죄도 아닌 것에 대한 책임이 지워진 사람들에 대한 무익한 증오와 미묘한 감정을 띠고 있었던 것이다. (계속)-154-156쪽

모든 역사적인 사건에 있어서 무엇보다도 가장 분명한 교훈은 선악과를 따먹지 말라는 것이다. 열매를 맺게 하는 것은 다만 무자각한 활동뿐이며, 역사적인 사건에 있어서 무엇인가의 역할을 하는 사람도 절대로 사건의 의의를 이해하고 있는 것은 아니었다. 설사 그 의의를 알려고 했다고 하더라도 결국 그 무익함에 놀랐을 뿐인 것이다.
당시 러시아에서 일어났던 사건의 의의도 사건 가까이 참가했던 사람들은 더 그 의의를 몰랐었던 것이다. 페쩨르부르그를 비롯하여 모스크바에서 떨어진 모든 지방에서는 상류의 부인들이나 의용병의 군복을 입은 남자들이 러시아와 그 수도의 비운에 눈물을 흘리고 자기 희생이라는 것을 운운하고 있었으나, 모스크바 뒤쪽으로 퇴각한 군대 중에서는 거의 한 사람도 모스크바에 대해서 말하거나 생각하는 자도 없고 맹렬히 타오르는 모습을 보아도 누구 한 사람 프랑스 군에게 복수를 해야겠다고 맹세하는 자도 없었다. 도리어 모두가 다음의 넉 달치의 봉급이라든가, 다음 숙영지와 주보의 처녀 마트료쉬카의 일이나, 그와 같은 류의 하찮은 일을 생각하는 것이 고작이었다.(계속)-154-156쪽

니콜라이 로스토프도 자기 희생이라는 따위의 목적은 하나도 없고 다만 군대에 복무종 전쟁이 일어났기 때문에 우연히 조국 방어에 직접 오랫동안 관계했을 따름이었다. 그러므로 그는 절망하지도 않았을 뿐 더러 비관적인 결론도 내리지 않고 당시 러시아에서 일어나고 있던 사건을 태연히 바라보고 있었다. 만약 러시아의 현상을 어떻게 생각하고 있느냐고 물었다면, 그는 그것에 대하여 그러한 것은 자기가 생각할 문제가 아니고 그걸 위해서 쿠투조프 같은 사람이 있는 것이다. 그러나 들은 바에 의하면 각 연대는 병력의 보충을 하고 있는 모양이니까 전쟁은 더 길계 계속될 것 같다. 지금 같은 상태로 밀고 나아가면 한 이 년 뒤에는 자기도 일 개 연대를 맡는 것쯤은 그다지 어려운 일이 아닐 것 같다고 이렇게 대답했을 것이다.
사태를 이처럼 보고 있었기 때문에 그는 사단의 馬匹 보충을 위해서 보로네쥐로 출장을 명령받았을 때 최근의 전투에 참가할 기회를 잃은 것을 슬퍼하지 않았을 뿐만 아니라 도리어 크게 기뻐했다. 그리하여 그 자신도 그 기쁨을 숨기려 하지 않았고 동료들도 그 기쁨의 원인을 충분히 이해하고 있었다. -154-156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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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반 데니소비치, 수용소의 하루 민음사 세계문학전집 13
알렉산드르 솔제니친 지음, 이영의 옮김 / 민음사 / 1998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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슈호프는 수용소에 들어온 이후로 전에 고향 마을에 있을 때 배불리 먹던 일을 자주 회상하고는 한다. 프라이팬에 구운 감자를 몇 개씩이나 먹어치우던 일이며, 야채를 넣어 끓인 죽을 냄비째 먹던 일, 그리고 식량 사정이 좋았던 옛날에는 제법 큼직한 고깃덩어리를 먹었던때도 있었고, 게다가 배가 터지도록 우유를 마셔대던 일이 눈앞에 어른거렸다. 그렇게 먹어대는 것이 아니었는데 하고 후회를 해본다. 음식은 그 맛을 음미하면서 천천히 먹어야 제맛을 알 수 있는 것이다. 말하자면, 지금 이 빵조각을 먹듯이 먹어야 하는 법이다. 입 안에 조금씩 넣고, 혀끝으로 이리저리 굴리면서, 침이 묻어나도록 한 다음에 씹는다. 그러면, 아직 설익은 빵이라도 얼마나 향기로운지 모른다. 수용소에서 생활한 지 만 팔 년째, 그러니까 벌써 구 년째로 접어들고 있다. 그 동안 슈호프가 먹은 것이 무엇인가. 옛날 같으면 입에 대지도 못할 그런 것들을 먹고 있는 것이다. 그렇다고 그것이 싫증이 났다거나 하는 것은 아니다. 천만에 말씀이다.
이렇게 이백 그램짜리 빵 한 덩어리에 온 정신이 팔려 있는 슈호프 옆에는 제104반 전원이 모두 똑같이 이 빵에 넋을 잃고 보고 앉아 있는 것이다.-60쪽

그런데 무엇 때문에 수용소 생활을 십 년씩이나 한 죄수가 작업에 열을 올린단 말인가? 못 하겠다고 버티면 그만 아닌가? 저녁까지 이럭저럭 시간을 보내다 밤이 되면, 그때부턴 죄수들 세상이 아니던가 말이다.
어림없는 얘기다. 그렇게 게으름을 피우지 못하게 하기 위해서 반이라는 것을 생각해 낸 것이 아닌가 말이다. 똑같은 반이라도 이반에겐 이반대로, 표트르는 표트르대로 임금을 지불해 주는 그런 자유 세상에 있는 반하고는 성격이 전혀 다르다. 수용소에선, 상관이 감독을 하지 않아도 반원들끼리 채근을 하며 작업을 하도록 만들어놓은 것이 반이다. 반 전원이 상여 급식을 타먹게 되느냐, 아니면 배를 주리게 되느냐 하는 문제가 걸린 것이다. 이것이 수용소의 반이라는 제도다. 어, 이놈이 게으름을 피우네, 네놈 때문에 반원들이 모두 배를 곯는다는 것을 몰라? 한눈 팔지 말고 빨리 일 못해! 하고 서로를 감시하는 것이 바로 그 반이라는 것이다!
더구나, 오늘 같은 날은 한눈 팔 시간이 없다. 아프건 말건, 뛰고 달리란 말이야. -72쪽

슈호프는 자기 몫의 국을 다 먹어 가고 있었지만, 여느 때와 같이 옆자리를 힐끔거리지는 않는다. 정당한 자기 몫을 먹고 있는데, 굳이 남의 그릇에 눈독을 들일 필요가 없기 때문이다. 그렇기는 하지만 앞쪽에 있던 녀석이 자리를 뜨자 키가 큰 노인인 유-81호가 와서 앉는 것만은 놓치지 않는다. 슈호프는 이 노인이 제64반이라는 것을 알고 있었다. 소포인도소에서 줄을 서 있을 때, 자기 반 대신 ‘사회주의 생활 단지’ 건설장으로 작업을 하러 나간 반이 그 노인의 반이라는 것을 얼핏 들었다. 하루 종일 바람 피할 장소 하나 없는 허허벌판에서 자기 자신들을 에워싸는 철조망을 치고 돌아왔음이 분명하다.
슈호프는 이 노인에 대해 이렇게 들은 적이 있다.
그가 수용소에 얼마나 있었는지는 아예 셀 수도 없을 지경이라는 것이다. 게다가 그는 단 한번도 특사를 받은 적이 없다는 것이다. 십 년간의 형기가 끝나면, 또다시 십 년을 첨가하고는 했다는 것이다.
슈호프는 오늘 처음으로 그를 가까이서 볼 수 있게 되었다. 수용소 내의 죄수들이 모두 새우등처럼 허리를 굽히고 있는 반면에, 이 노인은 유독 허리를 꼿꼿하게 세우고 있다. (아래에 계속)-176쪽

(위에서 계속) 의자에 앉은 모습을 보니, 의자에 뭘 기대고 앉은 것처럼 꼿꼿하게 앉아 있다. 머리카락은 이미 모두 빠져서 이발할 필요도 없어진 지 오래다. 수용소에서 하도 잘 먹은 탓에 머리가 모두 빠진 모양이다. 그는 식당 안에서 일어나는 모든 일과 하등의 관계가 없다는 듯, 슈호프 머리 너머 어느 곳인가 먼 허공을 바라보고 있다. 그는 끝이 다 닳은 나무 수저로 건더기도 없는 국물을 단정한 모습으로 먹는다. 다른 죄수들처럼 국그릇에 얼굴을 처박고 먹는 것이 아니라, 수저를 높이 들고 먹는다. 이는 아래위로 하나도 남은 것이 없다. 뼈처럼 굳은 잇몸으로 딱딱한 빵을 먹고 있다. 얼굴에는 생기라고는 하나도 찾을 수가 없다. 그래도 어딘가 당당한 빛이 있다. 산에서 캐낸 바위처럼 단단하고 거무스름하다. 쩍쩍 갈라진 손은 그가 걸어온 수십 년의 감옥살이를 통해, 한 번도 가벼운 노동이나 사무직 같은 것을 얻어 일한 적이 없이, 생고생만 했다는 것을 증명해 준다. 하지만 그는 전혀 굴하지 않는 얼굴을 하고 있다. 어떤 타협도 하려 들지 않는다. 삼백 그램의 빵만 하더라도, 다른 죄수들처럼 더러운 식탁에 아무렇게나 내려놓지 않고, 깨끗한 천을-176쪽

오, 하느님. 오늘도 영창에 가지 않게 해주신 것에 감사를 드립니다. 여기서라면 그런 대로 어떻게 잠들 수 있습니다.
슈호프는 머리를 창문 쪽으로 향하고 누웠다. 칸막이 판자 하나를 사이에 두고 같은 침대를 쓰고 있는 알료쉬카는, 전등불이 비치는 곳으로 머리를 향하고 슈호프와는 반대쪽으로 누워 있다. 또 성경을 읽고 있나보다.
마침 전등불이 침대 가까운 곳에 있어서 무엇을 읽거나 바느질을 할 때 많은 도움이 된다.
알료쉬카는 슈호프가 ‘하느님’이라고 말한 소리를 들은 모양이다. 슈호프 쪽으로 고개를 돌린다.
"그것 보세요, 이반 데니소비치! 당신의 영혼이 하느님을 찾고 있어요. 왜 영혼이 원하는 대로 살지 못합니까?"
슈호프는 힐끔 알료쉬카를 쳐다본다. 두 눈이 촛불처럼 환하게 타오르고 있다. 슈호프는 휴우 하고 한숨을 쉰다.
"왜, 영혼이 원하는 대로 살지 못하냐구? 알료쉬카, 기도라는 건 죄수들이 써내는 진정서와 같다고 생각하기 때문일세. 말해 봤자, 꿩 구워먹은 소식이 될 뿐이고, 거절당하기 십상이란 말이야!"
수용소 본부 건물 앞에는 진정서를 담아두는 봉인된 진정함이 네 개 걸려 있다. 한 달에 한 번씩 당 지도위-200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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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izuaki 2011-12-16 11:3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산다는 것이 무척 괴로운 일임을 다시금 깨닫게 해 준 책이다.

추위와 굶주림과 고된 노동....
1950년대 시베리아 강제노동수용소의 죄수들은 이 괴로움을 가장 극단적인 수준으로 겪고 있는 사람들이다. 그렇지만 어느 시대라도 이러한 괴로움을 겪는 인간이 없었던 때가 있는가? 아니, 한 평생 추위와 굶주림으로부터 쫓기며 사는 것은 인간이 아닌 다른 동물도 마찬가지다. 단지 인간이 다른 동물과 다른 점은 간교한 지혜를 짜내어 적극적으로 이들로부터 도망치고, 나아가 자신이 아닌 다른 인간에게 이것들을 밀어부쳐 지배하려 든다는 것. 강제노동수용소라니, 이 사악한 종은 정말이지 엄청난 것을 생각해 냈단 말이야...

이 소설에는 그런 극단적인 추위와 굶주림과 고된 노동 속에서, 그럼에도 불구하고 생을 포기하지 않고 하루하루를 살아가는 죄수들의 일상이 담담하고 냉철하게 묘사되어 있다. 끔찍하다든가 불쌍하다든가 하는 몇 마디 말로는 평가할 수 없는 인간의 적나라한 모습이 오래 기억에 남을 것 같다.
 
철서의 우리 上 백귀야행(교고쿠도) 시리즈
쿄고쿠 나츠히코 지음, 김소연 옮김 / 손안의책 / 2010년 6월
평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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툇마루 가장자리의 거스러미를
관음보살님께 받은 손가락으로
슬적슬적 어루만지네.
수천 부처의 거스러미가
따끔따끔 와서 박히네.
원숭이의 아이라면 산으로 가거라.
게의 아이라면 강으로 가거라.
사람의 아이라면 번뇌의 아궁이에서 불에 타 재가 되어라.
한들한들 그날도 저무는구나.
부처의 아이라면 어떻게 할까.
아버님 어머님 용서해 주세요.
오늘도 거스러미. 내일도 거스러미.-상 137-138쪽

뒷간 옆 삼백초 잎에
달팽이가 느릿느릿 기어와
지장보살님을 먹네.
서방정토의 조촐한 아침에
동그란 머리의 동자승이
땡그랑땡그랑 깨지네.
신의 아이라면 이 세상에 없다.
귀신의 아이라면 이 세상에 둘 수 없다.
사람의 아이라면 번뇌의 통에 넣어 흘려보내라.
사락사락 그날 밤도 밝는구나.
부처의 아이라면 어떻게 할까.
아버님 어머님 용서해 주세요.
오늘도 빙글빙글 내일도 빙글빙글.-상 138쪽

석가의 가르침을 오해하여
수천의 부처가 들끓었다지.
수천의 부처가 거스러미의
가시 끝에서 들끓었다지.
달팽이의 역할은
오늘도 오늘도 그 역할은
껍질을 닫고 모르는 척, 모르는 척.-상 139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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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izuaki 2011-07-18 19:4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교코쿠도 시리즈 중에 제일 재미있게 읽었다. 물론 다른 시리즈도 다 재미있었지만, 이 <철서의 우리>는 요괴 강의보다는 종교 강의가 많은 것이 신선했다. 수수께끼의 산사에서 일어나는 승려 연속 살인 사건. 일견 에코의 <장미의 이름>을 연상시키지만 암울했던 <장미의 이름>과는 달리 이쪽은 좀 산뜻한 느낌을 준다. 속된 표현으로서의 '젠 스타일'에 가깝다고 해야 할까?

석가에서 마하가섭에게 이어진 선의 전통은 인도 승려 달마가 중국으로 옮겨 선종을 열면서 중국에 이어졌다. 이후 5조 홍인이 유력한 제자 신수를 제치고 6조 혜능을 후계자로 삼음으로서 둘로 나뉘게 된다. 신수의 북종선이 사라진 후에도 혜능의 남종선은 이어져 남악 회양을 이은 임제 의현의 임제종과 청원 행사를 이은 동산 양개, 조산 본적의 이름을 딴 조동종이 일어났다. 이 임제종과 조동종이 12세기에 일본에 전래되어 각자 발전했다는 이야기. 그 뒤 에도 시대 17세기에 임제의 스승 황벽에서 나와 중국에서 발전한 황벽종이 일본에 도입되어 현재 일본 선종은 크게 세 종단으로 되어 있는 듯하다. 물론 선종 외의 불교도 종류가 많고 그들도 나름 역사가 깊다. 이 작품에서 언급된 것은 밀교 계열에서 나온 진언종이지만, 대충 위키에게 물어보니 그 외에도 여러 종파가 있는 모양.

깨달음을 얻기 위한 치열한 싸움, 그것을 둘러싼 인간적인 갈등이 정말 드라마틱했고, 그것을 자기만의 개성으로 받아들이는 교코쿠도 팀(?) 구성원들의 반응이 재미있었다.

지나가다 2015-01-29 19:25   좋아요 0 | 댓글달기 | 수정 | 삭제 | URL
한들한들 그날도 너무는구나-는 오타인 것 같군요.

mizuaki 2015-01-29 19:25   좋아요 0 | URL
`저무는구나`요ㅎ. 오타 찾아주셔서 감사합니다. ^^
 
예루살렘의 아이히만 한길그레이트북스 81
한나 아렌트 지음, 김선욱 옮김 / 한길사 / 2006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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몇몇 사람은 맹세를 심각하게 받아들여, 히틀러의 이름으로 서약을 하기보다는 대학 경력을 포기하는 것을 선택했다. 보다 많은 사람들, 특히 베를린의 노동자들과 사회주의 지식인들은 자신과 안면 있는 유대인을 도와주려고 애를 썼다. 끝으로 귄터 바이젠보른의 "조용한 봉기Derlautlose Aufstand, 1953)"에 나오는 이야기와 연관된두 소년 농부가 있었다. 이들은 전쟁이 끝날 무렵 친위대로 징집되었으나 입대를 거부했다. 그들은 사형선고를 받았고 처형당하기 전날 가족들에게 보내는 마지막 편지에 다음과 같이 썼다. "우리 두 사람은 그런 끔찍한 일로 우리의 양심에 부끄러운 짓을 하는 것보다는 차라리 죽는 것이 낫습니다."-172쪽

돌격대 부대는 독일의 어느 일반 부대보다 범죄 기록을 더 많이 갖고 있지 않은 군대 조직인 무장 친위대로부터 징발되었다. 그리고 그 지휘관들은 하이드리히가 대학 학위를 가진 친위대 엘리트 가운데서 선택했다. 따라서 문제는 양심을 어떻게 극복하는가라는 것이 아니라 모든 정상적인 사람들이 육체적 고통을 당하는 것을 보는 데서 느끼게 되는 동물적인 동정심을 어떻게 극복하는가 하는 것이었다. 힘러가 사용한 책략은 (그는 스스로도 이런 본능적인 반응을 다소 강하게 느꼈던 것 같다) 아주 단순했고 또 아주 효과적이었던 것 같다. 그것은 이러한 본능을 뒤집는 것으로, 말하자면 자기 자신을 향하도록 하는 것이었다. 그래서 내가 사람들에게 얼마나 끔찍한 일을 하고 있는가, 라고 말하는 대신, 나의 의무를 이행하는 가운데 내가 얼마나 끔찍한 일을 목격해야만 하는가, 내 어깨에 놓인 임무가 얼마나 막중한가, 라고 살인자들은 말할 수 있게 되었다.-174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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