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반 데니소비치, 수용소의 하루 민음사 세계문학전집 13
알렉산드르 솔제니친 지음, 이영의 옮김 / 민음사 / 1998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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슈호프는 수용소에 들어온 이후로 전에 고향 마을에 있을 때 배불리 먹던 일을 자주 회상하고는 한다. 프라이팬에 구운 감자를 몇 개씩이나 먹어치우던 일이며, 야채를 넣어 끓인 죽을 냄비째 먹던 일, 그리고 식량 사정이 좋았던 옛날에는 제법 큼직한 고깃덩어리를 먹었던때도 있었고, 게다가 배가 터지도록 우유를 마셔대던 일이 눈앞에 어른거렸다. 그렇게 먹어대는 것이 아니었는데 하고 후회를 해본다. 음식은 그 맛을 음미하면서 천천히 먹어야 제맛을 알 수 있는 것이다. 말하자면, 지금 이 빵조각을 먹듯이 먹어야 하는 법이다. 입 안에 조금씩 넣고, 혀끝으로 이리저리 굴리면서, 침이 묻어나도록 한 다음에 씹는다. 그러면, 아직 설익은 빵이라도 얼마나 향기로운지 모른다. 수용소에서 생활한 지 만 팔 년째, 그러니까 벌써 구 년째로 접어들고 있다. 그 동안 슈호프가 먹은 것이 무엇인가. 옛날 같으면 입에 대지도 못할 그런 것들을 먹고 있는 것이다. 그렇다고 그것이 싫증이 났다거나 하는 것은 아니다. 천만에 말씀이다.
이렇게 이백 그램짜리 빵 한 덩어리에 온 정신이 팔려 있는 슈호프 옆에는 제104반 전원이 모두 똑같이 이 빵에 넋을 잃고 보고 앉아 있는 것이다.-60쪽

그런데 무엇 때문에 수용소 생활을 십 년씩이나 한 죄수가 작업에 열을 올린단 말인가? 못 하겠다고 버티면 그만 아닌가? 저녁까지 이럭저럭 시간을 보내다 밤이 되면, 그때부턴 죄수들 세상이 아니던가 말이다.
어림없는 얘기다. 그렇게 게으름을 피우지 못하게 하기 위해서 반이라는 것을 생각해 낸 것이 아닌가 말이다. 똑같은 반이라도 이반에겐 이반대로, 표트르는 표트르대로 임금을 지불해 주는 그런 자유 세상에 있는 반하고는 성격이 전혀 다르다. 수용소에선, 상관이 감독을 하지 않아도 반원들끼리 채근을 하며 작업을 하도록 만들어놓은 것이 반이다. 반 전원이 상여 급식을 타먹게 되느냐, 아니면 배를 주리게 되느냐 하는 문제가 걸린 것이다. 이것이 수용소의 반이라는 제도다. 어, 이놈이 게으름을 피우네, 네놈 때문에 반원들이 모두 배를 곯는다는 것을 몰라? 한눈 팔지 말고 빨리 일 못해! 하고 서로를 감시하는 것이 바로 그 반이라는 것이다!
더구나, 오늘 같은 날은 한눈 팔 시간이 없다. 아프건 말건, 뛰고 달리란 말이야. -72쪽

슈호프는 자기 몫의 국을 다 먹어 가고 있었지만, 여느 때와 같이 옆자리를 힐끔거리지는 않는다. 정당한 자기 몫을 먹고 있는데, 굳이 남의 그릇에 눈독을 들일 필요가 없기 때문이다. 그렇기는 하지만 앞쪽에 있던 녀석이 자리를 뜨자 키가 큰 노인인 유-81호가 와서 앉는 것만은 놓치지 않는다. 슈호프는 이 노인이 제64반이라는 것을 알고 있었다. 소포인도소에서 줄을 서 있을 때, 자기 반 대신 ‘사회주의 생활 단지’ 건설장으로 작업을 하러 나간 반이 그 노인의 반이라는 것을 얼핏 들었다. 하루 종일 바람 피할 장소 하나 없는 허허벌판에서 자기 자신들을 에워싸는 철조망을 치고 돌아왔음이 분명하다.
슈호프는 이 노인에 대해 이렇게 들은 적이 있다.
그가 수용소에 얼마나 있었는지는 아예 셀 수도 없을 지경이라는 것이다. 게다가 그는 단 한번도 특사를 받은 적이 없다는 것이다. 십 년간의 형기가 끝나면, 또다시 십 년을 첨가하고는 했다는 것이다.
슈호프는 오늘 처음으로 그를 가까이서 볼 수 있게 되었다. 수용소 내의 죄수들이 모두 새우등처럼 허리를 굽히고 있는 반면에, 이 노인은 유독 허리를 꼿꼿하게 세우고 있다. (아래에 계속)-176쪽

(위에서 계속) 의자에 앉은 모습을 보니, 의자에 뭘 기대고 앉은 것처럼 꼿꼿하게 앉아 있다. 머리카락은 이미 모두 빠져서 이발할 필요도 없어진 지 오래다. 수용소에서 하도 잘 먹은 탓에 머리가 모두 빠진 모양이다. 그는 식당 안에서 일어나는 모든 일과 하등의 관계가 없다는 듯, 슈호프 머리 너머 어느 곳인가 먼 허공을 바라보고 있다. 그는 끝이 다 닳은 나무 수저로 건더기도 없는 국물을 단정한 모습으로 먹는다. 다른 죄수들처럼 국그릇에 얼굴을 처박고 먹는 것이 아니라, 수저를 높이 들고 먹는다. 이는 아래위로 하나도 남은 것이 없다. 뼈처럼 굳은 잇몸으로 딱딱한 빵을 먹고 있다. 얼굴에는 생기라고는 하나도 찾을 수가 없다. 그래도 어딘가 당당한 빛이 있다. 산에서 캐낸 바위처럼 단단하고 거무스름하다. 쩍쩍 갈라진 손은 그가 걸어온 수십 년의 감옥살이를 통해, 한 번도 가벼운 노동이나 사무직 같은 것을 얻어 일한 적이 없이, 생고생만 했다는 것을 증명해 준다. 하지만 그는 전혀 굴하지 않는 얼굴을 하고 있다. 어떤 타협도 하려 들지 않는다. 삼백 그램의 빵만 하더라도, 다른 죄수들처럼 더러운 식탁에 아무렇게나 내려놓지 않고, 깨끗한 천을-176쪽

오, 하느님. 오늘도 영창에 가지 않게 해주신 것에 감사를 드립니다. 여기서라면 그런 대로 어떻게 잠들 수 있습니다.
슈호프는 머리를 창문 쪽으로 향하고 누웠다. 칸막이 판자 하나를 사이에 두고 같은 침대를 쓰고 있는 알료쉬카는, 전등불이 비치는 곳으로 머리를 향하고 슈호프와는 반대쪽으로 누워 있다. 또 성경을 읽고 있나보다.
마침 전등불이 침대 가까운 곳에 있어서 무엇을 읽거나 바느질을 할 때 많은 도움이 된다.
알료쉬카는 슈호프가 ‘하느님’이라고 말한 소리를 들은 모양이다. 슈호프 쪽으로 고개를 돌린다.
"그것 보세요, 이반 데니소비치! 당신의 영혼이 하느님을 찾고 있어요. 왜 영혼이 원하는 대로 살지 못합니까?"
슈호프는 힐끔 알료쉬카를 쳐다본다. 두 눈이 촛불처럼 환하게 타오르고 있다. 슈호프는 휴우 하고 한숨을 쉰다.
"왜, 영혼이 원하는 대로 살지 못하냐구? 알료쉬카, 기도라는 건 죄수들이 써내는 진정서와 같다고 생각하기 때문일세. 말해 봤자, 꿩 구워먹은 소식이 될 뿐이고, 거절당하기 십상이란 말이야!"
수용소 본부 건물 앞에는 진정서를 담아두는 봉인된 진정함이 네 개 걸려 있다. 한 달에 한 번씩 당 지도위-200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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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izuaki 2011-12-16 11:3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산다는 것이 무척 괴로운 일임을 다시금 깨닫게 해 준 책이다.

추위와 굶주림과 고된 노동....
1950년대 시베리아 강제노동수용소의 죄수들은 이 괴로움을 가장 극단적인 수준으로 겪고 있는 사람들이다. 그렇지만 어느 시대라도 이러한 괴로움을 겪는 인간이 없었던 때가 있는가? 아니, 한 평생 추위와 굶주림으로부터 쫓기며 사는 것은 인간이 아닌 다른 동물도 마찬가지다. 단지 인간이 다른 동물과 다른 점은 간교한 지혜를 짜내어 적극적으로 이들로부터 도망치고, 나아가 자신이 아닌 다른 인간에게 이것들을 밀어부쳐 지배하려 든다는 것. 강제노동수용소라니, 이 사악한 종은 정말이지 엄청난 것을 생각해 냈단 말이야...

이 소설에는 그런 극단적인 추위와 굶주림과 고된 노동 속에서, 그럼에도 불구하고 생을 포기하지 않고 하루하루를 살아가는 죄수들의 일상이 담담하고 냉철하게 묘사되어 있다. 끔찍하다든가 불쌍하다든가 하는 몇 마디 말로는 평가할 수 없는 인간의 적나라한 모습이 오래 기억에 남을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