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루살렘의 아이히만 한길그레이트북스 81
한나 아렌트 지음, 김선욱 옮김 / 한길사 / 2006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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몇몇 사람은 맹세를 심각하게 받아들여, 히틀러의 이름으로 서약을 하기보다는 대학 경력을 포기하는 것을 선택했다. 보다 많은 사람들, 특히 베를린의 노동자들과 사회주의 지식인들은 자신과 안면 있는 유대인을 도와주려고 애를 썼다. 끝으로 귄터 바이젠보른의 "조용한 봉기Derlautlose Aufstand, 1953)"에 나오는 이야기와 연관된두 소년 농부가 있었다. 이들은 전쟁이 끝날 무렵 친위대로 징집되었으나 입대를 거부했다. 그들은 사형선고를 받았고 처형당하기 전날 가족들에게 보내는 마지막 편지에 다음과 같이 썼다. "우리 두 사람은 그런 끔찍한 일로 우리의 양심에 부끄러운 짓을 하는 것보다는 차라리 죽는 것이 낫습니다."-172쪽

돌격대 부대는 독일의 어느 일반 부대보다 범죄 기록을 더 많이 갖고 있지 않은 군대 조직인 무장 친위대로부터 징발되었다. 그리고 그 지휘관들은 하이드리히가 대학 학위를 가진 친위대 엘리트 가운데서 선택했다. 따라서 문제는 양심을 어떻게 극복하는가라는 것이 아니라 모든 정상적인 사람들이 육체적 고통을 당하는 것을 보는 데서 느끼게 되는 동물적인 동정심을 어떻게 극복하는가 하는 것이었다. 힘러가 사용한 책략은 (그는 스스로도 이런 본능적인 반응을 다소 강하게 느꼈던 것 같다) 아주 단순했고 또 아주 효과적이었던 것 같다. 그것은 이러한 본능을 뒤집는 것으로, 말하자면 자기 자신을 향하도록 하는 것이었다. 그래서 내가 사람들에게 얼마나 끔찍한 일을 하고 있는가, 라고 말하는 대신, 나의 의무를 이행하는 가운데 내가 얼마나 끔찍한 일을 목격해야만 하는가, 내 어깨에 놓인 임무가 얼마나 막중한가, 라고 살인자들은 말할 수 있게 되었다.-174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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