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세밑.... 어느 스님으로부터 전화 한통이 왔습니다. 일산의 그 스님 절로 찾아와 달라는 것이었지요. 그 스님은 불화의 계보를 이어오신 스님으로 불화의 초본에 대한 사진 작업을 제가 맡은적이 있었습니다. "불화초"라는 단어가 조금은 생소하겠지만, 절에 절려있는 불화를 그리기 위한 바탕그림을 말합니다. 아무리 그림을 잘 그리는 화가라도 척척~ 그림을 그려내기는 어렵겠지요. 서양화의 스케치라고 보시면 되는데, 이 초본은 아주 오래 만들어진 것이 지금까지도 쓰이고 있으니 그 자체만으로도 문화재적 가치를 갖는다고 볼 수 있습니다.
2. 스님은 전시회의 도록을 제게 내 놓으셨습니다. 국내 전시를 끝내고 미국의 LA에 있는 LA County Museum of Art에서 작년 8월부터 금년 2월까지 전시회를 하는데 그 전시회의 도록을 제게 주시는 것이었습니다. 그 도록에는 초본의 사진도판이 가득 실려 있는데 모든 사진은 제가 작업을 했던 것이었습니다. Photography by Kim XXX XXX , Buddist Cultural Oroperties Research Institute 라고 제 이름이 들어가 있더군요. 정말 그 사진을 찍느라고 고생을 많이 했던 지난 한해였습니다. 거의 1000여장에 달하는 불화초본은 그 크기마저 큰것은 가로 5미터 세로 20미터가 되는것도 있을 정도로 사진 작업을 하기에는 매우 어려웠었는데 자그마치 1년간을 거의 매주 토요일과 일요일에는 사진 촬영을 했던것 같습니다.
3. 사진촬영은 초본이 한지인지라 후레쉬의 빛을 너무 많이 흡수하여 후레쉬 촬영에도 무척 애를 먹었고, 커다란 초본을 걸기위한 영사막 같은 판을 세우는 작업도 쉬운일은 아니었습니다. 스님께서는 법당에 커다란 판을 세워서 사진 작업에 용이토록 했으니 부처님께서는 아마 조금 화도 나셨을 겁니다. 물론, 사람을 사서 사진 촬영을 위한 초본을 걸었다 뗐다 하는 일을 하도록 하였지요. 용역회사에 부탁을 했었는데 대부분이 중국동포였답니다.
4. 전시회는 LA에서 지금도 성황리에 열리고 있고 저는 개막식날 제 신분상의 이유로 참석을 하지 못하고 말았지만, 미국인들은 "선에 깃든 정신세계의 혼"이라고 무척 많이 찾아 주셨다고 합니다. 그 전시회의 도록을 받아보니 1년간 고생했던 일들이 주마등 처럼 지나는데도 흐믓하였습니다. 도록이 잘나온 이유도 흐믓한 이유중의 하나이겠지만, 제가 촬영했던 사진이 도록으로 발간되어 많은 관람객에게 유포가 될 수 있었고, 눈으로 감상하는 우리 문화재를 이해하는데 일조를 할 수 있었다는 뿌듯함 때문이었지요.
5. 사실, 그 사진을 촬영하며 소모된 필름은 엄청났었습니다. 흑백과 슬라이드 필름을 합해서 거의 3000통 정도를 썼으니 얼마나 많은 필름인지 상상을 해 보실래요? 그것도 일반 35mm도 있지만, 큰 카메라에 들어가는 필름도 있었으니 말입니다. 현상을 한 필름만해도 캐비넷 4개를 다 채우고도 모자랐습니다. 저는 당시 사진작업을 한 스님이 애지중지하는 불화초본을 모두 볼 수 있다는 생각에서 사진 촬영작업을 허락을 했었기에 별도의 작업비를 받거나 하지 않았습니다. 이런 불화초본들은 쉽게 볼 수 있는것이 아니었으니까요.
6. 겸하여, 스님께서는 매월 한차례 중국의 청도에 가서 한 지역의 12달 풍경을 사진에 담자는 제안을 해 주셨습니다. 아마도 그간 고생한것에 대한 보답의 의미도 담고 있고, 또 한편으로는 아직 불교가 성행하지 않은 중국의 포교활동을 하시는 스님이 그곳의 변하는 광경을 담아 카렌더로 작성하고자 하는 계획도 가지신것 같았습니다. 저는 흔쾌히 승락을 했지요...덕분에 중국의 문화유물을 접할 기회도 가질 수 있으니까요...
7. 스님과의 대화는 해를 넘기며 계속되다가 새벽 2시경에야 끝이나서 돌아왔습니다. 저희는 신정을 새는지라 아침에 차례를 모셔야 할 입장이어서 본가로 가야했음에도 늦게까지 이야기를 하다보니 차마 쉽게 자리를 떨치고 일어날 수가 없었답니다. 이 도록때문에 몇차례 전화를 받은적이 있었답니다. 필름 원고에 관한 문의인데 아직 어떻게 해야 하는지 결정을 하지 못해서 답변을 못했습니다. 더구나 국내인도 아니고 외국인들인지라(그들은 책자를 만들기를 원했지만)... 그 보다는 공개하기 힘든 자료를 가지고 계신 스님의 생각이 우선이겠지요. 물론 지적소유권은 제게 있더라도 무조건 책자로 발간하여 공개할 입장은 아닌것이겠지요. 금년은 아마도 "불화초본"이라는 책자가 만들어지게 될것 같습니다. 책으로라도 공개하여 불화를 전공하는 학생들이나 기존의 불화 제작자들에게 참고자료로 활용토록 해야 하니까요. 스님은 불화초본을 공개할 생각이 없으셨지만 고려청자의 비색을 내는 기법을 전해준 사람이 없어 지금 우리가 재현을 위해서 아등바등 하는것이 아니냐고 살살~ 꼬드겨서 비로소 공개를 하신 것인데, 이제는 책으로 완전 공개를 하고자 하는것을 금년의 목표로 삼도록 해야겠습니다.
여러분 모두의 하시고자 하는 모든일이 다 성취되시기를 기원합니다.... 늘 건강과 함께요..... 새해의 밝은 해를 맞이하며 <如 村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