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작년 이맘때쯤 전라도 지역의 난 상인으로 부터 밤 늦은 시간에 연락이 왔습니다. 아주 좋은 난이 나왔는데 구매하지 않겠냐는 이야기였고 제 이메일을 통해서 그 난의 사진을 보내 주겠으니 사진으로나마 먼저 보라는 이야기였습니다.  잠시후 이메일을 통해서 확인할 수 있는 난은 우리 나라에서는 보기 힘든 아주 멋진 난이었습니다.  워낙 고가의 난인지라 망설여지기도 했지만 단 하나뿐인 난을 구입해야하나 아니면 제 형편대로 그냥 침이나 삼키고 말아야 하는가를 놓고 밤새 잠을 이루지 못했습니다.

2. 결국....다음날 아침 출근을 하여서는 구매의사를 전화로 통보해 주었습니다. 그 난을 사려고 주머니를 닥닥 긁어봐도 뻔한것이라 은행에 달려가서 마이너스통장이라는 것을 개설하여서는 거금을 송금하고 구매를 하게 되었습니다. 일생일란이라는 말이 있습니다. 평생 한분의 난으로 자족할 수 있는 난인의 마음을 뜻하는 말이지만 어디 평생 단 한분의 난을 키우는데 그냥 그런 난을 키울수야 있겠습니까? 여기서 일생일란의 모순이 발생하기 시작합니다. 그 단한분의 난은 아무도 가지지 않고 오직 나만 가지고 있는 난이기를 아마도 전 난인들은 바랄것입니다. 그래서 거금을 주고서라도 자신만의 난을 구하려고 하는것입니다.

3. 제가 구입한 난은 난계에 발없이 소문이 날려 제가 구입하고나자마자 전국에서 전화가 오고 난리가 아니었습니다. 워낙 좋은 난인지라 시도때도 없이 밤이고 낮이고 되팔라는 전화가 끊이지를 않았습니다. 제가 샀던 금액의 네 다섯배를 넘긴 금액으로 구매하겠다는 의사를 전해오기도 하였지만, 저는 이 난을 정말 일생일란으로 삼기로 작정하고 모든 제의를 거절했습니다. 모두 3촉의 난이었지만 해가 지남에 따라 촉수가 늘어갈 것이고 촉수가 많아지면 그 때는 다른 사람들에게도 분양을 해 주리라 마음먹었지요. 제 난을 본 사람들은 모두가 입에 침이 마르도록 부러움을 토로했었습니다. 우리 나라에서 단 하나뿐인 난.....그 얼마나 희귀하고 귀한 난이겠습니까?

4. 작년 봄.....새롭게 싹이 올라 아주 튼실하게 자라고 있었습니다. 난에게는 여름이 가장 두려운 계절입니다. 고온으로 인한 병충해는 물론이고 기타 여러가지 난에 관한 병들이 만연을 하는 시기이기에 각별히 관리에도 주의를 해야 합니다. 제가 위탁배양하는 난실에 난을 가져다 놓으면서 이 난이 어떤 난이라는것을 아무에게도 알리지 않았습니다. 소위 손을 탈 수 있기 때문이었지요. 수십개의 난분 속에 섞여 있는 그 난에게 눈총을 주지 않는것 처럼 하면서도 곁눈질로나마 난이 잘 자라나를 확인하는 마음을 이해하시겠는지요?  3촉짜리 난은 새 싹도 힘차게 잘 커가고 있었습니다.정말 뿌듯한 일이지요...

5. 그런데 작년 9월경 난실을 방문한 저는 깜짝 놀랐습니다. 그 많은 난분중에서 유독 일생일란으로 삼은 그 난의 잎만 갈색으로 변하여 죽어가는 것이었습니다. 다행히 전체 4촉중에서 2촉은 멀쩡하기에 급하게 소독을 하고는 다시 심었습니다. 그리고 다음주에 난이 걱정이 되어 집에 가면서 우선 난실에 들렸는데...아뿔싸!!  그 난이 완전히 갈색으로 변하여 죽어버린 것입니다. 누구에게 원망을 할 수도 없고 다른 난들은 다들 싱싱하게 잘 자라는데 왜 하필이면 그 귀한 난만 죽어버린것인지 낙담과 함게 정말 이해하기가 힘이 들었습니다.

6. 돈도 물론 거금을 들여 구매를 하였지만 더 안타까운것은 이 세상에 단 한종자뿐인 난이 죽음으로서 그 난이 멸종을 했다는 생각이 가슴을 아프게 하는 것이었습니다. 미인박명이라는 말이 난에도 적용이 되는지는 몰라도 난을 길러보신분들은 아시겠지만 이상하게도 귀한 난들이 일찍 죽습니다. 그렇게 해서 일생일란의 꿈은 와르르 깨어져 버리고 말았습니다. 아직도 마이너스 통장을 메꾸기 위해 용돈을 쪼개고 쪼개는데 그 주체가 되었던 귀품은 제 곁을 떠나고 없습니다.

7. 모든 일은  사람들이 노력을 한다고 다 이루어지지는 않는 모양입니다. 정말...제가 보기에도 아주 튼실하고 건강했던 난이 한 순간에 불귀의 객이 되었다는 것은 이해하기 힘듭니다. 어쩌면 그 난은 아무리 귀품이고 고가의 난이었을 망정 저와의 인연은 아니었는지도 모릅니다. 얼마나 난이 좋았는지 억대의 금액을 제시하고 구매하겠다는 분도 있을 정도였지만 이제는 제 마음속에서 그 난을 떨쳐버렸습니다. 일생일란이란 원한다고 갖게 되는것이 아니라는것을 알았습니다. 어쩌면 그 일생일란은 고가의 귀한 난이 아니고 흔하게 우리네 산천에 널려있는 보춘화가 아닐까 하는 생각도 해 봅니다. 한편으로는 난 욕심이 앞서 거금을 들여 난을 구입한 저에게 욕심을 가져서는 안된다는 따끔한 교훈을 주고자 했는지도 모르겠습니다.  견물생심이라고 난이 꽃을 피우는 봄철만 되면 열병처럼 앓게되는 난에 대한 욕심을 이제는 버리겠다고 마음먹었습니다. 지금 제 난대(蘭臺)위에 가지런히 놓여있는 난이라도 잘 키워서 아름답게 꽃피우는 것이 일생일란을 만들고 가꾸어 나가는 일이 아닌가 가만히 생각해 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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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조금전 서울에 도착을 하였습니다. 귀경길의 정체가 심할것 같고 또 내일은 스승님을 찾아뵈어야 하겠기에 대전 집에서 저녁 식사를 마치고 9시경에 출발을 했습니다. 서대전 나들목에 접어드니 의외로 귀경길은 한산하였고 별로 달리는 차들도 없어서 다소 느긋한 마음으로 교통방송에 주파수를 맞추고는 가벼운 마음으로 주행을 하였습니다. 북대전 나들목(엑스포라고도 합니다)을 막 지나 약간 오르막길을 오르면 바로 회덕 분깃점에 다다르는 내리막길로 접어들게 됩니다. 약간 좌측으로 굽은 내리막길이지요...

2. 내리막길로 서서히 접어들어 1차로를 달리는데 앞쪽에 뭔가 물체가 어렴풋하게 보이는 것입니다. 라이트를 올려키니 차량 1대가 1차로를 가로막고 서 있는 것입니다. 순간이었지만 갓길로 그 지역을 통과하면서 비상등을 켜고 다시 1차로로 접어 들어 차를 세웠습니다. 그리고는 차내에서 비상 손전등을 찾아서는 2차 사고를 막기 위해 사고 차량으로 달려가면서 119와 112로 신고를 하는데 갑짜기 쾅! 소리와 함께 사고 차량이 밀려나는 것이었습니다. 우려했던 대로 1차로를 달리던 차량이 사고 차량을 받은 것입니다.

3. 첫번째 사고 차량의 뒷자리에는 어린아이 둘이 타고 있었는데 우선 길밖으로 끌어내렸습니다. 앞좌석의 아주머니는 스스로 걸어 나오시더군요....그리고는 바로 두번째 사고 차량의 후미로 가서는 뒷 차량에게 비상손전등을 깜박거리면서 사고가 났음을 알렸습니다. 짧은 순간이었지만 앵앵~거리면서 견인차 두대가 달려 왔기에 우선 뒷차량의 속도 감속및 후속사고 방지를 위한 조치를 취하도록 하고는 두 번째의 차량으로 달려 갔습니다. 다행히 큰 부상은 아니었는지 부부로 보이는 두 분은 바로 길 옆으로 나올 수 있었습니다. 첫번째 차량에는 운전자가 찌그러진 찻속에서 신음을 하고 있었는데 구호조치를 취하려는 저를 견인차 기사들이 말렸습니다. 부상의 상태가 어떻한지 모르고, 또 잘못하면 더 악화될 수 있으니 구급차가 올 때까지 기다리라고 합니다. 그리고는 잘못되면 제가 덤태기를 쓸 수도 있다는 것입니다.

4. 곧 이어서 고속도로 순찰차량이 왔고 그 차를 이용하여 탑승자 전원을 병원으로 이송을 하였는데 순찰차의 경찰들 역시 운전자는 119구급대에게 맡기는 것이었습니다. 귀경 차량들은 금새 긴 꼬리를 물고 서 있었고 저는 운전자가 혹시 구급차가 오기전에 의식을 잃을지 몰라 말을 붙이니 대답을 해 주었습니다. 잠시후 119구급차량이 도착을 했는데 사고 상황을 살펴보고는 소방차가 곧 올것이니 기다려야 한다고 하였습니다. 소방차가 도착을 하고 차 문을 여는 장비를 이용하여 찌그러진 문을 떼어내고서야 운전자는 구급차에 실려 병원으로 향했습니다.

5. 두 번째 차량의 운전자는 상황을 잘 모르는것 같았습니다. "어떻게 반대 차선에서 차가 오지?"라고 말씀을 하시는 것으로 보아서는 중앙분리대와 충돌후 1차선을 가로막고 있는 차량을 급작스럽게 발견하여 추돌하게 된것 같았습니다. 경찰에게 제 전화번호와 이름을 남기고는 사고 지역을 떠나 서울로 향했습니다. 저는 한참을 생각해 보았습니다. 운전석에 끼인 운전자의 생명이 위태로울 수 있음에도 상황을 모르기에 전문가가 올 때까지 기다려야 한다는 말을 말입니다. 한편으로는 견인차량 기사가 말했던 덤태기를 쓸수도 있다는 말....언젠가 그런 기사를 본적이 있는것 같습니다. 구조활동을 잘못해서 부상부위가 악화되어 곤혹을 치루었다는 기사를 말입니다. 물론 이해가 가는 말이지만 만약 그렇게 시간을 지체하다가 아까운 생명을 잃게 된다면 그에 따른 책임은 누가 져야하는지요?  사고 순간 그 위치에 있게 된다면 정말로 판단하기 어려운 문제일것 같습니다.

6. 서울로 오는 중 전화를 받았습니다. 뒷 차량 탑승자와 인척 되신다는 분의 전화였는데 1차 충돌후 그 차량이 후속 사고 방지를 위한 조치를 취했느냐는 물음을 해 왔습니다. 다시 말해 비상등을 점멸하였느냐는 질문인데 그 차량을 발견할 당시는 바로 사고 직후였고 불행하게도 그 차량은 후속조치를 취하지 않았었습니다. 그랬기에 제가 비상손전등을 가지고 달려간것이었으니까요. 부상자의 상태를 물으니 두 번째 차량의 부부는 가슴을 심하게 다쳐 서울로 후송을 해야 한다는 이야기였습니다. 두 차량의 탑승자 모두가 마찬가지였겠지만 사고 당시 제가 다친곳이 없느냐고 물었을 때는 크게 다친곳은 없는것 같다고 대답을 했었는데 역시 많이 다치신 모양이었습니다. 당시 밖으로 끌어내린 아이들은 상황도 모른 채 울기만 했었는데 그 아이들과 아주머니...그리고 운전석에 끼어 있던 운전자의 부상이 경미했으면 하는 바람입니다.

7. 민속의 명절이라는 "설"......매년 "설"에는 고향을 찾는 사람들이 주로 이용하는 교통편으로 인한 부주의로 많은 사고가 발생하고 있음을 우리는 보도매체를 통하여 알 수 있습니다. 사고 현장을 지켜보면서 고향을 다녀오던 즐거운 마음이 한 순간의 실수로 엄청난 사고로 이어지는 현장에 제가 있었던 것입니다. 첫번째 사고의 원인이 무엇인지는 정확하게 알 수 없지만 작은 부주의가 가족 모두를 불행으로 몰고 갈 수 있음을 운전하는 사람들은 절대 잊어서는 안될 것입니다. 더구나 음주운전으로 인해 자신은 물론이고 아무 죄도 없는 다른 운전자가 자신으로 인하여 불행을 겪게 된다면 그야말로 큰 죄가 아니라고 할 수 없을 것입니다. 오늘의 사고뿐만아니라 운전자 여러분 모두가 안전운전에 심혈을 기울여야 할것입니다. 여러분 금년 한해...모두들 교통 사고없는 안전한 한 해가 되시기를 기원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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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설 연휴라서 오랫만에 집에서 가족들과 함께 보낼 수 있습니다. 저는 신정을 치루는지라 오히려 남들이 야단법석을 피우는 구정에는 별로 할 일이 없는 편입니다. 이게 어제 오늘의 일이 아닌지라 집 식구들 모두 다 구정에는 속된 말로 집안에서 빈둥거리게 됩니다. 명절이라고 아파트 계단을 통해서는 맛있는 부침개의 고소함도 코로 쏙쏙 들어오고는 하지만 저희집만은 이상한 나라의 엘리스에 온것 같이 남들이 부산한것과는 전혀 관계가 없습니다.

2. 오랫만에(그간 해외 출장 등으로 집에 올 기회가 없었고 신정에는 식구들이 서울 본가로 올라와서 차례를 모셨었습니다)  제 서재에 들어가서는 책꽂이도 정리를 하고 또 봐야할 책이 무엇인지를 고르는 작업을 하였습니다. 그런데 책장을 둘러보던중 최근에 필요로 해서 알라딘에 주문을 해야겠다고 생각했던 책이 책꽂이에 자리하고 있는 것이 아니겠습니까?  "어??  이 책을 내가 언제 구입했었지??"  문제는 이러한 일이 자주 있다는 것입니다. 도서를 구입하기 전에 분명히 "언젠가 읽은 책 같은데......??" 라는 생각을 하면서도 구입하게 되면 거의 언젠가 구입을 했던 책이라서 나중에는 책이 두 권이 되는 경우가 가끔 발생하는 것입니다.

3. 이런 일을 방지하려고 친구에게 부탁을 해서 장서목록(조금 거창하죠?) 프로그램을 하나 만들기도 했는데...프로그램 내용이 신통치 않은지..아니면 게으른 제가 사용하기에는 뭔지 입력해야 할것이 많아서인지 막상 사용은 별로 안하게 되더군요. 그러니 그 프로그램만 잘 사용해도 중복 구입은 피할 수 있었음에도 그렇게 하지 못해서 늘 "다음번에는 꼭 기록을 해쟈지.." 하면서도 매번 도서를 구입할 때 마다 프로그램에 입력을 해야 되는 상당한 일거리라서 그렇게 하지 못하고 있답니다. 그런면에서는 알라딘의 소장함은 최소한 알라딘 구입 도서는 전부 소장함으로 자동으로 등재가 되니 한가지 일을 덜어주는 편이지만,  실은 저도 제 소장함에 잘 안가는지라 어떤 책이 소장되어 있는지 잘 모를 때가 많답니다. 언젠가는 제가 가지고 있는 책들을 아예 소장함에 다 담아보고자 오랜 시간을 들여서 목록을 만들어 보았는데 불행하게도 알라딘에는 그 책들중 없는 책들이 왜 그리 많은지... 소장함에 넣을 수가 없어서(아마도 발간된지 조금 오래 되면 알라딘에서는 취급을 하지 않나봅니다) 그 일도 집어치워 버렸습니다.

4. 그런데 많지는 않지만 제가 가지고 있는 도서를 분류할 필요가 있습니다. 늘 보던 종류는 언제나 그 자리에 있지만 어쩌다 보게 되는 책은 그 책이 어디에 있는지를 몰라서 찾아보다가 찾지 못하면 "새로 구입을 해야지..."하게 되니까 말입니다. 그러다보면 결국 2권이 되는 경우가 많이 있습니다. 금년에는 소장 관련 프로그램을 하나 부탁을 해서 만들어야 하겠습니다. 비록 음력이지만  설을 깃점으로 해서 금년에는 책을 좀 정리를 해야겠습니다. 또 어느분 처럼 자신의 소장 도서임을 나타내는 도장(그 도장 이름을 알았었는데 까먹었답니다...필라..뭐라는건데..)도 하나 멋지게 만들까도 생각중에 있습니다. 하여간 금년은 책에 있어서 읽는것은 게을리 하더라도 보관이나 관리에 있어서는 한번 마음먹고 틀을 세우도록 노력을 하려고 합니다.  1년간의 목표를 세우고 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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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굼 2004-01-22 18:5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책이 적으면 내가 갖고있는건지 아닌지 금새 알죠^^;;저도 얼른; 헷갈릴 시기가 와야 할텐데...
참, '구정'이라는 말은 없어졌답니다:) 도장은 저도 만들 생각인데...언제 만들지는;;
새해 복 많이 받으세요:)

비로그인 2004-01-22 19:5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방문해주셔서 감사드립니다. 새해 건강하시고 복 많이 받으시기를 바랍니다. 하하하,,,맞아요...구정이 아니라 설이지요...<신정>이라고 하다보니 그 반대의 개념으로 혼나려고 <구정>이라 쓴것 같아요.. 저도 도장은 벌써 십여년전부터 생각을 했던 것인데 어떻게 멋들어지게 만들까로...아직까지 고민을 하고 있답니다... 제가 멋지게 만들게 되면 여기에 올리도록 하겠습니다...그리고...책도 별로 없는데 그렇답니다...하하하...

가을산 2004-01-24 22:3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흐흐흐... 저도 비슷한 경험이 많아서 알라딘 서재가 생기기 전에는 주문한 후에 엑셀파일로 만들어 놓았었답니다. ^^
그랬다가 서재 리스트 생기면서 그러지 않아도 되게 되어서 다행이에요.
그런데, 간혹 알라딘 검색에 뜨지 않는 책이 있을 때는 조금 곤란하기도 해요.

비로그인 2004-01-26 13:1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맞아요....의외로 알라딘 검색시 나오지 않는 책자가 많더군요... 서재의 소장함에 넣어두려고 많은 시간을 책 목록 작성에 보냈는데 막상 검색이 되지 않다보니..."에라....나중에 소장함에 담자"가 되어 버리더군요... 쯧.... 하여간 열심히 소장함에 집어 넣어볼까 ...아직도 생각중이랍니다...
 

蘭人이랍시고 난에 메달린지도 꽤나 오래 되었습니다. 젊은 나이에 난을 캐러 간다고 토요일 근무가 끝나면 전라도 지역으로 떠나는 기차에 몸을 싣고 난의 산지를 뒤지던 저를 보고 아버지께서는 난은 나이가 들어 생활의 여유가 있을 때 키우는 것이고 젊어서는 끊임없이 활동적인 일을 해야 한다고 말씀하셨었습니다. 집 인근의 난실이 매개체가 되어 동네에서 난에 대해 잘 아시는분들(이 분들은 나중에 한국 난계의 중추적 역할을 하시게 됩니다)과 함께 자리하면서 어깨너머로 난에 대해 조금씩 알아갈 때....  다른분들은 대부분 40~50대셨고 저만 유독 20대였었습니다.

그 당시에는 지금처럼 씽씽 달릴수 있는 고속도로는 물론이고 국도나 지방도도 변변치 못해서 늘 정읍역에 내려서는 택시와 계약을 하고 비포장길을 먼지가 폴폴나게 달려 산밑에 내려주고 또 태우러 오고는 했었는데 당시에 별로 관심이 없던 난에 대한 사람들의 인식은 지금은 엄청나게 변해서 취미는 물론이고 환금성과 투자라는 두 가지의 목적을 가지고 난을 접하는 분들도 무척 많아졌습니다. 어떤 취미를 함께하는 사람들의 집단을 동호인이라고 하는데 지금은 난 동호회도 상당히 많아진것은 물론이고 전국적으로 약 200만 가까운 사람들이 난을 한다고 합니다.

저는 직장이 서울이고 집은 지방인 관계로 한동안 베란다 그득히 키우던 난들을 난가계의 비닐하우스에 옮겨 위탁관리를 맡기고 있습니다. 제가 주말에 집으로 내려올때면 가장 먼저 들리는곳이 난가계랍니다. 물론 톨게이트를 바로 벗어나자마자 난가게가 위치하기도 하지만 짧게는 매주, 해외에 나간다거나 바쁠때는 꽤나 오랫만에 들리게 되기에 우선은 난이 얼마나 잘 자라고 있는지가 궁금하기 때문이랍니다. 식구들에게는 전화로라도 안부를 물을 수 있지만 난은 아직 전화를 받을줄을 모르거든요.

이번에는 거의 두 달이 넘게 못오다가 들리게 된것 같습니다. 3월이면 꽃을 피워야 하는 난이기에 그동안 꽃대도 어느 정도 자랐는지 궁금도 하고....또 위탁관리를 한지라 난의 상태가 어떤지도 궁금하지요. 어렸을때 부터 난과 가까이 했으니 꽤나 시간이 흘러 이제는 어느정도 난에 대해 알것도 같은데도 매번 난을 키우는 일이 어렵다는것을 느끼게 됩니다. 환경이 동일한 위치에서 재배를 한다해도 난실의 환경이 작년과는 미세하나마 달라지고 공중 습도 또한 다르니 매번 같은 조건이라고 할 수 없어 더더욱 어렵게 느껴지는것이 아닌지 모르겠습니다.

난은 어쩌면 사람의 삶과 같다고 해도 될지 모르겠습니다. 난은 보통 7~8월에 꽃눈을 올립니다. 그리고는 3월에 꽃을 피우는데 그 기간이 270일입니다. 사람의 탄생을 위한 모태생성으로부터의 기간과 똑 같이 긴 시간을 기다려야 하는데 이렇게 사람과 유사한 시간을 같는 식물은 없답니다. 남쪽 지방에는 산에 난이 지천으로 깔려 있습니다. 고향이 지방이신분들은 잘 아시겠지만 흔히들 "꿩밥" "메밥" "민춘란" "보춘화" 라고 불리던 우리의 춘란이고 우리는 이를 "한국(춘)란" 이라고 공식적으로 부릅니다. "춘란"이라는 이름이 바로 봄에 피는 난이라는 의미지요. 중국난중에 "보세"라는 품종이 있는데 우리가 일반적으로 개업이나 영전인사등에 자주 보내는 난가게에서 쉽게 볼 수 있는 난이지요. 이 난의 품종이 "報歲"인것은 세월을 알리는....즉 구정을 전후해서 꽃을 피우기에 붙여진 이름입니다.

난에 대한 분류를 말씀드리자면 많이 복잡해지기에 나중에 말씀드릴 기회가 있으면 말씀을 드리겠습니다만, 우리 나라에 자생하는 한국 춘란은 주로 2월 말 부터 4월 중순까지 산에서 꽃을 피웁니다. 꽃의 색상이 엽록소를 바탕으로 하는 녹색꽃(이 세상에서 녹색의 꽃은 난이 유일합니다)이기에 일부 학자들은 난 꽃은 꽃이 아니고 잎의 변형으로 보기도 합니다. 이러한 춘란은 남쪽지장의 야산에서도 쉽게 만날 수 있지요.  그런데 그 흔한 춘란을 뭐하러 키우냐고요? 그리고 산에서 잘 자라는 춘란을 왜 캐와서 집에서 기르느냐는 말씀들도 하십니다.

그런데 실은 난인들이 캐러 다니는 난은 돌연변이를 일으킨 난이랍니다. 쉽게 말하자면 정상이 아닌 병신인 난을 찾는것이지요. 잎이나 꽃이 정상이 아닌것을 찾아 다니는 것이고 이런 비정상적인 난에 특별한 의미를 부여하여 귀한 난으로 대접을 하는 것입니다. 난이 옛부터 고결하다하여 선비의 상징으로 그림으로 그려지고 사시사철 그 푸르름을 잃지 않기에 군자의 절개로 대변되기도 합니다. 소나무나 잣나무 같은 침엽수도 겨울에는 잎의 색이 약간의 갈색을 띠게 되는데 난만은 눈속에서도 그 푸르른 녹색을 잃지 않고 산답니다.

난실에 위탁 배양중인 제 난은 주인이 잘 찾지를 않아서인지 풀이 죽어 보입니다. 난은 주인의 머리에서 생성되는 비듬을 비료로 하여 자란다는 말이 있듯이 늘 주인이 들여다 보아야함에도 여건이 마땅치 않아 남에게 맡겨져 길러지니 사람의 수태기간과 같은 기간을 가진 고등식물인 난도 어찌 주인이 그립지 않겠습니까?   다행스럽게도 난실의 주인이 정성을 다해 길렀기에 많은 난분이 꽃대를 달고 3월이 오기만을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이제 3월이 되면 빨강꽃, 노란 꽃, 옆줄무늬 꽃 등등을 뽐내겠지요....    비록 남에게 위탁되고 있는 난일지라도... 제 난들이 남에게는 보잘것 없이 보이는 난이지만 제게는 제 자신이 나름대로의 의미를 부여한 난이기에 애착을 가지고 기다리려고 합니다.  몇시간을 보고 또 보고....오랜동안 떨어져 있던 가족이 상봉하여 얼마나 변했나를 확인하고 또 확인하는 심정으로 차가운 난실에서 그렇게 난들을 일일히 살펴보았습니다. 이제 한동안은 난들도 자신의 주인의 얼굴을 기억할 수 있을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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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립간 2004-01-23 12:5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수수께끼님 새해 복 많이 받으세요. 설 선물입니다.

 사실 인터넷에 떠돌고 있는 사군자 사진과 그림을 몇 장 모아 놓은 것이 있는데,  그 중 하나입니다. 저는 게으르고, 연약한 난을 보면 안스러워 난을 키우고 싶어도 못 키우고, 선인장만 키우고 있습니다.  그런대로 절제된 관계도 매력  있습니다.


비로그인 2004-01-23 14:3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난을 치는것을 군자의 도로 알았던 시절이 있었고 난은 바로 군자가 갖는 굳은 절개를 나타내기도 한다지만 정말 멋진 묵란도입니다. 안타까운것은 흥선이나 민영익이 쳤던 난은 우리의 난이 아니라 중국의 묵란도를 본 뜬 중국란을 친것이지요. 秋史의 난맹첩에는 난을 치는 법을 설명하고 있는데 이는 난을 친다기 보다는 사람이 살아가는 도리를 설명하고 있는듯 합니다. 설 선물로 주신 묵란을 일생일란으로 삼을까요? 감사드리며 항상 건강과 행복이 마립간님께 늘 함게 하기를 기원합니다.

마립간 2004-01-23 22:4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난을 좋아한다.'라고 하기 보다는 '군자를 좋아한다.'고 하는 것이 맞을 겁니다. 난초는 쥐면 깨질까, 불면 날아갈까. 여린 모습에 지조를 지키려는 안타까운 모습이 가슴에 져며 옵니다. 저는 난을 좋아하기 보다는 사군자를 좋아한다고 할 수 있지요. 수수께끼님에게 드린 묵란은 제가 갖고 있는 난초 그림의 하나를 보낸 것인데(인터넷 그림중의 하나), 일생일란을 언급하시니 몸둘 바를 모르겠습니다. 저는 단지 아무도 모르는 곳에서 자신의 신념을 지키고 살아가는 누군가가 있기에 제가 이렇게 편안하게 살고 있음을 알고 있을 뿐입니다.

마립간 2004-01-23 22:5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예전에 '추사'가 천재라고 하기에 왜 천재인가 했습니다. 완당 평전을 읽고 난후 '이리하여 천재라 불리우는구나!' 하고 느꼈습니다. 난초를 그리며 자신을 수양하는 모습, 상상만 해도 군자, 선비, 신선이 연상됩니다.

엔젤 2009-06-10 05:10   좋아요 0 | 댓글달기 | 수정 | 삭제 | URL
안녕하세요. 어릴때 미국에와서 한국기억이 없지만 아버님께서 난이 참 많으 셨는데... 꽃이 피면향기가 참 좋았어요... 미국에 와서도 하시곤 했었죠 한국과 미국을 왕래하시면서 10년도 지난 지금은 다 없어지구 말았어요. 아버지께서 유일히 즐기셨는데... 하튼. 저는 사실 아이디어를 었구 정보찾으러 돌아다니다가 여기 오게 됬는데요. 난을 좋아 하시는 분들께는 쉬울것 같아서요. 난으로 유명한 화가를 알고 싶어요. 지금 없는화가랑 살아계신 작가중에 잘 그리시는 분... 사군자에 대해 읽어 보았긴 했지만... 저 많은 정보를 알고 싶은데 쉽지가 않네요. 도움좀 주세요. 난을 생각하면... 한국인가요 중국인가요 일본인가요? 한국으로 알고 있거등요 ...제 이멜이요
www.missoo@hotmail.com 감사합니다.
 

蘭人이랍시고 난에 메달린지도 꽤나 오래 되었습니다. 젊은 나이에 난을 캐러 간다고 토요일 근무가 끝나면 전라도 지역으로 떠나는 기차에 몸을 싣고 난의 산지를 뒤지던 저를 보고 아버지께서는 난은 나이가 들어 생활의 여유가 있을 때 키우는 것이고 젊어서는 끊임없이 활동적인 일을 해야 한다고 말씀하셨었습니다. 집 인근의 난실이 매개체가 되어 동네에서 난에 대해 잘 아시는분들(이 분들은 나중에 한국 난계의 중추적 역할을 하시게 됩니다)과 함께 자리하면서 어깨너머로 난에 대해 조금씩 알아갈 때....  다른분들은 대부분 40~50대셨고 저만 유독 20대였었습니다.

그 당시에는 지금처럼 씽씽 달릴수 있는 고속도로는 물론이고 국도나 지방도도 변변치 못해서 늘 정읍역에 내려서는 택시와 계약을 하고 비포장길을 먼지가 폴폴나게 달려 산밑에 내려주고 또 태우러 온 택시를 기다렸다 정읍역에서 뜨거운 오뎅국물로 추위와 허기를 달래다가 기차를 타고 돌아오고는 했었는데 당시에 별로 관심이 없던 난에 대한 사람들의 인식은 지금은 엄청나게 변해서 취미는 물론이고 환금성과 투자라는 두 가지의 목적을 가지고 난을 접하는 분들도 무척 많아졌습니다. 어떤 취미를 함께하는 사람들의 집단을 동호인이라고 하는데 지금은 난 동호회도 상당히 많아진것은 물론이고 전국적으로 약 200만 가까운 사람들이 난을 한다고 합니다.

저는 직장이 서울이고 집은 지방인 관계로 한동안 베란다 그득히 키우던 난들을 난가게의 비닐하우스에 옮겨 위탁관리를 맡기고 있습니다. 제가 주말에 집으로 내려올 때면 가장 먼저 들리는곳이 난가게랍니다. 물론 톨게이트를 바로 벗어나자마자 난가게가 위치하기도 하지만 짧게는 매주, 해외에 나간다거나 바쁠때는 꽤나 오랫만에 들리게 되기에 우선은 난이 얼마나 잘 자라고 있는지가 궁금하기 때문이랍니다. 식구들에게는 전화로라도 안부를 물을 수 있지만 난은 아직 전화를 받을줄을 모르거든요.

이번에는 거의 두 달이 넘게 못오다가 들리게 된것 같습니다. 3월이면 꽃을 피워야 하는 난이기에 그동안 꽃대도 어느 정도 자랐는지 궁금도 하고....또 위탁관리를 한지라 난의 상태가 어떤지도 궁금하지요. 어렸을때 부터 난과 가까이 했으니 꽤나 시간이 흘러 이제는 어느정도 난에 대해 알것도 같은데도 매번 난을 키우는 일이 어렵다는것을 느끼게 됩니다. 동일한 위치에서 재배를 한다해도 난실의 환경이 작년과는 미세하나마 달라지고 공중 습도 또한 다르니 매번 같은 조건이라고 할 수 없어 더더욱 어렵게 느껴지는것이 아닌지 모르겠습니다.

난은 어쩌면 사람의 삶과 같다고 해도 될지 모르겠습니다. 난은 보통 7~8월에 꽃눈을 올립니다. 그리고는 3월에 꽃을 피우는데 그 기간이 270일입니다. 사람의 탄생을 위한 모태생성으로부터의 기간과 똑 같이 긴 시간을 기다려야 하는데 이렇게 사람과 유사한 시간을 같는 식물은 없답니다. 남쪽 지방에는 산에 난이 지천으로 깔려 있습니다. 고향이 지방이신분들은 잘 아시겠지만 흔히들 "꿩밥" "메밥" "민춘란" "보춘화" 라고 불리던 우리 산하에 지천으로 널린 춘란이고 우리는 이를 "한국(춘)란" 이라고 공식적으로 부릅니다. "춘란"이라는 이름이 바로 봄에 피는 난이라는 의미지요. 중국난중에 "보세"라는 품종이 있는데 우리가 일반적으로 개업이나 영전인사등에 자주 보내는 난가게에서 가장 쉽게 볼 수 있는 난이지요. 이 난의 품종이 "報歲"인것은 세월을 알리는 난이라는 의미....즉 구정을 전후해서 꽃을 피우기에 붙여진 이름입니다.

난에 대한 분류를 말씀드리자면 많이 복잡해지기에 나중에 말씀드릴 기회가 있으면 말씀을 드리겠습니다만, 우리 나라에 자생하는 한국 춘란은 주로 2월 말 부터 4월 중순까지 산에서 꽃을 피웁니다. 꽃의 색상이 엽록소를 바탕으로 하는 녹색꽃(이 세상에서 녹색의 꽃은 난이 유일합니다)이기에 일부 학자들은 난 꽃은 꽃이 아니고 잎의 변형으로 보기도 합니다. 이러한 춘란은 남쪽지방의 야산에서도 쉽게 만날 수 있지요.  그런데 그 흔한 춘란을 뭐하러 키우냐고요? 그리고 산에서 잘 자라는 춘란을 왜 캐와서 집에서 기르느냐는 말씀들도 하십니다.

그런데 실은 난인들이 캐러 다니는 난은 돌연변이를 일으킨 난이랍니다. 쉽게 말하자면 정상이 아닌 병신인 난을 찾는것이지요. 잎이나 꽃이 정상이 아닌것을 찾아 다니는 것이고 이런 비정상적인 난은 산에서 그 품종을 유지하며 자라지 못하기에 그 난들에 특별한 의미를 부여하여 귀한 난으로 대접을 하는 것입니다. 난이 옛부터 고결하다하여 선비의 상징으로 그림으로 그려지고 사시사철 그 푸르름을 잃지 않기에 군자의 절개로 대변되기도 합니다. 소나무나 잣나무 같은 침엽수도 겨울에는 잎의 색이 약간의 갈색을 띠게 되는데 난만은 눈속에서도 그 푸르른 녹색을 잃지 않고 산답니다.

난실에 위탁 배양중인 제 난은 주인이 잘 찾지를 않아서인지 풀이 죽어 보입니다. 다른 난 주인들은 매일 난실에 들리기도 하는데 제 난들은 주인을 잘못 만난 셈이지요...난은 주인의 머리에서 생성되는 비듬을 비료로 하여 자란다는 말이 있듯이 늘 주인이 들여다 보아야함에도 여건이 마땅치 않아 남에게 맡겨져 길러지니 사람의 수태기간과 같은 기간을 가진 고등식물인 난도 어찌 주인이 그립지 않겠습니까?   다행스럽게도 난실의 주인이 정성을 다해 길렀기에 많은 난분이 꽃대를 달고 3월이 오기만을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이제 3월이 되면 빨강꽃, 노란 꽃, 옆줄무늬 꽃 등등을 뽐내겠지요....    비록 남에게 위탁되고 있는 난일지라도... 제 난들이 남에게는 보잘것 없이 보이는 난이지만 제게는 제 자신이 나름대로의 의미를 부여한 난이기에 애착을 가지고 기다리려고 합니다.  몇시간을 보고 또 보고....오랜동안 떨어져 있던 가족이 상봉하여 얼마나 변했나를 확인하고 또 확인하는 심정으로 차가운 난실에서 그렇게 난들을 일일히 살펴보았습니다. 이제 한동안은 난들도 자신의 주인의 얼굴을 기억할 수 있을겁니다.

                                                < 如      村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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