蘭人이랍시고 난에 메달린지도 꽤나 오래 되었습니다. 젊은 나이에 난을 캐러 간다고 토요일 근무가 끝나면 전라도 지역으로 떠나는 기차에 몸을 싣고 난의 산지를 뒤지던 저를 보고 아버지께서는 난은 나이가 들어 생활의 여유가 있을 때 키우는 것이고 젊어서는 끊임없이 활동적인 일을 해야 한다고 말씀하셨었습니다. 집 인근의 난실이 매개체가 되어 동네에서 난에 대해 잘 아시는분들(이 분들은 나중에 한국 난계의 중추적 역할을 하시게 됩니다)과 함께 자리하면서 어깨너머로 난에 대해 조금씩 알아갈 때.... 다른분들은 대부분 40~50대셨고 저만 유독 20대였었습니다.
그 당시에는 지금처럼 씽씽 달릴수 있는 고속도로는 물론이고 국도나 지방도도 변변치 못해서 늘 정읍역에 내려서는 택시와 계약을 하고 비포장길을 먼지가 폴폴나게 달려 산밑에 내려주고 또 태우러 온 택시를 기다렸다 정읍역에서 뜨거운 오뎅국물로 추위와 허기를 달래다가 기차를 타고 돌아오고는 했었는데 당시에 별로 관심이 없던 난에 대한 사람들의 인식은 지금은 엄청나게 변해서 취미는 물론이고 환금성과 투자라는 두 가지의 목적을 가지고 난을 접하는 분들도 무척 많아졌습니다. 어떤 취미를 함께하는 사람들의 집단을 동호인이라고 하는데 지금은 난 동호회도 상당히 많아진것은 물론이고 전국적으로 약 200만 가까운 사람들이 난을 한다고 합니다.
저는 직장이 서울이고 집은 지방인 관계로 한동안 베란다 그득히 키우던 난들을 난가게의 비닐하우스에 옮겨 위탁관리를 맡기고 있습니다. 제가 주말에 집으로 내려올 때면 가장 먼저 들리는곳이 난가게랍니다. 물론 톨게이트를 바로 벗어나자마자 난가게가 위치하기도 하지만 짧게는 매주, 해외에 나간다거나 바쁠때는 꽤나 오랫만에 들리게 되기에 우선은 난이 얼마나 잘 자라고 있는지가 궁금하기 때문이랍니다. 식구들에게는 전화로라도 안부를 물을 수 있지만 난은 아직 전화를 받을줄을 모르거든요.
이번에는 거의 두 달이 넘게 못오다가 들리게 된것 같습니다. 3월이면 꽃을 피워야 하는 난이기에 그동안 꽃대도 어느 정도 자랐는지 궁금도 하고....또 위탁관리를 한지라 난의 상태가 어떤지도 궁금하지요. 어렸을때 부터 난과 가까이 했으니 꽤나 시간이 흘러 이제는 어느정도 난에 대해 알것도 같은데도 매번 난을 키우는 일이 어렵다는것을 느끼게 됩니다. 동일한 위치에서 재배를 한다해도 난실의 환경이 작년과는 미세하나마 달라지고 공중 습도 또한 다르니 매번 같은 조건이라고 할 수 없어 더더욱 어렵게 느껴지는것이 아닌지 모르겠습니다.
난은 어쩌면 사람의 삶과 같다고 해도 될지 모르겠습니다. 난은 보통 7~8월에 꽃눈을 올립니다. 그리고는 3월에 꽃을 피우는데 그 기간이 270일입니다. 사람의 탄생을 위한 모태생성으로부터의 기간과 똑 같이 긴 시간을 기다려야 하는데 이렇게 사람과 유사한 시간을 같는 식물은 없답니다. 남쪽 지방에는 산에 난이 지천으로 깔려 있습니다. 고향이 지방이신분들은 잘 아시겠지만 흔히들 "꿩밥" "메밥" "민춘란" "보춘화" 라고 불리던 우리 산하에 지천으로 널린 춘란이고 우리는 이를 "한국(춘)란" 이라고 공식적으로 부릅니다. "춘란"이라는 이름이 바로 봄에 피는 난이라는 의미지요. 중국난중에 "보세"라는 품종이 있는데 우리가 일반적으로 개업이나 영전인사등에 자주 보내는 난가게에서 가장 쉽게 볼 수 있는 난이지요. 이 난의 품종이 "報歲"인것은 세월을 알리는 난이라는 의미....즉 구정을 전후해서 꽃을 피우기에 붙여진 이름입니다.
난에 대한 분류를 말씀드리자면 많이 복잡해지기에 나중에 말씀드릴 기회가 있으면 말씀을 드리겠습니다만, 우리 나라에 자생하는 한국 춘란은 주로 2월 말 부터 4월 중순까지 산에서 꽃을 피웁니다. 꽃의 색상이 엽록소를 바탕으로 하는 녹색꽃(이 세상에서 녹색의 꽃은 난이 유일합니다)이기에 일부 학자들은 난 꽃은 꽃이 아니고 잎의 변형으로 보기도 합니다. 이러한 춘란은 남쪽지방의 야산에서도 쉽게 만날 수 있지요. 그런데 그 흔한 춘란을 뭐하러 키우냐고요? 그리고 산에서 잘 자라는 춘란을 왜 캐와서 집에서 기르느냐는 말씀들도 하십니다.
그런데 실은 난인들이 캐러 다니는 난은 돌연변이를 일으킨 난이랍니다. 쉽게 말하자면 정상이 아닌 병신인 난을 찾는것이지요. 잎이나 꽃이 정상이 아닌것을 찾아 다니는 것이고 이런 비정상적인 난은 산에서 그 품종을 유지하며 자라지 못하기에 그 난들에 특별한 의미를 부여하여 귀한 난으로 대접을 하는 것입니다. 난이 옛부터 고결하다하여 선비의 상징으로 그림으로 그려지고 사시사철 그 푸르름을 잃지 않기에 군자의 절개로 대변되기도 합니다. 소나무나 잣나무 같은 침엽수도 겨울에는 잎의 색이 약간의 갈색을 띠게 되는데 난만은 눈속에서도 그 푸르른 녹색을 잃지 않고 산답니다.
난실에 위탁 배양중인 제 난은 주인이 잘 찾지를 않아서인지 풀이 죽어 보입니다. 다른 난 주인들은 매일 난실에 들리기도 하는데 제 난들은 주인을 잘못 만난 셈이지요...난은 주인의 머리에서 생성되는 비듬을 비료로 하여 자란다는 말이 있듯이 늘 주인이 들여다 보아야함에도 여건이 마땅치 않아 남에게 맡겨져 길러지니 사람의 수태기간과 같은 기간을 가진 고등식물인 난도 어찌 주인이 그립지 않겠습니까? 다행스럽게도 난실의 주인이 정성을 다해 길렀기에 많은 난분이 꽃대를 달고 3월이 오기만을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이제 3월이 되면 빨강꽃, 노란 꽃, 옆줄무늬 꽃 등등을 뽐내겠지요.... 비록 남에게 위탁되고 있는 난일지라도... 제 난들이 남에게는 보잘것 없이 보이는 난이지만 제게는 제 자신이 나름대로의 의미를 부여한 난이기에 애착을 가지고 기다리려고 합니다. 몇시간을 보고 또 보고....오랜동안 떨어져 있던 가족이 상봉하여 얼마나 변했나를 확인하고 또 확인하는 심정으로 차가운 난실에서 그렇게 난들을 일일히 살펴보았습니다. 이제 한동안은 난들도 자신의 주인의 얼굴을 기억할 수 있을겁니다.
< 如 村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