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작년 이맘때쯤 전라도 지역의 난 상인으로 부터 밤 늦은 시간에 연락이 왔습니다. 아주 좋은 난이 나왔는데 구매하지 않겠냐는 이야기였고 제 이메일을 통해서 그 난의 사진을 보내 주겠으니 사진으로나마 먼저 보라는 이야기였습니다.  잠시후 이메일을 통해서 확인할 수 있는 난은 우리 나라에서는 보기 힘든 아주 멋진 난이었습니다.  워낙 고가의 난인지라 망설여지기도 했지만 단 하나뿐인 난을 구입해야하나 아니면 제 형편대로 그냥 침이나 삼키고 말아야 하는가를 놓고 밤새 잠을 이루지 못했습니다.

2. 결국....다음날 아침 출근을 하여서는 구매의사를 전화로 통보해 주었습니다. 그 난을 사려고 주머니를 닥닥 긁어봐도 뻔한것이라 은행에 달려가서 마이너스통장이라는 것을 개설하여서는 거금을 송금하고 구매를 하게 되었습니다. 일생일란이라는 말이 있습니다. 평생 한분의 난으로 자족할 수 있는 난인의 마음을 뜻하는 말이지만 어디 평생 단 한분의 난을 키우는데 그냥 그런 난을 키울수야 있겠습니까? 여기서 일생일란의 모순이 발생하기 시작합니다. 그 단한분의 난은 아무도 가지지 않고 오직 나만 가지고 있는 난이기를 아마도 전 난인들은 바랄것입니다. 그래서 거금을 주고서라도 자신만의 난을 구하려고 하는것입니다.

3. 제가 구입한 난은 난계에 발없이 소문이 날려 제가 구입하고나자마자 전국에서 전화가 오고 난리가 아니었습니다. 워낙 좋은 난인지라 시도때도 없이 밤이고 낮이고 되팔라는 전화가 끊이지를 않았습니다. 제가 샀던 금액의 네 다섯배를 넘긴 금액으로 구매하겠다는 의사를 전해오기도 하였지만, 저는 이 난을 정말 일생일란으로 삼기로 작정하고 모든 제의를 거절했습니다. 모두 3촉의 난이었지만 해가 지남에 따라 촉수가 늘어갈 것이고 촉수가 많아지면 그 때는 다른 사람들에게도 분양을 해 주리라 마음먹었지요. 제 난을 본 사람들은 모두가 입에 침이 마르도록 부러움을 토로했었습니다. 우리 나라에서 단 하나뿐인 난.....그 얼마나 희귀하고 귀한 난이겠습니까?

4. 작년 봄.....새롭게 싹이 올라 아주 튼실하게 자라고 있었습니다. 난에게는 여름이 가장 두려운 계절입니다. 고온으로 인한 병충해는 물론이고 기타 여러가지 난에 관한 병들이 만연을 하는 시기이기에 각별히 관리에도 주의를 해야 합니다. 제가 위탁배양하는 난실에 난을 가져다 놓으면서 이 난이 어떤 난이라는것을 아무에게도 알리지 않았습니다. 소위 손을 탈 수 있기 때문이었지요. 수십개의 난분 속에 섞여 있는 그 난에게 눈총을 주지 않는것 처럼 하면서도 곁눈질로나마 난이 잘 자라나를 확인하는 마음을 이해하시겠는지요?  3촉짜리 난은 새 싹도 힘차게 잘 커가고 있었습니다.정말 뿌듯한 일이지요...

5. 그런데 작년 9월경 난실을 방문한 저는 깜짝 놀랐습니다. 그 많은 난분중에서 유독 일생일란으로 삼은 그 난의 잎만 갈색으로 변하여 죽어가는 것이었습니다. 다행히 전체 4촉중에서 2촉은 멀쩡하기에 급하게 소독을 하고는 다시 심었습니다. 그리고 다음주에 난이 걱정이 되어 집에 가면서 우선 난실에 들렸는데...아뿔싸!!  그 난이 완전히 갈색으로 변하여 죽어버린 것입니다. 누구에게 원망을 할 수도 없고 다른 난들은 다들 싱싱하게 잘 자라는데 왜 하필이면 그 귀한 난만 죽어버린것인지 낙담과 함게 정말 이해하기가 힘이 들었습니다.

6. 돈도 물론 거금을 들여 구매를 하였지만 더 안타까운것은 이 세상에 단 한종자뿐인 난이 죽음으로서 그 난이 멸종을 했다는 생각이 가슴을 아프게 하는 것이었습니다. 미인박명이라는 말이 난에도 적용이 되는지는 몰라도 난을 길러보신분들은 아시겠지만 이상하게도 귀한 난들이 일찍 죽습니다. 그렇게 해서 일생일란의 꿈은 와르르 깨어져 버리고 말았습니다. 아직도 마이너스 통장을 메꾸기 위해 용돈을 쪼개고 쪼개는데 그 주체가 되었던 귀품은 제 곁을 떠나고 없습니다.

7. 모든 일은  사람들이 노력을 한다고 다 이루어지지는 않는 모양입니다. 정말...제가 보기에도 아주 튼실하고 건강했던 난이 한 순간에 불귀의 객이 되었다는 것은 이해하기 힘듭니다. 어쩌면 그 난은 아무리 귀품이고 고가의 난이었을 망정 저와의 인연은 아니었는지도 모릅니다. 얼마나 난이 좋았는지 억대의 금액을 제시하고 구매하겠다는 분도 있을 정도였지만 이제는 제 마음속에서 그 난을 떨쳐버렸습니다. 일생일란이란 원한다고 갖게 되는것이 아니라는것을 알았습니다. 어쩌면 그 일생일란은 고가의 귀한 난이 아니고 흔하게 우리네 산천에 널려있는 보춘화가 아닐까 하는 생각도 해 봅니다. 한편으로는 난 욕심이 앞서 거금을 들여 난을 구입한 저에게 욕심을 가져서는 안된다는 따끔한 교훈을 주고자 했는지도 모르겠습니다.  견물생심이라고 난이 꽃을 피우는 봄철만 되면 열병처럼 앓게되는 난에 대한 욕심을 이제는 버리겠다고 마음먹었습니다. 지금 제 난대(蘭臺)위에 가지런히 놓여있는 난이라도 잘 키워서 아름답게 꽃피우는 것이 일생일란을 만들고 가꾸어 나가는 일이 아닌가 가만히 생각해 봅니다.

                                             < 如      村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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