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녀의 눈동자 1939 내인생의책 푸른봄 문학 (돌멩이 문고) 1
한 놀란 지음, 하정희 옮김 / 내인생의책 / 2007년 1월
평점 :
절판


이날은 심판의 날이었다.
심판은 하늘에서 이루어지지 않았다. 땅에서 이루어졌다.
선량한 사람들은 구원을 받지 못했으며 악한 사람들은 지옥으로 추방되지 않았다.
선과 악, 죄인과 무고한 사람을 가르는 기준은 바로, 나이가 몇살인가에 있었다.

 -한 놀란 <소녀의 눈동자 1939>

잊어버려야할 것은 깨끗하게 잊고 사는 것이 스트레스 받지 않으며 사는 길이거늘,
이 책은 주인공 샤냐의 할머니 입을 빌어 끊임없이 잊지 말 것을 당부한다.
열여덟, 샤나의 눈에 비친 지옥보다 더한 삶.
잊지 말고 모두 기억해두어 똑같은 역사가 되풀이되게 해서는 안된다는 말씀.
사실, 모든 것이 흐트러지기 시작하는 것은 이전의 사건을 잊지 때문에 발생한다.
잊지 말것이며, 기억해둘 것이며, 나의 고통을 떠올려 타인에게 고통을 짊어지게 하지 말것이다.

어린 시절 아버지를 잃고,늘 엄마에게 내버려졌다고 생각하는 힐러리.
반항적이고, 분노에 가득찬 이 소녀 힐러리는 어느 날 길에서 브래드를 발견하고,
그를 좋아하게 되었으며 그를 따라 신나치 집단에 빠져들게 되었다.
유대인 아이를 괴롭히고, 여기저기 문제를 일으키고 다니는 이 문제아들은
자신들이 세상을 깨끗하게 한다고 착각한다.
교통사고로 식물인간이 된 힐러리의 무의식속에 히틀러가 살아있고,
폴란드가 점령되었던 1930년대의 풍경이 보이기 시작한다.
그녀는 '샤나'라는 열여덟살의 소녀였고, 굶주림과 공포속에서 살아간다.
힐러리는 샤나를 통해 알수 있을까. 자신과 자신의 친구들의 행동이 엄청난 실수라는 것을.
잊지 말아야할 것을 잊어버렸기 때문에, 얼마나 많은 사람들을 곤란과 공포속으로 빠트리고 있는지.
 

개인적으로 극도로 피하는 이야기중 하나가 나치와 유대인에 대한 이야기인데,
알고 싶지 않아서가 아니라, 너무도 무섭고 불쌍하고 뭐라 말할수 없이 기분이 안좋아지기 때문이다.
이 소설을 읽는 내내 그런 기분을 느꼈다.
나는 세상의 진실, 분명히 있었던 사실에 도피하고 싶어한다.
그것이 가져오는 너무도 인간적인 감정을 두려워하기 때문이다.
그런데도 이 소설은 잊지 말 것을 당부한다.
잊지 말고 기억해두어 다시는 참혹한 역사를 되풀이 하지 말라고.

이해할수 있다고 하면 거짓말이다.
나는 유대인들이 겪었던 혹독한 추위도, 굶주림도, 하루 하루를 연명하는데 감사해야하는
삶의 고단함과 공포를 겪어본적이 없다.
몸의 고통으로 사람의 마음까지 피폐해져, 생존본능이외에는 모든 감정을 죽이고,
산 것도, 죽은 것도 아닌 상태에서 살아가본 적이 없다.
그래서 모두 이해할수 있다면 커다란 만용이겠지만,
샤나의 이야기를 따라가면서 나는 무척 괴로웠고, 슬펐다.
인간으로 태어나 어떻게. 어째서 인간이 인간을 이렇게 해야만 했을까.

무척 재밌게 읽은 책이지만, 책을 후반부에 가서는 지나치게 기독교적인 가르침으로
마무리를 지으려 하는 점이 상당히 마음에 들지 않았다.
서양인들의 시선에서 보았기 때문일까. 고생하는 내내 신을 부정하던 샤나가 신의 존재를 믿게 된다.
아니, 어째서? 왜?
신이 있다면, 어째서 이런 사악한 인간을 만들었을까.
신이 있다면, 이렇게 오랫동안 고통받으며 죽어가는 사람들이 필요할때
단 한번도 나타나 주지 않는것일까. 무슨 놈의 신이 그래?
그런데도 왜 신은 있고, 신이 언제나 곁에서 지켜주고 있었다고 말하는 거지?
가족들이 산산히 흩어지고, 수도 없이 많은 사람들이 의미없이 죽어나갔는데,
신은 어디있었다는 거지?

이 모든 일은 인간이 벌인 짓이다. 인간은 그만치 사악하고, 폭력적이다.
그리고 견뎌낸 것도 인간이다.
절대로, 신이 아니다.
인간의 모든 일은 땅에서 이루어진다. 하늘이 아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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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슬아슬한 책쌓기...=_=)

엄마가 준 문화상품권으로 새로 산 책들 7권.
이번에는 아주 두껍거나 2권짜리이거나 그렇다.
요즘은 고전적인 소설을 읽고 싶어서 그런 소설들을 골라봤다.
 
오래전부터 산다고만 하던 <사고루 기담>을 샀고,
역시 담아놓고 마땅히 주문할 기회가 없어서 언젠가를 기약하던 <열세번째 이야기>와
한때 절판으로 나를 애타게했던 <화차>의 재발간본도 샀다.
읽고 싶었는데 요즘 유난히 눈에 밟히는 빅토르 위고의 <웃는 남자>와
역대 최고의 번역이라고 자기들이 자랑하는 <올리버 트위스트>의 개정판을 샀다.



최고 번역이라고 자랑하는 올리버 트위스트. 두고보겠다. 얼마나 최고의 번역인지...

두권짜리면 표지도 좀 예쁘게 해달라. 이게 뭐니 이게...
민음사 세계문학 전집같이 생겼잖아!
<웃는 남자>는 래핑이 되어서 왔는데, 래핑되어있으니 책이 깔끔해서 좋다.

황금돼지 책갈피도 들어있다.=_=;



우억...이게 뭐야!
이렇게 두꺼운 책은 요즘들어 처음본다.
심지어는 요 근래 가장 두꺼웠던 핑거스미스보다 크고 두껍다. 덜덜...
어떻게 다 읽지....이번주는 열세번째 이야기에 바치겠다!
그나저나 이건 또 책 옆부분이 더럽혀져서 왔다. 젠장...이제 항의하기도 귀찮다.

 

화차도 만만치 않게 두껍다. 이게 이렇게 두꺼웠었구나...덜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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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만두 2007-02-24 16:5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열세번째이야기는 두꺼워도 금방 읽을 수 있어요^^

Apple 2007-02-24 23:5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넵...생각보다 그다지 두껍지도 않더군요.^^;;종이가 두꺼워서 핑거스미스보다 두껍게 느껴졌을뿐...

쥬베이 2007-11-29 21:3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시즈님도 '열린책들 양장본' 팬??? 저 열린책들 양장 아주 좋아해요~
핑거스미스 아직 안샀는데, 고민중입니다.
그나저나, 시즈님 침실공개 하셨네요ㅋㅋ 아..죄송합니다ㅋㅋ

Apple 2007-11-29 23:0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케케케케케~네...제가 자는 방입니다.*-_-*푸훗....
핑거스미스는 아주 재밌어요.^^ 꼭 읽어보시길...
 

증정받은 아수라 걸이 월요일에, 증정받은 데이워치가 화요일에, 그리고 내가 주문한 책이 오늘-
월요일부터 수요일까지 하루에 한번씩 도착한 책들.
(핑거스미스는 선물용으로 하나 더 샀다♥)
또 더럽혀져서 온 책이 있으니 이거 원...-'''- 또 항의해야겠다.
역시 그득 쌓여있으니 마음이 든든하다.
 
이번 책들에는 독특한 타이포그래피를 자랑하는 책이 두권 있는데,
하나는 <아수라 걸> 그리고 또 하나는 <엄청나게 시끄럽고 믿을수 없게 가까운>이다.
 
 
<아수라 걸>의 대답한 타이포그래피.
소리를 지르는 부분에서는 이렇게 대담하게 글자를 키우고,
중간중간 커졌다 작아졌다가 요동치는 글자들.
 
<엄청나게 시끄럽고 믿을수 없게 가까운>의 엄청난 타이포그래피 편집.
마구 빨간 펜으로 줄이 그어져 있고, 글자들이 겹치다 겹치다 못해 새까맣게 변하기도 하고,
한페이지에 한줄 있는 페이지도 있고... 이 책도 글자가 요동친다.
꽤 두꺼운 책인데, 중간중간 사진도 많고 타이포그래피 편집도 예뻐서 보는 것만으로도 왠지 즐겁다.
모르는 사람이 봤으면 내가 책에 낙서한 줄 알겠다.=_=;
 
나른한 두 여자들.....아아 예뻐라...
 
더럽혀져서 온 <드라큘라 그의 이야기>. 항의해야겠다. 두번이나 더럽혀진 책을 보내다니...-'''-
왠 머그컵도 하나 들어있는데 새해 선물인가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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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연 2007-02-24 19:1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도 조런 머그컵, 알라딘에서 받았는데. ㅋ
그나저나 핑거스미스도 보이네요. 지금 읽고 있는데, 아직까진 잘 모르겠다는..

Apple 2007-02-24 23:5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1월에 샀던 책이라 저기있는건 거의 읽었습니다만, 저는 핑거스미스 재밌었어요..^^헤헤..

쥬베이 2007-12-02 04:4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핑거스미스 두툼한게 예쁘네요~

Apple 2007-11-29 23:0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내용도 재밌어요.^ㅅ^
 
열세 번째 이야기
다이안 세터필드 지음, 이진 옮김 / 비채 / 2007년 1월
평점 :
구판절판


책을 읽다가 무심코 책을 바닥에 떨어뜨렸는데 쿵!! 하는 엄청난 소리가 나서 깜짝 놀랐다.
최근 몇달간 읽은 소설중에서는 <핑거스미스>가 가장 두꺼운 책이라고 생각했는데,
<핑거스미스>보다 더 크고 더 두꺼워 겁을 먹게 했던 <13번째 이야기>는
생각보다 두껍지도 않고,(종이가 더 두꺼웠을뿐....) 훨씬 재빨리 읽을수 있는 소설이다.
 
이야기는 한 책방에서 시작된다.
책방 딸이자, 아마추어 전기작가이고, 도서를 관리하는 일을 하고 있는 마가렛은
어느날 계단에 놓인 편지를 받게 된다.
어설픈 글씨로 써내려간 편지에는, 비다 윈터 여사의 인터뷰를 제안하는 내용이 써있다.
비다 윈터. 수십권의 책을 써낸 베스트셀러 작가이자, 오랫동안 매스컴에 자신의 과거를 거짓말해왔던 여자.
그녀는 하필이면, 비다 윈터의 소설을 한권도 읽지 않았던 마가렛에게 전기소설을 써줄것을 부탁해온다.
그제서야 부랴부랴 비다 윈터의 소설에 탐닉하게 된 마가렛.
커다란 대저택과 까탈스럽게 그지 없는 노인 비다 윈터 여사.
어린 시절 쌍둥이를 잃어본 경험이 있는 마가렛은 비다윈터 여사의 쌍둥이 소녀의 이야기를 듣기 시작하고,
그녀의 과거 행적을 추적해나가기 시작한다.
 
작가 다이안 세터필드는 불어를 전공하고 프랑스 문학에 심취되어있다가,
소위 <고딕소설>이라고 일컬어지는 고전에 빠지게 되었다는데,
그녀의 나이 마흔 한살에 쓴 <13번째 이야기>는 어린 시절, 음울하고 낭만적인 고딕소설에 빠졌던 시절을
떠오르게 할만한 소설이다.
고딕소설들에서 자주 등장하는 소재들-황무지, 음울한 저택, 쌍둥이, 정신질환, 근친상간,
삐뚤어진 가족들, 집착과 광기, 그림자, 비밀, 안개, 비-이 소설에는 이 모든 것이 등장하는데,
의외로 읽으면서 고딕소설다운 음울함이나 우울함을 찾기는 어려웠다.
오히려 고딕소설이라기보다는 동화에 가까운 이야기라고 생각되었고,
작품에 드리워진 전체적인 분위기는 음산하고 울적하다기보다는 따뜻한 편이었다.
 
작가가 살짝 뒤늦게 고딕소설에 빠져서인지, 고딕소설의 전형적인 그늘에서 헤어나오지 못하고 있다는
생각도 얼핏 들었고, 너무나 빈번하게 등장하는 <제인 에어>의 이야기에서도 그렇듯
제인 에어의 영향력을 너무 드러내는 것이 아닌가 싶기도 해서, 그런 점에서는 살짝 실망스럽다.
(개인적으로 제인에어를 내 생애 최고의 소설로 생각하고 있기 때문에,
노골적으로 제인에어를 표방하고 나와버리면 살짝 꼬이기도 하는 것이 사실이다.)
재밌는 책임에도 인상적이지 못한 이유는 카리스카의 부족이 아닌가 싶기도 하지만,
전체적으로는 무척 괜찮은 책이었다.
이야기의 몰입도나 완성도도 무척 훌륭하고, 이야기의 얼개 또한 흥미롭다.
 
어른이 되어서 잊어버린 어린 시절의 이야기들.
누구의 어린 시절이나 하나의 글로 묶어놓으면 모두 드라마가 되는 것일까.
누구에게나 이야기는 있다. 우리는 흔히, 자신의 탄생을 신화화하는 방법으로 태몽을 이야기한다.
태어나기도 전에, 나의 가족들이 내 꿈을 꾼다-
그런 것 자체가 이미 무척 재밌는 이야기가 만들어지고 있다는 것 아닐까.
하나의 이야기인 사람이 저마다의 이야기를 가지고 있는 가족들을 만나고,
또다른 이야기를 가진 사람들을 만나면서 살아가면서도,
우리는 인생의 대부분, 수많은 이야기를 놓치며 살아가다가 죽게되어있다.
 
이 소설속에서는 쌍둥이의 이야기가 등장하는데, 그렇다면 쌍둥이의 이야기는 어떨까.
하나가 되어야할 아기가 둘로 나뉘어 태어진다-그 사실 자체의 신비한 점에서
사람들은 수많은 이야기를 창조해낸다.
쌍둥이의 영혼은 통해있다느니, 말하지 않아도 서로 텔레파시로 알수 있을 것만 같고,
하나가 아프면 또 하나가 같이 아프다는- 그런 이야기말이다.
쌍둥이가 아니어서 사실이 어떤지는 모르겠지만, 쌍둥이의 신화가 신비로운 것은 나뿐만이 아닌가보다.
 
영화 <헤드윅>에 나오는 노래 Origin of Love(사랑의 기원)의 이야기가 생각난다.
옛날 옛적에는 두 사람이 하나로 붙어있었다는 이야기.
두쌍의 팔과 두쌍의 다리를 가지고,  때로는 남자와 여자로, 때로는 여자와 여자로, 남자와 남자로 붙어있었고,
불벼락이 쳐 두명이었던 사람을 갈라놓아, 둘로 갈라진 사람들이
서로의 몸에 새겨진 상처를 발견하고 알아보게 되는 것,
그 심장을 관통해버린 몸의 상처를 사랑이라고 부르게 되었다는 이야기.
쌍둥이의 삶의 신화는 어쩌면 자신의 어딘가 텅비었다고 생각하는 사람들,
그 허무함과 외로움에 둘이었기를 바라는 사람들의 마음에서 나온게 아닐까.
나와 똑같은 상처를 가지고 있는 사람을 찾아 그 상처 자욱을 맞추어 보면
완전한 하나가 될수 있다는 이야기.
신비롭지만 꽤 쓸쓸한 이야기이기도 하다.
 
이 소설은 어린 시절 우연히 알게된 쌍둥이의 죽음을 알게되고, 자매의 그리움에 언제나 텅빈것같았던
마가렛의 이야기이며, 둘이어야 완전했던 쌍둥이 에멀린과 에덜린의 이야기이고,
놀랍게도, 역시 쌍둥이인 번역자 이진의 애정이 담긴 이야기이기도 하다.
소설속의 두쌍의 쌍둥이와 현실의 쌍둥이들의 놀라운 필연.
애초에 관심있었던 고딕소설의 로망을 충족시켜주지는 못했지만,
소설속의 이야기와 현실, 그리고 진짜 현실의 고리를 이어나가는 재밌고도,
어딘지 마음 한켠이 아려오는 소설이었다.
영화로도 제작중이라는데, 관심있게 지켜보겠다.
이 책을 다 읽고 나면, 이미 이미지가 마음속에 그려지지만 말이다.
 
 
 
 
아이들은 자신의 탄생을 신화화한다.
그것은 모든 아이들에게서 나타나는 특성이다.
어떤 사람을 이해하고 싶은가?
그의 머리와 가슴, 영혼을 이해하고 싶은가?
그가 태어나던 순간의 이야기를 들려달라고 해라.
당신이 듣게 될 이야기는 진실이 아닌 한 편의 지어낸 이야기일 수도 있다.
그러나 한 편의 이야기보다 더 우리 마음을 사로잡는 것은 없다.
 
-열세번째 이야기 中, 비다윈터의 <변형과 절망에 관한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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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만두 2007-02-23 18:5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정말 사로잡는 작품입니다.

Apple 2007-02-23 22:1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네..재밌더군요..^^
 
책 읽는 여자는 위험하다 - 13세기에서 21세기까지 그림을 통해 읽는 독서의 역사
슈테판 볼만 지음, 조이한.김정근 옮김 / 웅진지식하우스 / 2006년 1월
평점 :
구판절판


내 평생 동안 나는 어머니가 이탈리아어로 된 책을 읽고 어머니가 자랐던 나폴리 사람들에게
편지를 쓰는 것을 보아왔다.
하지만 어머니는 나와 나의 형들에게 알파벳을 가르쳐 주는 수고조차 한 적이 없었다.
내가 수도원에서 돌아온 이후에도 달라진 것은 없었다.
나는 20살이 되었고 몇개의 기도문과 나의 이름을 제외하곤 여전히 읽을 줄도 쓸 줄도 몰랐다.
어머니의 책은 보기도 싫었다.
어머니가 그 속에 빠져드는 것이 싫었다.
 
그리고 희미하게 나마, 나에게 아주 극단적인 슬픔이나 고통이 닥쳤을 때만
어머니의 따듯한 위로나 관심을 끌어낼수 있다는 사실도 싫었다.
그런데도 어머니는 항상 나의 구세주였다.
그리고 어머니 밖에는 아무도 없었다.
젊은이들이 흔히 그러듯, 나도 혼자 있는데 지쳐있었다.
그런데 어머니가 독서의 은폐속에서 나와 여기 와 있었다.
그리고 내게 관심을 쏟고 있었다.

-앤 라이스 " 뱀파이어 레스타"중에서...

이 책을 읽어가는데, <뱀파이어 레스타>에서 레스타와 어머니의 관계를 설명하던
한 구절이 떠올라서 인용해보았다.
어머니의 사랑을 갈구하는 스무살의 반항아 레스타는 어머니의 책과 책에 빠져살았던 어머니를 싫어했다.
책에 빠져있을 동안, 아들에게 어머니는 가까이하기엔 너무 먼존재였고, 손에 닿을수 없을 그림속의 여인이었다.
이 책 <책 읽는 여자는 위험하다>의 표지에 써있는 글처럼,
어머니는 무의식중에 아들에게 이렇게 외치고 있었던 것이 아닐까.
"책과 나 사이에 당신이 들어올 빈자리는 없다!"라고.

동양이나 서양이나 예로부터 여자에게 금지되어있던 것은 손에 꼽을수 없을 정도로 많지만,
그중에는 독서도 포함되어있었다.
여자가 배워서 뭐하냐는 옛 어르신들의 말을 생각해보면 이는 그다지 생소한 이야기는 아니다.
옛날에 글자는 어느 나라에서나 부의 상징이었다.
글자를 읽을줄 안다는 것은 일정수준의 교육을 받을 수 있는 재력을 가진 집안이라는 것을 의미했고,
종이값이 비쌌던 만큼, 책의 가격은 일반 사람으로서는 사기 힘들 정도로 비쌌다.
책은 평민들보다는 귀족들이 즐기기에 좋은 여흥이었고,
여자들 보다는 남자들이 빠져들기 편한 예술이었던 셈이다.

남자는 똑똑한 여자를 두려워하고, 여자에게 가르침 받기 싫어하며,
여자에게 핵심을 꿰뚫어보는 능력을 보기 원하지 않고,
여자는 오로지 가정과 남자 아래 존재해야한다는 가부장적인 가르침은 지금도 연속된다.
여자는 책을 읽는 남자를 좋아한다.
여자는 책을 읽고, 영화를 보고, 음악을 들으며, 노골적으로 잘난척 하지 않아도
은은히 지적인 향기를 풍기는 예술을 사랑하는 남자를 좋아한다.
그러나 남자는 책을 읽는 여자를 좋아하지 않는다.
여자는 아버지에게, 연인에게, 남편에게, 아들에게 더더욱 관심을 쏟아주기를 바랬기 때문이다.
남자는 애나 어른이나 다 똑같다는 속된 말은 사실이다.
책에게 자리를 빼앗긴 남자들의 말은 어린아이의 투정에 가까울 정도로 유치하다.
남자는 늘, 여자에게 뭔가를 가르쳐주는 입장에 처하기를 즐긴다.
거기서 우월감이라도 느끼길 바라는 마냥.

여자가 책을 읽기 시작한지는 얼마 되지 않았다.(정확히는 독서가 허용되기 시작한지는-)
그러나 현재에 책을 읽는 남자보다 책을 읽는 여자가 더 많다.
여자는 비교적 감성적이고, 환상을 좋아하며, 드라마를 좋아한다.
여자는 현실의 그렇고 그런 사랑보다 책속의 드라마틱한 사랑을 더 사랑하며,
책 속에서 영원히 행복해질 줄 안다.
책을 읽는 여자는 자의식이 강하고, 책속에 빠져있는 동안은 남성중심의 가족들과 분리되어
자신만의 독립적인 시간과 공간속에서만 존재한다.

책속에서 헤메이는 동안 남자들은 뱀파이어 레스타가 독서에 취한 어머니를 바라보듯이
사적인 공간안에서 행복한 여자에게 닿을수 없는 머나먼 거리감을 느낀다.
이 거리감마저 느껴지는 지적인 여자들은 남자들에게 "위험한" 존재였던 것이다.
여자들이 사적인 개인으로 존재하기를 바랬고, 혼자있는 고독을 사랑하게 되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남자들은 여자들에게 책을 멀리하도록 강요하였고,
심지어는 책을 판매할 때 책을 사게될지도 모르는 여자들을 위해 책표지에 실과 바늘을 끼워넣어
여자의 본분을 잊지 말기를 요구했다.

그러나 여자는 결국 책을 읽고야 만다.
책 읽기를 반대하는 아버지들과 남편들 몰래 침대밑에 숨겨두고 책을 읽고,
하녀는 주인마님이 자리를 비운 사이에 몰래 책을 빌려 읽고,
그리고 지금은 원한다면 누구든지, 책을 손에쥐고 읽을수 있게 되었다.
별 것 아니게 느껴지는가?
마리 폰 에브너 에셰바흐는 이렇게 말했다.
"여자가 읽는 것을 배웠을 때, 여자의 문제가 세상 밖으로 나오게 되었다."
여자는 책을 읽기 시작하면서 자신을 찾기 시작했던 것이다.

이 책은 여성 독서의 역사와 여성독서를 그린 화가들의 이야기로 가득차 있는 책이다.
그림속의 책을 읽는 여자들은 어쩌면 하나같이 은은하고 고독하고 지적인지,
질투와 동경이 뒤섞인 시선으로 독서하는 여자를 바라보았던 남자들의 시선을 느낄수 있었다.
책의 판본도 무척 우아했고, 책속의 내용도 만족할만했다.
특히 책속에 등장하는 그림들이 너무 예뻐서 설명을 읽기도 전에 한참을 바라보았다.


Edward Hopper : Hotel Room, 193
1



Pieter Janssens Elinga : Reading Woman , 1668/70


François Boucher: Bildnis der Marquise de Pompadour, 1756


Franz Eybl, Lesendes Mädchen, 1850


Ramon Casas Y Carbo : Apres Le Bal , 189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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