열세 번째 이야기
다이안 세터필드 지음, 이진 옮김 / 비채 / 2007년 1월
평점 :
구판절판


책을 읽다가 무심코 책을 바닥에 떨어뜨렸는데 쿵!! 하는 엄청난 소리가 나서 깜짝 놀랐다.
최근 몇달간 읽은 소설중에서는 <핑거스미스>가 가장 두꺼운 책이라고 생각했는데,
<핑거스미스>보다 더 크고 더 두꺼워 겁을 먹게 했던 <13번째 이야기>는
생각보다 두껍지도 않고,(종이가 더 두꺼웠을뿐....) 훨씬 재빨리 읽을수 있는 소설이다.
 
이야기는 한 책방에서 시작된다.
책방 딸이자, 아마추어 전기작가이고, 도서를 관리하는 일을 하고 있는 마가렛은
어느날 계단에 놓인 편지를 받게 된다.
어설픈 글씨로 써내려간 편지에는, 비다 윈터 여사의 인터뷰를 제안하는 내용이 써있다.
비다 윈터. 수십권의 책을 써낸 베스트셀러 작가이자, 오랫동안 매스컴에 자신의 과거를 거짓말해왔던 여자.
그녀는 하필이면, 비다 윈터의 소설을 한권도 읽지 않았던 마가렛에게 전기소설을 써줄것을 부탁해온다.
그제서야 부랴부랴 비다 윈터의 소설에 탐닉하게 된 마가렛.
커다란 대저택과 까탈스럽게 그지 없는 노인 비다 윈터 여사.
어린 시절 쌍둥이를 잃어본 경험이 있는 마가렛은 비다윈터 여사의 쌍둥이 소녀의 이야기를 듣기 시작하고,
그녀의 과거 행적을 추적해나가기 시작한다.
 
작가 다이안 세터필드는 불어를 전공하고 프랑스 문학에 심취되어있다가,
소위 <고딕소설>이라고 일컬어지는 고전에 빠지게 되었다는데,
그녀의 나이 마흔 한살에 쓴 <13번째 이야기>는 어린 시절, 음울하고 낭만적인 고딕소설에 빠졌던 시절을
떠오르게 할만한 소설이다.
고딕소설들에서 자주 등장하는 소재들-황무지, 음울한 저택, 쌍둥이, 정신질환, 근친상간,
삐뚤어진 가족들, 집착과 광기, 그림자, 비밀, 안개, 비-이 소설에는 이 모든 것이 등장하는데,
의외로 읽으면서 고딕소설다운 음울함이나 우울함을 찾기는 어려웠다.
오히려 고딕소설이라기보다는 동화에 가까운 이야기라고 생각되었고,
작품에 드리워진 전체적인 분위기는 음산하고 울적하다기보다는 따뜻한 편이었다.
 
작가가 살짝 뒤늦게 고딕소설에 빠져서인지, 고딕소설의 전형적인 그늘에서 헤어나오지 못하고 있다는
생각도 얼핏 들었고, 너무나 빈번하게 등장하는 <제인 에어>의 이야기에서도 그렇듯
제인 에어의 영향력을 너무 드러내는 것이 아닌가 싶기도 해서, 그런 점에서는 살짝 실망스럽다.
(개인적으로 제인에어를 내 생애 최고의 소설로 생각하고 있기 때문에,
노골적으로 제인에어를 표방하고 나와버리면 살짝 꼬이기도 하는 것이 사실이다.)
재밌는 책임에도 인상적이지 못한 이유는 카리스카의 부족이 아닌가 싶기도 하지만,
전체적으로는 무척 괜찮은 책이었다.
이야기의 몰입도나 완성도도 무척 훌륭하고, 이야기의 얼개 또한 흥미롭다.
 
어른이 되어서 잊어버린 어린 시절의 이야기들.
누구의 어린 시절이나 하나의 글로 묶어놓으면 모두 드라마가 되는 것일까.
누구에게나 이야기는 있다. 우리는 흔히, 자신의 탄생을 신화화하는 방법으로 태몽을 이야기한다.
태어나기도 전에, 나의 가족들이 내 꿈을 꾼다-
그런 것 자체가 이미 무척 재밌는 이야기가 만들어지고 있다는 것 아닐까.
하나의 이야기인 사람이 저마다의 이야기를 가지고 있는 가족들을 만나고,
또다른 이야기를 가진 사람들을 만나면서 살아가면서도,
우리는 인생의 대부분, 수많은 이야기를 놓치며 살아가다가 죽게되어있다.
 
이 소설속에서는 쌍둥이의 이야기가 등장하는데, 그렇다면 쌍둥이의 이야기는 어떨까.
하나가 되어야할 아기가 둘로 나뉘어 태어진다-그 사실 자체의 신비한 점에서
사람들은 수많은 이야기를 창조해낸다.
쌍둥이의 영혼은 통해있다느니, 말하지 않아도 서로 텔레파시로 알수 있을 것만 같고,
하나가 아프면 또 하나가 같이 아프다는- 그런 이야기말이다.
쌍둥이가 아니어서 사실이 어떤지는 모르겠지만, 쌍둥이의 신화가 신비로운 것은 나뿐만이 아닌가보다.
 
영화 <헤드윅>에 나오는 노래 Origin of Love(사랑의 기원)의 이야기가 생각난다.
옛날 옛적에는 두 사람이 하나로 붙어있었다는 이야기.
두쌍의 팔과 두쌍의 다리를 가지고,  때로는 남자와 여자로, 때로는 여자와 여자로, 남자와 남자로 붙어있었고,
불벼락이 쳐 두명이었던 사람을 갈라놓아, 둘로 갈라진 사람들이
서로의 몸에 새겨진 상처를 발견하고 알아보게 되는 것,
그 심장을 관통해버린 몸의 상처를 사랑이라고 부르게 되었다는 이야기.
쌍둥이의 삶의 신화는 어쩌면 자신의 어딘가 텅비었다고 생각하는 사람들,
그 허무함과 외로움에 둘이었기를 바라는 사람들의 마음에서 나온게 아닐까.
나와 똑같은 상처를 가지고 있는 사람을 찾아 그 상처 자욱을 맞추어 보면
완전한 하나가 될수 있다는 이야기.
신비롭지만 꽤 쓸쓸한 이야기이기도 하다.
 
이 소설은 어린 시절 우연히 알게된 쌍둥이의 죽음을 알게되고, 자매의 그리움에 언제나 텅빈것같았던
마가렛의 이야기이며, 둘이어야 완전했던 쌍둥이 에멀린과 에덜린의 이야기이고,
놀랍게도, 역시 쌍둥이인 번역자 이진의 애정이 담긴 이야기이기도 하다.
소설속의 두쌍의 쌍둥이와 현실의 쌍둥이들의 놀라운 필연.
애초에 관심있었던 고딕소설의 로망을 충족시켜주지는 못했지만,
소설속의 이야기와 현실, 그리고 진짜 현실의 고리를 이어나가는 재밌고도,
어딘지 마음 한켠이 아려오는 소설이었다.
영화로도 제작중이라는데, 관심있게 지켜보겠다.
이 책을 다 읽고 나면, 이미 이미지가 마음속에 그려지지만 말이다.
 
 
 
 
아이들은 자신의 탄생을 신화화한다.
그것은 모든 아이들에게서 나타나는 특성이다.
어떤 사람을 이해하고 싶은가?
그의 머리와 가슴, 영혼을 이해하고 싶은가?
그가 태어나던 순간의 이야기를 들려달라고 해라.
당신이 듣게 될 이야기는 진실이 아닌 한 편의 지어낸 이야기일 수도 있다.
그러나 한 편의 이야기보다 더 우리 마음을 사로잡는 것은 없다.
 
-열세번째 이야기 中, 비다윈터의 <변형과 절망에 관한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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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만두 2007-02-23 18:5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정말 사로잡는 작품입니다.

Apple 2007-02-23 22:1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네..재밌더군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