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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읽는 여자는 위험하다 - 13세기에서 21세기까지 그림을 통해 읽는 독서의 역사
슈테판 볼만 지음, 조이한.김정근 옮김 / 웅진지식하우스 / 2006년 1월
평점 :
구판절판
내 평생 동안 나는 어머니가 이탈리아어로 된 책을 읽고 어머니가 자랐던 나폴리 사람들에게
편지를 쓰는 것을 보아왔다.
하지만 어머니는 나와 나의 형들에게 알파벳을 가르쳐 주는 수고조차 한 적이 없었다.
내가 수도원에서 돌아온 이후에도 달라진 것은 없었다.
나는 20살이 되었고 몇개의 기도문과 나의 이름을 제외하곤 여전히 읽을 줄도 쓸 줄도 몰랐다.
어머니의 책은 보기도 싫었다.
어머니가 그 속에 빠져드는 것이 싫었다.
그리고 희미하게 나마, 나에게 아주 극단적인 슬픔이나 고통이 닥쳤을 때만
어머니의 따듯한 위로나 관심을 끌어낼수 있다는 사실도 싫었다.
그런데도 어머니는 항상 나의 구세주였다.
그리고 어머니 밖에는 아무도 없었다.
젊은이들이 흔히 그러듯, 나도 혼자 있는데 지쳐있었다.
그런데 어머니가 독서의 은폐속에서 나와 여기 와 있었다.
그리고 내게 관심을 쏟고 있었다.
-앤 라이스 " 뱀파이어 레스타"중에서...
이 책을 읽어가는데, <뱀파이어 레스타>에서 레스타와 어머니의 관계를 설명하던
한 구절이 떠올라서 인용해보았다.
어머니의 사랑을 갈구하는 스무살의 반항아 레스타는 어머니의 책과 책에 빠져살았던 어머니를 싫어했다.
책에 빠져있을 동안, 아들에게 어머니는 가까이하기엔 너무 먼존재였고, 손에 닿을수 없을 그림속의 여인이었다.
이 책 <책 읽는 여자는 위험하다>의 표지에 써있는 글처럼,
어머니는 무의식중에 아들에게 이렇게 외치고 있었던 것이 아닐까.
"책과 나 사이에 당신이 들어올 빈자리는 없다!"라고.
동양이나 서양이나 예로부터 여자에게 금지되어있던 것은 손에 꼽을수 없을 정도로 많지만,
그중에는 독서도 포함되어있었다.
여자가 배워서 뭐하냐는 옛 어르신들의 말을 생각해보면 이는 그다지 생소한 이야기는 아니다.
옛날에 글자는 어느 나라에서나 부의 상징이었다.
글자를 읽을줄 안다는 것은 일정수준의 교육을 받을 수 있는 재력을 가진 집안이라는 것을 의미했고,
종이값이 비쌌던 만큼, 책의 가격은 일반 사람으로서는 사기 힘들 정도로 비쌌다.
책은 평민들보다는 귀족들이 즐기기에 좋은 여흥이었고,
여자들 보다는 남자들이 빠져들기 편한 예술이었던 셈이다.
남자는 똑똑한 여자를 두려워하고, 여자에게 가르침 받기 싫어하며,
여자에게 핵심을 꿰뚫어보는 능력을 보기 원하지 않고,
여자는 오로지 가정과 남자 아래 존재해야한다는 가부장적인 가르침은 지금도 연속된다.
여자는 책을 읽는 남자를 좋아한다.
여자는 책을 읽고, 영화를 보고, 음악을 들으며, 노골적으로 잘난척 하지 않아도
은은히 지적인 향기를 풍기는 예술을 사랑하는 남자를 좋아한다.
그러나 남자는 책을 읽는 여자를 좋아하지 않는다.
여자는 아버지에게, 연인에게, 남편에게, 아들에게 더더욱 관심을 쏟아주기를 바랬기 때문이다.
남자는 애나 어른이나 다 똑같다는 속된 말은 사실이다.
책에게 자리를 빼앗긴 남자들의 말은 어린아이의 투정에 가까울 정도로 유치하다.
남자는 늘, 여자에게 뭔가를 가르쳐주는 입장에 처하기를 즐긴다.
거기서 우월감이라도 느끼길 바라는 마냥.
여자가 책을 읽기 시작한지는 얼마 되지 않았다.(정확히는 독서가 허용되기 시작한지는-)
그러나 현재에 책을 읽는 남자보다 책을 읽는 여자가 더 많다.
여자는 비교적 감성적이고, 환상을 좋아하며, 드라마를 좋아한다.
여자는 현실의 그렇고 그런 사랑보다 책속의 드라마틱한 사랑을 더 사랑하며,
책 속에서 영원히 행복해질 줄 안다.
책을 읽는 여자는 자의식이 강하고, 책속에 빠져있는 동안은 남성중심의 가족들과 분리되어
자신만의 독립적인 시간과 공간속에서만 존재한다.
책속에서 헤메이는 동안 남자들은 뱀파이어 레스타가 독서에 취한 어머니를 바라보듯이
사적인 공간안에서 행복한 여자에게 닿을수 없는 머나먼 거리감을 느낀다.
이 거리감마저 느껴지는 지적인 여자들은 남자들에게 "위험한" 존재였던 것이다.
여자들이 사적인 개인으로 존재하기를 바랬고, 혼자있는 고독을 사랑하게 되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남자들은 여자들에게 책을 멀리하도록 강요하였고,
심지어는 책을 판매할 때 책을 사게될지도 모르는 여자들을 위해 책표지에 실과 바늘을 끼워넣어
여자의 본분을 잊지 말기를 요구했다.
그러나 여자는 결국 책을 읽고야 만다.
책 읽기를 반대하는 아버지들과 남편들 몰래 침대밑에 숨겨두고 책을 읽고,
하녀는 주인마님이 자리를 비운 사이에 몰래 책을 빌려 읽고,
그리고 지금은 원한다면 누구든지, 책을 손에쥐고 읽을수 있게 되었다.
별 것 아니게 느껴지는가?
마리 폰 에브너 에셰바흐는 이렇게 말했다.
"여자가 읽는 것을 배웠을 때, 여자의 문제가 세상 밖으로 나오게 되었다."
여자는 책을 읽기 시작하면서 자신을 찾기 시작했던 것이다.
이 책은 여성 독서의 역사와 여성독서를 그린 화가들의 이야기로 가득차 있는 책이다.
그림속의 책을 읽는 여자들은 어쩌면 하나같이 은은하고 고독하고 지적인지,
질투와 동경이 뒤섞인 시선으로 독서하는 여자를 바라보았던 남자들의 시선을 느낄수 있었다.
책의 판본도 무척 우아했고, 책속의 내용도 만족할만했다.
특히 책속에 등장하는 그림들이 너무 예뻐서 설명을 읽기도 전에 한참을 바라보았다.

Edward Hopper : Hotel Room, 1931

Pieter Janssens Elinga : Reading Woman , 1668/70

François Boucher: Bildnis der Marquise de Pompadour, 1756

Franz Eybl, Lesendes Mädchen, 1850

Ramon Casas Y Carbo : Apres Le Bal , 189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