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니버설 횡메르카토르 지도의 독백 미스터리 박스 1
히라야마 유메아키 지음, 권일영 옮김 / 이미지박스 / 2008년 6월
평점 :
품절


간혹 일본 공포소설을 읽을 때 어느 작가의 소설이나 공통적으로 느껴지는 느낌이 있는데, 그건 유럽이나 미국, 우리나라 공포소설에서도 느낄수 없는 느낌으로 뭔가 끈끈한 "귀기"나 "요기"에 가까운 것이 느껴진다. 예전에 친구랑 이야기를 하다가 일본 공포소설에서 느껴지는 이런 느낌을 표현하기 쉽지가 않아서 "있잖아, 간단하게 말해서, 귀신은 귀신인데, 섹시한 귀신이란 말이야."라고 말해서 친구가 엄청 웃었던 적이 있는데, 사실 그런 느낌이 많이 든단 말이다.
이상하게도, 일본 공포소설에서는 에로티시즘과 공포가 언제나 함께 존재한다는 느낌을 받는다. 그것이 그 나라 사람들의 탐미의식과 관련되어있는 지 확실히는 모르겠지만, 일본 소설에 등장하는 미녀들의 모습을 보면 묘하게 "움직이지 않을 법한 인형같은(또는 시체같은) 미녀"같은 것이 떠오르는 것을 보면, 이런 약간 서늘한 탐미주의가 일본 소설 전반에 깔려있기는 있나보다.
 
제목부터 아주 특이한 (일단 발음하기부터가 힘들다.) <유니버설 횡메르카토르 지도의 독백>은 히라야마 유케아키의 여덟개의 단편을 묶어놓은 단편집으로, 미리 말했듯이 일본 공포소설다운 귀기를 가지고 있는 소설이다.
소설이니 읽었지, 영화화 된다면 절대로 보지 않을 법한 소설이기도 하다. (너무 잔인해서.)
일명 에그맨이라 불뤼우는 잔혹한 연쇄살인마의 이야기 <에그맨>을 필두로 저마다 작고 큰 반전을 가지고 있는 단편집으로 한여름, 불쾌하고 끈적끈적한 공포소설을 즐기고자 하는 사람들이라면 이 책은 분명 만족할 것이다.
 
<C10H14N2(니코틴)과 소년-거지와 노파>는 내용과 상관없이 왠 뜬금없는 니코틴이 들어가나 했더니, 니코틴의 일어발음 니코친과 내용이 관계되어 있더라. 어느새 학교에서 왕따를 당해버리는 소년 타로는 한 거지노인을 만나게 되고, 거지 노인의 불쌍함에 이끌렸는지 어느새 쌍안경으로 멀리서 그를 바라보게 된다. 친절해보이는 경찰아저씨가 난데없이 거지노인을 쥐어패는 것을 알게되고, 타로가 쌍안경으로 본 거지 인의 비밀을 언젠가는 물어보기 위해 기회를 노리게 되면서, 이 이야기는 이상한 방향으로 흘러버린다. 착한 마음과 폭력성이 겹쳐지는 순간, 충격적인 폭력의 본성을 목격하게 되면서도, 전혀 공감할수 없는 것은 아닌데 이유는 왜일지. 이런 생각에 죄책감이 느껴지는 것은 또 왜일지....
 
<Ω의 성찬>에는 오메가라는 400키로그램의 거구인간이 등장한다. 조폭에서 암암리에 이익을 위해 키워지고 있는(?) 오메가가 하는 일이란, 누워서 먹는 것 뿐인데, 이 먹는 것이 문제가 된다. 조폭에서 처리한 시체들을 이 오메가가 먹는 것이다. 서커스에서 건져나왔다는 오메가, 그리고 그를 돌보게 된 한때는 수학도였던 조직 일원인 "나"의 이야기. 인육을 먹는다는 설정, 그리고 사람의 뇌를 먹으면 그 사람의 뇌에 들어있는 지식이나 기억 역시 먹게된다는 설정이 몹시 잔혹하기는 하지만, 이 단편집에서 가장 쓸쓸한 단편이었고, 가장 마음에 드는 단편이었다.

<소녀의 기도>에는 연쇄살인범의 자취를 따라다니는 소녀가 등장한다. 동네에서 일어나는 살인사건이 일어난 장소마다 찾아다니면서 만나고 싶다는 글을 쓰고 다니는 소녀는 대체 무슨 생각으로 연쇄살인범과 접촉을 하려는 것일까. 이 단편집의 느낌을 가장 잘 나타내는 작품이 이 단편이 아닐까 싶다. 구원과 잔혹함이 겹치는 지점에서 일어나는 사건들이 이 단편집의 핵심된 느낌이 아닐까.
 
<오퍼런트의 초상>은 <에그맨>과 마찬가지로 SF공포소설이다. 예술이 인간에게 미치는 악영향을 알게된 미래의 어느 사회에서, 예술을 "타술"이라 지칭하며 타술을 사랑하는 타술자들은 처단이 된다. 그리고 타술자였던 어머니를, 그리고 타술자를 잡아들이는 유능한 오퍼런트였던 아버지를 가진 주인공은 어머니의 죽음 이후, 아버지의 자살이 어떤 의미를 지니는지 알게된 순간, 자신도 오퍼런트인 동시에 타술자가 되게 되는데...
다소 식상한 반전이 기다리고 있었으나, 그런대로 괜찮은 단편이었다.
 
개인적으로 이 단편집에서 가장 끔찍하다고 생각되는 것은 <끔찍한 열대>라는 작품이다. 내가 싫어하는 종류의 것들이 모두 등장한달까. 원시적이거나, 원초적인 것들에 대해서 나는 무척 공포심을 느끼는데, (예를 들어, 공포영화는 아니지만, <킹콩>에서 주인공들이 도달한 섬의 이미지는 내가 가장 무서워하는 바로 그것이다.) 이 단편이 그랬다. 함께 시체를 처리하는 일을 도우면 시체 한구당 천엔을 주겠다던 아버지를 따라 마닐라로 가게된 주인공이 맞딱뜨리게 된 이(異)세계. 아, 이런 것이 자연의 공포랄까. 뭐라 말할수 없이 끔찍하고 잔혹하다.
 
표제작인 <유니버설 횡메르카토르 지도의 독백>은 그야 말로 지도의 독백으로 이루어진 단편집이다. (횡메르카토르는 지도 편집방식이라고 하는데, 아무리 들어도 적응이 되지 않는 단어이다. 대체 어느 나라 말일까?)
아무튼 횡메르카토르 지도가 모시는 주인님은 택시 운전사인데, 연쇄살인범이다. 지도는 주인에게 깍듯한 예의바른 지도이므로, 주인님이 시체를 은닉할 장소라던가, 도주할 길 같은 것을 나름 연구하는 자세도 가지고 있는 착한(?) 물건이다. 사고로 주인이 죽고, 지도는 주인의 아들 손에 넘어가게 되었는데, 어찌 된 일인지, 그 아들 역시 아버지를 이어 연쇄살인을 계속 한다. 그리고 주인이 어디선가 가지고 온 사람의 피부로 만들어진 인피 지도는 사사건건 횡메르카토르 지도의 충정을 비웃는데....
전체적인 분위기에서는 가장 귀엽다는 느낌이 드는 단편이었다. 횡메르카토르 지도와 편도의 안타까운 사랑이야기가 피식피식 웃음을 자아내게 만들었다.(그리고 네비게이션이야 말로 흉측한 물건이라는 지도의 말도...)
 
<괴물 같은 얼굴을 한 여자와 녹은 시계 같은 머리의 남자>는 이 단편집에서 가장 그로테스크 하다고 할만한 작품이다. 고문기술자인 주인공 엠시(MC)와 자기 발로 죽여달라고 찾아온 여자 코코. 여기저기 꼬맨 자국이 가득한 기괴한 코코의 얼굴, 죽여달라고 찾아왔으면서 이 고문기술자를 자극하는 말을 멈추지 않는 코코는 대체 무슨 이유로 그를 찾아오게 되었을까. 섬뜩한 묘사와 예상치 못했던 드라마적인 요소가 섞여있는 단편이다.
 
어딘지 강박증적이다-라는 느낌이 드는 것은 왜인지 모르겠지만, 이 소설은 전반적으로 그런 느낌을 갖고 있다.
무언가에 대한 비정상적인 강박증과 귀신같은 인간들의 모습이 초조하게 공포심을 자극하고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물론 잔혹하기도 하지만...) 단지 잔인하다고 치부할수만은 없는 소설이고, 일본소설에서 느껴질수 있는 귀기와 함께 악몽같은 몽환적인 느낌도 드는 소설이니, 불쾌한 감성을 좋아하는 사람들에게는 좋은 소설이 될 것이다. (언뜻, 일본에 가서 20년쯤 살다가 소설을 쓴 클라이브 바커의 소설같다는 생각도 든다.)
자, 이런 사람들이 보면 되겠다.
이제 오츠이치의 소설은 귀엽게 느껴지고, 기리노 나쓰오도 나름 상큼하다고 생각되는 사람들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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쥬베이 2008-07-10 16:5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정확하게 집어내시네요.
맞아요, 일본소설엔 뭔가 "귀기"나 "요기"가 서려있죠ㅋㅋㅋ
일본공포영화도 그렇고요. 상당히 강렬한 작품 같습니다.

Apple 2008-07-10 22:55   좋아요 0 | URL
네. 전형적인 일본 추리소설이다..싶으면서도 묘하게 그렇지 않아보이는 부분들도 보이고...재밌는 단편집이었어요.^^

비로그인 2008-07-23 02:5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하하... 오츠이치와 기리노나쓰오가 슬슬 귀여워지기 시작한 참이였는데 댓글보고 이 책 확 사버렸습니다 ㅋㅋ 그래도 오츠이치와 기리노나쓰오 너무 좋아요! 내스타일! ㅋ
이 책 기대해볼께요~ 얼릉 읽어보고싶네요 서평 잘 읽고갑니다^-^

Apple 2008-07-23 04:49   좋아요 0 | URL
저도 좋아합니다..^^ 이책 꽤 강도가 쎄요.

하이드 2008-08-08 00:5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풉. 오츠이치가 귀엽게 느껴지고, 기리노 나쓰오가 상큼하게 느껴지는 ^^
<고쓰> 읽고 봐서인지, 오츠 이치의 책이 떠올랐는데 말입니다. 책이니깐 봤지, 저도 영화로 볼 수 있는 공포수위는 한없이 낮은지라, 절대절대 못 봐요. 암요.

 
GOTH 고스 - 리스트 컷 사건
오츠이치 지음, 권일영 옮김 / 학산문화사(단행본) / 2008년 5월
평점 :
절판


세상에 100명의 사람이 있다면 100명이 다른 방식으로 살아가고, 100명이 다른 취향을 가지고 있다.
오츠이치의 Goth에 등장하는 두 주인공 모리노와 '나'는 그중에서도 무척 소수에 속할 취향을 가진 소년소녀이다.
창백한 피부에 늘 검은 옷을 입고 무표정으로 세상을 일관하면서, 고딕취향을 선호할 뿐만이 아니라 이들은 죽음을 경배한다. 언제라도 죽기를 기다리고 있는 듯, 기이한 욕망을 가진 범죄자들을 끌어들이는 서늘한 미소녀 모리노, 그리고 이 책의 탐정역활을 하면서도, 범죄자를 잡는 것에는 관심이 없고, 그들이 일으킨 범죄자체에 흥미를 느끼는 잠정적인 범죄자 타입인 "나". 이렇듯 죽음에 가까운 두 소년소녀는 근처에서 일어나는 이상한 사건들에 시체에 파리가 꼬이듯 본능적으로 끌어들어가게 된다.
 
장편이라기보다는 같은 주인공을 가진 연작소설 Goth는 여섯개의 에피소드를 다루고 있다.
항상 오츠이치의 소설을 볼 때면, 이것이 소설가가 만들어낸 이상심리라기보다는, 어디엔가 이런 이상심리와 기이한 욕망을 가진 사람들이 꽤 많이 존재할듯한 느낌을 받게 되는데, Goth에 등장하는 사람들 역시 꼭 그랬다.우리 동네 내가 잘 모르는(또는 잘아는) 어느 집에서도 이런 일이 일어나고 있을 것만 같은 기이한 현실감.
오츠이치가 그런 사람이거나 그런 사람을 알고 있을 것 같은 느낌이 드는 것은 오츠이치의 소설이 심리묘사가 섬세하다거나, 뚜렷한 직관을 가지고 있어서가 아니라, 이런 괴이하다고까지 할만한 욕망들이 너무도 자연스럽고 당연한듯이 나타나있기 때문이다.
그들의 욕망에는 불우한 어린 시절도, 별다른 이유도 없다. 그저 그렇게 태어났고, 그런 욕망을 어느새 가지고 되었기 때문에, 그 이상욕망은 마음속 깊은 늪에 누워 도화선이 될만한 아주 작은 기회만을 노리고 있는 듯 하다.
 
사람에 따라서는 이런 이유없는 이상욕망들이 소설이니까 가능하다고 생각할지도 모르겠지만, 어쩌면 우리는 이것이 정답일지도 모르는 세상에서 살아가고 있는 것은 아닐까.
이유도 없이, 삐뚤어진 구석들은 누구에게나 존재한다. 다만, 정도의 차이가 있을 뿐이다.
살아가면서 만났던 사람들중에는 일반적으로 "좋다" "향기롭다"라고 느껴지지 않을 법한 냄새를 좋아하는 사람들이 있었다. 휘발유냄새를 좋아하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자동차 매연냄새를 좋아하는 사람도 있었고, 나처럼 지하실의 눅룩한 곰팡이 냄새를 좋아하는 사람도 있다.
목을 졸라 질식사 직전까지 가는데에서 안정감을 느끼는 소녀, 책상 서랍속에 감춰두었던 칼이 피를 부르고 있다고 상상하는 소년, 시체놀이를 하면서 사람들을 놀래키는 것을 즐기는 쌍둥이, 손이 너무 좋아 인형에서, 동물에서, 그리고 사람에서 손을 잘라내어 냉장고에 간직하는 사람, 언제부터인가 흙속에 사람을 파뭍고 싶다는 욕망을 가지게 되는 사람, 타인의 공포심을 즐기는 사람....
책속에는 언뜻 보기에도 비정상적일 욕망을 가진 사람들이 등장하지만, 어쩌면 그런 것과 비슷한 것일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었다.(물론 그런 간단한 취향에 비견될 만큼 개인적인 취향은 되지 못하지만...) 별다른 이유는 없다.
다만 어느새인가 그런 것이 좋아 멈추지 못하게 되는 것이다. 그들에게는 딱히 누군가를 살해하고자 하는 욕망이 있는 것도 아니고, (오히려 욕망을 실현하는 도중 살해된다-가 정확한 느낌일듯.) 그렇다고 굳이 살아있어야 한다는 욕망이 있는 것도 아니다. 여기 죽음을 가까이 두고 살아가는 사람들의 모습들은 하나같이 이유없이 무기력하지만, 그렇기 때문에 설득력이 있다고 생각한다.
 
오츠이치는 천재라기보다는 이재에 가까운 사람이 아닐까 생각해본다. 완벽한 소설이라는 생각은 들지 않지만, 오츠이치의 소설을 읽을때마다, 대단히 매력적인 소설이며 대단히 기이한 작가라는 생각이 든다. 국내에 발간된 오츠이치의 거의 모든 소설을 읽어보았는데, "아, 역시 오츠이치!" 할만한 소설이 바로 이 Goth가 아닐까 싶다. 기이한 욕망의 불편함-에도가와 란포의 불쾌한 변태적 욕망과도 다르고, 기리노 나쓰오의 절개해놓은 진실의 불편함과도 또 다르다. 또 캐릭터들도 매혹적이라, 이대로 소설이 몇권 더 이어져도 재밌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오츠이치의 팬이라면, 절대 놓치지 말 것.
그리고 죽음을 가까이 두고 살아가는 소수의 Goth 매니아들 역시 놓치지 말 것.
자, 이제 암흑동화로 넘어가보자. 오츠이치가 또 어떤 암흑의 이야기를 들려줄런지.
 
p.s 개인적으로는 책속의 두 주인공, 모리노와 "나"가 참 매력적인 캐릭터로 느껴졌다.
전형적인 고쓰족이면서, 의외로 눈치는 없고, 죽음을 불러들이는 오오라를 가진 소녀 모리노,
언뜻 보기에는 평범한 고등학생이면서, 사회에 섞여 살아가기 위해 겉으로 엄청난 거짓말을 아무렇지도 않게 뱉어내며 평범함을 가장하고 살아가는 소년 ":나". 누가 죽어도 눈하나 깜짝하지 않고, 단지 살인의 현장을 문화 답사하듯 꼭 둘러봐야만 하는 이상항 취향을 가진 사이코패스 두 소년소녀는 어딘지 귀엽기마저 하달까.
둘이 잘됐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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쥬베이 2008-06-24 22:0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학산문화사?? 이거 만화아니죠??-_-
시즈님이 절대 놓치지 말라니, 기대해야지ㅋㅋㅋ 잘 보고 갑니다.

Apple 2008-06-24 23:0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네..만화 아니예요.^^ 학산에서 책도 내기로 했나봅니다. 책 뒤에 보니까 오츠이치 소설이 학산에서만 3권 더 나오려나봐요. 쥬베이님도 꼭 꼭 보세요!!^^
 
한국 추리 스릴러 단편선 1 밀리언셀러 클럽 - 한국편 11
최혁곤 외 지음 / 황금가지 / 2008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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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년 여름쯤이면, 황금가지에서 <한국 공포 문학 단편선>을 보게되는데,
같은 컨셉으로 매년 비슷한 시기에 나온다는 점을 생각하면 이제는 연간지같은 느낌이 든달까.
우리나라의 공포문학이 짜임새있게 점점 발전하는 모습을 보는 것도 무척 즐거운 일이나,
가끔씩은 소재의 선택이나 몇몇 설정들이 반복되고 있는 것 같아서 아쉬웠었다.
(특히, 아내의 외도가 설정되어있는 단편들은 이제 식상하다는 느낌마저 준다.)
그에 반해 최근 조금 조용히 등장한 <한국 추리 스릴러 단편선>은 공포문학 단편선에서 느꼈던 소재의 식상함은 많이 벗어나 있는 단편 모음집이다. 여기에 실린 열가지 단편중에는, 스파이 스릴러를 비롯해, 형사 추리물, 고전적인 트릭위주의 추리물, 공포스릴러, 팩션등등, 추리물에서 나올수 있는 세부적인 풀이 방식을 저마다 다르게 사용해, 확실히 한국 공포 문학 단편선보다 좀더 짜임세 있고 차분하며 참신하다는 생각을 들게한다.
대부분이 20,30대 작가들이라는 점에서 아직은 완전하지 않더라도 앞으로 조금 더 지켜보고 기대할만한 작가들이 꽤 눈에 띄어서 작가 이름을 곱씹어 보기도 했다.
 
<B컷>으로 미리 접했던 최혁곤의 <푸코의 일생>은 "푸코"라 이름지은 짖지 못하는 개와 자신을 동일시 하는 듯한 킬러가 등장하는 단편으로, 개인적으로 B컷에서 느꼈던 감상과 비슷하다. 주인공의 직업을 달리 설정했더라면 조금 더 참신한 작품이 나오지 않았으려나 싶기도 하다.
소설에서는 많이 등장하지만, 현실에서는 너무 먼 청부살인업자의 이야기들은 비정한 거리의 느낌이 들게 만들어서 현실에서 느낄수 없는 비정한 스릴감을 느끼게 하기는 충분하기는 하지만, 킬러가 등장하는 스릴러를 너무 많이 봐서인지, 이 가까이하기에는 너무 먼 직업이 식상하게 느껴지는 것은 왜일지.
막판에 킬러의 뒷통수를 치는 반전이 하나 등장하는데, 반전 자체보다는 이야기를 이끌어나가는 안정적인 느낌이 더 부곽되는 단편이다. 왜인지 모르게 최혁곤의 글에서는 어딘지 뒤가 캥기는 듯한 비릿함이 느껴진다. 이런 느낌을 조금 더 살린 작품을 만나볼수 있다면 좋겠다.
 
이대환의 <알리바바의 알리바이와 불가사의한 불가사리>는 제목부터가 참으로 아스트랄하더니만, 굉장히 참신한 구조로 이루어진 단편이었다. 밀실 트릭을 독자가 추리해내는 방식을 취하고 있어서, 이 책 전체에서 가장 참신하고 새로운 느낌이 드는 단편이었던 반면, 글이 산만한 나머지 가독성이 떨어져서 몰입하기가 쉽지 않았다.
 
김유철의 <암살>은 묵직한 무게감이 느껴지는 단편으로 냉정하면서도 조리있는 문체가 무척 매력적인 작품이다. 제주 4.3 항쟁을 배경으로 박대령의 의문의 암살을 추리해나가는 단편인데, 앙리라는 외국인을 주인공으로 등장시켜 독자 역시 한쪽으로 치우쳐 생각하지 않게 만든다. 이야기의 안정감과 무게감있는 문체가 멋진 작품이었다.
 
류삼의 <싱크홀>은 아마 <사이코>를 본 사람들이라면 누구나 <사이코>를 떠올릴만한 작품이다. 남편이 집을 나가버리고, 귀가 들리지 않는 아이를 홀로 키우는 여자가 납치당하면서 일어나는 일들을 그린 단편인데, 일단은 잘 읽히고, 독자를 끌어다니는 매력이 있긴 하지만, 어딘선가 많이 본 듯한 장면이 계속 이어지는 점이 아쉽다. 물론 <사이코>를 처음부터 염두해두고 그렸을지는 모르겠으나, 그 작품 뿐만이 아니라 비슷한 계열의 공포 스릴러 작들에서는 많이 등장했을 법한 이야기가 줄줄 이어지는 느낌이라 재밌었음에도 참신함이 지나치게 떨어지는 느낌이다.
 
나혁진의 <안녕, 나의 별>은 여러모로 고개가 갸우뚱하게 만드는 단편이었다.
죽은 여자가 죽기전에 남긴 다잉메시지의 풀이까지는 고전적이라 생각하고 수긍할수 있겠지만, 모든 주인공들의 심리상태가 이해가 되지 않는달까. 어찌보면 다잉메시지 아이디어 하나만 가지고 나머지 이야기를 끼워 맞춘듯한 인상이 든다. 과거에 외모에 그렇게나 집착하던 소녀가 불과 몇년 새에 자기보다 나이도 훨씬 많고 별볼일 없는 외모의 남자를 사귀는 것 자체가 신빙성이 떨어지고,(중간에 마음을 바꾸게 된 큰 계기도 보이지 않고...) 전학온 여학생이 주인공 소녀와 좀 친해지게 되었다고 해서 대학을 보내려고 기를 쓰고 공부를 시키려는 점도 신빙성이 떨어진다. 또 한때, 애들 돈도 좀 뺏고, 동네에서 침도 좀 뱉어봤을 것 같은 미미라는 여자아이가, 후에 자신의 이런 점을 전혀 모르고 예쁘고 귀여운 아가씨로만 알고 있는 자신의 남자친구에게 자신의 과거를 아무렇지도 않게 설명하는 것 자체가 이해가 되지 않는 행동이다.
여자를 주인공으로 했을 때는 여성 심리를 조금 더 알았어야 하지 않았을까.
 
강지영의 <거짓말>은 이 단편집 최고의 작품이라 말하기에 손색이 없는 작품이었다.
사채에 시달리는 여자, 여자에게 반해 결혼했지만, 결국은 무관심해진 남편, 그리고 그녀를 따라다니는 사채업자, 그리고 얼떨결에 두건의 살인을 저지르고 갈곳도 없는 여자를 덜컥 집으로 데리고 온 의문의 남자. 네명이 등장해 참으로 기이하고 구슬픈 이야기를 완성해 나간다. 전체적으로 무겁고 침울한 분위기와 함께 신비감마저 느껴지는 미옥이라는 여자주인공의 알수없는 침묵들이 차근차근 풀어져 다 읽고 났을 때는 마음이 아려왔다. 이 단편집은 이 작품 하나만으로도 충분히 가치가 있다. 이 작가의 다른 작품들도 꼭 보고싶다.
 
정명섭의 <불의 살인>은 고구려시대를 배경으로 우연과 필연이 겹쳐지면서 벌어진 방화사건을 다루고 있는 단편이다. 인간의 욕망은 계기만 생기면 불처럼 번지는 것인가보다. 아주 재밌지는않았지만, 적절한 재미는 보장하는 안정적인 작품이다.
 
박지혁의 <일곱 번째 정류장>은 <거짓말>과 함께 이 단편집에서 가장 마음에 들었던 단편이다.
마을버스를 운전하는 한 남자와 그 남자가 반해버린 치과 여의사의 이야기. 한 남자의 짝사랑이야기가 어떻게 스토커 노인의 욕정살인으로 번지는지, 내막을 차근차근 살펴보는 것이 참 재밌고, 풀이 과정도 설득력 있고, 몰입도도 훌륭하다. 다 읽고나니 마을버스 운전사가 불쌍하게 느껴져서 마음이 짠했다. 짝사랑이 무슨 죄란 말인가!!!
 
한이의 <피가 땅에서부터 호소하리니>는 내 이해력 부족인지 확실히 이해하지 못하겠는 작품이다. <오리엔트 히트: 스푼 메이커스 다이아몬드>는 독특하게도 스파이 스릴러인데, 분위기는 잘 살리고 있으나 얘기가 너무 평이하달까. 그럭저럭 읽기는 했지만 큰 재미는 잘 모르겠다.
 
개인적으로 이 단편집 베스트를 뽑아보자면, <암살> <거짓말> <불의 살인> <일곱번째 정류장>을 꼽을수 있겠고, 이 작품들만으로도 이 단편집은 단편집을 좋아하는 사람에게는 추천하고 싶은 책이다.
아쉬운 작품도 있었고, 의외로 굉장히 마음에 드는 작품들도 있지만(그런 작품들은 꼭 몇번씩 더 읽어보게 된다.) 앞으로도 이런 기획단편집은 또 보고싶다.
사람마다 개인 취향이 있어서, 장편을 좋아하는 사람도 있고 단편을 좋아하는 사람도 있겠지만,
짧은 호흡에 긴 여운을 남기는 단편을 좋아하는 나로써는 이런 단편집은 아무리 읽어도 질리지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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쥬베이 2008-06-20 01:4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시즈님 설명만으로도 <한국 추리 스릴러 단편선>의 모든 작품을 읽은 듯 해요^^
좋은 서평 잘 봤습니다^^

Apple 2008-06-22 00:20   좋아요 0 | URL
헤헤....이런 허접한 리뷰를...^^;;핫핫...재밌게 보셨다니 감사..
 
천둥의 계절
쓰네카와 고타로 지음, 이규원 옮김 / 노블마인 / 2008년 5월
평점 :
구판절판


쓰네카와 고타로가 만들어낸 가상세계 <온>에는 봄, 여름, 가을, 겨울을 제외하고도 "천둥의 계절"이라 불뤼는 계절이 하나 더 존재한다. 천둥의 계절은 자연이 인간에게 주는 심판의 계절이며, 이 계절동안 사람들은 집에 칩거하면서 조용히 천둥의 계절이 끝나기를 기다린다. 시간이 지나기는 기다린다는 것, 비틀즈가 말하듯 Let it be와도 같은 다소 수동적이면서도 순응적인 삶이 <온>을 이루는 모토가 되고 있어, 이 나라에는 싸움도 분쟁도 없다.
일본에서 조금 벗어난 어딘가에 존재한다는 <온>, 하계인간들에게 알려지지 않는 영원한 유토피아같은 곳.
전형적인 환타지 소설에서 의례 그렇듯, 역시 소년 주인공은 여행을 떠나면서 이야기가 시작된다.
 
하계인간이기 때문에 늘 외톨이였던 주인공 겐야는 누나가 사라지던 어느밤, 자신의 몸에서 다른 존재를 느끼게 된다. 바람와이와이-악인이 죽으면 된다던 그 마물에 씌인 채, 겐야는 자신의 몸을 보호하기 위해 어쩔수 없는 살인을 저지르고 만다. 하계인간인데다가, 바람와이와이에 씌였기 때문에 이미 <온>에서의 신뢰를 보장받을수 없는 상태여서, 겐야는 하계로 떠나는 여행을 시작한다. 그래도 아직은 어린 아이, 바람와이와이의 인도에 따라 소년은 서서히 자신의 강함을 발견해나가기 시작한다.
 
쓰네카와 고타로의 지난작 <야시>와 비교해볼 때, 기묘한 공포를 제거한 듯한 비슷한 분위기의 소설이지만, 간결한 문장에서 느껴지는 알수 없는 향수는 여전히 존재하는 소설이다. 상실에 대한 향수랄지, 지나온 시절에 대한 향수랄지. <야시>처럼 어린아이가 주인공으로 등장하기 때문에 그런 느낌은 더해지는지도 모르겠다. 자연에 순응하고 살아가는 사람들이라던지, 어른다운 강함이 존재하기는 어려운 아이들을 주인공으로 만들어, 어딘지 나약하고 무기력한 느낌이 풍기는 점이 쓰네카와 고타로의 소설에서 기묘하면서도 동시에 묘한 향수를 불러일으키게 하는지도 모르겠다.
 
어릴 적에, 나는 종종 지금의 내가 아닌 다른 누군가가 되는 상상을 하곤 했었다. 이를테면, 캔디처럼 사실은 내가 고아이고 지금의 내 부모님은 나를 키워주는 부모님이다 라던가, 내 부모는 사실 저 멀리 어딘가에서 나를 애타게 찾고 있을거라는 상상. 딱히 현실이 불행해 미칠 것 같아서가 아니다. 그저 심심했기 때문에, 그런 상상들이 내게는 하나의 놀이였기 때문에, 나는 내가 고아일지도 모른다고 생각하면서도 단한번도 상심하거나 무섭다는 생각을 하지 않았다. 그런 상상은 다른 세계와 다른 나를 경험하는 은밀한 쾌감과 동시에, 너무나 지루하고 똑같은 일상의 하나의 도피처일 뿐, 그 이상 그런 상상을 완전히 믿어버릴 정도로 순진하지도 않았던 것 같다.

쓰네카와 고타로의 소설에 등장하는 환타지들은 꼭 그런 어린 시절의 몽상같은 느낌을 준다.
내가 아닌 다른 누군가가 되는 것, 일어나지 않을 일을 부풀려 상상하는 것- 그런 느낌이 어린 시절의 몽상으로 회귀하는 향수병을 불러일으킨달까. 짧고 간결하면서도 나른한 분위기 역시 그런 몽상적인 분위기를 더해준다.
크게 재밌는 것은 아니지만, 읽으면서 어딘가 데자부를 느끼게 되는 작가가 내게는 쓰네카와 고타로인 것 같다.
장편이어서인지, 지난번의 <야시>보다는 조금 산만한 편이고,(물론 그만큼 드라마적인 요소도 들었다.) 초반부가 조금 늘어지는 감이 없지않아 있지만, 또 나온다는 쓰네카와 고타로의 <가을의 감옥>은 왠지 기대심 만발하게 하는 작품이어서 앞으로도 또 쓰네카와 고타로를 읽게 될 것 같다.
 
p.s 책 장정이 예쁘다!! 같은 작가의 소설들은 왠만하면 비슷한 컨셉으로 나와주었으면 하는데 딱 좋은 케이스이다.
일러스트 표지가 유행이긴 하지만, 많은 경우에, 책 자체의 매력을 반감시키거나, 책을 펼쳐보기도 싫게 만들거나, 마치 팬시처럼 느껴져서 그 가벼움에 질려버리게 되곤 하는데, 노블마인에서 펼쳐내는 쓰네카와 고타로의 책들은 일관성있는데다가 일러스트도 소설과 무척 잘 어울려서 마음에 든다. 이대로라면 표지모으기 위해서라도 구매할 듯!!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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쥬베이 2008-06-20 01:4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P.S부분은 저도 이야기한 부분인데, 표지가 참 인상적이에요^^
특히 통일성이 있어서 좋아요ㅋㅋㅋ
이 서평 읽으며 느낀 거 --> 시즈님 글 참 잘 쓰신다^^ 글을 맛깔지게 쓰세요ㅋㅋㅋ

Apple 2008-06-22 00:21   좋아요 0 | URL
맞아요. 그리고 책도 무척 예쁘고요..^^ 아무래도 책이 내용이 꽉꽉 들어차있는 책은 아니다보니 장정이 이정도는 되어주어야 돈주고 사는 사람들은 만족이지 않을까 싶기도 하고...^^
 
적색의 수수께끼 밀리언셀러 클럽 81
나가사카 슈케이 외 지음, 김수현 옮김 / 황금가지 / 2008년 4월
평점 :
절판


일본 추리소설을 몇권만 읽어보았어도 이름을 알만한 일본 추리소설의 아버지 에도가와 란포 수상작가들의 단편 모음집 1권이다. (에드거 앨런 포를 말장난으로 살짝 바꿔놓은 에도가와 란포의 이름은 언제 들어도 재치 만점! 그의 소설들에서 괴이하고 변태적인 느낌뿐만이 아니라 살짝 코믹한 느낌을 갖게 되는 것은 작가 본인이 어느 정도 유머가 있는 사람이 아닐까 하고 상상하게 된다. 마치 그의 이름처럼 말이다.)
기대보다는 살짝 실망스러웠던 에도가와 란포 수상작가 단편집이었지만, 그래도 이런 기획을 읽을수 있으니 참 재밌다는 생각이 들어서, 찬찬히 청색의 수수께끼도 펼쳐볼까 한다.
수록작들이 대부분 분량이 꽤 되어서, 수록작이 5개뿐인데도 꽤 두툼하다.
그래서 어떤 작품들이 수록되어 있는가 하면..
 
첫작품으로 등장한 <'밀실'을 만들어 드립니다.>야말로 개인적으로는 이 단편집에서 가장 쓸데없다는 느낌이 드는 작품인데, 추리소설의 로망 "밀실"을 소재로 어떻게든 밀실 살인사건을 끌어내려고 하는 것 같지만, 처음부터 끝까지 억지에 가까운 이야기들만 등장해서 이것이 추리소설작가의 작품이라 보기에는 지나치게 초보적이고 다소 유치하다는 느낌이 들었던 작품이었다. 밀실살인이라던가, <술집 탐정 게임>이라는 게임을 통해 미스테리한 사건들에 관심이 많은 사람들이 등장한다는 설정자체는 괜찮다. 차라리 옛추리소설에 대한 향수로 빠졌으면 훨씬 훈훈했을 법한 이 단편은, 어디선가 등장해 주인공의 집에 눌러붙어 살게된 피요코라는 소녀의 등장 자체가 무척 작위적이고, 추리소설 작가라면서 전혀 추리해내지 못하다가 막판에 범인을 알고나자 모든 것을 해결하는 주인공의 캐릭터 역시 무척 작위적이라는 생각을 지울수가 없다. 물론 처음부터 끝까지 등장하는 모든 '밀실' 트릭들 역시 작위적이기는 마찬가지이지만, 이 단편의 핵이 되는 장님 노인 살인사건의 풀이나, 살인이 일어나게 된 경위도 그들이 하고 놀았던 <술집 탐정 게임>처럼 가볍고 납득하기 힘들다.

두번째 작품 <구로베의 큰곰>은 일종의 산악 미스테리이다. 개인적으로 등산에 관련된 모든 것에 관심이 없어서 읽는데 꽤 곤욕스러웠던 작품이지만, 시종일관 무겁고 진지했던 분위기가 첫번째 작품보다 훨씬 인상적이었던 작품이다.
설산 구조에 대한 이야기인데, 설산에 대한 배경묘사라던가 작가가 이 방면에 대한 지식을 충분히 이해하고 써낸 소설같아서, 첫번째 단편에서 받았던 시시한 감정이 "그래, 이정도는 되어야지!"하는 느낌으로 바뀌었달까.
(산을 싫어하는 나로써는 이해하기 힘들지만) 눈덮인 설산은 등반가들에게는 무척 매력적인 장소인가보다.
설산에서 펼쳐지는 미스테리한 이야기들은 영화에서보나 소설에서보나 알수없는 공포심을 느끼게 한다. 이것 역시 폐쇄된 장소라는 느낌이 강해서 일까. 그 안에서는 알수 없는 일들이 일어날 것 같은 기묘한 공포심이 든다.
쭉 설산등반 이야기처럼 이어가다가, 서서히 등장인물들의 감정을 고조시키고, 마지막에서는 진실의 짜릿함을 느끼게 하는 좋은 단편이었다.
 
<라이프 서포트>는 폐암판정을 받아 남은 삶이 1년밖에 되지않는 중년 여성이 오래전 자신이 버렸던 딸을 찾아 나서는 이야기이다. 전형적인 추리소설같다는 느낌을 받았던 소설이기는 하지만, 새로 시집간다고 한번 버렸던 자식을 죽을때가 되어서나 아무렇지도 않게 다시 찾아나서는 주인공의 태도가 너무나 마음에 들지 않는다. 똑똑하고, 행동력도 빠르고, 돈도 많은 여자이면 뭘하나. 자신이 버린 딸에 대한 아무 미안한 감정도 느껴지지 않는데...
주인공이 마음에 들지 않아서 이 작품은 그저 그런 편이었다.
 
<가로>는 아버지를 증오하는 남자가 여자 친구와 싸운후에 길에서 한 중년 남자에게 칼을 맞으면서 시작된다.
병원에서 상처를 치료하고 보니, 자신을 살해하려 했던 남자는 자살했고, 어느새 세상에서 자신은 피해자가 아닌 가해자가 되어버린다. 전혀 알지 못하는 사람들에게 원한을 샀던 이 남자의 기억나지 않는 과거를 추적하는 이야기로, 사건을 비틀어버리는 솜씨와 등장인물들의 관계도를 설정하는 것이 참 재밌는 단편이지만, 후반부 그렇게나 평생을 증오하던 아버지와의 화해가 말 몇마디로 해결되는 점이 잘 납득이 가지 않는다.
 
가장 짧은 마지막 단편 <두 개의 총구>는 역시 다카노 카즈아키라는 말이 나올 만한 단편이다. 분량이 얼마 되지 않음에도 사건을 긴장감 넘치게 진행시키고, 막판에 가서는 무엇을 믿어야할지 우왕좌왕하게 만드는 점이 이 단편의 묘미라 할수 있다. 학교에서 청소 아르바이트를 하고 있는 주인공은 반장이 잠시 자리를 비우자 총을 들고 설치는 살인자와 학교에 갖혀버리고 만다. 그리고 자신에게 다가온 한 남자, 자신은 범인과 같은 사격클럽에 다니는 사람이며 그 사람을 말리기 위해 여기에 와 있다고 하는데... 진실은 무엇일까.
기분좋은 긴장감을 유지한채 극으로 치닫는 이야기, 역시 이 단편집에서는 이게 제일 좋았다.
 
<두 개의 총구>를 빼놓고는 이 단편집은 전체적으로 추리소설다운 미스테리한 매력이나 긴장감은 덜한 것 같다.
그럼에도 소재의 다양성이라는 점이 역시 일본 추리소설의 큰 강점이 아닐지. 단편집중 하나도 겹치는 소재를 가진 작품이 없다. 트릭 위주의 추리소설부터 범죄 스릴러까지 소재에 구애받지 않는 시도들이 일본 추리소설의 저력을 보여주는 것이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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