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니버설 횡메르카토르 지도의 독백 미스터리 박스 1
히라야마 유메아키 지음, 권일영 옮김 / 이미지박스 / 2008년 6월
평점 :
품절


간혹 일본 공포소설을 읽을 때 어느 작가의 소설이나 공통적으로 느껴지는 느낌이 있는데, 그건 유럽이나 미국, 우리나라 공포소설에서도 느낄수 없는 느낌으로 뭔가 끈끈한 "귀기"나 "요기"에 가까운 것이 느껴진다. 예전에 친구랑 이야기를 하다가 일본 공포소설에서 느껴지는 이런 느낌을 표현하기 쉽지가 않아서 "있잖아, 간단하게 말해서, 귀신은 귀신인데, 섹시한 귀신이란 말이야."라고 말해서 친구가 엄청 웃었던 적이 있는데, 사실 그런 느낌이 많이 든단 말이다.
이상하게도, 일본 공포소설에서는 에로티시즘과 공포가 언제나 함께 존재한다는 느낌을 받는다. 그것이 그 나라 사람들의 탐미의식과 관련되어있는 지 확실히는 모르겠지만, 일본 소설에 등장하는 미녀들의 모습을 보면 묘하게 "움직이지 않을 법한 인형같은(또는 시체같은) 미녀"같은 것이 떠오르는 것을 보면, 이런 약간 서늘한 탐미주의가 일본 소설 전반에 깔려있기는 있나보다.
 
제목부터 아주 특이한 (일단 발음하기부터가 힘들다.) <유니버설 횡메르카토르 지도의 독백>은 히라야마 유케아키의 여덟개의 단편을 묶어놓은 단편집으로, 미리 말했듯이 일본 공포소설다운 귀기를 가지고 있는 소설이다.
소설이니 읽었지, 영화화 된다면 절대로 보지 않을 법한 소설이기도 하다. (너무 잔인해서.)
일명 에그맨이라 불뤼우는 잔혹한 연쇄살인마의 이야기 <에그맨>을 필두로 저마다 작고 큰 반전을 가지고 있는 단편집으로 한여름, 불쾌하고 끈적끈적한 공포소설을 즐기고자 하는 사람들이라면 이 책은 분명 만족할 것이다.
 
<C10H14N2(니코틴)과 소년-거지와 노파>는 내용과 상관없이 왠 뜬금없는 니코틴이 들어가나 했더니, 니코틴의 일어발음 니코친과 내용이 관계되어 있더라. 어느새 학교에서 왕따를 당해버리는 소년 타로는 한 거지노인을 만나게 되고, 거지 노인의 불쌍함에 이끌렸는지 어느새 쌍안경으로 멀리서 그를 바라보게 된다. 친절해보이는 경찰아저씨가 난데없이 거지노인을 쥐어패는 것을 알게되고, 타로가 쌍안경으로 본 거지 인의 비밀을 언젠가는 물어보기 위해 기회를 노리게 되면서, 이 이야기는 이상한 방향으로 흘러버린다. 착한 마음과 폭력성이 겹쳐지는 순간, 충격적인 폭력의 본성을 목격하게 되면서도, 전혀 공감할수 없는 것은 아닌데 이유는 왜일지. 이런 생각에 죄책감이 느껴지는 것은 또 왜일지....
 
<Ω의 성찬>에는 오메가라는 400키로그램의 거구인간이 등장한다. 조폭에서 암암리에 이익을 위해 키워지고 있는(?) 오메가가 하는 일이란, 누워서 먹는 것 뿐인데, 이 먹는 것이 문제가 된다. 조폭에서 처리한 시체들을 이 오메가가 먹는 것이다. 서커스에서 건져나왔다는 오메가, 그리고 그를 돌보게 된 한때는 수학도였던 조직 일원인 "나"의 이야기. 인육을 먹는다는 설정, 그리고 사람의 뇌를 먹으면 그 사람의 뇌에 들어있는 지식이나 기억 역시 먹게된다는 설정이 몹시 잔혹하기는 하지만, 이 단편집에서 가장 쓸쓸한 단편이었고, 가장 마음에 드는 단편이었다.

<소녀의 기도>에는 연쇄살인범의 자취를 따라다니는 소녀가 등장한다. 동네에서 일어나는 살인사건이 일어난 장소마다 찾아다니면서 만나고 싶다는 글을 쓰고 다니는 소녀는 대체 무슨 생각으로 연쇄살인범과 접촉을 하려는 것일까. 이 단편집의 느낌을 가장 잘 나타내는 작품이 이 단편이 아닐까 싶다. 구원과 잔혹함이 겹치는 지점에서 일어나는 사건들이 이 단편집의 핵심된 느낌이 아닐까.
 
<오퍼런트의 초상>은 <에그맨>과 마찬가지로 SF공포소설이다. 예술이 인간에게 미치는 악영향을 알게된 미래의 어느 사회에서, 예술을 "타술"이라 지칭하며 타술을 사랑하는 타술자들은 처단이 된다. 그리고 타술자였던 어머니를, 그리고 타술자를 잡아들이는 유능한 오퍼런트였던 아버지를 가진 주인공은 어머니의 죽음 이후, 아버지의 자살이 어떤 의미를 지니는지 알게된 순간, 자신도 오퍼런트인 동시에 타술자가 되게 되는데...
다소 식상한 반전이 기다리고 있었으나, 그런대로 괜찮은 단편이었다.
 
개인적으로 이 단편집에서 가장 끔찍하다고 생각되는 것은 <끔찍한 열대>라는 작품이다. 내가 싫어하는 종류의 것들이 모두 등장한달까. 원시적이거나, 원초적인 것들에 대해서 나는 무척 공포심을 느끼는데, (예를 들어, 공포영화는 아니지만, <킹콩>에서 주인공들이 도달한 섬의 이미지는 내가 가장 무서워하는 바로 그것이다.) 이 단편이 그랬다. 함께 시체를 처리하는 일을 도우면 시체 한구당 천엔을 주겠다던 아버지를 따라 마닐라로 가게된 주인공이 맞딱뜨리게 된 이(異)세계. 아, 이런 것이 자연의 공포랄까. 뭐라 말할수 없이 끔찍하고 잔혹하다.
 
표제작인 <유니버설 횡메르카토르 지도의 독백>은 그야 말로 지도의 독백으로 이루어진 단편집이다. (횡메르카토르는 지도 편집방식이라고 하는데, 아무리 들어도 적응이 되지 않는 단어이다. 대체 어느 나라 말일까?)
아무튼 횡메르카토르 지도가 모시는 주인님은 택시 운전사인데, 연쇄살인범이다. 지도는 주인에게 깍듯한 예의바른 지도이므로, 주인님이 시체를 은닉할 장소라던가, 도주할 길 같은 것을 나름 연구하는 자세도 가지고 있는 착한(?) 물건이다. 사고로 주인이 죽고, 지도는 주인의 아들 손에 넘어가게 되었는데, 어찌 된 일인지, 그 아들 역시 아버지를 이어 연쇄살인을 계속 한다. 그리고 주인이 어디선가 가지고 온 사람의 피부로 만들어진 인피 지도는 사사건건 횡메르카토르 지도의 충정을 비웃는데....
전체적인 분위기에서는 가장 귀엽다는 느낌이 드는 단편이었다. 횡메르카토르 지도와 편도의 안타까운 사랑이야기가 피식피식 웃음을 자아내게 만들었다.(그리고 네비게이션이야 말로 흉측한 물건이라는 지도의 말도...)
 
<괴물 같은 얼굴을 한 여자와 녹은 시계 같은 머리의 남자>는 이 단편집에서 가장 그로테스크 하다고 할만한 작품이다. 고문기술자인 주인공 엠시(MC)와 자기 발로 죽여달라고 찾아온 여자 코코. 여기저기 꼬맨 자국이 가득한 기괴한 코코의 얼굴, 죽여달라고 찾아왔으면서 이 고문기술자를 자극하는 말을 멈추지 않는 코코는 대체 무슨 이유로 그를 찾아오게 되었을까. 섬뜩한 묘사와 예상치 못했던 드라마적인 요소가 섞여있는 단편이다.
 
어딘지 강박증적이다-라는 느낌이 드는 것은 왜인지 모르겠지만, 이 소설은 전반적으로 그런 느낌을 갖고 있다.
무언가에 대한 비정상적인 강박증과 귀신같은 인간들의 모습이 초조하게 공포심을 자극하고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물론 잔혹하기도 하지만...) 단지 잔인하다고 치부할수만은 없는 소설이고, 일본소설에서 느껴질수 있는 귀기와 함께 악몽같은 몽환적인 느낌도 드는 소설이니, 불쾌한 감성을 좋아하는 사람들에게는 좋은 소설이 될 것이다. (언뜻, 일본에 가서 20년쯤 살다가 소설을 쓴 클라이브 바커의 소설같다는 생각도 든다.)
자, 이런 사람들이 보면 되겠다.
이제 오츠이치의 소설은 귀엽게 느껴지고, 기리노 나쓰오도 나름 상큼하다고 생각되는 사람들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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쥬베이 2008-07-10 16:5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정확하게 집어내시네요.
맞아요, 일본소설엔 뭔가 "귀기"나 "요기"가 서려있죠ㅋㅋㅋ
일본공포영화도 그렇고요. 상당히 강렬한 작품 같습니다.

Apple 2008-07-10 22:55   좋아요 0 | URL
네. 전형적인 일본 추리소설이다..싶으면서도 묘하게 그렇지 않아보이는 부분들도 보이고...재밌는 단편집이었어요.^^

비로그인 2008-07-23 02:5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하하... 오츠이치와 기리노나쓰오가 슬슬 귀여워지기 시작한 참이였는데 댓글보고 이 책 확 사버렸습니다 ㅋㅋ 그래도 오츠이치와 기리노나쓰오 너무 좋아요! 내스타일! ㅋ
이 책 기대해볼께요~ 얼릉 읽어보고싶네요 서평 잘 읽고갑니다^-^

Apple 2008-07-23 04:49   좋아요 0 | URL
저도 좋아합니다..^^ 이책 꽤 강도가 쎄요.

하이드 2008-08-08 00:5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풉. 오츠이치가 귀엽게 느껴지고, 기리노 나쓰오가 상큼하게 느껴지는 ^^
<고쓰> 읽고 봐서인지, 오츠 이치의 책이 떠올랐는데 말입니다. 책이니깐 봤지, 저도 영화로 볼 수 있는 공포수위는 한없이 낮은지라, 절대절대 못 봐요. 암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