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추리 스릴러 단편선 1 밀리언셀러 클럽 - 한국편 11
최혁곤 외 지음 / 황금가지 / 2008년 5월
평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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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년 여름쯤이면, 황금가지에서 <한국 공포 문학 단편선>을 보게되는데,
같은 컨셉으로 매년 비슷한 시기에 나온다는 점을 생각하면 이제는 연간지같은 느낌이 든달까.
우리나라의 공포문학이 짜임새있게 점점 발전하는 모습을 보는 것도 무척 즐거운 일이나,
가끔씩은 소재의 선택이나 몇몇 설정들이 반복되고 있는 것 같아서 아쉬웠었다.
(특히, 아내의 외도가 설정되어있는 단편들은 이제 식상하다는 느낌마저 준다.)
그에 반해 최근 조금 조용히 등장한 <한국 추리 스릴러 단편선>은 공포문학 단편선에서 느꼈던 소재의 식상함은 많이 벗어나 있는 단편 모음집이다. 여기에 실린 열가지 단편중에는, 스파이 스릴러를 비롯해, 형사 추리물, 고전적인 트릭위주의 추리물, 공포스릴러, 팩션등등, 추리물에서 나올수 있는 세부적인 풀이 방식을 저마다 다르게 사용해, 확실히 한국 공포 문학 단편선보다 좀더 짜임세 있고 차분하며 참신하다는 생각을 들게한다.
대부분이 20,30대 작가들이라는 점에서 아직은 완전하지 않더라도 앞으로 조금 더 지켜보고 기대할만한 작가들이 꽤 눈에 띄어서 작가 이름을 곱씹어 보기도 했다.
 
<B컷>으로 미리 접했던 최혁곤의 <푸코의 일생>은 "푸코"라 이름지은 짖지 못하는 개와 자신을 동일시 하는 듯한 킬러가 등장하는 단편으로, 개인적으로 B컷에서 느꼈던 감상과 비슷하다. 주인공의 직업을 달리 설정했더라면 조금 더 참신한 작품이 나오지 않았으려나 싶기도 하다.
소설에서는 많이 등장하지만, 현실에서는 너무 먼 청부살인업자의 이야기들은 비정한 거리의 느낌이 들게 만들어서 현실에서 느낄수 없는 비정한 스릴감을 느끼게 하기는 충분하기는 하지만, 킬러가 등장하는 스릴러를 너무 많이 봐서인지, 이 가까이하기에는 너무 먼 직업이 식상하게 느껴지는 것은 왜일지.
막판에 킬러의 뒷통수를 치는 반전이 하나 등장하는데, 반전 자체보다는 이야기를 이끌어나가는 안정적인 느낌이 더 부곽되는 단편이다. 왜인지 모르게 최혁곤의 글에서는 어딘지 뒤가 캥기는 듯한 비릿함이 느껴진다. 이런 느낌을 조금 더 살린 작품을 만나볼수 있다면 좋겠다.
 
이대환의 <알리바바의 알리바이와 불가사의한 불가사리>는 제목부터가 참으로 아스트랄하더니만, 굉장히 참신한 구조로 이루어진 단편이었다. 밀실 트릭을 독자가 추리해내는 방식을 취하고 있어서, 이 책 전체에서 가장 참신하고 새로운 느낌이 드는 단편이었던 반면, 글이 산만한 나머지 가독성이 떨어져서 몰입하기가 쉽지 않았다.
 
김유철의 <암살>은 묵직한 무게감이 느껴지는 단편으로 냉정하면서도 조리있는 문체가 무척 매력적인 작품이다. 제주 4.3 항쟁을 배경으로 박대령의 의문의 암살을 추리해나가는 단편인데, 앙리라는 외국인을 주인공으로 등장시켜 독자 역시 한쪽으로 치우쳐 생각하지 않게 만든다. 이야기의 안정감과 무게감있는 문체가 멋진 작품이었다.
 
류삼의 <싱크홀>은 아마 <사이코>를 본 사람들이라면 누구나 <사이코>를 떠올릴만한 작품이다. 남편이 집을 나가버리고, 귀가 들리지 않는 아이를 홀로 키우는 여자가 납치당하면서 일어나는 일들을 그린 단편인데, 일단은 잘 읽히고, 독자를 끌어다니는 매력이 있긴 하지만, 어딘선가 많이 본 듯한 장면이 계속 이어지는 점이 아쉽다. 물론 <사이코>를 처음부터 염두해두고 그렸을지는 모르겠으나, 그 작품 뿐만이 아니라 비슷한 계열의 공포 스릴러 작들에서는 많이 등장했을 법한 이야기가 줄줄 이어지는 느낌이라 재밌었음에도 참신함이 지나치게 떨어지는 느낌이다.
 
나혁진의 <안녕, 나의 별>은 여러모로 고개가 갸우뚱하게 만드는 단편이었다.
죽은 여자가 죽기전에 남긴 다잉메시지의 풀이까지는 고전적이라 생각하고 수긍할수 있겠지만, 모든 주인공들의 심리상태가 이해가 되지 않는달까. 어찌보면 다잉메시지 아이디어 하나만 가지고 나머지 이야기를 끼워 맞춘듯한 인상이 든다. 과거에 외모에 그렇게나 집착하던 소녀가 불과 몇년 새에 자기보다 나이도 훨씬 많고 별볼일 없는 외모의 남자를 사귀는 것 자체가 신빙성이 떨어지고,(중간에 마음을 바꾸게 된 큰 계기도 보이지 않고...) 전학온 여학생이 주인공 소녀와 좀 친해지게 되었다고 해서 대학을 보내려고 기를 쓰고 공부를 시키려는 점도 신빙성이 떨어진다. 또 한때, 애들 돈도 좀 뺏고, 동네에서 침도 좀 뱉어봤을 것 같은 미미라는 여자아이가, 후에 자신의 이런 점을 전혀 모르고 예쁘고 귀여운 아가씨로만 알고 있는 자신의 남자친구에게 자신의 과거를 아무렇지도 않게 설명하는 것 자체가 이해가 되지 않는 행동이다.
여자를 주인공으로 했을 때는 여성 심리를 조금 더 알았어야 하지 않았을까.
 
강지영의 <거짓말>은 이 단편집 최고의 작품이라 말하기에 손색이 없는 작품이었다.
사채에 시달리는 여자, 여자에게 반해 결혼했지만, 결국은 무관심해진 남편, 그리고 그녀를 따라다니는 사채업자, 그리고 얼떨결에 두건의 살인을 저지르고 갈곳도 없는 여자를 덜컥 집으로 데리고 온 의문의 남자. 네명이 등장해 참으로 기이하고 구슬픈 이야기를 완성해 나간다. 전체적으로 무겁고 침울한 분위기와 함께 신비감마저 느껴지는 미옥이라는 여자주인공의 알수없는 침묵들이 차근차근 풀어져 다 읽고 났을 때는 마음이 아려왔다. 이 단편집은 이 작품 하나만으로도 충분히 가치가 있다. 이 작가의 다른 작품들도 꼭 보고싶다.
 
정명섭의 <불의 살인>은 고구려시대를 배경으로 우연과 필연이 겹쳐지면서 벌어진 방화사건을 다루고 있는 단편이다. 인간의 욕망은 계기만 생기면 불처럼 번지는 것인가보다. 아주 재밌지는않았지만, 적절한 재미는 보장하는 안정적인 작품이다.
 
박지혁의 <일곱 번째 정류장>은 <거짓말>과 함께 이 단편집에서 가장 마음에 들었던 단편이다.
마을버스를 운전하는 한 남자와 그 남자가 반해버린 치과 여의사의 이야기. 한 남자의 짝사랑이야기가 어떻게 스토커 노인의 욕정살인으로 번지는지, 내막을 차근차근 살펴보는 것이 참 재밌고, 풀이 과정도 설득력 있고, 몰입도도 훌륭하다. 다 읽고나니 마을버스 운전사가 불쌍하게 느껴져서 마음이 짠했다. 짝사랑이 무슨 죄란 말인가!!!
 
한이의 <피가 땅에서부터 호소하리니>는 내 이해력 부족인지 확실히 이해하지 못하겠는 작품이다. <오리엔트 히트: 스푼 메이커스 다이아몬드>는 독특하게도 스파이 스릴러인데, 분위기는 잘 살리고 있으나 얘기가 너무 평이하달까. 그럭저럭 읽기는 했지만 큰 재미는 잘 모르겠다.
 
개인적으로 이 단편집 베스트를 뽑아보자면, <암살> <거짓말> <불의 살인> <일곱번째 정류장>을 꼽을수 있겠고, 이 작품들만으로도 이 단편집은 단편집을 좋아하는 사람에게는 추천하고 싶은 책이다.
아쉬운 작품도 있었고, 의외로 굉장히 마음에 드는 작품들도 있지만(그런 작품들은 꼭 몇번씩 더 읽어보게 된다.) 앞으로도 이런 기획단편집은 또 보고싶다.
사람마다 개인 취향이 있어서, 장편을 좋아하는 사람도 있고 단편을 좋아하는 사람도 있겠지만,
짧은 호흡에 긴 여운을 남기는 단편을 좋아하는 나로써는 이런 단편집은 아무리 읽어도 질리지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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쥬베이 2008-06-20 01:4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시즈님 설명만으로도 <한국 추리 스릴러 단편선>의 모든 작품을 읽은 듯 해요^^
좋은 서평 잘 봤습니다^^

Apple 2008-06-22 00:20   좋아요 0 | URL
헤헤....이런 허접한 리뷰를...^^;;핫핫...재밌게 보셨다니 감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