적색의 수수께끼 밀리언셀러 클럽 81
나가사카 슈케이 외 지음, 김수현 옮김 / 황금가지 / 2008년 4월
평점 :
절판


일본 추리소설을 몇권만 읽어보았어도 이름을 알만한 일본 추리소설의 아버지 에도가와 란포 수상작가들의 단편 모음집 1권이다. (에드거 앨런 포를 말장난으로 살짝 바꿔놓은 에도가와 란포의 이름은 언제 들어도 재치 만점! 그의 소설들에서 괴이하고 변태적인 느낌뿐만이 아니라 살짝 코믹한 느낌을 갖게 되는 것은 작가 본인이 어느 정도 유머가 있는 사람이 아닐까 하고 상상하게 된다. 마치 그의 이름처럼 말이다.)
기대보다는 살짝 실망스러웠던 에도가와 란포 수상작가 단편집이었지만, 그래도 이런 기획을 읽을수 있으니 참 재밌다는 생각이 들어서, 찬찬히 청색의 수수께끼도 펼쳐볼까 한다.
수록작들이 대부분 분량이 꽤 되어서, 수록작이 5개뿐인데도 꽤 두툼하다.
그래서 어떤 작품들이 수록되어 있는가 하면..
 
첫작품으로 등장한 <'밀실'을 만들어 드립니다.>야말로 개인적으로는 이 단편집에서 가장 쓸데없다는 느낌이 드는 작품인데, 추리소설의 로망 "밀실"을 소재로 어떻게든 밀실 살인사건을 끌어내려고 하는 것 같지만, 처음부터 끝까지 억지에 가까운 이야기들만 등장해서 이것이 추리소설작가의 작품이라 보기에는 지나치게 초보적이고 다소 유치하다는 느낌이 들었던 작품이었다. 밀실살인이라던가, <술집 탐정 게임>이라는 게임을 통해 미스테리한 사건들에 관심이 많은 사람들이 등장한다는 설정자체는 괜찮다. 차라리 옛추리소설에 대한 향수로 빠졌으면 훨씬 훈훈했을 법한 이 단편은, 어디선가 등장해 주인공의 집에 눌러붙어 살게된 피요코라는 소녀의 등장 자체가 무척 작위적이고, 추리소설 작가라면서 전혀 추리해내지 못하다가 막판에 범인을 알고나자 모든 것을 해결하는 주인공의 캐릭터 역시 무척 작위적이라는 생각을 지울수가 없다. 물론 처음부터 끝까지 등장하는 모든 '밀실' 트릭들 역시 작위적이기는 마찬가지이지만, 이 단편의 핵이 되는 장님 노인 살인사건의 풀이나, 살인이 일어나게 된 경위도 그들이 하고 놀았던 <술집 탐정 게임>처럼 가볍고 납득하기 힘들다.

두번째 작품 <구로베의 큰곰>은 일종의 산악 미스테리이다. 개인적으로 등산에 관련된 모든 것에 관심이 없어서 읽는데 꽤 곤욕스러웠던 작품이지만, 시종일관 무겁고 진지했던 분위기가 첫번째 작품보다 훨씬 인상적이었던 작품이다.
설산 구조에 대한 이야기인데, 설산에 대한 배경묘사라던가 작가가 이 방면에 대한 지식을 충분히 이해하고 써낸 소설같아서, 첫번째 단편에서 받았던 시시한 감정이 "그래, 이정도는 되어야지!"하는 느낌으로 바뀌었달까.
(산을 싫어하는 나로써는 이해하기 힘들지만) 눈덮인 설산은 등반가들에게는 무척 매력적인 장소인가보다.
설산에서 펼쳐지는 미스테리한 이야기들은 영화에서보나 소설에서보나 알수없는 공포심을 느끼게 한다. 이것 역시 폐쇄된 장소라는 느낌이 강해서 일까. 그 안에서는 알수 없는 일들이 일어날 것 같은 기묘한 공포심이 든다.
쭉 설산등반 이야기처럼 이어가다가, 서서히 등장인물들의 감정을 고조시키고, 마지막에서는 진실의 짜릿함을 느끼게 하는 좋은 단편이었다.
 
<라이프 서포트>는 폐암판정을 받아 남은 삶이 1년밖에 되지않는 중년 여성이 오래전 자신이 버렸던 딸을 찾아 나서는 이야기이다. 전형적인 추리소설같다는 느낌을 받았던 소설이기는 하지만, 새로 시집간다고 한번 버렸던 자식을 죽을때가 되어서나 아무렇지도 않게 다시 찾아나서는 주인공의 태도가 너무나 마음에 들지 않는다. 똑똑하고, 행동력도 빠르고, 돈도 많은 여자이면 뭘하나. 자신이 버린 딸에 대한 아무 미안한 감정도 느껴지지 않는데...
주인공이 마음에 들지 않아서 이 작품은 그저 그런 편이었다.
 
<가로>는 아버지를 증오하는 남자가 여자 친구와 싸운후에 길에서 한 중년 남자에게 칼을 맞으면서 시작된다.
병원에서 상처를 치료하고 보니, 자신을 살해하려 했던 남자는 자살했고, 어느새 세상에서 자신은 피해자가 아닌 가해자가 되어버린다. 전혀 알지 못하는 사람들에게 원한을 샀던 이 남자의 기억나지 않는 과거를 추적하는 이야기로, 사건을 비틀어버리는 솜씨와 등장인물들의 관계도를 설정하는 것이 참 재밌는 단편이지만, 후반부 그렇게나 평생을 증오하던 아버지와의 화해가 말 몇마디로 해결되는 점이 잘 납득이 가지 않는다.
 
가장 짧은 마지막 단편 <두 개의 총구>는 역시 다카노 카즈아키라는 말이 나올 만한 단편이다. 분량이 얼마 되지 않음에도 사건을 긴장감 넘치게 진행시키고, 막판에 가서는 무엇을 믿어야할지 우왕좌왕하게 만드는 점이 이 단편의 묘미라 할수 있다. 학교에서 청소 아르바이트를 하고 있는 주인공은 반장이 잠시 자리를 비우자 총을 들고 설치는 살인자와 학교에 갖혀버리고 만다. 그리고 자신에게 다가온 한 남자, 자신은 범인과 같은 사격클럽에 다니는 사람이며 그 사람을 말리기 위해 여기에 와 있다고 하는데... 진실은 무엇일까.
기분좋은 긴장감을 유지한채 극으로 치닫는 이야기, 역시 이 단편집에서는 이게 제일 좋았다.
 
<두 개의 총구>를 빼놓고는 이 단편집은 전체적으로 추리소설다운 미스테리한 매력이나 긴장감은 덜한 것 같다.
그럼에도 소재의 다양성이라는 점이 역시 일본 추리소설의 큰 강점이 아닐지. 단편집중 하나도 겹치는 소재를 가진 작품이 없다. 트릭 위주의 추리소설부터 범죄 스릴러까지 소재에 구애받지 않는 시도들이 일본 추리소설의 저력을 보여주는 것이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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