빨강머리 앤 - 빨강머리 앤 100주년 공식 기념판
루시 M. 몽고메리 지음, 강주헌 옮김 / 세종(세종서적) / 2008년 10월
평점 :
구판절판


소녀들이라면 한번쯤은 가져보고 싶었던 지붕밑 방의 로망이 시작된 곳은 아마도 빨강머리 앤에서부터 일지도 모르겠다.
한쪽 천장이 기울어지고, 양옆으로 여닫는 보통의 창문이 아니라 위로 올리는 창문을 열면,
눈의 여왕이 아침을 맞이한 아이를 환영하는 방-이보다 더 낭만적일수 있을까.
(물론 이 이미지는 소설에서보다 어린시절 보았던 TV애니메이션에서부터 기인하겠지만...)
루시 모드 몽고메리의 "빨강머리 앤"이 사는 전원적인 풍경은 어린 시절부터 마음속에 품어두고 살아가는 낭만과 몽상들을 떠올리게 만들어서, 책을 읽는 내내 입가에 행복한 미소가 지어졌다.

책을 다시 보지 않더라도 생생하게 기억나는 이야기들이지만, 다시 읽어도 전혀 지루함을 느끼지 못했다.
애니메이션 속의 프린스 에드워드 섬의 풍경보다도 더 진하고 아련하게 떠오르던 가로수길.
부끄러움을 많이 타지만 사실은 다정한 매튜 아저씨, 낭만이라고는 눈꼽만치도 없이 엄격하고 무뚝뚝하기 그지 없지만 앤을 향한 모성애가 넘쳐나는 마릴라 아줌마, 통통하고 예쁜 소녀 다이아나와 참견쟁이 린드 아줌마, 갈색눈에 키큰 길버트 브라이스, 그리고 세상 모든 것을 상상하는 빨간머리 소녀 앤이 살아가는 에이번리의 풍경이 아득하게나마 머릿속에 기억된다.
루시 모드 몽고메리는 옆집에 살던 남매와 그들과 함께 사는 어린 꼬마아이를 보다가 "빨강 머리 앤"을 구상하게 되었다고 한다. 이토록 이 모든 풍경이 낭만적인 동화처럼 생생하게 기억되는 것은, 그곳에서 살아갔고 그곳에서 묻혔던 루시모드 몽고메리가 그곳을 무척 사랑했기 때문인지도 모르겠다.
작가가 사랑했던 풍경을 독자 역시 사랑하게 된다는 것은 참 놀라운 일이다.

"빨강머리 앤"을 처음 읽었을 때로부터 거의 20년이 흘렀지만, 이 책은 어린 아이일때 보았을 때처럼 매혹적이었다.
다만, 책을 읽어내려가는 느낌은 달라졌다. 그 사이 나는 어른이 되었기 때문이다.
앤 셜리의 낭만적인 모험담이었던 책이 지금 읽으니 달콤 쌉싸름한 성장드라마로 느껴지더라.
앤의 수다와 앤이 일으키는 이런저런 사건들을 정신없이 따라가다보니, 어느새 슬픔이 몰려왔다.
아이는 자라고, 어른은 노인이 되어가는 시간의 무심함을 어른이 된 나는 느껴버렸기 때문에.
언제까지나 어린 아이일줄 알았는데, 네가 이렇게 자라버렸구나-라며 마릴라 아줌마가 처음으로 앤의 앞에서 엉엉 울었을 때처럼, 나 역시 어쩐지 울고 싶은 기분이 밀려왔다. 어린 시절의 모든 사랑스러움과 모험같았던 호기심을 잃어버린 것 같아서, 마음이 찡하면서도 아득하게 슬퍼져버린 것을 어쩌나.
"가난한 사람들에게 한가지 위안이 되는 점은 부족한 게 많아서 상상할 것도 많다는 거야."라던 앤의 말이
어른에게는 비현실적인 몽상이 될수밖에 없어서 부러우면서도 부끄럽게 느껴진다.
얼마나 많은 상상력을 잃어버리고, 현실의 불안에 안주하며 살아갔던 것일까.
눈을 감고 내가 원하는 것들을 상상하면서 현실의 부족함을 잊었던 앤의 방식이 더이상은 통하지 않는 나이가 되어버린 것이 안타깝고 슬퍼졌다. 그리고 "이제는 할수 없다"라고 단정해버리는 사실이, 책속의 모든 사건들이 즐거운 앤의 모험담이 아니라 아련한 기억으로 느껴진다는 사실이 슬프다.

올해는 모두가 사랑하는 앤셜리의 100번째 생일이 되었단다.
100년동안 꿈꾸었고, 앞으로도 언제까지나 꿈꾸는 몽상가로 존재할 앤셜리.
그 앤의 이야기를 따라가면서, 잠시나마 즐거운 몽상과 아름다운 에이번리에 푹 빠져 나는 현실을 잊었다.
꿈을 꾸고 살아갈수 있다면, 언제까지나 소녀일수 있을까. 지금보다 30년쯤 나이를 더 먹고도, 그렇게 될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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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매지 2008-11-25 23:0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도 지금 읽고 있는데 어릴 때 봤던 기록이 새록새록나면서 재밌네요 :)
전 다른 출판사에서 나온 걸로 보고 있는데, 요 책도 땡기네요 ㅎㅎ

Apple 2008-11-25 23:04   좋아요 0 | URL
네..저도 오랜만에 읽어보니 무척 재밌더라고요.^^
근데 100주년 기념판인데 오타가 좀 보여서 안타깝습니다;;;
 
빨강머리 앤이 어렸을 적에 - 빨강머리 앤 100주년 공식 기념판
버지 윌슨 지음, 나선숙 옮김 / 세종(세종서적) / 2008년 10월
평점 :
구판절판


외로워도 슬퍼도 울지 아니하고, 거울속의 나하고 얘기를 나누는 희대의 낙천녀 캔디같은 아이가 여기에 또 있다. 이 아이는 외롭고 슬플때면 울기는 하지만, 책장 유리문에 비친 자기자신에게 이름을 붙이고, 저멀리서 들려오는 메아리에 이름을 붙이는 등 캔디보다 더 한 짓을 한다. 그 아이가 그 유명한 "빨강머리 앤"이다.

버지윌슨이 지은 "빨강머리 앤이 어렸을 적에"는 루시 몽고메리의 "빨강머리앤"의 속편격의 소설로, 커스버트 남매를 만나기 전까지의 이야기를 다루고 있다. 원작 "빨강머리 앤"에서는 그다지 심도있게 다루지 않았던 앤셜리의 구체적인 과거의 이야기를 써내려 가는데, 소설 자체만으로는 무척 매력적이다. 원작만큼이나 흡인력있고, 동네 꼬마라도 알법한 앤셜리에게 새로운 인생을 부여해놓아서 무척 흥미진진하게 읽어내려갈수 있는 소설이다.
선생님이었던 부모에게 태어나 10달째 되던 해에 열병으로 부모를 잃고, 부모님의 집에서 일을 도와주던 토마스 부인에 의해 여덟해를 길러지고, 그리고 해먼드 부부에게 두 해를 길러지고, 4달간 고아원에 있기까지- 버지 윌슨의 앤은 그야말로 파란만장한 행보를 걸어나간다.
누구나 아시다시피, 열악하기 그지 없는 환경에서도 행복을 찾아내는 초인에 가까운 낙천주의자인지라,이런 환경에서도 밝게 자라났고, 그렇게 커스버트 남매와 만나게 된 것이다.

이 책을 무척 재밌게 읽고 나서는, 루시 몽고메리의 원작 "빨강머리 앤"을 속히 펼쳐 들었다.
워낙 어린 시절에 읽었던 책이라, 전체적인 이야기와 사건들은 모두 기억하는데 섬세한 사실들은 놓치고 지나갔었다.
원작과 이어서 보다보니, 이 책이 무척 섬세한 솜씨로 태어난 후속작은 아니더라.
원작과 매치되지 않는 부분도 꽤 있고, 무엇보다도 버지 윌슨이 창조해낸 앤은 철이 든 아이라는 점이 다르다.
8명의 아이를 돌보는 앤. 지치고 힘들고 때로는 절망해도, 결코 어른들을 무조건적으로 원망하지는 않고 그들을 이해하려고 노력하는 기특한 아이가 버지 윌슨이 창조해낸 "앤 셜리"라면, 루시 몽고메리의 "앤 셜리"는 거두어준 은혜도 깜빡하고 요구하는 것도 많은 철없는 수다쟁이 아이였다.
두 앤셜리는 나름의 매력을 가지고 있다.
버지 윌슨의 "앤 셜리"가 꿋꿋하고 어른스럽다면, 루시 몽고메리의 "앤 셜리"는 철이 없어 귀여운 아이이다.
버지 윌슨이 원작이 있는 소설의 후속편을 쓰면서 행한 가장 큰 오류는 아마도 앤셜리에게 너무나 많은 고난을 짊어지게 했던 것이 아닐까. 이 소설을 읽다보면, 앤 셜리가 커스버트 남매를 만난 것은 그야말로 지옥에서 천국으로 날개를 달고 날라갈 정도의 일이라, 간혹 앤이 "이런 저에게 지금 당장 설겆이를 하라고 하지 말아주세요, 마릴라 아주머니"라는 말을 하는 것은 말도 안되는 떼부림에 불과해져버린다. 이런 삶을 살아온 앤이라면, 설겆이 정도야 감지덕지이지.

그럼에도 나는 버지 윌슨의 "앤 셜리"가 더 좋다.
그녀가 창조해낸 앤 셜리에게는 아픔이 있고, 그에 걸맞는 절망이 있고, 거기에서 파생된 정당한 인격이 부여된 느낌이다. 원작이 무척 즐겁기는 하지만, 그럼에도 앤 셜리의 초인적인 낙천주의와 변덕은 어린 나로써도 버겨운 것이었다.
빨강머리 앤은 어린 시절에 무척 즐겁게 읽었던 소설이기는 하지만, 나는 어릴때부터 이 시끄러운 아이 "앤 셜리"를 싫어했다.
철도 없고, 은혜도 모르고, 지나치게 다혈질인데다가 변덕이 죽끓어서 엄청나게 절망했다가 곧바로 헤헤대는 이 계집아이가 나는 싫었고, 지금도 그런 사람을 좋아하지 않는다.
다만 내가 사랑했던 것은 프린스 에드워드섬의 동화같은 분위기와 무뚝뚝한 마릴라 아줌마와 부끄럼쟁이 매튜 아저씨가 만들어내는 모성애와 부성애가 뒤섞인 따뜻함이었던 것 같다.

어쨌거나 원작인 "빨강머리 앤"과는 무척 다른 느낌의 앤셜리를 볼수 있는 소설이었고, 빨강머리 앤의 팬이라면 꼭 읽어볼 법한 책같다. 어른이 읽어도, 아이가 읽어도 즐거운 앤셜리의 이야기. 따뜻하고 뭉클하게 가슴아픈 이야기이도 하다.
모든 등장인물들에게 입체적인 과거와 성격을 부여한 사실이 제일 마음에 들고, (소설속의 인물들은 하나같이 속물이면서도, 인간적이다. 못된 부분과 착한 부분이 공존하는 정말 인간같은 느낌이었다.) 버지 윌슨은 캐나다에서는 엄청 유명한 작가라고 하던데,  이런 섬세한 점이 오래된 작가의 관록일 것이다. 100년간 베스트셀러라고 불러도 손색없는 너무나 유명한 작품이라, 작가로써는 거의 도전에 가까운 일이었을 것이라 생각한다. 이야기를 어떻게 만들어도 욕먹을 위험이 있지 않았을까.
그래도 이렇게 자신만의 앤셜리를 창조해낸 작가에게 경외감을 표하고 싶다.

책을 보는 내내 캐나다에 가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겨울과 봄사이에서 갈팡질팡하는 변덕스러운 봄과 끝도 없이 등장하는 요정이 나올것같은 울창한 나무숲, 겨울에는 허리까지 찬다는 눈밭까지... 냉혹한 자연환경이면서도 신비롭고 매력적이다.
그곳에 가면 어디선가 앤 셜리가 물을 긷고 있거나 계란을 사러 달려가는 것을 볼수 있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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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이드 2008-11-24 08:4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중학교때 영국에서 전학온 친구 집에서 BBC의 빨간머리앤을 본 적 있어요. 아역배우들 캐스팅해서 그 배우들이 20여년간 찍은 드라마인데, 그냥저냥했던 애들이 어찌나 이쁘고 멋지게 자라던지 특히 오.. 길버트;;

BBC는 드라마를 하나 만들어도 대- 단하다고 생각했던 기억이 나네요.

Apple 2008-11-24 16:40   좋아요 0 | URL
와, 대단하네요. 드라마를 20년간 찍었단 말이예요?ㅇ.,ㅇ오호...
 
야간 여행
얀 코스틴 바그너 지음, 유혜자 옮김 / 들녘 / 2007년 3월
평점 :
절판


그는 소설가였다. 2년동안 집필한 소설을 들고 자신과는 먼친척관계인 편집장을 찾아가 상담하던중, 이 소설이 너무 형편없어서 출판되기에는 모자라다는 말을 듣게 된다. 그 말을 듣고 그는 웃으며 출판사를 나와 아이스크림을 먹으면서 그 형편없는 소설을 보았고, 출판사를 나오기 직전 했던 생각을 실행하기로 마음 먹는다. 그는 편집장 야콥 뢰더의 별장으로 찾아가 그날 밤 그를 죽인다.
그의 소설이 형편없고, 이 상태로는 출판할수 없다는 말을 들었기 때문이다.
먼 친척이자, 그간 자신을 돌봐주었던 편집장 야콥뢰더를 죽인 이유는 겨우 그정도였다.

그 살인후, 그는 프랑스의 유명한 배우 프라이킨의 자서전 집필을 하기로 하고 프라이킨의 저택으로 간다.
키작고 나이든 노인. 멍청할 정도로 인정많고 착한 그 배우에게는 손녀벌 정도밖에 되지 않는 젊고 아름다운 아내가 있다. 모든 것은 그의 기대에서 엇나갔다. 부유하고 명망있는 배우에게 빌붙어 재산을 노리는 거겠지 싶었던 그의 아내 사라는 진심으로 남편을 사랑해서 결혼했다.
웃기는 일이다. 젊고 똑똑하며 야망있는 자신에게는 없는 것이 이 늙고 멍청한 노인에게는 다 갖춰져있다.
이 남자 마크 크라머는 프라이킨의 자서전을 집필하기 위해 저택에 머무르게 되었지만, 자서전은 안중에도 없고, 프라이킨의 아내 사라를 유혹하기 위해 여념이 없다. 그 노골적인 유혹에도 사라를 제외한 누구도 그의 수상쩍은 행위를 의심하지 않는다.
그리고 그는 사라를 향한 욕망을 채우기 위해 프라이킨을 살해하기로 한다.

작가의 처녀작이라는 <야간여행>은 독서후에 깔끔하게 정리된 뒷맛을 남기는 것을 좋아하는 독자에게는 그다지 반길만한 소설이 되지는 않을 것이다. 살인동기가 될만한 큰 이유없이 자신의 욕망이나 한순간의 충동으로 살인을 저지르고 죄책감을 느끼지 않으며, 그 범죄에 대한 마땅한 죄를 받는 것도 아닌 이 살인자를 보는 것은 누구에게나 불편한 일이다.
그런데도 나는 이 소설의 첫페이지를 펴는 순간부터, 마지막 페이지를 덮을 때까지 이 소설에 완전히 반해있었다. 소설이 주는 불편함이 매력이라면 매력인건지, 해피엔딩 동화처럼 모든 것이 완전히 해결되고 주인공의 심경을 모두 이해할수 있는 소설보다, 이런 불편하고 애매모호한 느낌이 내 구미에는 더 맞기 때문인지도 모른다.

<야간 여행>의 주인공 마크는 보통 사람이라면 이해하지 못할 사소한 이유로 살인을 저지른다.
이 심사가 베베꼬인 못된 남자를 바라보면서, 작가가 주인공에게 부여한 살인동기가 정확히 무엇인지는 확실히 모르겠지만, 어렴풋이는 알 것 같다.
살다보면 그런 사람 만나지 않나. 겉으로는 젊잖은 척, 착한 척, 예의바른 척 하지만, 속으로는 남을 비꼬고, 질투하고, 우습게 여기는 사람 말이다. 마크 크라머는 일종의 그런 사람이 아니었을까 싶다.
자신은 젊고 잘난 사람이라고 생각하고 그래서 자신과 다른 사람들을 속으로 비웃고 헐뜯지만, 사실은 컴플렉스를 느끼는 사람이 아닐까.
마크가 찾아간 프라이킨과 그의 주위의 사람들은 하나같이 부유하고 명성도 있는데다가 심지어는 착하고 인정까지 많다. 어디서 찾아온 사람이 집에 머물러도 금새 마음을 열고, 의심하는 법도 없다. 마크가 보기에는 참으로 멍청하고 가식적인 인물들이지만, 그들이 가진 여유를 사실은 부러워했던 것이 아닐까.
그 천사같은 사람들 사이에 있으니 자신의 오점과 추악한 본성이 더 확연히 드러나는 것이다.
그래서 그들이 만든 행복을 깨어버리고 싶었던 것은 아닐까.
그렇게 보이는 너희들도 언젠가는 추악한 욕망을 드러내게 될것이라고- 바랬던 것은 그런 것이 아닐까.

그리고 청년은 범죄로까지 발전된 실수를 저지르고서야 비로소야 깨닫는다.
자신의 소설을 형편없다고 말한 야콥 뢰더의 본심을, 그리고 가식적으로 보이던 프라이킨의 호의를, 뒤늦게서야 알게된다. 후회를 해도 이미 늦었다. 어둠을 이겨내고 싶었던 청년은 결국 어둠에 지배되었다.
책속의 마크 크라머를 바라보면서, 일말의 동정심을 느꼈다면 거짓말이겠지만, 그럼에도 찝찝하게 마음을 건드리는 무언가 있다.
욕망과 질투와 끝없는 불신과 마음속의 어둠에 집어 삼켜진 나약한 남자.
그 못되먹은 마음이 새삼스레 안타깝게 느껴진다.
그리고 나 역시 그런 못되먹은 마음을 품어본 적 없는지 반추하게 되었는데, 없다고 말하지는 못하겠더라.
나쁜 마음도, 타인에게 해를 입히는 검은 욕망도, 결국은 깨끗히 해결나지 않고, 누구도 몰라도 자신만은 죽는 그 순간까지 간직하게 될 어둠이 되어버린다. 그는 법적인 책임은 지지 않았지만, 그 어둠을 끌어안고 살게 될 것이다. 처벌도 없지만, 구원도 없다. 그 점이 현실적이고 불편하다.
마지막 한장을 덮으면서 검고 깊은 우물속에 침전하는 느낌이 들었다.

얀 코스틴 바그너의 처녀작으로는 놀랍다고 생각한다. 읽으면서는 얼핏 아멜리 노통브를 떠올리기도 했는데, 책을 다 읽고 나니 아멜리 노통브의 소설보다는 수준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적어도, 아멜리 노통브처럼 인간의 약점을 비난하기에 그치지는 않는다.)
별 생각없이 읽었다가 푹 빠져든 너무나 마음에 드는 소설이었다.
불편한 감성을 좋아하는 사람에게는 반가운 소설이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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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나긴 순간
빌 밸린저 지음, 이다혜 옮김 / 북스피어 / 2008년 10월
평점 :
품절


한 남자가 목이 잘린 채 어느집 문앞에서 발견된다.
다행히 죽을만큼은 아니었는지, 목숨만은 어렵게 구한 그는 목소리와 기억을 잃고 병원에서 깨어난다.
자신에 대해 기억하고 있는 것은 아무것도 없다. 심지어는 이름도 기억하지 못한 채, 본능적으로 자신이 그리 평범하고 착한 사람은 아니었을 거라는 희미한 느낌만 남아있을 뿐이다. 아슬아슬하게 살아남아 자신이 누구인지도 모르고, 의지할 가족도 없고, 병원을 나가면 무엇을 해야할지 알지도 못하지만, 그럼에도 큰 걱정없이 그렇게 하는 것이 정석이라 몸에 배어있는 듯이, 그는 자신이 버려졌던 집으로 찾아간다.
그의 등장과 함께 여기저기에서 사람이 죽어나가는데도 그에게는 두려움이란 없다.
위험할지도 모르는 자신의 과거의 기억을 불러내 청산해야 한다면, 기꺼이 그러려고 할 뿐.
냉혹하다기보다는 무덤덤한 사람, 주인공 퍼시픽은 그런 사람이다.

또다른 곳에서 목이 잘린 채 죽어있는 사람이 발견된다. 이번에는 진짜다.
경찰들은 이 신원도 모르는 시체에 당혹해 하면서 그의 과거를 찾아나간다.
책을 읽어나가는 독자만이 알수있는 사실-이 시체는 주인공 퍼시픽의 시체이다.
목이 잘린 채로 살아남아 자신의 과거를 찾는 퍼시픽은 왜 다른 곳에서 시체로 발견된걸까.

빌 벨린저의 <기나긴 순간>은 지금까지 보았던 소설들대로 두가지 이야기가 겹치는 지점을 찾아 여행을 떠난다. 최근에는 교차서술이 많아졌고, 또 이런 방식의 교차서술을 빌 벨린저가 또다른 소설에서 보여주었기 때문에, 지금에 와서 마지막 반전을 운운하는 것은 의미가 없다. 그래서 사실 결말 봉인봉 역시 <이와 손톱>에서 그쳤어야 하는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기도 한다. 추리소설 독자로써는 "결말 봉인본"이라는 단어 자체에서 오는 매력을 거부할수 없는 것은 아니지만, 처음에는 신선했던 결말 봉인본이 한번의 신선함이 깨지고 나면 조금 거추장스러운 걸림돌이 되고 만다. 실제로 나는 읽다가 결말 봉인본 부분에서 짜증이 나서 결말 봉인 부분을 갈기갈기 찢어버렸다.

사실 지금까지 국내에 출판되었던 <이와 손톱>이나 <연기로 그린 초상>에 비해서는 조금 지루한 책이 아니었나 싶다. 반전을 알아챌수 있는 것은 그렇다치고, 서술은 여전히 술술 잘 읽히기는 하지만, 어딘지 몰입할수 없게 만들어서 이 짧은 책을 조금 더디게 읽었던 것 같다.
그럼에도 마지막 한줄까지 다 읽고 나서 밀려오는 이상한 감정은 어쩔수 없나보다.
자신의 과거는 모두 찾았다고 생각했지만, 결국은 자기자신은 찾지 못했던 이 영리한 듯, 바보같은 인물에게 동정이랄지, 비애랄지 하는 것이 느껴져서 마지막 한줄에서 기분이 굉장히 이상해졌다. 아마도 이런 매력때문에 이 소설이 다소 실망적이었는데도 빌벨린저 작가자체에 실망하지 않았던 것 같다.
다른 책이 출간된다면 또 읽고싶은데, 출판사에서 빌벨린저 3종세트에서 그치는 점이 좀 아쉽다.
이런 작가를 만나기도, 요즘은 흔치 않아져 버렸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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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폴레옹광 아토다 다카시 총서 2
아토다 다카시 지음, 유은경 옮김 / 행복한책읽기 / 2008년 8월
평점 :
절판


어떤 친구가 있었다. 어눌한 말투로 정확하게 정리되지 않은 채로 주절주절 뭔가 얘기하기 시작하면, 나는 대체 말하고자 하는 요점이 뭔가 하고 어리둥절하기도 했었다. 말이 많은 사람이나 말에 조리가 없는 사람을 그다지 좋아하지 나로써는 분명히 꺼릴만한 친구였다. 그럼에도 내가 그 아이를 좋아했던 이유는 그런 요점도 없어보이는 말들이 이어지는 것 같으면서도, 어느 순간에 정확히 내가 캐치해낼 "한방"이 있었기 때문이다. 어눌해보이지만 사실은 예리하고, 바보같아 보이면서도 사실은 아주 냉철했던 것이다.
처음 만나는 아토다 다카시라는 일본소설가는 꼭 그런 친구같은 느낌이었다.
별 생각 없이, 큰 자극없이, 이렇게 진행되다 저렇게 끝나겠군...하고 생각했던 예상을 뒤집는 한방이 있다. 그걸 반전이라고 부르기에는 너무 거창한 것 같지만, 확실히 특별나 보이지 않는 일상의 일들이 한순간에 다시 보이는 순간이 이 책속에는 있다.
이 책을 읽으면서, 살면서 얼마나 많은 오해와 착각을 하면서 살았을까 생각해보게 되었는데, 어쩌면 사실은 인생이 그런 것인지도 모르기 때문이다. 남의 마음속에 들어갔다 나오는 능력을 가진 사람은 아무도 없을테니, 누구나 남이 어떤 생각으로 살아가고 있는지 정확히는 알수 없지 않을까.
거기에서 예상치 못했던 인생의 갈림길이 나타나는 것이다.
그런 인생의 아이러니를 이렇게 소설로 읽어가다보니 한순간 한순간이 당혹의 연속인가 싶었다.

나폴레옹광이 되어 인생 전체를 나폴레옹 관련 물품 수집을 하면서 살아가는 노인이 있다. 그리고 그를 알게된 불어선생님이 있고, 그 불어 선생님에게 어떤 남자가 찾아와 자기의 전생이 나폴레옹이 아니었을까 싶다고 말한다. 나폴레옹에 관련된 것이라면 무엇이든 사랑하는 사람과 자신의 전생이 나폴레옹이라고 믿고 있는 남자를 대면시키게 되면 어떻게 될까?
표제작 <나폴레옹광>은 이렇게 시작된다. 그저 그렇게 읽어가다가 뒷통수를 한대 후려맞는 듯한 느낌이 들었다. 이 강렬하고 기묘한 이야기를 필두로 이런 식의 이야기가 계속 이어진다.
결코 유쾌하다고는 할수 없는 블랙유머가 간간히 흩뿌려지고, 별로 특별날 것 없는 듯한 이야기가 이어지다가, 한순간에 정신 바짝 차리게 된다.
흔하디 흔한 "반전"이라고 부르기에는 아쉽고, 하나하나 이야기를 작가가 계획대로 이어져나가다가 그 결말이 이상한 방향으로 비틀어지게 되는데, 그 뒤틀린 상황이 논리적이라기보다는 정말 기기묘묘하기 때문에 이것이 아토다 다카시의 스타일이라고 수긍할 수 밖에 없다.
간혹 반전이 그 책의 아이덴티티가 되어버리는 책들이 있곤 한데, 비록 좀 치사한 수를 쓰더라도, 그 반전들에 속아줌을 독자는 즐겁게 여기게 된다. 그러나 아토다 다카시의 예상치못한 결말들은 치사하다기보다는 정말 "의외다"라고 밖에 설명할수 없는 것이었고, 결코 토 달기도 뭣한 무언가 있다.
인생의 또다른 이면, 예상치 못했던 아이러니- 거기서 오는 당혹감은 차라리 자유롭고 멋지다.

공포라기보다는 서늘함을, 슬픔보다는 기묘함을 안겨주는 작가같다.
사실 책 표지가 마음에 들지 않아서 거들떠 보지도 않다가, 평이 좋아서 읽어보게 되었는데 평이 좋을만 하구나. (다만 이런 표지는 좀 안해주었으면...가끔씩 어떤 책을 보고 누군가에게 그 책 재밌다고 추천하면, 표지때문에 다들 안읽으려고 한다.)
개인적으로 <나폴레옹광>, <뻔뻔한 방문자>, <뒤틀린 밤>, <광폭한 사자>같은 단편들은 누구도 흉내낼수 없는 아토다 다카시의 개성이 잘 드러나는 명단편이라는 생각이 들었고, 의외로 코믹한 <사랑은 생각 밖의 것>이라던가, 기묘한 <투명 물고기>같은 단편들도 좋았다.
사실 별로 버릴게 없는 단편집이라는게 다 읽고나서의 감상이다.
오랜만에 괜찮은 일본소설가 한명 만난것 같다. 다른 작품들도 꼭 찾아볼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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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이드 2008-11-05 03:4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이 작품 읽고, <시소게임> 읽었는데, 여전히 좋았어요.(개인차가 있겠지만, 전 이 작품이 더 좋아유-) 근데... 아토다 다카시, ... 어눌한 친구에요? ^^ 저한테는 어눌하다가 한방 보다는 첫줄부터 마지막줄까지 계산된 날카로움으로 다가왔어요.

Apple 2008-11-05 05:27   좋아요 0 | URL
뭐랄까. 첫느낌은 좀 어눌하고 평범한 느낌이 들었어요...^^흐흐...
보는 사람에 따라 다른 거겠죠~~ 다른 책도 읽어볼라고요..^^

물만두 2008-11-05 11:0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이 작가는 정말 모두에게 강추하고 싶은 작가죠^^

Apple 2008-11-06 00:54   좋아요 0 | URL
기대는 많이 하지 않았는데, 재밌더라고요..^^흐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