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폴레옹광 아토다 다카시 총서 2
아토다 다카시 지음, 유은경 옮김 / 행복한책읽기 / 2008년 8월
평점 :
절판


어떤 친구가 있었다. 어눌한 말투로 정확하게 정리되지 않은 채로 주절주절 뭔가 얘기하기 시작하면, 나는 대체 말하고자 하는 요점이 뭔가 하고 어리둥절하기도 했었다. 말이 많은 사람이나 말에 조리가 없는 사람을 그다지 좋아하지 나로써는 분명히 꺼릴만한 친구였다. 그럼에도 내가 그 아이를 좋아했던 이유는 그런 요점도 없어보이는 말들이 이어지는 것 같으면서도, 어느 순간에 정확히 내가 캐치해낼 "한방"이 있었기 때문이다. 어눌해보이지만 사실은 예리하고, 바보같아 보이면서도 사실은 아주 냉철했던 것이다.
처음 만나는 아토다 다카시라는 일본소설가는 꼭 그런 친구같은 느낌이었다.
별 생각 없이, 큰 자극없이, 이렇게 진행되다 저렇게 끝나겠군...하고 생각했던 예상을 뒤집는 한방이 있다. 그걸 반전이라고 부르기에는 너무 거창한 것 같지만, 확실히 특별나 보이지 않는 일상의 일들이 한순간에 다시 보이는 순간이 이 책속에는 있다.
이 책을 읽으면서, 살면서 얼마나 많은 오해와 착각을 하면서 살았을까 생각해보게 되었는데, 어쩌면 사실은 인생이 그런 것인지도 모르기 때문이다. 남의 마음속에 들어갔다 나오는 능력을 가진 사람은 아무도 없을테니, 누구나 남이 어떤 생각으로 살아가고 있는지 정확히는 알수 없지 않을까.
거기에서 예상치 못했던 인생의 갈림길이 나타나는 것이다.
그런 인생의 아이러니를 이렇게 소설로 읽어가다보니 한순간 한순간이 당혹의 연속인가 싶었다.

나폴레옹광이 되어 인생 전체를 나폴레옹 관련 물품 수집을 하면서 살아가는 노인이 있다. 그리고 그를 알게된 불어선생님이 있고, 그 불어 선생님에게 어떤 남자가 찾아와 자기의 전생이 나폴레옹이 아니었을까 싶다고 말한다. 나폴레옹에 관련된 것이라면 무엇이든 사랑하는 사람과 자신의 전생이 나폴레옹이라고 믿고 있는 남자를 대면시키게 되면 어떻게 될까?
표제작 <나폴레옹광>은 이렇게 시작된다. 그저 그렇게 읽어가다가 뒷통수를 한대 후려맞는 듯한 느낌이 들었다. 이 강렬하고 기묘한 이야기를 필두로 이런 식의 이야기가 계속 이어진다.
결코 유쾌하다고는 할수 없는 블랙유머가 간간히 흩뿌려지고, 별로 특별날 것 없는 듯한 이야기가 이어지다가, 한순간에 정신 바짝 차리게 된다.
흔하디 흔한 "반전"이라고 부르기에는 아쉽고, 하나하나 이야기를 작가가 계획대로 이어져나가다가 그 결말이 이상한 방향으로 비틀어지게 되는데, 그 뒤틀린 상황이 논리적이라기보다는 정말 기기묘묘하기 때문에 이것이 아토다 다카시의 스타일이라고 수긍할 수 밖에 없다.
간혹 반전이 그 책의 아이덴티티가 되어버리는 책들이 있곤 한데, 비록 좀 치사한 수를 쓰더라도, 그 반전들에 속아줌을 독자는 즐겁게 여기게 된다. 그러나 아토다 다카시의 예상치못한 결말들은 치사하다기보다는 정말 "의외다"라고 밖에 설명할수 없는 것이었고, 결코 토 달기도 뭣한 무언가 있다.
인생의 또다른 이면, 예상치 못했던 아이러니- 거기서 오는 당혹감은 차라리 자유롭고 멋지다.

공포라기보다는 서늘함을, 슬픔보다는 기묘함을 안겨주는 작가같다.
사실 책 표지가 마음에 들지 않아서 거들떠 보지도 않다가, 평이 좋아서 읽어보게 되었는데 평이 좋을만 하구나. (다만 이런 표지는 좀 안해주었으면...가끔씩 어떤 책을 보고 누군가에게 그 책 재밌다고 추천하면, 표지때문에 다들 안읽으려고 한다.)
개인적으로 <나폴레옹광>, <뻔뻔한 방문자>, <뒤틀린 밤>, <광폭한 사자>같은 단편들은 누구도 흉내낼수 없는 아토다 다카시의 개성이 잘 드러나는 명단편이라는 생각이 들었고, 의외로 코믹한 <사랑은 생각 밖의 것>이라던가, 기묘한 <투명 물고기>같은 단편들도 좋았다.
사실 별로 버릴게 없는 단편집이라는게 다 읽고나서의 감상이다.
오랜만에 괜찮은 일본소설가 한명 만난것 같다. 다른 작품들도 꼭 찾아볼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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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이드 2008-11-05 03:4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이 작품 읽고, <시소게임> 읽었는데, 여전히 좋았어요.(개인차가 있겠지만, 전 이 작품이 더 좋아유-) 근데... 아토다 다카시, ... 어눌한 친구에요? ^^ 저한테는 어눌하다가 한방 보다는 첫줄부터 마지막줄까지 계산된 날카로움으로 다가왔어요.

Apple 2008-11-05 05:27   좋아요 0 | URL
뭐랄까. 첫느낌은 좀 어눌하고 평범한 느낌이 들었어요...^^흐흐...
보는 사람에 따라 다른 거겠죠~~ 다른 책도 읽어볼라고요..^^

물만두 2008-11-05 11:0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이 작가는 정말 모두에게 강추하고 싶은 작가죠^^

Apple 2008-11-06 00:54   좋아요 0 | URL
기대는 많이 하지 않았는데, 재밌더라고요..^^흐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