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갑자기 야근체제로 돌아선 사무실 일을 소화해 내면서 불현듯 떠오른 생각 하나...
지금까지 난 어떤 일들로 돈을 벌었나...였다.
물론 지금 하고 있는 일이 주종목으로 가장 오랜기간 내 밥벌이였지만 고등학교라는 틀을 벗어나고 부터 가지가지 여러가지 방법으로 돈을 벌었던 기억이 난다.
대학생때는 방학을 이용해 아는 양반 연줄통해 L모월드에서 사무실과 현장일을 번갈아 봤던 것과(훗날 이일을 경험삼아 직원들만의 동선을 통해 한두번 돈안내고 몰래 들어간 적이 있었다.) 동작구의 모 고등학교 공사현장에서 흔히 말하는 `노가다'라는 것도 해봤었고 서울역에 있는 쇼핑센터에서 모 프로야구단 팬클럽 모집하는 야바위도 해봤었다. 과외랍시고 중학생 몇명을 가르치다가 한번 가르치고 더 이상 가르쳤다가 과외수업 도중 살인사건 발생이라는 기사가 나갈 것 같아서 그만 둔 적도 있었고....(중학생 중에는 상상을 초월하는 생양아치가 실제로 존재한다.)
가장 기억에 남는 돈벌이는 IMF 터지고 잠깐 소강상태에 있었을 때 반년정도 했던 일이였다. 국립도서관(서초동)에서 고서적 디지털 작업화라는 뭔가 있어보이는 일이였었다. 말이 좋아 디지털 작업화지..서고 안에 묵은 먼지 잔뜩 쌓여 있는 세로쓰기 한자만 가득한 옛날 책을 스캐너를 밀어버리는 일이였었다. 처음엔 버벅거리고 속도도 무지하게 느렸던 기억이 난다. 적응력이 생긴 건지 일주일 하니까 거의 복사기수준으로 스캔을 뜨게 되었는데, 문제가 발생하기 시작하였다.
특별히 공간을 만들고 위의 작업을 했던 것이 아니라 서고 구석탱이에서 일을 하다 보니 기관지가 엄청 나빠지기 시작했다는 것. 하긴 몇십년이 묵었을지도 모를 옛날책들의 페이지 사이사이에 숨겨져 있던 먼지들을 한장 한장 들춰내면서 뒤집고 솎아냈으니 기관지가 나뻐지는 건 당연한 수순이였을 것이다. 거기다가 서고 이곳저곳을 돌아다니면서 오늘 하루 작업할 책을 수레에 실어 오고 실어 가고..이렇게 반복적인 일상을 한 반년 정도를 한 것이였다.
그런데 문제가 생겨버린 것이다. 이번 사업을 주관하는 업체.그러니까 내가 열심히 먼지 먹으면서 하루에 열몇권의 책을 스캔 뜨는 일을 하면 하루 일당을 계산해주는 업체가 그 일당을 안주기 시작했다는 것이다. 4달정도 잘 나오던 일당이 갑자기 5달째부터 안나오기 시작했다는 것......
언제나 그렇듯이 나온다 나온다. 말만 번지르르 하게 하더니만 결국에는 전화도 안받기 시작했다는 것이다. 결국 우리팀 4명은 서고 구석에 안치된 장비를 들고 나와 버렸다.
들고 나온지 10분 지나자마자 핸드폰은 울리고 그렇게 연락이 안되던 인간이 전화통을 통해 하는 소리는 육두문자가 걸쭉하게 혼합이 된 협박이였다. 뭐...한마디 대꾸도 않하고 전화를 딱 끊어버리니까 또다시 전화 울렸다. 이번엔 자기네들 장비 원위치 시키지 않으면 구속시키겠다고 떠든다. 또..심드렁하게 딱 끊었더니 3번째 전화에서야 내일 오전 중에 입금 시켜줄테니까 제발 장비 원위치 시켜달라고 통사정을 하더라는.....빙고~! ( 칼자루를 잡았다고 생각하는 순간 개무시로 일관하는게 협상의 법칙이라고 누군가가 그랬다. 그리고 그 당시 그 장비는 엄청난 고가였었다.)
우여곡절 끝에 6개월 그일을 하고 바로 나는 원래의 위치로 돌아갔다.
내가 태어나서 처음으로 책이라는 물건이 가장 많은 장소에서의 일이였고, 아울러 책이라는 물건이 참으로 지겹다 라고 느껴졌던 처음이자 마지막 6개월이였다는...
뱀꼬리: 아마 서초동 도서관 고서적중에는 못해도 30%는 내지문이 찍혀있을 것......아니야 하루에 열몇권씩 여섯달을 했으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