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을산님께

 가을산님이 ‘당연하지 않은가!’ 댓글을 써 주신 것에 감사드리며, 가을산님의 글을 보고 갑자기 떠오르는 몇가지 장면과 단어가 있었습니다.


 우선 이단異端. 이단은 다를 이에 끝 단자로 주로 종교에서 부정적으로 사용되지만 꼭 나쁜 뜻이 아니라도 그 단어가 주는 어감이 너무 의미가 재미있습니다. 저는 이단이라는 단어를 설명할 때 이렇게 합니다. 숲에 나무가 있고 나무가 우거진 숲이라 이 나무, 저 나무의 파란 잎사귀가 뒤섞여 있습니다. 한 잎사귀가 바로 옆에 있는 잎사귀를 보고 가까이 있으니 같은 나무에서 나온 잎사귀인 것으로 생각했는데, 나뭇가지를 쫓아 가보니 옆 나무에서 나온 잎사귀였습니다. 오히려 저 멀리 있던 잎사귀가 같은 나뭇가지에서 나온 잎사귀였습니다.


 가을산님 또 다른 댓글에서 “상황을 보는 출발은 같은 것인데, 결론의 차이는.... 아마 우리의 ‘선택’의 영역 아닐까 합니다.”라고 글을 남기셨습니다. 어쩌면 출발도 같고, 결론도 같을 수 있습니다. 그리고 어쩌면 방법이 같을 수 있습니다. 그러나 생각은 다를 수 있습니다. 예를 들면 민주노동당과 한나라당이 행정수도 이전에 같이 반대하지만 생각은 다른 것과 비슷할 수 있습니다. 아마 가을산님과 저의 차이는 <도덕의 정치>에서 이야기했던 보수와 진보의 차이라고 생각합니다. 가을산님은 진보, 저는 보수. 이 책을 안 읽으신 분의 오해를 피하기 위해 말을 바꾸면 어머니의 원리에 무게를 둔 가을산님과 아버지 원리에 무게를 둔 저 마립간.


 말을 꺼낸 기회에 저의 정치 성향을 돌아보면 보수에 더 가까울지 모르겠습니다. 비록 녹색당을 지지하더라도. 학생 때는 온건 좌파라는 이야기도 들었는데. 올해 있었던 총선 때에 알라디너 소개해 주신 인터넷 어느 사이트에서 자신의 정책이 어느 정당과 가까운지를 평가해 주었는데, 저의 경우는 어떤 정책 사항은 민주 노동당이 일등으로 나왔습니다. 제 스스로가 놀랐습니다. 저에게 이런 진보적인 면이 있다니. 다른 정책 사항에 관해서는 자유민주연합이 일등으로 나왔습니다. 당시에 당을 이끌던 분이 너무 기회주의적이라고 생각하여 싫었고 그 분을 정치인으로도 그 당을 정당으로 생각지도 않았는데. 그리고 더 재미있는 것은 나머지 분야에도 일등인 점수를 보인 당이 다 다르고, 총점으로 보니 네 당이 높이 거의 같고 민주 노동당이 매우 낮았습니다. 친구에게 이 이야기를 하니 깔깔 웃으면서 민주 노동당은 '오직 자기 당만이 진보이고, 열린 우리당과 새천년 민주당이 어떻게 진보냐'하고 주장했다고 이야기해 주었습니다. 저는 정책 사안 별로 차이가 큰 것 같습니다.


 저는 사회과학에 관한 책을 거의 읽지 못했습니다. 주로 자연과학의 책을 읽었지만 대학에서 전공과목의 깊이가 깊어지면, 과학은 교양의 수준을 벗어나지 못했습니다. 그리고 주위에 있는 인문 서적에 눈길을 돌렸습니다. 그런데 순수한 저의 직관에 의해 과학 학설이 사회과학에 그대로 적용되는 것으로 보였습니다. 그 몇 가지 과학 학설은 엔트로피, 아인슈타인의 ‘상대성 원리Relativity theory’, 하이젠베르크의 ‘불확실성의 원리Uncertainty principle’, 괴델의 '불완전성의 원리Incompleteness theorems', 수리 철학에서의 상대주의 출현 등이 해당합니다. 한 나라의 흥망성쇠를 보며 엔트로피가 연상되고 <슬픈 열대>라는 책은 문화의 상대주의를 읽으면서 저는 아인슈타인의 상대성 원리가 연상되고, 자유와 평등의 상보성을 보면서 하이젠베르크의 불확실성의 원리가, 유토피아가 없다는 것에서 괴델의 불완전성의 원리가 연상됩니다.


 제가 세상의 불완전을 이야기했을 때 갈대님은 ‘우리가 사는 세상이 완전할 필요도 이유도 없다.’고 하셨습니다. (갈대님 맞죠. 댓글의 정확한 문구를 찾기가 힘드네요.) 저는 완전한 세상을 원하지만 이유도 있다고 생각하지만 현실을 그렇지 않다고 생각합니다. 상보성을 염두하고 제시한 세상을 사는 법에 대해서는 sweatmagic님이 답변을 주셨는데 ‘세상을 살아가는 정답은.... 세상 사는데 있지요.’라고 하셨습니다.


 불완전한 목표와 확신이 없는 방법. 그럼에도 불구하고 지향점을 놓고 싶지 않은데, 진리와 도덕입니다. 그러나 제 안에서는 그 대답을 찾을 수가 없었습니다. 대상이 너무 어려워 제가 이해할 수 없거나 너무 깊이가 얕아 충분하지 않거나. 어쩌면 알라딘 서재에서 저한테 적당한 대답을 얻을지 모른다는 기대감으로 머물고 있는지 모르겠습니다. 저에 대한 비평은 제가 바라는 바입니다. 저의 페이퍼 ‘나는 안티 페미니스트다.’라는 글을 읽고 연보라빛 우주님은 저에게 편견이 있다고 이야기하였습니다. 당연히 편견이 있지요. 제가 무엇을 근거로 평균적인 가치관을 가졌다고 이야기할 수 있겠습니까. 정확히 평균에 있다는 것이 무슨 의미가 있겠습니까? 평균에서 1 만큼의 표준편차standard deviation(SD)를 벗어나는 것이 2 SD 만큼 벗어난 것 보다 낫다고 이야기 할 수 도 없지요.


 저의 서재는 재미가 별로 없어 일일 방문객이 10명 정도 (이번 주는 방문객이 꽤 많으시네요.) 그 중 댓글을 남겨주시는 분은 그 중에서도 일부분입니다. 제 글을 읽고 반대 의견도 많을 것 같은데.... 가을산님은 소신있는 의견을 남겨 주셨고 저는 너무 감사하고 있습니다.


 처음에 이야기 했듯이 ‘아이들이 너무 빨리 죽어요.’의 댓글을 읽고 떠오른 장면이 있습니다. 하나는 소호강호에서 일형산파 유정풍과 마교장로 곡양의 우정입니다. (가을산님이 정파, 나는 사파?) 무협에서 나오는 정파와 사파의 도저히 우정을 나눌 수 없었던 두 사람이 우정을 나눈 것입니다. 두 번째 장면은 퇴계와 고봉이 편지를 주고 받은 것입니다. 주자학내에서 사상적 조류를 달리 했던 두 사람은 나이와 직책을 뛰어 넘는 교류였습니다. 사실 이 비유는 글을 쓰면서도 많이 쑥스럽네요. 학문의 깊이가 너무 다르므로. 친분관계를 이야기하고자 한 것입니다. 가을산님이 저의 이야기에 동의하시는지 모르겠지만. (가을산님은 퇴계, 저는 고봉?) 지나가는 이야기로 <퇴계와 고봉, 편지를 쓰다> 참 좋은 책이죠. 읽으면서 헷갈리고, 읽고나서 내용을 금방 잊어버렸지만. 또 다른 장면은 매트릭스 1편에 나왔던 네오와 모피어스의 무술대결이 생각납니다. 그 때 느부갓네살호의 승무원들은 네오를 응원했지만 알라딘에서는 가을산님이 응원을 받을 듯 합니다. (가을산님은 모피어스, 저는 네오?)


 이 글은 가을산님의 댓글에 대한 답글에 앞서 보내는 편지입니다. 그 글은 천천히 시간을 두고 따로 페이퍼를 쓰겠습니다. 가을산님 놀라운 직관에 대해 다시 한번 놀랐습니다. 환원주의자라... 저의 사고는 종합적이기 보다는 분석적입니다. 즉 환원주의적 가치관이 많이 바탕에 있습니다. 그러나 이러한 사고는 카오스와 창발성이라는 과학의 발견 후 종합적 사고와 균형을 이룰 때 그 의미가 있습니다. 제 글에 가능하면 환원적 사고 흐름을 배제하려 했건만, 가을산님에게 들켜 버렸네요.


창 밖에서 불어오는 가을바람이 참 좋습니다. 좋은 하루 되십시오.


2004.  8. 27.

마립간 올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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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을산 2004-08-27 23:2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퍼가겠습니다. 감사합니다.

가을산 2004-08-28 00:3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실은 마립간님 같은 사고를 하시는 분들이 더 많을거라고 생각합니다.
그런데 그런 사고를 하더라도 그것을 소신있게 글이나 말로 표현하지 않고 지내는 사람들이 대부분일 겁니다.

속으로야 어떻든, 의식적이든 무의식적이든, 겉으로는 '진보적인' 가면을 쓴 사람이 더 많은 현실 속에서, 특히 인터넷 상에서는 '보수'라 하는 사람보다는 '진보'라 자처하는 사람들의 소리가 더 높기 때문에 마립간님의 글은 더 가치가 있는 것 같습니다.

마립간님의 편지대로, 서로 다름에 있어 서로 생각거리를 던져주는 지인도 무척 소중하다는 생각이 듭니다.
그리고.... '환원적 사고와 종합적 사고의 균형...' 전적으로 동의합니다.

마냐 2004-08-28 03:1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두분의 댓글과 편지...정말 '즐감'했고, 꼭꼭 씹고 있슴다.

마태우스 2004-08-29 13:0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고수끼리의 서신왕래군요^^ 잘 읽었습니다. 두번째 편지도 기대할께요.
 
아이들이 너무 빨리 죽어요
폴 방키뭉 지음, 김미선 옮김, 남희섭 감수 / 서해문집 / 2003년 12월
평점 :
절판


 어떤 분은 ‘아이들이 너무 빨리 죽어요.’라는 제목을 보고 ‘헉 저렇게 강렬한 제목은’이라고 이야기하셨지만 저는 강렬한 인상을 ‘이윤이냐 생명이냐?’라는 문구에서 받았습니다. 너무도 당연하지 않은가! (당연보다 더 당연을 뜻하는 용어가 있었으면 그 단어를 사용하고 싶다.) 그것은 이윤입니다.

 돈을 벌고 싶다. 무슨 돈 벌이가 없을까? 아픈 사람들이 항상 있으니 약을 만들어 팔면 되겠다. 이왕이면 효과가 좋고 부작용이 적으면 많이 팔리겠지. 그리고 좋은 약이라면 약값이 비싸도 환자들은 기꺼이 돈을 낼 것이다. 아니야, 너무 비싸면 약이 덜 팔리지도 몰라. 조금 가격을 낮추어 경제적으로 넉넉하지 못한 환자도 구입할 만큼 조정을 한다면 더 많은 이윤을 남기게 될 꺼야.


 이것이 자연스러운 생각의 흐름이 아닐까요. 같은 돈벌이라도 환자라는 즉 아픈 사람에게 도움이 된다면 부수적으로 더 좋은 일이지만, 좋은 의미와 돈벌이의 우선 순서를 바꾸지는 않을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이타적 유전자>에 나와 있는 글을 인용합니다. 1768년 루이앙투안 드 부갱빌Louis-Antoine de Bougainville은 타이티 섬을 발견했다. - 중략 - 섬을 에덴 동산에 비유했다. - 중략 - 섬 주민들은 풍요롭고 안락하며 불화 없는 생활에 대한 보고들을 가지고 돌아왔다. - 중략 - 반동은 예고된 것이었다. 타히티 섬 생활의 어두운 측면이 모습을 드러냈다. 사람을 제물로 받치는 관습, 사제의 손을 빌린 정기적인 영아살해, 살인적인 분쟁의 악순환, - 후략

 같은 에피소드가 남양군도에서 반복되었다. 1925년 스물세 살의 마거릿 미드는 사모아를 방문했는데 - 중략 - 파라다이스에 관한 이야기를 갖고 돌아왔다. - 중략 - 미드의 신기루도 좀더 정밀한 조사를 통해 덧없이 증발해 버렸다.


 사람들은 꿈을 꿉니다. 각박한 도시, 문명, 불의不義, 비도덕적인 것들... 이 모든 것을 떠나고 싶다. 마음씨 좋은 사람들이 모여 평화롭게 사는 작은 마을이 있는 어느 섬. 사람이 루소Jean Jacques Rousseau의 '고상한 야만인'이나 맹자의 성선설의 해당했으면 좋겠습니다. 그러나 사실은 그렇지 않습니다. 인간은 너무나 이기적입니다. 그리고 제약회사와 의료계도. 저는 법조계도 종교계도 마찬가지라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지향점까지 버리자고 하는 것은 아닙니다. 사람으로서 추구해야 하는 바는 분명하게 있으며, 이 책과 연관된 것을 이야기하자면 이윤보다 생명이 중요합니다. 그리고 그런 생각을 갖고 있는 분들 때문에 약소국이나 가난한 사람들이 그나마 삶을 지행하고 있습니다. 동정에 호소하는 것이 전부일까요. 저는 그것이 전부라고 생각합니다. 그리고 동정에 호소하기 위해서는 사실을 정확하게 보여주는 자료들이 필요합니다. 이 책은 저에게 막연하게 알고 있던 것들에 대해 구체적인 정보를 주었습니다.


 마지막으로 프레토리아 소송에 참여한 분들을 포함하여 이기적인 인간 본성에 대해 항거하여 자신을 희생하는 분들에게 경의를 표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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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립간 2004-08-26 14:1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이 책을 선물해 주신 가을산님에게 다시 한번 감사드립니다. 막상 알고 있는 사실이지만 '이윤이냐 생명이냐'라는 문구는 저에게 너무 강렬했습니다.

가을산 2004-08-26 14:5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 네... 강렬한 리뷰였습니다! ^^
저의 멘트는 제가 정신좀 차린 후에....

가을산 2004-08-27 01:2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자.... 이제 발등의 불을 끄고.....   저도 화끈하게......  ^^ 
미리 알림. 제가 이런 글을 쓰는 것은 어느정도 '이해가 될만한 분'이라는 전제에서 씁니다. 
재미있게 토론해 보자구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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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립간님, 대단한 환원주의자시군요! 

물론 인간은 이기적입니다. 물론 인간은 이윤을, 자기의 이익을 추구합니다. 당연하지요.

저도 이기적입니다.  저도 돈 많이 벌면 좋습니다. 저도 머리 아프지 않고 살면 좋습니다.
내가 하고 싶은것 하고, 내가 생각하고 싶은 것만 생각했으면 좋겠습니다. 

약, 만들어서 많이 팔면 좋죠. '너무 비싸면 약이 덜 팔릴지도 몰라서 조금 가격을 낮추어' 팔아도 좋죠. 맞아요. 그게 '자연스러운 인간으로서의 생각'입니다.

다국적 제약기업, 그정도의 양심조차 없습니다. 다국적 기업, '자연스러운 인간으로서의 생각'을 하지 않습니다. 철저하게 기계적으로 이윤을 추구하고는 그것을 숨기기 위해 자신의 이미지에 분칠을 할 뿐입니다.

'자연스러운 인간으로서의 생각'이 있다면, 현재의 우월적인 위치나 이익에 빠지지 않고, 앞날을 대비해서 염려할 것입니다.
자연스러운 인간으로서의 생각이 있다면 오늘은 내가 착취자의 입장에 있더라도, 언젠가 내가, 나의 후손이 약자의 위치에 놓일 것을 예상할 수 있습니다.
자연스러운 인간으로서의 생각이 있다면, 오늘날처럼 지구의 자연환경을 오염시키거나 자원을 고갈시키는 것이 나와 내 자손에게 얼마나 위험한 일인지 깨달을 수 있을겁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런 일이 계속 진행되고 있는 이유는, 현재의 질서가 '인간으로서의 생각'에 바탕을 둔 것이 아니라 '자본의 논리'에서 헤어나지 못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정말 '인간적인 사고'를 가진 기업가라면, 선진국 환자의 구매력을 기준으로 매긴 약가를 전 세계적으로 고집하지 못할겁니다. 인간적인 생각이 있다면, 일년 수입이 240불 이상인 중국인 백혈병 환자에게 하루에 200불 가량의 약을 매일 먹도록 강요하지는 못할겁니다.
(노바티스는 세계의 일부 선택된 백혈병 환자에게 '글리벡' 무상 공급 프로그램을 시행하고 있습니다. 중국의 경우, 이 프로그램의 혜택을 받기 위해서는 일년 수입이 하위 10% 이내 - 년 240불 - 에 들고, 혈청학적 검사 및 chromosomal study가 적응증에 해당하고, 인터페론 치료를 시도해서 효과가 없어야만 합니다. 그런데, 생각해 보세요. 일년 수입이 240불 미만인 환자가, 과연 인터페론 치료는 고사하고, 의사 얼굴 보는 것이, chrosomal study를 하는 것이, 그리고 인터넷을 할 줄 알고, 영어를 읽을 줄 알아서 이런 프로그램을 신청할 수 있다는 것이, 가능하다고 생각합니까? 완전히 빛좋은 개살구죠. ) 

돈이 없어서 치료를 받지 못하고 약을 먹지 못하는 사람에게서는 그저 '약이 덜 팔리는' 문제가 아니라 '죽고 사는' 문제가 걸려 있습니다.

이건 단순히 '동정'이나 '이타적'인 생각이 아니라, 언제라도 내가, 나의 자녀가, 나의 가족이 같은 상황에 처할 수 있기 때문에 미리 대비하고 염려하는, 지극히 이기적인 계산의 결과입니다.
이게 더 자연스러운 생각의 흐름 아닐까요? 

저는 사실, 결혼 한 것에 대해서 구속을 많이 느낍니다. 결혼하지 않았으면 이루었을 것들에 대해 동경도 많이 있습니다. 
그런데, 결혼해서 제가 바람직하게 변했다는 것들 중 몇가지가, 조금은 갈등과 고통을 이기고 기다리는 참을성이 생길 수 있었다는 것, 그리고 겸손해질 수 있었다는 것입니다.

저도 이기적 유전자니, 사회생물학 논쟁이니 하는 것에 대해 압니다.
우리는 이기적이라는 것 무척 공감합니다. 
저도 이기적이기 때문에, 머리 굴리는겁니다. 
저도 가족이 없었다면 '그게 그런거지' 냉정하게 생각하고, 나 하나쯤이야 어찌되어도 상관 없습니다. 내 유전자 풀쯤이야 있어도 그만, 없어도 그만입니다. 물론 진짜 위험이 닥쳤을 때에는 유전자적 본능으로 살아남기 위해 몸부림 치겠지만 말입니다.


그런데 제게는 자식이 생겼고 - 부처는 '라훌라(장애물)'이라고 했지요 - 이로서 이 세상과의 끈이 더 강하게 묶이게 되었습니다 .
자식과 미래의 세대를 걱정하는 것이 '이기적 유전자'의 작동 원리이지요.

저는 이기적인 머리 굴리고 있습니다. 재벌이 될 가망도 없고, 자자손손 돈걱정 없이 만들어줄 능력도 없기 때문에 시스템을 바꾸려는겁니다. 
돈 벌려고 아귀다툼 하기 싫고, 내 자녀들이 아귀다툼 하는 것이 싫기 때문에 무언가 안전망을 만들고 싶은겁니다.

동정? 그런건 집어치우세요.

다 내 맘 편하자고 하는겁니다.  다 나와 내 자식들 편하자고 하는거에요.
간단히 머리를 굴려 80:20 사회에서 우리가 어느쪽에 속할 확률이 높은지 생각해보세요.
내가, 아니면 나의 자식들이, 가족들이 20에 들기보다는 80에 속할 가능성이 큽니다.
20안에 들기 위해 피터지게 싸우는 것보다는 80도 맘 편하게 살 수 있게 하는 것이 더 얻을 게 많은 싸움이라는겁니다.

마립간님은 자신 있으신가요? 저는 자신이 없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시스템이 필요하다고 생각합니다.

혹시나 해서 사족.
제 계급적 출신 때문에 80 운운하는 것 아닙니다. 
저는 몰라도, 제 부모님.... 상위 1프로 이내에 드십니다.
저도 현재 상태로는 아마 상위 20-30 내에 들겠지요.
당대에는 이래도 미래는 알 수 없는겁니다.  
유전자는 생각보다 영리합니다. 더 계산을 잘할 수 있어요.


2004-08-27 01:23   URL
비밀 댓글입니다.

마립간 2004-08-27 07:4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제가 가을산님을 좋아하는 것 아시죠. 제가 잘못된 생각이 있다면 바로 잡는 좋은 기회가 되겠지요. 가을산님의 '제가 정신을 차린 후에'라는 댓글을 보니 제 글이 조금은 충격적이었나 봅니다. 제가 두번째로 인터넷이라는 곳에 글을 올리고 제목도 과격했던 '나는 안티 페미니스트다.'를 올릴 때 많은 용기가 필요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책을 좋하하는 사람들과의 대화를 통해 저의 생각의 흡집을 메울 수 있다면 더할 나위 없는 기쁨이죠.
우선적으로 가을산님이 질문에 답변을 하면 '아니요, 자신 없습니다.' 마립간의 생활 OX 문제로 언뜻 보였지만 저는 하위 10%에 속한다고 생각합니다. 그리고 '시스템'... 다음에 쓸 글의 내용에 해당하는 것입니다. - 저도 생각의 정리를 하고...

가을산 2004-08-27 09:2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마립간님, 저도 마립간님 좋아하는 것 아시죠? ^^ 그래서 맘에 있는대로 쓴 글입니다.
음... 그리고 '정신차린 후에'는.... '다른 밀린 일들을 끝내고 나서'라는 의미였습니다.
상황을 보는 출발은 같은 것 같은데, 결론의 차이는.... 아마 우리의 '선택'의 영역 아닐까 합니다.

조선인 2004-08-27 14:5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신문방송학과를 나와 마케팅본부에 적을 두고 있는 사람으로서 잠깐 껴들어 보겠습니다. 가격을 결정함에 있어 "너무 비싸면 약이 덜 팔리지도 몰라. 조금 가격을 낮추어 경제적으로 넉넉하지 못한 환자도 구입할 만큼 조정을 한다면 더 많은 이윤을 남기게 될 꺼야."라고 판단하지 않습니다.
아예 제품기획단계에서 부유층에 팔 비싼 약과 누구에게나 팔 값싼 약을 결정합니다. 전자의 경우 가격을 높이면 높일수록 좋습니다. 구매자에게 특권의식을 줄 수 있기 때문이죠. 후자의 경우 가격을 적정수준으로 조정하는 대신, 누구나 꼭 먹어야 하는 만병통치약으로 여기도록 광고전략을 짜게 됩니다. 즉 누군가가 가지고 있을 '인간'의 양심에 호소한다는 건 거의 불가능한 일이죠.
저로서는 인간 본성이 이기적인지, 이타적인지, 혹은 유전자가 이기적인지 이타적인지 판단을 내릴 수 없지만, 인간을 논의함에 있어 개체 단위로 판단하는 것보다 개미처럼 집단 단위로 파악하는 것이 낫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뭐, 본성에 의해 혹은 유전자에 의해 사회가 형성 존속된다고 부연설명한다면 할 말이 없지만요 ^^;;

마립간 2004-08-27 15:5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이타적 유전자>, <이기적 유전자>, <게놈>은 유전학책이 아니며 인간이 유전자에 의해 조정받는다라는 보다는 유전자의 입장에서 본 사회학 정도의 의미가 있습니다. 그리고 개미에 대해서 하고 싶은 말이 있는데...

조선인 2004-08-27 17:3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개미 얘기 듣고 싶습니다!!!
 
 전출처 : 마태우스님의 "무슨 과를 갈까?"

인턴, 레지던트를 우리말로 바꾸면, 글쎄요.
저는 인턴을 견습생으로 레지턴트를 실습생이 적당하고 생각합니다.
그런데, 재미있는 것은 우리나라 환자의 생각입니다. 어떤 환자의 말 '당신 의사야, 레지던트야' (실화임, 이 환자에게 있어서 의사는 전문의를 뜻한다고 생각한다.) 의사가 지나서 레지던트가 되는 것인데, 우리나라는 레지던트 지나서 의사라고 생각합니다. 또한 레지던트에게 진료받기 싫어하는데, 모든 의사에게 처음이라는 것이 있습니다. 레지던트에게 진료받기 싫어하는 심리 밑바탕에는 '나는 실습의 대상이 되기 싫다. 다른 환자를 대상으로 실습이 끝나면 실력을 갖춘 그 다음에 나에게 진료해라.' 만약 모든 환자에게 실습을 금하는 법이 제정된다고 합시다. 그러면 우리의 자녀들은 누가 진료하죠.
참조) 나는 고백한다 현대의학을 (아둘 가완디 지음/소소 출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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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4-08-26 12:51   URL
비밀 댓글입니다.

마냐 2004-08-26 15:3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엇, 의사 지나서 레지던트입니까? 음...제 무식이 이 정도인지 저도 몰랐습니다. -.-;;;
암튼
마립간님..왔어요, 왔어...책갈피가요..호호호.
넘 깜찍하고, 예뻐서...책 읽고 싶은 마음이 불타고 있슴다. ㅋㅋㅋ
고맙습니다. 넙죽~
 
 전출처 : 조선인님의 "[코멘트]무슨 과를 갈까?"

아버지께서 제가 의사가 된다고 하니 점심시간도 아닌데, 식사하고 다니는 것 보기 안 좋으니 (환자는 아파서 기다리는 데 의사는 배고픈 것 해결하는 것) 그러지 말라고 하셨습니다. 그런데 막상 의사가 되니 식사시간에 맞춰 식사하고 싶어도 그렇지 못하는 것이 병원입니다.
저의 경우를 예를 들면 7시 40분 부터 아침 업무가 시작되는데, 시작전 준비를 위해 7시 까지 출근합니다. 저는 그래서 서둘러 아침을 먹지만 다른 분들 아침식사를 못하는 경우가 많은데, 점심까지 먹지 못하면 하루에 한끼 먹고 살게 됩니다. 점심시간에 점심을 먹지 못하는 이유는 게을러서 안 먹는 것이 아니고 (아침도 안 먹어 배도 고파 제 시간에 먹고 싶지만) 아침하던 일이 점심시간까지 연장되는 경우가 있습니다. (환자 진료 하는 것이 12시 30분에 정학하게 끝내고 또는 중단하고 1시 30분에 다시 시작할 수 있으면 좋겠습니다.) 그렇지 않다는 것은 알고 계시죠.
아침 시작도 마찬가지입니다. 입원 환자의 회진을 진료전에 돌게 되는데, 입원 환자는 회진 시간만 의사를 보는데 얼굴만 보고 도망간다고 합니다. 진료를 봐야하는데, 기회는 이때다 하고 하고 싶은 이야기를 늘어놓게 되면 다른 환자의 회진이 짧아지거나 외래 진료시간이 늦어지게 됩니다.
외래시간예악을 지키지 못하는 것도 같은 이유입니다. 5분 간격으로 예약을 해 놓으니 앞에 환자가 5분 이상 진료가 필요하면 뒤의 환자는 예약시간을 지킬 수 없습니다.
해결방법은 의사 일인당 환자 수를 줄이는 것입니다. 왜 그것이 안 될까요. 그것은 의사가 어는 정도의 수입을 유지하려고 하는 성향을 현 의료 수가 내에서는 해결할 수 없기 때문입니다. 미국의 의사는 오전에 6명 (저는 이것을 사실로 생각하지 않음) 환자를 진료한다는 이야기를 들었습니다. 환자를 최소한 30분 정도 진료하기 위해지요. 물론 미국 의료비는 우리나라 보다비싸고, 10분 진료, 20분 진료, 30분 진료 마다 진료비를 차등하여 지불합니다. (이것은 사실임.)
참조) 마립간 페이퍼 2004년 5월 16일 병원괴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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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4-08-26 08:57   URL
비밀 댓글입니다.
 

* 보수와 진보

 제가 어렸을 때 즉 청소견기에 진보와 보수는 젊은 여성(진보)과 장년 남성(보수)으로 대변되었습니다. 이 이야기를 처음 듣는 순간 저는 ’남성이고 아직은 어리지만 언젠가는 나이를 먹게 될 테니 나는 보수가 되겠구나.’라고 생각했습니다. 하지만 보수라는 것이 현상 유지를 선호한다는 것인데, 그 당시 저희 집은 경제적으로 넉넉한 편이 아니었습니다. 친척 분들 중에 어떤 분은 우리 남매가 실업계 고등학교를 가는 것이 좋겠다고 했지만 부모님이나 우리는 당연히 인문계 고등학교를 갈 것이라는 생각을 할 정도의 경제적 사정이었습니다. 당시 저는 보수가 아닌데... 보수로 분류되는 젊은 여성과 중년 남성이외에 다른 기준이 필요하다고 생각했습니다.


 여러분은 진보와 보수를 무엇을 기준으로 나누시나요. 고향이나 살고 있는 곳 같은 지역, 아니면 지지하는 정당이나 인물? 아니면 고전적으로 성별과 나이?


 저는 사회를 움직이는 큰 동력이 경제력임을 알게 되었고, 모든 사회 현상에 경제의 관점에서 고찰하는 습관이 들었습니다. 경제적인 면을 생각한 중요한 관점은 성장과 분배입니다. 성장의 동력은 처음에는 자연환경에서 주어집니다. 그러나 2차적으로 교역을 통해 성장이 가능한데, 상품 생산에 있어서 우위가 있는 경우도 있지만 (아담 스미스Adam Smith - 절대 우위론) 꼭 그렇지 않아도 교역은 이루어 질 수 있습니다. (리카도David Ricardo - 비교 우위론)


 놀라운 통찰력을 보여주는 비교 우위론에 의한 교역은 쉽게 이야기하면 부자는 좀 더 부자가 되고, 가난한 사람은 좀 덜 가난하게 살게 되는 win-win 효과를 단기간에 가져옵니다. 그러나 이 효과는 빈부에 격차를 벌리는 역할을 하게 됩니다. 부자가 더 부자가 됨으로써 일어나는 현상입니다. 빈부격차를 막는 방법은 부자가 더 부자가 되지 않게 하는 것이며 이는 비교우위론에 의한 교역을 막는 것인데, 이는 가난한 사람은 더 가난하게 될 가능성을 안고 있습니다. 부자가 생김으로 인한 부수 효과로 가난한 사람은 아주 조금의 경제력을 얻음으로 해서 덜 가난하게 됩니다.


 (개인적 생각이고, 혁명과 같은 급변하는 상황은 예외로 전제하고 위와 아래 계층의 뒤 섞임이 교역을 비롯한 사회제도, 법에 의한 것을 이야기하면.) 내가 아는 빈부격차의 해소는 저성장, 즉 상대적 가난을 추구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빈부격차를 줄이기 위한 제도 변경도 사회적 비용이 듭니다. 예를 들면 재벌 개혁이라 불리는 것들. 이런 개혁은 사회적 비용이 들고 경제적 파급 효과는 아래 계층에 더 막대한 영향을 미칩니다. 다시 말을 바꾸면 개혁은 서민에게 경제적 부담을 더욱 지우게 하고 이후 재벌에게 부담을 주고. 그 고비를 넘게 되면 새로운 균형을 갖게 됩니다. 하지만 그 고비는 위 계층의 반발에 의해서도 좌절되지만 아래 계층의 반발 때문에도 좌절됩니다. 제가 하는 진보(내가 아는 범위에서 녹색당을 제외하고)들은 왜 가난해지자고 이야기하지 않을까요?


 보수는 성장을 추구합니다. 그러나 이는 사회적 격차가 벌어지다는 모순을 받아드리는 것입니다.

 진보란 분배를 중요하게 생각합니다. 이것으로 인한 저성장 즉 상대적 가난을 받아들여야 하며 이것은 보다 아래 계층에 보다 큰 고통을 줄 수 있다는 사실을 받아드리는 것입니다.

 개혁은 아래 계층의 사람들이 현재보다 더 어려운 상태를 겪는다는 것을 뜻합니다. 열매는 대가없이 저절로 얻어지는 것이 아닙니다.


cf : 중국이 고구려사를 도둑질해 가는 것에 대해, 라디오에서 한 시민이 과격한 발언을 하는 것을 들었습니다. 하지만 그 말을 한 분에게 묻고 싶습니다. 중국의 역사 도둑질에 의해 외교 단절, 무역 중단 같은 강력한 대응는 중국이 최대 교역국인 우리나라에 경제적 영향이 더욱 클 것입니다. IMF때 보다 더 어렵다는 현재보다 절반, 1/4, 아니면 1/10 정도로 우리나라의 경제력이 무너져도 국민의 한사람으로서 감내할 의지를 갖추었냐고. (현세대가 굶어도 역사를 도둑질 당할 수 없다는 것이 저의 생각이고 많은 우리 국민의 생각이지만, 희생을 감당할 굳은 결심은 어느 정도 되는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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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얀마녀 2004-08-24 20:2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많이 배우고 갑니다.

갈대 2004-08-24 21:0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인간은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서라도 현재 상태에서 조금도 물러서지 않으려고 하는 경향이 있습니다. 자발적으로 지금보다 낮은 경제수준으로 향하려는 사람들은 극소수에 불과합니다. 저성장을 위한 사회적 합의를 이끌어 내기란 불가능에 가깝죠. 자본주의를 꺾기 위해서는 어떤 강압적인 외부 요인이 있어야 할 것 같습니다. 예를 들어 심각하게 생존을 위협하는 환경오염, 부익부 빈익빈 심화에 따른 국민 대다수의 빈곤, 석유 고갈 등이 있겠죠. 이 중에서 석유고갈이 가장 시기적으로도 근접해 있고 세계적으로도 파장이 클 것 같습니다.

마냐 2004-08-24 21:5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갈대님의 전망은 너무나 현실적이고 슬프군요.
과연 성장에 대한 집착을 버릴 수 있을까요. 우리는 언제나 비교적 고성장 국가이긴 합니다만. 그것조차 성에 안찬다고, 다들 '경제적 공포'에 시달리던데...

진/우맘 2004-08-25 01:4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직 어설프게 알아서 잘 설명은 못 하겠지만....우리나라의 보수는, 사실 보수의 허울을 뒤집어 쓴 기득권층에 불과하다는...그 사실이 슬픈거죠, 뭐.TT

마립간 2004-08-25 08:2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보수와 진보의 비교는 정의와 불의의 비교와 전혀 별개의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우리나라의 정치 상황에서는 보수를 추구하는 사람이 정권을 잡았던 것과 독재라는 촉매에 의해 부패하였고 수평적 정권 이양이 되지 않는 상태에서 개선될 여지가 없었지요. 진보도 권력이라는 연못에 탐닉하면, 흐르지 않는 물이 썩듯이 부패하게 될 것입니다.

2004-08-25 14:20   URL
비밀 댓글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