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인권 콘서트를 다녀와서


 우리나라 근세에서 우리민족에게 크게 상처를 준 사건이 세 가지 있었는데,


 첫째는 일제 식민지 지배였고,

 둘째는 한국동란 (6.25 전쟁)이고

 셋째는 군부 독재였습니다.


 첫째 사건에 상처받은 사람은 아무리 시간이 지나도 (아직 밝혀지지 않는 것도 많지만 설령 밝혀졌다고 하더라도) 그 상처를 지울 수가 없고, 그리고 과거사법이 이제야 통과된 것에 만시지탄을 느끼고.


 둘째 사건에 상처받은 사람은 아무리 시간이 지나도 (그리고 50년대부터 80년대 이르기 까지 많은 사건이 밝혀지고 처벌되었어도) 그 상처를 지울 수가 없어 그리고 북한을 용서할 수 없으며 국가보안법 폐지에 동의할 수 없고.


 셋째 사건에 상처받은 사람은 아무리 시간이 지나도 (용공 조작이 밝혀지고 진실이 드러나도) 그 상처를 지울 수가 없으며 본인들에게 상처를 준 국가 보안법은 하루 빨리 폐지되야 하고.


 위 이야기는 가을산님과 숨은 아이님에게 오프라인 만남에서 제가 한 이야기입니다.


 숨은 아이님이 인권 콘서트 티켓을 주셔서 공연을 잘 보았습니다. 다시 한 번 감사드립니다. 그 공연에서 정신과 전문의 정혜신 선생님이 다음과 같이 이야기하셨습니다. (문구는 꼭 맞지 않을지 모르지만 내용이) “이제 그만 해도 되지 않느냐라고 말씀하신 분이 있습니다. 모든 것이 다 밝혀졌잖아요라고 하십니다. 그러나 그럴 수 없습니다. 마음의 상처가 있기 때문입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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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신앙에 대한 두 가지 에피소드를 먼저 소개하겠습니다.


* Canada 인이며 불교신앙을 갖은 친구 H씨가 자녀에게 신앙은 개인적인 것이라며 자신의 종교를 자녀에게 강요하는 듯 하는 것은 좋지 않다고 했습니다. 직장 후배 P1군은 개신교 신자로서 의견을 물었습니다. (저는 자녀를 갖고 있지 않아서 건너뛰고.) 자녀가 개신교의 신앙을 갖고 갖지 않고는 사후 영생에 관한 것이기 때문에 만약 신앙의 갖지 않을 경우를 상정하면 자녀에 대한 연민 때문에 자율성에 맡기기 곤란 한다고 했습니다. 그 이야기를 옆에서 듣고 있던 직장 선배 P2씨 “그럼 왜 나에게 전도를 하지 않았지? 나는 지옥에 가도 불쌍하지 않은가?”


* 직장 후배 K씨와의 대화, K씨는 무교이지만 자라난 배경은 불교 (내용만 간략하게 요약)


K씨 : “형 기독교는 조금 이상해. 마음에 안 들어”

마립간 : “뭐 가?”

K씨 : “신앙 종교라는 것은 개인적 인 일로 본인이 알아서 해야 하는데, 강요를 하잖아. 불교에서는 절에 가든 말든 내버려 두는데, 교회에서는 한번 빠지면 왜 안 나오느냐고 연락을 하고 또 믿지 않겠다는 사람에게 믿으라고 자꾸 그러고.”

마립간 : “나는 내 스스로가 진실한 기독교인인지 아닌지 모르겠지만 전도하는 기독교인들이 이해가 되는데.” “자 보자, 만약 네 아이가 초등학교 6학년 쯤 되어 이야기를 어느 정도 알아들을 수 있는 나이가 되었다고 하자. 그 아이가 폭발물을 가지고 논다고 하면 네가 그냥 나두겠니, 말리겠니? 그 아이가 만약 ‘이제 저도 다 컸어요. 이 폭발물을 터지지 않게 가지고 놀 수 있을 정도로 컸어요.’라고 말한다면 너는 어떻게 하겠니.” “또 이 아이가 조금 더 커서 청소년이 되었는데, 불량학생과 어울리고 있다. 너는 너의 자녀를 강제로 만류하겠니 아니면 내버려 두겠니.”

K씨 : “당연히 말리지.”

마립간 : “네가 네 자녀에게 어떤 강요를 하는 것은 그것이 옳다고 생각하고 그리고 잘못되었을 때 너의 자녀가 불쌍하게 되는 못 참아 바른 길로 인도하는 강요가 있듯이, 기독교인들은 신앙의 전파가 옳다고 믿고 그리고 믿지 않는 사람에 대한 연민 때문이야.” “옳은 것과 특히 기독교가 옳은 것이냐에 대한 논란은 있겠지만 그것은 아이 입장에서 부모의 강요하는 내용도 마찬가지인걸.”


논제 6) 한 사람이 다른 사람에게 옳다고 느끼고 생각하는 것을 강요하는 것은 정당한 것인가? 그렇지 않은가? 그 중간이라면 어느 수준까지 강요하는 것이 옳은 것인가? 만약 이 두 사람이 부모와 자녀의 관계라면 어떻게 달라지는가?


* chika님이 저의 신앙에 대해 물어 오셨는데, 천지창조, 삼위일체 등의 교리를 받아들이는 것은 어렵지 않습니다. 저는 왜 주위에 안티크리스찬이 있나 생각을 해 보았고, 그 이유가 전도에 있다고 생각했습니다. (비리, 부정 부패은 다른 종교과 비슷하다고 생각합니다.) 비신자로서는 귀찮죠. 그리고 어느 정도의 교회나 신자의 강요도 있고요.

 저의 개인적인 성향, 즉 남이 저에게 뭐하고 하는 것도 싫고 내가 남에게도 싫은 소리 하기가 싫다는 것이 종교관에도 영향을 미친 듯합니다. 따라서 주위 사람에게 교회에 나가겠냐고 친하지 않은 사람은 두 번 정도, 친한 사람은 세 번 정도 이야기해서 싫다고 하면 다시 이야기 하지 않습니다. 또한 일요일에 교회에 가는 것도 가끔 빠지는 경우가 있는데, 예배는 하나님과의 인격적 만남이기 때문에 스스로 생각해서 예배드릴 준비가 되지 않았다고 생각되면 참여하지 않아도 되고, 또는 참여하지 말아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대광고등학교의 강의석군을 예로 들면 설명하면 평준화가 폐지되어 종교적 목표를 갖은 학교는 그 종교를 인정하는 학생만 선발할 수 있는 기회를 주어야 되며, 선발된 학생이 모두 그에 맞는 종교를 갖고 있다고 해도 예배는 개인적으로 하나님과 교제하는 시간이기 때문에 강제적 예배 참여는 반대하는 생각을 갖고 있습니다. 뭐 나쁘게 이야기하면 저는 옆에 있는 사람이 지옥을 가던, 말던 신경 안 쓰는 개인주의적이고 감정이 메마른 사람이죠.


 마태복음 28: 19-20 그러므로 너희는 가서 모든 족속으로 제자를 삼아 아버지와 아들과 성령의 이름으로 세례를 주고 내가 너희에게 분부한 모든 것을 가르쳐 지키게 하라. 볼찌어다. 내가 세상 끝날까지 너희와 항상 함께 있으리라 하시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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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립간 2005-12-12 15:3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개인적으로 자녀의 자율성을 놀라울 정도로 부여한 분 가**님과 같은 분을 다른 곳에서 본 적이 없습니다. 또한 알라디너 ###님은 적극적으로 자신의 아이를 어떤 현장에 적극적으로 참여시키는데 그것이 옳은 것인가 잘 모르겠습니다.

chika 2005-12-12 13:5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전교'라는 부분에 대해 많이 생각해보지 않았고, 실제로 제 친구들 역시 자기가 먼저 성당 다녀보겠다고 말하지 않는 한, 성당 다녀보라는 얘길 꺼내본적이 없는 저로서는... 음...어려운 문제라고 봅니다. ^^;;
이론적인 말밖에 안되긴 하겠지만 '전교'라는 것은 자신의 삶으로써 신앙을 증거하는 것이라고 생각하는데요. 그건 자녀에게도 마찬가지라고 생각합니다. 그리고 '신앙'이라는 것을 단지 전례에 참여하는지 안하는지의 여부로 판단하는 것도 좀 문제는 있는거 같고... (으으~ 항상 고민하던 부분들이지만 저 역시 아직까지도 혼란스러운 점이 많은지라 ;;;)

stella.K 2005-12-12 15:5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이것에 대한 책 추천 꼭 오늘 달아야 하나요? 내일이면 무횬가요? 제가 좀 있으면 나가봐야 하거든요. 들어와도 밤 늦게 들어 올거고.
뭐 아직 추천해 드릴만한 책은 딱히 떠오르는 건 없지만, 좀 생각해 볼만한 거네요.^^

마립간 2005-12-12 15:5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stella09님 이 이벤트같이 않은 이벤트 마감 방문객 총 인원 만명이 될 때까지 입니다. 시간 많이 (너무 많이) 남아 있습니다. 신앙을 전제로 낸 주제는 아니지만 신앙을 전제로 하더라도 달라질 것은 없습니다.

stella.K 2005-12-13 10:2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그렇군요. 생각해 볼께요.^^

stella.K 2005-12-14 17:2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글쎄요, 저도 그렇게 극성스런(?) 신자는 못되는지라 아직까지 변변한 전도는 못하고 있는 실정이네요. 에효~

하지만 늘 생각하는 건 꼭 전도를 하고 안 하고가 신앙의 잣대가 될 수 있는가를 생각해 봅니다. 물론 어떤 사람은 전도하지 않으면 못 살것 같아 전도하고 다닌다고 하더군요. 전 그런 그릇이 못되서 그런지 차마 그러질 못하겠더라구요.

나 자신을 변명하고 위로하려고 해서인지는 몰라도 전도에는 크게 두 가지 방법이 있는데 그렇게 직접적이고도 급진적인(?) 전도 방법이 있는가 하면, 꼭 그 방법이 아니어도 삶으로 또는 인격으로 전도하는 방법이 있다더군요. 저는 굳이 따지자면 후자쪽인 것 같다는 생각이 듭니다. 마립간님 글 읽어보면 님도 후자쪽 아닌가요?

마립간님 글을 읽으면서 C S 루이스가 생각이 났어요. 그는 저명하면서도 대중적으로 잘 알려진 변증학자죠.

대표적인 책을 들라면,

 <순전한 기독교>를 들 수 있을 것 같습니다. 물론 그의 책들은 꽤 많이 번역되어있고 좀 어려워서 쉽게 읽히지 않는다는(마립간이라면 쉽게 읽으시겠지만 전 좀 어렵더라구요.) 단점이 있지만 이 사람의 저서가 현대 기독교인들에게 얼마나 많은 영향을 미쳤는지는 마립간님도 아실거라고 믿습니다.

물론 전 부끄럽게도 아직 저 책을 읽어보지는 못했네요.

하지만 세상에 많은 종교중에 왜 하필 기독교냐? 또 같은 기독교라도 너무나 퇴색되고 변질된 신앙속에서 보수적이면서도 진보적인 신앙을 갖는다는 건 중요하리라고 봅니다. 거기에 루이스는 중요한 인물로 평가되고 있는 것으로 할고 있습니다.

저 개인적으론 강의석 군의 기사를 보면서 대견하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제가 알기론 강 군은 기독교인이 아닌 걸로 알고 있는데 맞나요? 암튼 그가 그런 행동을 하기까지는 그 학교의 교목의 힘이 컷다고 들었습니다. 물론 덕분에 그 목사님은 그 학교에서 짤렸다고 들은 것 같은데, 이것을 가지고도 같은 기독교 진영에서도 말이 많았던 것 같습니다.

하지만 신앙을 권력도 지배 세력도 되면 안된다고 생각합니다. 과거 역사적으로 볼 때 로마가 기독교를 피박했지만 결국 국교로 지정이됐을 때 로마 기독교는 급격히 세속화 되었다고 했습니다.

미션 스쿨의 이념은 나름대로 좋겠지만 그 학교라는 조직 안에서 아이들은 많은 모순을 지켜보았던 것 같습니다. 기독교인이란 이유만으로 연대할 수 있는 건 좋지만 결국 좋은 영향을 발휘하지 못하고 여타의 조직 사회가 그랬듯 그것을 답습한다면 신앙을 권력구조를 갖게되는 거죠.

저는 그건 옳다고 생각하지 않습니다. 신앙은 온전히 그것의 출발은 사랑이고 참회며 예수님 돌아가심과 부활을 생각할 때 순수하게 지켜져야 하는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이스라엘 백성은 예수님을 혁명가를 보아고 압박 받는 자기네 백성을 구원해 줄 것이라고 기대했습니다. 하지만 예수님은 혁명가도 정치가도 아니었죠. 그는 세상에선 가장 힘없고 낮은 자셨습니다. 하지만 불의에 대해선 단호하셨죠. 전 가끔 그런 예수님이 버거울 때가 있지만 그리고 저 자신의 게으름 때문에 의도적이든 무의식적으로든 멀리한 적도 있지만 차마 등을 돌리지는 못할 것 같습니다.

기독교를 비판해도 같은 기독교 진영에서 비판하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비기독교에서 비판하는 책들도 많죠. 여기서 비기독교라 함은 그야말로 기독교를 전혀 믿지 않는 진영과 삐딱선을 탄 기독교 이를테면 사이비 둘 다를 말하는 것일 겁니다.  

사실 기독교와 직접적으로 관련이 없는 진영에선 기독교를 그다지 비판하지는 않는다고 생각합니다. 문제는 잘못 성경을 이해하고 기독교를 알고 있으면서 비판하는 세력이 문제겠죠.

자크 엘룰의 뒤틀려진 기독교 같은 경우엔 제가 알기론 보수적 입장에서 현대 기독교를 비판한 책으로 알고 있습니다.

 

 

 

 또는 무례한 기독교 같은 경우가 이 범주에 속하지 않을까 싶습니다.

신앙의 보수적인 측면을 강조하다 보니 오늘 날 너무 느슨해져버린 기독교를 비판하는 것이라고 봅니다. 사실 많은 사람이 교회의 문제점을 알고 있으면서도 교회를 다니고 있죠. 꼭 그들이 힘이 없어서 잘못을 묵인하고 다니는 건 아니라고 봅니다.

교회의 건강을 바라는 사람은 곳곳에 숨어있다고 봅니다.

기독교는 왜 타 종교와 융합할 수 없는가? 왜 그리 독단적이냐고 말할지 모르지만 그래서 그 때문에 권위주의를 비판하고 나서지만 전 그래서 기독교가 온전할 수 있는 거라고 보아집니다.

그저 인본주의만을 강조하다면 우리가 굳이 신앙이라고 말하며 한 종교를 믿어 무엇하겠습니까? 그냥 우리가 생각하는 유토파아나 파라다이스를 만들면 되는 것이지. 그리고 타 종교는 무를 강조하지만 기독교는 유를 말하지 않습니까? '오직 그 분만이...'라고 하는.

그런 관점에서 저는 성경을 인본주의적 해석을 가하는 현대 고등비평이란 것에 문제가 있다고 봅니다.

무엇이 진짜 신앙이냐라는 건 많은 회의에서 나오는 것 같습니다. 저도 그다지 믿음 좋은 사람이라고 말할 수는 없지만 많은 회의속에서 긍정을 얻어내는 것이 결국 신앙은 아닐까를 생각해 보게 되지요.

그냥 두서없이 써봤습니다. 용서하시길...

 

 

 

 

 


마립간 2005-12-14 20:4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stella09님, 먼저 답글을 올립니다. 올려주신 글을 반복해서 읽었는데, 제가 핵심내용이 파악이 잘 안 됩니다. 혹시 오프라인 만남을 허하실 생각은 없으신지... 추천해 주신 책은 구입해서 읽어 보겠습니다.

stella.K 2005-12-15 00:2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앗, 그러신가요? 그럼 제가 논지를 잘못 이해했을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드네요. 죄송합니다. 오프에서의 만남을 굳이 꺼리는 건 아니지만 제 글이 마립간님께 어떤식으로든 기대를 갖게 만든 건 아닌가 해서 조심스러워지네요. 전 사실 글과는 달리 지극히 평범 하거든요.
그렇다고 오해는 말아주십시오. 마립간님을 어려워해서 그런 것은 아닙니다.
그냥 부담없는 거라면 모를까 신앙 가지고 만나는 거라면 글쎄요 제가 마립간님께 어떤 도움을 드릴 수 있을까요...?
먼저 저의 글이 님께 어떤 느낌이었는지 알고 싶기도 하네요.
암튼 생각해 보죠.^^

마립간 2005-12-15 08:3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stella09님/죄송하다니요. 글을 써 주셔서 감사할 다름입니다. 제가 의도했던 바는 선행을 강요할 수 있나입니다. 예를 들면 가족(아내, 아이들)이 남편, 아버지의 금연을 강요할 수 있나. 아니면 국가가 신문의 독점을 방지하기 위해 시장 점유율을 통제할 수 있나. 물론 옳다고 생각하는 종교, 기독교를 전파하는 것은 정당한 것인가도 같은 맥락이죠. 금연이나 언론 관계법은 그 특수 상황때문에 일반화가 쉽지 않아 종교적 전도(전교)를 예를 든 것입니다. 종교적 색채때문에 좋은 예가 아닐 수도 있죠. stella09님의 글의 내용은 기독교 입장에서 전도는 옳다는 흐름이기도 한데, 이글을 바탕으로 흡연자에게 금연을 (강요같은) 권유를 해야한다는 근거를 찾기가 쉽지 않습니다.
오프라인 만남은 부담갖지 마세요. 제가 사람 많이 모이는 것을 꺼려 알라딘 오프라인 모임에 참석하지 않았으나 가끔 알라딘 사람을 만나고 싶을 때가 있어 이야기한 것입니다. 만나게 되면 자연스럽게 공통 주제가 기독교가 되겠지만 신앙만을 화제를 삼고 싶지 않고, 저 개인적으로 남과의 대화를 통해 신앙을 얻으리라 생각하지 않습니다. 글에 대한 느낌은 따로 글을 쓰겠습니다.

stella.K 2005-12-15 11:1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그러고 보니 정말 제가 논지를 잘못 이해하고 있었군요. 민망해라.
그런데 금연과 흡연을 굳이 신앙의 차원에서까지 생각해야 하는 건가요? 그냥 일반적으로도 흡연은 건강상으로도 안 좋으니 금연하자는 운동이 확산되고 있잖아요.
그건 점점 법적인 근거는 뚜렷하지는 않지만 거의 법제화 수준까지 가고 있습니다.
청소년에게 담배 팔면 벌금을 무는 것을 비롯해서 흡연자들은 지정된 구역에서만 담배를 필 수 있습니다.
한쪽에선 지나친 규제라고 담배도 하나의 기호고 취향이라고 맞서고 있습니다. 그러고 보면 담배를 피면 법에 저촉이 된다는 규정은 좀 심한거리고 볼 수 있죠.
저는 담배는 기호고 취향이란 말에 반박할 생각은 없습니다.
하지만 건강상 안 좋은 것은 사실이죠. 몸은 하나님이 주신 것이 잘 관리할 필요가 있습니다. 그러니 안 피우는 게 좋겠죠.
만일 기독교인이 담배를 핀다하는 경우 다소 생뚱맞아 보이는 건 사실입니다. 하지만 그런 시선으로 보는 건 우리나라에서만 유독 심한 것이라고 하더군요.
신앙이 어느 한 나라에 퍼지게 되면 그 나라의 문화나 풍습에 묘하게 섞여들게 마련이죠. 그걸 토착화라고도 하는데 기독교인이 담배를 피냐 안 피냐를 가지고 신앙의 잣대로 삼을 수는 없지만 신앙은 율법의 문제 보단 사랑의 문제가 더 강한 것 같습니다.
따라서 흡연은 신앙적 관점에서 강요해서 될 것은 아닐 것이고 그보단 하나님을 아는 지식(사랑, 순종까지 포함해서), 이 근본적인 것이 더 중요하리라고 봅니다.
에고...이렇게 쓰고 보니 또 제 멋대로 지껄인 것 같아 송구하고 뭐라 더 드릴 말씀이 없네요.

오프에서의 만남은 마립간님 그리 말씀하시니 부담 갖지는 않겠습니다. 언제든 연락 주십시오.^^

마립간 2005-12-15 13:1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stella09님의 댓글에서의 느낌은 흡연-금연과 신앙의 전파를 같은 위치에 놓을 수 없고 흡연-금연은 개인의 자율성에, 전도(신앙의 전파)는 그 자체로 가치가 있다로 해석됩니다.
 

* 낙태와 사형


 바람구두님과 이야기를 나누던 중 당황스러운 질문을 받았는데, 사형과 낙태에 대한 찬성-반대의 의견이었습니다. 당황스러웠던 이유는 보수적 성향의 사람들은 사형제도 찬성과 낙태의 반대를 의견을 갖는 반면 진보적 성향의 사람들은 사형제도 반대와 낙태의 찬성 경향을 갖고 있다는 것을 알고 있기 때문입니다. 저는 충분한 이유가 축적되지 않는다면 그 현실을 인정하는 의미에서 사형제도 찬성, 낙태는 법이 허용하는 범위 내에서 시행되는 낙태를 제외한 낙태 반대로 이야기하였습니다. (심정적으로 바람구두님에게 K.O 패)


 부연 설명을 하자면 사형제도에 관해서는 관심이 없습니다. 제가 사형 언도를 받을 정도의 범죄를 저지를 것 같지 않고 (설령 업무상 과실치사나 교통 사망 사고를 내더라도) 주위에 사형 언도를 받은 사람도 없고. 국회에서 사형제도를 폐지하면 폐지하는 대로, 존속하면 존속하는 대로 그냥 의견 표현 없이 살아갈 생각이었습니다.


 그런데 낙태에 관해서는 낙태를 찬성해도 마음이 편하지 않고 반대를 해도 편하지 않습니다. 일부는 업무와 관련되어 있기도 하지만 제 스스로가 왜 사형제도 만큼 낙태에 무관심할 수 없는지 저도 잘 모르겠습니다. 낙태 후의 어머니의 불안정감은 사형 집행 후 판사나 범죄자 가족의 불안정감과 비교됩니다. 그리고 낙태할 아이가 태어난다면 부담하게 될 사회적 비용은 사형수가 수감생활을 하게 되면서 지불하게 되는 사회적 비용에 비교됩니다.


 아무리 봐도 비슷한데...


논제 5) 낙태와 사형제도는 왜 사회적으로 상반된 성향으로 나타나는가?


주의) 논지가 낙태(또는 사형)에 관한 찬반(예: 기독교 서적)을 의미하는 것이 아닙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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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마개 2005-12-21 10:3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찾았습니다.
사형제도에 관한 훈늉한 글!! 이거 제가 예전에 보고 감동 받은 르포기사인데, 기자는 좀 거시기 해도 기사가 훈늉한건 인정 해야 합니다.
고문과 사형수, 조갑제, 월간조선, 1986년 8월호.(이건 대학도서관에 가시면 있습니다.)
사형집행의 실제와 억울하다는 유언, 형사정책, 한국형사정책학회, 1986, 창간호(두개가 같은 내용이지 싶습니다.)
 

* 공교롭게도 마지막 가상뉴스가 황우석 박사님과 관련되었기 때문에 한 마디 하지 않을 수가 없네요. 일반적 사건의 시각은 가을산님과 궤를 같이 하지만 마태우스님의 **일보의 기고와 그 글에 대한 댓글을 읽고 입이 근질근질하여 한마디합니다.


 우선 줄기세포에 직접 관련된 직군은 과학자입니다. 갈릴레이가 순전한 호기심으로 별을 본 것과 같은 것은 아니더라도 학문적 호기심을 탐구하는 직군이 있습니다. 이 들은 대개 명예와 명예에 수반하는 금전적 이득을 바랍니다. 다른 한 그룹은 환자입니다. 현재 의학으로는 치료 불가능한 질병에 어쩌면 아무것도 아닐 수 있지만 그것에 희망을 걸 수  밖에 없는 그룹입니다. 그런데 이 과학적 학문이 생명을 다루기 때문에 윤리학자가 철학적, 윤리적 배경을 제공합니다. 그러나 많은 분들이 느끼겠지만 그 주위에 세 그룹이 있는데, 하나는 언론, 그 다음은 생명과학과 관련된 기업(생명과학 기업, 제약회사) 그리고 정치적으로 관련된 사람. 이 문제가 앞의 세 그룹이 중심이었다면 문제가 확대되지 않았을 텐데, 뒤에 언급한 세 그룹의 영향이 확대되면서 논란이 이상한 방향으로 흐른다는 느낌을 줍니다. 부안 방사선 핵 폐기장 사건이 과학적 문제이길 간절히 원했으나 결국 정치적 문제로 결론을 지었습니다. 이번 황우석 박사 문제도 언뜻 보기에 과학적 문제임에도 정치-사회 문제로 귀결되는 것 같습니다.


 줄기 세포에 관한 이론Knowledge은 이미 상당히 구축되어 있었습니다. 단지 그 과정에 이루는 기술(skill, technology)의 문제였습니다. Technology도 nology라 학문이라고 할 수 있겠지만 반복적인 실험에 의해 데이터를 내는 것입니다. (하기야 요즘 첨단 물리학, 천체 물리학도 천체를 반복된 관찰을 통해 계산하고 통계를 내지만) 이런 분야에서 가장 연구 실적을 내기 좋은 나라는 미국입니다. 많은 물량과 재원을 투자하면 결과를 얻을 수 있습니다. 그런데 왜 한국에게 선수를 빼앗겼을까요. 그것은 미국의 기독교를 중심으로 보수주의의 견제, 즉 생명윤리를 엄격하게 적용하기 때문입니다. 우리나라는 후진국에 없는 지식을 갖춘 인원과 재원, 완성되지 않는 생명윤리를 갖은 상태에서 줄기세포를 연구하기 더할 수 없는 좋은 풍토였습니다. (줄기세포의 종류는 각자 확인하시기 바랍니다.) 그리고 선진국이 후진국에는 생명윤리를 강조한다면 그것은 '사다리 걷어차기'로 생각합니다. 마치 인권을 내세워 상대국을 압박하는 것과 같은.


 복제소 ‘영롱이’가 태어났을 때부터 황우석 박사님의 쇼맨 쉽은 저희 직장에서는 여러 번 회자되었습니다. 제가 황우석 박사님을 평가하자면 학자보다는 CEO에 가깝습니다. 어느 일간지에서는 월,화,수,목,금,금,금 이라는 글이 있었는데, 제가 속으로 ‘그것도 자랑이라고 하나.’ 연구원 중에는 평일에는 일하고 주말에는 쉬기를 바라는 이도 있을 것이고 신혼부부나 막 태어난 자녀를 갖은 부모가 있을 수도 있습니다. 휴일에 쉬고 싶어도 황 박사님이 주말 휴일까지 나와서 일하도록 독려한다면 어떻게 쉴 수가 있겠습니까. 우리나라는 저녁회식에도 암묵적인 강제가 있고, 음주에도 강제가 있는 나라입니다. 그 이후에도 노래방에 가더라도.


 인구가 많은 미국에서도 난자 채취의 장애로 연구가 쉽지 않는 실험이 우리나라에서 이루어졌다면 부도덕한 (아직 불법적인 것은 확인되지 않았죠.) 난자 채취가 있을 것이라는 상황 선정은 비의료계에 있는 사람은 의혹이라고 말하지만 의료계의 종사하는 사람으로서는 심정적으로 확정적인 추정입니다. 그렇지 않다면 물리적으로 미국보다 먼저 연구 성과를 낼 수가 없다고 생각하니까요.


 과연 어느 정도 부도덕적일까요. [사무실에 창밖을 보던 직원이 놀란 듯이 다른 직원에게 이야기합니다. 과장님이 횡단보도 정지선을 어겼어. 어떻게 불법적인 일을 할 수가 있지.] 이와 같은 것이 놀랄 일인가요. 제가 보기에 대부분의 차들이 정지선을 어기고 있는데. 누가 이런 제기에 놀랄까요. 또 혹자는 '어떻게 정지선 위반과 난자 채취를 비교할 수 있는가?'라고 제기할 수 있습니다. 정지선 위반이 보행자의 생명의 위협하기 때문에 법으로 제정한 것입니다. 난자 채취는 윤리 강령을 위한 것입니다. 윤리가 그도록 중요했다면 윤리학자나 국회의원의 직무태만이죠. 난자 채취가 힘들고 위험하다고 한다면 골수 기증은 어떻게 생각하시나요. 하얀마녀님은 골수기증을 하셨고 그렇게 힘들지 않다고 하셨지만, 여러 번 골수 채취를 해본 저의 의견은 그렇게 간단하지 않습니다. 난자 채취에 때문에 여성의 건강을 걱정하는 분들 중 난자 채취를 직접 당해보신 분이 계신가요. 난자 채취가 여성에게 부담이 없는 것을 주장하는 것이 아니고 골수기증만큼이나 어렵다고 이야기하고 싶습니다.


 정말 하고 싶은 이야기는 지금부터인데... 진보와 보수(좌와 우)가 엄격히 구분되지 않지만 대개 줄기세포 연구의 반대는 주로 기독교를 중심으로 한 보수주의가 주장을 하는데 우리나라는 어찌된 일인지 진보 진영에서 반대를 하고 있습니다. 심지어 MBC PD 수첩의 취재와 관련된 사과가 진보의 실패로 보는 시각도 있습니다. 왜 어째서 이런 현상이 벌어졌을까요. 제가 상황 판단을 잘못한 것일까. 굳이 이유를 찾자면 진보는 여성 중심적 사고 때문에 난자 채취가 문제된다. 아니면 배후 세력인 생명 관련 기업이 진보 성향과 맞지 않는다. 솔직히 잘 모르겠습니다.


 언론에서는 생명윤리를 언급하는데, 생명윤리에서 생명의 기준은 무엇인가요. 일반 생물학이나 유전학에서 적게는 2가지, 보통은 5가지, 자세히 나누면 7-8가지의 조건을 만족해야 무생물과 구분되는 생물이라고 정의합니다. (깜짝 퀴즈를 내어 볼까요. 제 서재에 방문하시는 분 중의 의료인 말고 이 5가지 조건 알고 계신 분 계세요. 이벤트의 가산점을 드리겠습니다.^^) 그 중 몇 가지를 만족해야 생명윤리의 생명인가요. 사람으로 한정한 생명으로 한다면 정자, 난자부터 아니면 수정난, 상실기, 포배기, 그도 아니면 낙태의 기준이 되는 24주부터...


 알라디너 ###님은 황우석 박사님 사건이 발생했을 때 우시기까지 했지만, 그 페이퍼를 읽는 순간 저는 가**님에게 ‘황우석 박사님의 연구가 임상에 적용되려면 얼마의 기간이 필요한지도 모르는데, 그리고 성공할 수 있을지 조차도 모르는데, ###님을 위로하는 것이 의미가 있나요.’라고 편지를 썼습니다. ###님이 환자의 입장으로 이 사태를 걱정했다면 저는 과학자의 입장에서 논문조작의 가능성은 정말 큰 충격입니다. 특히 논문조작의 가능성에 대해 전혀 걱정을 하지 않았는데, balmas님의 2006년 12월 6일 페이퍼 ‘나는 PD 수첩의 PD들이 존경스럽다.’를 읽으면 논문조작에 관해 심정적 동의를 하고 계신 것 같습니다.(개인적 추정) 그래서 심히 불안합니다.


 이 사건은 난자채취가 부도덕적인 것이 밝혀지듯이 논문조작이 있었다면, (현재 황우석 박사님의 입원은 분명한 언론 플레이이고 최근 방송 내용이 반론의 여지가 없도록 여론 몰이를 하고 있지만) 진실은 밝혀지리라 봅니다. (저에게 속삭였던 @@@@님 저는 님도 어떤 첩보를 접한 것이 아닌가 하여 걱정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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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 새로운 삶을 열어 줌 - 희귀병 치료법

 

 유전자 검사에 대한 논란이 있었음에 불구하고 지속적인 연구 끝에 몇 가지 난치병에 대한 치료법이 밝혀졌습니다. 우선 근위축성측삭경amyotrophic lateral sclerosis(ALS)은 1930년대 이 질병을 앓았던 운동선수의 이름에 기원하여 루게릭병Lou Gehrig's disease으로 더 많이 알려져 있으며 근위축, 근력약화, 섬유속성 연축 등을 특징으로 하는 퇴행성 신경계 병변이며 대뇌 및 척수의 운동신경원이 선택적으로 파괴되기 때문에 "운동신경원 질환"으로도 불립니다. 2001년 ALS-2 유전자 변이가 관여한다는 등 몇 가지 원인이 밝혀졌음에도 불구하고 정확한 원인도 모르고 병의 진행 과정도 몰라 그 치료법 역시 마땅한 것이 없었습니다. 그러나 이번 연구의 성과는 환자가 실감할 수 있는 치료법이 개발되리라고 기대되고 있습니다. 그리고 또 다른 난치병인 진행성 근이영양증progressive myodystrophy의 병태생리에 관해서도 획기적인 연구가 이루어져 증상적 및 고식적 치료에 머물렀던 치료가 병의 진행을 막을 수 있는 치료법이 곧 개발될 것으로 기대되고 있습니다.


[전남일보] 생체줄기세포 이용 난치병 치료 길 텄다. : 전남대^조선대 공동연구팀 세계 첫 개발, 귀뒤뼈로 신경세포 재생

 

 “2~3년내 임상 가능” 황우석 교수의 배아줄기세포 연구가 생명윤리 문제로 논란이 일고 있는 가운데 생명윤리와는 관계가 없는 성체줄기세포를 이용, 난치병을 치료할 수 있는 방법이 세계 최초로 국내 연구진에 의해 개발돼 화제다. 전남대병원 장철호 교수와 조선대 의과대학 송창훈 교수팀은 지난 6월부터 공동으로 귀뒤뼈(유양돌기)에서 골수조직을 채취해 간엽줄기세포를 분리하고 이를 신경세포로 재생시키는 연구를 최근 성공했다고 28일 밝혔다. 공동연구팀은 빠르면 2~3년 안에 이 방법으로 난청이나 안면신경마비, 척추질환 등 난치병 치료가 가능해질 것이라고 덧붙였다. 공동연구팀의 이번 성과는 윤리적인 문제로 지적받고 있는 배아줄기세포와는 달리 귀뒤뼈의 골수를 채취하는 성체줄기세포를 사용했다는 점에서 학계의 관심을 모으고 있다. 배아줄기세포를 이용할 경우 서구에서는 기독교적인 윤리의식으로 배아도 생명으로 보는 성향이 강해 그에 따른 연구진척도 빠르지 못했으며 황우석 교수팀의 연구도 결국 그 암초에 걸렸다는 것이 연구팀의 시각이다. 그동안 성체줄기세포는 태아 분만시 얻는 탯줄혈액에서 분리한 간엽줄기세포나 대퇴골 골수에서 추출한 혈액에서 간엽줄기세포를 분리해 연구^치료 등에 사용해오고 있다. 그러나 탯줄혈액에서 채취한 간엽줄기세포의 경우 조직거부 반응이 생길 수 있고 환자의 골수에서 추출한 간엽줄기세포는 대퇴골과 엉덩이뼈에서 추출하기 때문에 통증과 후유증 등의 부작용 발생으로 치료에 어려움을 겪어 왔다. 공동연구팀이 성공한 이번 실험은 귀뒤뼈에서 추출하므로 통증이 거의 없고 추출방법도 쉬워졌으며 환자 본인의 것이어서 거부반응도 없는 것으로 알려졌다. 장 교수는 “귀뒤뼈에서 줄기세포를 추출해 신경세포로 재생하는 데 성공한 것은 세계 최초”라며 “귀나 척추와 같은 국소 부위에 효과적으로 줄기세포를 이식할 수 있어 탯줄혈액이나 골수추출보다 쉽고 효과적이다”고 설명했다. 공동연구팀은 현재 난청환자나 안면 신경마비 환자 치료를 위해 분화된 신경세포를 사용, 동물실험중에 있으며 원숭이 상대의 실험이 성공할 경우 2~3년 안에 난청환자에게 줄기세포 치료를 시도할 계획이다. 공동연구팀의 연구결과는 내년 6월 미국에서 열리는 국제 이과병리학회(International otopathology symposium)에서 발표될 예정이다.

 

[헤러드 생생뉴스] "자가 제대혈 이식수술 첫 성공"


 국내 제대혈 보관회사의 제대혈 보관 건수가 크게 늘고 있지만 보관된 자신의 제대혈을 난치병 치료에 사용하기는 이번이 처음이다. 메디포스트는 울산대 병원과 공동으로 지난 7일 재생불량성 빈혈 환자(4)에게 환자 자신의 보관 제대혈을 사용해 조혈모세포를 이식하는 수술에 성공했다고 11일 밝혔다. 1997년 제대혈 은행이 국내에 처음 도입된 이후 지금까지 200건 이상의 제대혈 이식이 이뤄졌지만 모두 타인의 제대혈이나 가족의 제대혈을 이용했었다. 이는 국내 제대혈 은행의 역사가 오래되지 않아 자신의 제대혈을 보관한 뒤 발병한 사례가 거의 없었기 때문이라는 게 업계의 설명이다. 수술을 받은 어린이는 지난 2002년 태어날 때 어머니의 의뢰로 제대혈을 채취 보관했다. 이 환자는 지난 8월 감기 증상으로 병원을 찾은 뒤 재생불량성 빈혈 진단을 받았다. 제대혈에 들어있는 조혈모세포 이식이 치료에 적합하다는 주치의의 판단에 따라 보관 중이던 자신의 제대혈을 사용했다고 회사측은 설명했다.


[제일경제] “난치병 치료법 개발 눈앞”


 세계적 바이오산업 권위자들이 황우석 서울대 교수의 인간배아세포 연구 성과를 지지하는 한편 연구가 지속될 수 있도록 여건 마련을 촉구했다. 18일 서울 삼성동 코엑스 오디토리움에서 열린 '2005 서울 바이오메디 심포지엄'에 참석한 발표자들은 난치병 치료의 가능성을 열어줄 황 교수의 업적에 큰 의미를 부여했다. 세계 최초의 복제양 '돌리'를 탄생시킨 이안 윌머트 영국 에딘버러대 로슬린연구소 교수는 “황 교수의 연구 덕택에 난치병을 치료할 수 있는 혁신적이고 새로운 방법들이 세상에 소개될 것”이라며 황 박사의 배아줄기 세포 연구를 지지했다. 월머트 교수는 “특히 돌연변이 세포를 추출해 그 기능을 밝혀낸다면 원인 불명인 유전질환 치료에 큰 효과를 볼 수 있다”며 “일부 퇴행성 신경질환·암·심근경색 등은 물론 조만간 척추 손상이나 파킨슨병과 같은 질환의 효과적인 치료법도 개발될 것”이라 설명했다. 재럴트 섀튼 피츠버그 의대 재생의학연구소장도 “황 교수가 성공한 인간배아줄기세포와 다기능 세포에 관한 연구는 태아와 어린이를 건강하게 기를 수 있는 중요한 정보를 제공하기 때문에 매우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섀튼 소장은 그러나 줄기세포 연구는 해결할 수 없는 과학 정책적 논란을 야기할 것이라고 우려했다. 쥐를 대상으로 도출한 연구 결과를 인간에게 그대로 적용하리란 보장이 없기 때문이다. 그는 “핵전이 이후 인간배아줄기세포 추출 논의를 계속할 수 있는 과학적 근거를 마련하기 위해서라도 황 교수와 연구팀의 연구결과가 지닌 의미를 생각해야 할 것”이라 말했다. 안규리 서울대 교수는 “줄기세포는 인간 생체의 어느 부분에나 응용될 수 있기 때문에 헤아릴 수 없이 많은 치료법을 탄생시킬 가능성을 내포하고 있다”며 “가능성으로 존재하고 있는 치료법을 현실화하기 위해서는 연구 활동의 원활한 진전을 도와줄 수 있는 환경 조성이 시급하다”고 역설했다. 안 교수는 “악성종양 유발 문제와 이종 장기이식 등 현재 봉착해 있는 난관에 대한 논의가 이뤄져야 할 것”이라며 “줄기세포 연구의 비윤리적인 사용 규제 방법에 대한 가이드라인 정립이 시급하다”고 말했다. 줄기세포연구와 관련한 세계적인 흐름에 대한 소개도 이어졌다. 로버트 골드스타인 소아당뇨연구재단(JDRF) 박사는 “JDRF는 1970년 당뇨병과 당뇨로 인한 합병증 치료법을 찾기 위한 연구 지원을 목적으로 설립된 후 일찍부터 줄기세포 연구를 지지했다”고 설명했다. JDRF는 2000년 7월 처음으로 타입1 당뇨병 치료를 위한 줄기세포 치료법 개발의 다원적인 응용 연구 청원서를 발표했다. 골드스타인 박사는 “현재 스웨덴·캐나다·프랑스·싱가포르·핀란드, 영국 등의 기금관리기관과 줄기세포 연구 파트너십을 구축하고 있다”며 “미국내에서도 주 및 연방 차원의 지원 기금 확대와 배아줄기세포 연구에 대한 연방정부의 제한적인 현행 정책 완화를 강력하게 요구하고 있다”고 말했다. 크리스토퍼 쇼 런던왕립의대 교수도 “서울대와 영국의 에딘버러 대학, 킹스 칼리지 런던 연구팀은 공동으로 복제기술을 이용한 근위축성 축삭경화증 치료제 개발을 검토할 계획”이라 밝혔다. 이희범 산업자원부 장관은 “한국의 바이오산업은 줄기세포 및 발효분야 등에서 우수한 기술역량을 보유하고 있으며 정부는 바이오산업을 차세대 성장 동력산업으로 선정하고 적극적인 바이오산업 육성 정책을 펼치고 있다”고 설명했다. 이 장관은 “바이오산업의 도약을 위해 시장진입을 가속화할 수 있는 여건을 조성해 나가고 있다”며 “이를 통해 한국의 바이오산업은 2015년 세계 5위권으로 성장해 IT산업과 함께 한국 경제를 떠받치는 주력 산업으로 성장할 것”이라고 말했다.


[경향신문] 성체 줄기세포로 난치병 64명 치료


 성체 줄기세포를 이용한 혈관성 난치병 환자를 위한 대규모 임상치료가 성공을 거뒀다. 지금까지 성체 줄기세포를 이용한 임상치료는 대상 환자수가 적고 치료 효과와 상용화에 대한 의문이 제기됐으나 이번 임상치료 성공으로 줄기세포 실용화가 한층 앞당겨질 전망이다. 보건복지부는 9일 가톨릭대 이권행 교수 등이 참여하는 ‘뇌신경계질환 유전체연구센터’가 정상적 생활이 힘든 뇌경색과 버거병 등 혈관성 난치병 환자 74명을 상대로 환자 자신의 골수에서 추출한 성체 줄기세포를 치료에 활용한 결과 64명에서 치료효과가 확인됐다고 밝혔다. 이 중 뇌경색 환자 3명은 뇌 속의 혈액 흐름이 좋아지고 언어장애가 호전되는 등 치료효과가 탁월한 것으로 나타났다. 특히 말초동맥이 막혀 조직이 괴사하는 버거병 환자 지모씨(58)는 평소 제대로 걷지 못했으나 줄기세포 치료 이후 걷는 데 큰 불편이 없을 정도로 호전됐다. 줄기세포는 크게 배아 줄기세포와 성체 줄기세포로 나뉘며, 황우석 교수가 연구하는 배아 줄기세포는 수정란을 이용해 얻는 반면 성체 줄기세포는 사람의 골수나 탯줄에서 추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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