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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마는 커피 우리는 코코아
이의용 / 장락 / 1997년 1월
평점 :
품절
중학교 시절, 내가 가장 좋아한 선생님은 도덕 선생님이셨다. 나로서는 몹시 독특한 스타일을 가지신 선생님으로 보였는데, 수업이 시작되면 아무 말씀도 없이 필기를 주욱 하신다. 칠판의 절반 정도를 차지하는 그 필기를 다 마치시고는 칠판 한 옆에 서서는 가만히 기다리신다. 우리가 필기를 마칠 때까지. 물론 그때도 말씀은 없으셨다.
지금 생각해 보면, 우리가 너무 순진해서 떠들지 않았거나, 아니면 선생님의 포스가 장난이 아니었거나, 혹은 둘 다 작용된 걸지도 모르겠다. 요즘같은 시절 교실에서 학생들이 아무 말 없이 필기만 하길 바란다면... 음... 어마어마한 트라우마가 있지 않는 한 힘들 것 같다.
하여간, 그렇게 우리가 필기를 다 마치면 대략 30분 정도가 흐른다. 그러면 남은 시간 동안 이야기를 하시는데, 우리 수업과 무슨 관련이 있는 건지 절대 알 수 없는 어떤 이야기를 하신다. 그때 들었던 얘기 중에는 지금도 기억하는 얘기들이 꽤 있다. 세상에 공짜란 없다랑 깨어진 병의 금은 없앨 수 없다, 돌을 지고 물을 건너는 사람들 등등....
아무튼, 이야기는 진행되고, 한참 듣다 보면 결국에 왜 그 얘기를 시작했는지 알 수 있는 시점이 다가온다. 결말에 가서는 우리 수업과 꼭 상관있는 얘기가 되고 마니깐.
그때도 선생님은 다독을 하셨다. 당신께서 읽고 있는 책 종류를 간혹 얘기하실 때가 있고, 우리가 스승의 날에 선물한 도서상품권을 무척 기뻐하셨지만, 당신이 아닌 다른 사람을 위해서 쓰겠다고 말씀하셨다.
당시 나는, 선생님이 우리에게 들려주시는 그 이야기들은 대체 어디서 나오나 궁금했다. 책인 것은 알았지만 어떤 책인지까지는 알 도리가 없었다. 그렇게 오랜 세월이 흘렀는데, 우연히 이 책을 찾고는, 나는 얼떨떨하게 웃었다.
그 무렵 내가 들었었던 많은 이야기가 이 책에 실려있었던 것이다. 이렇게 촌스러운 제목의, 촌스러워 보이는 책 안에 말이다.
추억을 되새기며 책을 읽었는데, 솔직히 여러모로 실망했다. 그때만큼의 감동은커녕 공감할 수 없거나 이해할 수 없는 이야기들도 많았기 때문이다. 모파상의 '목걸이'같은 경우 출전을 표시하지 않았고, 제목도 왜 엄마는 커피고 우리는 코코아라는지 연관성을 알 수가 없었다.
아마도, 추억을 다시 꺼내지 않고 그냥 추억으로 남겨두었더라면, 내가 궁금해했던 이야기들의 원천지는 더 신비롭고 아름답게 남았을 것을, 우연히 만난 책에서 오히려 실망을 느끼고 말았으니 참으로 재밌는 우연이다.
물론, 선생님께서 해주신 다른 이야기들(이 책에서 나온 게 아닌...)은 여전히 내게 아름답게 포장되어 있다. 아주 가끔은, 내가 아이들에게 해주는 이야기로 둔갑해서 말이다.
이 책은 이제 절판되어서 찾을래도 찾을 수 없는 책이 되었지만, 그게 아니래도 이 책을 굳이 읽을만한 독자는 이제 별로 없는 듯하다. 그게 다행일까, 불행일까.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