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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산무진
김훈 지음 / 문학동네 / 2006년 4월
평점 :
그의 작품을 읽는 것보다, 그의 작품에 대한 리뷰를 쓰려고 어떻게 서두를 열어야 할 것인가에 대한 고민을 더 많이 했다. 뭔가 그럴싸한 말로 열어보려한 것은 아닌데, 그냥 첫마디가 어려웠다.
''강산무진'으로 검색을 해보니, 강산무진도로 오주석씨의 책이 같이 떴다. 엇! 내가 몰랐던 책이네... 하며 잠시 그쪽에 가서 놀다가 아차!하고 되돌아 왔다..;;;;
작가 김훈과의 만남은 처음부터 몹시 매력적이었다. 도서관에서 우연히 '칼의 노래'를 발견하고, 그게 이순신에 관한 소설인 줄도 모르고 읽었다가 풍덩! 빠져버려서 헤어나오지 못했던 시간으로부터 몇년이 흘렀다. 그 사이, 내가 구해볼 수 있는 것이라면 모조리 구해 읽었고 거의 소장했고, 지금도 그의 이름이 뜨면 일단 흥분부터 하고 보는 열혈독자가 되었는데, 그런 지금도 작가 김훈을 얘기하는 것이 어쩐지 어렵다. 이 작품을 읽고서도 그런 느낌은 여전했다.
8편의 단편 중 "화장"만 2004 이상문학상 수상작으로 읽었고, 나머지는 모두 처음 보는 단편들이었다.
김훈을 떠올리면 그 탁월한 '문장력'을 이야기하지 않을 수 없는데, '개'를 읽을 때는, 특유의 문체를 살리지 않고, 그저 멍멍 개의 견격에서 시작한 말씨인지라, 그 지독히 흡인력있는 문체를 이제는 쓰지 않으려나? 하고 지레 짐작했었다.
사실, 칼의 노래에서는 작중 화자의 분위기가 그의 문체 스타일과 몹시 잘 맞아 떨어지기 때문에, 아마도 이후로도 꽤 오랫동안 이순신!하면 김훈을 떠올릴 사람은 많을 것이다. 그런데, 그 말투로 다른 캐릭터의 이야기를 하면, 어쩔 수 없이 환상이 깨지게 된다. "빗살무늬토기의 추억"을 읽을 때에 그랬다. 40대 중반의 소방수가 주인공인데, 그가 사용하는 말투와 어법이 이순신의 그것과 흡사하여, 나는 작품에 몰입하기가 많이 어려웠다. 현의 노래에서는 악사 우륵의 분위기를 이순신의 분위기와 섞인다 하더라도 크게 문제될 일이 없기에 작품을 읽는 데에 방해요소는 아니었다.
그런데 이 책, 8편의 단편에서는 거의 대부분이 칼의 노래에서 보여주었던 누구도 따라하기 힘든 어법과 말투를 모든 화자가 사용하고 있다. 그래서... 나는 참 혼란스럽고 조금 따로 노는 느낌을 받았다.
그나마 작중 주인공이 중년의 남성일 때는 괜찮았는데, "언니의 폐경"처럼 여성 화자일 때는 더더욱 느낌이 이상했다. 이 역시 나의 선입견일게 분명할 테지만, 뭐랄까.... 그의 그 특유의 말투를 좀 더 아껴보고 싶은 마음인데, 혹은 그 말투를 '이순신'의 그것!이라고 못 박고 싶은데, 다른 캐릭터가 나눠갖는다는 것에 심통이 난 기분이다.
그러나 그러면서도 역시 그 문장력에서 오는 매력을 부인할 수는 없는데, 나는 그가 사물을 볼 때 적외선 탐지기로 훑어가는 것은 아닐까 하는 착각이 들곤 했다. 작은 것 하나도 놓치지 않는 세밀한 관찰력은 그가 기자 출신이기도 했지만, 일종의 '장인정신'으로 여겨졌다. 그래서인지, 매우 다양한 직업군이 나오는데, 그들의 전문성을 프로로 보여주는 것에서는 두 손을 다 들었다. 내가 전혀 알지 못했던 다양한 직업, 다양한 장소, 다양한 시간대가 그에게서 나오고 있다. 그는 사람도, 사물도, 자연도.. 어느 것도 그냥 지나치는 법 없이 집착이라고 할 만큼 쫓아가며 달라붙고, 그 속을 파헤친다.
그런데, 그토록 자세히 서술하고 설명하고 보여주면서, 정작 사람의 내적 상태에 대해서는 함구한다. 작품 속 화자들은 모두 감정 없는 사람 마냥 건조한 시선을 유지하고 있다. 심지어 죽어가는 사람을 묘사하는 장면에서도 그렇고, 죽어가는 사람이 자신일 때에도 화자는 감정의 큰 기폭없이 남의 일 말하듯 병을 얘기하고 죽음을 얘기한다.
그런데, 역설적이게도... 그래서 그들의 고통이 더 잘 보였다. 작품 속 화자들은 대부분이 중년 이상의 나이를 갖고 있었고, 살아온 시간이 살아갈 시간보다 더 많은 사람들이 대개였다. 이미 삶을 살만큼 살아보았고, 그래서 산전수전 다 겪어 보았고, 인생의 고단함이 무엇인지를 아는 그들의 체념과도 같은 어조와 삶에 대한 수긍은, 그랬기에 오히려 더 비장하게 보이는 것이었다. 여백... 비어냄의 미학같은 것... 슬프다, 아프다, 힘들다보다... 더 깊은 울음과 그에 대한 공감을 끌어내는 힘이 그의 글에는 배어 있었다.
그의 작품을 읽다 보면, 유독 오줌싸고 똥싸는 것과 같은 생리적 욕구 해결에 대한 묘사가 잘 나온다. 현의 노래에서도 그랬고, 화장에서 병든 아내의 배변과, 고향의 그림자에서도 그랬다. 과하다 싶을 만큼 적나라한 묘사는 때로 불편하게도 보이지만, 작가의 의도적인 기술이라는 생각이 줄곧 떠나지 않는다. 뭐였을까? 가장 자연상태의 인간을 보여주기 위함일까, 인간의 시원성을 얘기하고 싶은 것일까, 그도 아니면 가장 속되어 보이는 장면으로 인간의 가면을 내벗기기 위함일까... 에잇! 어렵다.ㅡ.ㅜ
표지 이야기를 끝으로 주절거림을 마쳐야겠다. 표지는 강산무진도의 그림 위에, 작중 화자가 이 그림을 보면서 서술하는 내용이 박혀 있는데, 몹시 고전적이고 우아하면서 지적인 느낌을 풍기고 있다. 그런데, 이중 껍데기의 표지를 들어내면 허옇게 색바랜 느낌의 양장본 표지가 나오고 김훈의 원고지 글자가 인쇄되어 있다. 그 글씨의 자유스러움과 또 흘려쓴 글씨체의 느낌은 허옇게 바랜 색깔과 함께 작품 내내 관통하는 이미지였던 '허무'와 맞닿아 있었다. 표지 디자인에서조차도 작품의 연장선으로 무언가 더 보여주려고 했던 것은 아닐까 지레 짐작해 보았다. 그렇지만 역시 정리하기는 어려운 법...ㅠ.ㅠ
이제 진짜진짜 마지막으로 제목을 뭐라고 써야 할까 고민하고 확인 버튼을 눌러야겠다.
별 셋을 줄까, 별 넷을 줄까 고민했는데, 결국엔 자동적으로 별 다섯을 주고 만다. 여전히 난 그의 문장력에 사로잡혀 있으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