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카메론 일신서적 세계명작100선 35
보카치오 지음 / 일신서적 / 1992년 1월
평점 :
절판


근대 소설의 선구자로 알려진 보카치오의 작품이다.  10일 간의 이야기라는 제목으로 번역되듯이, 10일 동안 진행된 이야기 100편을 담고 있다.(정확하게는 토요일과 일요일을 껴서 12일이지만...)

보카치오가 살던 그 시절의 유럽은 페스트로 유럽 전체 인구의 1/3이 죽던 시절이었다.  온 마을에 죽음의 그림자가 덮여 있고, 가족 중 누군가를 잃지 않은 사람을 찾기가 어려웠다.

그런 때에 페스트의 위험을 피하고자 교외의 별장에 모인 숙녀 7명과 청년 셋이서 하루에 한가지씩 한 주제를 놓고 10개의 이야기를 한다. 이렇게 10일 동안 100편의 이야기가 나오는 것이다.

책의 두께를 보면 장편 소설이지만, 각각의 짧은 이야기가 100편씩이나 나오니 단편소설이라 할 수 있고, 그럼에도 한 주제를 놓고 10명이 각각 다른 이야기를 하기 때문에 기본적인 통일성은 유지된다.

이야기의 시작 무렵에는 조금 지루한 감이 있었는데, 날이 지나갈수록 사람들의 이야기는 점점 대범해지고 배짱도 생기고 유머감각도 생긴다.

페스트의 위험과 공포를 잊기 위해 시작된 그들의 이야기는 어느덧 그 자체에 몰입되어 두려움도 잊은 것처럼 즐거운 유희 거리가 된다.

단테의 신곡에 대비하여 人曲이라고도 불리는데, 결단코 신곡보다는 읽기 가볍고 즐거웠다ㅠ.ㅠ

놀라운 것은, 당시의 시대 상황을 들춰본다면 결코 쉽지 않았을 교회의 부패를 고발하고 봉건사회를 적나라하게 조롱하고 비판하였으니 아마 그 시대에 이 책을 읽은 사람들은 속이 꽤 시원했을 것 같다.(물론, 일반 대중들이 이 책을 읽었을 법하지는 않다...;;;;)

수도승이라고 경건하지 않고 그건 수녀들도 마찬가지였다.  그들은 성적 유희를 탐닉했고 재물에 욕심을 보였으며 원하는 것을 손에 쥐기 위해서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는 모습을 보여준다.  모든 사제들이 그렇지는 않았겠지만, 그런 사람들도 많았음을... 그리고 그 사실을 밝혔다는 것에 보카치오의 용기에 박수를 보낸다.(루터의 종교개혁 200년 전의 이야기니까.)

세상에서 가장 먼저 만들어진 사람을 빗대어 가장 못생긴 일가를 지적한 대목은 창의력이 유독 돋보이는 장면이었다.  지혜로운 답변이 참 맘에 들었다.

어느 시대건 아니 그랬겠냐마는, 그 지독히 아름다운 공주는 대체 몇 남자의 손을 거치면서 정복 당하고 구해받고 다시 탈취되어지는지...;;;; 그 운명 참 고약하다 싶었다. 

이 책이 쓰여진 시기가 14세기라는 것을 생각하면 거듭 놀라게 된다.  지금이 무려 21세기니까^^;;

고전이라고 해서 무조건 지루하거나 교훈만 가득할 거라고 생각하면 오산. 난 사실 양영순의 누들누들이 같이 떠오를 정도였으니...;;;;

뜻밖에도 몹시 재밌게 읽은 책, 데카메론. 고전으로 분류되는 책 중에선 아주 재밌게 읽은 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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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의 노래 (1.2권 합본) - 우리 소설로의 초대 4 (양장본)
김훈 지음 / 생각의나무 / 2001년 10월
평점 :
구판절판


칼의 노래는 정말 매력적인 작품이었다.

처음 이 책을 읽고 나서 주변에 엄청 선전했었다. 그때가 2002년 가을이었는데,  정말 괜찮은 책 있다고 말을 하지 못해서 입이 근질근질할 지경이었다.

당시엔 검객을 주인공으로 한 팬픽 쓰는 일에 열중하던 때여서 이 책이 누구에 대해서 쓴 소설인 지는 생각지 않고 제목이 '칼'이 나오길래 무작정 도서관에서 빌려갔었다.  그리고는 이순신에 대한 이야기이며 특이하게도 1인칭 시점이고, 그 문장력의 흡인력이 거의 마력 수준임을 알고는 내 책 주문에, 지인들 선물에, 아주 책바람이 일어버렸었다.

그래서 이 책을 주변에 빌려주고 나면, 그 사람도 이 책의 매력 앞에 무릎을 꿇고 결국엔 모두 책을 사서 보는 신기한 일이 생겼는데, 아주 간혹, 난 별로던데? 하는 사람이 나오면 야만인! 취급을 할 정도로 이 책을 좋아했었다.

어쩌면 김탁환씨에 대한 나의 박한 점수는 똑같이 이순신을 노래했으나, 한 사람에 대한 편애로 빚어진 결과일지도 몰랐다.

아무튼, 이 책은 드라마로 다시 제작되기에 이르렀고, 나의 꿈은 계속 부풀었다.  안타깝게도, 집에서는 정규방송 시간에 드라마를 보기가 어려웠다. (지금까지도..)

그래서 나는 드라마 불멸의 이순신이 거의 끝나갈 무렵에야 1편부터 보기 시작했고, 아주아주 뒤늦게 다시금 이순신의 매력에 빠져들었다.

작가가 여자라는 사실을 알고는 대단히 놀랐는데, 나중에는 수긍이 매우 잘 갔다.  난 특히 예고편을 아주 좋아라 했는데, 예고편에서 카피라이트처럼 나오는 문장들이 김훈의 어법을 밟으면서도 여성 특유의 서사성과 시적인 느낌을 그대로 간수했기 때문이다.  몇 개를 옮겨보면 이렇다. 

명량해전(1597년 9월)

불패의 신화가 부활한다. 

물살 우는 울돌목으로

오라, 나의 적이여

내 몸에 포개진 칼날

다시 빛나는 승리를

(불멸의 이순신 94회 엔딩, 95회 예고)



다시 돌아온 바다

물의 칼들이 일어섰다

일휘소탕(한번 휘둘러 쓸어버리니)

혈염산하(피가 강산을 물들이도다)

(불멸 95회 엔딩)



세상의 끝에 선 투쟁

스스로 피 흘려 부르는 희망

불멸의 승리를 향해

오라, 아득한 적이여

내 마지막 바다 노량으로

(102회 엔딩.  103회 예고)



7년 전쟁의 끝

노량해전

이겨서 지켜내리라

내 칼의 마지막 울음

칼날 사이로 열리는 세상

불멸의 역사가 온다(104회 예고)

현재 주몽이 대단히 인기를 끌고 있지만 불멸의 이순신 볼 때만큼 재밌지는 않다.  더 길게 두고 봐야 알 터지만.

하여간, 불멸의 이순신을 오랜 시간 걸려서 104회에 스페셜까지 모두 보고는, 감격에 겨워 다시 칼의 노래를 펴 들었다.

일단 사람들에 대한 정보가 머리 속에 이미지와 함께 녹아 있고, 전쟁의 상황까지 모두 그려져 있으니 책을 더 샅샅이 살펴보며 그 재미를 더 만끽할 수 있을 거라고 여겼기 때문이다.

그런데... 이상했다.

그토록 좋아했고 감탄했고 감동 받았었는데, 드라마라는 대하사극을 머리 속에 집어 넣은 뒤에 보는 이 책 칼의 노래는, 처음 읽을 때만큼의 재미가 없었다.  그만큼의 탄력을 받지 못해 읽는 속도도 빠르지 않았고, 이상하게도 너무 느리고 지루하게 여겨졌다.

아뿔싸! 이게 영상의 힘이고 또한 함정이던가.  이 책이 원작이고, 이 책에 흠뻑 빠졌기에 드라마도 그토록 재밌었던 것인데, 오히려 이제는 드마라의 영향으로 영상과 음향이 없는 책 칼의 노래는 처음만큼 매력적으로 와닿지 않는 것이다.

암담했다.  왠지 내가 뭔가 실수한 것 같았다.  드라마를 본 직후 이 책을 다시 펴드는 것이 아닌데, 오히려 처음 만났던 그 설레임의 감격마저 퇴색하는 것이 아닐까 걱정이 되었다.

그런데,... 지금 또 다시 생각해 보니 그런 것들은 다 기우다.  김훈은 김훈이고, 드라마는 드라마고, 이순신은 이순신이다.

강렬한 영상을 본 직후여서 그렇지, 아마 조금 더 시간이 지난 뒤에 접하게 되면 그 감동은 또 다르게 다가올 텐데... 그런 걱정은 불필요한 시간 낭비였다.

그래서, 이제 칼의 노래는 김훈 작품의 '바이블' 격이 되어서, 그의 다른 모든 작품을 항상 칼의 노래에 비추어서 생각하게 된다.  얼마 전에 읽은 강산무진이 그랬듯이...

작가 김훈에게 칼의 노래의 성공이 꼭 장점으로만 작용하지는 않을 것처럼, 독자에게도 그런 것 같다.  그건 배우 김명민이 불량가족에서 깡패로 나왔을 때 참 안 어울리는 것 같지만, 그의 고군분투에는 박수를 보내주고 싶었던 마음과 비슷할 것 같다.

시간이... 필요하다.  감동을 살리고, 오히려 더 숙성시킬 시간이 필요하다.  아마 일 년 뒤에 다시 읽으면 또 달라질 테지.  그때는 어떻게 다를 지 수수께끼로 남겨두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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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없이 투명에 가까운 블루
무라카미 류 지음, 한성례 옮김 / 동방미디어 / 2004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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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판절판


출간된 지 30년, 국내에는 판금 서적으로 분류되었다가 90년대에 들어 해금... 참으로 찬란한(?) 역사를 지닌 책이다.  무라카미 류라는 이름은 익히 들었지만 그의 책을 접해보지 못했다가 지인으로부터 이 책을 받았다. 경고와 함께...;;;;

본인은 이 책을 읽고 무척 힘들었다고... 아마 별로 다르지 않을 거라고 내민 책에... 아니 그럴 리가? 하는 호기심이 먼저 일었다.  사실 소설 책을 읽고 '불쾌'라는 감정을 느낄 만한 때가 그리 흔하지 않기 때문에 궁금증이 오히려 책을 더 매력적으로 보이게 했다.

지금 새로 나온 책은 표지가 아주 그럴싸하지만, 내가 읽은 책은 구판으로 재생지 느낌의 갈색 종이였다.  뭐... 오래 되어서 빛바랜 건지도 모르겠다..;;;;

하여간, 신명조체를 싫어하는 나였지만, 그 책에 그 글씨체는 꽤 어울리는 분위기였다.  그런데 지금 이 책, 19세 미만은 살 수가 없다고 나온다.  내용을 읽은 지금은 이해가 가지만, 이 또한 쉽게 볼 수 없는 특징.

내용은, 책 줄거리 등에 나오다시피 마약과 섹스, 기타 등등의 퇴폐적인 소재를 다루고 있는데, 이건 꼭 영화 '거짓말'을 보는 기분이다.  예술성이 있는 지는 모르겠지만, 어쨌든 보고 나면 불쾌해지고 뭔가 기분 나빠지는 분위기...

대체 하고 싶어하는 이야기가 무엇인지 알 수가 없고, 그들의 방황과 혼란도 그닥 공감가지 않고, 이걸 끝까지 읽어야 하나 읽는 내내 계속 고민하게 되고...;;;;

기왕 읽은 것 도중에 포기하는 일은 거의 없는 지라, 가까스로 읽었지만 정말 힘들었다.  어찌나 독하던지...(ㅡㅡ;;;)

유명 작가의 작품이라고 무조건 독자의 사랑을 받지는 않겠지만, 작가의 다른 책도 이런 분위기인지 궁금해진다.  만약, 그런데도 불구하고 그토록 사랑을 받는 거라면, 남들은 아는데 나만 모르는 뭔가가 있을 테지만...;;;; 뭐, 그렇다고 하더라도 나의 평가가 더 좋아질 것 같지는 않다.

앞으로 무라카미 류의 이름을 보면 색안경이 먼저 등장할 지도 모르겠다. 그만큼 힘들었으니.ㅡ.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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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로그인 2006-10-10 11:2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도서관에서 이 책 읽을때 책을 덮었다가 다시 펼치고 고민 하면서 읽었습니다. 요즘 한국사회 보면 이 소설이 우리 미래상일수도 있고...무라카미 류 다른 소설들은 읽기에 무난한것 같은데요.

마노아 2006-10-10 17:3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제가 첫 만남을 잘못 가졌군요^^;;;; 우리 사회의 미래상이라고 상상해 보니 더 끔찍해지네요. 투명한 블루가 아니라 우울한 블루예요ㅡ.ㅜ
 
행복한 바보들이 사는 마을, 켈름
아이작 B. 싱어 지음, 황명걸 옮김 / 두레 / 1999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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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절


아이작 B. 싱어에 대한 관심이 생겨 찾아읽은 책이다.  '이디시어'가 어떤 것일지 잘 상상은 안 가지만, 그에게 노벨문학상을 준 특별함을 어디서건 찾아보고 싶었다. 

이 책은 제목처럼 바보들이 잔뜩 등장하는 마을의 이야기인데, 그 바보스러움의 극치란, 덤앤더머 따위는 결코 비교할 수 없는 수준이니, 웃어야 될 지, 놀랍다고 해야 할 지 난감하기도 했다.

단순히 바보들의 이야기만 옮긴 것은 아니고, 때로 해학과 풍자, 교훈도 남겨주지만, 그래도 그들의 바보스러움은 단 한 편도 건너뛰지를 않는 꾸준함(?)을 보여주고 있다.

마을에는 마을 사람들이 서로 다투지 않고 살 수 있게, 어려운 일이 있으면 고민을 들어줄 수 있는 현자들이 살고 있다.  그러나 현자들이라고 이름은 붙였지만, 그들은 바보마을의 현자임을 잊어서는 안 된다.  스스로는 굉장히 훌륭한, 혹은 현명한, 지혜로운 사람임을 자처하지만, 그들의 현명함을 더 어리석은 마을 사람들 앞에서만 빛을 발할 수 있는 수준이니, 어이 없음에 우리는 웃음으로 답하게 된다.

그러나 어리석은 사람들의 어리석은 이야기가 나오지만, 그들은 모두 행복한 사람들이다.  그들의 어리석음은 타인의 희생을 강요하지 않고, 부족하면 부족한대로, 만족하며 사는 지혜를 갖고 있다.  물론, 그들도 고민을 한다.  초조함도 갖고 있고 걱정도 한다.  그렇지만 그들의 고민과 걱정이라고 하는 것은, 현대인들이 짊어지고 사는 것과는 많은 차이가 있다.  이들은 쉽게 쉽게 문제를 해결하고 자족할 줄 안다.  현자들의 한마디 충고도 그들에게는 법처럼 움직이게 하는 힘이 있고, 마을 바깥 사람들의 눈으로는 그들이 속은 것처럼 보이지만, 역으로 생가해 보면, 그래도 행복할 수 있는 그들이 부럽기까지 하니, 어쩌면 속으며 사는 것은 우리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들은 분명 바보들이다.  그러나 행복한 바보들이다.  그들이 그 마을 밖으로 나오게 되면, 그들이 갖고 있는 순수함을 가지고는 결코 살아남지 못할 것이다.  아마도 현대인들처럼 약고 계산적인 사람으로 돌변할지도 모른다.  생존본능을 갖고.

하지만 그렇게 되면 그들은 더 이상 행복한 마을 사람들은 되지 못할 것이다.  그래서 그들은 그들 마을 안에서만 완성되고 완결되어진다.  우리는 다만 들여다보고 놀라고, 재밌어 하고, 또 부러워하면 된다.  우리가 그 마을 안으로 들어가려면, 우리 스스로를 지혜롭다고 여긴 오만을 몽땅 버려야 될 테지만, 동시에 비우면서 채워지는 행복을 맛볼 지도 모를 일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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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산무진
김훈 지음 / 문학동네 / 2006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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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의 작품을 읽는 것보다, 그의 작품에 대한 리뷰를 쓰려고 어떻게 서두를 열어야 할 것인가에 대한 고민을 더 많이 했다.  뭔가 그럴싸한 말로 열어보려한 것은 아닌데, 그냥 첫마디가 어려웠다.

''강산무진'으로 검색을 해보니, 강산무진도로 오주석씨의 책이 같이 떴다. 엇! 내가 몰랐던 책이네... 하며 잠시 그쪽에 가서 놀다가 아차!하고 되돌아 왔다..;;;;

작가 김훈과의 만남은 처음부터 몹시 매력적이었다.  도서관에서 우연히 '칼의 노래'를 발견하고, 그게 이순신에 관한 소설인 줄도 모르고 읽었다가 풍덩! 빠져버려서 헤어나오지 못했던 시간으로부터 몇년이 흘렀다.  그 사이, 내가 구해볼 수 있는 것이라면 모조리 구해 읽었고 거의 소장했고, 지금도 그의 이름이 뜨면 일단 흥분부터 하고 보는 열혈독자가 되었는데, 그런 지금도 작가 김훈을 얘기하는 것이 어쩐지 어렵다.  이 작품을 읽고서도 그런 느낌은 여전했다.

8편의 단편 중 "화장"만 2004 이상문학상 수상작으로 읽었고, 나머지는 모두 처음 보는 단편들이었다.

김훈을 떠올리면 그 탁월한 '문장력'을 이야기하지 않을 수 없는데, '개'를 읽을 때는, 특유의 문체를 살리지 않고, 그저 멍멍 개의 견격에서 시작한 말씨인지라, 그 지독히 흡인력있는 문체를 이제는 쓰지 않으려나? 하고 지레 짐작했었다. 

사실, 칼의 노래에서는 작중 화자의 분위기가 그의 문체 스타일과 몹시 잘 맞아 떨어지기 때문에, 아마도 이후로도 꽤 오랫동안 이순신!하면 김훈을 떠올릴 사람은 많을 것이다. 그런데, 그 말투로 다른 캐릭터의 이야기를 하면, 어쩔 수 없이 환상이 깨지게 된다.  "빗살무늬토기의 추억"을 읽을 때에 그랬다.  40대 중반의 소방수가 주인공인데, 그가 사용하는 말투와 어법이 이순신의 그것과 흡사하여, 나는 작품에 몰입하기가 많이 어려웠다. 현의 노래에서는 악사 우륵의 분위기를 이순신의 분위기와 섞인다 하더라도 크게 문제될 일이 없기에 작품을 읽는 데에 방해요소는 아니었다.

그런데 이 책, 8편의 단편에서는 거의 대부분이 칼의 노래에서 보여주었던 누구도 따라하기 힘든 어법과 말투를 모든 화자가 사용하고 있다.  그래서... 나는 참 혼란스럽고 조금 따로 노는 느낌을 받았다.

그나마 작중 주인공이 중년의 남성일 때는 괜찮았는데, "언니의 폐경"처럼 여성 화자일 때는 더더욱 느낌이 이상했다.  이 역시 나의 선입견일게 분명할 테지만, 뭐랄까.... 그의 그 특유의 말투를 좀 더 아껴보고 싶은 마음인데, 혹은 그 말투를 '이순신'의 그것!이라고 못 박고 싶은데, 다른 캐릭터가 나눠갖는다는 것에 심통이 난 기분이다.

그러나 그러면서도 역시 그 문장력에서 오는 매력을 부인할 수는 없는데, 나는 그가 사물을 볼 때 적외선 탐지기로 훑어가는 것은 아닐까 하는 착각이 들곤 했다.  작은 것 하나도 놓치지 않는 세밀한 관찰력은 그가 기자 출신이기도 했지만, 일종의 '장인정신'으로 여겨졌다.  그래서인지, 매우 다양한 직업군이 나오는데, 그들의 전문성을 프로로 보여주는 것에서는 두 손을 다 들었다.  내가 전혀 알지 못했던 다양한 직업, 다양한 장소, 다양한 시간대가 그에게서 나오고 있다.  그는 사람도, 사물도, 자연도..  어느 것도 그냥 지나치는 법 없이 집착이라고 할 만큼 쫓아가며 달라붙고, 그 속을 파헤친다.

그런데, 그토록 자세히 서술하고 설명하고 보여주면서, 정작 사람의 내적 상태에 대해서는 함구한다.  작품 속 화자들은 모두 감정 없는 사람 마냥 건조한 시선을 유지하고 있다.  심지어 죽어가는 사람을 묘사하는 장면에서도 그렇고, 죽어가는 사람이 자신일 때에도 화자는 감정의 큰 기폭없이 남의 일 말하듯 병을 얘기하고 죽음을 얘기한다.

그런데, 역설적이게도... 그래서 그들의 고통이 더 잘 보였다.  작품 속 화자들은 대부분이 중년 이상의 나이를 갖고 있었고, 살아온 시간이 살아갈 시간보다 더 많은 사람들이 대개였다.  이미 삶을 살만큼 살아보았고, 그래서 산전수전 다 겪어 보았고, 인생의 고단함이 무엇인지를 아는 그들의 체념과도 같은 어조와 삶에 대한 수긍은, 그랬기에 오히려 더 비장하게 보이는 것이었다.  여백... 비어냄의 미학같은 것... 슬프다, 아프다, 힘들다보다...  더 깊은 울음과 그에 대한 공감을 끌어내는 힘이 그의 글에는 배어 있었다.

그의 작품을 읽다 보면, 유독 오줌싸고 똥싸는 것과 같은 생리적 욕구 해결에 대한 묘사가 잘 나온다.  현의 노래에서도 그랬고, 화장에서 병든 아내의 배변과, 고향의 그림자에서도 그랬다.  과하다 싶을 만큼 적나라한 묘사는 때로 불편하게도 보이지만, 작가의 의도적인 기술이라는 생각이 줄곧 떠나지 않는다.  뭐였을까?  가장 자연상태의 인간을 보여주기 위함일까, 인간의 시원성을 얘기하고 싶은 것일까, 그도 아니면 가장 속되어 보이는 장면으로 인간의 가면을 내벗기기 위함일까... 에잇! 어렵다.ㅡ.ㅜ

표지 이야기를 끝으로 주절거림을 마쳐야겠다.  표지는 강산무진도의 그림 위에, 작중 화자가 이 그림을 보면서 서술하는 내용이 박혀 있는데, 몹시 고전적이고 우아하면서 지적인 느낌을 풍기고 있다.  그런데, 이중 껍데기의 표지를 들어내면 허옇게 색바랜 느낌의 양장본 표지가 나오고 김훈의 원고지 글자가 인쇄되어 있다.  그 글씨의 자유스러움과 또 흘려쓴 글씨체의 느낌은 허옇게 바랜 색깔과 함께 작품 내내 관통하는 이미지였던 '허무'와 맞닿아 있었다.  표지 디자인에서조차도 작품의 연장선으로 무언가 더 보여주려고 했던 것은 아닐까 지레 짐작해 보았다.  그렇지만 역시 정리하기는 어려운 법...ㅠ.ㅠ

이제 진짜진짜 마지막으로 제목을 뭐라고 써야 할까 고민하고 확인 버튼을 눌러야겠다.

별 셋을 줄까, 별 넷을 줄까 고민했는데, 결국엔 자동적으로 별 다섯을 주고 만다.  여전히 난 그의 문장력에 사로잡혀 있으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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