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자는 어디에서 오는가 어른을 위한 동화 7
전경린 지음 / 문학동네 / 1998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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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절


도서관에 신청한 책들이 등록을 마치고 오픈되었다.  내가 신청한 무수한 책들이 쏟아져 들어온 기쁨에 욕심껏 책을 빌려왔는데, 그 중 하나가 이 책이었다.

어쩌면 "여자는 무엇으로 사는가"와 비슷한 제목에 호감이 갔을 수도 있고, 또 어쩌면 '전경린'이라는 이름 석자 때문에 그녀의 목소리가 듣고 싶었는 지도 모르겠다.

어른을 위한 동화라는 타이틀을 부제로 달고 있지만, 나는 이 책이 동화로 읽혀지지 않는다.  나 스스로는 소설이라고 분류했지만 꼭 에세이같기도 한 이 책은, 작가 전경린의 스타일을 그런 식으로 표출했지 싶다.

처음에 에세이인 줄 알았던 나는 그림 작가가 따로 있어서 좀 의아했다.  뒤늦게 부제를 보고서 아! 했지만, 이 책은 딱히 어느 부류라고 줄을 세울 수가 없다.  여자 이야기이면서 사람의 이야기이고, 인생을 얘기하면서 무상함을 같이 말해준다.

동화의 틀을 빌려온 것은 선녀와 나무꾼이다.  어느날 산 속에서 벌거숭이 여자 하나를 업어온 숯 굽는 사내.  고운 그녀를 아내로 삼아 정성껏 돌보았지만, 야성의 생리를 가진 여자는 곁을 주지 않는다.  아이도 생겼고, 그녀의 손재주로 집안의 가세도 늘렸지만, 그녀는 보름달만 뜨면 밖으로 뛰쳐나가고 싶어했고, 그녀를 잃을까 두려워 한 남편은 그녀를 방안에 가둔 채 내보내 주지 않는다.

어느 날 자신의 본성을 제어하지 못하고 뛰쳐나간 여인은 갖바치로부터 가죽신 짓는 법을 배워온다.  여기서 선문답같은 대화가 오고 가는데, 밑줄긋기로 한 대목을 옮겨 보았다. '기억상실'이라는 소재는 매우 진부한 편이지만, 자신을 알지 못하는데 무엇을 추구하고 무엇을 갈망하며 무엇에 집착하며 살 수 있을까 싶다.

남자는 평생의 소원이 '이녁을 행복하게 해줄게'라는 말을 듣는 것이었지만, 정작 자신이 그 말을 해준 상대에게 사랑을 가장한 집착만을 보일 뿐이었다.  여자는 자신을 이끌어 본성을 가르쳐 준 늑대 자매들을 만나지만 이미 이 땅에서 인간으로 정착한 시간 만큼의 삶의 무게를 지고 있어서 선뜻 자아를 찾지 못한다.  남편도, 병든 시어미도, 그리고 어린 아이들도 눈에 밟힌다.  그렇게 평범하게 살고자 본성을 꺾었지만, 뜻하지 않은 곳에서 변수가 발생한다.

그래서 결국... 어찌 보면 해피엔딩이기도 하고 어찌 보면 너무 서글프기도 한 결말로 이어지는데, 나는... 솔직히 작가가 말하고자 하는 것이 무엇인지를 모르겠다.  주어진 본능대로 살지 못해 억울하다는 얘기인가.  아니면 본성을 꺾고 가족에 충실하자는 얘기인가...  작가 역시 똑부러지게 기다!하고 떨어지는 대답을 독자로부터 요구하지는 않을 것 같지만, 이 책의 제목대로 '여자는 어디에서 오는가'라는 질문에 대한 대답을 나는 찾기가 어렵다.

여자에게 찾아오는 무수한 성적 억압과 탈취, 딸에게 가해진 성적 폭력... 배경이 옛스럽지만 오늘날이라고 애써 우긴다면 꼭 비켜갈 수는 없는 얘기도 되겠다.(도를 깨우친 듯 보였던 갖바치도 배움의 대가로 정절을 요구한다)  남편과 자신에게 복종부터 할 것을 가르쳤던 시어머니의 행태부터도 그렇고 말이다.

책은 어렵게 읽혔음에도 불구하고 재밌었다.  피곤하다고 외치면서 이 밤중까지 깨어 있게 한 것을 보면 그건 틀리지 않은 얘기다.  중간중간 노래처럼 표현된 그녀의 마음들은 꼭 시처럼 읽혀져서 작가 전경린을 다시 한번 감탄하며 바라보게 만들었고, 적나라하다 못해 너무나 리얼한 그림도 이 책과는 잘 맞아 떨어진다.

어렵고 어려운 이 책의 주제이자 제목은, 살면서 내내 곱씹어 보아야 할 듯하다.   대체... 어디에서 오는가... 아니, '인간'은 어디에서 오는가라는 질문으로 바꿔야 하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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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통령과 기생충 - 엽기의학탐정소설
서민 지음 / 청년의사 / 2004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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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판절판


알라딘 대주주님의 유명한 글을 드디어 보게 되었다.  아무리 기다려도 알라딘에서는 품절이 풀릴 것 같지 않았고, 이러다가 절판이라도 될까 봐 서둘러 수소문, 기어이 책을 구했다. 

내가 좋아하는 재생지를 사용한 터라 책이 가벼워서 들고 다니기에 부피는 커도 무겁지 않았다.  난 이게 1편이라고 생각했는데, 이미 <기생충의 변명>이라는 책이 있었다.  조금 아쉬웠지만, 이 책을 읽는 데에 방해가 되는 것은 전혀 없다.

주인공은 기생충 탐정 마태수다. (헌데 왜 마태우스가 아닐까???)

기생충을 기피하는 사회 분위기에 아랑곳 않고 파리 날리는 사무실을 운영함에도 유머와 정의감을 잃지 않는 탐정 마태수, 그는 전혀 상관없을 것 같은 사건 사고에서도 기생충과의 연계성을 찾아내고 기생충을 이용하여 제 사리사욕을 챙기려는 자들을 찾아내어 피해자를 구해낸다.

기생충을 통해서 이토록 다양한 이야기가 등장할 수 있다는 사실에 새삼 감탄했으며, 너무도 많은 종류의 기생충들의 활약(?)에 정신이 아찔할 지경이었다.  딱 한번, 저녁 먹기 전에 책을 잠깐 읽었는데 밥 먹는 내내 생각이 나서 힘들었던 적이 있다.  이 책은, 식전에는 금서다. ^^;;;;

평소 익히 알아오던 유머 감각이었지만 책 속에서 마태수가 보여주는 언행들은 조금씩 조금씩 웃게 만들다가 끝내 폭소를 자아낸다.  게다가 시국과 전혀 무관하지 않은 사건들, 사람들, 그리고 갖고 있던 사고관들까지... 현실을 적절히 패러디하는 작가의 능력이 아주 탁월했다.  덧붙여 이름 교묘하게 바꾸기의 명수라고나 할까.  안과의 과열 경쟁을 부추겼던 조안과 주안과 도안과가 경품으로 자전거까지 내걸었다라는 부분에서는 어찌나 웃기던지.....;;;;;

프랑스로 연수를 떠난 마태수는 그 후 다시 돌아왔을까.  저자의 다른 책들이 더 있으니 찾아 읽어야겠다.  드디어 알라딘 대주주의 책을 보았다는 것만으로도 왠지 뿌듯하다.  책도 재밌었고, 유익하기까지 했으니 더욱 그렇다.

책 말미에 퀴즈가 있는데 10문제 중 8문제 정도는 맞추었으니 준수한 편이라고 하겠다.  두루두루 소문이 퍼져서 품절/절판 근처에도 가지 않았으면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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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노아 2006-11-29 16:3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하핫, 맘도 너그러우셔라^^ 다음 기회를...(응? 어떻게?? ^^;;;)
 
박사가 사랑한 수식
오가와 요코 지음, 김난주 옮김 / 이레 / 2004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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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판절판


지인의 추천으로 읽게 되었다.  작품에 대한 사전정보 없이 가볍게 읽기 시작한 터라 아무 부담도 없었고, 기대도 실망도 없던 시작이었다.

작품은 간결했고 깨끗했다.  박사가 사랑한 수식처럼.

불의의 교통사고로 1975년에서 기억이 멈추어 있는 64세의 수학박사(1991년 시점으로).  그의 기억력은 80분을 지속하는 것이 고작이었고, 그 시간이 지나버리면 1975년 이후의 기억은 모두 '리셋'이다.

벌써 9차례의 파출부가 바뀌었고, 새로 바뀐 파출부인 '나'가 박사를 돕게 되었다.

미혼모로 유일하게 할 수 있는 일이 '파출부'였던 나는, 열살짜리 아들을 두고 있었는데, 아이가 있다는 것을 알게 된 박사는 아이를 혼자 방치시키는 것은 있을 수 없는 일이라며 일하는 곳으로 아이를 데리고 오게 만든다.  아이의 머리가 평평해서 '루트'라는 이름을 쥐어준 박사는, 아이가 한번도 느껴보지 못한 따스한 정을 쏟아주며 아이를 보살펴준다.

그 자신 늘 어눌하고 서툴렀음에도, 아이가 있는 순간에는 언제나 예의바르고 최선의 모습을 보여주려고 애쓰는 박사, 그러나 박사는 언제나 80분만큼만 기억하므로 이들의 관계는 매일 아침 새로운 관계로 시작된다.

박사는 양복 가득 클립으로 고정한 메모지에 자신이 기억해둬야 할 것들을 적어두었다. "새로온 파출부와 그녀의 아들"

"내 기억은 80분만 지속된다"라는 무섭고도 잔인한, 그러나 그의 혼란을 막기 위해 반드시 필요한 메시지 등

이야기를 이끌어가는 나와 루트는 박사가 자신들을 알아보지 못하고 똑같은 인삿말을 반복하여도 지루해하지도 않고 짜증내지도 않고 오히려 박사가 혼란스러워하지 않도록 돕는 데에 최선을 다한다.

박사는 자신이 사랑하는 '소수'와 그밖의 자연수와 유사수, 우애수... 기타 등등... 온갖 수학적 이야기들을 늘어놓는데, 세상에... 그토록 싫어했던 수학이 이토록 경이롭게 느껴질 거라고는 이 책이 소설이라고는 해도 도무지 믿기지 않을 정도였다.

여기에는 옮긴이의 역할이 꽤 크다고 보이는데 김난주씨 번역을 많이 접했지만, 이번 만큼 만족스러웠던 적은 또 없었을 만큼, 이 작품은 우리말로 쓰여진 문학만큼 자연스러웠다.

저자가 참고한 수학 책이 뒤에 나열되어 있는데, 생각보다는 적은 권수였다.  그 안에서 여기에 필요한 이야기들을 찾아내었다는 것이 참 신기했다.

작품 속에서 등장하는 사람은 많지 않다.  그런데, 그 안에 우리가 살아가면서 만나는 온갖 군상의 사람들이 다 모인 듯 꽉 찬 느낌이 든다.

이야기를 진행하는 '나'의 성장배경에서 역시나 미혼모였던 어머니(루트의 외할머니)가 역시나 미혼모가 되어버린 딸로 인해 받은 상처라든가, '나'가 생존을 위해 파출부 일을 시작한 것, 혼자 자라다시피 하는 아이가 박사라는 존재의 든든함으로 얻게 되는 위로, 그리고 친구가 되어주는 모습, 아이를 최우선으로 놓으며 '칭찬'을 먼저 앞세우지만, 그 자신은 칭찬이란 것을 받을 줄 모르는 박사의 어리고도 성숙한 모습, 또 박사와 '나'의 관계에 질투를 앞세운 미망인의 모습...

작품을 읽어나가면서, 아마도 조금은 슬픈 결말이지 않을까 싶었다.  그러나, 뚜렷한 해피엔딩은 아니었지만, 이 정도면 아름다운 결말이 아닐까 생각하며 작품을 마무리할 수 있었다.  만약 기적이 일어나 박사의 기억이 회복된다던지 했다면 얼마나 황당하고 감동이 줄어들었을까.

박사가 남겨준 유산(물질적 유산이 아니다)을 '나'와 루트가 어떤 식으로든 이어가는 모습에 내 마음도 따스해지는 기분이었다.

이 책을 들고 있다가 우연히 마주친 사람이 알려준 건데, 곧 영화로 개봉한다고... 오홋!  과연 극장에서 볼 수 있을 지 당장 자신은 없지만 어쨌든 기대된다.

진짜 요새는 일본문학이 대세인 것 같기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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짱꿀라 2006-11-18 02:0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우아 마노아님 수학잘하시는 가보다. 저는 수학 잘 못했거든요. 아무튼 리뷰 잘보고 갑니다. 주말 잘보내세요.

마노아 2006-11-18 06:5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에고고, 그렇지 않아요. 수학 잘 못했답니다. 그치만 책에서 수학이 이렇게 멋진 거였구나... 하고 알았죠^^ 산타님도 멋진 주말 보내셔요~
 
가자에 띄운 편지
발레리 제나티 지음, 이선주 옮김 / 낭기열라 / 2006년 10월
평점 :
구판절판


이스라엘에서 성장한 프랑스 작가가 쓴 탓인지, 이 책은 영화같고 지극히 소설같은 전개를 취하면서도 또 지독하게 현실을 반영하고 있다. 

이스라엘의 17세 소녀 탈은 어느 날 자기 옆집이 테러 공격을 받게 되자 그들과 팔레스타인 사이에서도 평화가 지속되었으면 하는 마음으로 편지 한통을 쓴다.  병 속에 담겨진 편지를 가자에서 군복무중인 오빠를 통해 바다에 띄워달라는 것.

오빠는 바다 대신 모래 위에 병을  꽂아 놓았고, 그 편지는 가자에 사는 20세 청년 나임의 손에 들어간다.

탈이 남긴 메일 주소로 2주 뒤에 나임은 메일을 보내어 그녀의 치기어린 행동을 양껏 비웃는다.  그러나 어떤 형식으로든 돌아온 답장에 탈은 기뻐한다.  그리고 지속적으로 무시당하면서도 지치지 않고 계속 메일을 보낸다.  끝끝내 무답장으로 일관해 오던 나임도, 탈이 95년에 암살된 이자크 라빈의 이야기를, 그때 그녀와 그녀의 가족들이 느꼈던 절망에 대해 진실되게 이야기하자 끝내 답장을 보내게 된다.  여전히 빈정거렸지만 적어도 그녀가 편지를 보내는 진실된 마음은 인정한 것.

그렇게 둘 사이에 이메일을 통한 편지가 계속 오간다.  탈은 자신의 꿈인 영화감독에 관한 일을, 또 자신의 가족과 사랑하는 남자친구, 학교 이야기 등을 정감있게 얘기하지만 나임은 자신의 나이도 가족도, 무엇 하나도 제대로 얘기하지 않는다.  이제는 답장을 보내긴 하지만 오픈 마인드는 소원해 보인다.

그러다가, 팔레스타인 쪽에서 테러 사건이 발생한다.  탈은 혹시라도 나임에게 문제가 생겼을까 봐 애태우고, 꽤 시일이 지나고 나임은 자신이 무사함을 알린다.  내내 차가운 듯 표정을 감추지만, 사실 나임은 끊임없이 그녀를 떠올리며 거기에 휘둘리는 자신을 느낀다.  그러나 그렇게 이스라엘의 누군가와 연락을 주고 받는 사실이 알려질까 봐 늘 두려울 수밖에 없고 이메일은 확인하는 즉시 지워버린다.  심지어 그녀가 보낸 그녀의 사진마저도.

그리고 이제 정반대의 사건이 터진다.  이스라엘쪽에서 테러 사건이 발생했는데, 사고 지점에 그녀가 가기로 되어 있었던 것을 알았던 나임은 걱정으로 폭주하기 시작한다.  몇번이나 이메일을 보내고 나서야 답장이 왔는데, 불행 중 다행으로 사고 현장에 있었지만 화는 면했던 탈은, 그러나 사고로 인한 충격으로 이미 넋이 나가 있는 터였다.

평화를 갈망했던 그녀는 '테러'의 진면목을 눈으로 확인하고서 그들이 그토록 원한다 하여도 너무나 멀 수밖에 없는 현실의 평화를 실감하며 절망하고 만다.  이제 그녀를 위로하고, 그녀에게 희망을 북돋아 주는 것은 나임의 몫이 된다.

두 사람은 채팅을 하면서 좀 더 마음을 열게 되고, 탈은 가족들의 도움으로 혼란에서 조금씩 벗어난다.  그런데 여기서 일종의 반전이 생긴다.  그녀는 두 사람이 우연히 알게 된 사이라고 믿었는데, 어느 정도는 강제력이 동원된 사이였다.  오빠는 그녀의 편지를 먼저 읽어보았던 것이고, 편지가 든 병을 일부러 적당한 지점에 꽂아놓고 누군가가 집어가기를 지켜보았던 것이다.  그리고 나임이 편지를 읽는 것까지도 목격을 한 것이었다. 

그러나 여기까지가 일종의 우연이었다고 한다면 둘 사이의 필연은 그 다음에 밝혀진다.  바로 나임과 탈은 이미 오래 전에 서로 알고 있었던 사이라는 것.  나임이 이스라엘을 체험하고자 그곳에서 아르바이트를 할 때 이스라엘인으로서 팔레스타인인 자신에게 열린 마음을 보여주었던 이가 바로 탈의 아버지였고, 나임은 그녀의 집에서 자기도 하고 식사도 하고 텔레비전도 보고 탈의 공부를 도와주기도 했던 것이다.(헌데 이름을 알고도 왜 몰랐을까???)

이제 그녀를 사랑하고 있는 자신을 부인하지 못하는 나임은 더 큰 꿈의 실현과 희망을 성취하기 위해 의사가 되기 위한 공부를 하려고 캐나다로 출발한다.  출발 직전에 탈에게 마지막 메일을 보내면서 답장을 하지 말라고 당부하고 3년 뒤 로마에서 보자고 한다.  로마의 휴일의 그 장면처럼.

엔딩 부분은 상당히 작위적이어서 식상한 면이 있었지만, 그럼에도 작품은 별 다섯을 후히 주고도 남는다.  그건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의 현재 모습을, 과거를 여과 없이 적나라하게 보여주었음이고, 그들의 골깊은 감정과 상처가 또 얼마나 큰지를 현실적인 수치로 보여주기 때문이다.  그곳에도 우리와 똑같은 아버지와 어머니, 가족이 있고, 학교와 선생님, 학생들이 있는데, 살아가는 모습은 우리와 너무도 다르다.

나임의 어머니는 그를 낳으면서 더 이상 회임이 불가능하게 되었는데 가자에서 거의 유일할 외동아들이라는 그의 설명이 안타까웠다.  (요즘같은 시대에도 '죽음'의 위협 때문에 자식을 많이 낳아야 한다는 현실이라니, 얼마나 끔찍한가.)

테러를 직접 목격한 뒤 울부짖는 탈의 얘기 중, 그곳에 사는 그들조차도 그렇게 막연하게 느끼는데, 고작 텔레비전이나 신문기사, 아니면 그것도 접하지 않는 전세계의 그 누구가 그들의 공포와 절망을 피부로 느낄까... 아닌 게 아니라 그건 바로 우리의, 나의 이야기이지 않은가.

내게 이 책이 더 가슴에 와 부딪칠 수밖에 없는 것은, 비슷한 시기에 읽은 한 페이퍼 때문이었다.  이라크 현지를 다녀온 지기님의 3년 전 글은, 3년이 지난 지금도 아플 수밖에 없는 현실을 반영한다.

(참고 : http://www.aladin.co.kr/blog/mypaper/1000091)

인간은 희망 없이 살기는 너무도 나약한 존재다.  때로 그 희망은 절대로 성취할 수 없는 머나먼 것이기도 하다.  허나, 닿을 수 없을 만큼 멀리 있다 할지라도 포기하지 않는 한, 포기될 수 없는 한 인간은 버틴다.  그리고, 그를 위해 애쓰고 노력하고 희생하기 시작할 때 희망은 한걸음씩 다가온다.  작품 속 탈의 아버지가 30년을 노력하고도 달라지지 않는데 포기하지 않냐라는 딸의 물음에 "30년이란 시간은 기나긴 역사 속에서 보면 그리 대단한 게 아니란다"라고 대답한다. 

그렇다.  어쩌면, 그 모든 수고로움의 대가와 열매는 당대에 이뤄지지 않을 수도 있다.  본인에게는 너무나 소원한 일이 될 수도 있다.  그건 어찌보면 억울할 수도 있는 일이지만, 그럼에도 아름답고 숭고한 일이다.  서로가 서로를 증오하고, 테러라는 극도의 공포 속에서 살고 있는 그들에게 막연하고도 추상적인 '희생'과 '평화', '희망'을 바라는 것은 너무도 태만하고 또 오만한 부탁같아 보이지만, 그럼에도 포기하랄 수가 없다.  작품은 과거와 현재를 이야기했지만, 미래를 얘기할 수는 없었다.  그러나, 작가는 분명 그들의 미래가 탈과 나임의 바람대로 평화를 향해 더 다가가는 시대라고 믿고 있었다.  나 역시, 그렇게 믿고 싶다.  아니, 믿는다.   그리고, 이건 그들만의 이야기가 아니다.  남과 북으로 갈라져 있는, 지역구도로 갈라져 있는, 그밖의 여러 대립으로 나눠져 있는, 우리 모두의 이야기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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폰더 씨의 위대한 하루 폰더씨 시리즈 4
앤디 앤드루스 지음, 이종인 옮김 / 세종(세종서적) / 2003년 7월
평점 :
구판절판


생각해 보면, 귀 얇은 나는 누군가 좋더라~ 할 때 그 책을 많이 궁금해 하고 읽게 된다.

리뷰가 올라오면 별점이 다섯이라면 일단은 한번 더 눈도장을 찍는다.  사람마다 별점 기준이 다 다르건만...

워낙에 입소문이 과했던 이 작품.  아무래도 내 보기엔 거품이 과한 것 같다.

설정 자체는 괜찮았다.  극도의 위기에 몰린 폰더씨가, 역사적으로 중요한 일을 했던, 혹은 중요한 순간에 놓였던, 또는 위기의 순간에 닿았던 인물들을 만나면서 삶의 지침을 전달 받고, 그것으로 큰 깨달음을 얻는 것... 그러나, 그가 만나는 사람들의 면면을 본다면 그들로부터 나오는 도움이 어이가 없거나, 혹은 동의할 수 없거나, 혹은 황당할 때가 있어 나를 불편케 했다.

원폭투하를 놓고 고민하는 트루먼이라... 아무리 일본이 잘못했고, 또 용서할 수 없는 죄악을 저질렀어도, 원자폭탄을 떨어뜨려놓고는 어쩔 수 없는 노릇이었다!  라고 말하는 것은 어불성설이다.  정말 트루먼이 그런 고민을 했을지라도 말이다.  지금의 부시가 북한을 두고, 이라크를 두고 해왔던 행동들에 무엇으로 면죄부를 줄까.  그들의 잘못은 그들의 잘못이고, 거기에 대한 심판은 미국의 몫이 아니다.  트루먼의 그 자조 섞인 한숨이란 역겨울 뿐이었다.

같은 예는 아니지만, 그래서 안네 프랑크를 만나는 것은 고인에 대한 죄스러움마저 느끼게 했다.  그녀가 일기장에 썼듯이, 희망을 포기하지 않고 열심히 살고자 했던 것은 사실이지만, 그렇다고 폰터씨에게 그렇게 희망찬 메시지를 주는 것은 과하게 느껴졌다.  메시지 자체만으로는 감탄했지만.

폰더 씨가 미래로 가는 것은 어떤가.  그의 인생이 어떻게 변화되었는가... 로 느껴지기 보다, 저자가 이 책으로 돈을 얼마만큼 벌었는가...로 비쳐지니, 내가 꼬였다고 꼬였다고도 하겠다.  그렇지만, 저자가 노렸던, 혹은 많은 이들이 느꼈던 감동의 정체를 나는 공감하지 못하겠다는 거다.

각 장의 주요 메시지만 따로 묶어놓은 페이지를 복사해두긴 했지만, 그 부분 말고는 전체 책은 내게 영 아닌 책이었다.(그래도 메시지가 좋아서 별점은 셋!)

아무래도 나는 처세술에 관련된 책이랑은 제대로 궁합 맞기가 좀 어려운가 보다.  그나마 참 좋아라 했던 마시멜로 이야기는 그렇게 뒷통수를 치고 말이다.(그렇다고 책의 감동이 떨어졌던 것은 아니지만 배신감은 느꼈다.)

아무튼 그래서, 나는 이 책의 제목을 폰더씨의 과대망상 하루라고 적었다.  좀 더 피부에 와 닿는 현실적인 희망을 제시해달란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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