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자는 어디에서 오는가 어른을 위한 동화 7
전경린 지음 / 문학동네 / 1998년 11월
평점 :
품절


도서관에 신청한 책들이 등록을 마치고 오픈되었다.  내가 신청한 무수한 책들이 쏟아져 들어온 기쁨에 욕심껏 책을 빌려왔는데, 그 중 하나가 이 책이었다.

어쩌면 "여자는 무엇으로 사는가"와 비슷한 제목에 호감이 갔을 수도 있고, 또 어쩌면 '전경린'이라는 이름 석자 때문에 그녀의 목소리가 듣고 싶었는 지도 모르겠다.

어른을 위한 동화라는 타이틀을 부제로 달고 있지만, 나는 이 책이 동화로 읽혀지지 않는다.  나 스스로는 소설이라고 분류했지만 꼭 에세이같기도 한 이 책은, 작가 전경린의 스타일을 그런 식으로 표출했지 싶다.

처음에 에세이인 줄 알았던 나는 그림 작가가 따로 있어서 좀 의아했다.  뒤늦게 부제를 보고서 아! 했지만, 이 책은 딱히 어느 부류라고 줄을 세울 수가 없다.  여자 이야기이면서 사람의 이야기이고, 인생을 얘기하면서 무상함을 같이 말해준다.

동화의 틀을 빌려온 것은 선녀와 나무꾼이다.  어느날 산 속에서 벌거숭이 여자 하나를 업어온 숯 굽는 사내.  고운 그녀를 아내로 삼아 정성껏 돌보았지만, 야성의 생리를 가진 여자는 곁을 주지 않는다.  아이도 생겼고, 그녀의 손재주로 집안의 가세도 늘렸지만, 그녀는 보름달만 뜨면 밖으로 뛰쳐나가고 싶어했고, 그녀를 잃을까 두려워 한 남편은 그녀를 방안에 가둔 채 내보내 주지 않는다.

어느 날 자신의 본성을 제어하지 못하고 뛰쳐나간 여인은 갖바치로부터 가죽신 짓는 법을 배워온다.  여기서 선문답같은 대화가 오고 가는데, 밑줄긋기로 한 대목을 옮겨 보았다. '기억상실'이라는 소재는 매우 진부한 편이지만, 자신을 알지 못하는데 무엇을 추구하고 무엇을 갈망하며 무엇에 집착하며 살 수 있을까 싶다.

남자는 평생의 소원이 '이녁을 행복하게 해줄게'라는 말을 듣는 것이었지만, 정작 자신이 그 말을 해준 상대에게 사랑을 가장한 집착만을 보일 뿐이었다.  여자는 자신을 이끌어 본성을 가르쳐 준 늑대 자매들을 만나지만 이미 이 땅에서 인간으로 정착한 시간 만큼의 삶의 무게를 지고 있어서 선뜻 자아를 찾지 못한다.  남편도, 병든 시어미도, 그리고 어린 아이들도 눈에 밟힌다.  그렇게 평범하게 살고자 본성을 꺾었지만, 뜻하지 않은 곳에서 변수가 발생한다.

그래서 결국... 어찌 보면 해피엔딩이기도 하고 어찌 보면 너무 서글프기도 한 결말로 이어지는데, 나는... 솔직히 작가가 말하고자 하는 것이 무엇인지를 모르겠다.  주어진 본능대로 살지 못해 억울하다는 얘기인가.  아니면 본성을 꺾고 가족에 충실하자는 얘기인가...  작가 역시 똑부러지게 기다!하고 떨어지는 대답을 독자로부터 요구하지는 않을 것 같지만, 이 책의 제목대로 '여자는 어디에서 오는가'라는 질문에 대한 대답을 나는 찾기가 어렵다.

여자에게 찾아오는 무수한 성적 억압과 탈취, 딸에게 가해진 성적 폭력... 배경이 옛스럽지만 오늘날이라고 애써 우긴다면 꼭 비켜갈 수는 없는 얘기도 되겠다.(도를 깨우친 듯 보였던 갖바치도 배움의 대가로 정절을 요구한다)  남편과 자신에게 복종부터 할 것을 가르쳤던 시어머니의 행태부터도 그렇고 말이다.

책은 어렵게 읽혔음에도 불구하고 재밌었다.  피곤하다고 외치면서 이 밤중까지 깨어 있게 한 것을 보면 그건 틀리지 않은 얘기다.  중간중간 노래처럼 표현된 그녀의 마음들은 꼭 시처럼 읽혀져서 작가 전경린을 다시 한번 감탄하며 바라보게 만들었고, 적나라하다 못해 너무나 리얼한 그림도 이 책과는 잘 맞아 떨어진다.

어렵고 어려운 이 책의 주제이자 제목은, 살면서 내내 곱씹어 보아야 할 듯하다.   대체... 어디에서 오는가... 아니, '인간'은 어디에서 오는가라는 질문으로 바꿔야 하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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