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은 중간고사 시작 첫째 날이었다. 평소의 고사 기간에는 1교시 시감이 없다면 조금 여유있게 출근도 가능하고, 2.3교시 시감이 없다면 좀 더 이른 퇴근도 가능하겠지만, 이번에 내가 맡은 업무는 고사계이기 때문에 지지난 주부터 업무가 많이 늘어나면서 야근도 하고 좀 정신 없이 지냈고, 오늘은 평소보다 더 일찍 출근해야만 했다. 

아침에 서둘렀음에도 머리는 말리지 못하고 출근. 날씨는 어찌나 춥던지 그대로 얼어붙나 했다.  

일찌감치 도착해서 인쇄실로부터 시험지를 인수받을 생각이었는데 인쇄실 선생님이 아직 출근 전. 이때부터 좀 초조했다. 고사계 업무를 맡은 사람은 모두 네 명인데 총 책임자는 다른 학교에 계시다가 금년에 우리 학교로 오셨고, 나머지는 1.2.3학년을 각각 담당했다. 나는 2학년 담당. 1학년은 과목수도 적고 선택과목도 없기 때문에 업무가 굉장히 적은 편이지만 그나마도 원로 교사가 맡아서 그냥 주변에서 묻어서 일을 하게 되었다. (이분이 컴퓨터를 못 쓰신다.-_-;;;;) 

시험 시작 30분 전에 인쇄실이 열려서 시험지를 이동해 와서 배부를 했는데 뭔가 혼란스럽다. 반을 이동해서 시험을 보기 때문에 3학년 아이들이 1교시에 3학년 교실과 2학년 교실에 절반씩 나누어 시험을 본다. 그런데 교실을 전부 3학년으로 표기를 해두어서 자기가 감독할 반의 시험지를 찾아가는 선생님들이 헤매는 것이다. 게다가 우리 대빵은 무조건 예령 5분 전에 신고하고서 찾아가라고 미리 왔던 선생님들을 되돌려 보내면서 좀 원성을 샀다. 굳이 그럴 필요까지는 없어 보이긴 했지만, 오랜만의 시감인지라 자기가 가져가야 할 것들을 잘못 가져가시는 분이 엄청 많았다. 그러나 모두들 불만이 꽉 차서 원성이 자자했다. 여기까지는 그냥 해프닝인데 문제는 다음. 

뭔가 과목이 안 맞는 거다. 원래 시험 하루 전에 담당 과목 선생님들이 시험지를 분철한다. 그러니까 각 반에 들어갈 것들을 개별 포장을 하는데 이게 안 맞는 거다. 그 때부터 아직도 젖어 있던 내 머리칼이 식은땀으로 재차 젖기 시작했다. 이럴 수가. 경제 과목이 분철이 안 되어 있는 것이다. 과목 담당 선생님께 전화 연락을 하니 깜.빡. 하셨다고. 세상에, 이런 걸 깜박할 수도 있다니. 그나마 다행으로 그 과목을 선택한 사람이 많지가 않아서 급하게 분철해서 각 반으로 돌렸다.  

이어서 터진 문제는 OMR카드. 학교에서 전에 쓰던 게 많이 있다고 카드 추가 주문을 하지 않고 예전 것을 쓰라고 했는데, 이 카드들은 과목 코드가 59번까지만 표기가 가능하다. 그러나 3학년 1교시 첫 과목은 과목 코드가 80번대였다. 여기서 각 반 대 혼란. 방송으로 급히 과목코드를 대체해서 시험을 진행시켰다.  

1교시 시감인 선생님이 3교시로 잘못 알고 아직 출근 전이어서 시감대기 선생님이 급히 들어가셨다가 중간에 교대하고 나오는 일이 있었는데 이런 일이야 간혹 발생하는 일이니 애교라고 생각....하기로 했지만 역시 좀 황당.

작년까지는 1과목과 2과목이 무엇인지, 언제 시작해서 언제 끝나는 지를 모두 각각 프린트해서 시험지와 함께 넣어줬었는데 금년에 새로 오신 우리 대빵이 각 반에 전체 시험 일정을 모두 배부했으니 그건 생략하겠다고 하셨다. 기존 체제에 익숙한 선생님들은 또 아우성이었고, 우리 역시도 그건 그대로 하는 게 좋다고 했지만 요지부동. 그러나 결국 1교시 대혼란을 겪으시고 나서는 2교시 2학년 시험에서는 인문 계열만 안내 과목을 배부하셨다. 그랬더니 이과 계열에서 또 아우성. 그냥 다 하자니까...ㅠ.ㅠ 

2교시 시험 시작하고 나서 각 반에 배부할 정답표를 만드는데, 원래 시험 원안지를 걷을 때 정답표도 걷기로 되어 있었는데 작년 2학기 기말 때 '문제풀이'가 추가되면서 정답표는 안 내도 되는 것으로 진행했었다. 업무가 많아질 것을 고려했던 것이었는데, 그 바람에 고사계 일이 너무 늘어버렸다. 이원목적분류표를 그대로 아이들한테 줄 수 없으니 복사해서 객관식 답과 주관식 답을 다시 편집해서 배부를 하는데 각 반마다 선택과목이 너무 다양해서 전부 다른 정답표가 배부되어야 했던 것이다. 기말부터는 다시 정답표 받자고 강력하게 건의했다. (나 말고 3학년 담당샘이..ㅎㅎㅎ) 

이 정답표는 시험이 끝나면 각 반 회장이 받으러 내려오는데, 교문 앞의 학급함에서 찾아간다. 미리 꽂아두면 지각생이 혹여라도 보거나 가져갈 우려가 있어서 종치면 내갈 생각이었는데, 1학년 담당 원로 샘이 10분 남겨놓은 시점에서 지금 꽂아두란다. 그래서 이러저러해서 조금 있다가 하겠다고 하니 말 들으라고 버럭 소리를 지르신다. 황당! 

그래서 정답표를 꽂아두니, 다른 샘이 들어오셔서 지금 내가면 안 된다고....;;;; 결국 회수했다가 종 치고 다시 게시했다. 안 그래도 정신 없고 아침부터 스트레스 풀이었는데 감정 막 상함.  

게다가 이분이 빵이며 사과며 잔뜩 늘어놓고 지나가는 선생님들 다 불러앉혀서 접대를 하신다. 아, 이 정신 없는 틈바구니에서...ㅜ.ㅜ 

3교시는 1학년 시험이었는데 15반 특수학급 시험지가 분철이 안 되어 있는 거다. 과목 담당 선생님이 특수학급이 있다는 걸 놓치신 거다.(금년에 생겼다.) 특수학급 선생님 표정 완전히 구겨지심..ㅜ.ㅜ  여분 시험지에서 부랴부랴 빼내는데, 우리의 대빵 선생님이 올해 시험지 양식을 대거 바꿔놓으셔서 무척 애먹었다. 앞면에 모두 과목 정보가 들어가면서 모두 1면처럼 보인다는 게 문제. 나만 이렇게 헷갈렸나 싶었더니 각 반에서도 아이들도 헷갈리고 나눠주는 선생님도 헷갈려서 엄청 아우성이었다고 한다. 그러니 문제 원안 제출할 때부터 들어먹었던 욕을 오늘 한 차례씩 더 얻어먹었다.  

사실 우리 중에 이전에 고사계 업무를 해본 사람이 없었다. 웃기게도 학교는 인수인계 같은 게 없다. 그냥 알아서 일하는 분위기다. 시험 첫날. 게다가 새학기 첫 시험이니 시행착오가 많을 수도 있지만 오늘은 좀 심했다. 과목 분철이 안 되어 있을 수 있다는 건 상상도 못한 일이지만 미리 확인하지 못한 우리 책임이 크다. 설마하니 OMR카드가 그렇게 양식이 다를 거라고 상상도 못했는데, 어쨌거나 그것도 우리 책임이다.  

그러나 반 표기를 잘못 해놓고, 시험지를 바꿔 가져가고, 영어 시험에 오류가 있는데 그걸 시험 종료 5분 전에 발견해서 급히 수정하느라 생난리를 치고, 12반에서 감독해 놓고는 10반이라고 잘못 써와서 혼란 일으키고, 두 과목을 하나의 봉투에 담아와서 다시 분류하게 만드는 등의 일들은 정말 너무했다. 그것도 모두 오늘 하루에 몰아서.  

점심은커녕 물 한모금을 마시지 못한 채 전전긍긍. 심지어 과목 분철 안 하신 선생님은 끝끝내 사과 한 마디도 없고 어찌나 느긋하던지 와락 성질이...;;;; 

결국 시험을 마치고 나니 식당 식사 시간도 끝났고, 우린 도저히 이 기분을 이대로 냅둘 수 없다고 의기투합해서 인근 식당에서 김치찌개 두루치기를 먹었다. 방이 아주 잘잘 끓는 곳이었는데 오늘 같은 날씨에 딱 적격. 라면 사리 추가해서 정말 맛나게 먹었다.  

같이 모였던 다른 선생님들과 함께 시험 전후과정에서의 불만들이 와르르 쏟아져나왔다. 무슨 세력 싸움도 아니고 모두가 자기한테 익숙한 체제만 원한다. 그런데 구관이 명관이라고, 지금껏 그렇게 진행해 온 데에는 그만한 이유가 있다는 걸 알겠다. 어휴... 

학교에서는 가장 중요한 업무 중의 하나인 중간고사였는데 너무 아마츄어같이 일이 진행되어서 속상하다. 집에 돌아오니 너무나 피곤해서 그대로 쓰러졌다가 2시간 반 뒤에 깼다. 사실 지금도 좀 몽롱... 

내일은 부디 별 사고 없이 매끄럽게 진행되기를...(>_<)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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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스피 2010-04-28 22:5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날씨가 워낙 개떡같아서 시간가는줄 몰랐는데 벌써 4월 말이니 중간고사 기간이 맞네요.그래선가요 한 12시쯤 밖을 돌아다니니 학생들이 많네요.그나저나 미노아님은 선생님이신가 보네요.수고 많으십니다용^^

마노아 2010-04-28 23:18   좋아요 0 | URL
우산 든 손이 너무 시렸어요. 내일은 장갑도 챙겨야겠어요.
내복이라도 입어야지 미친 날씨에요..ㅜ.ㅜ
그리고 저 마노아라니까...ㅋㅋㅋ

순오기 2010-04-28 23:0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애구~ 고생했어요. 토닥토닥~~
우리 민경이는 오늘 중간고사 끝나서 저녁에 둘이 '작은연못' 보고 왔어요.
나는 책을 읽어서 면역주사를 맞은 격이고 민경이는 완전 눈물바람....ㅠㅠ

마노아 2010-04-28 23:18   좋아요 0 | URL
원래 오늘 작은연못 보고 싶었는데 너무 기진맥진해서 그 영화까지 보면 못 견딜 것 같아서 미뤘어요.
어휴, 손수건 준비해야 해요..ㅜ.ㅜ

순오기 2010-04-29 00:21   좋아요 0 | URL
노근리, 그해 여름~~~과 비교하면 영화는 좀 약했어요.

마노아 2010-04-29 00:35   좋아요 0 | URL
그해 여름도 노근리가 배경이었어요? 포스터만 기억이 나는데 이 영화도 챙겨봐야겠어요.

꿈꾸는섬 2010-04-29 03:05   좋아요 0 | URL
그해 여름을 TV에서 슬쩍 봤는데 그게 노근리가 배경이었군요. 또 새로운 사실을 알았네요.

마노아 2010-04-29 12:41   좋아요 0 | URL
저두요.^^ㅎㅎㅎ

순오기 2010-04-30 00:11   좋아요 0 | URL
이 사람들이~ ㅜㅜ
그해여름은 이병헌과 수애나오는 영화고, 내가 말한 건 책으로 제목이
'노근리, 그해 여름'이에요. 내가 얼마전에 리뷰도 썼어요.ㅠㅠ

마노아 2010-04-30 00:20   좋아요 0 | URL
전 '노근리'라는 영화와 '그해 여름'이라는 영화로 알아듣고 검색했는데 노근리 얘기가 안 나오는 거예요. 그래서 스포일러라서 나오지 않나보다 하고 이해했어요. 어쩜 좋아요..ㅎㅎㅎ

Kitty 2010-04-28 23:1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읽기만 해도 어지럽네요 ㄷㄷ 고생 많이 하셨어요.
이렇게 파란만장한 시행착오를 겪었으니 내일은 좀 수월하게 흘러가지 않을까요.
저도 오늘 간만에 회사갔었는데 어우 날이 어찌나 추운지 집에 오면서 진짜 울고싶었어요 ㅠㅠ

마노아 2010-04-28 23:19   좋아요 0 | URL
작년도 담당 샘이 2학기가 되면 여유만만해질 거라고 위로해줬어요.^^ㅎㅎㅎ
근데 오늘 날씨는 아주 요지경이었어요. 내일도 춥대요. 어쩜 좋아요.ㅜ.ㅜ

비로그인 2010-04-28 23:1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선생님이셨구나?
오~~믓지세요^^*

마노아 2010-04-28 23:20   좋아요 0 | URL
오늘은 완전 찌질했어요.^^;;;;

메르헨 2010-04-29 09:5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이런 일이 있을 수 있다는걸 상상도 못하겠어요. ^^
선생님만 겪을 수 있는 일이네요.
아효....정말 정신없고 분주하고 열딱지나고...그런 날이셨을듯...ㅡㅡ
저도 간혹 황당 당황 버럭 미침 같은 상황을 맞는데...
한꺼번에 오면 정말..ㅜㅜ
마노아님, 정말 수고하셨습니다.^^

마노아 2010-04-29 12:40   좋아요 0 | URL
어제는 공포와 두려움으로 얼룩진 고사였는데 오늘은 고된 신고식으로 제법 여유있게 진행되었어요.
그래도 선생님 한 분이 일찍 가시고...;;;; 두 분은 2학년 담임이어서 2교시 전후로는 저 혼자 방방 뛰느라 좀 땀을 뺐어요.^^;;;;
몇몇 황당 해프닝이 더 있었지만 패-쓰하렵니다.^^ㅎㅎㅎ

울보 2010-04-29 12:1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하 이런일도 벌어지는군요,
전 선생님들이 하시는 일이니 척척인줄알았는데 고생하셨겠어요
요즘 모두 중간고사기간이군요,
류도 오늘 첫 중간고사를 보는데 작년까지는 없었다고 하던데 이학녀이 되어서 수학과목하나 보는데 아침에 떨린다며 학교에 갔어요,,ㅎㅎ
내일은 오늘보다 한결 잘될거예요 마노아님 화이팅,,

마노아 2010-04-29 12:41   좋아요 0 | URL
울 조카네 학교는 작년에도 시험을 보았어요.
학교마다 다 다른가봐요.
류가 잔뜩 긴장했겠어요. 그래도 잘 치르고 올 거예요.
내일은 오늘보다 과목이 훨씬 단순해요. 아자아자 화이팅!!!

루체오페르 2010-04-30 00:5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역시 뭐든 간단한게 없다는것을 다시한번 느끼네요. 학생때는 몰랐던 선생님들의 시험작업에 대해 좀 알게됬네요. 수고 많으셨습니다.^^
그러고보면 알라디너분들중에 선생님이 꽤 많으신것 같습니다. 교육계에 계신분들.

마노아 2010-04-30 09:24   좋아요 0 | URL
각자의 일자리에서 다들 복잡하고 바쁘게 사실 테지요. ^^';;
그러고 보니 정말 알라디너분들 중에서 학교에 계신 분들이 많네요. 하하^^

같은하늘 2010-05-04 13:4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4월 28일이라면 우리아이도 중간고사 보던날...ㅎㅎ
학교는 모든게 순조롭게 돌아가는걸로 보이는데 마노아님 얘기를 듣다보면 속 사정이 더욱더 궁금해진다는...
근데 무슨 시험보는게 이리 어려워서야 공부하기보다 더 어려워 보여요.

마노아 2010-05-04 22:20   좋아요 0 | URL
날마다 식겁할 일이 하나씩 있었어요.
식겁의 퍼레이드가 드디어 오늘 끝났답니다. 어휴, 십년 감수했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