볕이 따뜻했는데 예배드리는 장소는 실내라는 걸 깜박했다. 이날 나는 칠부 소매의 상의와 하의를 입었는데 아아아, 너무 추웠다. 준비 찬양 하는 내내 코를 훌쩍이다가 잠시 화장실에 다녀오고, 돌아와서 찬양 몇 곡 부르다가 너무 추워서 소매 없는 목폴라를 다시 입으려고 화장실 다녀오기를 반복.
교회의 내부는 마치 성당 같은 분위기였는데 때마침 실내 공사 중이어서 폐허가 된 건물 내에서 예배드리는 기분이었다. 이러다가 무너지는 것 아닐까 막 걱정까지 해버리고...
오랜만에 코러스가 있고 멋진 반주가 있는 찬양을 들으니 참 좋았다. 이집트에 도착하고 여러 날이 지난 게 아님에도, 내가 가본 곳이 아주 많았던 게 아님에도, 단연코 이날의 찬양이 가장 감동적이었다고, 생각했다. 사막의 일몰과 일출보다도, 사막여우와의 조우보다도 더 뭉클한 무엇. 살짝 눈물이 났다. 그 순간 깨달았다. 내 영혼이 무척 갈급하구나... 엄마는 돌아오면 반드시 기도원도 다녀와야 한다고 여러 차례 못을 박았는데, 그런 소리 들으면 늘 싫기만 했는데, 이번엔 괜찮다고 느껴졌다. 더 많은 찬양과 기도와 말씀이 있는 곳에서 좀 쉬어야겠다고......
예배 마치고 환영의 인사 시간. 졸지에 일어나서 박수 받고 꽃도 받았다. 인증샷!
교회 안에서의 일정을 다 맞추고 난 다음에는 간식 타임이 이어졌다. 빵과 커피를 나눠주는데 배고팠던 우리는 빵과 커피를 들고서 햇볕 아래에서 요기를 했다. 그야말로 광합성하며 배채우기! 사막에 같이 다녀왔던 두 분 자매님과 수다를 좀 떨고, 사모님이 대신 구입해주신 깍두기용 무를 들고서 귀가했다. 바람 잔뜩 먹은 이 무는 무지 무겁기만 하고 맛은 없었다는 후문이다. 그렇지만 무를 구입할 수 있는 마지막 시즌이었다고.
친구는 한국에 있을 때는 차려주는 밥만 먹고 살았는데 이집트 가서는 장금이가 되어 있었다. 모든 김치 종류를 다 섭렵하고 많은 수의 손님을 한꺼번에 다 치를 능력을 갖추었으니 잡채 정도는 감탄 측에 속할 수가 없었다. 식혜가루도 들고갔는데 나 떠나고 난 뒤에는 식혜도 해먹었을 것이다.
집에 돌아오니 시간이 애매하다. 우리는 오늘 모스크 투어를 하기로 했는데 이집트는 관광지에서 먹거리를 팔지 않아서 저녁 먹을 때까지는 공백이 너무 길었다. 그래서 간단히 라면을 끓여먹기로 했다. 컵라면은 좀 아끼기로 하고 삼양라면을 뜯어서 계란도 넣고, 한국에서 물어물어 사간 가쓰오부시도 집어넣었다. 심야식당만 생각했지 그게 그렇게 짜리라곤 예상을 못했던 게 큰 낭패. 겁나 짰다. 가쓰오부시를 넣으려면 스프는 1/3만 넣어야 한다는 짜디짠 체험을 얻었다나 뭐라나.
점심을 해결하고 2시부터는 다시 모스크 투어에 돌입했다. 메트로에서 내려서는 꽤 걸었다. 햇볕이 좋았지만 거리가 너무 지저분했고, 오토바이들은 모두 곡예하듯 질주했고, 낯선 동양인이 지나가니 청소년들은 떼지어 몰려다니며 우리를 향해 고함을 친다. 뭐 별 얘기 없다. 치니(중국인?)? 자이니(일본인)?
첫번째 모스크. 가마 사이이다 자이나브. 움 하시무(무하마드 손녀)로서 민중에게 공경받았다고, 가이드 북에 써 있었다.
이곳은 남녀의 예배공간이 구분되어 있다. 신발을 벗고 들어가는데 신발 맡기면서 박시시를 건넨다. 가방도 검사했다. 전날 17년 가이드 집사님의 조언으로 목 마를 땐 물보다 오이!라는 명언을 실천하고자 들고 갔던 오이는 압수당했다..;;;;
가끔 기회가 되어서 절에 가게 되면 뭔가 달뜬 기분이 되곤 했다. 향냄새를 좋아하진 않지만 향냄새가 나고 오래된 나무 냄새도 나고 새소리도 들리고, 아무튼 도시적인 것과 너무 다른 그 분위기에 도취되어 몹시 두근거리곤 했었다. 이곳 모스크에서도 꼭 그런 기분. 넓은 내부는 조용했고, 드문드문 사람이 있었지만 우리와는 너무도 다른 공간의 세계 사람들. 그럼에도 낯설거나 신기하기보다는 어쩐지 편안하고 친숙한 느낌이 들어서 그 기묘한 부조화의 조화가 즐거웠다.
천장 무늬와 샹데리아가 특히 마음에 들었다. 저 천장을 배경으로 우리 사진이 나왔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그리하여 나오게 된 게 바로 요 사진!
(사진 펑!)
너무 어두워서 밝음 효과 두 번 줬더니 이리 환해졌다. 실제 내부는 훨씬 어두웠다.
저 공간 너머가 남자들의 예배 공간이었다. 똑같겠지만 그래도 궁금해서 카메라를 바짝 대고서 찍어봤다.
역시 똑같군!
이 안에 있는 동안 종교가 뭐냐는 질문을 많이 받았다. 크리스트교라고 말하기가 조금 민망했는데 그네들의 반응은 아 그래요? 수준. 오래된 꾸란도 구경을 해보았지만 역시나 눈에 보이는 것은 온통 외계어 뿐. 내가 듣기로 모음이 없다고 하던데, 그래서 친구는 여전히 아랍어로 단어를 쓰려고 하면 힘들다고 했다.
여기서 그림이 되는 건 역시 천장과 조명들!
창문이 성당의 스테인드 글라스와 비슷했지만 일단 사이즈가 작고 생각외로 덜 예뻐보였다. 역시 천장이 짱!!
아아, 그나저나 아뿔싸. 모스크를 나오고 나니 친구 카메라도 먹통이 되어버렸다. 이 무슨 불상사란 말인가.
우리가 기념 사진을 찍는 것을 누가 그리도 배아파하는 것인지...ㅜ.ㅜ
그리하여 이때부터 우리에게 남은 건 오로지 내 핸드폰의 카메라뿐이건만. 피라미드와 사막에서 찍은 사진으로 이미 꽉 차서 저장 공간이 없었다. 부득불 덜 잘 나온 사진들을 지워서 공간을 만들었다. 이리 될 줄 알았더라면 연결잭을 가져왔을 텐데, 잭이 없으니 친구 컴이나 내 usb에 옮기지도 못했다. 아아, 안타까운 우리의 기념 사진들!
아랍어는 연이어 써놓으면 도무지 알 수 없는 외계어지만, 저렇게 한 글자만 떼어놓으면 디자인적으로 참 예쁘다. 저게 모스크를 상징하는 어떤 표식인지 아랍어인지도 사실 구분할 재간이 없긴 하지만...
발길 닿는 대로 쭈우욱 걷던 우리는, 너무 폐허로 변해버려서 도무지 모스크 같아 보이지 않던 어떤 건물을 발견했다. 여기는 뭐꼬?
council이라고 적혀 있다. 의회? 뭐 그런 뜻?? 1200년 정도 된 건물이란 소린겨?
호기심이 일어 안으로 들어가봤다. 쓰러지기 직전의 건물을 나무로 힘겹게 받쳐놓았고, 안은 예배의 공간으로 쓰이고 있었다. 역시 모스크인가?
아아, 그런데 신발을 벗으라고 했다. 예배당이니 당연한 요구겠지만 인간적으로 정말이지, 너무 지저분했다. 여기서 신발을 벗는 순간 내 발을 통해 백만 스물 하나의 세균의 젖어들 것 같았고, 다시 신발을 신는 순간 그 신발도 똑같이 오염될 것 같았다. 안에 양탄자가 깔려있긴 했는데 천 년 동안 한 번도 안 빤 것처럼 때가 타있고 무엇보다도 축축했다. 오 갓! 그렇다고 도로 나가는 것은 또 예의가 아니지 않는가. 우린 울며 겨자먹기로 신발을 벗었는데 그 순간 머리 속이 마비. 빨리 나가야만 했다....;;;;;
시간 관계상 많은 곳을 갈 수 없었던 우리는 목적지를 하나 정하고서 물어물어 그곳에 도착했다. 책자에서 말하는 설명을 알아듣지 못해 뱅뱅 돌다가 겨우겨우 도착한 가마 아흐마드 이븐 툴룬. 이블 툴룬 모스크는 카이로에서 가장 오래되고 큰 모스크였다. 876년에서 879년에 완공되었다고, 역시 책은 말하고 있었다.
안으로 들어가자 역시 신발부터 벗어야 했는데, 여긴 신발 위에 덧신을 신겨주는 체제였다. 당연히 공짜는 아니었고 박시시 요구한다. ㅎㅎㅎ
신기하게도, 문 안으로 들어서자 온 주변에 고요가 내려앉았다. 외부 소음이 모조리 차단된 이공간. 여기선 오로지 신을 향한 경배만 해야할 것 같은 분위기가 조성되어 있는게 아닌가.
사각형으로 회랑이 있고 그 안은 이렇게 밝은 햇볕 안에 노출되어 있었다. 이곳이 무대라는 듯, 내가 주인공이라는 듯.
한 가운데에는 커다란 우물도 있었는데 워낙 넓어서 거기까지 가보는 데도 꽤 시간이 걸렸다. 물론, 지금은 물이 없었지만.
책에는 위로 올라가는 공간이 있다고 했는데 아무리 둘러보아도 위로 올라가는 길이 보이지 않았다. 이때 등장한 한 무리의 서양 외국인 관광객들. 그 뒤꽁무니를 따라가다가 드디어 성채로 오르는 나선 계단을 발견했다. 올라가보니 완전 장관이다. 카이로 구시가지가 한 눈에 보이는 게 아닌가.
곳곳에 모스크의 탑도 보이고 채 완성하지 못한 집들도 눈에 띈다. 카이로에서는 옥상이 모두 중단된 공사 현장처럼 철골이 드러나 있는 곳이 많았는데 돈이 되는 대로 수시로 건물을 올린다고 한다. 그래서 완성된 집의 형태를 보기가 어려웠다.
(사진 펑!)
시원한 바람을 맞으며 사진을 찍었다. 지금 내 핸드폰 바탕화면을 차지하고 있는 사진. 구도가 맘에 들었달까.
여기에 올라와 보니 카메라의 부재가 더더욱 아쉽다. 다음 주에 남부 이집트를 다녀와서 한국으로 돌아가기 전 한 번 더 오자고 친구랑 약속했다. 그때는 원없이 사진을 찍어보자고. 설마하니 그때도 카메라가 정신줄을 놓고 있다면 빌리던가 일회용 카메라를 살 생각이었다. 근데 일회용 카메라 파나? 팔겠지???
옥상 한 바퀴를 다 도는데 시간이 얼마나 걸릴까? 우린 여유를 잔뜩 부리며 저기를 걸었다. 아까 압수당했다가 되찾아 온 오이로 해갈을 하며 이렇게 사진도 찍어가면서.
마치 1층에서 찍은 것처럼 나왔는데 나는 엄연히 2층에 올라와 있다. 아래 사람의 크기가 우리의 거리를 증명해주는구나.
그런데, 옥상 회랑을 거의 반바퀴 돌았을 때 뒤에서 누군가 고함치는 소리가 들렸다. 알아들을 수 없는 외계어가 울리는데 설마하니 우리를 부르는 거겠어? 하고 무시하며 걷는데 계속해서 같은 목소리가 울린다. 혹시나 싶어서 돌아보니 우리를 부르는 게 맞았다. 4시가 넘어서 문 닫아야 하니 도로 나오란 소리였다. 아아, 이 한 바퀴를 다 돌수가 없다니... 역시 다음 주에 다시 와야만 해!!!
돌아가려고 하니 다리가 엄청 무거워졌다는 걸 깨달았으나, 여기서 택시를 타면 비용이 어마어마하고, 메트로(지하철)는 너무나 멀어서 결국 거리 구경을 하면서 천천히 걸었다. 그때 발견한 웨딩샾.
음, 뭐랄까... 어릴 적 갖고 놀던 미미 인형 같달까... 솔까말, 엄청 촌스러.....;;;;;;
쿨럭, 그때 우리 맞은 편에서 오던 중년의 이집션이 자일리톨 비슷한 것을 바닥에 떨어뜨렸다. 주워서 후후 불어서 털기에 먹으려나 보다 했는데, 그 사람 지나치고 나서 친구가 말한다. 자기가 계속 쳐다보았더니 '에잇!'하고선 땅에 버렸다고...
아아, 그럴 의도가 아니었는데 지못미!!!
집에 돌아온 우리는 뒤늦게 양말의 공포에 다시 젖어들었다. 맨발로 밟았던 그 축축했던 카펫을 떠올리면서 현관에서부터 탈의!!!
더운 물이 나오기를 학수고대해서 샤워를 하고 빨래도 했다. 왜 그런지 이유를 모르겠지만 더운 물이 나오기까지 한참이 걸렸고, 한 명 샤워하고 나면 또 한참 있다가 더운 물이 나와서 때로 우리는 찬물로 샤워하거나 머리를 감아야 했다. 이집트는 실내 난방이 되질 않아서 실내가 더 춥기 때문에 감기 걸리기 딱 좋은 상황이다.
시간은 밤 10시를 향해 다가갈 때 오뎅국과 김치와 김, 그리고 파프리카를 고추장에 찍어서 맛있게 밥을 먹었다. 배를 채우고 나니 에너지가 생겨서 빨래를 좀 더하고 짐 정리를 했다. 막간을 이용해 친구는 깍두기를 담갔고, 나는 사진을 컴퓨터에 옮기기로 했는데 이번엔 친구의 노트북이 말썽이다. 오 갓...ㅜ.ㅜ 다행히 친구의 카메라는 다시금 작동이 됐다. 휴우... 그러나 여전히 꿈쩍도 않는 내 카메라... 너는 나를 끝끝내 배신하는구나...;;;;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