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우리나라에서 가장 예쁜 학교 담장을 소개합니다

 

우리나라에서 가장 유명한 담길이라면 어디일까요? 덕수궁 돌담길을 떠올리시는 분들이 많을 것 같습니다. 그런데, 그 덕수궁 돌담길에서 조금만 더 정동쪽으로 올라가시면 아주 인상적이고 예쁜 또다른 담을 만나실 수 있습니다. 대한민국에서 가장 예쁜 학교 담입니다. 바로 이화여고 담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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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 보기 좋은 돌담이 이화여고 담장입니다. 역사가 오랜 학교만이 가질 수 있는 특별한 담장이라고 하겠습니다.

그런데, 자세히 보시면 다른 돌담과 다른 부분이 있습니다. 바로 아랫부분입니다.

돌담 아래 시멘트 구조 부분이 울긋불긋한 것이 눈에 들어옵니다. 저 부분은 경사로를 따라 점점 넓어지면서 모습을 드러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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투박하고 정감어린 돌담 아래 칙칙한 시멘트 담이 맞닿는 구조여서 전통의 정취가 그윽하려다 말수도 있는데, 저 그림이 들어가 정말 독특한 담이 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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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 담에 그려진 그림은 정식 공공미술 작품입니다. 이름하여 <담꽃>. 작가는 김대성씨입니다만 계원조형예술대학과 이화여고 학생들이 참여한 모두의 작품입니다. 서울시 도시갤러리프로젝트로 지난 가을 만들었습니다.

 

사진으로 보시면서 느끼셨을텐데, 저 담에 핀 꽃 그림은 아주 선명하지 않고 좀 희미하게 보일겁니다. 그 이유는 저 작품은 분필로 그렸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저 작품은 시간이 지날수록 점점 사라지게 됩니다.

 

이화여고의 저 예쁜 담이 반가웠던 이유는 서울에서 예쁜 담을 만나기가 참으로 어렵기 때문입니다. 600년 역사도시라고 하지만 서울에서 전통 담장을 만날 곳은 궁궐 주변을 빼면 극히 드문 실정입니다. 현대식 담이라고 해도 마찬가지입니다.

물론 담을 굉장하게 꾸밀 필요도 없을 것이고, 담으로 예술할 것도 아닐 겁니다. 그러나 그냥 보기에라도 좋고 따라 걸으면 정겨운 담들은 정말 별로 없습니다.

 

우리는 바쁘다보니 담을 별로 인식하지 않고 살아갑니다. 그러나 한번 생각해보면 어떨까요? 담이라는 것 하나에도 참 많은 것들이 담겨있을지 모르거든요.

 

# 담이 담고 있는 것들

 

담이란 것은 참 묘합니다. 여기는 내땅이니 들어오지 마시오, 라며 가로막는 배타적인 구조물인데도 잘 꾸며놓은 담을 보면 정겨워집니다.  

특히 우리 전통 담들은 그 자체로 미술품처럼 예쁘고 정답습니다. 우리나라가 세상에서 담이 가장 예쁘다고 하면 주관적이기 짝이 없지만, 제눈에는 우리 담장이 가장 멋져 보입니다.

 

한국은 분명 `담이 예쁜 나라'입니다.

우리 담은 궁궐처럼 담이 정말로 방어용인 곳을 빼면 대부분 사람 키를 넘지 않습니다. 사적 공간임을 알리고자 할 뿐, 남의 눈을 막으려는 것이 아니었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정성껏 담을 가꿉니다. `꽃담'이란 일반명사까지 생겼을만큼 담은 전통 건축에서 주요한 장르가 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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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복궁 자경전 돌담. 사진=네이버 백과사전


꽃담은 예쁜 벽돌로 무늬를 만들어 꾸민 담입니다. 우리 꽃담의 대표선수는 역시 경복궁 자경전 꽃담입니다. 창덕궁에 있는 낙선재 꽃담도 일품입니다.

 

일반 살림집에서는 저렇게 멋드러지게 꽃담을 짓기는 어렵지요. 기와조각, 그러니까 와편을 이용해서 모양을 내는 꽃담을 세우기도 합니다.

기와조각 담장인 와편 담장은 우리 전통건축에서 빼놓을 수 없는 멋진 부분입니다. 와편담장에는 실용적인 이유도 있습니다. 우리나라는 비가 많이 오는데 흙으로만 담을 쌓으면 무너지기 쉽기 때문에 기와를 넣어 지탱하는 힘을 키워준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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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남 아산 외암리민속마을 돌담.


소박한 돌담도 빼놓을 수 없겠지요. 

돌담이란 것이 대충 턱턱 줏어온 대로 쌓아놓은 것처럼 보여도 나름 엄청나게 과학적이라고 분석할 수 있습니다. 돌 사이 틈과 구멍이 있어 바람과 물이 쉽게 빠지고 드나들며 물기가 얼고 풀려도 무너지지 않습니다.

 

또한 우리 돌담은 직선이 아니라 곡선으로 쌓습니다. 삐뚤빼뚤하게 쌓는 게 아니라 완만하게 곡선을 이루는데, 직선으로 쌓지 못해서가 아닙니다. 곡선이 공학적으로 더 안전하기 때문에 그렇게 쌓은 것입니다. 그래서 돌담은 `숨어있는 조상들의 지혜'로 종종 꼽힙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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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암리 민속마을 돌담길. 각종 식물들이 어우러져 더욱 예쁘다.

 

이 정겨운 돌담들은 이제 정말 드물어졌습니다. 그래서 문화재청이 2006년엔가 전통 돌담길이 잘 남아있는 곳들을 골라 문화재로 지정까지 했습니다. 그러나 문화재로 지정되어버리면 개발 등을 못하게 되는 것을 우려한 주민들이 반발하는 일도 있었습니다. 문화재를 보존하면 복덩어리가 되는 풍토가 빨리 정착돼야 풀릴 문제라고 하겠습니다.

 

# 담이 보여주는 빼어난 상상력

 

우리 전통건축 담장을 이야기할 때 절대 빠뜨리지 말아야 할 멋진 담이 하나 있습니다. 우리 전통 정원의 백미라고 하는 전남 담양 소쇄원 담입니다.

소쇄원에서 반드시 봐야 할 곳이자 가장 멋진 부분이 바로 맨 윗쪽 계곡에 세운 담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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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네이버 백과사전

 

담을 쌓으면서도 담장 아래를 자연석으로 괴고 길을 터서 계곡물이 흘러내려가도록 했습니다. 물이 드나드는 문이라고 해서 수구문이라고도 합니다. 저 담 하나만으로도 소쇄원은 우리 건축문화재의 보물이 될만합니다. 

저 담은 아이디어 못잖게 생긴 것도 무척 멋집니다. 윗 사진에서 보이지 않는 왼쪽 계단식 담장을 한번 보시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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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네이버 백과사전

 

# 담은 우리를 비춘다

 

저런 담이 우리 주변에 많이 남아있다면 얼마나 좋았을까요. 꼭 전통 담이 아니어도 예쁜 담조차 만나기가 쉽지 않습니다. 하긴 매끈하게 잘 만들어놔도 낙서에 광고지만 붙여대니 그것도 문제이긴 문제입니다.

 

담은 분명히 중요합니다. 땅의 소유 경계를 가르는 구조물이라고만 하기엔 너무 크고 도시에서 차지하는 비중도 상당합니다. 거리의 인상이 지저분하느냐, 깨끗하느냐는 담에 달렸다고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동시에 담은 중요한 문화공간이기도 합니다. 벽화며 그래피티 운동 등은 담이 있어서 생겨난 문화예술이라고 하겠습니다. 

 

담이 예쁘면 지나가는 사람들 마음도 풍요로워집니다. 예쁜 담길을 걷는 정취는 굳이 설명하지 않아도 다들 아실겁니다. 덕수궁의 돌담길을 생각해보시죠. 덕수궁 내부 공간보다도 그냥 그 담따라 걷는 길이 더 매력적일 수도 있는 것이겠지요. 이화여고 담장은 담 하나만 바뀌어도 학교는 물론 거리 전체의 분위기가 달라질 수 있음을 보여줍니다. 그리고 담은 휴식처이자 예술의 무대가 된다는 것을 일깨웁니다. 

 

담은 우리를 담습니다. 담 안쪽으로는 주인만의 것이지만, 바깥으로는 그 앞을 지나가는 사람들 모두의 것이 되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담은 도시의 인격입니다. 담을 보면 우리가 보입니다. 우리 주변에 기대고 싶은 담, 따라 걷고 싶은 담이 늘어나주면 좋겠습니다.

 

구본준 기자 http://blog.hani.co.kr/bonb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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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새 구본준 기자 기사 보는 재미가 무척 쏠쏠하다. 얼마 전인가 지방의 어느 마을에선 집주인 얼굴을 담장에 그린 것을 소개한 블로그를 본 적이 있는데 무척 멋있다고 느꼈었다. 기사를 스크랲해둘 것을, 좀 아쉽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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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ephistopheles 2008-04-16 20:5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누나가 저 여고를 나왔는데요...학교가 얼마나 큰지..정문으로 들어가 후문으로 나가면 동이 틀려지더군요.

마노아 2008-04-16 20:57   좋아요 0 | URL
허억! 버스가 교정 안으로 들어오는 모 대학이 떠오르는군요. 학교 정말 크네요. 세상에!

Mephistopheles 2008-04-16 21:08   좋아요 0 | URL
고등학교치곤 제법 크죠..저 학교가..

마노아 2008-04-16 21:21   좋아요 0 | URL
체육 시간에 운동장 돌기 엄청 힘들었겠어요^^ㅎㅎ 저 중학교 때 학교가 커서 운동장도 무지 컸거든요.

hnine 2008-04-17 13:3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자경전 저 꽃담에 대해 레포트를 쓴 적 있어요. 대학교 때 <한국미술사> 수업 들으면서요.
좋은 글이네요.

마노아 2008-04-17 11:14   좋아요 0 | URL
와, 한국미술사 수업 재밌었을 것 같아요. 요 기자분 글들이 엄청 재밌더라구요. ^^

순오기 2008-04-17 00:2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이렇게 우리만의 것을 찾아내 알리는 것이 '세계화'인데... 죽어라 외국 흉내만 내려는 개념없는 인간들 때문에 미치겠어요.ㅠㅠ 너무 멋진 생각을 가진 구본준 기자가 궁금해집니다. 추천~꾹꾹하고 싶어요.
광주이벤트 때, 저 소쇄원 담장 잘 보고 가세요!

마노아 2008-04-17 11:15   좋아요 0 | URL
안 그래도 소쇄원 담장 곧 볼 수 있겠다 기대하고 있어요. ^^
서울은 백제 시절부터 계산하면 역사가 2천년인데, 옛 손길을 찾기가 너무 어렵죠. 가슴 아픈 일이에요ㅡ.ㅜ

세실 2008-04-17 13:0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글이 참 곱고 아름다워요.
덕수궁 돌담길은 시립미술관 가면서 보았는데 조금 더 올라가면 이화여고 담이 보이는군요. 색연필 담이 참 예뻐요. 다음에 가면 꼭 봐야 겠습니다. 아 나두 소쇄원 가고 싶어라~~ 님은 벌써 찜하셨군요.

마노아 2008-04-17 21:05   좋아요 0 | URL
시립 미술관 두 차례 가 보았는데도 덕수궁 돌담길을 보고 오질 못했어요. 담 기회에는 이화여고 담장까지 같이 보고 와야겠습니다. 세실님도 아이들 데리고 소쇄원 오셔요! 우리 영광의 상봉을 하는 겁니다^^

가시장미 2008-04-17 14:1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앗! 저희 회사는 요 근처죠. ㅋㅋ 점심시간에 많이 걸어요. :) 시립미술관 바로 앞에 있는데..
언니 요 근처에 계시는거죠? 담에 밥이라도 같이 먹어요- 점심시간에 산책이라도 같이 할까요? 으흐
요즘 날씨가 좋아서- 점심에 나가면 자꾸 거닐고 싶다는 생각만 들어요. 근데, 점심에 나가면 사람들 정말 많죠? 참! 세실님께서 섹시하시다고 전해달래요. (긁적!) ㅋㅋ

마노아 2008-04-17 21:09   좋아요 0 | URL
앗!장미 동상! 어쩌다가 내가 시립 미술관 근처에 살게 된 거징??? 전혀 아닌데^^;;;;
점심 시간에 산책하기엔 좀 멀어멀어(>_<)
세실님의 섹시 소동은 장미 동상을 나로 착각한 것??? 아이 참, 나야 영광이지만 장미양에게 미안하잖아^^ㅎㅎㅎ

무스탕 2008-04-17 15:2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덕수궁 돌담길을 인식하며 걸어본게 지난 겨울인데 못 본거 같아요.. 왜 못봤지..? 아까비..
정말 매력적인 담이네요. 저렇게 그리느라 얼마나 정성을 쏟았을까요..?
저 이쁜 그림이 지워질거라니 아깝네요.

마노아 2008-04-17 21:09   좋아요 0 | URL
고흐전 때 보았어요? 전 지나가면서도 눈치를 못 챘어요. 사실 덕수궁도 못 가봤어요ㅠ.ㅠ
저 멋진 그림을 지우겠다고 박박 우기는 학교 관계자들은 반성하라!!!

조선인 2008-04-17 15:4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홍대 주변의 담도 참 예뻐요. 거미전의 성과라고 으쓱해지죠.

마노아 2008-04-17 21:10   좋아요 0 | URL
오홋, 그렇군요! 홍대 가게 되면 꼭 눈여겨봐야겠어요. 근데 '거미전'은 뭘까요???

조선인 2008-04-21 18:13   좋아요 0 | URL
홍대 미대에서 주최하는 거리미술전의 준말이에요.
제가 아직 학교 다닐 때부터 시작했고, 제가 그 근처 대학을 다녔던 터라 원정지원도 쪼까 했죠.
그림실력은 빵점이니까 주로 힘쓰는 걸로. ㅋㅋ

마노아 2008-04-21 23:58   좋아요 0 | URL
오홋! 거리 미술전의 준말이었군요.
아하핫, 힘쓰는 걸로 원정지원을 해준 조선인님이라니, 어째 잘 상상이 안 갑니다.
그치만 위문차 가서 같이 즐겁게 한잔을 했을 조선인님은 상상이 잘 가요^^

프레이야 2008-04-17 17:3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큰딸이 초등3학년 때 서울나들이를 갔다와서 감상기를 썼는데, 자경전 꽃담에 대한 글귀가
생각나요. 무늬가 도드라져 보이지만 만져보면 편평하다고...
전, 나즈막한 돌담이 참 좋아요. 우도의 낮고 동글동글한 담이 생각나요.
담이 하나로 서 있으려면 돌의 크기가 참 여러가지로 어울려있어야 해요.
크고 작고, 동글 납작, 그렇게 틈을 메꾸고 또 서로 어깨를 겯고 건재하더군요.
꽃담, 담꽃, 모두 참 정겹네요.

마노아 2008-04-17 21:11   좋아요 0 | URL
꽃담, 담꽃... 모두 예쁜 말들이에요. 어우러져서 한 편의 시가 될 것 같아요.
자경전 꽃담에서 그런 느낌을 받다니, 따님도 엄마 아빠 닮아서 예술가가 될 것 같아요.
아, 경복궁도 다시 가보고 싶네요^^

뽀송이 2008-04-17 22:4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정말 예쁜 담장이군요.^^
분필로 그렸다니 믿어지지 않아요. 비가 오면 더 쉽게 지워지지 않을까요?
자기만의 집 둘레에 무시무시하게 세운 담에서 받은 살쌀함을 한방에 날려버리는 우리의 소담스런 담에 가슴이 뭉클해 집니다. 님~ 잘 지내고 계시죠? 저도 오늘은 짬을 내서 서재 마실 다니고 있어요.^^;; 내일부터 또 몇일 바쁠 것 같아서요.^^;;

마노아 2008-04-18 10:35   좋아요 0 | URL
뽀송이님 반가워요~ 바쁜 나날들의 연속이군요! 그래도 잊지 않고 알라딘 마을을 다녀가시니 기뻐요~
분필로 그린 예쁜 담장에서 소박한 아름다움을 보아요. 야트막한 담장 안에서도 안전하게 살았던 우리 조상들이 슬쩍 부러워집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