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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진 1
신경숙 지음 / 문학동네 / 2007년 5월
평점 :
그녀의 이름을 먼저 알게 해준 것은 김탁환이었다. 그의 책을 먼저 소장했지만, 정작 읽고 싶게 만든 것은 신경숙이었다.
'리진'...
발음하는 순간 가볍고 얇은, 뭔가 나풀거리는 느낌이 난다. 그녀가 궁중 무희였기 때문에 그런 선입견이 생겼을 수도 있겠다.
두권 분량의 책을 생각보다 빨리 읽게 되었다. 앞서 신경숙의 책을 단 한 권 읽고서 다시 안 찾던 나는, 이번에도 비온 뒤의 눅눅함처럼 들러붙을 그녀의 우울한 정서가 걱정되었는데, 비온 뒤의 습기찬 공기보다, 차갑게 가라앉은, 뭔가 정적인 분위기가 나를 감쌌다.
문장이 주는 힘. 흔히 김훈을 떠올리면 연상되는 그런 강인한 힘까지는 아니어도, 뭔가 손에서 놓기 힘든, 놓고 싶지 않은 마력같은 것이 있었다. 그것은 애처로움에 가까웠고 서글픔과도 비슷했다. 아마도 작품의 배경이 주는 역사적인 혼돈과 서러움, 작품 속 주인공이 갖고 있는 처연함 때문일 수도 있겠다. 어느 것이든 작가가 만들어 놓은 것이었고, 독자는 그 그물망을 비껴가기 어려웠다.
작가의 후기를 읽어보니, 한쪽 반 분량의 그녀에 대한 기록이 이 소설의 모티브라고 했다. 궁중 무희 출신으로서 프랑스 초대 공사와 함께 파리로까지 갔다가, 다시 돌아와 금종이를 먹고 죽었다는 여인.
수수께끼 같은 존재였다. 찾으려 하면 할수록 더 깊이 숨어버리는 것 같았고, 관련된 자료를 샅샅이 뒤졌지만, 부러 지운 듯한 인상마저 느낄 만큼 베일 속에 가려진 여인. 그러나, 그것이 또한 기회였노라고 작가는 고백했다. 오히려 상상력의 날개를 더 펼쳐보일 수 있었노라고.
작가는 그래서 자유로울 수 있었겠지만, 독자인 나는 주인공 리진이 처한 역사적 배경으로 인해, 수없이 등장하는 실존인물들로 인해 얼마나 혼란스러웠는지 모른다. 나는 왕비와 임금을 바라볼 때 작품 속 인물 너머 실제 그들의 행적이 자꾸 떠올랐고, 홍종우를 보면서는 분개를 느꼈고, 콜랭을 볼 때마다 우리 문화재!라는 절규를 같이 삼켜야 했다. 그렇지만, 주인공 리진만은, 내게 있어 아무 것도 없이 백지 위에 그려진 여인이었다. 그래서 더 빠져들었고, 그래서 더 가여울 수밖에 없었다.
간혹 오타가 보이고, 아주 간혹 문장을 두번 읽어야 매끄럽게 읽혀지는 순간이 있었지만, 나는 신경숙이 이렇게 아름다운 문장을 쓰는 사람이었구나...라며 감탄을 많이 했었다. 첫 등장의 항구에서 묘사된 그녀의 아름다운 자태는, 신경숙의 마찬가지로 아름다운 문체로 인해 빚어질 수 있었다. 날카롭고 불안정한 영혼의 왕비 역시 그녀의 문장 안에서 그 위태로움을 표현하였고, 파리에서의 생활을 표현할 때는 내가 마치 파리의 그곳에 도착해 있는 것 같은 느낌마저 들었다. 문장의 힘, 소설의 힘을 새삼 느끼며 얼마나 두근거렸는지 모른다.
1권은 매 장마다 프랑스 공사관 콜랭이 고국으로 보내는 보고서로 시작했고, 2권은 파리의 리진이 조선의 왕비에게 보내는 편지로 거의 매 장을 시작했다. 비록 그 편지가 붙여지지는 못했지만, 이 병렬적인 구조는 일종의 리듬감을 느끼게 했다. 콜랭의 보고서로 시작한 1권은 작품과 1미터의 거리를 두고서 지켜보는 느낌이었는데, 리진의 독백과 같은 편지로 시작하는 2권은 손에 쥐고서 작품을 들여다 보는 느낌이었다.
요새 즐겨 보는 드라마 경성 스캔들은, 심각한 역사적 배경을 가지고도 코믹적인 요소를 거침 없이 집어넣는 절묘한 조화를 보여주고 있지만, 으레 '일제침략기/제국주의/식민지' 이런 단어들이 들어가면 마음이 무거워질 수밖에 없다. 설령 침략의 역사를 배제하더라도, 갇혀진 나라 조선의 여인, 그것도 궁녀라는 이름으로 왕의 여자일 수밖에 없는 그녀가 자유롭기는 너무나 어려운 일이었다. 그녀는 왕비의 말처럼 개화된 세상에 나갈 수 있는 정말 선택된 기회를 받은 사람이긴 했지만, 먼 이국 땅에서 그녀는 여전히 이방인일 수밖에 없었고, 그녀를 사랑한다고 말하는 콜랭과 정식 결혼에 골인할 수도 없었다. 다시 돌아온 조선에서는 어땠는가. 그녀가 제 아무리 조선 옷이 아닌 서양드레스를 입고 다녀도 여전히 궁의 여인이었고, 그것이 족쇄가 되어 가족과 다름 없고, 친구였고, 오누이였고, 또 연인이기도 했던 강연과 헤어져야 했다.
그녀가 시대의 압박을 뿌리칠 수 없었다고 해서 나약했다고 비난할 마음은 없다. 콜랭에게 나를 내려놓으라고 말하면서 원망이 없다고, 족하다고 말하는 리진의 마음은 진심이었다. 나는 그녀의 그 마음 그대로를 긍정한다. 마찬가지로, 그녀를 갖고 싶었고, 마침내 가졌던, 그러나 신분과 사회적 시선의 굴레로부터 벗어나지 못한 콜랭을 비난하고 싶지도 않다. 그의 사랑이 당당하진 못했지만 비겁했던 것은 아니었노라고 나는 생각한다. 시대의 압력을 적극적으로 벗어나는 사람이 얼마나 있을까. 그는 그저 조금 덜 용감하고, 조금 더 속된, 그저 평범한 한 사내였을 뿐이니까.
얼굴을 알지 못하는 어머니를 늘 그리워했던 그녀는, 어머니 나라 조선으로 돌아왔고, 어머니 같았던 왕비 곁에서 죽기를 원했다. 그녀가 두 눈으로 담아낸 왕비의 참혹한 죽음은 날 것 그대로 독자에게 노출되어, 독자도 그녀만큼이나 괴로울 수밖에 없었으니 독자는 또 다시 소설 너머 역사의 비명 소리를 듣고 말았던 것이다. 이 장면을 두고 소설의 맨 끝에서 평론가는 '패배', '노예화'라는 단어를 써서 설명했는데, 역사소설이 아닌 현대소설로 읽히기 바란 작가의 당부에도 불구하고 독자는 역사와 소설을 같이 공부하고 감상하는 일이 되어버렸다.
작품 말미의 참고문헌을 들여다보면서 공부하고 싶은 많은 책들을 담아두었다. 좋은 작품 하나를 만나면서 공부하고 싶은 꺼리도 늘어났으니 이 역시 반갑고 고마운 일이다. 게다가 오래도록 밀쳐두었던 김탁환 리심도 다시 궁금해졌다. 지금 리진을 읽고 난 이 기분을 좀 더 오래 간직하고 싶으니 당장에 집어들지는 않겠지만, 적어도 책장 속에서 내내 기다리게 만들지는 않을 듯하다.
그리고 책의 표지도 몹시 맘에 들었노라고 고백한다. 신문 연재 당시의 삽화도 찾아보았는데, 좋아하는 작가의 그림이어서 맘에 들었지만, 이 작품은 그림 없이 글로만 읽힐 때 더 몰입이 잘 될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단행본에서 삽화 없이 간 것은 좋은 선택이었다고 하겠다. 딱 하나 아쉬운 것은, 당시 궁궐과 거리, 공사관 등을 지도로 삽입해 주었다면 작품 이해에 더 도움이 되었을 텐데, 작가는 이 역시 '상상'에 맡겨야 한다고 생각했나보다. 나는 눈을 감고 리진의 마지막 춤 춘앵무를 상상으로 그려보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