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녀에 대하여
요시모토 바나나 지음, 김난주 옮김 / 민음사 / 2010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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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절


책을 덮고, 마음 한구석이 조금 먹먹해지는 듯한 느낌을 받는 것도 잠시, 이런 여행이라면, 비록 영원히 죽는다 하더라도 한 번 떠나볼 만하겠다는 느낌이 강렬하게 들었다. 기억조차 할 수 없을 정도로 강렬한 충격을 받았고, 그 상처로 인해 떠돌아다니며 스스로를 고립시킬 수 밖에 없었던 영혼을 따뜻하게 치유하는 여행이라...  

 

표지에 그려진 다소곳한 '그녀'는 오랜 시간 스스로를 보호하고 지켜내기 위해 '망각'이라는 장치를 사용했을지도 모르겠다. 그런 '그녀'에게 다가온 사촌 '쇼이치'는 오래도록 외로왔던 그녀와 동행하며 그녀의 기억의 자취들을 따라가며 자신 스스로에게도 의미있는 여행을 한다.  

 

누군가와 함께 해줌으로 상대를 치유하고 나 자신도 구원받을 수 있다면, 그 동행은 그 자체로 빛이 날 듯하다. '그녀에 대하여' 책을 읽는 내내, 그들의 동행에서 그런 느낌을 받았다. 엄청난 사건이나 굉장한 대화가 오고가지 않았어도, 난 '그녀'가 느끼게 되는 사소한 감동이나 변화를 같이 느낄 수 있었다. 마치 내 안의 어떤 것도 하나씩 드러나 치유되는 것처럼. 

 

어떤 충격적인 사건때문에 상처를 받고, 그것이 트라우마가 되는 과정을 보면, 그 사건 자체는 결국 중요한 것이 아님이 드러난다. 그 사건 자체가 충격적이라기 보다 어쩌면 그것을 받아들이는 내 안의 내면에서 어떤 화학적, 심리적 작용이 일어나 그것이 내 삶에 오래도록 어떤 상흔을 남기느냐의 문제인 것 같다. 나 역시 나를 해한 어떤 사건은 이젠 잘 기억이 나지 않지만, 그때 느꼈던 분노, 배신감, 외로움. 충격 등은 고스란히 느낌과 감각으로 남아, 세포 하나하나에 각인되어 있듯 때때로 모습을 드러내며 나를 괴롭히곤 한다. 어떤 상황이었는지, 어떤 상태였는지 기억은 나지 않지만, 느낌과 감각은 나를 다시 그 때 그 악몽같던 기억속으로 데려가곤 한다. 

 

벗어날 수 있는 방법이란, 어쩌면 잊는 것 뿐인지도...세포에 새겨진 감각 하나 하나, 때론 세포 까지도 잊어버리고 싶은 고통. 그런데 '그녀'와 '쇼이치'는 잊는 방법을 택하지 않고 '함께' 기억을 거슬러 엄마들의 행적과 과거, 또 자신들의 과거로 다시 용감하게 걸어 들어간다. 결국 '그녀'는 아버지의 무덤 앞에서 그때 자신에게 어떤 일이 일어났는지 깨닫지만, 어느새 그것은 더 이상 그녀를 해 하는 과거가 아니었다. 함께 손잡고 동행했던 그 여행이 어느새 그녀를 치유했던 것일까...  

 

나는 아직 '그녀'처럼 다시 과거로 거슬러 돌아가 내 상처를 직면할 용기는 없다. 아직은 그저 잊으려고 노력하는 것이 더 편할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그녀'의 사촌 '쇼이치'처럼 철저히 상대와 동행하기를 목적으로, 사명으로 가진 어떤 사람과 함께라면, 과거로의 여행을 떠날 용기는 낼 수 있을 것 같다. 그 여행의 과정에 분명 '치유'라는 선물이 기다리고 있을 것이 보장된다면 떠나 볼 만하지 않을까? 그 여행은 분명 약간의 건강한 긴장을 요구하겠지만, 내내 맑은 하늘처럼 따스하고 설레지 않을까 싶다. 마치 이 책 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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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리시스 2010-11-28 01:4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바나나,, 끊은지 오랜데 이거 이상하게 끌려요.^^

책을사랑하는현맘 2010-11-28 16:36   좋아요 0 | URL
전 사실 바나나의 작품도 이게 처음이예요..ㅋㅋ 문학을 워낙 오래도록 안 읽었어서요...
표지때문에 처음엔 그냥 시덥지 않은 연애소설이려니 싶었는데 잔잔하니 괜찮았어요. 워낙 사전 정보 없이 읽어서 그런가..느낌 괜찮아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