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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르미날 1 (무선) ㅣ 문학동네 세계문학전집 121
에밀 졸라 지음, 박명숙 옮김 / 문학동네 / 2014년 8월
평점 :
소개팅 잡힌 모태솔로의 심정으로 근로자의 날을 기다렸건만 올해는 일요일과 겹쳐버려서 굉장히 킹받았다. 생일보다 중요한 공휴일을 이렇게 날리다니. 갈수록 늘어나는 업무량과 줄어드는 공휴일과 방전되는 체력과 눈치가 1도 없는 고양이들까지. 건강검진 결과는 다 정상이었고, 인바디 결과는 기초대사량이 표준 이하로 나왔다. 홈트를 하는데도 왜 이 모양인지, 근로자의 날보다 이게 더 킹받는다. 암튼 아프고 힘들어서 요즘은 독서보다 건강 관리에 집중하고 있다. 피곤에 쩔은 동태 눈깔의 집사는 초롱초롱한 냥이들의 눈빛을 모른척하느라 오늘도 바쁘시다.
우리 근로자들의 생계 걱정은 다이어트 마냥 끝이 없다. 이제 메타버스 시대까지 넘어왔건만 먹고사는 일은 우째 돌팔매질하던 시절하고 달라진 게 없는 걸까. 코로나와의 전쟁으로 많은 이들이 직장을 잃었고 많은 가정의 평화가 무너졌다. 노동을 하고 삯을 받는 이 과정이 더 이상 당연하지 않게 될 때, 근로자의 절박함을 무엇으로 측량할 수 있으랴. 이번에 읽은 에밀 졸라의 <제르미날>은 이처럼 일자리를 위협받는 최하층 근로자들에 대해 다루고 있다. 코시국이라 그런지 작중 모든 인물과 상황에 공감하며 읽게 된다. 재미야 있지만 너무 현실과 오버랩 되니까 막 좋다고 하기도 좀 거시기하다는.
‘루공-마카르 총서‘ 7편 <목로주점>의 주인공인 제르베즈의 아들, 에티엔이 주인공이다. 정처 없이 떠돌다 한 탄광회사에 갱부로 들어간 소년은 겨우 굶지 않게 돼 감개무량하다. 고된 일과에 적응하며 자리를 잡아갈 때쯤 회사가 임금을 삭감하여 광부들의 분노를 산다. 조합장이 된 에티엔은 파업을 선언하지만 꿈쩍도 않는 회사 앞에 결국 폭동이 일어나고, 군대가 개입해 시위자들이 죽고 다친다. 그렇게 회사와 직원들은 각자의 입장을 내세우며 끝없는 대립을 이어나간다. 끝내 아무런 득이 없자 에티엔은 원망의 대상이 되었고, 탄광촌에 처음 온 날처럼 이방인의 신세로 전락한다. 에티엔에게도 마카르 가문의 피가 흐르고 있어 지독한 불운이 따라다녔다. 이 작가도 사디스트인 건가.
졸라의 작품들은 간단한 줄거리에 비해 분량이 압도적이다. 보통 뼈보다 살이 과하면 완성도가 떨어지는데 졸라에게는 그런 거 없다. 기자와 비평가로 활동하며 얻은 거친 생각과 불안한 눈빛이 반영된 졸라의 글들은 사실 고전이라기보다 사회소설 쪽에 가깝다. 화두가 워낙 많아서 소화하기 힘들지만 그마저도 넘사벽 스토리와 미친듯한 전개로 다 쓸어버리는 졸라 표 내공에 박수가 절로 나온다. 그니까 출구 없는 매력이란 표현은 이럴 때 쓰는 겁니다.
<목로주점>이 개인의 가난과 굶주림을 조명했다면, <제르미날>은 집단이 겪는 고통에 더 주목하고 있다. 탄광촌 사람들은 욕심도 야망도 없다. 기꺼이 노동하길 원하고 합당한 대가를 바랄 뿐이다. 그러나 회사와 부자들은 빵 조각에 온 가족이 의지하는 광부들 사정에 관심이 없다. 직원들의 항의에도 회사는 경영난을 들먹이며 수당을 낮추었고 그러면서 일은 일대로 부려먹는다. 회사가 완강한 태도를 꺾지 않았던 건 이 부당한 방침에 군말 없이 따르는 무리가 있기 때문이었다. 노동 착취여도 상관없다는데 파업이 먹혀들 리가 만무하다. 아무튼 민중봉기를 다뤄보고 싶었다던 작가는 칼이든 톱이든 손에 잡히는 건 죄다 갈아서 이 책을 썼는데 수위가 어느 정도냐면 시위자들이 남성의 성기를 잡아 쥐어뜯기까지 한다. 그니까 문화충격이란 표현은 이럴 때 쓰는 겁니다.
졸라는 광부들이 갱에 들어가는 장면을 두고, 제물을 집어삼키는 짐승으로 묘사하였다. 갱 아래는 언제 무너져도 이상할게 없었고, 그런 곳에 굶주린 직원들을 밀어 넣는 회사 또한 짐승이었다. 이 짐승은 탄광 사고가 터질 때마다 부실공사 문제라며 광부들 탓으로 돌렸다. 회사의 갑질에 당하기만 하는 광부들을 대신해 대표로 나선 에티엔은 똑같이 빠꾸먹고 잔뜩 체면을 구긴다. 믿는 구석이 다 떨어지자 조합원들은 이성을 잃고 짐승으로 돌변하여 회사와 임원들을 위협하는데, 이런 폭력적인 행사에 반대할 이유가 없는 건 앞뒤가 다른 회사의 말과 행동 때문이었다. 말로는 적자라지만 임원 가족들은 갈수록 살이 찌는데, 부자들의 이기주의를 보노라면 이래서 법보다 주먹이 가깝다고 하는 건가 싶다.
나라면 회사에 침 몇 번 뱉은 뒤 이 바닥을 뜰 것이다. 비전도 없는 데서 거지 대접 받고 살 이유는 없으니까. 반면 떠날 생각이 없는 에티엔은 조합장의 권력과 지위를 가진 동안 자기만족에 취해서 총명함이 사라지고 판단력이 흐려진다. 어떤 욕망에도 잘 참아왔는데 분위기에 휩쓸려 선악과를 따먹고 만 것이다. 아담과 하와가 에덴동산에서 쫓겨났듯이 이제 에티엔도 대역죄인이 되어 쫓기는 신세가 된다. 아하, 이제야 에밀 졸라의 관심사가 무엇인지 알겠다. ‘루공-마카르 총서‘의 세계관을 관통하는 주제는 바로 인간의 양면성이다. <목로주점>, <인간 짐승>, <제르미날>까지 읽고 나니 더욱 확신이 든다. 자연주의의 글을 쓰는 졸라에게는 성선설/성악설 따위가 중요한 게 아니고, 평소 인간이 감추어둔 본능과 자아가 해방될 때에 나오는 날것의 자연스러움, 거기에 포커스를 두고 있다. 그렇기에 졸라의 작품에는 매번 다양한 인간 군상이 나오는데, 그들을 통해 나의 양면성을 점검해보게 된다. 그러다 보면 하늘 아래 모든 사람이 결국 다 똑같다는 결론에 도달한다. 인생. 쯧.
대단원을 어떻게 장식할지 궁금했는데 과연 기대 이상이었다. 노아의 홍수 사건을 방불케 하는 하이라이트였다. 읽는 내내 성경과 비슷하다고 느꼈었는데, 아무래도 성경이 모티프가 맞는 것 같다. 다른 점이라면 자연주의에는 선명한 교훈이나 주제가 없어 찜찜한 느낌을 준다는 정도? 날것의 이야기인데 이러면 어떻고 저런들 어떠하리. 재밌으면 그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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