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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를 쳐다보지 마 ㅣ 스토리콜렉터 67
마이클 로보텀 지음, 김지선 옮김 / 북로드 / 2018년 9월
평점 :
절판
예를 들어 된장찌개 맛집이 장사 좀 된다 싶어 김치찌개도 만들고 부대찌개, 순두부찌개도 팔기 시작하잖아? 어느새 된장찌개 맛은 예전 같지가 않고, 맛의 변화를 감지한 손님들은 가게를 찾지 않는다. 혹여 다시 들렀을 때 여전히 맛없는 된장찌개를 팔고 있다면? 실망감에다 괘씸죄까지 얹어서 동네방네에 맛없다는 소문을 퍼뜨린다. 이래서 브랜딩은 중요하다. 시장에서 살아남으려면 브랜드 고유의 맛을 유지해야 한다. 책을 쓰는 작가들도 마찬가지이다. 자신이 곧 브랜드인 이들은 까딱 잘못하면 다이렉트로 욕을 먹기 때문에 각별히 주의해야 된다. 이들에겐 ‘죄는 미워해도 사람은 미워하지 말라‘는 말이 해당되지 않는다. 작품이 욕먹는 건 곧 작가가 욕을 먹는 거니까. 그래, 난 지금 옐로카드를 줬던 작가에게 레드카드를 주게 되어 기분이 몹시 상해 있다. 한때는 명품 작가라며 극찬을 아끼지 않았었는데 말이다.
호주의 범죄소설가인 마이클 로보텀의 책들이 몇 년 전부터 국내에 줄줄이 출간되었다. 이 작가의 대표 작품은 <조 올로클린 시리즈>이고, 그중 3편인 <산산이 부서진 남자>에 반하면서 로보텀의 팬이 되었다. 이 시리즈는 주인공 직업이 심리학자라서 액션이 없는 반면, 용의자들의 내면을 통해 상황을 추측하고 흐름을 역추적하면서 범인을 찾아낸다는 독특한 발상과 독보적인 전개를 보여준다. 기존의 범죄소설과는 전혀 다른 스타일로 차별성을 갖춘 데다, 액션이 없어도 속도감과 넘치는 스릴을 보여준 작가에게 반하지 않을 수가 없었다. 그랬는데 어째 시리즈가 가면 갈수록 심리묘사도 줄어들고 사건보다 개인사의 비중이 늘면서 재미가 반 토막 나기 시작했다. 그래도 6편까진 괜찮았는데 7편에서 휘청하더니, 8편은 완전히 회생 불가를 부르짖는다. 의리로 읽긴 했지만 더는 로보텀 작품을 찾지 않을 생각이다. 그러면 이번 작품에 어떻게 실망했는지 적어보겠다.
<나를 쳐다보지 마>는 크게 두 가지 내용이다. 둘이 살던 모녀가 살해되었는데 용의자가 너무 많다는 게 문제였다. 이때 주인공의 제자였다던 심리학자가 등장해 지역민들의 마음을 사로잡은 다음 사건을 해결하겠다고 나대기 시작한다. 아무튼 그 뒤로 연쇄살인이 발생하는데 피해자들은 간통이라는 공통점이 있었고, 그걸 단서로 피해자들을 역추적하여 범인을 좁혀보지만 역시 쉽지가 않다는 쪽으로 흘러간다. 일단 듣보잡 삼류 심리학자의 수사방해로 흐름이 자꾸 끊어진다. 안 그래도 재미없는데 몰입을 망치는 요소는 뭐 하러 넣은 건지.. 그리고 첫 번째 모녀 사건과 두 번째 연쇄살인사건의 텀이 굉장히 길다. 솔직히 쓰다 막혀서 연쇄살인 설정으로 급히 바꾼 듯. 그만큼 부자연스러운 전개와 연출이 잦았고, 그래서인지 범인의 독백들도 스토리와 따로 논다는 느낌이다. 뭔가 중요한 비중일 것 같았던 삼류 심리학자는 열심히 나대다가 범인에게 죽고 마는데, 한 것도 없이 허무하게 퇴장해 급실망했다. 또한 반복되는 허탕 수사로 진도가 나가질 않아, 작가가 자신 있어 하는 인물 심리묘사 장면이 나와도 시큰둥하게만 보일 뿐이었다. 목마른 사람한테 자꾸 빵만 맥여서 뭘 어쩌자는 건지.
두 번째 내용은 고등학교를 졸업하면 아빠처럼 심리학을 전공하겠다는 큰딸의 내용이다. 올로클린은 심리학자로 지내면서 온갖 못 볼 꼴을 봐야 했고, 매번 사건에 연루되어 가족들과 멀어지게 되었다. 이런 재수 옴 붙은 인생을 딸이 원한다는데 속이 뒤집히지 않겠나. 그러나 딸의 고집을 꺾지 못한 올로클린은 반강제로 딸을 수사 현장에 데리고 다녔고, 딸은 지 딴에 도움이 돼보겠다고 개인행동을 하다 범인에게 노출된다. 그렇게 된통 당하고도 정신을 못 차린 딸은, 또다시 단독 행동을 하다 범인에게 붙잡혀서 죽을 위기에 처한다. 그리고 범인과 실랑이하는 와중에 딸이 아빠에게 보낸 전화 한 통으로, 죽어라 헛발질하던 경찰과 올로클린은 한 걸음에 범인을 찾아가 검거한다. 그러니까 여태껏 애태워가며 추리해왔던 수사를 한순간에 개고생한 걸로 퉁쳐버린 것이다. 아니, 독자를 이렇게 농락해도 되는 건가? 재미없는 걸 떠나서 이건 독자에 대한 예의가 아닐뿐더러 소설가의 자질도 의심해봐야 한다. 이외에도 실망 포인트가 가득한데 내 눈에는 작가의 슬럼프라기보다 브랜딩 실패로 보여진다. 둘러보니 로보텀과 작별한 독자들도 많던데, 혹여 대작을 들고 돌아온대도 예전 같은 인기는 없을 것이다. 그 많은 맛집을 두고 맛없기로 소문난 식당에 갈 사람이 과연 몇이나 될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