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4 제5회 젊은작가상 수상작품집
황정은 외 지음 / 문학동네 / 2014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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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희는 누나들과 닮았다. 사진을 보면 알 수 있었다. 다들 요모조모 달라 보이는 얼굴을 하고 있는데도 사진 안에서는 공통된 윤곽이 보였다. 그건 물리적인 형태라기보다는 어쩌면 분위기 같은 것인지도 몰랐다. 제희는 여자에게 친절했다. 친절하게 굴자고 마음먹고 친절한 것이 아니라 여성의 생태를 잘 이해하고 있는 것처럼 보였다. 누나들의 성장을 지켜보면서 간접적으로 경험한 여성성을 내면화한 듯했다. 제희와 같이 다니다보면 남자친구라기보다는 자매나 친한 남매 같을 때가 많았고 나는 그런 친밀감을 느낄 수 있다는 것이 좀 즐거웠다. 황정은(상류엔 맹금류)-10쪽

제희네 아버지는 감기 치료를 하러 병원에 들렀다가 우연히 그 사실을 알았다. 암이 발견된 뒤로는 제희가 아버지를 모시고 병원을 다녔고 얼마 지나지 않아 수술을 시도해볼 수는 있지만 가망은 별로 없다는 최종 진단을 받았다. 소식을 들은 밤에 제희네 누나들이 마루에 모였다. 제희네 어머니와 제희까지 여섯 사람이 손을 잡고 둥글게 앉아서 이 고난을 잘 헤쳐나가자고 스스로에게 또 서로에게 다짐했다. 그건 분명한 기도였지만 일방적인 위탁은 아니었고 서로간의 다짐이자 격려였다. 제희나 제희네 누나들에게는 신이 없었다. 황정은(상류엔 맹금류)-10쪽

예컨대 텔레비전을 보다가 어떤 장면에서 그가 웃고 내가 웃지 않을 때, 그가 모는 차의 조수석에 앉아서 부쩍부쩍 다가오는 도로를 바라볼 때, 어째서 이 사람인가를 골똘히 생각한다. 황정은(상류엔 맹금류)-32쪽

금방 그칠 눈 같지는 않네. 인터뷰 원고를 저장하며 혼잣말을 하는 내게 권은이 작은 목소리로 이렇게 말했다. 태엽이 멈추면 멜로디도 끝나고 눈도 그치겠죠. 조해진(빛의 호위)-46쪽

그러니까 작고 추운 방에 혼자 앉아 스노우볼의 태엽을 감고 또 감으며 눈내리는 세계에 빠져 있다가 눈물 한 방울 흘릴 새도 없이 급하게 잠이 들곤 했던 어떤 외로운 소녀의 꿈. 그런데, 이 꿈속은 어째서 이토록 추운 것인가. 조혜진(빛의 호위)-48쪽

셔터를 누를 때 세상의 모든 구석에서 빛 무더기가 흘러나와 피사체를 감싸주는 그 마술적인 순간을 그녀는 사랑했을 테니까. 조해진(빛의 호위)-62쪽

고생은 하지 마! 고생하는 거랑 크는 거랑은 아무 상관도 없어. 윤이형(쿤의 여행)-88쪽

여름과 가을이 더디게 지나갔다. 겨울은 더 길었다. 그리고 오지 않을 것 같던 봄이 찾아왔다. 윤이형(쿤의 여행)-97쪽

연극을 하는 게 어른이 되는 것과 상충하는 일이라고 나는 생각 안 해. 어른이라는 말이 책임질 줄 알고, 할 일을 제대로 하는 인간을 뜻한다면. 윤이형(쿤의 여행)-99쪽

그들은 놀 때도 뭔가 쌓아올리는 듯 놀고 쉴 때도 긴장을 풀지 않은 채 쉬었다. 윤이형(쿤의 여행)-102쪽

난 내가 뭘 놓칠 수나 있는지 잘 모르겠어. 뭔가가 있긴 있을까?
그럼요, 나는 말해주고 싶었다. 그러나 그럴 수 없었다.
나처럼 백사십만원만 내면 한 학기를 다닐 수 있었거나, 배낭여행을 가서 우연히 과 친구들 셋을 만날 만큼 여유 있는 시대를 타고났더라면 그녀는 더 많은 일들을 할 수 있었을 것이다. 그러나 그건 단지 그녀로 살아보지 못한 내 인상일 뿐이었다. 마주앉은지 겨우 두 시간이 지났을 뿐이었다. 나는 그녀를 몰랐다. 윤이형(쿤의 여행)-104쪽

나는 그 병원에도 다시 가지 않았다. 마지막 말이 나를 무시하는 것처럼 들렸기 때문이었다. 최은미(창 너머 겨울)-136쪽

이곳은 내가 있어야 할 곳이 아니라는 듯 뽀얀 얼굴로 왔다갔다하다 몇 개월 만에 그만두는 여자 신입들을 나는 증오했다. 푹푹 찌는 한여름에도 카디건을 걸치고 앉아 뜨거운 커피를 홀짝거리며 길거리를 내다보는 여자들. 그런 여자들만 보면 나는 가서 다 망쳐놓고 싶은 충동을 느꼈다. 내가 땀 흘려 일하는 사회교육단체의 소녀 대원들이 내가 증오하는 부류의 여자로 클지도 모른다는 사실. 그만두고 싶은 고비는 그럴 때 찾아왔다. 최은미(창 너머 겨울)-140쪽

어머니는 말씀하셨다. 다른 거 따질 거 없다. 그저 화목한 부모 밑에서 사랑받고 자란 여자가 제일이야. 그런 여자가 너도 위해줄 줄 알고 애도 반듯하게 키우는 거다. 그게 어머니가 말하는 배우자의 덕이었다. 양친이 있고, 그 양친의 사이가 좋고, 그런 부모가 저절로 심어준 세상과 사랑에 대한 믿음 때문에 빛깔 자체가 환한 여자. 그런 여자가 내 주위의 어딘가에 있기는 있었던 것 같지만 그들은 나와는 늘 다른 반, 다른 과, 다른 동네였다. 같은 지하철역에서 내려도 다른 빌딩으로 출근했다. 나는 해사한 형수를 볼 때마다 내가 그동안 사귀었던 음울한 여자들을 떠올렸다. 최은미(창 너머 겨울)-145~146쪽

사람들은 아버지와 작은아버지를 보면 형만한 아우 없다는 말을 했다. 작은 아버지가 속을 알 수 없는 얼굴로 말없이 사방을 주시하는 사내인 데 반해 아버지는 정도 많고 웃음도 많고 술도 좋아해 주위에 사람들이 많았다. 풍채도 좋아서 여동생과 나를 양팔에 매달고 수건처럼 휘휘돌려주기도 했다. 아버지는 그 호방한 성격을 내가 아닌 여동생에게 거의 물려주었지만 나는 동네 사람들이 아버지와 소소한 고민을 나누러 들르거나 먹을 게 생기면 우리집에 보내오는 게 싫지 않았다. 아버지를 좋아하지 않는 건 작은아버지뿐이라고, 가까운 사람들은 농담 반으로 말했다. 최은미(창 너머 겨울)-147쪽

아버지가 마신 건 박카스 뚜껑으로 한 모금이었다. 입술만 축여도 죽는다는 전설의 제초제 그라목손이었다. 실수로 마셨는지 홧김에 마셨는지는 알 수 없었다. 어머니는 티 안 나게 깐죽대온 작은아버지 탓을 했고 작은아버지는 티 안 나게 긁어온 어머니탓을 했다. 최은미(창 너머 겨울)-152쪽

그녀의 본명은 말희였다. 어떤 여자들이 옷장 저 깊숙한 데다 한두 벌쯤 처박아둔 유행 지난 주름치마 같은 이름. 물론 정감 어린 데가 없진 않았지만 그녀는 자기 이름을 소개해야 하는 자리에서 ‘말희’ 대신 ‘마리’라고 흘려 쓰거나 말하곤 했다. 기준영(이상한 정열)-173쪽

그들은 같이 잤다. 별일은 없었다. 뭘 했다고도 안 했다고 안 했다고도 할 수 없이, 그는 서툴렀다. 너무 성급했고, 금세 낙담했다. 기준영(이상한 정열)-189쪽

그녀는 아버지가 이야기를 꺼내는 것을 어려워하는 기색을 보이면 보일수록 자신의 마음은 더욱더 편안해지는 것을 느꼈다. 누군가가 자신에게, 경건한마음으로 진실을 털어놓을 시간이 점점 가까워오고 있다는 사실에서 오는 감정이었다. 손보미(산책)-217쪽

예나 지금이나 그의 고집은 몹시 꺾기 힘들었는데, 그래서 그의 아내는 종종 그를 ˝이 고집불통!˝이라고 불렀다. 그들의 딸은 성인이 된 이후에도 그 말을 종종 떠올리곤 했다. 그 말을 떠올릴 때면, 그들의 딸은 그들 가족이 더없이 행복하고 단란했던 한때를 생각해낼 수 있었다. 결국 깨져버렸지만, 그래도 그런 시절이 한순간이나마 있었던 것에 대해 그의 딸은 몹시 감사했다. 손보미(산책)-220쪽

쇼코는 해변에 서 있으면 이 세상의 변두리에 선 느낌이 든다고 말했었다. 중심에서 밀려나고 사람들에게서도 밀려나서, 역시나 대양에서 밀려난 바다의 가장자리를 만나는 기분이라고. 외톨이들끼리 만나서 발가락이나 적시는 그 기분이 그렇게 좋지는 않다고 했다. 최은영(쇼코의 미소)-245쪽

눈을 반짝이며 웃는 엄마와 말이 많은 할아버지는 내가 모르는 사람들 같았다. 이런 사람들을 바깥에서 만났다면 나는 주저 않고 좋은 어른들이라고 말할 수 있을지도 모른다고 생각했다. 엄마와 할아버지는 늘 무기력했고 사람을 사귀는 일에 서툴렀다. 나는 엄마와 할아버지가 작동하지 않아 해마다 먼지가 쌓이고 색이 바래가는 괘종시계 같은 사람들이라고 생각했었다. 변화할 의지도, 아무런 목표도 없이 그저 그 자리에서 멈춰버린 사람들이라고.
가족은 언제나 가장 낯선 사람들 같았다. 어쩌면 쇼코는 나의 할아버지에 대해서 나보다 더 많이 알았을지도 모른다. 최은영(쇼코의 미소)-250~251쪽

나는 쇼코가 준 세계지도를 벽에 붙여놓고, 쇼코가 살고 있는 A시와 우리 군에 빨간색 점을 찍었다. 두 점은 한 뼘도 되지 않을 정도로 가까웠다. 그리고 쇼코가 가고 싶다는 세계의 도시들에도 점을 찍었다. 베이징, 하노이, 시애틀, 크라이스트처치, 더블린. 그 작은 점 속에서도 사람들이 살고 있다고 생각하니 아득해지는 기분이었다. 최은영(쇼코의 미소)-252쪽

눈에서 멀어지면 마음에서도 멀어진다는 말이라든가, 미운 정이든 고운 정이든 자주 보고 정이 들어야 한다는 말이 있지만 쇼코의 경우에는 달랐다. 자신의 삶으로 절대 침입할 수 없는 사람, 보이지도 들리지도 않는 먼 곳에 있는 사람이라야 쇼코는 그를 친구라 부를 수 있었다. 최은영(쇼코의 미소)-254쪽

쇼코는 잠시 침묵하더니 입을 아주 작게 열고 한숨을 쉬듯 말했다.
˝네가 그리웠어.˝
나는 쇼코가 조금 미워져서 나도 네가 보고 싶었다고는 말하지 않았다. 그런데도 내가 그리웠다는 그 말에 눈물이 났다. 최은영(쇼코의 미소)-261쪽

어떤 연애는 우정 같고, 어떤 우정은 연애 같다. 쇼코를 생각하면 그 애가 나를 더이상 좋아하지 않을까봐 두려웠었다. 최은영(쇼코의 미소)-261쪽

어디로 떠나지도 못하면서 그렇다고 그렇게 박혀버린 삶을 사랑하지도 않는 사람의 맨얼굴을 들여다보는 일은 유쾌하지 않았다. 최은영(쇼코의 미소)-265쪽

물리치료사가 되었겠지. 그리고 돈을 벌기 시작했을 테고. 그 당시의 나는 쇼코가 너무 쉬운 결정을 내렸다고 생각했다. 스물세 살에 벌써 직업을 정하고 태어난 소읍에서 떠나지 못한다는 건 형편없는 선택이라고. 최은영(쇼코의 미소)-268쪽

그래서 꿈은 죄였다. 아니, 그건 꿈도 아니었다. 최은영(쇼코의 미소)-270쪽

어떤 영화를 만들고 싶다는 생각은 이미 죽어버린 지 오래였다. 나는 그저 영화판에서 비중 있는 사람이 되고 싶었다. 최은영(쇼코의 미소)-270쪽

영화는, 예술은 범인의 노력이 아니라 타고난 자들의 노력 속에서만 그 진짜 얼굴을 드러냈다. 최은영(쇼코의 미소)-271쪽

˝너도 엄마가 이상해 보이지.˝
나는 고개를 가로젓다가 끄덕였다.
˝응. 엄만 정말 이상한 사람이야.˝
엄마에게 쌓인 감정을 풀지 못했을 때는 하지 않았던 말이었다. 엄마는 조금 웃다가 내 어깨에 기대어 잠들어버렸다. 최은영(쇼코의 미소)-286쪽

˝한국을 생각할 때면 늘 K군의 그 고즈넉한 분위기, 스쿠터를 타고 다니는 중년 여자들, 기다란 풀들이 우후죽순 솟아난 천변과 하루살이들이 떠올랐었어.˝ 최은영(쇼코의 미소)-296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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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의 대외 전쟁 - 16~19세기 일본 문헌에 나타난 전쟁 정당화 논리
김시덕 지음 / 열린책들 / 2016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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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일본에 관한 이런저런 책을 종종 사거나 읽지만 한일 관계에 대한 책에 손을 대는 일은 거의 없다. 전반적인 쟁점과 중요한 사실 관계는 이미 알고 있는데다, 저자의 국적을 가리지 않고 변명과 비난의 균형을 잃었거나, 애초에 뭐가 뭔지 모르는 경우가 대부분이어서 굳이 그렇지 않은 책을 찾느라 시간을 허비하고 싶지도 않았기 때문이다. 그런 까닭에 마침 이 책을 읽게 된 것은 행운처럼 여겨지기도 한다. 단순히 한국 출신의 학자가 일본의 대외 인식을 논한다는 측면만 봤다면 그 이상 다가가지 않았을 것이기 때문이다. 한국 학자가 일본어로 집필한 학술서를 번역했다는 것이 이 책에 관심을 가진 이유다. 어쩌면 문제는 이 주제 자체보다는 그에 대한 편향된 이론을 각 국가의 학자들이 자국민만을 대상으로 반복하며 재생산하는 현상에 있었던 것일지도 모른다. 이 책 덕분에 뒤늦게 생각해 본 점이다.

 

특정 개인, 특정 국가에 일방적으로 전쟁 책임을 묻거나, 상대방은 <>이고 자기 집단은 <>이라고 규정하는 것은 간단하다. 그러나 그 결과는 주체적으로 판단하는 개인의 소멸일 뿐이며, 무력 충돌의 순환은 멈추지 않는다. 필자는 여기서 극단적인 상대주의를 주장할 생각은 없다. 그러나 개개인이 프로파간다에 속지 않기 위해서는, 자신이 소속한 집단 내부에서 주장되는 전쟁의 정의(正義)와 부정의(不正義)를 인류 역사에서 확인되는 전쟁의 본질이라는 측면에서 되돌아보아야 한다. -p.12~13


 그런 까닭에 일본인들이 저술한 임진왜란 문헌군과 그 형성사를 축으로 삼아 이 임진왜란 문헌군이 일본의 주요한 대외 전쟁 관련 문헌들에 미친 영향을 탐구하면서, 더 나아가 전쟁의 무대인 동부 유라시아 대륙의 정세 변화가 이 문헌들과 당대 일본의 전쟁관, 대외관에 반영되는 과정까지 아우른 이 책을 한국인 학자가 일본어로 저술했다는 형식적인 측면이 일단 중요했다. 임진왜란과 그 여파에 대한 한국의 입장을 숙지한 상태에서, 일본의 관점을 담은 전쟁 문헌군들의 입장과 그것이 변화해 가는 과정을 연구하는 것은 분명 지난한 일이다. 국가들의 상이한 입장을 이해하면서도 어느 쪽으로도 치우치지 않기는 생각보다도 더 어렵다. 하지만 동시에 이 쟁점을 다루는 가장 타당하고 효과적인 접근법이기도 하다.

 

 이 책이 일본의 문헌을 바탕에 두고서 그들의 임진왜란 인식이 지닌 의미와 한계까지 명료하게 분석한 데는, ·일 양국의 관점을 복안적(複眼的)으로 적용했다는 것이 큰 몫을 차지한다. 물론 학자로서 갖춰야 할 당연한 소양의 결과라고 말할 수도 있겠지만, 이처럼 첨예한 논제에서 국가주의에서 벗어나 경계를 아우르는 시선을 택하기가 그리 녹록하지 않다. 문제는 그 학자들의 역량만이 아니라, 그것을 끝내 받아들이지 못하는 역사 인식에 더없이 만족하는 독자들에게도 있다. 한국과 일본 모두에서 말이다. 한국과 일본의 역사적 쟁점을, 일본의 문헌을 핵심에 놓고 분석해서, 일본의 독자(학자)들을 상대로 서술한, 한국 출신 학자의 저작이라는 점에 좀 더 주목할 필요가 있다. 이 책의 탁월한 성과는 일정 부분은 필자와 독자가 쟁점의 양 당사국 출신이라는 점에 의존하는 까닭이다. 경계의 문제를 단일한 영역 내에서만 규명해 내는 시대는 오래 전에 지나 왔다는 사실을 늦게나마 깨달았다는 것이 이 책에서 얻은 가장 큰 기쁨이다.

 

근세 일본 문화사에서 임진왜란 문헌군이 지니는 가장 큰 의의는, 이 문헌군이 본질적으로 한중 양국 문헌과의 교류를 통해 성장했다는 점에 있다. 외국 문헌, 특히 중국 문헌이 근세 일본 문헌에 강한 영향을 미쳤다는 것은 주지의 사실이지만, 임진왜란 문헌군의 경우에는 중국 문헌 이외에 징비록을 비롯한 한국 문헌도 영향을 미쳤다는 점에서 주목된다. -p.110

 

 저자는 일본의 임진왜란 문헌군에 중국과 한국 문헌이 미친 영향을 구체적으로 규명하는 데서 시작해, 이 문헌군의 직간접적 영향 아래 형성된 일련의 전쟁 문헌군은 근대 동부 유라시아의 정세 변화와 그에 대한 일본 사회의 반응도 담고 있다는 주장까지 설득력 있게 전개한다. 이러한 시야는 그 중심에 일본의 문헌이 놓였다 해도 오히려 일본 내부에서 제시되기는 어려울 것이다. 일단 자신들의 임진왜란 문헌에서 조선, ·청의 문헌이 흔적을 남겨 온 흐름을 추적할 동기는 그들보다도 외부자에게 더 잘 부여되지 않을까. 일본의 임진왜란 문헌군 및 그에 관한 일본 학계의 기존 연구 성과와 외부자인 저자의 고유한 시선이 조화를 이룬 결과, 중국의 양조평양록, 무비지부터 조선의 징비록, 은봉야사별록까지 외부 문헌의 일본 전래와 그 번역문의 오류가 일본의 후속 문헌에 전승되는 과정, 이러한 해외 문헌이 전래되면서 기존에 일본의 자료들만으로 편찬됐던 임진왜란 문헌의 오류가 교정되거나 그들은 알지 못했던 전쟁 당시 조선, 명 등의 동향과 같은 세부 정보가 보강되는 과정 등이 명쾌하게 제시됐다. 일본과 조선, 중국의 실제 전쟁 문헌들을 세밀히 대조하면서 삼국의 역사적 시선이 교차하는 과정을 검증하는 부분들은 저자가 책을 뒤져 가며 문헌들 간의 관계를 확인하는 모습을 곁눈질하는 것처럼 현장감이 느껴질 때도 있었다.

 

(임진왜란에 관해) 일본에서 저술된 문헌들에는 실려 있지 않은 정보가 담겨 있다는 점에서는 중국 문헌이 유용했지만, 적국이었던 명나라에서 집필된 문헌에는 일본 측에 유리하지 않은 정보가 담겨 있는 경우도 있었다. 당연히 일본의 저자들은 명나라 문헌에 실려 있는 내용을 존중하면서도, 중일 양국 문헌의 내용이 충돌하는 경우에는 일본 문헌 쪽을 우선시하였고, 자신이 모시는 주군 가문의 입장도 배려하는 신중한 집필 태도를 관철하였다. -p.109~110

어감이 좋지 않은 <관추(關酋)>에서 도요토미 히데요시의 정식 관직 명인 <관백(關白)>으로 바뀐 것은, ‘이칭일본전과 일본판 조선 징비록(조선판) 2권본 징비록의 본문을 충실히 옮긴 것이 아니라, 일부 본문을 자의적으로 수정하였음을 보여 주는 사례이다. -p.116

 

 또한 저자는 일본의 임진왜란 문헌군이 조선 등의 문헌을 단순히 참조, 반영한 것이 아니라, 임의로 개찬(改竄)한 사례도 소개한다. 역사를 편의에 따라 수용하는 경향은 시대나 국가를 불문한다는 사실을 보여 주는 또 하나의 사례이다. 무엇보다도 근본적으로 명분이 없는 전쟁인 임진왜란을 타당한 정벌(征伐)’로 인식, 서술하는 일본의 문헌군에서 이러한 왜곡의 발생은 필연적이다. 더 나아가 이 문헌군의 영향을 받으며 성립한 유구 전쟁 문헌군과 에조 전쟁 문헌군이 각각 미나모토노 다메토모(源爲朝)와 미나모토노 요시쓰네(源義朝)의 전설을 차용해서 이들 지역에 대한 당대의 침략 담론을 광범위하게 형성하고, 이것이 독자들의 호응을 받았던 정당화 기제로 확장된 것은 아닌지 궁금해지기도 했다. 임진왜란, 유구 전쟁, 에조 전쟁을 주제로 한 방대한 양의 군담(軍談), 고단(講談), 조루리(淨琉璃)의 성립 역시 이 사건들을 배경으로 한 대중적 오락물의 성립일 뿐만 아니라, 이 당대의 영토 병합 및 조선 등을 병합하려는 욕구에 대한 문제의식이 근대 일본에서는 희박했다는 방증으로 보였다.

 

그런데 삼한 전쟁 문헌군이나 유구 전쟁 문헌군에서 임진왜란 문헌군을 인용 내지는 표절할 때, 그 대상이 되는 임진왜란 문헌군의 타이틀을 밝히는 경우는 거의 없다. 이를 저자들의 불성실한 집필 태도라고 하여 비난하는 것도 가능하다. 그러나 저자들에게 임진왜란 문헌군은 자신들이 이국 정벌 전기를 집필하기 위한 전범canon으로서 인식되었기에 굳이 이름을 거론할 필요를 느끼지 못했다고 할 수 있지 않을까? 저자들의 앞에는 고대 이래의 군담과 함께, 임진왜란 문헌군이라는 근세의 군담이 방대하게 존재하고 있었다. 이 양자를 융합하는 것이야말로, 삼한 전쟁 문헌군을 비롯한 근세 이국 정벌 전기의 커다란 특성이라고 하겠다. -p.386

 

 궁극적으로 실패한 외침이었던 임진왜란과 그로 말미암아 좌절된 일본의 영웅이었던 도요토미 히데요시의 욕망에 대한 근대 일본의 상실감이 성공한 두 침략 전쟁인 유구와 에조 전쟁 문헌군의 유행으로 이어졌다는 추측이 불가능하지는 않을 것이다. 그러므로 유구와 에조 정복의 성공 경험이 다시금 조선에 대한 침략을 꿈꾸는 대중적 정서로 이어지는 것은 일정 부분 필연적으로 보이기도 한다. 임진왜란 문헌군과 유구 전쟁·에조 전쟁 문헌군의 연관성은 텍스트들 사이에서 드러나는 것뿐만 아니라, 독자들의 대외관에 미친 영향의 측면에서도 생각해 볼 여지가 있을 것이다. 일본의 대외 전쟁을 다룬 문헌이라는 계통에서 볼 때 유구 전쟁·에조 전쟁 문헌군과 임진왜란 문헌군이 갖는 관계를 이 책에서 정밀하게 확인해 준 덕분에 이 문헌군의 유행 자체가 한일 합방의 중요한 추동력을 제공했으리라는 생각이 좀 더 명료해졌다.

 

 오늘날에는 오키나와와 홋카이도로 불리는 유구와 에조치는 이 책에서 다루는 문헌군들이 유행했던 에도 막부 시대가 끝나고서야 비로소 일본의 통치 영역이자 역사 공간으로 온전히 편입됐다. 실패한 전쟁인 임진왜란 문헌군에서 이 성공한 침공 문헌군들의 기원을 탐구하는 것은 곧 과거 오키나와와 홋카이도의 일본 역사 속 외부성을 상기시키는 시도이기도 하다. 이러한 통찰은 저자 자신이 일본 밖의 한국인이라는 사실과 결합하면서 좀 더 정치(精緻)해지는 측면도 있는 듯하다. 이 책에 담긴 저자의 문헌·공간적 시선은 다채롭고 세밀해서 읽는 동안 여러모로 즐거웠다. 한국의 임진왜란 문헌에도 일본이나 중국을 비롯한 외부 문헌의 영향이나 그러한 문헌들의 자의적 해석에 대한 저자의 문제의식을 적용할 가치는 충분할 것이다. 그런 연구를 일본인 학자가 수행한다면 문헌들의 맥락이 더 풍부하게 전개될지 모른다는 상상까지도 해 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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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의 대외 전쟁 - 16~19세기 일본 문헌에 나타난 전쟁 정당화 논리
김시덕 지음 / 열린책들 / 2016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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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정 개인, 특정 국가에 일방적으로 전쟁 책임을 묻거나, 상대방은 <악>이고 자기 집단은 <선>이라고 규정하는 것은 간단하다. 그러나 그 결과는 주체적으로 판단하는 개인의 소멸일 뿐이며, 무력 충돌의 순환은 멈추지 않는다. 필자는 여기서 극단적인 상대주의를 주장할 생각은 없다. 그러나 개개인이 프로파간다에 속지 않기 위해서는, 자신이 소속한 집단 내부에서 주장되는 전쟁의 정의(正義)와 부정의(不正義)를 인류 역사에서 확인되는 전쟁의 본질이라는 측면에서 되돌아보아야 한다. -12~13쪽

나카무라(나카무라 유키히코)는 ‘일본 고전 문학 대사전’(이와나미 서점, 1983~1985)에 ‘조선 군기물’이라는 항목을 설정하고, 임진왜란에 관한 에도 시대의 문헌을 (도요토미 히데요시에 관한) 다이코기 문헌군의 일부가 아닌 독립적인 문헌군으로서 위치 지웠다. -38쪽

가토 기요마사 문헌군의 역사적 전개 양상을 개괄하면, 전투 기사의 서술이 상세해질수록 모험담으로서의 허구적 성격도 강해지는 경향을 보인다. 가토 기요마사 문헌군의 여러 문헌에서 전개되는, 조선이라는 이국과 오랑카이라는 이계(異界)에서 펼쳐진 전투 기사는 사람들의 호기심을 채워 주었으리라 생각한다. 한편, 가토 기요마사 문헌군에서는 <이국으로의 침략 에피소드>를 <이국에 의한 피침략 에피소드>로 전환시킴으로써, 이국과의 전투에서 일본 측의 피해 의식을 강조하는 경향이 확인된다. -42쪽

(18세기 중후반의 문헌인) ‘조선 정벌 군기강’에서는 도쿠가와 이에야스(德川家康)에 대한 반감이 확인되는데, 이는 이 문헌이 오사카의 청중을 대상으로 강설된 고단에 바탕한 필사본 형태로 유통되었기 때문에 막부의 검열에서 비교적 자유로웠던 데 기인한다. -43쪽

야나기사와 마사키에 따르면 ‘다이코기’에 수록된 임진왜란 기사의 기본 구도는 <강화 협상에 따른 휴전을 준수하여 재침을 선제적으로 시도하지 않은 일본>이며, <이 구도의 원형은, 히데요시의 부하이자 임진왜란 당시 나고야에 주둔한 바 있는 오타 규이치(太田牛一)의 ‘도요쿠니 다이묘진 임시 어제례 기록’에서 확인된다. (후략)>-65쪽

임진왜란 이후 1600년의 세키가하라 전투, 1614~1615년의 오사카 전투 등을 통해 임진왜란 참전자의 다수가 사망했을 뿐 아니라, 도요토미 히데요시 정권을 찬탈하는 형태로 집권한 도쿠가와 이에야스 정권하에서 도요토미 정권 최후의 전쟁인 임진왜란에 대한 기록을 남기고자 하는 체계적인 움직임은 일어나지 않았다. -65쪽

‘다이코기’ 속에서 임진왜란이란, 도요토미 히데요시의 일생에서 클라이막스이자 완결에 해당하는 사건으로서 위치 지워져 있다. -74쪽

(시마즈 가문의 사적인 ‘정한록’ 서문에서) 하야시 가호는, 도요토미 히데요시가 진구코고에 견줄 만한 위업을 달성했으며, 그 위업을 달성하기 위해 전쟁을 지휘한 일본의 장군들 가운데 중국 문헌에 이름이 실린 것은 고니시 유키나가, 가토 기요마사, 시마즈 요시히로 세 사람이라고 서술한다. 그 가운데 고니시와 가토는 멸망했지만 시마즈 요시히로의 가문은 여전히 번창한다고 하여 시마즈 가문을 칭송한다. -101쪽

(임진왜란에 관해) 일본에서 저술된 문헌들에는 실려 있지 않은 정보가 담겨 있다는 점에서는 중국 문헌이 유용했지만, 적국이었던 명나라에서 집필된 문헌에는 일본 측에 유리하지 않은 정보가 담겨 있는 경우도 있었다. 당연히 일본의 저자들은 명나라 문헌에 실려 있는 내용을 존중하면서도, 중일 양국 문헌의 내용이 충돌하는 경우에는 일본 문헌 쪽을 우선시하였고, 자신이 모시는 주군 가문의 입장도 배려하는 신중한 집필 태도를 관철하였다. -109~110쪽

근세 일본 문화사에서 임진왜란 문헌군이 지니는 가장 큰 의의는, 이 문헌군이 본질적으로 한중 양국 문헌과의 교류를 통해 성장했다는 점에 있다. 외국 문헌, 특히 중국 문헌이 근세 일본 문헌에 강한 영향을 미쳤다는 것은 주지의 사실이지만, 임진왜란 문헌군의 경우에는 중국 문헌 이외에 ‘징비록’을 비롯한 한국 문헌도 영향을 미쳤다는 점에서 주목된다. -110쪽

어감이 좋지 않은 <관추(關酋)>에서 도요토미 히데요시의 정식 관직 명인 <관백(關白)>으로 바뀐 것은, ‘이칭일본전’과 일본판 ‘조선 징비록’이 (조선판) 2권본 ‘징비록’의 본문을 충실히 옮긴 것이 아니라, 일부 본문을 자의적으로 수정하였음을 보여 주는 사례이다. -116쪽

또한 (일본의 임진왜란 문헌들인) ‘조선 군기 대전’과 ‘조선태평기’의 경우와 마찬가지로 ‘에혼 다이코기’에 수록된 임진왜란 기사로부터는 ‘징비록’에 의거하여 중국 계통 문헌군의 내용을 수정하는 경향이 확인된다. 예를 들어 이순신의 활약상은 ‘조선 군기 대전’, ‘조선태평기’, ‘에혼 다이코기’ 등에서도 자세히 서술된다. 그런데 중국 계통 문헌군에서 이순신은 단순히 <이통제(李統制)>라고 불리고 있으며, 어디까지나 명나라 장군을 보조하는 존재로서만 그려지고 있다. -142쪽

물론 이순신이라는 이름 자체는 (중국의 임진왜란 문헌인) ‘양조평양록’ 등에 보이지만, 위의 인용문과 같이 명 측 기록에는 임진왜란 당시 그의 전설적인 승리가 기록되어 있지 않다. 그러나 이순신의 후원자였던 류성룡이 ‘징비록’에서 이순신을 임진왜란의 주인공으로 자리매김하자 ‘징비록’이 일본에 전래된 뒤에 제작된 임진왜란 문헌군을 통해 그의 이름은 일본에서도 널리 알려지게 된다[‘조선 군기 대전’ 권38 ‘이순신 전사(李舜臣戰死事)’등]. -144쪽

근대 이후에도 ‘조선 류씨 징비록 대역 권지1(朝鮮柳氏懲毖錄對譯卷之一)’(長內良太郞, 鈴木實譯, 含英舍, 1876년 2월)이나 ‘조선 징비록’(山口勗譯, 蒼龍屈, 1894년 7월)과 같이 ‘징비록’은 시대 상황에 맞추어 출판되는 모습을 보인다. 1876년 2월은 한일 양국 간에 불평등 조약인 강화도 조약이 맺어진 같은 해 같은 달이고, 1894년 7월은 갑오 농민 전쟁에 편승하여 일본 군이 조선 왕궁을 점령한 다음 달이다. 이러한 출판 상황은, 조선을 정복하는 데 실패한 과거를 반성하고 미래를 준비하여 조선을 정복하고자 하는 근대 일본의 분위기를 상징하는 것처럼 느껴진다. -149쪽

일본어 <오랑카이(オランカイ)>는 한반도 주민이 이 지역(중국의 동북 지방)의 주민을 가리키던 호칭 <오랑캐>에서 나왔으며, 에도 시대 일본인에게도 잘 알려져 있었다. -151쪽

임진왜란 문헌군이 성립하고 인기를 끈 배경에는 이국 취향exoticism이 존재한다. -156쪽

일본의 임진왜란 문헌은 한반도 주변 지역에 머무르지 않고 북태평양 연안 전체를 지리적 무대로 파악하였으며, 가토 기요마사로 하여금 조선과 명나라라는 이국뿐 아니라, 일본인이 가본 적 없는 북태평양 연안 지역이라는 이계에 거주하는 민족과도 싸우게 한 것이다. -159쪽

그러나 가토 기요마사 문헌군에서는, 애초에 조선 의병 및 오랑카이 군이 일본 군을 공격한 원인이 일본 군의 침략이었다는 사실은 잊혀지고, 가토 군이 공격받았다는 데 대한 피해 의식, 피침략 의식만이 강조된다. 일본 군이 이국을 공격한 사실에 대한 전승이, 외국 군이 일본을 공격한다는 식으로 도치되는 현상은 임진왜란 문헌군 이외에서도 확인된다. -161~162쪽

(임진왜란 기사를 전하는) ‘구로다가보’ 권6~8은 ‘조선 정벌기’를 이용하여 전체 틀을 설정하고, 한중일의 관련 문헌과 구로다 가문에 전해지는 기록을 교합(校合)하였다고 생각된다. 호리 교안 자필본 계통의 ‘조선 정벌기’는 (중국 문헌인) ‘양조평양록’과 ‘무비지’를 이용하여 전체 틀을 설정하고, 아사노 가문에 전해지는 문헌과 교합한 것이다. 임진왜란 7년의 전체 상을 제시한 선행 문헌과 주군 가문에 전해지는 문헌을 교합했다는 점에서, ‘구로다가보’와 ‘조선 정벌기’는 유사한 성립 배경을 지닌다. -182쪽

또한 집필에 이용된 외국의 임진왜란 관련 문헌을 비교하면, ‘조선 정벌기’에는 ‘양조평양록’과 ‘무비지’ 정도만 이용된 데 반해, ‘구로다가보’의 저자는 ‘양조평양록’ 및 ‘무비지’와 함께 ‘황명실기’, ‘징비록’, ‘사명당집’ 등 한중일 삼국의 관련 문헌을 널리 이용하여 임진왜란에 관한 종합적인 서술을 시도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조선 정벌기’와 ‘구로다가보’는 주군 가문의 공훈을 현창하기 위하여 기록되었다는 점에서 공통되지만, 더욱 많은 수의 관련 문헌을 이용하여 7년 전쟁의 총체적 서술을 시도했다는 점에서는 ‘구로다가보’가 ‘조선 정벌기’보다 한 발 더 나아갔다고 할 수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 후 일본의 임진왜란 문헌에 영량력을 미친 것은 ‘조선 정벌기’였다. 그 원인 가운데 하나로, ‘조선 정벌기’가 출판되어 널리 유통된 데 반하여, ‘구로다가보’는 사본으로만 기록되었으며 유포도 엄중히 제한되었다는 점을 들 수 있다. -183쪽

1705년에 간행된 통속 군담 ‘조선 군기 대전’과 ‘조선태평기’는 ‘구로다가보’보다 더욱 철저하게 한중일 3국의 임진왜란 문헌을 교합하여 7년 전쟁의 전체 상을 제시하여, 에도 시대 중기 이후의 임진왜란 담론에 큰 영향을 미쳤다. 그런데 이 두 문헌은 모두 교토에서 간행되었다. 가이바라 엣켄은 규슈 후쿠오카 번의 가신이었지만 교토를 중심으로 한 전국 규모의 지적 네트워크에 속하여 있었으며, 교토에서 간행된 ‘조선 징비록’의 서문을 썼다. 따라서 이들 3개 문헌은 근세 일본 문화의 중심지인 교토 등지에서 전개되고 있던 임진왜란 담론을 담고 있다고 할 수 있다. -183~184쪽

에도 시대의 서민들이 즐겼던 구술 예능 장르인 고단(講談)의 대본인 ‘조선 정벌 군기강’은, 통속 군담인 ‘조선태평기’를 많이 참고하면서도 그 이전의 임진왜란 문헌군에는 보이지 않던 독자적인 기사 역시 많이 추가하였다. 또한 ‘조선 정벌 군기강’의 본문에서는 반(反)도쿠가와 이에야스적인 내용이 확인된다. 이는 ‘조선 정벌 군기강’이 도요토미 히데요시에 온정적인 오사카의 청중을 대상으로 한 고단의 대본으로서 유통된 데서 비롯된 것이다. -193쪽

오사카의 출판인 가치오야 로쿠베(勝尾屋六兵衛)가 1797~1799년 사이에 ‘에혼 다이코기’를 출판하고 인기를 얻는 상황을 눈여겨보고 있던 교토의 출판인 이즈모지 분지로(出雲寺文次郞)가, 1800년 이후에 임진왜란을 다루는 ‘에혼 다이코기’ 제6편이 간행될 것을 예상하고, 이보다 앞서 ‘에혼 조선 군기’를 간행했다고 생각할 수는 없을까? 이 출판인은 19세기 중기에 역시 임진왜란을 주제로 하는 ‘조선정토시말기’와 ‘정한위략’ 등을 간행한 바 있다. -235~236쪽

‘징비록’은 정치적인 움직임과 여러 전투를 교대로 수록함으로써 복잡한 전황을 요령 있게 전달한다. 이처럼 두개의 축을 왕복하며 전황을 전하는 ‘징비록’의 방법은 이 뒤에도 계속해서 사용되며 이순신이라는 영웅의 등장을 극적인 것으로 만든다. -238쪽

이상과 같이 (가와구치 조주의) ‘정한위략’이 선행 문헌을 집대성하고 문헌 간의 계통을 정립하려 하는 특징은, 임진왜란 문헌군이라고 하는 문헌군이, 그 전개의 종말기를 맞이하였음을 의미한다. 그 전까지의 임진왜란 문헌군에서는 이용되지 않았던 다수의 문헌이 새로이 소개되고, ‘양국임진실기’, ‘조선정토시말기’에도 수록되어 있는 쓰시마발(發) <히고도노 조복>에 대한 소문이 수록되어 있는 등, ‘정한위략’에서는 임진왜란 문헌군의 새로운 전개를 예감케 하는 부분이 확인된다. 그러나 그 집대성적, 분석적 성격으로 인하여 ‘정한위략’은 문학서가 아니라 어디까지나 역사서로서 존재 의의를 지닌다. 역사와 문학의 두 영역을 포괄해 온 또는, 그 두 영역 간의 회색 지대에 존재해 온 임진왜란 문헌군은, ‘정한위략’에 이르러 문학으로서의 <군담>적인 특성이 부정되기에 이르렀다. -285쪽

임진왜란 문헌군의 저자들은 (도요토미) 히데요시를 칭송하고 임진왜란을 일대 쾌거라고 생각하고 있더라도 <적어도 표면적으로는 히데요시를 진시황제에 비견함으로써 도쿠가와 가문을 배려하였다>. 그러나 막부 말기가 되면 이러한 배려는 필요없어지고, 노골적인 황국사관에 근거한, 역사와 문학의 위험한 경계에 선 엄숙한 비문학적 문헌들이 등장한다. 그러한 문헌들이 등장하는 배경에는 서구 세력과의 충돌에 따른 유라시아 동부 지역 일대의 급변 사태가 있었다. -286쪽

임진왜란은 무로마치 막부 제3대 쇼군 아시카가 요시미쓰(足利義滿)가 명나라에 내조(來朝)하여 <일본 국왕> 봉호를 받은 치욕을 씻은 전쟁임과 동시에, 명나라를 멸망시키고 대청국을 건국한 만주국 아이신 기오로 누르하치의 후손들로 하여금 일본 침략을 단념케 한 전쟁이었다는 것이 (‘정한잡지’와 ‘육웅팔장론’의 저자인) 아오야마 노부미쓰의 해석이다. 이러한 해석에는 명나라에 대한 설욕이라는 적극적인 측면과 함께, 예상되는 청나라의 침략을 예방했다고 하는 피침략 의식에 근거한 수세적인 측면의 양면성이 공존한다. -294쪽

근세 일본에서 이국과의 전투를 주제로 집필된 문헌들 가운데, 임진왜란을 다룬 임진왜란 문헌군과, 1609년(慶長 14)에 시마즈 가문이 유구 왕국을 정복한 사건을 다룬 유구 전쟁 문헌군은 여러 가지 특성을 공유한다. -299쪽

로널드 토비는 (마쓰시타 겐린이 편찬한) ‘이칭일본전’의 편찬 태도를 <겐로쿠형 국제사학(元祿型國際史學)이라고 규정한다. 그에 따르면, 이 문헌은 <일본 사료가 침묵하는 경우에는 외국 사료를 이용하고, 일본 사료와 외국 사료가 모순되는 경우에는 일본 사료를 우선한다. 즉, 내셔널리즘적 태도에서 편집>되었으나, <에도 시대 유학에서 발생한 본문 비평text criticism적 방법을 외국 문헌에 나오는 일본 관계 기사에 적용한 것은 ‘이칭일본전’이 처음>이라고 지적한다. 또한 이 문헌이 19세기 초기 한국에서도 읽힌 사례를 거론하며, <대단히 넓은 영향력을 지닌 역사서>였음에도 학계에서 이 문헌에 주목하는 경우는 거의 없었다고 지적한다. -304쪽

그런데 삼한 전쟁 문헌군이나 유구 전쟁 문헌군에서 임진왜란 문헌군을 인용 내지는 표절할 때, 그 대상이 되는 임진왜란 문헌군의 타이틀을 밝히는 경우는 거의 없다. 이를 저자들의 불성실한 집필 태도라고 하여 비난하는 것도 가능하다. 그러나 저자들에게 임진왜란 문헌군은 자신들이 이국 정벌 전기를 집필하기 위한 전범canon으로서 인식되었기에 굳이 이름을 거론할 필요를 느끼지 못했다고 할 수 있지 않을까? 저자들의 앞에는 고대 이래의 군담과 함께, 임진왜란 문헌군이라는 근세의 군담이 방대하게 존재하고 있었다. 이 양자를 융합하는 것이야말로, 삼한 전쟁 문헌군을 비롯한 근세 이국 정벌 전기의 커다란 특성이라고 하겠다. -386쪽

기쿠치 이사오는 근세 일본에서 (미나모토) 요시쓰네 에조 도해설이 전개된 배경으로 <요시쓰네에 대한 민중의 애모의 정>(긴다이치 교스케)이나 <국민의 동정>(시마즈 히사모토)을 강조하는 기존의 해석을 비판하고, <지식 계급의 힘>에 의한 <재편, 체계화>가 그 배경에 있었음을 지적한다. 그리고 위의 논문으로부터 20년 뒤에 다시 한 번, <도호쿠 민중이 요시쓰네에 대해 품은 깊은 애착과 같은 감정이 요시쓰네 불사 전설을 탄생시켰다는 생각은 아마도 틀린 것이다. 그런게 아니라, 요시쓰네 에조 도해 전설은 막번제(幕蕃制) 국가의 화이질서(華夷秩序) 시스템에 아주 적합한 이야기였기 때문에 확산되었으며, 그러한 의미에서 본질적으로 체제 영합적인 이야기였다>라고 더욱 확실히 표명한다. -392~393쪽

요시쓰네 에조 도해설을 다룬 근세 일본 문헌군을 개관하면, 요시쓰네의 <에조 정벌>은 고대 이래 에조와 일본인 간 충돌의 역사에서 기인하는 적개심과 공포를 계승하는 17세기의 문헌에서 시작하여, 몽골 즉 러시아의 침략으로부터 에조인을 보호해 준다는 시혜적 입장을 취하는 18세기의 문헌을 거쳐, 일본의 에조치 정복에 저항하는 모든 세력을 섬멸 대상으로 간주하는 19세기의 문헌으로 이어진다. 이러한 과정은 일본의 에조치 지배 과정과 일치한다. -408~409쪽

여기까지 적고 나니, 필자의 논리 및 어휘가 근대 이후 서구에서 유래된 부분이 너무나도 많기 때문에, 전근대 동부 유라시아 고유의 전쟁 정당화 논리를 추구하기에는 부적합하지 않은가하는 어떤 선생님의 조언이 떠오른다. 그러나 필자는, 전쟁은 특정한 시대나 지역에 한정되지 않는 인류의 본능 가운데 하나이며, 자기 집단이 일으키는 전쟁을 정당화하려는 욕망 역시 마찬가지라고 생각한다. 한중일 삼국의 고유성을 주장하게 되면 전쟁을 둘러싼 여러 가지 문제의 해결이 저해될 것이다. 현대 학문의 어휘로 서술될 때 비로소, 현대까지 영향력을 지니고 있는 전근대 한중일 삼국의 다양한 전쟁 정당화 논리로부터 벗어날 수 있는 단초가 발견되리라 믿는다. 예를 들어 이 책에서 제시한 <공격의 논리>와 <방어, 반격의 논리>는 근대에 동부 유라시아에서 일어난 한일 강제 병합, 청일 전쟁First Sino-Japanese War, 중일 전쟁Second Sino-Japanese War, 또는 러일 전쟁이나 태평양 전쟁 등을 전후하여 일본의 정관계(政官界) 및 언론에서 전개하는 다양한 형태의 정당화 논리를 분석하는 데에도 적용할 수 있으며, 적용되지 않으면 의미가 없다고 생각한다.-471~472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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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다미 넉장반 세계일주 블랙 앤 화이트 시리즈 7
모리미 도미히코 지음, 권영주 옮김 / 비채 / 2008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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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역시 교토(京都)여서, 5월말쯤 되자 서서히 더워졌다. 마침 쥘부채도 없었다. 작년 여름 8월 한여름의 교토를 돌아다니다가 미야와키 바이센안(宮脇賣扇庵)에 들러서 꼭 마음에 드는 부채를 샀더랬는데, 그건 역시 그 여름 교토에서 산 이치자와 신자부로 한푸(一澤信三郎帆布)의 올리브 색 크로스백에 한 쌍처럼 꼭 넣고 다니다가 어느새 빠뜨리고서는 한참이 지나서야 깨달았으니, 가을과 겨울의 어디쯤에서 잃어 버렸는지도 알 도리가 없었다. 아무리 하로동선(夏爐冬扇)이라지만, 여름 부채의 고마움을 생각하면 무념무상하고 배은망덕한 소치가 아닐 수 없다.

 

 먼저 미야와키 바이센안을 찾아갔다. 전에 쓰던 부채는 양 끝에 검은 옻을 입해서 맘에 들었던 탓에 그런 생김의 물건들을 부산스레 펼쳤지만, 맘에 썩 드는 게 보이지 않았다. 우습게도 꼭 하나 눈에 차는 부채가 있었는데, 이미 잃어버렸던 예전의 그것이었다. 사뭇 많은 것이 바뀐 척하며, 다니던 회사를 그만두고 교토에 80일을 머물러도 달라진 것은 별로 없다는 당연한 사실을 새삼 깨닫는 느낌이어서 차마 그 부채를 다시 살 수는 없었다. 당연하고 옳은 사실일수록 재미는 없는 법이다. 별 수 없이 매장을 나와서 예전에 <CASA BRUTUS>에서 본 사카타 분스케쇼텐(坂田文助商店)까지 털레털레 걸어갔더니, 그곳은 거의 주문 제작 방식의 고급 부채만 파는 곳이어서 역시 빈손으로 나올 수밖에 없었다. 언젠가 부채를 사고 싶은 매장 하나를 기억에 담았다면, 영 헛수고는 아니었던 셈이지만.

 

 어차피 날은 계속 더워질 테고, 쾌청한 하늘 덕에 이곳저곳 헤매기도 좋은 오후였다. 구글 맵을 보며 부채 가게들을 찾아다니다가 마지막으로 미야와키 바이센안처럼 부채의 노포(老鋪)인 하쿠치쿠도(白竹堂) 본점 근처까지 오고서야, 두 가게가 바로 모퉁이 하나 사이라는 걸 알았다. 결국 원점으로 돌아온 셈이다. 그리고 다행히 이곳에서 맘에 걸치는 물건을 만났다. 향이 그윽한 향나무 부챗살에 접으면 종이들이 모여서 도라지꽃 그림이 보이는 부채였다.

 

가와라마치 거리를 건너 다코야쿠시 거리를 서쪽으로 가 저물녘의 북적대는 신교고쿠로 들어섰다. 그녀(아카시 군)는 신교고쿠에서 데라마치로 이어지는 골목으로 접어들어 처마 밑에 헌 여행가방과 전등이 진열된 고물상으로 성큼성큼 들어갔다. 내가 가게 한구석에서 양철 잠수함 모형 등을 만지작거리며 놀고 있는 사이에 그녀는 그 거북 수세미에 관해 알지도 모르는니시키 시장의 잡화점 이름을 알아냈다.

어안이 벙벙해서 유유낙낙 그녀를 따라가니, 그녀는 니시키 시장 서단 부근에 있는 어둡고 복작복작한 잡화점으로 들어가 주인 부부와 몇 마디 주고받은 뒤, 이번에는 붓코지 거리에 면한 잡화점 주인이라면 알지도 모른다는 정보를 입수해왔다.

날 저무는 시조 거리를 건너 남하하다가 붓코지 옆을 지나 이번에는 동쪽으로 걸어갔다. 시조 거리 부근과는 달리 여기는 길 가는 사람도 그리 많지 않고 조용했다. -p.143

 

 그저 바로 옆에 있는 가게를 찾지 못한 산만함 덕분에, 교토 한 구석을 빙 둘러서 원하던 결말로 돌아왔다. 애초에 어떤 목적도 없이 그 도시의 구석구석을 걷고 싶어서 떠나왔다는 사실을 그날만큼 아삭아삭하게 곱씹은 날이 없었다. 그저 한나절 그 도시의 골목들을 둘러볼 수 있는 핑계만 있으면 그게 뭐든 좋았을 뿐이다. 그런 날이 있었다는 흔적까지 손에 남으면 더할 나위 없고 말이다. ‘스승히구치 세이타로가 원하는, 세제 없이 갖다 닿기만 해도 모든 더러움을 제거한다는 거북 수세미를 찾기 위해 화자인 와 아카시 군이 교토의 상점들을 돌아다니던 저 대목에서 여름도 돌아갈 날도 코앞이던 5월의 오후가 저절로 그려졌다. 이어지는 이야기에서 드러나듯이 제 아무리 대단한 수세미라도 여기서는 단지 두 사람이 이리저리 걷게 만드는 구실일 뿐이다.

 

 그 도시에는 슬쩍 걸어갈 만한, 가깝지도 멀지도 않은 자리에 크고 작은 상점과 거리들이 잘도 퍼져 있다. 그래서 거리들을 마냥 따라가다 보면 이 가게 저 가게를 기웃대며 지루해 하지 않고 거리의 이름을 바꿔 가며 마냥 걷게 된다. 듣도 보도 못한 수세미 하나를 찾는 두 사람의 밤 산책은 생각보다 무척이나 자연스러운 일이라는 것을 이제는 안다. 그 사실을 확인하고 싶어서 올해의 봄을 온통 그곳에서 머물렀다고 말해도 이상하지 않다. 나는 구글 맵에서 별점이 높거나 평이 좋은 빵집을 찾느라 골목들을 게으르게 헤매곤 했으니까. 그리고 그 가게들은 하나 같이 맘에 들어서 이 빵집들을 다니면서도 시종 또 다른 가게를 찾아 눈과 발을 놀리게 만들었다. 깊이 들어갈수록 더 나가기 싫어지는 곳이다.

 

눈앞에는 가모 대교가 묵직하게 가로놓여 있었다. 그 난간에 예의 바르게 늘어선 전등이 주황색 불빛을 던지는 가운데, 반짝이는 차가 쉴 새 없이 오간다. 다양한 사람들이 가모 대교를 걷고, 다양한 사람들이 카모 강 델타에서 꿈틀거린다. 어느 쪽을 보나 사람이 흘러넘친다. 난간의 전등도, 새하얗게 빛나는 게이한 데마치야나기 역도, 늘어선 가로등도, 멀리 하류에 보이는 시조 부근의 불빛도, 다리를 건너는 차의 전조등 불빛도 모두 보석처럼 아름답게 반짝이더니, 이윽고 부옇게 흐려졌다.

이럴 수가.

활기가 넘친다. 마치 기온 제()처럼 활기가 넘친다. -p.387~388

 

 (아마도 교토 대학의) 3학년에 접어들어 지난 2년간의 한심천만하며 구제불능인 대학 생활을 후회하는 화자의 다다미 넉 장 반짜리 하숙집에서 시작하는 이 이야기는, 그가 자신의 캠퍼스 라이프를 파탄시킨 결정적 순간이라고 호언장담한 1학년 때의 동아리 선택으로 연거푸 되돌아간다. 4개의 동아리들이 각각 무엇인지, 그렇게 반복되는 이야기들이 어떻게 같고 또 다른지는 이 작품에서 의외로 그리 중요하지 않다. 화자의 대학 생활이 사뭇 뻔뻔스레 4번이나 반복될 수 있는 것도, 또 제 아무리 기를 써도 그 시간이 완전히 뒤집히지 않은 것도 결국 그가 사는 도시가 교토였기 때문이다. 그 점이 중요하다. 이 도시가 바뀌지 않는 이상, 그가 시간을 거스른다고 해도 바꿀 수 있는 것은 별로 없다.

 

 이 고도(古都)는 그리 쉽게 바뀌거나 빠져나갈 수 없는 곳이다. 아무리 걸어도 화자의 과거가 남긴 자질구레한 흔적 외에는 아무것도 변함없이 이어지고 또 이어진, 4부의 다다미 넉 장 반이야말로 교토 자체를 은유한다고 말해도 지나친 것 같지 않다. 이런 이야기를 마침 이곳에 꾸민 모리미 도미히코의 전도는 시작부터 양양했다고 나도 모르게 감탄하고는 했다. 같은 대학 출신의 주인공을 사정없이 찌고 삶고 구운 덕분에 본인의 앞길을 창창하게 만든 작가라니 그의 본색은 이 이야기 속 오즈에 더 가까울지도 모른다. 이야기는 교토 대학을 중심으로 바로 북쪽의 햐쿠만벤(百万遍), 동쪽의 요시다 신사(吉田神社)와 철학의 길(哲学), 서쪽의 데마치야나기(出町柳)와 카모 강(鴨江) 델타, 그리고 시모가모 신사(下鴨神社)와 다다스 숲()에서 펼쳐진다. 읽는 내내 봄의 절반을 나고서 기억이 아직 생생한 동네에 이야기를 덧입혀도 어색하지 않았다. 햐쿠만벤 교차로에서 스쳤던 수많은 학생 중 한 사람쯤은 저런 몽상 속에 살았을지 모른다는 이 생각이야말로 여태 교토를 헤매는 몽상이겠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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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다미 넉장반 세계일주 블랙 앤 화이트 시리즈 7
모리미 도미히코 지음, 권영주 옮김 / 비채 / 2008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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갓 태어났을 무렵의나는 오히려 순진무구함의 화신이었고, 갓난아기 시절의 히카루 겐지 저리 가라 하는 사랑스러움, 사념(邪念)이라고는 터럭만큼도 없는 해맑은 미소가 고향 산천을 사랑의 빛으로 가득 메웠다 한다. -9쪽

남의 사랑의 행로를 훼방 놓는 인간은 말에게 걷어차여 죽을 운명이라 하기 때문에, 나는 적막한 대학 북쪽 끝에 있는 마술(馬術)부 마장에는 가까이 가지 않았다. 내가 마장에 가까이 갔더라면, 사납게 날뛰는 말들이
울타리를 뛰어넘어 몰려와 나를 짓밟아대고 전골 재료로도 쓸 수 없을 만큼 더러운 살점으로 만들어놓았을 것이다. 같은 연유로 내가 교토 부경(府警) 헤이안 기마대를 두려워했던 것은 말할 필요도 없다. -11쪽

시계탑 주변은 샘솟는 희망에 볼이 발갛게 상기된 신입생들과 그것을 먹잇감으로 삼을 만반의 준비를 갖춘 동아리 선배들로 북새통을 이루고 있었다. -14쪽

˝세월이 화살 같다고는 하나, 이렇게 계절이 꼬리에 꼬리를 물고 돌아오니 괘씸하기 한이 없다. 천지가 개벽했을 때부터 세월이 어느 정도 흘렀는지 이미 알 수 없으나, 이런 식이라면 어차피 별 대단한 세월은 아니다. 그렇게 얼마 되지 아니하는 시간에 인간이 이 정도로 늘었다니 그저 놀라울 따름이다. 그리고 나날이 이것저것 머리 써서 열심히 살고 있다. 인간은 참으로 근면하다. 훌륭하다. 그러니 귀엽다는 생각이 아니 든다 하면 거짓이다. 그러나 아무리 귀여워도 이렇게 많아서야 연민의 정을 베풀 여유가 없다. (후략)˝ -20쪽

시모가모 신사에 참배한 적은 있으나, 이런 신이 계시는 줄은 여태 몰랐다. 교토에는 유서 있는 신사가 무수히 많겠으나, 그중에서도 시모가모 신사는 세계유산까지 된 굴지의 대(大)신사다. 나에게는 상상조차 되지 않는 역사를 짊어진 대신사의 제신(祭神)을 자처하기에 눈앞의 남자는 다소 설득력이 떨어지는 감이 있었다. 잘 봐줘봤자 신선, 나쁘게 보면 가난 신이다. 시모가모 신사의 제신을 감당할 그릇 같지 않다. -22~23쪽

아직 5월말이건만 벌써 여름이 온 것처럼 무더웠다. 외설물진열죄로 고소당해도 할 말 없는 규모로 창문을 활짝 열어젖혔으나 공기가 움직이지 않고 정체되어 있다. 탁한 공기는 다양한 비밀 성분이 첨가되어가며 시간을 들여 숙성되어, 흡사 야마자키 증류소의 술통에 담긴 호박색 위스키처럼 다다미 넉 장 반에 들어선 자를 곤드레만드레 취하게 한다. 그렇다고 복도에 면한 문을 열면 유스이 장을 서성이는 새끼 고양이가 멋대로 들어와 야옹야옹 귀염을 떤다. 먹어 버리고 싶을 만큼 귀여워서 먹어줄까 했으나, 아무리 그래도 입장 상 그렇게까지 야만적인 소행을 저지를 수는 없는 노릇이다. 비록 팬티 한 장만 입고 있을지언정 신사적으로 행동해야 한다. 새끼 고양이의 눈곱을 떼어주고 바로 쫓아냈다. -29쪽

(교토의) 북동에서 온 다카노 강과 북서에서 온 가모 강이 하나가 되어 카모 강이 된다(본래 가모賀茂 강과 카모鴨 강은 한자 표기만 다를 뿐 모두 ‘가모 강’이나, 혼동을 피하기 위해 이 책에서는 부득이 ‘가모 강’과 ‘카모 강’으로 구분한다). 그 합류 지점, 다카노 강과 가모 강 사이에 낀 역삼각형 땅을 학생들은 ‘카모 강 델타’라 부른다. 그리고 그 지점은 봄부터 초여름에 걸쳐 신입생 환영회 장소로 널리 이용된다. -32~33쪽

그 (다다스 숲의) 시모가모 납량 헌책 시장에서 아카시 군을 만났다.
나뭇잎 새로 비치는 햇살 속에 레모네이드를 마시며 여름의 풍정을 만끽한 뒤, 양 옆으로 늘어선 헌책방 노점을 구경하며 걸었다. 어디를 봐도 낡아빠진 서적이 빽빽하게 들어찬 나무 상자가 줄줄이 놓여 있다 보니 다소 어지럼증이 났다. 북으로 길게 뻗은 광장 중앙에는 융단을 깐 거상(踞床)이 여럿 놓여 있어, 나처럼 헌책 시장 멀미가 난 듯한 사람들이 갈 곳을 잃고 늘어져 있었다. 나도 그곳에 앉아 넋을 놓아 버렸다. 때는 8월이라 찌는 듯이 무더웠으므로 나는 손수건으로 이마의 땀을 닦았다.
눈앞에 ‘아미(峨眉) 서점’이라는 헌책방의 노점이 있었다. 거기 앞에 놓인 파이프 의자에 앉아 있던 사람이 아카시 군이었다. 저것은 동아리 후배가 아닌가 하고 나는 깨달았다. 보아하니 가게 보기 아르바이트를 하는 모양이다. -70쪽

˝뭐냐, 이게?˝
˝카스텔라입니다. 히구치 스승님이 잔뜩 주셨거든요. 그러니까 콩 한쪽도 나눠 먹기.˝
˝웬일이냐, 네가 뭘 다 주고.˝
˝커다란 카스텔라를 혼자 잘라 먹는다는 건 고독의 극치거든요. 외로움을 절절히 맛보라고요.˝ -72~73쪽

˝아, 맞다, 스승님께서 해마를 갖고 싶어 하셨을 때, 쓰레기장에서 커다란 수조를 발견하고 갖고 갔거든요. 시험 삼아 물을 받아 보니 도중에 물이 노도처럼 새어나오는 바람이 난리가 났었죠. 스승님의 다다미 넉 장 반이 온통 물바다.˝ -73쪽

˝(전략) 옛날에 오즈 선배가 커다란 페라리 깃발을 흔들며 햐쿠만벤 교차로를 대각선으로 뛰어가는 걸 본 적이 있어요.˝ -95쪽

성취된 사랑만큼 이야기할 가치가 없는 것은 없다. -96쪽

히구치 스승님은 (교토대) 8학년이라는 소문이 자자했다. 장수한 동물이 어떤 범상치 않은 분위기를 획득하듯, 그에게는 신선 같은 분위기가 있었다. 가지처럼 생긴 얼굴에 태평한 미소를 띠고 어딘지 모르게 고귀한 느낌이 감도는데 턱에는 수염이 까칠까칠했다. -105쪽

걸으면서 손에 든 (동아리 신입생 모집) 전단 중 하나를 찬찬히 읽었다.
우선 커다란 글씨로 ‘제자 구함’이라고 쓰여 있다.
‘그 천리안은 번잡한 기온 거리에서 의중의 아가씨를 발견하고, 그 소머즈 귀는 비와 호 수로에 벚꽃 떨어지는 소리도 놓치지 않도다. 장안 곳곳에 신출귀몰, 천지를 자유롭게 왕래하도다. 신국에 모르는 자 없고 두려워하지 않는자 없고 따르지 않는자 없도다. 그가 바로 히구치 세이타로.
오라, 선재(仙才)를 감춘 젊은이여. 4월 30일, 시계탑 앞에 집합. 전화번호 없음.’ -108쪽

교토 시 사쿄 구 요시다 신사 참배길에서 오전 0시의 밀회.
요시다 신사는 합격을 기원하면 반드시 떨어진다는 이야기가 있을 만큼 영검한 신사다. 매년 많은 고등학생, 대학생이 잘못해서 이곳에서 합격을 기원했다가 재수 혹은 유급의 고배를 마시고 비와 호 절반 분량의 쓰라린 눈물을 흘린다고 한다. 대학에 입학한 지 2년하고도 조금 더, 나는 그 동안 요시다 신사를 공경하되 멀리해왔으나 그렇게 주의했는데도 손가락 사이로 모래가 새어나가듯 학점이 달아났다. 요시다 신사의 영검 한번 무섭다 할 수 있으리라. -112쪽

가와라마치 거리를 건너 다코야쿠시 거리를 서쪽으로 가 저물녘의 북적대는 신교고쿠로 들어섰다. 그녀(아카시 군)는 신교고쿠에서 데라마치로 이어지는 골목으로 접어들어 처마 밑에 헌 여행가방과 전등이 진열된 고물상으로 성큼성큼 들어갔다. 내가 가게 한구석에서 양철 잠수함 모형 등을 만지작거리며 놀고 있는 사이에 그녀는 ‘그 거북 수세미에 관해 알지도 모르는’ 니시키 시장의 잡화점 이름을 알아냈다.
어안이 벙벙해서 유유낙낙 그녀를 따라가니, 그녀는 니시키 시장 서단 부근에 있는 어둡고 복작복작한 잡화점으로 들어가 주인 부부와 몇 마디 주고받은 뒤, 이번에는 붓코지 거리에 면한 잡화점 주인이라면 알지도 모른다는 정보를 입수해왔다.
날 저무는 시조 거리를 건너 남하하다가 붓코지 옆을 지나 이번에는 동쪽으로 걸어갔다. 시조 거리 부근과는 달리 여기는 길 가는 사람도 그리 많지 않고 조용했다. -143쪽

카모 강 델타에 이르렀다. 히구치 스승님은 소나무 숲을 빠져나가 강둑을 내려갔다. 나도 따라갔다. 소나무 숲을 빠져나가니 하늘이 가득 펼쳐져, 몸이 하늘로 빨려들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152쪽

˝가능성이라는 말을 무한정으로 쓰면 아니 되는 법. 우리라는 존재를 규정하는 것은 우리가 지닌 가능성이 아니라 우리가 지닌 불가능성이다.˝ -156쪽

˝(전략) 중심히 잡히지 않은 수재보다 중심이 잡힌 얼간이가 결국에는 인생을 유의미하게 살 수 있는 법이야.˝
˝그럴까요.˝
˝음. 뭐, 몇 가지 예외는 있다만.˝ -156~157쪽

그녀(하누키 씨)는 미인이나, 전국시대 무장의 처처럼 생겼다. 아니, 전국시대 무장 그 자체라 해도 지장이 없다. 그 정도로 패기 넘치는 얼굴이었다. 그 시절이었다면 일국의 주인이 되었을 얼굴이라고 늘 생각하곤 했다. 마음만 먹으면 나와 오즈 따위는 단칼에 베어 버릴 수 있는 기백이 있다. 좋아하는 것은 에틸알코올과 카스텔라다. -159~160쪽

근계

아오이 축제(5월 15일에 교토 시모가모 신사와 가미가모 신사에서 벌어지는 축제)가 끝났나 했더니 갑자기 더워졌습니다. 장마를 앞두고 봄의 바다에 둘러싸인 외딴 섬 같은 여름에 잘못 들어선 듯합니다.
저는 더위에 약하기 때문에 어서 장마가 시작됐으면 좋겠습니다. 장마는 습해서 싫다고 하는 사람이 많습니다만, 저는 비가 보슬보슬 내리면 마음이 안정됩니다. 할아버님 할머님 댁에는 수국이 많았으므로 빗속에 부옇게 핀 수국을 툇마루에서 바라보기를 좋아했습니다. (후략)-226~227쪽

데마치 다리 서단에서 가모 대교 서단까지 시원한 강둑을 달리며 나는 괜히 자학적인 기분에 사로잡혀 강 건너 카모 델타에서 화기애애하게 즐기는 듯한 학생들을 노려보았다. -231쪽

(전략) 스티븐슨의 ‘보물섬’은 아직 읽은 적이 없습니다. 서점에서 찾아보겠습니다. 옛날 모험소설은 손에 땀을 쥐게 하는 한편으로 태평한 면도 있어 그 균형이 절묘합니다. 모험인 주제에 살벌하지 않아 좋습니다. (후략)-265쪽

묘한 일이 아닐 수 없는데, 마음에도 없는 말을 쓸 때도 쓰는 동안에는 어쩐히 평소에 늘 그런 생각을 하고 살았던 것 같은 기분이 든다. -266쪽

학교에 가 온종일 강의니 실험이니 정신없이 쫓아다니다가 찻집 ‘컬렉션’에서 저녁으로 명란 스파게티를 먹었다. 그리고 이마데가와 거리로 나와, 석양 아래 우거진 신록이 황금처럼 빛나는 요시다 산을 올려다보았다.
아아.
나는 긴카쿠지(銀閣寺)를 향해 이마데가와 거리를 슬렁슬렁 걸었다. -270~271쪽

안타까운 심정을 가슴에 품고 돌발적으로 찾아든 외로움에 이끌려 나는 시라카와 거리에 이르렀다. 널찍한 시라카와이마데가와 교차로에는 차들이 많이 다니고 있었다. 서늘한 저녁 바람이 불어 나의 외로움을 한층 더 부채질하는 것 같았다. 횡단보도 건너편에는 철학의 길이 뻗어 있고, 잎사귀만 남은 벚나무들이 석양에 빛나고 있었다. (중략)
얼마 동안 시라카와 거리를 남하하다가 조도지 버스 정류장에서 철학의 길 쪽으로 들어갔다. -272쪽

대체 ‘복묘반점’이란 무엇인가.
그 조직의 목적은 수수께끼에 싸여 있으나, 애초에 목적 따위 없었으리라는 것이 나의 추측이다.
‘복묘반점’은 하나의 조직이 아니라 복수의 하부 조직을 포괄하는 막연한 명칭이다. 그 하부 조직은 우수한 학생을 연금하고 리포트를 대량으로 대필시키는 ‘인쇄소’, 도서관의 대출 기한이 지난 도서를 강제 회수하는 것이 업인 ‘도서관 경찰’, 캠퍼스 내 자전거 정리에 종사하는 ‘자전거 싱글벙글 정리군(軍)’ 등 다방면에 걸친다. 나는 직접 접촉한 적이 없으나, 그 외에 대학축제 사무국의 극히 일부, 별난 연구회 다수, 종교계 동아리 다수 등과도 묘한 관계가 있었다.
역사적으로 볼 때, ‘복묘반점’의 모체는 ‘인쇄소’라는 것이 공통적인 견해다. ‘인쇄소장’이라 불리는 인물이 조직 전체의 최고 지휘권을 갖고 있다 하는데, 정말 그런 인물이 있는지는 알 수 없었다. 그의 정체에 관해서는 온갖 억측이 있었다. (다음)

(이어서) 일설에 따르면 검은머리 아가씨라고도 하고, 고참 법학부 교수라고도 하고, 혹은 20년 전부터 시계탑 지하에 서식하는 가면 쓴 호색 괴인(怪人)이라고도 하는데, 십중팔구 ‘인쇄소장’ 따위는 존재하지 않았을 것이다. -312~313쪽

‘도서관 경찰’의 역할은 대출 도서 회수 외에 또 하나, 점찍은 인물의 개인 정보를 입수해서 그것을 다방면에 ‘활용’하는 것이었다. 원래는 도서 강제 회수에 이용하기 위해 시작한 정보 수집이었으나, 당초의 목적에서 크게 일탈해서 정보 수집 자체가 목적이 되었다. ‘도서관 경찰’은 대학 구내는 말할 것도 없고 북으로 오하라 산젠인, 남으로 우지 뵤도인 봉황당 부근까지 정보망을 넓혀나가고 있었다. -335쪽

그런데 그 옆 다다미 넉 장 반으로 이동한 뒤, 똑같이 낡은 지갑을 발견하고 1천 엔짜리를 찾아냈다. 벼락 맞은 기분이었다. 각 다다미 넉 장 반마다 1천 엔이 있다면, 한 방 이동할 때마다 1천 엔씩 번다는 이야기다. 열 방 이동하면 1만 엔, 백 방 이동하면 10만 엔, 천 방 이동하면...... 이렇게 어처구니없는 장사가 있나. 언젠가 이 다다미 넉 장 반 세계에서 탈출하는 날에는 나머지 학비를 죄다 지불하고 생활비도 해결될지 모른다. 아니, 밤이면 밤마다 기온에서 호화롭게 노는 것도 꿈이 아니다. -341~342쪽

눈앞에는 가모 대교가 묵직하게 가로놓여 있었다. 그 난간에 예의 바르게 늘어선 전등이 주황색 불빛을 던지는 가운데, 반짝이는 차가 쉴 새 없이 오간다. 다양한 사람들이 가모 대교를 걷고, 다양한 사람들이 카모 강 델타에서 꿈틀거린다. 어느 쪽을 보나 사람이 흘러넘친다. 난간의 전등도, 새하얗게 빛나는 게이한 데마치야나기 역도, 늘어선 가로등도, 멀리 하류에 보이는 시조 부근의 불빛도, 다리를 건너는 차의 전조등 불빛도 모두 보석처럼 아름답게 반짝이더니, 이윽고 부옇게 흐려졌다.
이럴 수가.
활기가 넘친다. 마치 기온 제(祭)처럼 활기가 넘친다. -387~388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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