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맨틱 교토, 판타스틱 호루모
마키메 마나부 지음, 이규원 옮김 / 노블마인 / 2009년 3월
평점 :
절판


‘가모가와 강물, 던져진 주사위, 승병(히에이잔 산의 사찰 엔랴쿠지의 승병. 강대한 무력을 갖추어 중앙 정부조차 통제하지 못했다-옮긴이).’
이것은 헤이안 시대 도읍에서 막강한 권세를 자랑하던 시라카와 법황이 자기 뜻대로 되지 않는 것으로 꼽은 이른바 ‘천하 3대 불여의(不如意)’다.
그날 밤 두 사람(사다코와 쇼코)은 쇼코의 방에 있는 고타쓰에 앉아서 천하 3대 불여의를 새로 정했다.
˝가모가와 강변의 바퀴벌레 커플들, 발끝의 냉기, 남자 마음.˝ -29쪽

참석하는 신입생 환영회마다 남자들 무리 한가운데 앉았지만 사다코의 마음은 전혀 밝아지지 않았다. 그녀는 자신이 인기가 전혀 없다고 생각했다. 자기 마음에 드는 상대가 접근하지 않는 한 인기 있다고 말할 수는 없었다. 허들을 애써 높이 세워놓고 스스로 인기 없는 아이라고 여겼다. 조금 아니꼽게 보이리라는 것을 부정할 수는 없다. 하지만 사다코는 정말로 그렇게 생각했다. 사다코가 볼 때 자신의 상황은 응모권을 잔뜩 받았지만 추첨을 해보니 전부 휴대용 화장지만 뽑힌 것이나 마찬가지였다. -36~37쪽

후방 상황도 제대로 확인하지 않은 채 (사다코와 쇼코) 둘이서 ‘무소바나 어택’을 펼치는 모습을 어떤 이는 막무가내 자포자기식 행동이라고 평했지만, 그것은 참으로 정곡을 찌른 의견이었다. 실제로 그녀들에게 호루모의 승패 따위는 아무렴 상관없었다. 다만 자신들의 분노가 쏠리는 대로, 공격 본능이 시키는 대로 휘젓고 싶었을 뿐이었다. -50~51쪽

기온의 시조 거리에 있는 건물 3층에 전통 주점 ‘쇼추나곤’이 있는데, 사다코는 1학년 때부터 이곳 주방에서 아르바이트를 했다. -60~61쪽

내가 아르바이트를 하는 이탈리안 레스토랑 ‘Ann’s cafe’는 교토조형예술대학에서 그리 멀지 않은 시라카와 거리에 있었다.
그 사람이 식당에서 일하기 시작한 지 한 달이 지난 8월 중순의 일요일. 매미가 시끄럽게 울어대는 햇살 따가운 오후에 나(사토시)는 난생처음 데이트를 했다.
자전거 짐받이에 그 사람을 태우고 시라카와 거리를 단숨에 달려 내려갔다.
그 사람 이름은 구스노키 후미라고 한다. -86쪽

그날 저녁은 모든 일이 그녀(구스노키 후미)를 중심으로 돌아갔다.
거의 꽉 찬 테이블들에서 쉴새없이 주문이 날아들어도 그녀는 결코 주눅 들지 않고 담담하게 지휘해 나갔다. 하지만 그것이 엄청난 고도의 기술이 필요한 일임을 여기 직원이라면 누구나 알고 있었다. 홀 담당은 그녀가 전표를 내밀며 손으로 가리키는 쟁반을 들고 테이블 사이를 왕복하기만 하면 되었다. 매니저 자리에 가보면 인원수에 맞게 개인 접시까지 준비된 쟁반 위에, 가까운 테이블 순서대로 요리와 음료가 차려져 있었다. 점장이 지휘할 때는 결코 볼 수 없는 풍경이었다. 홀 담당은 그저 전표에 적힌 대로 가까운 테이블부터 순서대로 요리를 내가고 쟁반이 비면 다시 돌아왔다.
그녀는 틈틈이 홀을 살펴보고는 각 테이블에서 주문한 요리가 얼마나 진척되고 있는지 점검했다. 열 개가 넘는 테이블을 살피고 조리 시간까지 계산에 넣어 주문의 우선순위를 결정했다. 나중에 듣기로는 주방에 있는 요리사 세 사람의 작업 속도까지 계산했다고 했다. 그 이야기를 듣고서야 나는 식당 한구석에서 그녀가 말없이 시간을 보낸 의미를 이해했다. -94~95쪽

밤이 무섭다는 건 또 무슨 말일까? 그런 생각을 하며 이마데가와 거리와 만나는 교차로의 횡단보도를 건너려고 할 때였다. 그녀(구스노키 후미)가 갑자기 자전거를 세웠다.
˝왜 그래요? 초록불이잖아요.˝
그녀는 잔뜩 긴장한 얼굴로 앞쪽을 응시했다. 나도 모르게 그녀의 눈길을 좇았지만 아무도 없는 횡단보도 건너편에서는 보행자용 신호가 깜박거리기 시작할 뿐이었다.
˝이쪽으로 가자.˝
그녀는 갑자기 자전거 방향을 틀더니 곧 초록불로 바뀐 시라카와 거리 횡단보도를 건너 ‘철학의 길’로 들어섰다. 도중에도 교차로를 힐끔힐끔 돌아보는 그녀에게 ˝뭐가 있었어요?˝하고 물어보았지만 대답하지 않았다.
˝혹시 귀신이라도 본 거예요?˝
농담 투로 말하자 그녀는 고개를 홱 돌리며 나를 쳐다보았다. 빙글빙글 웃는 내 표정이 이내 꽁꽁 얼어버릴 정도로 아주 무서운 얼굴이었다. (다음)

(이어서) 벚나무 가지가 검은 아치처럼 철학의 길을 뒤덮고 있었다. 이따금 매미가 잠에 취한 듯 짧게 울음소리를 냈다. 우리는 자갈 소리를 내며 말없이 길을 걸었다. 자판기의 희끗희끗한 불빛을 받아 맥없이 날갯짓하는 모기의 실루엣이 도드라졌다. 밤에 공명하듯 저음으로 으르렁거리는 자판기 바로 앞에 자전거를 세우고 그녀는 정면에 있는 건물을 가리켰다.
˝고마워. 저기야. ...... 이 신세는 꼭 갚을게.˝
˝그럼 여름방학 수학 숙제나 대신 해줘요. 양이 보통 많은 게 아니거든요.˝
˝그런 건 스스로해야 의미가 있지.˝
그녀가 진지한 얼굴로 타일렀다. 아무래도 평소 모습으로 돌아간 듯했다.
˝소년은 집이 어디야?˝
˝기타야마요.˝
˝조심해서 가.˝
헬멧 너머로 그녀의 목소리가 들렸다. -100~101쪽

시라카와 거리를 따라 죽 늘어선 가로수에서 매미들이 마치 해방이라도 맞은 듯 아우성이었다. 8월도 중순에 접어들자 햇살은 광기를 띤 것처럼 매서워졌다. -102쪽

5분 뒤 나(사토시)는 그녀(구스노키 후미)의 자전거로 시라카와 거리를 힘차게 달려 내려갔다. 바로 뒤에 앉아 ˝어우 빨라, 너무 빠르잖아˝ 하고 중얼거리는 그녀를 태우고 오후 4시가 되도록 여전히 해가 높은 교토의 휴일을 향해 달렸다. -106쪽

(107쪽 밑줄 긋기 사진 참조)
˝이 문제예요. 풀 수 있겠어요?˝
햐쿠만벤 교차로에서 신호를 기다리는 동안 가방에서 노트를 꺼내 그녀(구스노키 후미)에게 보여주었다. 노트에 적힌 그림과 글자가 도망쳐버릴까 걱정될 만큼 그녀는 노트를 뚫어져라 쳐다보다가 이윽고 고개를 들었다.
˝좋은 문제네.˝
그녀가 중얼거렸다.
˝너희 선생님이 만든 문제니?˝
˝네, 도대체 영문을 모르겠어요. 이게 무슨 수학 문제라는 건지. 더구나 그걸 증명하라니 말이에요.˝
노트에는 다카노가와 강에 가모가와[賀茂川] 강, 그 두 강이 합류한 가모가와[鴨川] 강, 나아가 비와코 수로 등 모두 네 줄기의 강물과 수로, 그것들에 가설된 다리 아홉 개가 그려져 있었다. 그림 옆에는 이렇게 적혀 있었다.
‘각 다리를 두 번 통과하는 일 없이 9개 다리를 전부 건널 수 있는가? 수학적으로 증명하라.’
˝풀 수 있겠어요, 구스노키 씨? 그런데 이런 것도 수학에 속하긴 하나요?˝
˝한붓그리기 문제네.˝
그녀는 내 물음에는 대답하지 않고 이렇게 중얼거렸다.
˝한붓그리기?˝
˝딱 한 번만 통과할 수 있다고 했으니까 한붓그리기나 마찬가지잖아.˝ (이어서)

(다음) 그녀는 당연하다는 듯 말했다. 다리를 건너는 것이 어떻게 한붓그리기 문제가 된다는 것인지 알 듯 말 듯해서 나는 모호하게 ˝음......˝하고 대답했다.
˝그래서 소년은 다리를 전부 건널 수 있었어?˝
˝안 되던걸요. 마지막에 꼭 하나가 남더라고요.˝
˝그래서 지금 뭘 하려는 건데?˝
˝그림에 있는 다리를 실제로 돌아다녀보는 거죠. 실물을 놓고 움직여보면 뭔가 떠오를지도 모르잖아요.˝ -106~109쪽

˝물리나 수학 세계에는 아무도 증명한 적 없어서 애초에 실재하는지 어떤지도 확실치 않은 것을 연구하는 사람이 많아. 주위에서 그런 것은 불가능하다, 애당초 존재하지도 않는거니까 연구해 봐야 소용없다고 입을 모아 말하는데도 말이야. 그런 사람들이 하려는 것도 어쩌면 염라대왕을 만나려는 것과 같은 일인지 몰라. 다른 사람은 아무도 그 존재를 믿지 않으니까. 하지만 개중에는 정말로 발견하고야 마는 사람이 있어. 있을 리 없는 데서 새로운 것을 발견하는 사람이. 아마 그런 사람은 염라대왕을 무조건 부정하지는 않을 거라고 생각해. 눈에 보이지 않는 그런 것들을 소중히 여길 게 틀림없다는 생각이 들어.˝ -123쪽

나(아베)와 모짱이 한 지붕 아래서 생활한 기간은 아주 짧았다. 입학하고 한 달도 채 되지 않아 모짱이 요시다에 있는 기숙사로 옮겼기 때문이다. 그 뒤 만날 때마다 놀러 오라고 해서 기숙사를 구경하러 가본 적 있었다. 하지만 이상한 냄새가 나고 입구에서는 누가 고함을 질러대는가 하면 전부 반벌거숭이로 돌아다니고 복도에 개가 뛰어다니는 등 도저히 적응되지 않는 분위기에 일찌감치 물러났다. -150~151쪽

하지만 아무리 우락부락해 보여도 모짱은 섬세한 사내였다. 내 방에 놀라 와도 혼자 말없이 책을 읽거나 노트에 그림을 그릴 때가 많았다. 모짱은 공학을 전공하므로 제도 숙제라도 하나 보다 생각하며 들여다보면 대개 당구를 연구하고 있었다. 모짱은 당구 실력이 뛰어나서 나(아베)도 몇 번 내기당구를 했다가 푼돈을 빼았겼다.
˝당구로 깨달음을 얻고 싶거든˝
종종 영문 모를 원대한 목표를 내세웠지만, 그 뒤 모짱의 연구가 열매를 맺었는지는 알 수 없다. 한편 악보를 가져다가 열심히 들여다보기에 뭘 그렇게 폼을 잡느냐고 놀리자 갑자기 우렁찬 목소리로 <카르멘>을 부르기 시작한 적도 있다. 정말로 악보를 볼 줄 아는지, 베토벤 교향곡을 혼자서 열심히 흥얼거렸을 때는 정말이지 말문이 막혔다. 녀석은 ˝소리는 색이야˝라고 종종 말했지만, 모짱의 뇌리에서 반짝일 선명한 색채를 그의 연주에서 느낀 적은 한 번도 없었다.
온몸에서 주체 못할 에너지를 발산해 놓고 그는 종종 이렇게 말했다.
˝좋은 책과 좋은 악보만 있다면 나는 만족해.˝
그 동과 정의 신비한 조화가 모짱이라는 남자의 정수였다. -152쪽

˝아베, 너도 연애편지 쓰란 말이다. 그럼 나도 쓸게.˝
˝왜 그래야 하는데? 급한 건 너잖아?˝
목소리를 높이는 나를 두고 모짱은 가뿐하게 일어나 가방을 들고 걷기 시작했다.
나도 급하게 뒤를 따랐다.
˝어디 가는데?˝
˝재료 사러 간다.˝
˝재료?˝
˝편지 쓰려면 최고급 재료가 필요하지 않겠냐? 우선 고급 편지지와 펜이 필요하잖아.˝
모짱은 당연하다는 얼굴로 나를 돌아보았다. -161~162쪽

모짱은 산조, 시조, 가와라마치 외곽 지리에 이상할 만큼 밝았다. 모짱이 열렬한 ‘골목 마니아’였기 때문이다. 종횡무진으로 얽히고설킨 갈림길들을 지나다가 낯선 골목을 발견하면 모짱은 망설이지 않고 발을 들여놓았다. 내가 잘 따라오는지 살피지도 않고 ˝이쪽이야, 이쪽˝ 하며 등을 구부리고 정신없이 걸어갔다. 이렇게 골목을 지날 때 전혀 모르는 동네가 나오지는 않을까, 상상하는 순간이 못 견디게 즐거운 모양이었다.
실제로 좁은 골목 끝에 난데없이 음식점 문살문이 나타나거나 더 안쪽으로 또 골목이 이어지거나 지장보살 사당이 조용히 서서 기다리는 등 교토의 골목들은 신비한 분위기로 가득했다. 하지만 그럴 때 나(아베)는 모짱이 품는 기대와는 정반대로 이대로 계속 가다가 원래 장소로 돌아가지 못하는 건 아닐까 하는 불안이 더 컸다. 아마 그런 불안마저도 모짱에게는 흥분의 소재일 것이다. -162~163쪽

˝가지이 모토지로(1901~1932. 소설가-옮긴이)는 평생 단 한 권의 책밖에 펴내지 않았어.˝
˝그래?˝
˝작품의 무대가 된 마루젠 교토 가와라마치 분점이 문을 닫기로 결정했을 때 모두 가지이 모토지로의 책을 사러 오는 통에 폐점 직전 일주일 동안 문고본이 무려 천 권이나 팔렸다더군.˝ -187쪽

가쓰라 선생은 영문과 교수이자 번역가였다.
어머니가 가쓰라 선생이 번역한 책들의 열렬한 팬이라 집에는 늘 선생이 번역한 책이 많이 꽂혀 있었다. 고등학생이 되어 책 읽는 데 조금씩 재미를 붙인 나(도모에 야마부키)는 가까이 있던 번역본을 들춰보다가 그만 가쓰라 선생의 팬이 되었다.
나는 여주인공이 나오는 이야기를 좋아하지만 ‘눈물 쏙 뺴는 이야기’ 식의 단순한 책은 좋아하지 않앗다. 그 점에서 가쓰라 선생이 옮긴 책은 여성이 주인공이면서도 늘 여성에게 어딘지 심술궂은 시각을 취하고 있어 신비감과 호감을 느끼게 했다. 물론 그것은 원작에 달린 일이고 작품에 따라 예외도 있지만 ˝어느 책이나 독자에게 아부하지 않는다는 느낌이 들어서 좋아˝ 하고 어머니와 나는 입을 모아 말했다. 묘한 점에서 취향이 같은 모녀였다.
원래 영문과를 지망하던 나는 기왕이면 가쓰라 선생이 있는 대학을 지원하기로 했다. -201~202쪽

도시샤대학의 1, 2학년은 교토 시내에서 남쪽으로 한참 벗어난 데 있는 교타나베 캠퍼스에서 공부했다. 교토 고쇼(예전 황궁으로 쓰이던 곳-옮긴이) 북쪽에 있는 이마데가와 캠퍼스는 3학년이 되어야 다닐 수 있었다. 이마데가와에 첫발을 딛는 날까지 1, 2학년은 오로지 ‘다나베자카’라 불리는 긴 언덕길 위에 있는 캠퍼스에 다녀야 했다. 나(도모에 야마부키)는 불평 한마디 없이 매일 열심히 언덕길을 오르내렸다. 그 위에 가쓰라 선생이 있으니까.
그런데 내가 크게 잘못 생각한 것이 분명했다.
그 언덕 위에 선생은 없었다. 선생은 1, 2학년이 수강히는 일반교양 과목을 가르치지 않았다. 작년까지는 교타나베 캠퍼스에서도 기초론을 한 학점 맡았지만 을해부터는 다른 교수로 바뀌 었다고 했다.
더욱 충격적인 정보가 날아들었다. 세상에, 가쓰라 선생이 올해로 정년퇴직을 한다는 것이다. 어떻게 그런 일이. 하지만 연세가 지긋하니 능히 있을 수 있는 일이었다. 그러다 곧 가쓰라 선생의 퇴직은 선생이 지도하는 동아리 선배에게 확인한 사실이라는 지극히 신뢰성 높은 정보까지 날아들었다.
세상에... (다음)

(이어서) 나는 아연해서 다나베자카를 내려다보았다. 매일 언덕길을 오르내리다 보니 구두 굽이 이상하게 빨리 닳아버렸다. 더구나 바닥의 경사 때문에 굽도 경사지게 닳는 탓에 평지를 걸을 때는 무척 어색했다. 결국 좋아하지도 않는 운동화를 신고 매일 언덕길을 오르내리는 신세가 되고 말았다. 이것이 다 무엇 때문이었나? 그렇다, 언젠가 가쓰라 선생에게 배우기 위해서였다. 하지만 가쓰라 선생은 퇴직한다고 한다. 빌어먹을, 미리 알았으면 굳이 재수하지도 않았지.
나는 치를 떨며 분노했다. 재수하지 않고 합격했다면 작년에 이 캠퍼스에서 기초론을 들을 수 있었으리라 생각하니 그 심정을 이루 말할 수도 없었다. 엄마에게 이 이야기를 했더니 ˝도모에는 역시 언 럭키 걸이구나˝하며 심하게 굴려서 발음하는 바람에 얼마나 짜증이 났는지 모른다. -203~204쪽

이마데가와 역에서 지하철을 타고 시조 역에서 내렸다. 시조 거리를 따라 동쪽으로 걷고, 기온 거리를 따라 야사카신사까지 갔다가 유턴. 이번에는 가와라마치 거리를 따라 북쪽으로 올라갔다가 신쿄고쿠 아케이드를 따라 남쪽으로 내려갔다. 도중에 아이스크림을 먹고 여기저기 상점을 구경하고 게임장에 들르는 등 꼭 고등학생들이 데이트하는 것 같았다. -241쪽

˝이이는 뭘 했는데? 교토에서 대학을 다녔다고 했지?˝
˝나? 그래......˝
나오코는 승차구를 알려주는 바닥 표시 앞에 두 줄로 가지런히 늘어선 승객들을 곰곰이 생각하는 얼굴로 바라보다가 문득 중얼거렸다.
˝도쿄 사람들은 왜 이렇게 얌전하게 전철을 기다릴까?˝
언제나 의아하게 생각하는 점이었다. 하지만 아오야마에 있는 의류회사에서 일한 지 3년이었다. 도쿄 사람들이라고 특별히 상냥한 것도 아니며, 전철에 오를 때 새치기를 하면 노골적으로 혀를 차거나 심지어 팔꿈치로 가볍게 찌를 만큼 의외로 공격적이라는 것을 나오코는 잘 알았다. -267쪽

‘역시 사람은 조직이라는 필터로만 개인을 바라보는 생물이구나.’
선입견 때문에 마음의 눈이 너무도 쉽게 흐려지는 인간이라는 존재에 대해 인식을 새로이 한 (사카키바라) 야스시는 ‘그런데 이탈리아인은 어떻게 돼지고기를 이렇게 먹을 생각을 했을까’ 생각하며 혀에 치즈 같은 맛을 남기는 피자의 생햄을 냉큼 해치웠다. -289쪽

“호소카와는 어디서 하숙해? 리쓰메이칸 근처?”
“후나오카야마 산기슭. 무라사키노 근처.”
“아하, 겐쿤신사가 있는곳.”
“그래, 잘 아네.”
뜻밖의 이름이 나오자 (호소카와) 다마미는 감탄했다. 그녀는 맑고 따뜻한 날 겐쿤신사 도리이를 지나 후나오카야마를 산책하는 것을 좋아했다. -330~331쪽

내일 아즈치를 출발해 교토로 떠납니다. 나가모치(옷이나 각종 도구를 수납하거나 옮기는 커다란 궤)도 가지고 갑니다. 교토는 먼지가 많아 좋아하지 않습니다.
이만 총총.
덴쇼 10년 5월 스무여드레, 가시와바라 나베마루
오타마 님 -351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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큐레이션 - 과감히 덜어내는 힘
마이클 바스카 지음, 최윤영 옮김 / 예문아카이브 / 2016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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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무척 낙관적인 책이다. 그런데도 좀처럼 잘 읽히지는 않았다. 편집 상태가 다소 엉성한 탓도 없지 않았지만, 그보다도 이 책의 낙관성 자체가 엉거주춤해서 신경이 쓰였다. 이 책은 큐레이션의 역할과 그 중요성이 점점 상승하며, 활동 영역도 확장되는 일련의 추세를 다채롭게 서술했다. 이렇게 현대 사회에서 큐레이션의 역할을 제고하도록 역설한 가장 큰 이유는 현대 사회가 소비 가능한 부와 상품이 포화된 ‘과잉 사회’라는 저자의 인식이다. 물론 이런 인식이 지금의 상황에 대한 지나친 낙관론으로 흐르는 것을 상당히 경계하는 것처럼 보이지만, 그럼에도 이 책이 강조하는 큐레이션의 필요성은, 각자에게 맞는 것들을 따로 찾는 체계가 필요할 정도로 지금이 많은 측면에서 ‘풍요로운 시대’라는 판단과 불가분의 관계를 맺는다.

      

큐레이션은 제자리에 있어야 할 것을 없애버리기도 하고 일련의 대상을 아무런 개성 없이 밋밋한 존재로 만들어버릴 수도 있다. 개인적 주관에 따라 이뤄지기 때문에 극도로 자기 중심적이다. 또 경험은 물론 우리 자신까지도 지극히 계산적인 관점에서 바라본다. 우리 삶을 지배하던 기승전결의 서사 구조는 연속성이라고는 전혀 찾아볼 수 없는 단편적인 구조로 바뀌어버린다. -p.383

      

 그런데 이렇게 조심스럽지만 선명한 낙관성은 큐레이션이 만들어 갈 시대를 포괄적으로 전망하는 데에 이르면 조심스럽고 모호한 관망으로 돌아서는 듯하다. 분명 적지 않은 분량을 들여서 현재 세계 곳곳의 다양한 분야에서 성공적으로 진행 중인 큐레이션의 사례들을 언급하고 있지만 그것들이 일정한 방향의 사회적 변화로 수렴이 가능할지, 가능하다면 그 방향은 지금보다 더 풍요롭거나 다채로울 것인지에 대해서는 상당히 신중하고 간략한 언급에 그치려고 애쓰는 인상이다. 결국 장기 호황 속에서 이루어진 과잉 사회가 수많은 상품들 중에서 더 좋은 것을 골라서 나머지를 덜어내도록 돕는 큐레이션을 요구할 수밖에 없을 정도로 낙관적이지만, 정작 이 큐레이션의 역할이 증가할 향후의 미래상은 아직 뭐라 말하기 어렵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앞으로의 사회에서 큐레이션의 어떤 역할을 한다고 말할 수 있을까?

      

이제 큐레이션은 정리할 수 없을 정도 엄청난 양에 압도되는 상황, 바로 과잉 현상을 타개할 대응책으로 사용돼야 한다. 물론 모든 경우에 적합하지는 않겠지만 쓸모없는 것들을 과감히 덜어낼 수 있는 큐레이션이야말로 과잉 사회의 강력한 돌파구다. -p.11

      

 여기서 큐레이션의 가치를 제창한 저자의 확신이 부족하다고 지적할 생각은 전혀 없다. 이것은 처음부터 이른바 ‘과잉 사회’가 된 현대의 필연적인 결과물이자 필수적인 해결책으로까지 큐레이션의 역할을 부각시키고자 했던 그의 의욕이 초래한 모순이기 때문이다. 지금처럼 다방면에서 큐레이션의 의도를 지닌 활동이 활발해질 정도의 과잉, 혹은 양적 팽창의 기준과 그러한 팽창이 그 자체로 큐레이션에 직결되는지의 여부에 대한 분석이나 숙고가 전체적으로 빈약하다. 그 논리의 공백을 채운 것은 사람들이 확인하고 선택하기 어려울 정도로 재화의 양이 크게 증가했기에, 더 필요하고 우수한 것을 찾아내는 큐레이션 활동이 산업으로서 부상할 것이라는 저자의 직관과 일종의 순환 논법이다.

      

 최근 들어 큐레이션의 영역이 확장되고 역할이 증대되는 중이며 그 배경에 현대 사회의 경제적 과잉이 있다는 사실 자체를 부정할 수는 없다. 그럼에도 큐레이션과 과잉 사회의 필연성이나 과잉 사회 자체의 해결책으로서의 큐레이션의 역할 둘 모두를 인정하기에는 아직 성급할 뿐만 아니라 저자 본인의 관점도 일관성이 부족하다. 그런 까닭에 이 책에서 강조해야 하는 지점은 큐레이션의 세계·사회·역사적 비중이나 역할이 아니었다고 생각한다. 물론 그 측면을 강조하고 부각시킨 덕분에 이 책이 한국뿐만 아니라 세계적으로 반향을 일으켰다는 점만큼은 부정할 수 없을 정도로 명백하다. 비록 설득력이 부족하더라고, 큐레이션이 지금 세계와 우리 사회를 바꾸고 있다는 의미가 부여돼야만 사람들은 관심을 가진다. 사람들은 자신이 뭔가 중요하고 대단한 원리를 안다는 그 느낌을 참 좋아한다. 저자는 이 부분을 잘 이해했다고 본다. 그는 여러 포럼이며 콘퍼런스에서 기조 연설자로 초청할 만한 자질을 갖췄다.

      

보존하며 보살피는 의미가 결여된 큐레이션 작업은 부정적인 결과로 이어질 가능성이 높다. -p.398

앞서 살펴봤듯 좋은 큐레이션은 전문 지식과 취향, 판단을 바탕으로 한다. 하지만 중요한 것은 바로 다른 사람에 대한 신뢰, 공감, 배려 또한 아우르고 있다는 점이다. 큐레이션에 이 3가지 요소가 빠지게 되면 이내 비웃음과 조롱의 대상이 되고 해당 큐레이션 작업은 한낱 허세에 그치고 만다. 하지만 다른 사람에게 봉사를 한다는 마음가짐으로 그들이 진정 원하는 것이 무엇인지를 고려한다면, 또 큐레이션 그 자체보다 큐레이션 대상에 더욱 집중한다면 그 결과는 제대로 된 가치를 지니게 될 것이다. -p.399

      

 그러나 경제적 여건이 안정된 일부 국가들에서 큐레이션이 산업의 핵심 수단으로 전개되고 개인의 삶에 영향을 미치는 구체적인 양상과 앞으로의 변화 가능성은 여전히 중요하다. 이 책에서도 그것을 보여 주는 개별적인 사례들이, 큐레이션에 대한 세계·경제적 의미 부여보다 훨씬 인상적이었다. 큐레이션의 본래 의미가 “보살피다”인 까닭에 기업 혹은 개인으로서의 큐레이터는 항상 이용자에게 도움을 주겠다는 태도를 지녀야 하고, 그러려면 각자가 큐레이션이라는 행위에 도취될 것이 아니라 선택·선별하는 대상들에 더 집중해야 한다는 원칙도 설득력이 충분했다. 이렇게 지적한 큐레이션의 필수 요소들이 어디서나 통하는 자질이라는 점 역시, 큐레이션 작업의 방향을 모색하는 데 있어서 “과잉 사회의 해결책”이라는 과대한 의미 부여보다도 더 가치 있었다. 선별하는 자신보다 그의 선택을 받는 대상과 그 대상을 선택할 타인이 중요하다는 사실이 새삼 커 보였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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큐레이션 - 과감히 덜어내는 힘
마이클 바스카 지음, 최윤영 옮김 / 예문아카이브 / 2016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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큐레이션은 능숙함과 탁월한 주관성을 바탕으로 한 인간의 영역으로 오늘날과 같은 기술 경제 시대에 새로운 직종을 창출할 수 있는 하나의 보루다. 하지만 이마저도 빠른 속도로 알고리즘 바탕의 자동 방식이 대체하게 되면서 확실한 미래는 보장할수 없는 상황이다. -397쪽

보존하며 보살피는 의미가 결여된 큐레이션 작업은 부정적인 결과로 이어질 가능성이 높다. -398쪽

우리가 궁극적으로 해야 할 질문은 큐레이션이 어디에서 일어나고 있는지, 또 무엇을 의미하는지가 아니다. 좋은 큐레이션과 나쁜 큐레이션의 차이가 무엇인가 하는 점이다. -398~399쪽

앞서 살펴봤듯 좋은 큐레이션은 전문 지식과 취향, 판단을 바탕으로 한다. 하지만 중요한 것은 바로 다른 사람에 대한 신뢰, 공감, 배려 또한 아우르고 있다는 점이다. 큐레이션에 이 3가지 요소가 빠지게 되면 이내 비웃음과 조롱의 대상이 되고 해당 큐레이션 작업은 한낱 허세에 그치고 만다. 하지만 다른 사람에게 봉사를 한다는 마음가짐으로 그들이 진정 원하는 것이 무엇인지를 고려한다면, 또 큐레이션 그 자체보다 큐레이션 대상에 더욱 집중한다면 그 결과는 제대로 된 가치를 지니게 될 것이다. -399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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큐레이션 - 과감히 덜어내는 힘
마이클 바스카 지음, 최윤영 옮김 / 예문아카이브 / 2016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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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국 잡지 <가제트(Gazette)>에 따르면 기자들이 가장 싫어하는 홍보 관련 용어 중에는 큐레이션 역시 포함돼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9쪽

큐레이션에 대해 보다 깊이 들여다볼수록 이 개념은 큐레이션이라는 단어로 불리기 훨씬 이전부터 존재했음을 확인할 수 있다. 큐레이션이 미술계에서 시작해 확산됐다는 생각은 ‘장님이 코끼리를 만진’ 격일 수 있다. 이미 그 이전부터 놀라울 정도로 여러 가지 맥락에서 광범위하게 사용되고 있었다. 그 개념을 큐레이션이라고 칭하는 까닭은 그저 편리하기 때문이다. 우리가 그것을 큐레이션의 개념으로 받아들이는지 여부와는 별개로 이 책에 등장하는 각종 비즈니스, 트렌드 및 기타 활동에서 쓰이는 큐레이션 개념은 우리 경제에서 점점 더 중요한 역할을 하고 있다. 변해가는 현실에 발맞추기 위해 큐레이션이라는 단어를 적용한 것이다. -10~11쪽

이제 큐레이션은 정리할 수 없을 정도 엄청난 양에 압도되는 상황, 바로 과잉 현상을 타개할 대응책으로 사용돼야 한다. 물론 모든 경우에 적합하지는 않겠지만 쓸모없는 것들을 과감히 덜어낼 수 있는 큐레이션이야말로 과잉 사회의 강력한 돌파구다. -11쪽

큐레이션의 관점에서 보면 덜한 것이 더한 것보다 나을 수 있다. (중략) 물론 덜한 것이 항상 더한 것보다 나을 수는 없다. 성장하기 위해 노력하는 기업, 생계를 위해 애쓰는 가족의 경우는 여기에 해당되지 않는다. 덜한 것이 더한 것보다 나은 경우는 특정 방식, 특정 환경에서만 적용된다. 따라서 큐레이션의 대상 역시 여기에 국한된다. -14쪽

일본에는 ‘츤도쿠(tsundoku)’라는 말이 있다. 끊임없이 책을 사지만 절대 읽지는 않는 현상을 일컫는다. 오늘날 대부분의 사람들은 여기에 포함될 것이다. 그리고 이 같은 츤도쿠 현상은 사회 전 영역으로 확대되고 있다. 그런데 일본에는 츤도쿠를 해결하기 위한 나름의 방책을 갖고 있다. 특유의 서점 형태가 바로 그것인데, 도쿄 긴자 거리에 가면 한 번에 딱 한 권의 책만 판매하는 서점이 있다. -19쪽

오늘날 각 개인은 알렉산드리아 도서관이 소장하고 있던 책의 약 320배에 달하는 정보를 보유하고 있다. 이미 고대의 책도 불필요하게 너무 많다고 불평했던 세네카가 이 같은 사실을 알게 된다면 관을 뚫고 나올지도 모를 일이다. -31쪽

과잉 사회에서는 선택하고, 찾고, 필요 없는 것은 과감히 덜어내는 것에 가치가 있다고 볼 수 있다. 요컨대 과잉의 문맥에서 보면 큐레이션은 단순한 유행어가 아니다. -34쪽

인간은 태어나는 즉시 수요와 공급을 창출한다. -45쪽

큐레이션은 더하는 것이 아닌 덜어내고 없애는 것이다. 단순화하고 각 상황의 맥락 속에서 접근함으로써 우리로 하여금 삶에 대해 보다 명확한 관점을 견지할 수 있도록 해준다. -70쪽

베토벤은 19세기 유럽을 휩쓴 이른바 낭만주의 혁명의 중심에 있던 인물이었다. 당시 낭만주의는 아무런 제한 없는 날것의 창조성을 사람들이 선망하는 위치에 올려놓는 계기로 작용했다. -73쪽

낭만주의는 대개 산업적 사고방식과는 전혀 반대되는 것으로 여겨지기도 하지만 이 둘은 모두 혁신적이며 창조성을 중시한다는 공통점을 갖고 있다. -75쪽

(애덤) 스미스 및 이후 세대의 경제학자에게 자유 시장에서 기업가의 역할은 경제 성장의 핵심 동인으로써 작용하는 것이었다. 경제학자 존 메이너드 케인스(John Maynard Kaynes)는 이 동인을 ‘동물적 감각’이라고 명명했다. 기업가의 창조성을 경제 성장과 직결된 것으로 본 것이다. 요컨대 경제학과 산업 기술은 다른 무엇보다 창조성을 최고의 가치로 여겼다는 점에서 낭만주의와 공통점이 있다. -75~76쪽

최대의 성장은 사업 운영에서 최고의 낭만이라고 할 수 있다. -83쪽

큐레이션은 선별과 배치 작업을 통해 가치를 더하는 모든 일과 관련돼 있다. -114쪽

확실한 것은 앱스토어보다 개방적이며 알고리즘에 의존하는 구글 플레이(Google’s Play)에 비해 앱스토어는 명확한 앱의 기준을 갖고 있다는 것이다. (중략)
주의 깊게 앱을 선택하고 배치함으로써 애플은 엄청난 양의 앱 생산이 결코 과잉 현상으로 연결되니 않는다는 것을 입증했다. -118쪽

넷플릭스로 신작이 입고되면 콘텐츠 담당자가 일일이 감상한 후 영화와 관련된 모든 태그를 아주 자세하게 입력한다(해당 매뉴얼은 무려 36쪽에 달한다). 이를 기반으로 영화의 카테고리가 나뉘며 각 내용에 대해 5점 만점으로 평가된다. 또 다음과 같은 질문에 대한 답이 추가되기도 한다. “영화는 해피앤딩인가? 만약 그렇다면, 감상적인 해피앤딩인가?”. “결론 부분에는 영화의 전체 내용과 더불어 주인공의 특성이 긍정적으로 묘사되고 있는가?(주인공은 콧수염이 있는가?)” 등이다. 이 방대한 규모의 태그 입력 프로세스가 완료되고 나면 컴퓨터는 기존에 입력된 다른 영화 내용과 비교 분석해 새로운 장르를 만들어낸다. 이후 이 추천 엔진에 의해 때로는 사용자가 본인도 미처 인식하지 못하고 있었던 선호 장르가 추천되기도 한다.
이 모든 과정은 매우 복잡하며 사람의 노동력 또한 매우 많이 필요하다. <와이어드>는 넷플릭스의 이 범주화 작업에 무려 1,000명 이상의 직원이 투입되고 있으며 연구 개발 및 기술 관련 투자 규모 역시 엄청나다고 전한다. (다음)

(이어서) 그러나 넷플릭스는 이 작업을 계속해서 진행하고 있으며, (알렉시스) 마드리걸에 따르면 현재 넷플릭스는 업계를 통틀어 지금까지 개발된 것 가운데 가장 정교한 형태의 미디어 추천 및 범주화 엔진을 갖고 있다. 한마디로 넷플릭스는 영화 취향이 나와 가장 비슷한 내 분신 같은 사람, 즉 도플갱어까지 찾아낼 수 있으며 이처럼 유사한 취향을 바탕으로 개개인별로 적합한 영화를 추천해 줄 수 있는 것이다. 이 같은 결과를 얻기 위해 넷플릭스는 수시로 A/B 테스트(A안과 B안을 동시에 보여주고 어떤 선택지에 대한 반응이 더 좋은지를 관찰하는 기법-옮긴이)를 진행하고 있다. 고객의 선택을 돕는다는 미명 하에 이를테면 다음 주 토요일 밤에는 어떤 영화를 볼지 선택하도록 하는 것이다. 넷플릭스는 테스트 결과를 자체 콘텐츠 생산에도 활용했다. (다음)

(이어서) 드라마 <하우스 오브 카드(House of Cards> 제작이 대표적인 사례다. 넷플릭스는 이미 시청자들이 정치 스릴러를 선호한다는 사실을 꿰뚫고 있었다. 또 주인공 케빈 스페이시(Kevim Spacey)는 두말할 나위 없이 인기 있는 배우였고, 데이빗 핀처(David Fincher) 감독이라면 사람들은 믿고 보는 경향이 있었다. 드라마 <오렌지 이즈 더 뉴 블랙(Orange is the New Black)>도 마찬가지다. 넷플릭스는 기존의 방대한 정보를 바탕으로 사람들이 성소수자 관련 콘텐츠 및 재기발랄한 코미디 그리고 여성이 주도적으로 이끌어가는 형식의 드라마를 좋아한다는 사실을 간파하고 있었다. -129~130쪽

올바른 선택에 대한 책임은 쉽사리 짐으로 느껴지곤 한다. -141쪽

무엇이든 선택하고 나면, 곧바로 손실의 가능성이 열리게 된다. 더 나은 선택을 하지 않음으로 인해 생기는 손실의 가능성이다. -141쪽

10개 정도의 변수면 이미 우리의 의사결정 능력은 손상을 입는다. 혼란을 느끼면서 우선순위를 망각하게 된다. 일부 심리학자의 경우 10개는커녕 5개도 넘겨서는 안 된다고 주장한다. -142쪽

고도로 발달된 감각 역시 끊임없는 노력 끝에 얻은 일종의 큐레이션 도구로 볼 수 있다. -145쪽

큐레이터는 어떤 요소가 더 중요한지 거의 자동적으로 파악한다. 그래서 전문가는 별 노력 없이도 적당한 수준에서 선택 범위를 줄일 수 있다. 전문적인 지식이 없는 경우에는 즉각적으로 알아채지 못해 각각의 선택 사향을 하나하나 분석하고 평가하는 과정을 거쳐야 한다. -145쪽

큐레이션의 한 가지 매력은 바로 개인의 독특한 취향이 반영된다는 것이다. 큐레이터마다 스타일, 취향, 생각이나 의견, 흥미, 능력 등이 모두 다르기 때문에 큐레이션 결과에 차이가 난다. 일정 부분에서 큐레이션은 결국 기계가 할 수 없는 일을 대체하는 것이다. -152~153쪽

선택은 제대로 된 것을 찾는 일이다. 어떤 맥락에서든 ˝무엇이 제대로 된 것인가˝를 결정하는 것은 결코 기계가 할 수 없는 일이다. -153쪽

업계 순위 2~3위를 다투는 영국 슈퍼마켓 체인 세인스버리는 영국의 칵테일 소비량이 미국에 훨씬 못 미친다는 사실을 알아내고 주류회사 디아지오(Diageo)와 파트너십을 체결했다. 조사 결과 영국 내 슈퍼마켓에서는 라임 등 칵테일 제조에 필요한 재료가 술이 진열된 곳과 완전히 반대편에 놓여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필요한 재료가 너무 동떨어져 있었기 때문에 사람들은 캇테일을 만들어보고 싶다는 생각을 전혀 하지 못했다. 술을 집어 들고 나서 라임을 사기 위해 다시 진열대 맨 끝으로 돌아가는 것은 너무 번거로웠다. 그런데 별도의 공간을 마련해 술과 얼음, 과일, 믹서를 한곳에서 판매하자 술의 판매량이 9퍼센트나 늘었다. -169~170쪽

박물관의 큐레이션은 일종의 거대한 증류 작업으로 관람객의 경험을 만들어내는, 다소 어렵고도 촘촘한 여과의 과정이다. -191쪽

출판업자로서 나는 축소와 정제의 가치를 매일 매일 경험한다. 출판업계에서는 이를 두고 ‘편집’이라 칭한다. 매번 수많은 책이 무수한 잠재성을 지닌 채 쏟아진다. 하지만 그 중에는 너무 허술하게 쓰인 책도 있고 지나치게 길거나 장황한 책도 있으며 불필요한 내용을 너무 많이 담아낸 책도 있을 수 있다(편집자에게 유감을 표하는 바다). 이때 편집자의 가치는 책에서 어떤 부분을 버릴 것인가에 놓여 있다. 일단 책이 완성되고 나면 처음부터 다시 쓰거나 큰 폭의 수정을 하는 경우는 거의 없다. 여기서 필요한 것은 쓸데없는 부분은 과감히 덜어내 양질의 책으로 만들어내는 과정이다. 그런데 저자는 객관성을 갖고 편집에 임할 수가 없다. 그래서 편집자가 필요한 것이다. 더욱이 편집은 오랜 시간 공을 들여야만 좋은 결과가 나올 수 있다. 여기에는 어떤 지름길도 없다. 그저 텍스트에 몰입해 몇 번이고 반복해서 읽고 충분히 생각하는 수밖에 없다. 편집자는 문장 하나하나를 자세하게 들여다볼 수 있을 뿐만 아니라 보다 넓은 관점에서의 구조 파악도 가능하다. -193~194쪽

토론토도미니언은행의 최고경영자 에드먼드 클라크(Ed Clark,사장의 연봉이 지나치게 높다고 공적으로 발언하기도 함)와 직접 이야기를 나눠본 결과 그는 금융 상품 판매에서 확고한 원칙을 갖고 있었다. ˝장모님께도 이 상품을 판매하겠는가?˝라는 문구는 이 같은 원칙을 가장 잘나타내준다. -203쪽

18세기 영국 화가 죠수아 레이놀즈(Joshua Reynolds)는 말했다.
˝단순함은 너무 적지도 많지도 않은 중간을 의미한다.˝
큐레이션 역시 중간이 될 수 있도록 지원한다. -207쪽

세계 와인 시장에서 큐레이션은 한번쯤 적용해볼 만한 그런 개념이 아니다. 구조적으로 꼭 필요한 과정이다. 더 많은 와인을 가질수록, 더 많은 이들이 와인을 생산할수록, 더 많은 혁신이 일어날수록, 와인과 관련된 문화가 더욱 풍성해질수록 복잡성은 함께 증대되고 동시에 와인 가치에 대한 큐레이션의 필요성 역시 커진다. -246쪽

음악 산업은 1998년 시그램(Seagram)이 음반 회사 폴리도르(Polydor)를 약 13조 원에 인수해 유니버셜 뮤직(Universal Music)이 탄생하면서 절정기를 맞았다. -262쪽

좋은 큐레이션은 새롭고 기대 이상의 결과를 만들어낸다. 하지만 나쁜 큐레이션은 그저 고객이 원하는 것을 검증해주는 역할에 불과하다. 개별 맞춤화된 알고리즘 방식을 뒤로하고 해당 분야의 전문가가 큐레이션 영역으로 다시 돌아오고 있는 이유는 바로 여기에서 찾을 수 있다. -272쪽

(트위터의) 콘텐츠 검색 메커니즘 역시 전혀 발전되지 않았다. 이 같은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등장한 사용자 인터페이스 3가지, 사용자 명을 의미하는 ‘@’, 트윗의 관련 주제를 표시하는 ‘#’, 다른 사람의 트윗을 공유함을 나타내는 ‘리트윗’, 이 모두는 사용자가 주도적으로 고안해 이후 공식적으로 적용된 방식이다. 이는 곧 현존하는 최대 규모의 가장 활발한 인터넷 업체인 트위터가 큐레이션 임무를 이용자에게 전가했음을 의미한다. -308쪽

창조성은 언제나 재조합 과정을 수반하는 개념이었다. 창조성과 큐레이션의 명확한 경계는 어디에도 존재하지 않는다. 이 둘을 잘 조화시키는 문제만이 있을 뿐이다. -324쪽

구입에 앞서 사전 조사를 하는 고객은 큰 폭으로 줄었다. 이제 점점 더 많은 고객이 믿을 수 있는 큐레이터에 의존하고 있으며 이들로부터 구체적인 제품 정보까지 얻길 기대한다. -339쪽

다시 말해, 전문 인력을 통한 큐레이션 작업 및 판매 활동, 발길을 끄는 서점 환경, 내가 원하는 책을 우연히 발견할 수 있는 가능성, 이 3가지를 조화롭게 적용함으로써 (영국의 서점 체인인) 워터스톤스는 디지털 시대의 위기를 극복해냈다. -342쪽

큐레이션의 본래 의미가 ˝보살피다˝인 것처럼 다른 사람을 보살피고 돕기 위해 방법을 고안해내는 것은 디지털 시대에 매우 독특한 산업 모델이라고 할 수 있다. -359쪽

소설 미디어는 연결성을 바탕으로 한 신뢰, 친밀성, 그리고 지식에 의존하는 영역이다. -359쪽

식품 산업, 미디어 산업, 과학계의 커뮤니케이션 등을 막론하고 결국 큐레이션 생태계의 키워드는 무수히 많은 대상에서 차이를 발견해내는 것이라고 볼 수 있다. -364쪽

이전 장에서, 그리고 책 전반에 걸쳐 각 산업이 어떤 식으로 소비자에게 직접 큐레이션의 권한을 부여하는지 살펴봤다. 그런데 이는 이용자의 의지 없이는 결코 실현될 수 없다. 즉, 이용자가 직접 사진의 음악, 사진 등을 공유하거나 큐레이션하고자 하는 자발적인 의지가 있어야 한다는 뜻이다. 이 모델이 작동하려면 수요가 있어야 한다. 그 수요가 때로 지나치게 자신만의 취향을 강조한 것이라 해도 이제 이들의 큐레이션 활동은 점차 그 영향력이 증대되고 있다. -367쪽

대부분의 지중해 지역 호텔은 외관이 거의 비슷했는데 이는 최대한 많은 방과 발코니를 햇빛이 드는 쪽으로 내야 했기 때문이다. 기능성과 경제성을 고려한 선택이었던 셈이다. -375쪽

큐레이션은 제자리에 있어야 할 것을 없애버리기도 하고 일련의 대상을 아무런 개성 없이 밋밋한 존재로 만들어버릴 수도 있다. 개인적 주관에 따라 이뤄지기 때문에 극도로 자기 중심적이다. 또 경험은 물론 우리 자신까지도 지극히 계산적인 관점에서 바라본다. 우리 삶을 지배하던 기승전결의 서사 구조는 연속성이라고는 전혀 찾아볼 수 없는 단편적인 구조로 바뀌어버린다. -383쪽

하지만 상당수의 큐레이션 작업은 여전히 인지되고 있지 못한 실정이다. 단지 큐레이션이라는 이름을 붙이지 않았을 뿐, 이미 많은 기업이 큐레이션 방식에 입각한 활동을 펼치고 있다. 출판 산업을 예로 들면 편집자가 출판업자 스스로 자신을 큐레이터라고 지칭하는 경우는 거의 없다. 그러나 이들 작업의 상당 부분은 이미 큐레이션 활동이다. -391쪽

오늘날 가장 중요한 산업 모델 가운데 하나는 다른 사람이 큐레이션 활동을 할 수 있는 수단과 방법을 고안해내는 산업이다. 자신이 직접 큐레이터 역할을 하며 자사의 브랜드 성장을 주도하는 것은 늘 중요한 것으로 인식됐다. 하지만 이와 동시에 오늘날에는 다른 사람이 큐레이터가 될 수 있도록 권한을 부여하는 플랫폼을 구축하는 것 역시 중요한 산업으로 인식되고 있다. -393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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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술가로 산다는 것 낭만픽션 4
마쓰모토 세이초 지음, 이규원 옮김 / 북스피어 / 2016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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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가이케이(快慶)가 조각한 불상들은 흔들림 없이 부드러웠다. 한 사람 한 사람의 기원에 귀 기울이면서도 앞으로도 그치지 않을 그들 모두의 목소리를 생각하며 흐트러지지 않는 자비로움이 여전히 그 자리에 있었다. 그런 까닭에 가이케이가 조각한 불상들은 무수했지만, 또한 하나뿐이었다. 그의 부처들은 일본 곳곳에 흩어졌지만, 뭇사람의 기원을 소중히 여기는 우아함은 나뉘지 않았다는 사실을 거듭 되새겼다.

 

 일본 가마쿠라(鎌倉) 막부 시대의 불사(佛師)인 가이케이의 특별전을 보기 위해 5월의 교토에서 나라로 짧은 여행을 두 차례 다녀왔다. 언젠가부터 일본 불교 조상(彫像)의 본류(本流)인 케이하(慶派)의 명성을 접하면서, 그들의 걸작을 배관(拜觀)하고 싶다는 소망이 깊어지던 중이었다. 일본의 사원은 한국과 달리 예경의 대상인 불상을 가까이서 보기 어렵거나, 비불(秘佛)이라는 특유의 문화 탓에 아예 공개하지 않는 경우가 적지 않은 까닭이기도 했다. 마침 교토(京都)에 오래 머무는 동안 가까운 나라(奈良)에서 가이케이가 제작한 불상들을 모은 특별전이 열린 것은 큰 행운이었다.

 

 여태 불전이 아닌 박물관에서 불상을 볼 때마다, 뭔가 퇴색해 버렸다는 인상을 받고는 했다. 지금까지는 불상이 위치한 장소와 함께 신앙이 아닌 관람의 대상으로 바뀐 탓이라고만 짐작했지만, 그저 그 이유만은 아니었던 모양이다. 나라까지 와서 가이케이의 전시회를 보고서야 불상이 그저 지나간 시대의 유물이 아니라, 오래도록 존숭받도록 조성된 신앙의 대상이라는 사실을 잊지 않는 전시 공간과 관람객이 만난다면 본래의 광휘는 쉽게 사라지지 않는다는 생각을 품었다.

 

(운케이가 자신의 불상을 인간 냄새가 너무 진하다고 비평하는 조겐에게 반발하는) 모순은 (승려로서 동대사 재건 사업을 시행하는 대권진大勸進이었던) 조겐이 가이케이를 지지하는 이유를 운케이가 이해한다는 데 있다. 가이케이의 조형에는 조초의 흔적이 깃들어 있는데, 조겐이 그 우아한 선에 끌리는 것임을 알았다. 그런 모습에서 조겐은 부처의 존엄을 발견했을 것이다. 그거다, 라고 이해했다. 조겐이 조초 양식에 끌리는 이유를 이해했다는 점에 운케이의 당착이 있었다. 운케이는 조초 양식을 파괴했지만 불상의 신비까지 파괴한 것은 아닐까. 불상을 지나치게 인간적인 사실에 근접시키느라 상상의 여지마저 침해한 것은 아닐까.

운케이는 가이케이에게 어떤 시샘과 경멸을 느꼈다.

가이케이가 조겐에게 우대받고 있어서가 아니다. 또 조겐의 편애 아래 다양한 조소 작업을 의뢰받고 있어서도 아니었다. 혹은 가이케이가 조겐을 사숙하여 안나미라는 호를 지었을 정도로 양자가 친밀해서도 아니었다. 가이케이가 동적인 사실성을 지향하면서도 그런 정숙을 남기는 점에 시샘을 느꼈다. (운케이)-p.30~31

 

 가이케이의 부처는 무엇보다도, 부드러웠다. 부처를 감싼 그 유현(幽玄)한 윤곽이야말로 중세의 일본인들이 바랐던 가장 이상적인 아름다움이었다는 확신을 스스로 드러내는 듯이 보였다. 그 형상 자체가 당대 중생들이 품었던 소망들이 결합한 화현이었다는 생각이 들 정도로 그가 제작한 불상들이 변화한 흐름과 그 외양의 성격은 선명했다. 가이케이가 작업한 아미타 여래상만을 모은 전시실에서는 입체화된 만다라(曼荼羅) 속으로 걸어 들어가는 착각이 들 정도였다. 그 불상들은 한 구 한 구가 미묘하게 달랐지만, 그 차이조차도 그들을 조각한 한 불사가 품었던 간절함의 근원을 더욱 도드라지게끔 했을 뿐이다.

 

 케이하의 존재를 접했을 때부터, 이 유파를 대표하는 운케이(運慶)와 가이케이의 관계가 궁금했었다. 이들에 대해서 알고, 그 작품에 감탄한 여느 사람들과 같은 속된 호기심이 인 셈이다. 마쓰모토 세이초는 유파의 수장이자, 인간적이며 극적인 인상의 불상으로 당대의 문화를 일신한 운케이의 내면을 힘 있게 그려냈다. 당대 불교 조각의 흐름을 바꾸고, 그 주도권을 장악한 수완가였던 운케이가 말년에 이르러, 자신과 사뭇 다른 불사의 길을 걷는 가이케이를 향한 번뇌를 버리지 못하고 못내 불편해 하는 심사가 예리하게 펼쳐진다. 조초(定朝)로 상징되는 과거의 불상과 전혀 다른 생동감을 추구한 운케이가, 그 과거의 유려한 양식미를 새로운 생동감의 조류와 융합시키려는 가이케이의 시도 앞에서 느끼는 은근한 불편함과 그에서 비롯되는 자신의 성취에 대한 미묘한 회의가 설득력 있게 다가온다.

 

조불사 법인法印 운케이는 교토 시치조 공방의 내실에서 76세의 병든 몸을 뉘어 놓고 있었다. 조오 2(1223) 봄날 오후였다. 점심으로 온조(술지게미에 된장을 넣어 끓여 낸 죽)에 양하, 머위 초절임, 해초가 나왔지만 젓가락으로 매실장아찌만 건드리다 말았다. 입맛이 전혀 없었다. 조수가 차오르듯 자꾸 잠이 몰려왔다. (운케이)-p.9

 

 하지만 이 구도를 상투적인 라이벌의 그것으로만 볼 필요는 없다. 이 두 사람이 서로 다른 개성을 존중하는 협력 관계였는지, 서로 다른 지향에 대한 이질감에서 끝내 벗어나지 못한 갈등 관계에 더 가까웠는지는 확인하기 어려울 뿐만 아니라, 어느 한 쪽의 성격만 존재한다고 말할 이유도 없다. 세이초가 운케이의 생을 다루면서 잡은 이 구도는, 이전에 없었던 양식을 완성한 예술가라면 사로잡힐 수밖에 없는 회의 속으로 파고든 결과였다. 운케이는 자신의 삶 자체와 같은 역동적인 불상의 조형이 서서히 바뀌어가는 흐름과 돌이킬 수 없는 그 미래를 직시하며 어쩔 수 없이 번민하고 있을 뿐이다. 그런 까닭에 자신이 택하지 않았던 가이케이의 양식을 뒤늦게, 더 깊이 의식하는 말년 역시 필연적이다. 이미 교토에서 가이케이가 남긴 화사한 자비로움의 현신을 가득히 만난 덕에, 도리어 이 작품 속 운케이의 은은한 자괴감까지도 납득하기가 더 쉬웠다.

 

간에이 9(1632) 5, 금지원 정원 공사가 한창이었다. 스덴이 재작년부터 마사카즈에게 의뢰한 일이었다. 마사카즈가 스즈키 쓰기타로에게 감정을 맡긴 정원석은 작년에 도착해 있었다. 정원수는 다니구치 구자에몬에게 물색하게 했는데 이 역시 그해 봄에 준비가 끝났다.

이제는 정원사 겐테이가 마사카즈의 설계대로 열심히 공사를 하는 중이었다.

이 정원의 설계도 실제로는 마사카즈의 예술적 욕망을 만족시켜 줄 만한 것은 아니었다. 스덴의 취향과 타협한 소산이었다. 마사카즈는 이에미츠나 다쿠안 같은 속물들에게 자신의 기술을 다 내어 주지 않음으로써 마음속 어디에선가는 그들에게 복수하는 기분을 맛보곤 했다.

마사카즈는 금지원에 시찰을 하러 갔다.

뜨거둔 여름 태양 아래 체구가 작은 겐테이가 볕에 탄 얼굴에 땀을 흘리며 인부들을 지휘하고 있었다. 겐테이의 본명은 요시로이며 후시미에 사는 천민 동산바치였는데, 황궁 조경 결과가 훌륭하다고 해서 고요제이 선황에게 겐테이라는 이름을 받았던 것이다. 그는 나중에 삼보원三寶院[산보인]의 정원 등을 조성했는데, 처음부터 마사카즈 지휘를 받으며 공사를 하고 있었다. (고보리 엔슈)-p.223~224


 이 연작 소설집에 등장하는 사실상 모든 인물들이 어떤 식으로든 교토 여행에서 접했던 풍정들과 연관되는 까닭에 무엇 하나 빠뜨리기는 어렵지만, 그렇다고 모두 다 이야기하기도 쉽지는 않다. 물론 그 중에서도 각별히 소중한 기억은 있고, 고보리 엔슈(小堀遠州)가 조성한 학과 거북의 정원(鶴龜)’으로 유명한 난젠지(南禪寺)의 곤치인(金地院)이 바로 그곳이다. 그동안 1주일 남짓 교토를 찾을 때는 바로 옆의 난젠지에서 반나절을 보내는 것만으로도 겨를이 없어서 입구만 바라보고 떠났는데, 80일을 머무르니 비로소 들어갈 틈이 났다. 교토의 여느 정원들처럼 한 걸음 한 걸음 들어갈수록 아름다움이 깊어가는 정경도 인상적이었지만, 가장 깊은 곳에 위치한 방장(方丈) 건물 앞의 저 정원이 단연 경이로웠다.

 

일화를 들자면 끝이 없다. 이런 일화들은 그의 재능이 차, 다실, 정원, 다완, 다실의 꽃 장식, 도예, 다구 감정, 시가나 문장 등 다양한 영역에 걸쳐 있었음을 말해 준다.

그러나 다재다능은 종종 그 인간을 불행하게 만든다. 마사카즈는 덴쇼 7년 오미 국 사카다 군 고보리에서 태어나 22세에 빗추 마쓰야마성을 받았다. 겨우 만삼천 석이었지만 어쨌거나 다이묘가 된 것이다. 그는 청년기와 장년기를 전란기 속에서 보냈지만, 특별한 전투에 투입되지는 않았다.

(중략) 반슈 히메지나 단슈 후쿠치야마의 정무를 담당하기도 하고 기슈나 오미에 파견되는 등, 그저 그런 일들만 했다. 늘 곁길을 걷는 처지였다. 후시미부교로 이십 년을 재직했지만 봉록이 오른 적은 한 번도 없어서 애초의 만삼천 석이 그대로 유지되었다.

엔슈 태수 고보리 마사카즈는, 다회나 다구 감정, 조경에서만 재능을 발휘했다. (고보리 엔슈)-p.220

 

 추위가 완전히 가시지는 않은 초봄의 교토에서 그야말로 호활(浩濶)한 곤치인 방장 건물의 마루에 앉아 봄볕 아래 환히 빛나는 정원을 바라보던 기억은 지나간 여행의 또렷한 순간 중 하나였다. 무사이자 다이묘(大名)의 신분으로 그토록 섬세하면서도 박력 있는 정원을 조성한 고보리 엔슈에 대한 관심이 처음으로 또렷해진 순간이기도 했다. 무기로 공훈을 쌓던 시대의 끝자락에서 정원으로 명성을 떨친 사람의 복잡한 내면을 이 책에서 만날 수 있어서 더욱 기뻤던 이유다. 보이지도 잡히지도 않는 그에 대한 평가는 지금까지도 드높지만, 그가 당대에는 그 평판에 상응하는 권력이나 재력을 누리지 못했던 사실이 지니는 의미를 너무도 예리하게 드러내서 세이초의 통찰력에 새삼스레 감탄했다. 이 다재다능했던 예인(藝人)의 내면에 존재할 수밖에 없었던 공허함을 이토록 정치하게 그려낸 것은 역시 세이초 본인이 그와 같은 경지에 올랐다는 징표였다.

 

헤이안 시대에는 정원수 배치에 비교적 너그러웠다. 수목은 자연의 수형을 그대로 이용하고 다소 손질하더라도 생육하는 대로 내버려 두었다. 그러나 수목은 성장하면서 당초의 풍경을 크게 바꾼다.

그래서 무로마치 시대에는 정원의 균형을 깰 만큼 성장이 빠른 나무를 기피하고 성장이 느린 나무를 선호했으며 철마다 전정 작업을 실시했다.

하지만 이렇게 관리해도, 나무는 조금씩 생장하여 언젠가는 처음의 균형을 잃게 되므로 결국 수목은 일절 사용하지 않게 되었다. 그 결과로 돌과 모래로만 구성한 정원, 모래만으로 구성한 정원, 혹은 초정草庭이나 이끼정원이라는 발상이 탄생했다. (고보리 엔슈)-p.212~213

 

 일본 문화 속 대가들의 삶을 정교한 작가적 상상력을 발휘함으로써 선명하게 재구성했다는 점과 함께, 그들의 생애와 함께 변화한 예술의 내력을 섬세하게 아울렀다는 데에 이 책의 매력이 담겨 있다. 일본의 대표적인 정원 양식 중 하나인 가레산스이(枯山水) 정원은 그 구성에 깊은 함의를 부여하는 방식이 작위적으로 여겨졌을 뿐만 아니라, 그 삭막함이 못내 내키지 않는 구석이 있었는데, 시간이 지나도 자태가 흔들리지 않는 정원을 이루려는 궁리 끝에 다다른 결실이라는 사실을 듣고 보니, 어느새 그 건조함이 퍽 안온하게 다가왔다. 센 리큐(千利休)나 고보리 엔슈와 같은 작정가(作庭家)들이 제한된 소재와 구성을 이용해 뜰 너머의 세계까지 함축하는 정원을 능란하게 이루어 냈던 이유를 비로소 조금이나마 알게 됐다. 그들은 시간과 함께 자라고 바뀌는 정원들을 충분히 음미한 끝에, 언제나 같은 맛을 내는 정원을 바랐던 것이다. 지금 이 순간 내가 보는 마른 모래의 정원은 그저 냉랭할 뿐이지만, 그것이 수백 년 전부터 한결같았다는 사실을 돌아보면, 비로소 온기가 감돈다.


 이 책을 열 때부터 덮을 때까지 교토와 그 근방의 기억들이 떠나지 않았다세이초는 그의 분신 같은 화자인 소설가 이무라가 마치 조세핀 테이의 시간의 딸처럼 사서(史書속에 간신히 흔적만 남은 고대 예술가의 실체를 안락의자 탐정처럼 하룻밤 사이에 밝혀 나가는 조불사(造佛師도리(止利)의 이야기에서조차그가 활약했던 긴키(近畿지방의 전원 풍경을 세밀하게 그려냈다. 여기서는 추리소설의 거장이었던 세이초만이 구사할 수 있는 재기 넘치는 구성을 만끽하는 즐거움 또한 각별했다. 저마다 일본 문화의 정점에 도달했던 이 책 속의 예술가들은 오래도록 명목상이나마 이 나라의 수도였던 교토와 대부분 관계를 맺고 있었다예외는 에도(江戶)에서 활동한 우키요에 화가였던 도슈사이 샤라쿠(東洲齋寫樂)뿐이다

 

쓰루가를 출발하여 비와 호수를 지나 오쓰에서 묵고, 이튿날 오사카逢坂산을 넘으니 그리운 교토가 보였다. 저곳을 보고 싶은 마음에 에도로 가는 길을 우회했던 것이다. 어린 시절부터 서른아홉 살 때까지 살았던 교토는 잊을 수 없는 그(이와사 마타베에)의 고향이었다. 암울한 후쿠이의 시골에서 이십 년을 살면서 꿈에서 본 것이 한두 번이 아니었다. 그는 눈물을 흘렸다.

고향이랄지, 도읍이랄지, 보고 나니 참으로 기뻤다. 옛날에 번창했던 그 모습을 보니 과연 교토 땅은 고귀했다. 교토 니조 아부라노코지에 있는 지인의 집을 찾아가 오랜만에 주인을 만나 갖은 환대를 받고 각별한 감흥을 느끼며 열흘 남짓 머물렀다. 예전에 다니던 곳들이 못 견디게 그리워 이곳저곳을 돌아다녔다. 먼저 기온, 마루야마, 쌍림사雙林寺[소린지], 남선사南禪寺[난젠지], 청수사淸水寺[기요미즈데라] 등 여기저기 참배하며 하루하루를 보냈다.’

그는 붓끝을 핥아 가며 일기에 적었다. (이와사 마타베에)-p.194~195

 

 교토에 머물며 이 책 속의 자취들을 직접 거닐면서 읽는 것도 좋았겠지만, 돌아온 후에 이야기를 더듬으며 짙게 배인 여행의 기억을 되새기는 것도 여간 즐겁지 않다. 교토에서 이름을 얻지 못해 어둡고 추운 북쪽 지방으로 떠나야 했던 이와사 마타베에는 60세가 돼서야 에도 막부의 인정을 받아, 그림을 그려 올리라는 출두령이 내리자 비로소 짐을 꾸렸다. 노령의 화가가 오래 기다린 먼 길 위에서 재회한 그 도읍처럼, 이 책 속에서 거듭 만난 교토 역시 아름다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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