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도스섬 공방전 시오노 나나미의 저작들 5
시오노 나나미 지음, 최은석 옮김 / 한길사 / 2002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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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 시리즈의 전부가 맘에 들었다. 결국에는 이 세 권 중에서 제일 얇은 이 책에 가장 큰 관심을 쏟았음을 고백하지 않고는 견딜 수 없다는 사실까지도 못내 즐거웠다. 장미꽃 피는 지중해의 옛 섬, 로도스를 둘러싼 오스만의 '대제(大帝)' 술레이만과 '그리스도의 기사' 성 요한 기사단의 대결 구도는 공격과 수비의 양 극에서 누구에게 그 초점을 두어야 할지 조차 갈피잡지 못하게 했다. 나도 어느새 그곳의 장미 향기에 취했나보다. 그래도 내 눈은 역시 정의의 편(?)인 성 요한 기사단을 향했고, 그 시선의 중심에 신의 뜻에 절대 복종한다는 원칙과는 동떨어진, 너무도 자유롭고 현실적인 오르시니가 굳은 자리를 지키고 있는 모습이 '아이러니'라는 단어의 뜻을 음미해보게끔 했다. 

 어떤 집단이라도 전성기보다는 몰락기에 접어들어서야 그 잠재력과 정신력의 극치를 보여준다. 게다가 이 기사들에게는 그 강인한 정신에 고귀함까지 스며들어서 절로 감탄의 신음을 불러일으켰다. 이런 나와 함께, 맹목적인 열정에 휩싸인 '저물어가는 기사 계급', 기사들을 차가운 웃음을 머금고 바라보던 이가 바로 '냉정하지만 자유로운' 오르시니였다. 가끔씩 보는 중세 배경의 영화에서 막연히 '멋있다'는 느낌을 주었던 기사들이었지만 밀려오는 적군을 칼로 몰아내고 날아오는 포탄을 방패로 막아내는 그들은 같은 기독교도인 서구의 왕공귀족들에게서도 잊혀진 '외로운' 존재였다. 하지만 그 외로움이 그들의 은빛 갑주를 더욱 빛나게 했으리라.

 그런 기사들의 상대 또한 그 못지 않았던 것도 이 전쟁의 볼거리였다. 술래이만은 실로 맺고 끊임이 분명한, 이 전쟁의 참가 자격이 충분한 '기사'였다. 10만의 대군을 혹한의 겨울까지 몰아침은 맺음이요, 그러다가도 금새 평화조약을 맺음은 이 전쟁을 끊음이었다. 이런 그에게 '이교도'인 기사들마저도 나날이 빛나는 투르크의 영화를 뽐내는 황금빛 천막 안에서 고개를 숙이고 떠났다. 이로써 기사로 대표되는 귀족의 시대는 막이 내리고 왕의 시대가 열렸으니 선명한 눈빛을 품은 채로 잠든 오르시니를 로도스 옛 섬의, 그 가슴의 피처럼 붉은 장미가 감싸주었다. (1998. 3. 30∼4. 2, 1998. 4. 2 기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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