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효순칼럼] 피디수첩과 검찰의 행보
김효순칼럼
 
 
한겨레  
 








 

» 김효순 대기자
 
10여년 전 일선 취재부서의 부장을 맡고 있을 때 검찰에 가서 두 건의 명예훼손 혐의로 조사를 받은 일이 있다. 수사기관에서 받은 조서에 무인을 찍는 것이 편할 사람은 없을 것이다. 검사나 검찰서기는 접수된 사건을 정해진 기일 안에 매듭지어야 하기에 집요하게 질문을 한다. 일선 기자의 취재내용이 사실이라고 믿은 근거가 무엇이냐, 다른 기사들보다 부각시킨 의도가 무엇이냐, 제목을 이렇게 단 배경이 무엇이냐는 등 꼬치꼬치 캐묻는다.

나의 단편적 경험에서 따져보면 서울중앙지검의 <문화방송> ‘피디수첩’ 수사는 도대체 그림이 그려지지 않는다. 첫째, 누구의 명예가 훼손됐다는 것인지 모르겠다. 검찰이 설마 미국 정부나 축산업계, 아레사 빈슨 모친의 명예를 신경 쓸 리는 없을 것이다. 그렇다면 농림수산식품부 장관이나 쇠고기 협상단이 제대로 협상을 했는데도 부당한 비난을 받았다는 것을 입증해야 하는데, 결코 쉽지 않아 보인다. 협상을 잘했다면 대통령이 두 번이나 나서서 사죄를 하고 내각 총사퇴라는 엄청난 쇼를 벌인 끝에 결국 용두사미 격이 된 7·7 소폭개각에 농림수산식품부 장관이 포함된 이유를 설명하기가 마땅찮다.

둘째는 검찰 수사팀이 주시하고 있다는 피디수첩의 의도성 여부다. 피디수첩 취재팀이 유도질문을 해서 사실을 왜곡했는지 살펴보겠다는 것이다. 피디수첩이 어떤 방식으로 취재를 했는지 알 수는 없지만 의도가 없는 취재란 게 있을 수 있을까? 유도질문은 취재원의 상황에 따라서는 중요한 취재기법이 될 수 있다. 수습기자 시절 귀에 못이 박히도록 듣는 잔소리 가운데 하나가 ‘너 관보 기자냐’라는 힐난이다. 1980년대 중반 박종철 고문치사 사건이 터지자 경찰은 “탁하고 치니까 억하고 죽었다”고 발표했다. 이것을 그대로 썼다가는 기자 생활은 끝이다. 취재를 직업으로 삼은 사람은 이리저리 찔러보고 다각도로 취재한 뒤 그 의미가 무엇인지 종합적으로 판단한다. 질문 하나하나의 의도를 따지고 든다면 언론의 존립기반 자체가 허물어진다.

셋째, 검찰의 의도 여부다. 명예훼손 혐의라고 하면서도 당사자의 고소 없이 정부기관의 의뢰로 수사를 시작했다. 게다가 무슨 권력형 비리가 아닌데도 수사검사를 이례적으로 5명이나 투입했다. 일부에서는 이명박 정권의 방송장악 음모에 검찰이 하수인으로 나섰다고 하는데, 그런 주장을 선뜻 믿고 싶지는 않다. 하지만 검찰이 정부·여당의 ‘일벌백계’ 요구나 보수언론의 싸잡이 공세 분위기에 편승했다는 정황은 부인하기 어렵다. 보수언론의 수사 촉구몰이는 분명 넘어서는 안 될 선을 넘은 것이다. 파렴치한 행위를 저질렀거나 비리에 관련된 것이 아니라면 언론에 대한 권력기관의 강제수사는 최소한으로 억제하는 것이 맞다. 조·중·동의 두툼한 지면에 실리는 기사들도 대부분 나름의 의도를 갖고 쓰이고 제목이 붙여진다. 거기에 불만이 있는 사람들은 때로는 거친 언사를 사용하더라도 공론의 장에서 문제를 지적하지 검찰에 수사하라고 촉구하지는 않는다.

피디수첩 말고도 촛불집회와 관련된 검찰의 수사가 다방면으로 확대되고 있다. 돌아가는 국면을 보면 검찰이 수사권을 공정하게 쓰고 있는지 깊은 의심이 든다. 최근 이명박 대통령의 비비케이 사건을 심리하는 담당 판사한테 국정원 직원이 전화를 걸어 재판 진행 상황을 묻고, 법정에 들어와 신분을 위장하는 거짓말을 하는 충격적인 사건이 벌어졌다. 제대로 된 검찰이라면 최소한 경위는 알아봐야 할 것이다. 그런 움직임이 전혀 들리지 않으니 검찰의 의도를 생각하게 된다.


김효순 대기자hyoskim@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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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로운 발바닥 2008-07-14 11:2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검찰의 피디수첩 수사는 아무리 선해하려고 해도 구린 냄새가 난다. 일부 오역이 있었는지도 모르겠다. 그리고, 그것으로 인하여 촛불집회가 결정적으로 확산되는 계기가 되었는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그것이 왜 형사처벌의 대상인지? 누구의 명예가 훼손되었는지?

정부의 정책을 비판적으로 보도하는 언론에 되지도 않을 명예훼손의 법리를 씌워 검사를 5명이나 배정하여 수사하는 지금 검찰의 현실은 과거 20여년전 검찰의 행태로 되돌아간 것 같아 씁슬함을 지울 수가 없다. 언제나처럼 수사기관은 정관이 바뀜에 따라 변신도 빠른 것 같다...
 

그들이 "미안하다"를 되뇐 까닭은?
  [왜 삼성은 프레시안을 겨냥했나 ⑥] '삼성 신화', 실체를 폭로한 사제단
 
  2008-03-13 오전 8:02:39

지난 5일 천주교정의구현사제단은 김성호 국가정보원장 내정자와 이종찬 청와대 민정수석, 황영기 전 우리은행장이 금품 수수 등 삼성의 관리 대상 인사라고 폭로하면서 "명단 공개의 해당자가 되신 분들에게 지극히 미안한 마음을 전한다"고 했다. 이를 듣는 기자들 사이에선 슬핏 웃음이 나왔지만 성명을 읽는 전종훈 신부의 목소리는 낮고 진솔했다.
  
  보통의 '폭로' 기자 회견에서는 비리를 저지른 당사자에게 '미안하다'고 사과하지 않는다. 불법과 탈법을 일삼으며 법망의 밖에 있는 사람을 고발하면서 굳이 '미안하다'고 사과할 필요가 없다. 그러나 사제단은 '미안하다'고 했다. 그들이 '미안하다'고 되뇐 까닭을 알아야 왜 신부들이 삼성 비자금 조성을 고발하는 기자 회견에 나섰는지 알 수 있다.
  
  "'3차원적 권력'이 된 삼성"
  
  한국방송(KBS) 1TV <KBS스페셜>은 지난 8일 방영된 '삼성 트라우마, 우리에게 삼성은 무엇인가' 편에서 흥미로운 여론조사 결과를 발표했다.
  
  전국 19세 이상 남녀 1000명을 대상으로 실시한 여론조사에서 '삼성이 흔들리면 국가 경제도 위태롭다'는 주장에 공감하느냐를 물었더니 '공감한다'는 응답이 총 77.3%(매우 공감 28.8%, 대체로 공감 48.5%)에 달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 <KBS스페셜>여론조사 결과 화면ⓒKBS

  또 '삼성그룹의 경영권 승계에 대한 인식'을 묻자 '불법 상속이 드러났다면 승계를 용인해서는 안된다'는 의견이 36.6%, '합법, 불법에 관계없이 경영권 승계에 반대한다'는 의견이 8.6%를 차지했지만 '이사회, 주주총회의 결정에 맡겨야 한다'(35.3%), '경영권 보호를 위해 어느 정도 위법은 문제삼지 말아야 한다'(17.8%)는 대답도 상당수에 이르렀다.
  
  이에 대해 애나 파이필드 <파이낸셜타임스> 서울지국장은 "한국이 곧 삼성이고, 한국과 삼성은 한데 얽혀있다는 신화가 존재한다"고 분석했다. 전규찬 한국예술종합학교 교수도 "삼성의 비리나 모순을 외부에서 개혁하는 데에 이성적으로는 동의하지만 정서적으로는 반대해 결과적으로 삼성이 지켜지는 묘한 결과가 빚어지고 있다"고 분석했다.
  
  실제로 '삼성 비자금 특검으로 삼성이 흔들린다'는 주장은 삼성 측이 중심이 되어 유포하는 것일 뿐, 별다른 근거도 없다. <KBS스페셜>은 증권 애널리스트의 말을 인용해 "가장 민감한 주식시장에서도 삼성 관련주는 흔들림이 없고 오히려 특검 시작 이후 상승세"라며 "특검에 따른 삼성 주가 변동은 거의 없고, 있다고 해도 장기적으로 주가를 결정한 변수는 아니다"라고 분석했다.
  
  <KBS스페셜>은 한국 사회에서 삼성의 지위는 '경제적 위세'보다는 이를 확대 포장한 '신화화된 권력'의 힘으로 유지되고 있다는 분석을 전했다. 미국의 사회학자 스티븐 룩스는 이를 "3차원적 권력"으로 규정했다. 그는 "3차원적 권력은 사람의 의식까지도 권력자들의 이익에 유리한 방향으로 이끌 수 있는 최고의 권력"이라며 "진정한 권력의 방식은 손가락 하나 치켜들지 않아도 사람들이 자신의 이익에 순응하도록 만드는 것"이라고 말했다.
  
  삼성과 '공동정범'의 한국사회, 사제단의 일침
  
  이러한 분석은 김용철 변호사와 천주교정의구현사제단이 삼성그룹의 비자금 조성 의혹을 폭로할 때마다 우리 사회가 보인 신경질적인 거부감을 잘 설명해 준다. 또 한발 더 나아가면 어느새 한국사회가 삼성과 '공동정범' 관계에 놓이게 됐음을 보여주는 것이기도 하다.
  
  사제단은 지난 5일 청와대 금품수수 인사 명단을 폭로하면서 이 점을 바로 지적했다. 이들은 "오늘의 부패상은 지도층 뿐 아니라 모든 국민이 책임져야 할 문제라는 점을 성찰하시면서 상대방에게 미움이나 원망을 돌리는 일이 없이 저마다 영혼의 내면을 살피는 계기가 되길 바란다"고 당부했다.
  
  결국 삼성이 '일개 기업'과 한 사회의 법과 질서를 좌우하는 '왕국'의 수준을 넘어 사람들의 의식까지 흔드는 '신화화된 권력'에 이르렀다는 현실이 사제단을 움직이게 만든 셈이다. 사제단은 단순한 기업의 비리가 아니라 한국 사회에 만연한 '미신'을 폭로했다.
  
▲ 5일 서울 노원구에 있는 천주교 수락산 성당에서 열린 기자회견에서 사제단은 이종찬 대통령실 민정수석, 김성호 국정원장, 황영기 전 우리은행장이 '삼성의 관리 대상'이었으므로 공직을 맡아서는 안된다고 주장했다. ⓒ프레시안

  삼성의 '공동정범'인 사회에서 삼성의 비리를 폭로할 수 있는 곳은 사제단 밖에 없었다. 김용철 변호사가 사제단을 찾아가기까지의 과정이 이를 잘 보여준다. 김 변호사는 사제단을 찾아가기 전 KBS, 문화방송(MBC), <조선일보> 등을 찾았으나 모두 '삼성과 싸울 수 없다'며 제보를 거절했고 여타 삼성 문제를 다룰 만한 몇몇 시민단체들도 역시 '힘들다'는 답변만 내놨다고 한다.
  
  이는 꼭 20년 전 1987년 5월에도 박종철 고문치사 사건이 조작됐다고 발표하면서 민주화의 횃불을 올렸던 것을 연상시킨다. 공교롭게 김용철 변호사를 처음 만난 사람은 20년 전 고문치사 사건 진실 폭로를 주도했던 함세웅 신부였다. 함세웅 신부는 "김용철 변호사의 양심고백을 발표하며 1987년 5월 박종철 고문치사 사건이 조작됐다고 발표할 때의 두려움과 떨림이 있었다"고 말했다.
  
  그러나 정치권과 언론에서는 사제단의 고발을 흠집내기에 여념이 없다. <중앙일보>를 필두로 <조선일보>, <동아일보> 등의 보수신문들은 늘 사제단에 "찔끔찔끔 내놓지 말고 한번에 다 공개하라"고 요구한다. <중앙일보>는 지난 5일 청와대 금품수수 명단 공개에 사설에서 "사제단은 정의가 아니라 정치를 하고 있다"고 맹비난 하기도 했다.
  
  이에 대해 김인국 신부의 답변은 간명하다. 그는 "다 내놓으면 삼성 측에서 수사 기관에서 말할 거짓말을 다 만들어 놓을 텐데 왜 우리가 다 내놔야 하느냐"며 "우리가 리스트를 전부 공개하면 당사자들은 엄청 창피해 할 텐데 그런 모욕은 주고 싶지 않다"고 답했다. 이러한 신문들의 시각과 달리 사제단의 목적은 '삼성을 올바르게 개혁하는 것'이지 개개인을 '징벌' 하려는 것이 아니라는 답변이다.
  
  "영혼을 판 사람들, 부끄러운 줄 알아야"
  
  사제단에서 대변인 역할을 맡고 있는 김인국 신부는 <프레시안>과의 인터뷰에서 "1조 원을 가진 사람에게 1억 원은 얼마겠느냐"는 도발적인 질문을 던졌다. 그는 "1만 원" 이라고 자답하면서 "1조 원 가진 사람에게 1억 원을 받은 사람들은 1만 원에 영혼을 판 사람들이다. 부끄러운 줄 알아야 한다"고 했다.
  
  이 질문은 한국 사회는 무엇에 영혼을 팔았느냐는 질문으로 확대된다. <경향신문>과 <한겨레>의 광고 게재 거부에 대해 다른 언론들은 일언반구 보도 하지 않을 정도로 언론은 광고에 영혼을 팔았고, 법조계는 소위 '떡값'에 영혼을 팔았다. 그리고 일반 시민마저도 집단적으로 과장된 삼성 신화, 3차원적인 권력에 영혼을 팔고 있는 것은 아닐까.
  
  사제단 신부들은 이런 '영혼'을 팔아넘기려는, 아니 넘긴, 한국 사회를 고발하고자 나섰다. 그들이 개개인을 응징하고자 하는 게 아니라 한국 사회의 각성을 촉구하고 있다. 그들이 비리 의혹의 당사자에게 굳이 "미안하다"는 말을 잊지 않은 것은 바로 이때문이다.
  
  자, 이제 우리는 그 사제단 신부의 행동에 어떻게 화답해야 하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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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유아 수준 영어로 뭘 하겠단 말인가?"
  [인터뷰] 한국문학번역원 윤지관 원장
 
  2008-03-10 오전 8:07:23

 "영어를 한마디도 못하더라도 자기 존재의 충일함을 견지하고 실현하는 데 도움을 주는 교육이 영어 지배의 세상일수록 더욱 중요하다."
  
  이명박 정부의 영어 교육 정책을 둘러싼 논란이 계속되고 있다. "모든 학생이 고등학교만 졸업하면 기본 생활 영어로 대화할 수 있도록 하겠다"고 공언한 새 정부 영어 교육 정책이 현실적으로 가능하냐는 문제를 떠나 목표 자체를 수정해야 한다는 비판도 이어지고 있다. '영어 회화'를 목표로 삼은 교육정책은 이른바 '국제화 시대'라 불리는 현대 사회에서 너무나 뒤떨어진 발상이라는 것이다.
  
  영어학자들은 사실 이 같은 논란이 갑자기 튀어나온 게 아니라고 지적한다. 이미 오랫동안 이 문제를 고민해온 학자도 꽤 있다. 이명박 정부의 영어 교육 정책을 비판하는 듯한 위의 발언은 이미 지난 2001년 한 학술지에 실렸던 글이다.
  
  당시 이 글을 썼던 덕성여대 윤지관 교수(영문학과)는 지난해 일군의 영어학자와 함께 <영어, 내 마음의 식민주의>(당대 펴냄)라는 제목으로 한국 사회와 영어와의 관계를 짚는 글들을 엮은 책을 펴냈다. 1990년대 후반~2000년대 사이에 쓰여졌던 이들의 주장은 영어 열풍이 더욱 심해진 요즘, 더욱 설득력을 갖고 다가온다.
  
  최근 윤지관 교수의 이름은 전혀 다른 사안으로 여러 언론에 보도되기도 했다. 그가 원장으로 재직 중인 한국문학번역원에서 오는 9월 개원을 목표로 준비 중인 번역아카데미 때문이다. 현재 한국 문학 작품을 외국어로 번역할 수 있는 외국인 번역가는 고작 81명. 번역아카데미를 통해 10년간 300명의 외국인 전문 번역가를 길러내겠다는 번역원의 목표는 지금껏 우리나라의 외국어 정책이 얼마나 불균형적이었는지 보여주는 단적인 사례다.
  
  지난 3일 서울 강남 한국문학번역원에서 윤지관 원장을 만나 현재 영어교육 논란에 대한 입장을 물었다.
  
  "말만 가르치는 교육으로는 '문맹' 벗어날 수 없다"
  

▲ 윤지관 한국문학번역원 원장. ⓒ한국문학번역원


  "실용영어를 비판할 건 없다. 그런데 실용영어라는 관념을 만들어서 거기에 지나친 의미를 부여하는 것은 문제다."
  
  윤지관 원장은 '실용영어'를 강조하는 최근의 흐름을 놓고 "언어를 실용과 비실용적 언어로 구분하는 것 자체가 이분법적인 사고"라며 우리나라 영어 교육의 문제점을 지적했다. 일반적으로 한국 사회에서 영어 교육은 '실용영어'와 '교양영어'로 구분돼 왔다. 기존 독해 위주의 교육은 '교양영어'로 통칭되면서 회화 능력이 떨어진다는 지적이 잇따르자 말하기·듣기 위주의 교육이 강화됐다. 이를 '실용영어'라고 불렀다.
  
  윤 원장은 "언어에 실용성만 있다고 생각한다면 아주 낮은 차원, 의사소통 차원에서만 언어의 역할을 한정하는 것"이라며 "그것을 언어 정책의 전부로 삼는 것은 문제가 있다"고 말했다. 그는 "영어 회화, 말하기·듣기가 부족하니까 보완하는 교육제도가 필요하다는 것은 교육자라면 누구나 과제로 삼고 있다"며 "그러나 교육의 목표를 그렇게 설정하는 것이 곧 올바른 언어 정책은 아니다"라고 지적했다.
  
  영어 회화가 강조되는 풍토가 조성된 뒤 대부분 대학에서는 기존 교양영어 강의를 회화 위주의 실용영어 강의로 전환했다. 영어로 의사소통을 못하기 때문에 국제사회에서 경쟁력이 떨어진다는 논리가 전사회적으로 널리 퍼지고 있는 사회적 분위기와 맞물려서였다. 이에 대해 윤 원장은 "어느 정도는 맞다. 그러나 말하고 듣는 것이 영어 실력의 전부가 되는 건 아니다"라고 말했다.
  
  "어린애들이 유식한가? 책을 읽고 문제점도 볼 줄 알아야 경쟁력이 생기는 것이다. 내용은 대충 이해하고 말만 잘 한다고 해서 경쟁력이 생기는 게 아니다. 즉 콘텐츠를 제대로 이해해야 한다. 그래야 문맹을 벗어나는 것이다. 말을 잘한다고 경쟁력이 생긴다는 주장은 참 피상적인 관찰이다. 날씨, 길찾기 등 생존 영어 수준에 촛점을 맞춘 교육이 위주가 되면 정작 필요한 고급 영어를 구사해야 하는 사람까지 길러지지 않게 된다."
  
  "제2외국어 포기하는 외국어 정책은 더 큰 문제만 낳을 뿐"
  
  윤지관 원장이 지적한 우리나라 영어교육의 또다른 문제점은 '영어의 물신화'였다. 그가 말하는 '물신화'는 곧 "영어로 출세하는 사회"다. 그는 이미 2001년의 글에서 우리나라의 영어 광풍을 '영어 숭배'라고 묘사한 바 있다.
  
  "프랑스어에 접근하는 정도에 따라 자신의 식민지적 정체성을 탈각해 서구인에 접근할 수 있다고 착각했던 당시 마르티니크 사람들이 '자기의 땅'에서 유배당한 셈이라면, 영어에 대한 숭배에 빠져 모국어가 자신의 삶에서 가지는 의미조차 망각하는 사람들은, 김남주 시인의 의역을 빌리자면 '자기의 언어에서 유배당한' 것이다. 이산이 하나의 흐름을 이루는 세계화의 시대이지만, 누가 강제한 것도 아닌데 자신의 땅에서 스스로를 이산의 올가미에 빠뜨리는 것이야말로 은밀하게 진행되는 식민화 과정의 한 극점이라고 해야 할 것이다."
  
  윤 원장은 인터뷰에서도 "한국의 영어 물신화가 점점 더 심해지고 있다"며 "마치 명품에 대한 숭배처럼, 그것을 '가지게' 됐을 때 얻는 심리적 만족감 같은 것에 불과하다"고 꼬집었다. 그는 "언어를 언어 그대로 봐줘야지 너무 과잉된 의미를 부착시키는 건 잘못"이라며 "소통하기 위한 외국어를 물신화하는 것에서 외국어 공부의 왜곡이 시작된다"고 지적했다.
  
  "외국어는 소통하기 위한 것이다. 즉 우리 자신의 언어를 잘 가꿔야 소통을 통해 전달할 수 있는 '콘텐츠'가 생기는 것이다. 한국어를 진작하는 정책을 펴면서 영어를 잘하자고 하면 말이 된다. 그런데 영어를 잘하기 위해선 국어가 어떻게 되도 좋다, 심지어 영어를 국어로 하면 어떻겠냐는 주장까지 나온다. 우리 자신의 정체성, 자기 자신의 혼을 넘겨 버리는 것과 다름 없다. 자기 삶의 콘텐츠를 상실하는 것이다."
  
  영어에 대한 숭배는 국어 교육을 소홀히 하는 현상뿐만 아니라 다른 외국어까지 외면하는 풍토를 낳았다. 대학가에서 프랑스어, 독어, 러시아어과 등 소위 제2외국어 학과가 전멸 위기에 처한 건 이미 오래전 일이다. 윤 원장은 "언어 정책에 투여할 수 있는 자원이 한정돼 있는 데 비해 영어에만 지나치게 투자를 해서 다른 언어를 죽이면 오히려 문제는 더 커진다"며 "각국 언어에 각각 관심을 기울이는 식으로 정책이 변형되야 한다"고 지적했다.
  
  이는 번역계의 인력난과도 직결된다. 윤 원장은 "과거 프랑스어, 독일어 등이 대학에서도 제법 인기가 높았을 때 배출된 인원이 있어 지금까지는 (번역계가) 그럭저럭 버텼다"며 "다들 영어만 하면 된다는 분위기 속에서 자연히 그런 인력이 급격하게 줄어들고 있고, 앞으로는 제2외국어 전문인력도 점점 사라질 것"이라고 우려햇다.
  
  "상거래에 필요한 회화? 중요하지만 국력 기울일 문제 아니다"
  
  윤 원장은 영어 물신의 풍토 속에서 우리 사회가 간과하는 것은 '우리만의 콘텐츠'를 확보하는 일이 얼마나 중요한 것인가에 대한 문제라고 지적했다. 그는 "이것은 번역원의 이념이기도 하다"며 "판매 차원을 넘어 우리가 도달한 문화적 성취를 교환하고 의견을 나누는 근거를 마련하기 위해서는 민족문화를 키우고, 번역을 통해 이를 해외에 전달하고, 동시에 해외 문화를 번역해 흡수하는 일"이라고 말했다.
  
  "우리에게 콘텐츠가 없다는 비판이 있다. 그러나 사실 우리 문화 속에 콘텐츠가 깔려 있는데 그걸 개발할 수 있는 창의력이 없다는 게 진짜 문제다. 아무리 영어를 잘한다고 해도 그 속에 담을 우리만의 콘텐츠가 없으면 경쟁력은 없는 것과 마찬가지다. 영어 교육도 마찬가지다. 영어 속에 있는 내용을 읽어내는 능력을 기르는 게 아니고 상거래 수준에서 필요한 영어 회화만 계속 하면 콘텐츠를 생산하기는 힘들다. 물론 의사소통도 중요하지만 국력을 기울여서 할 문제는 아니다. 오히려 부작용만 생긴다."
  
  "번역·해외 인적자원 개발에 대한 투자가 진짜 '선진화'"
  
  윤지관 원장은 "영어를 온 국민이 할 정도로 되지도 않겠지만, 투여한 것에 비해 나오지 않을 것"이라며 "오히려 굉장히 비실용적인 면이 많을 것이다"라고 분석했다. 그는 국제사회에서 경쟁력을 기르기 위해서 국가적 차원의 역량이 투여돼야 할 곳은 다른 데에 있다며 '발상의 전환'이 절실하다고 주장했다.
  
  "해외 인적자원을 개발해서 한국어를 익히게 하고, 우리 문화의 전파사가 되도록 길러내는 일이 중요하다. 그런 것이 깊은 차원에서 실용적인 정책이 될 수 있는 것이다. 당장 물건을 파는 것 못쟎게, 우리 문화, 우리의 콘텐츠를 소개할 사람들이 해외에 자리잡고 있어야 하지 않나. 실용의 의미에 대해 더 깊은 연구와 판단이 필요하다. 10년 이상을 내다보고 실용성의 기반을 구축해야 하는 것이다."
  
  이는 곧 한국문학번역원이 준비하고 있는 번역아카데미의 설립 목적이기도 하다. 오는 9월 2년 정규 과정(주간)으로 신설되는 번역아카데미는 매년 영어·독일어·프랑스어 등 주요 언어권별로 2∼3명씩 모두 30명 가량을 모집해 전문 번역가를 양성할 계획이다. 중국어 22명, 영어 17명, 프랑스어 7명, 독일어 4명 등 81명에 불과한 외국인 전문 번역가로는 한국 문학의 세계화가 더디기만 할 것이라는 판단에서다.
  
  문제는 해외 인력뿐만 아니다. 사회적으로 외국 문학 작품, 또는 문화 상품을 들여오는 데 반해 우리 문화를 '수출'하는 것에 대한 관심은 현저히 낮았다. 윤 원장은 진정한 '선진 사회'가 되기 위해서는 번역에 대한 사회적 관심이 지금보다 훨씬 높아질 필요성이 있다고 강조했다.
  
  "정책입안자들부터 일단 번역은 2차적인 일, 허드렛일로 생각하는 습관이 아직까지 있다. 또 학술적인 업적으로도 잘 인정되지 않는다. 오히려 논문 한편 쓰는 것보다 책 한 권을 번역하는 일에 더 많은 노고와 지식을 쏟아야 하는데 논문 한편 쓴 것 정도, 혹은 그 이하로 평가된다."
  
  윤 원장은 "번역은 세계화에서 가장 핵심적인 도구"라며 "도구인 만큼 잘 해야 하는 것인데도 불구하고 사회적 투여는 너무나 적다"고 비판했다. 번역에 기울이는 투자는 외국 상황과 비교하면 상당한 차이가 있다. 윤 원장은 "1970~80년대 일본 이상의 국력을 갖췄는데도 불구하고 우리나라 번역계의 현실은 그 당시 일본보다도 뒤떨어진다"며 "일본이 노벨상을 거저 받은 게 아니다"라고 지적했다. 우리나라에 번역원이 생긴 것도 지난 2001년으로 약 7년이라는 짧은 역사를 갖고 있다.
  
  윤 원장은 마지막으로 "번역이 제자리를 찾을 수 있는 기반을 세우는 데 협조를 해달라"며 "새 정부가 들어섰기 때문에 의욕적으로 그런 일들을 판단할 것이라 본다. 기대를 걸고 있다"고 덧붙였다.

강이현/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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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로운 발바닥 2008-03-10 14:2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영어 물신의 풍토...대통령부터 조장하다니 더욱 가속도가 붙을 것 같다. 이런 ㄷㅈ
 

   
  [기고] 謹弔 민주노동당
 
  2008-02-04 오전 9:39:39

 

예상했던 결과다. 비상대책위원회의 혁신안은 불필요한 수순이었지만, 아무 의미도 없었던 것은 아니다. 대중의 눈앞에 이른바 '자주파'의 정체를 그대로 보여주었기 때문이다. 제 당의 상황을 CD로 구워 북한 공작원에 넘겨주는 해당 행위를 해도, 민주노동당에서는 결코 제명당하지 않는다. 이른바 자주파는 그냥 당기위에 올려 조금 제재나 하자는 자기들 측의 중재안까지도 부결시켰다.
  
  1.
  
  아쉬운 것이 있다면, 이른바 평등파들이 퇴장하면서 다음 안건 하나가 의결 정족수 부족으로 상정되지 못한 것이다. 그것은 바로 북핵자위론을 주장했던 어느 간부에 대한 징계안이다. 하지만 혁신안의 대부분의 내용이 부결되었으므로, 설사 의결이 이뤄졌어도 징계안은 부결되었을 것이다. 다시 말하면, 북한이 핵무기를 개발하는 게 정당하다는 것이 민주노동당의 공식 입장이라는 얘기다.
  
  비대위에서 혁신안 부결을 불신임으로 간주한다고 했는데도 부결시킨 것을 보면, 입에 '대동단결'을 달고 사는 그들도 충실한 종북이라는 원칙(?)이 문제가 되면, 대동단결을 안 하고 싶은 모양이다. 박용진 전 대변인이 '혁신안이 부결되면 당이 깨진다'고 울먹이며 호소를 해도, 종북파들의 태도는 단호했다. 당을 깨면 깼지, 북핵의 정당성과 '본사'에 보내는 보고의 의무만은 양보할 수 없다는 것이다.
  
  그래도 이 태도의 분명함은 평가해줄 만하다. 사실 내가 걱정했던 것은 이들이 대충 혁신안을 받아들여 사태를 무마한 후, 숨을 고르다가 기회를 봐서 다시 튀어나와 이제까지 했던 짓을 계속하는 것이었다. 이번에 자신들의 색깔을 명확히 드러냈으니, 앞으로도 대중들 앞에서 거짓말하지 말고, 제 정치적 목표와 정체성을 숨김없이 분명히 밝히기 바란다.
  
  '종북노선이 문제가 아니라 패권주의 문제'라는 의견도 있다. 종북노선과 패권주의의 관계를 몰라서 하는 얘기다. 주사파들이 패권적 행태를 하는 목적이 무엇인가? 바로 종북노선의 관철을 위해서다. 당내에서 자신들의 종북행위에 제동을 거는 세력이 존재하니, 그것을 제거하기 위해 벌이는 작태가 바로 패권주의가 아닌가. 따라서 종북노선이 존재하는 한 패권주의는 영원할 수밖에 없는 것이다.
  
  2.
  
  손석춘 씨가 "통일운동에 찬물 끼얹지 말라"고 했던가? 북한에서 핵무기 만드는 것을 옹호하는 것이 그가 원하는 '통일운동'이라면, 그런 통일운동에는 앞으로 찬물이 아니라 똥물을 끼얹을 것이다. 그는 또 '인간에 대한 예의'를 말한다. 그의 독특한 윤리 감각에 따르면, 제 동지들 신상 파악해 북한에 보내는 것은 '인간에 대한 예의'이고, 그걸 비판하면 인간에 대한 예의를 져버린 패륜 행위다.
  
  옆에서 김민웅 씨도 거든다. 내 기억에 2002년인가? 제 동생이 서울시장 선거에 나왔을 때, 한나라당이 집권하면 전쟁난다며 민주당에 표를 몰아달라고 해서, 나와 설전을 벌였던 것으로 기억한다. 전쟁 위기까지 고취하며 민주노동당에 표주면 사표가 된다고 했던 그가 무슨 심경의 변화가 있었는지 갑자기 민주노동당에 대한 살가운 애정을 드러낸다. 그새 그의 머릿속에서는 어떤 일이 있었을까?
  
  종북파의 정체를 몰라서 그런 발언 했다면 용서가 되겠지만, 그들을 접해 본 수많은 사람들이 이미 상황을 설명해주었고, 이번 대회에서 종북파의 정체가 명확히 드러났는데도 앞으로 계속 이 그들의 행태를 옹호하고 정당화한다면, 앞으로는 좌시하지 않을 것이다. 그에게는 종북파에게 갖춰야 할 인간적 예의가 있겠지만, 내게는 통일 되는 날 김정일 정권 아래 고생했던 북조선 인민들에 갖춰야 할 인간적 예의가 앞서기 때문이다.
  
  3.
  
  굶주린 북한 주민들이 먹을 것을 찾아 압록강을 건너다가 익사했다고 하자, 태연히 "남한에서도 여름에 익사 사고 나지 않냐"고 대꾸하던 이들. 동성애에 대해 묻자 버젓이 "자본주의적 퇴폐"라고 대답하던 이들. 북한에 갔을 때 안내원에게 노래를 하나 불러달라고 하자 지도원 동무에게 허락을 받고 노래를 하더라며, 이를 "집단주의의 미덕"이라고 찬양하는 이들. 미선이 효순이 끔찍한 사체 사진을 연하장(?)만들어 돌리는 이들. 이런 이들하고 같이 '진보'를 한다는 게 말이 되는가?
  
  몇 년 전에 내가 당에 절대로 주사파를 받아들이면 안 된다고 강력하게 주장했을 때, 민주노동당 내의 모 인사가 "그들도 언젠가 변할 것"이라며 주사파들과 나의 화해(?)의 자리를 주선한 적이 있다. 그때 만난 주사파는 내게 자신이 주위 사람들에게 자신이 어떤 민주노동당 가입을 권유하는지 자랑을 했다. "동지, 김 주석이라면 이 상황에서 무엇을 했을 것 같소. 내 생각에 김 주석이라면 남조선 상황에서는 민주노동당을 했을 것이요."
  
  도대체 이런 사람들하고 진보정당을 같이 해야 한단 말인가? 그때 내가 얼마나 참담했겠는가. 종북주의자들이 온갖 편법으로 민주노동당의 조직을 장악해 들어와도 징계 하나 제대로 못하는 것을 보고, 나는 이미 당시에 민주노동당에 대한 기대를 접었다. 그때 내가 탈당으로써 경고했던 일이 지금 현실로 나타난 것이다. 운동을 해 봤다는 사람들이 결국 이렇게 될 줄 몰랐다는 말인가? 이것도 이해가 안 간다.
  
  이른바 평등파도 한때 망해가던 소련을 모델로 삼은 적이 있지만 동구의 몰락을 보고 생각을 바꾼 것처럼, 북한을 모델로 삼는 자주파도 언젠가 생각을 바꿀 것이다. 이게 많은 사람들의 생각이었다. 하지만 '그들도 언젠가 변할 것'이라는 기대는 주사파의 본질을 모르는 얘기다. 주사는 이성이 아니라 신앙의 문제. 어떤 경험적 증거, 어떤 정합적 논리, 어떤 상황적 변화를 들이대도 깨지지 않는 것이 신앙의 본질이다.
  
  4.
  
  오늘로써 민주노동당은 죽었다. '본사'와 연락을 방해하던 세력이 다 나갈 터이니, 이제 이름도 자기들이 애초에 원하던 대로 '민족자주당'으로 바꾸는 게 어떨까? 그들은 드디어 원하던 것을 손에 넣었다. 그들에게 축하의 말을 보내는 바이다. 앞으로 '본사'와 더 긴밀한 협력 아래 '조국은 하나다', '당과 인민도 하나다' 철학을 힘차게 구현해 나가며, 앞으로 진보진영과 아무 관계만 없어 주기를 바란다.
  
  '북한에 정말 아사자가 생겼는가?' '아니면 미제의 공화국 모략 선동인가?' '북한의 핵무기가 정당한가?', '북조선에서는 정말 당과 인민이 하나인가?' '그래서 조선노동당을 비판하면 곧 북조선 인민을 모독하는 것이 되는가?' 이젠 이런 말도 안 되는 주제로 논쟁하느라 정력 낭비할 필요가 없다. 그들은 평생 그렇게 믿고 살다가 죽게 내버려두고, 거기에 동의하지 않는 이들은 21세기 디지털 시대를 여는 창의적이고 생산적인 의제를 향해 진보를 하면 그만이다.
  
  민주노동당의 분열을 끝까지 막아보려고 남아 있었던 이들. 당신들의 생각과 충정을 존중한다. 하지만 이제 모든 것이 분명해졌으니, 더 이상 쓸 데 없는 노력을 접고 진정으로 현대적인 새로운 진보정당을 건설하는 길에 나서라. 그리고 자신이 최소한 주사파는 아니라고 생각하는 이들, 남한의 진보정당이 최소한 조선노동당의 지사여서는 안 된다고 생각하는 이들도 이제 미련을 털기 바란다.
  
  진보정당을 재건하는 과제가 생겼다. 다시 시작하려니 모든 것이 막막할 것이다. 하지만 8년 전의 상황을 기억해 보라. 그때는 지금보다 더 절망적이었다. 운동권 내에서 변화와 혁신을 거부하는 수구세력에 대한 기대는 접어버리자. 그리고 앞으로 진보정당의 새로운 토대가 될 이들에게 눈을 돌리자. 사회에 진보적 역량은 충분하다. 그 역량은 이제까지 낡은 운동권 방식, 낡은 주사파 형식으로 표현되기를 거부해왔을 뿐이다.
  
  이미 수많은 이들이 새로운 진보정당에 참가할 뜻을 밝혔다. 남한의 진보운동이 드디어 거추장스런 주사파의 족쇄를 풀어버렸다. 몇 년 전에 버렸던 진보정당의 당원증 다시 주워들고 싶다. 오랜 세월이 걸릴지도 모르는 힘든 길이다. 하지만 진보하기를 포기할 수 없다면, 끝을 알 수 없는 길이라 하더라도 걸음은 내디뎌야 한다. 거대한 위기는 동시에 위대한 기회다. 건설될 새로운 진보정당에 입당을 신청한다.

진중권/중앙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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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적 대타협? 삼성을 보세요"
  [정치와 사람들① 진중권] "지지하는 대선후보는…오바마!"

2007년 대선 정국이 요동치기 시작했습니다. '정초(定礎)선거'라고 말들을 하지만 미래에 관한 이야기는 눈에 별로 띄지 않는 역설적 특징이 지배합니다.
  
  지식인들은 이런 정치현실을 개탄하면서도 말을 아끼고, 대중들은 아직도 마음줄 곳을 찾지 못해 부유합니다. 은퇴한 '올드보이'들의 컴백, 각 세력들의 '묻지마 이합집산'이 그 틈을 비집고 활개를 칩니다. 40일이 채 남지 않은 올해 대선은 아마도 그런 재미없는 이야기들이 줄거리를 엮지 않을까 싶어 걱정입니다.
  
  우리사회 각 분야에서 나름의 '눈'을 가진 인사들의 '입'을 통해 현재를 진단하고 미래를 전망해보려 합니다. 권력교체기의 정치란 현역 정치인들만의 전유물은 아닐 것이기 때문입니다. <정치와 사람들>은 그런 취지에서 기획됐습니다. 선거, 그리고 우리사회의 변화에 대해 독자 여러분들도 한번쯤 생각해 볼 기회가 되기를 바랍니다.<편집자>
  
  진중권 중앙대 겸임교수처럼 대중들의 호오가 뚜렷하게 갈리는 지식인도 드물다. 그에겐 '팬'이 많다. 동시에 그를 아주 미워하는 사람도 많다. 그는 두 가지 장점을 가진 사람이다. '합리성'과 '풍자'.
  
  박정희, 수구 냉전주의, 마초이즘, 기독교 근본주의, 좌파 내 전체주의적 경향, 황우석…. 지난 몇 년간 진 교수가 상대한 우리 사회의 우상들이다. 상식과 합리의 가치가 걸린 싸움터엔 항상 그가 있었다. 논리와 풍자로 담금질한 언어의 검을 날렵하게 휘두르며 상대를 제압했다. 그에 대한 상찬과 증오는 그런 전투의 결과다.
  
  정치평론에서도 일가견이 있는 그이지만, 처음 인터뷰 요청을 받고는 거절 의사를 밝혔다. "정치평론에선 은퇴했다. 정치 얘기는 안 한다"는 것이었다. 그래서 제안을 수정했다. 문화 평론에 초점을 두고 우리 사회를 진단해보자고 했다.
  
  그는 황우석 사태와 '디 워' 논란에서 우리사회 '대중'들의 정신적 단면을 읽었다. 딱 떨어지는 정치 얘기가 아니어도 '대중의 욕망'에 기반해 그가 읽어낸 황우석과 심형래, 이명박 현상은 엄연히 정치적이다.
  
  지난해 이명박 후보의 지지율이 한참 치솟을 때 논평가들은 "불가사의하다"고 했다. '합리적인 설명'이 불가능하다는 것이다. 왜? 이유는 단순하다. 유권자들의 판단이 합리적이지 않기 때문이다. 사람들은 왜 합리적으로 판단하지 않을까? 진 교수를 '정치 인터뷰'에 초대한 이유다.
  
  황우석, 심형래, 이명박의 공통점
  
  "제 관심도 거기에 있어요. 별 볼 일 없는 영화 그 자체가 아니라 별 볼 일 없는 영화 때문에 대중이 동원됐고, 동원된 대중이 폭력적인 양상을 보였다는 것, 그러면서 지성을 추방하려는 경향을 보였다는 것 말이에요."
  
  진 교수가 '디 워' 논란에 뛰어든 이유다. 그다운 직설화법이다. 그는 황우석 사태와 '디 워' 논란에서 우리 사회의 병리적 징후를 본다고 했다.
  
  "대중의 독재라는 현상이 나타났어요. 대중이 몰려다니고 패악질 하는 것이죠. 영웅이 아닌 전문가 집단에 대한 불신들, 그리고 '전문가들을 타도하자'는 구호들이 나오고 있어요. 일종의 디지털 파시즘 현상이 아닌가 싶습니다. 인터넷이라는 게 대중에게 권력을 준 것이거든요. 파시즘도 일종의 대중 독재였습니다. 비슷한 현상이 디지털 버전으로, 하나의 패러디처럼 나타나는 게 아닌가 싶습니다. 물론 과거의 파시즘과 비교하는 건 뭐하지만 메커니즘은 상당히 비슷하다고 생각합니다."
  

▲ ⓒ프레시안

  왜 이런 현상이 나타나는 걸까. <문예중앙> 가을호에 실린 글에서 진 교수는 '과개발된 인터넷과 저개발된 인문성'을 원인으로 꼽은 바 있다.
  
  "지금 대중을 움직이는 이데올로기는 독재시대의 그것과 같습니다. 국가주의와 민족주의, 영웅주의에요. 첨단 매체가 과거의 수구적인 이데올로기에 철저하게 포섭된 결과 양자가 결합돼서 나타나고 있어요. 그게 문제라는 거죠. 과거에는 정권이 대중을 동원했어요. 그런데 지금은 대중들이 스스로를 동원한단 말이에요. 황우석 사태 때도 노무현 대통령은 오히려 말렸어요. 그런데 대중들이 스스로 (동원)했단 말이죠. '디 워' 논란도 마찬가지죠. 대중들의 자기 동원이라는 면에서요."
  
  사회심리적인 요인은 없을까. 대중들이 황우석 박사와 심형래 감독에게 갖는 정서적 연대감의 실체는 뭘까.
  
  "일반적으로 대중은 자신이 당한 고통과 억압의 원천을 인식하기 힘들 때 다른 방식으로 출구를 돌려버립니다. 반대급부를 얻는 거죠. 자기들 스스로 허구를 만들어요. '심형래가 약자다, 심형래가 소외 당했다, 무시 당했다'고 하죠. 그런데 이건 (심형래가 아니라) 대중들의 일상적인 체험입니다. 대중이야말로 많은 경우에 소외 당하고 억압 당하고 무시 당한단 말이죠. 이걸 심형래에 투사해버리는 거죠.
  
  심형래가 과연 소외당한 약자냐? 아니거든요. 최고의 인기 연예인이고, 소득도 가장 높았고, 대한민국 영화 제작자 중에서 가장 많은 자본을 모았고, 홍보에서도 가장 높은 미디어 노출도를 보여줬고, 대중으로부터 그렇게 사랑 받은 감독이 어디 있습니까. 그는 결코 약자가 아니에요. 심형래와 대중은 급이 다릅니다. 심형래는 스타고 대중은 스타가 아니에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대중에겐 자신의 처지를 투사할 수 있는 누군가가 필요했고, 거기에 심형래가 몇 마디 해준 말('내가 만든 건 아무도 보지 않아')이 빌미가 된 것이죠. 나머지는 대중이 만들어낸 허구입니다. 황우석 사태 때도 똑같은 레토릭이 있었어요. '황우석은 의대가 아니라 수의대다', '서울대 다른 학자들에게 왕따를 당하고 있다', '누가 황우석 박사를 도와줬느냐' 하는 식이었죠."
  
  "예를 들어, 한국타이어에서 여러 명이 죽었습니다. (원인은) 누가 봐도 뻔한 것 아닙니까. 그런데 거기서 근무하는 사람들에게 얘기해보라고 하니 얘기를 못하죠. 블랙리스트에 오를까봐. 이런 독재구조가 그대로 남아 있는 겁니다. 그리고 삼성 비자금 문제 터진 것 보세요. 그걸 폭로하기 위해 사제관에 들어가야 하는 상황입니다.
  
  대중에게는 그런 공포감이 있다는 겁니다. 평소에 겪는 이런 공포들, 이것들은 어디론가 분사돼야 합니다. 그래서 분출될 명분을 찾는 겁니다. 그러다 분출될 곳을 찾았다 하면 이제 사실이냐 아니냐는 중요하지 않게 됩니다. 허구를 구성해서 사실로 만들어 버리고 또 믿어버리고, 그렇게 해서 공격성을 분출하는 데 대한 명분으로 삼게 되는 거죠."
  
  황우석 박사, 심형래 감독의 경우와 성격은 좀 다르지만 이명박 후보도 대중들로부터 제법 오랜 기간 높은 지지를 받았다. 그 요지부동의 지지율 고공행진을 보고 사람들은 '묻지마 지지'라고 했다. 그러고 보니 세 사람은 공통점이 있다. 모두 '성공시대'를 약속한다는 점이다. 그걸 구체적인 수치로 표현한 게 300조원(황 박사), 8조원(심 감독), 747(이 후보)이다.
  
  "GDP 2만 달러를 넘었다고 하지만 양극화는 심해지고 고용의 안정성은 뚝 떨어졌단 말이죠. 사람들에겐 그에 따른 불안감이 있는 겁니다. 그래서 불안감을 해소시켜줄 누군가를 바라는 거죠. 그것만 해소시켜 준다면 도덕성이고 뭐고 아무 문제가 되지 않는다는 거예요. 이명박의 도덕성이 아무런 문제가 되지 않듯이 심형래 영화에서는 미학성이 아무런 문제가 안 되는 거예요. 돈만 벌어주면 된다는 거죠. 문제는 도덕성 없이 경제가 되지 않는다는 거예요. 선진국은 도덕성이 깨끗하잖아요. 커뮤니케이션이 효율적이라는 얘기거든요.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피드백이 잘 된다는 거예요. 마찬가지로 영화로 돈을 벌려면 영화가 (제대로) 되어 있어야 될 거 아닙니까. 그것도 없이 돈만 벌겠다고 하는 건 어리석은 생각이죠."
  
  대중의 욕망
  
▲ ⓒ프레시안

  황 박사와 심 감독은 '경쟁력'의 신화다. '우리도 미국을 이길 수 있다'는 것. 광개토대왕을 출연시킨 한미FTA 홍보 광고의 메시지와 정확히 일치한다. 황우석 사태와 '디 워' 논란은 한미FTA 논란을 전후한 우리 사회의 어떤 정신적 상황을 보여주는 게 아닐까.
  
  "사람들은 구질구질한 현실이 짜증나는 거예요. 역사적으로 우리 주변을 보세요. 중국, 러시아, 일본, 미국, 어디 하나 만만한 나라가 없지 않습니까. 우리는 약자죠. (그래서 그런지) 거대함에 대한 선호가 존재해요. 우리나라 사람들이 생각하는 국가 모델은 스웨덴, 덴마크, 핀란드처럼 작지만 잘 사는 나라가 아니에요.
  
  한미FTA도 그런 맥락에서 볼 수 있죠. 대중은 수세적인 게 아니라 치고 나가자는 정부의 선전을 믿고 싶어 한다는 겁니다. 그러나 그렇게 됐으면 좋겠다는 것하고 실제 그렇게 될 수 있다는 건 전혀 다른 문제입니다. 그런데 양자가 혼동되는 거죠. 될 수 있다는 건 현실입니다. 됐으면 좋겠다는 건 바램이고요. 원망과 현실에서 대중은 현실을 직시하는 게 아니라 원망을 본다는 거죠. 대중들에겐 욕망이 있어요."
  
  한미FTA에 대한 정부의 선전을 '믿고 싶어 하는' 대중의 심리상태가 존재한다는 것. 한미FTA 반대론자들은 대중이 협상의 진상을 알게 되면 여론이 달라질 것이라고 한다. 진 교수의 말을 듣고 보니 정말 그럴까 싶은 생각도 든다.
  
  "우리나라 사람들은 자유경쟁 이데올로기가 굉장히 강하거든요. 국가주의, 경쟁과 시장주의, 위아래로 사람 가르는 위계적인 문화. 이 세 가지가 우리나라 사람들의 사회적 유전인자가 되어버렸어요. 한미FTA 협상의 실제 내용이 대중에게 제대로 알려졌다고 해서 여론이 지금과 크게 달랐을 것이라고는 생각하지 않습니다. 물론 토론이 되는 걸 본다면 결과가 다를 수 있겠지만, 쉬운 문제는 아닙니다."
  
  진 교수는 김정란 교수의 '디 워' 평론이 모종의 정치적 의도를 갖고 있다고 비판하면서 "평론가는 대중을 고려하는 게 아니다. 평론가는 작품만 상대하는 사람이다"고 말했다. 내친 김에 그가 생각하는 지식인의 상을 들어봤다.
  
  지식인은 자기가 하는 일에 대해 책임을 지면 되는 겁니다. 난 (평론가로서의) 내 일을 했고, 미국에서 ('디 워'가 거둔 성적으로) 입증됐듯이, 제대로 했습니다. 심형래 감독은 자기 일을 제대로 못한 거죠. 그걸로 끝난 겁니다. 대중이 스스로 보면 되는 겁니다. 대중이 올바른 견해를 받아들이기 거부한다면 그건 대중의 문제이지 내 문제는 아닙니다. 그들 손해지 내 손해가 아니에요."
  
  계몽적 지식인이 아니라 각자의 위치에서 자신이 해야 할 일을 제대로 하는 또 다른 의미에서의 '기능적' 지식인을 말하는 듯 하다. 지식인의 계몽적 역할을 마다하는 그의 활동이 두드러진 계몽적 효과를 낳는 건 역설적이다.
  
  '디 워' 논란을 거치면서 진 교수는 좀 더 유명해졌다. 시쳇말로 대중적으로 '뜬' 것이다. '무르팍 도사'에서 출연제의가 들어오기도 했단다. 하지만 출연을 고사했다. "내 일의 연장이 아니기 때문"이라고 했다.
  
  "제가 웃길 때는 특수한 사람들을 대상으로 웃기는 거예요. 그런데 개그 프로그램은 적어도 중학교 학생 이상은 웃겨야 되잖아요. 그건 또 다른 재주고 또 다른 재능입니다. 그리고 개그 프로그램의 웃음은 해학에서 나오거든요. 다 같이 웃는 거죠. 그러나 저는 공격을 통해 웃기거든요. 비평이기 때문에. 사회적으로 부정적인 현상을 보고 그걸 깨기 위해 까기 때문에 해학이 아니고 풍자입니다. 아프게 찌르는 거죠. 프로그램의 성격에 잘 맞지 않는 거예요. 그리고 무엇보다도 저들('디 워' 옹호론자)의 마지막 논거, '저 녀석 뜨려고 한다'는 논거를 부숴버리고 싶은 마음도 있었어요. '뜰 수 있는' 기회를 스스로 놓음으로써 말이죠."
  
  황우석 사태나 '디 워' 논란을 보면 한국 사람들은 실체가 불분명한 거대한 이익에는 열광하는데 정작 구체적인 이해가 달린 타산에는 둔감한 것 같다는 인상을 받게 된다.
  
  "저는 구술문화의 습성이라고 봐요. 예를 들어 보험을 파는 사람이 왔어요. 한 사람은 와서 '이 보험의 특성은 뭐고요, 저것은 어떤 혜택과 한계가 있고요' 하는 식으로 꼼꼼하게 약관대로 설명해요. 다른 사람은 와서 '아이구 이번에 아드님 중간고사 잘 봤어요?' 하고 물어요. 어느 쪽이 유리할까요. 후자란 말이에요. 그런 코드가 있다는 거예요.
  
  얼마 전 '맞을 각오를 하고 쓴 한국인 비판'인가 하는 책이 인터넷에 뜬 걸 잠깐 봤는데, 일본 사람이 재밌는 얘기를 했더라고요. 한국 사람하고 계약을 했는데 납기일 안에 납기가 안 됐답니다. 그래서 한국 사장에게 전화했더니 '우리도 밤을 새워가며 작업하고 있다', 그러더래요. 이 일본 사람은 황당한 거죠. '누가 너희들보고 밤새라고 했느냐'는 거지요.
  
  심형래 감독도 그러잖아요. '밤새서 라면 먹으면서 CG 만들었는데…' 이렇게 말하거든요. 왜 라면을 먹습니까, 밥을 먹어야지. 그리고 밤을 새면 안 되죠. 제대로 자가면서 8시간 노동해야지. 그리고 박봉. 박봉 주면 안 되거든요. 제대로 돈을 줘야 CG가 발달하지. 라면 먹고, 밤새 작업하고, 나중에 영화 잘 되면 30억씩 줄게, 이건 말이 안 되는 거거든요. 그런데 이게 통한단 말이에요, 한국 사회에서는. 모든 문제에 대해 논리적으로 따지기보다는 정감적이라는 거예요. 이건 커뮤니케이션의 관점에서 볼 때 효율적이지가 않잖아요."
  
  애국의 결실은?
  
▲ ⓒ프레시안

  진 교수는 지난해 11월 한 강연에서 '영상문화' 시대에 진보진영은 여전히 '텍스트' 혹은 '문자문화'에 머물러 있다고 지적했었다. 그런데 요즘 그는 '텍스트'가 거세되었다고 '영상문화'를 비판하고 있다. 진 교수는 '문자문화'의 성취에 기초한 '영상문화'를 온전한 문화적 진화로 보고 있다. 그를 기준삼아 강조점을 달리 하며 이쪽 저쪽을 비판하는 것이다.
  
  "제대로 된 영상문화는 텍스트를 바탕으로 한 영상문화입니다. 텍스트 기반 없이 영상문화로 넘어가는 건 문자문화 이전으로 후퇴하는 겁니다. 반면 텍스트를 바탕으로 영상문화 시대로 넘어가게 되면 문자문화보다 진화한 의식상태로 넘어가는 거죠. 지금은 영상문화로 넘어갔지만 텍스트의 합리성이 없다보니까 신화적인 의식으로 퇴행하잖아요. 요즘 드라마를 보세요. 다 역사드라마잖아요. 반면 진보진영 같은 경우 아직 텍스트 문화에 머물러 있죠."
  
  그는 이제 '영상'을 읽어야 한다고 했다. '텍스트' 비판에서 '영상비판'으로 넘어가야 한다고 했다. 그게 '영상문화' 시대에 지식인과 비평이 해야 할 역할이라고 했다.
  
  "지금 문자를 못 읽는 사람은 없습니다. 그러나 영상을 못 읽는 사람은 많아요. 로맹 가리가 '미래의 문맹자는 글자를 못 읽는 사람이 아니라 영상을 못 읽는 사람이 될 것'이라고 했죠. 소통수단 자체가 영상으로 바뀌고 있어요. 그런데 영상은 항상 문자를 깔고 있다는 말이에요. 프로그램을 깔고 있는 거죠. 이 프로그램을 읽어내지 못하면 영화 '매트릭스' 속의 주민이 되는 겁니다. 남이 짠 프로그램을 자기의 세계로 알고 살아가는 거죠.
  
  생각해 보세요. '디 워' 논란으로 누가 돈 벌었겠어요. 내가 볼 때 쇼박스입니다. 심형래 감독 돈 번 것 하나도 없어요. 결과적으로 보면 한국에서 번 돈을 미국에서 마케팅 비용으로 다 썼어요. 거기다 영화 제작할 때 미국 배우 썼죠, 미국에서 음악 썼죠, 미국에서 CG 보정했죠, 미국에서 촬영했죠. 제작비도 미국에서 썼단 말이에요. '달러 벌어다 준다' 그랬는데, 실제로는 달러를 쓴 것이거든요. 그리고 ('디 워'가 미국에서) 한국 영화의 위치를 높였느냐. 그것도 아니죠. 쏟아지는 악평들을 봐요. 한국영화가 애써 쌓아놓은 것까지 깎아먹은 거 아닙니까.
  
  사람들 열심히 애국했잖아요. 그 애국의 결실을 누가 가져갔느냐는 거예요. 얼마 전 심형래 팬 카페 가보니까 '디 워' 열 번 보기 운동을 해요. 아무리 좋은 영화라도 두세 번 보면 질리거든요. 고문이에요. 게다가 ('디 워'는) 서사가 복잡한 영화가 아니잖아요. 또 간접관람이라는 게 있더라고요. 뭐냐면, 아마도, 누군가 100번 봤다고 하는데, 표만 사는 것 같아요, 인터넷에서. 극장에 안 가고요. 심형래 감독을 돕는다고 그렇게 하는 건데, 그 돈이 심형래 감독에게 들어가느냐? 아니거든요. 돈을 버는 건 누구냐. 쇼박스와 극장이에요. 애국을 하는데 돈은 누가 챙기느냐는 겁니다. 이게 프로그램을 읽는다는 문제예요. 산수만 계산해도 나오는 문제인데, 이걸 못 읽는다는 말이죠."
  
  "예를 들어 미국 애들은 외국 영화를 안 봐요. 외국 영화의 전체 점유율이 2% 밖에 안 되는 걸로 알고 있어요. 심형래 씨가 올바로 판단한 건 두 가지예요. 미국 사람들이 자막 붙으면 일단 안 본다는 것. 그렇기 때문에 괴수영화 같은 걸로 승부해야 한다는 것. 그런데 그것만 가지고는 블록버스터가 될 수 없죠. '괴수영화'는 특정한 취향의 영화잖아요. 그렇다면 목표를 현실적으로 가졌어야죠.
  
  전 세계를 대상으로 장사를 할 수 있는 영화는 미국영화 밖에 없어요. 왜 그러냐면 미국 문화가 전 세계 인간들의 문화거든요. 그런 저변이 있기 때문에 미국 영화가 전 세계로 나갈 수 있는 거예요. 한국영화가 그런 상태가 되어 있느냐? 아니거든요. 예를 들어 심형래 감독은 대본을 한국말로 써서 영어로 옮기면 될 것이라고 간단하게 생각하는데, 그게 얼마나 어색합니까. 쉽게 말하면 미국 사람하고 싸우는 데 멱살 붙잡고 '하우 올드 아 유' '유 해브 노 파더?' 하는 격이거든요. 이건 미국화 하는 게 아니죠.
  
  그리고 한국적인 것을 말하는데, 영화에 아리랑 넣으면 한국적인 거라고 생각하거든요. 아리랑은 우리한테도 멀어요. 우리가 요즘 아리랑 부릅니까. 오히려 영화 '괴물'에서 변희봉이 소녀 영정 앞에서 막 울면서 '네 덕분에 우리 가족이 다 모였구나' 하고 말하는 그 순간 '저거야말로 한국적이다'는 느낌을 받죠. 이런 게 감각이고, 또 어필하거든요.
  
  미국 시장에서 성공하고 싶다면 실질적으로 성공하기 위한 방법을 합리적으로 생각해야 하는데, 그런 건 하나도 없고 염원만 있어요. 그러면서 (성공을 위해) 실질적으로 해야 할 것, 깐깐한 비평, 수준 높은 관객, 이런 것을 갖출 생각은 전혀 안 해요. 얘기도 못 꺼내게 해요. 오로지 미국으로 나간다, 이런 게 주술적 태도라는 거죠. 주술시대에는 믿어버리면 돼요. 소원이니까. 자기의 원망을 실질적으로 이룰 길을 찾는다는 게 바로 문자문화의 합리성이죠. 항상 관찰하고 반복되는 패턴을 발견하고 법칙을 발견하고 그걸 이용해서 뜻을 이룬단 말이죠. 그런데 지금 보세요. 전혀 그렇지 않잖아요"
  
  "발터 벤야민이 기생충인가"
  
▲ ⓒ프레시안

  '디 워' 논란은 지식인들 간의 논쟁으로 확산되기도 했다. 출판사 '고래가 그랬어'의 발행인 김규항 씨는 '디 워' 논란은 평론가에 대한 대중의 반감이 폭발된 것이라고 했다. 여기서 말하는 평론가란 '평론가와 평론가 지망생, 그리고 인텔리들끼리 읽는 평론'을 쓰는 평론가를 뜻한다. 그들은 대중의 취향을 '경멸'하는 것으로 자신의 문화적 정체성을 확인한다. 일종의 문화적 '구별짓기'인 셈인데, '디 워'의 맥락을 떠나서 보면 이런 비판에 경청할 대목도 있는 건 아닐까.
  
  "나는 많은 비평을 접해보지 않아서 잘 몰라요. 그런데 어디에나 문제는 있죠. 90년대 사회비평에는 문제가 없습니까? 개별 비평이 잘 됐느냐, 안 됐느냐를 따져야지 포괄적으로 '쓸 데 없다'는 식으로 판단을 내려서는 안 되는 거죠. 그리고 (90년대 이후) 운동권 출신들이 대거 비평으로 온 건 잘한 거예요. 그럼 뭐하라는 겁니까. 일본 같은 경우 전공투 세대가 다양한 문화 영역으로 갔기 때문에 일본 문화의 수준이 높아진 것이거든요. 지금 한국영화의 경우에도 386이니까 이 만큼이라도 나오는 겁니다."
  
  그의 비판은 김규항 씨의 '평론가론'에 관한 것으로 이어졌다. 진 교수 특유의 독설이 불을 뿜었다. 앞서 김규항 씨는 지난 8월 자신의 블로그에 올린 글에서 "평론가란 '생산하는 사람'이 아니라 '생산에 기생하는 사람'이다"고 규정한 바 있다.
  
  "김규항이 평론가를 기생충이다, 이렇게 말했는데 그런 식으로 하면 자기는 메타 기생충이에요. 평론가를 씹으면서 크는, 그야말로 메타 기생충이죠. (김규항 씨가) 평론을 생각하는 게 굉장히 무서운 게, 평론은 그 자체가 생산입니다. 발터 벤야민이 왜 기생충입니까? 예술가들은 평론가들 아니면 못 떠요. 평론가들이 쓰는 평론, 그건 문학이에요. 그게 생산이거든요. 그런데 그걸 보고 기생충이라고 하면 심형래 지지자들하고 뭐가 다르냐는 겁니다. '네가 만들어봐' 이런 식이잖아요.
  
  자동차 검사하는 사람이 차를 보고 '이게 문제고 저게 문제고 그러니 교체해야 돼요' 했더니 '네가 만들어봐', '너는 기생충이야' 이렇게 말하는 게 말이 됩니까. 따져보세요. 국가주의 코드, 시장주의 코드, 영웅주의 코드, 떼로 몰려다니면서 패악질 하는 것, 이게 민중입니까, 파시즘적 군중입니까"
  
  "진보는 새들의 매스게임"
  
  지난해부터 진보 위기 담론이 계속되고 있다. 진 교수가 생각하는 진보란 무엇인지 궁금했다. 그는 선형적 시간관에 입각한 진보 관념은 타당성을 잃었다고 했다.
  
  "저는 '진보냐 보수냐' 하는 과거의 기준들은 타당성을 잃었다고 봐요. 역사주의 의식이란 건 약화될 수밖에 없어요. 우리는 늘 그렇게 생각했죠. 과거를 기억하고 피억압자의 기억을 조직하는 게 과거의 역사이고, 그건 현재를 위한 것이고, 현재는 또 미래의 해방된 사회를 위해서 희생돼야 할 것이다, 하고 말이죠. 모든 것의 최종적 의미가 미래에 도달되는 사회에 있는 것을 '역사적 텔로스'라고 합니다. 그런데 그 텔로스에 대한 믿음이 없어졌단 말이죠. 그럴 때 과연 과거와 같은 진보의 개념이란 게 성립될 수 있느냐는 거죠. 요즘 '수구진보'라는 말을 많이 하죠. 영상문화의 측면에서 보면 텍스트 문화에 있는 사람들이 덜 진화한 측면이 있는 거예요. 그걸 아마도 수구성이라고 부르는 거죠. 그러면서도 진보적이고요. '수구진보'라는 말은 굉장히 정확한 말입니다."
  
  그는 '진보'는 창의성의 경쟁이라고 했다.
  
  "가치판단이 다원화됐다는 거죠. 신자유주의를 해야 된다는 사람들의 판단이 있고, 해서는 안 된다는 사람들의 판단이 있고, 둘 중 어느 게 더 옳은가, 그른가 하는 건 참 대답이 안 나온다는 거죠. 이걸 인정해야 됩니다. '난 이게 옳다고 생각하지만 저 사람은 저게 옳다고 생각할 수도 있지'. 물론 옳고 그른 것은 싸워서 결판나는 문제이지만, 많은 경우 가치가 개입되어 있기 때문에 쉽게 결판이 안 나거든요. 그런 싸움에서는 오히려 미학적 기준이 강화돼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내가 생산하는 담론이 더욱 생산적이고, 내가 현실을 설명하는 방식이 현실을 보다 무모순적으로 설명할 수 있다, 이런 식으로요. '내 담론은 네 것과 달리 아주 새로운 측면에서 보게 해 준다'든지, 정보가치가 있다든지, 이런 방향으로 경쟁해나가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그게 진보고요.
  
  요컨대, 담론은 새들의 매스게임이라는 거예요. 천수만에서 새들이 날아다닐 때 명령하는 새가 없죠. 옆의 새와 일정한 간격을 유지할 것, 장애물이 나오면 피할 것, 하는 몇 가지 지식들만 있죠. 그처럼 서로 배운 독립된 개인들이 우리가 에티켓이라고 말하는 것만 유지한 채 각자 창의성을 발휘하면 그 결과로서 누구도 인풋하지 않았던 것이 나온다는 겁니다. 그걸 우리가 흔히 창발이라고 부르죠."
  
  정치 얘기는 사양한다는 그였지만 합리성과 풍자의 소양을 갖춘 몇 안되는 평론가를 만난 터라 방앗간 지나는 참새 같은 마음이 들었다. '이번 대선에서 지지하는 후보는 있나요?' "버락 오마바를 지지합니다." 그냥 같이 웃었다.
  
  "민노당을 찍을 뻔 했는데 민노당도 정파 문제가 걸린 거 아니에요? 이번에는 아마 안 찍을 것 같아요. 이회창을 찍을까 하는 생각도 있고(웃음). 이명박이 되면 운하를 팔 것 같단 말이야. 이 사람 운하 진짜 팝니다. 할 줄 아는 게 그것밖에 없기 때문에. 정말 '창'을 찍을까?(웃음)."
  
  비판적 지지론에 대해 물었다. 역시 그다운 답변이 돌아왔다. "비판적 지지? 그럼 '창(이회창)'한테 몰아줍시다. 어차피 정동영 안 되잖아. 그 논리를 그대로 적용하면 그렇죠. 이명박 막으려면 창한테 몰아줘야지. 창한테 몰아줍시다. 정동영한테 표 보내주지 말고. 정동영은 사퇴하라고 해야죠(웃음). 코메디죠 코메디."
  
  "삼성을 보세요!"
  
▲ ⓒ프레시안

  마지막으로 바람직한 국가모델에 대해 물었다. "유럽식 사회국가모델"이라고 짤막하게 답한 진 교수가 갑자기 생각난 듯 "프레시안에 이종태라는 사람이 이상한 글('사회적 대타협을 위한 변')을 썼던데, 그 사람 왜 그래요?" 한다. 그러곤 곧 장하준 교수를 비판하기 시작했다. 진 교수는 언젠가 '쾌도난마 한국경제'의 공동저자인 장하준, 정승일, 이종태 등과 TV토론을 한 적이 있다. 박정희 시대에 대한 평가를 놓고 두 진영이 충돌했던 것으로 기억한다. 진 교수는 "이 얘기는 꼭 써주세요. 내가 따로 글을 쓸 시간이 없으니까"라고 했다.
  
  "장하준 씨가 재벌과의 사회적 대타협 얘기하잖아요? 삼성을 보라는 거예요, 지금. 과연 대타협의 문제냐는 겁니다. 삼성이 노조를 인정 안 하는 겁니다. 타협 한 번 해보라고 해요. 어떤 타협안이 가능한지. 그리고 스웨덴에도 재벌이 있다? 스웨덴 재벌하고 한국 재벌이 같으냐는 겁니다. (재벌의 성격을 비유적으로 말하면) 스웨덴은 입헌군주국이고 우리나라는 봉건군주국이에요. 재벌 체제가 완전히 다른데 같다고 하고. 그리고 그나마도 스웨덴이 전 세계에서 유일한 겁니다. 그 다음에 우리가 재벌 해체하자고 한다는데 해체할 힘이 있습니까. 해체 안 됩니다, 결코. 재벌 해체한다는 게 기업군을 해체한다는 게 아니잖아요. 다른 차원의 문제예요."
  
  진 교수는 국가의 경제조정적 개입을 사회주의적 요소로 보는 건 '황당하다'며 장 교수에 대한 비판을 이어갔다.
  
  "박정희가 사회주의적이었다? 절대로 저는 그렇게 보지 않습니다. 자본주의는 세 가지를 다 할 수 있습니다. 국가주의적 통제를 할 수 있어요. 파시즘처럼. 그러다 완전 자유주의로 갈 수도 있는 겁니다. 그 다음에 뉴딜식 사회복지 시스템을 만들 수도 있는 겁니다. 이 세 가지는 자본주의가 택할 수 있는 옵션에 속하지 '어느 게 사회주의냐', 이렇게 얘기할 수는 없다는 겁니다. 제가 생각하는 사회주의는 국가가 경제에 조정적 개입을 하는 체제가 아니라 사회복지적 개입을 하는 체제거든요. 그런데 저 사람들 얘기하는 건 경제조정적 개입이에요. 그걸 사회주의로 본다는 게 황당하다는 거죠."
   
 
  정제혁/객원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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