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효순칼럼] 피디수첩과 검찰의 행보
김효순칼럼
 
 
한겨레  
 








 

» 김효순 대기자
 
10여년 전 일선 취재부서의 부장을 맡고 있을 때 검찰에 가서 두 건의 명예훼손 혐의로 조사를 받은 일이 있다. 수사기관에서 받은 조서에 무인을 찍는 것이 편할 사람은 없을 것이다. 검사나 검찰서기는 접수된 사건을 정해진 기일 안에 매듭지어야 하기에 집요하게 질문을 한다. 일선 기자의 취재내용이 사실이라고 믿은 근거가 무엇이냐, 다른 기사들보다 부각시킨 의도가 무엇이냐, 제목을 이렇게 단 배경이 무엇이냐는 등 꼬치꼬치 캐묻는다.

나의 단편적 경험에서 따져보면 서울중앙지검의 <문화방송> ‘피디수첩’ 수사는 도대체 그림이 그려지지 않는다. 첫째, 누구의 명예가 훼손됐다는 것인지 모르겠다. 검찰이 설마 미국 정부나 축산업계, 아레사 빈슨 모친의 명예를 신경 쓸 리는 없을 것이다. 그렇다면 농림수산식품부 장관이나 쇠고기 협상단이 제대로 협상을 했는데도 부당한 비난을 받았다는 것을 입증해야 하는데, 결코 쉽지 않아 보인다. 협상을 잘했다면 대통령이 두 번이나 나서서 사죄를 하고 내각 총사퇴라는 엄청난 쇼를 벌인 끝에 결국 용두사미 격이 된 7·7 소폭개각에 농림수산식품부 장관이 포함된 이유를 설명하기가 마땅찮다.

둘째는 검찰 수사팀이 주시하고 있다는 피디수첩의 의도성 여부다. 피디수첩 취재팀이 유도질문을 해서 사실을 왜곡했는지 살펴보겠다는 것이다. 피디수첩이 어떤 방식으로 취재를 했는지 알 수는 없지만 의도가 없는 취재란 게 있을 수 있을까? 유도질문은 취재원의 상황에 따라서는 중요한 취재기법이 될 수 있다. 수습기자 시절 귀에 못이 박히도록 듣는 잔소리 가운데 하나가 ‘너 관보 기자냐’라는 힐난이다. 1980년대 중반 박종철 고문치사 사건이 터지자 경찰은 “탁하고 치니까 억하고 죽었다”고 발표했다. 이것을 그대로 썼다가는 기자 생활은 끝이다. 취재를 직업으로 삼은 사람은 이리저리 찔러보고 다각도로 취재한 뒤 그 의미가 무엇인지 종합적으로 판단한다. 질문 하나하나의 의도를 따지고 든다면 언론의 존립기반 자체가 허물어진다.

셋째, 검찰의 의도 여부다. 명예훼손 혐의라고 하면서도 당사자의 고소 없이 정부기관의 의뢰로 수사를 시작했다. 게다가 무슨 권력형 비리가 아닌데도 수사검사를 이례적으로 5명이나 투입했다. 일부에서는 이명박 정권의 방송장악 음모에 검찰이 하수인으로 나섰다고 하는데, 그런 주장을 선뜻 믿고 싶지는 않다. 하지만 검찰이 정부·여당의 ‘일벌백계’ 요구나 보수언론의 싸잡이 공세 분위기에 편승했다는 정황은 부인하기 어렵다. 보수언론의 수사 촉구몰이는 분명 넘어서는 안 될 선을 넘은 것이다. 파렴치한 행위를 저질렀거나 비리에 관련된 것이 아니라면 언론에 대한 권력기관의 강제수사는 최소한으로 억제하는 것이 맞다. 조·중·동의 두툼한 지면에 실리는 기사들도 대부분 나름의 의도를 갖고 쓰이고 제목이 붙여진다. 거기에 불만이 있는 사람들은 때로는 거친 언사를 사용하더라도 공론의 장에서 문제를 지적하지 검찰에 수사하라고 촉구하지는 않는다.

피디수첩 말고도 촛불집회와 관련된 검찰의 수사가 다방면으로 확대되고 있다. 돌아가는 국면을 보면 검찰이 수사권을 공정하게 쓰고 있는지 깊은 의심이 든다. 최근 이명박 대통령의 비비케이 사건을 심리하는 담당 판사한테 국정원 직원이 전화를 걸어 재판 진행 상황을 묻고, 법정에 들어와 신분을 위장하는 거짓말을 하는 충격적인 사건이 벌어졌다. 제대로 된 검찰이라면 최소한 경위는 알아봐야 할 것이다. 그런 움직임이 전혀 들리지 않으니 검찰의 의도를 생각하게 된다.


김효순 대기자hyoskim@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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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로운 발바닥 2008-07-14 11:2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검찰의 피디수첩 수사는 아무리 선해하려고 해도 구린 냄새가 난다. 일부 오역이 있었는지도 모르겠다. 그리고, 그것으로 인하여 촛불집회가 결정적으로 확산되는 계기가 되었는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그것이 왜 형사처벌의 대상인지? 누구의 명예가 훼손되었는지?

정부의 정책을 비판적으로 보도하는 언론에 되지도 않을 명예훼손의 법리를 씌워 검사를 5명이나 배정하여 수사하는 지금 검찰의 현실은 과거 20여년전 검찰의 행태로 되돌아간 것 같아 씁슬함을 지울 수가 없다. 언제나처럼 수사기관은 정관이 바뀜에 따라 변신도 빠른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