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성은 한미FTA에서 무얼 바라나?"
  [기고] 삼성경제硏의 한미FTA 보고서 비판

한국 국민들의 우려에도 불구하고, 지난 4월 2일 한미 양국 정부의 협상단은 한미 자유무역협정(FTA) 협상 타결을 공식 선언했다. 그러자 4월 5일 삼성경제연구소(SERI)는 기다렸다는 듯 <한미 FTA 협상 타결과 한국경제의 미래>라는 보고서를 발표했다.
  
  (1)한미 FTA 협상 타결의 의의, (2)한미 FTA 반대론의 허와 실, 그리고 (3)한미 FTA의 전략적 활용이라는 세 소절로 구성된 이 보고서는 그동안 노무현 정부가 국민들에게 거짓 선전해 왔던 한미 FTA의 기대효과를 똑같이 반복하고 있다. 하지만 다른 한편으로는 한국의 대기업, 특히 재벌 삼성의 기대이익을 노골적으로 대변하는 내용을 담고 있다.
  
  그런데 이 보고서의 핵심 내용과 그 이면에 전제돼 있는 문제점들은 옳은가? 과연 이들이 한국을 둘러싼 국제경제 현안에 대해서 제대로 인식하고 있는가? 이들이 주장하는 대로 한미 FTA가 한국경제 전체에 도움이 될 것인가?
  
  "고급 소비자가 존재하는 미국"과 "정치적으로 불안정한 중국"?
  
  한미 FTA 협상 타결의 의미와 관련해, 이들은 한미 FTA가 동북아시아의 평화는 물론 세계평화에도 기여할 수 있을 것인 양 선전하고 있다. 그들이 이렇게 주장하는 핵심 근거는 한미 FTA가 한국경제로 하여금 "과도한 중국 의존"에서 탈피할 수 있게 하는 계기라는 것이다.
  
  그러나 중국과의 대외무역이 증가하면 어떻게 한국경제의 "경제적 리스크"가 증대된다는 것인지 이들은 전혀 설명하지 않고 있다. "기술이전"이나 "산업 공동화의 우려" 운운하는데, 이는 국내 제조업 생산라인의 중국 이전을 부채질해 왔던 것이, 김영삼 정부 이래로 한국 정부가 대책 없이 추진해 왔던 글로벌화의 부정적 산물이었다는 점을 은폐하고 있다.
  
  이들이 진정으로 "중국 내부의 정치적 격변"과 "정책의 불연속성"을 근거로 한국경제의 리스크를 걱정한다면, 이들은 이와 동일한 비중으로, 아니 더 높은 비중으로 미국의 막대한 재정적자 및 무역적자 문제를 거론했어야 옳다. '글로벌 불균형'(Global Imbalance)라는 이름으로 이미 수년 전부터 인구에 회자되고 있는 이 문제야말로 한국경제와 국제경제의 불안을 가중시키는 주범 아니던가.
  
  쌍둥이 적자와 글로벌 불균형, 그리고 미국發 금융위기의 가능성
  
  2005년 말을 기준으로 미국의 무역적자는 국내총생산(GDP) 대비 5.7%인 7167억 달러를 상회하고 있다. 이는 "쌍둥이 적자(twin deficits)"라는 표현이 탄생했던 1980년대 중반 레이건 정부 시절의 무역적자에 비할 때도 전례 없이 높은 수치다. 또 2005년 미국 연방정부의 재정적자는 GDP 대비 2.6%이고, 총 국가채무는 GDP의 64%다. 이 가운데 절반을 외국인, 주로 중국, 일본, 한국 등 동아시아 국가의 중앙은행과 기관투자가들이 가지고 있다.
  
  이런 기괴한 경제상황에 대한 대응으로, 지난 수 년간 세계경제에서 미국 달러화는 지속적으로 그 신용도를 상실해가고 있다. 또 미국 재무부와 연방준비은행은 자국의 무역적자를 줄인다는 미명 하에 달러화 가치를 떨어뜨려 자국의 만성적인 경제 문제를 무역 상대국으로 이전시키는 정책을 취하고 있다. 지난 2~3년간 한국을 포함한 각국의 통화 가치가 지속적으로 절상되면서 이들 국가에서 인플레이션 압력이 증대된 결정적인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이런 상황에 직면해, 미국은 지난 수 년간 '다국적 기업, 특히 군수산업체가 이라크 전쟁을 통해 벌어들인 막대한 이윤'과 '중동의 원유 수출국가들 및 미국 정유업체가 지속적인 고유가 정책을 통해 벌어들인 막대한 양의 유동성', 이른바 페트로 달러(Petro-dollar)를 축적해 왔다.
  

▲ '한미FTA 저지 범국민 운동본부'가 한미 FTA 반대 시위에서 사용했던 이미지. 한미 FTA를 통해 한국경제와 미국경제의 관계를 심화시키는 것은 한국에 '독'이 될 것이라는 내용을 전달하고 있다. ⓒ프레시안


  이제 이 막대한 유동자산은, 미국 투자은행(IB)들의 주도로, 투기적 대출과 해외 외환투기의 행태로 나타나고 있다. 2001년 미국 주식시장의 일시적인 거품붕괴 이후 이 금융자산들은 대체로 부동산 시장에 대거 유입됐다.
  
  최근 미국에서 나타난 부동산 가격의 앙등과 거품붕괴 현상은 바로 이런 고삐 풀린 금융 자산의 투기적 행태가 야기한 불가피한 결과다. 주택 구입용 융자를 전문적으로 담당해 온 미국의 준정부 대출기관이 '서브 프라임 모기지'라는 이름으로 자격 없는 사람들에게 대출을 해주고, 바로 이것이 자산시장 전체의 불안정성을 야기하는 상황이 바로 2007년 우리가 목도하고 있는 미국경제의 현실이다.
  
  이에 대해 미국 연방준비이사회(FRB)는 한편으로는 모기지 대출기관에 비공개적으로 막대한 공적자금을 투입하고, 다른 한편으로는 단기이자율을 올려 인플레이션 압력에 선제적으로 대응하는 정책을 취하고 있다.
  
  이런 정책은 일시적으로는 금융 불안정이 경제 전반으로 확대·파급되는 통로를 차단할 수 있겠지만, 결코 제도적인 인센티브 구조에 따라 움직이는 과잉 유동성 문제 그 자체를 해결하지는 못할 것이다.
  
  그들은 조만간 부동산 시장이 아니라면 주식 시장으로, 그것도 아니라면 다변화된 '포트폴리오 투자'라는 이름으로 라틴아메리카나 동아시아의 소위 '신흥 금융시장'(emerging markets)으로 투자처를 옮겨가며 이들 국가의 실물경제에 막대한 피해를 입힐 것이다. 이는 국제적 금융 불안정의 확산이라는 결과를 초래할 수 있다.
  
  따라서 "고급 소비자가 존재하는 미국 시장"과 "정치적으로 불안정한 중국 시장"이라는 기묘한 대비를 통해 이들이 "미국 시장에서의 입지 재강화"와 "세계시장 포트폴리오 다변화"를 운운하는 것은 단지 이들의 머릿속에 뿌리박힌 숭미주의를 드러내는 것이거나 국제정치경제의 현황에 대한 무지를 드러내는 것 둘 중 하나일 뿐이다.
  
  정작 한국 정부와 기업이 "세계시장 포트폴리오 다변화"라는 이름으로 오래 전부터 추진했어야 하는 것은, 그렇지 않아도 그 비중이 기형적으로 높은 대미 무역의존도를 서서히 줄이고 외환 및 수출입 구조를 다변화하는 일이다.
  
  "개방의 부작용에 대한 과도한 우려"?
  
  삼성경제연구소는 한미 FTA를 반대하는 주장을 몇 가지로 분류한 후 각각에 대해 반론을 펴고 있다. 우선 이들은 한미 FTA에 반대하는 사람들이 "개방에 따른 일부 산업의 피해에 관심을 집중"하거나 "외환위기 이후 개방과정에[서] 나타난 부작용을 개방 반대론의 근거로 사용하고 있다"고 주장한다.
  
  그러나 이런 주장은 한미 FTA로 피해를 입을 산업 부문이 "일부" 농수산물 분야에 국한된 것이 아니라 국민경제 전체에서 여전히 압도적인 고용과 임금을 보장하고 있는 중소기업 분야 및 이에 기반을 둔 중소 서비스업 등 전 영역에 걸쳐 있다는 사실을 은폐한 것이다. 유일한 예외는 한국의 재벌들이 어느 정도 독점적 지위를 누리고 있는 산업 부문이다.
  
  이와 관련해, 삼성경제연구소는 한미 FTA의 체결 근거로 내세우고 있는 "산업구조의 고도화" 가 무엇을 의미하는지를 밝혀야 할 것이다. 이미 재정경제부는 "금융산업의 발전과 산업구조의 고도화"라는 명분으로 '자본시장통합법'을 통과시킨 바 있다. 이는 외환위기 이후 은행산업 분야를 대대적으로 통폐합한 것으로도 모자라 국내 은행의 덩치를 키워 미국식 투자은행으로 탈바꿈시킨다는 거창한 계획을 내걸고 있다. 삼성경제연구소가 말하는 "산업구조의 고도화"가 국내 은행산업을 미국식 투자은행으로 탈바꿈시키는 것인가?
  
  금융산업의 발전이든 산업구조의 고도화든, 일체의 금융정책은 제조업과 비(非)금융산업 분야의 장기적인 투자와 고용을 증진시키는 방향으로 제도화돼야 한다. 또 금융산업 분야의 고유한 사업 영역과 요건 등에 관한 강력한 감시와 규제를 위한 법적·제도적 안전장치를 마련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그것은 다수의 중소기업과 중소기업 노동자들의 이익을 희생시키면서, 막대한 이윤 유보금과 비은행권 금융기업이 소유한 금융자산을 차용할 수 있는 소수의 재벌 기업과 금융 자산 소유자들의 이익만을 체계적으로 보장하는 '가진 자들의 천국'을 만드는 것에 불과할 것이다.
  
  1980년대 미국과 2007년 한국, 그리고 금융부유화
  
  이와 같은 우려가 추상적인 가정만이 아니라는 것은 1980년대 레이건 행정부가 추진한 보수적 금융정책의 사례를 살펴보는 것으로 충분할 것이다. 당시 폴 볼커가 지휘하던 연방준비이사회는 국제유가의 급격한 상승에서 연원한 국내 인플레이션 압력에 대응하기 위해 급격한 단기이자율 상향조정과 달러화 가치의 급속한 평가절상으로 대응했다.
  
  '레이거노믹스'로 불리는 이같은 긴축통화 정책으로 1979년 13%에 달하던 인플레이션율은 1983년 4%로 낮아졌다. 하지만 그에 따른 경제적 대가는 엄청났다. 같은 기간 실질 GDP는 820억 달러 상당으로 하락했고, 6000억 달러의 총생산이 손실됐다.
  
  더욱 심각한 문제는 이같은 손실이 결코 경제주체들 사이에서 고르게 분담되지 않았다는 데 있다. 갑자기 상향조정된 이자율 정책으로 가장 큰 손실을 본 집단은 설비 확장을 위해 이전에 대출을 받았던 중소 농장주와 중소기업가들, 그리고 그들에게 고용된 노동자, 그리고 주택과 자동차 구입을 위해 대출을 받았던 가계들이었다.
  
  그들은 집과 토지 및 생산 설비를 박탈당했을 뿐 아니라 경기후퇴에 따른 비자발적 실업으로 인해 안정적인 수입원도 박탈당했다. 몇몇 우량 중소기업들이 이같은 급격한 고이자율 정책에서 살아남았지만, 이들은 연이어 불어 닥친 적대적 인수합병(M&A)의 첫 번째 희생자가 돼야 했다.
  
  반면, 이같은 고이자율 정책의 최대 수혜자는 금융자산 소유자들, 그리고 레이건 정부가 국가안보라는 명분으로 제공한 막대한 보조금을 받았을 뿐 아니라 중동 전쟁을 통해 자체 재고까지 재활용할 수 있었던 군수산업 분야의 대기업들이었다. 이들은 높은 이자율과 높은 달러 가치를 바탕으로 국내 금융시장에서 자산 투자를 다변화했을 뿐만 아니라 해외 신흥 자산시장으로 투자처를 옮겨가기도 했다.
  
  오늘날 우리가 '신자유주의(neoliberalism)'라고 부르는 일련의 경제 정책들, 즉 공기업의 대대적인 민영화, 사회간접자본과 교육 및 환경 분야 등 공공부문에 대한 정부지출의 축소, 자본시장에 대한 규제 철폐 등은 바로 레이건 정부가 앞서 실행했던 정책이다.
  
  이같은 경제 정책은 미국 내에서는 '자본주의의 황금기' 1960~1970년대 전후의 모든 경제적 성과를 급속하게 재구조화하는 결과를 야기했다. 우선, 1980년대 초반의 조세감면 정책과 고이자율 정책의 조합으로 역진적인 소득 재분배가 일어났다. 상위 20%의 고소득자는 최대의 이익을 얻은 반면, 중하위 소득자는 최대의 피해자가 됐다.
  
  또한 이 시기는 오늘날 우리에게 이미 친숙한 '빚을 내가면서 소비하는' 미국 소비자들의 전형적인 소비 패턴을 구조화시킨 결정적인 시기이기도 하다. '아메리칸 드림'의 한 지표로 선전되던 개인 주택구입(home ownership) 비율도 1940년 이후 지속적으로 상승해 1980년 66%에 이르렀다가, 이 시기를 기점으로 하락하기 시작했다.
  
  레이거노믹스는 많은 미국 국민 개개인에게 경제적 손실을 끼쳤을 뿐 아니라, 미국경제 전반의 활력을 근본적으로 뺐어갔다. 미국 중앙은행의 독립적인 금융정책 수립·집행 능력은, 그 공식적 목표가 '화폐 총량에 대한 조정(monetary aggregate targeting)'에서 '단기이자율 조정(inflation targeting)'으로 변했음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국내의 거시경제적 여건 전반에 대한 고려보다는 물가안정이라는 목표에만 매달렸다.
  
  한번 역동성을 상실하게 된 미국 경제는 더 이상 1984년 이전까지 보여줬던 경제 성장률을 시현하지 못하고, 사상 최대의 무역적자와 재정적자가 주기적으로 공존하는 오늘날의 전형적인 패턴으로 구조화됐다.
  
  대외경제의 측면에서 볼 때, 레이건 정부의 초긴축 금융정책은 국제적인 차원의 경기후퇴를 야기하기도 했다. 수출 주도의 경제성장 전략을 추진했던 한국 등 동아시아에서는 경제성장이 급격히 후퇴했다. 이뿐만 아니라 당시 미국 투자은행에게서 막대한 대출을 받았던 3세계 개발도상국들, 특히 라틴아메리카 국가들에서는 외채 위기가 발생하기도 했다.
  
  개방의 지표와 소득 재분배 효과
  
  한편 '미국식 모델을 수용해야 할 불가피성'에 대해, 삼성경제연구소는"개방이 없었을 경우 국가 간 또는 일국 내의 소득 불균형은 더 심화되었을 것이며, 세계화의 흐름에 부응한 국가가 더 많은 이익을 향유했다"는 주장을 펼치고 있다.
  
  그러나 이들의 보고서에서는 "세계화"와 "개방"의 정도를 도대체 어떤 지표를 이용해 측정했는가에 대한 아무런 설명이 없다. 예컨대 박정희 정권 하에서 수출 보조금과 각종 조세혜택 그리고 정책금융을 지원받아 수출 목표를 달성한 기업이 있었다고 치자. 이 기업은 당연히 미국을 포함한 해외시장에서의 점유율을 높일 수 있었을 것이다. 이 기업과 정부는 개방 전략을 구사한 것으로 분류되는 것인가 아닌가?
  
  이런 의문은 결코 비아냥이 아니다. 어떤 경제학자가 '세계화나 개방 수준이 일인당 국민소득 증가율과 긍정적인 상관관계(positive correlation)를 지니고 있다'고 말하려면 먼저 '어떻게 세계화와 개방 수준을 측정할 것인지' 분명하게 제시하는 것이 기본 상식이다. 이런 상식도 지키지 않은 채 삼성경제연구소는, 한발 더 나아가, 아예 세계화나 개방 그 자체가 소득증가를 가져온다는 인과론적 설명(causal relation)으로 기존 보고서들을 왜곡하고 있다.
  
  이들은 한미 FTA라는 양자 간 협정이 세계무역기구(WTO) 체제 하의 다자간 협정과 어떤 차이가 있는지, 또는 WTO 체제 하의 다자간 무역· 투자 체제가 그 이전의 통상협정과 어떤 질적인 차이가 있는지에 대해서는 조금도 주의를 기울이지 않고 있다. 이들은 이 협정이 상품무역에 관한 것인지, 지적재산권(IPR)에 관한 것인지 아니면 금융서비스와 관한 것인지에 대해 어떤 주의도 기울이지 않고 있다.
  
  그들은 오로지 '개방=세계화= FTA=경제성장= 소득 증가'라는 단순한 등식을 독자들의 머릿속에 주입시키려고 발버둥 치고 있는 것이다.
  
  이 때문에 이들은 개방과 세계화가 국내 소득의 재분배에, 산업자본과 금융자본의 역학관계에, 중소기업과 독점재벌의 수직적인 통합관계에, 또는 경영자와 도시 임금노동자들의 소득 분배와 도시 거주민과 농어촌 빈민들의 소득 분배 등에 어떤 영향을 미치는가에 대해서는 질문조차 던지지 않고 있다. 그러나 정작 한국 국민들에게 중요한 것은 바로 이런 질문들이다.
  
  한미 FTA는 양극화를 더욱 심화시킨다
  
  삼성경제연구소의 거짓 선전은 "한미 FTA가 양극화를 해소하는 중요한 계기가 될 것"이라는 또다른 선전으로 이어진다. 그런데 이들이 주장하는 것처럼, 한미 FTA가 "장기적으로 새로운 일자리를 창출해 양극화 문제를 완화"할 수 있으려면 다음과 같은 두 가지 전제 조건이 반드시 충족되어야 한다.
  
  첫째, 한미 FTA를 계기로 장기적인 투자와 고용을 보장하는 외국인직접투자(FDI)가 대거 유입돼야 하고, "단기적으로 발생하는 기업 퇴출과 실업 증가"를 만회할 수 있을 정도로 새로운 일자리가 단기적으로 대거 창출되어야 한다. 둘째, 일시적으로 퇴출되는 기업이 존재한다고 하더라도, 중장기적으로는 경쟁력을 갖춘 중소기업들이 성장해 국내 고용을 늘릴 수 있어야 한다.
  
  애석하게도, 한미 FTA의 금융서비스 협정문은 장기적인 투자와 고용을 보장하는 생산적인 자본과 단기성 투기자본을 구별할 수 있는, 금융감독 기구의 감시 및 규제 기능을 근본적으로 박탈하는 규정을 담고 있다. 또 한미 FTA는 장기투자를 유도하고 투기자본을 규제하는 일체의 산업정책 및 금융 관련 규제를 '완전 자본시장'의 이름으로 무력화하고 있다.
  
  이뿐만 아니라, 한미 FTA는 여전히 초급 단계에 머무르고 있는, 그래서 그 어느 때보다도 정부의 정책적 지원과 금융 및 조세 혜택을 필요로 하는 국내 중소기업의 자생력과 기술혁신 가능성을 원천적으로 뿌리 뽑을 것이다.
  
  그들 말대로 한미 FTA는 "장기적으로" 새로운 일자리를 창출해 "양극화 문제를 완화"할 수 있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더 명확한 사실은 "장기적으로" 우리 인간은 모두 죽는다는 사실이다.
  
  외환위기 이후 대기업만 구조조정했다?
  
  삼성경제연구소가 "한미 FTA의 전략적 활용"이라는 소절에서 밝히고 있는 한미 FTA의 기대효과는 (1)"경쟁에 의한 구조조정 촉진" (2)"기업 규제 개선의 계기" (3)"투자 활성화의 계기" 등 크게 3가지다.
  
  이들은 '전략적 활용론'을 설파하기 위해 먼저 '중소기업 분야의 지체된 구조조정'을 공격한다. 이들은 "외환위기 이후 대기업은 자산매각, 사업 구조조정 등을 통해 어느 정도 구조조정이 이루어진 상태"인 반면 "중소기업은 구조조정 부진, 경쟁력 저하 등으로 인해 영업이익률이 하락세를 지속하고 있다"고 진단한다.
  
  그러나 삼성경제연구소는 이런 말을 하기에 앞서 외환위기 이후 한국의 재벌이 구체적으로 어떻게 구조조정을 해왔는지를 제시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그들이 말하는 대기업집단의 구조조정이란 기껏해야 '자산 소유권을 불법적으로 상속한 것'에 불과할 것이다. 이는 '구조조정' 노력이 아니라 '족벌체제 유지' 노력이다.
  
  더 나아가, 이들이 오도하는 것과는 달리, "중소기업이 낮은 경쟁력에도 불구하고 구조 조정이 지연"되는 결정적인 이유는, 정부의 지원이 "구조조정 압력을 완화"했기 때문이 아니라, 세계에서 그 유례를 찾아볼 수 없을 정도로 수직적으로 통합된, 중소기업과 대기업 간의 종속관계 때문이다. 서유럽 각국에서는 상식처럼 굳어진 '업종 전문화' 제도는 온데간데 없고, 그나마 남아 있던 출자총액제도도 최근 재벌의 로비로 폐지되고 말았다.
  
  따라서 "한미 FTA는 [중소기업 부문의] 경쟁을 촉진하기 위한 외부적 지렛대"가 될 수 있을 것이라는 이들의 주장은 사실이 아니다. 재벌과 중소기업 간의 수직적 통합관계가 지속되는 한, 정부가 중소기업들에 대한 지원을 하지 않는 한 한국의 중소기업은 결코 혁신 주도적 기업으로 거듭나지 못할 것이다. 오히려, 한미 FTA는 간신히 명맥을 유지하고 있는 혁신적 우량 중소기업의 근간을 뿌리 뽑는 최악의 영향을 끼칠 것이다.
  
  어떤 투자가 어떻게 활성화된다는 말인가
  
  마지막으로 삼성경제연구소가 강조하는 한미 FTA의 기대효과는 "투자 활성화의 계기"다. 외환위기 이후 "저투자-저성장" 국면에 진입했다는 이들의 주장은 사실이다. 기업의 투자부진이 경제 성장률의 하락과 고용구조의 악화를 가져온다는 주장도 사실이다.
  
  이들은 한미 FTA로 외국인직접투자(FDI)도 증가할 것이라고 주장한다. FDI는 포트폴리오 투자와는 달리 실제로 한국 현지에 고정자산을 투자해 고용을 창출하기 때문에 국민경제의 성장에 기여할 수 있다고 한다.
  
  그러나 이들이 은폐하는 것은 첫째, 경제학적으로 FDI와 포트폴리오 투자를 구별하는 명확한 기준이 없다는 것이다. 둘째, 설사 외국기업이 실물 고정자산을 투자한다고 하더라도, 이것이 실제로 현지 경제가 요구하는 만큼의 고용을 단기간에 창출하리라는 보장이 없다. 셋째, 한국에 진출한 외국기업은, 기술이전과 임금, 조세 및 환경 관련 규정, 그리고 국내 은행과 맺는 제도적 관계가 어떠냐에 따라, 국민경제에 이바지할 수도 있고 아니면 론스타처럼 투기만 할 수도 있다.
  
  안타깝게도 한미 FTA는 임금, 조세, 환경 등 제도적 기업 환경을 자국 국민경제의 이익을 극대화하려는 방향으로 조성하려는 일체의 정부 노력을 잠식하는 조항들을 포함하고 있다. 따라서 삼성경제연구소가 계산한 "20.8%의 FDI 증가율"이 실제로 나타난다고 해도, 그 FDI는 고용, 임금, 기술이전 등과 관련해 한국 경제에 일말의 도움도 주지 않을 것이다.
  
  정부의 역할이 그 어느 때보다 중요한 때
  
  외환위기 이후, 특히 김대중 정부 말기부터 기업들의 연구개발(R&D) 투자는 말할 것도 없고 전반적인 설비투자 비율도 급속하게 줄어들고 있다. 이같은 투자 감소는 외환위기를 전후로 급속하게 개방된 자본시장과 금융시장의 불안정성, '신용카드 대란'으로 나타난 급속한 신용 거품의 축소와 이에 따른 소비 위축 등의 종합적인 결과라고 볼 수 있다.
  
  정부가 규제와 감시를 통해 자본시장 및 금융시장의 급격한 개방에 따른 불안정성을 줄이지 않는다면, 정부가 사회복지 정책을 추진해 국내 소비자들의 안정된 소득 수준을 보장하지 않는다면 투자 활성화는 일어나지 않을 것이다. 이런 상황에서 맹목적으로 추진되는 한미 FTA는 삼성을 포함한 독점 재벌들을 제외한 전 산업 분야의 성장과 발전에 치명적인 타격을 가할 것이다.

신희영/미국 신사회과학원 박사과정(경제학)


댓글(2)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치유 2007-05-10 23:4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오랫만이네요..잘 지내시지요??
밀린 페퍼 읽다가 님 글 올라온것 보니 반갑네요..

외로운 발바닥 2007-05-12 09:3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 잘 지내시죠, 배꽃님? 이 생활 시작하니까 정말 정신이 없네요. 아직도 적응하려면 시간이 더 필요한 듯 합니다. 즐거운 주말 보내세요~
 

[노곤한 봄…잠이 모자란다] 늦게 자는 올빼미족 '아침형' 되려다 역효과
[한국경제 2007-04-07 09:49]    

수면이 건강의 중요한 척도로 인식된 것은 그리 오래되지 않았다.불과 얼마 전까지만 해도 잠을 줄여가며 일하는 사람을 성공의 대변자로 여겼다.이제 더 이상 이런 생각은 옳지 않게 됐다.현대인은 인류 존재 이래 가장 적게 잠을 잔다.

과거 통계조사로 추산해 보면 80년 전에는 평균 8.8시간을 잤다.이에 반해 현대인은 평균 7시간을 채 못 자는 것으로 나타났다.대체로 늦게 잠들고 일찍 깨서 만성 수면 부족 상태에 놓여 있다.

'수면 빚'(sleep debt)이 우리의 몸과 마음에 남아 있다. 수면 빚을 지는 요인 중 중요한 것은 현대인의 상당수가 잠자리에 드는 시간이 갈수록 늦어지는 '수면위상지연증후군'에 걸려 있다는 사실이다.

늦어도 저녁 11시 이전에 잠자리에 들어 아침 7시 이전에 기상하는 게 바람직하나 이 증후군에 걸린 사람은 새벽 1∼2시가 돼야 잠을 자고 아침에 깨기가 무척 힘들다.

이 증후군이 일어나는 요인은 생리학적으로 설명할 수 있다.

인간의 뇌에 태생적으로 입력된 생체시계는 하루 24.23시간으로 일상생활의 24시간보다 다소 길다.

이 때문에 점차 취침시간이 뒤로 미뤄져 늦잠을 자게 된다는 것이다.

이를 개선할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은 아침 햇빛을 받고 기상해 뇌속에 입력된 생체시계를 다시 세팅하는 것이다.

그런데 현대인은 낮에 햇빛을 쬐는 양마저 적어 이 같은 자연스런 수면 리듬 유지에 지장이 많다.

적절한 수면시간은 사람마다 다르다.

8시간 이상 자야 하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3~4시간만 자도 충분한 사람이 있다.

어느 정도 타고난 개인의 특성이다.

다만 평균을 말한다면 성인은 하루 7시간30분의 수면이 적절하다.

3년여 전 화제가 됐던 '아침형'인간은 누구에게나 적합한 것은 아니다.

태생적으로 늦게 자서 늦게 깨고 오후와 저녁에 최고의 수행 능력을 보이는 사람이 억지로 아침형 인간이 되려고 하는 것은 어느 정도 가능하긴 하겠지만 오히려 역효과를 가져올 수 있다.

따라서 적절한 수면의 양과 시간은 타고난 특성과 주어진 환경을 고려해 조절하는 게 좋다.

수면 빚이 있는 직장인들은 늦게까지 회식 과음하거나 유흥을 즐기는 것을 삼가,적절한 시간에 충분히 잘 수 있도록 생활 패턴을 바꾸는 게 바람직하다.

주말에 1∼2시간 정도 늦잠을 자서 수면 빚을 갚는 것도 좋은 방법이다.

특히 '월요병'을 예방하려면 주말 낮에 수면·각성리듬을 깨뜨리는 긴 낮잠을 자는 것보다 주말 아침에 1∼2시간 늦잠 자는 게 현명하다.

낮잠도 수면 빚을 해소할 수 있다.

봄이 되어 많은 사람들이 낮에 노곤함을 느끼고 낮잠을 청한다.

적절한 낮잠은 신체기능 및 인지기능 회복에 도움이 된다.

하지만 여기엔 전제가 있다.


밤에 불면증과 같은 수면장애를 보이지 않는 사람이 오후 3시 이전에 20분 이내의 짧은 낮잠을 자야 건강에 유익하다.

반대로 불면증이 있는 사람이 부족한 잠을 보충하기 위해 낮잠을 잔다면 야간수면 욕구를 감소시켜 오히려 불면증을 악화시킬 수 있다.

수면을 방해하는 직접적 요인의 절반가량은 과도하고 불규칙한 업무,심한 정신적 스트레스와 우울증이다.

우울증 없는 불면은 없고 불면은 더 깊은 스트레스와 우울증을 초래한다.

수면 후 아주 힘들게 일어나는 것도 스트레스와 우울증 때문이다.

수면무호흡증과 하지불안증은 대표적 수면장애질환이다.

수면무호흡증은 '악성 코골이'로 성인 인구의 10∼20%에서 발생한다.

공기통로를 넓히는 기구를 착용하거나 수술로 치료가 된다.

최근 이슈화된 하지불안증은 잠들기 전 다리에서 느껴지는 불쾌한 감각 때문에 잠들기 어려워하는 증상으로 성인의 10%가량에서 나타난다.

하지불안증은 도파민 분비 저하가 원인으로 추정된다.

뇌내 도파민 수용체를 자극하는 글락소스미스클라인의 '리큅'등이 처방되고 있다.

숙면을 취하지 못한다면 수면제를 적절히 활용해 볼 수 있다.

장기간 수면제 복용은 득보다는 실이 많다.

점차 내성이 생겨 약효가 떨어지고 약 없이는 잠을 못 자는 의존성을 불러올 수 있다.

하지만 필요한 최소 용량을 단기간 사용하는 것은 오히려 불면증의 만성화를 막는 좋은 방법이다.

사노피아벤티스코리아의 '스틸녹스'처럼 단기간 효과적으로 쓸 수 있는 수면제가 많이 나와 있다.

/이헌정 고려대 안암병원 정신과 수면장애클리닉 교수

ⓒ 한국경제신문,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한국온라인신문협회의 디지털뉴스이용규칙에 따른 저작권을 행사합니다>


댓글(2)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짱꿀라 2007-04-20 16:0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도 예전에는 올빼미형이었는데 새벽형으로 바꾸려고 무진 애를 쓴 적이 있습니다. 그래서 건강도 많이 안 좋아졌구요. 하던데로 생활하는 것이 건강에는 더 좋을 것이라 생각이 듭니다. 요즘 어떻게 로펌생활은 힘들이 아느신지....... 정말 건강조심하시구요.

외로운 발바닥 2007-04-21 10:0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 잠이 갑자기 줄어서 결혼하고서 늘었던 몸무게가 한꺼번에 다 빠져버렸답니다.
힘안들이고 살 빼서 좋긴 한데, 잠을 많이 못 자는게 아직 익숙치 않아서 가끔 근무시간에 졸곤 한답니다. 산타님도 잘 지내시죠?
 

한미FTA 체결되면 양극화 해소?
정부는 정치경제 소양부터 갖춰라
[기고] 백종국 경상대학교 교수
텍스트만보기   백종국(ucla53) 기자   
▲ 2일 오후 서울 하얏트호텔에서 열린 한미FTA 협상 타결 발표 기자회견에 참석한 김현종 통상교섭본부장과 카란 바티아 미무역대표부 부대표.
ⓒ 오마이뉴스 권우성

최근 청와대 홈페이지는 한미FTA(자유무역협정)을 정당화하는 글로 가득 차 있고 또 이 글들은 사회의 여론주도층에게 전자우편으로 송부되고 있다. 당연한 일이다. 정책을 주도하는 정부로서 이 문제에 관한 심도있는 연구와 함께 이 협정의 타당성에 대한 신념이 있었을 터이고 또한 국민을 설득해야 하는 책임도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한계는 있다. 국민을 설득하기 위해 해당 정책에 유리한 발언을 게재하거나 설명을 곁들이는 것은 좋다. 하지만 사실이 아닌 주장이나 무리한 논지로 해당 정책을 정당화하는 태도는 심히 유감이 아닐 수 없다.

모든 정책은 장단점을 가지게 마련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정책이 모든 문제를 해결할 것처럼 선전하는 것은 매우 이데올로기적인 태도이고 국민을 오도하는 행위이다. 그 정책의 진실성조차 의심케 하는 행동이다.

가장 두드러진 예를 들자면 "한미FTA는 양극화 해소의 기회"라는 주장이다. 이 주장에 따르면, 한미FTA는 수출과 투자 증대를 초래하고 이는 중소기업 등에서 일자리 창출 효과를 불러일으킬 것이다. 양극화의 최대 주범은 실업이므로 일자리가 창출되면 양극화도 해소될 것이라는 주장이다.

정치경제학적 소양이 조금이라도 있는 사람들이라면 이처럼 단순한 주장을 하지 않는다. 논리의 매 단계마다 다양한 전제가 필요하고 각 사례에 대한 경험적 검증도 이 주장을 지지하지 않고 있기 때문이다.

예컨대, 한미FTA이 양극화 해소라고 주장하는 이 글의 첫머리에 벌써 "산업연구원의 실증 분석에 따르면 우리나라의 개방과 양극화는 관계가 없는 것으로 나타났다"고 말하고 있다.

'한미자유무역협정체결지원위원회'가 인용한 삼성경제연구소의 추산을 보면 표준 양극화지수에서 자유무역의 기수격인 미국의 양극화 현상이 현재의 우리보다 훨씬 심하다.

도리어 역사상 많은 경우에 약소국의 무분별한 자유무역은 현실에서 극단적 양극화 혹은 내부식민지 현상을 초래하였다. 양극화 해소는 자유무역협정 체결이 아니라 이 협정체결이 초래할 양극화를 완화시키려는 노력에 의해 가능하다.

정부는 이러한 노력을 다짐하고 있다. 그러나 다국적기업의 대정부 제소권 보장이 이러한 노력에 걸림돌로 작용될 수 있다. 예컨대, 현재 정부가 강조하는 협정이후의 119조원 농업지원정책이 내국민대우를 주장할 다국적농산품회사들의 이익과 충돌할지 안할 지는 구체적인 협정 문안을 검토해 보아야 알 일이다.

정부의 '양극화 해소' 주장, 정치경제학적 소양도 없다

우리의 지난 성장이 마치 개방의 산물인양 호도하는 주장들이 정부의 문서들에 자주 발견되고 있다. 1970년대와 80년대에 걸쳐 세계은행의 일부 자유주의 경제학자들이 주장하던 바이다.

다른 토론은 차지하고라도, 우리 체제가 그토록 개방되어있다면 무엇하려 이처럼 과격한 개방이 또 필요한가? 우리 모두를 대표하는 정부의 자료에서라면 최소한 앞뒤의 논리라도 맞는 주장이 나타나야 할 것이다.

한미FTA의 체결을 복음인양 찬양하는 자들이나, 이의 체결 자체가 비극인 것처럼 선전하는 자들이나 다 국민을 호도하는 자들이다. 진실은 자유무역협정의 체결 자체가 아니라 어떤 종류의 자유무역협정이냐에 달려있다. 그리고 이 협정의 정확한 내용은 아직 알려져 있지 않다.

공정하게 말해서 이 문제에 좀 더 책임을 져야할 자는 이 협정을 복음이라고 주장하고 이를 추진하는 자들이다. 이들이야말로 이 논쟁에서 먼저 주먹을 내민 자들이기 때문이다.

우리는 FTA가 그 자체로 선이어서가 아니라 그것을 통해 우리의 이익이 증진되기를 기대하기 때문에 체결하려 한다. 그러나 유감스럽게도 한국의 정치지형은 이 점에서 매우 뒤틀려있다.

청와대의 문서가 지적하듯이, 수구파들은 이 협정을 친미와 반공의 또 다른 상징으로 여기고 있고 급진파들은 이 협정을 매국의 상징처럼 호도하고 있다. 이러한 뒤틀림은 이 문제 자체의 진실 보다 차기 정권을 누가 장악할 것이냐 하는 권력의 문제와 긴밀히 연결되어있기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우리 전체의 이익이 아니라 해당 정파의 이익에 논의의 초점이 있다.

진정한 핵심은 자유무역협정을 할 것이나 말 것이냐가 아니라 그 협정이 어떤 종류냐 하는 것이다. 이것은 마치 일반적 외교 관계를 체결할 때 평등한 협정이 될 것이냐 불평등한 협정이 될 것이냐 하는 것과 같다. 을사보호조약처럼 강제로 당하는 것이 아니라면 이러한 이익 계산은 매우 중요하다. 대체적으로 불이익이라는 판단이 서면 취소하거나 중단하는 게 옳다. 이 판단이야말로 대통령 개인의 판단이 아니라 국민적 합의에 바탕을 두는 게 민주국가의 기본이다. 정부가 주도한 국제협정을 국회가 비준을 거부하여 무산시키는 것은 미국을 비롯한 민주주의 국가들에서 흔히 보는 일이다. 그렇다고 해서 국가신인도가 낮아지지는 않는다.

▲ 김종훈 한미FTA수석대표이 4일 국회 통일외교통상위에 출석해 의원들의 질의에 답변하고 있다.
ⓒ 오마이뉴스 이종호

한미FTA를 보는 시각이 뒤틀린 이유... 대선과 맞닿아있기 때문

이러한 점에서 볼 때 가장 시급하고 중요한 일은 협정체결의 투명성을 높이는 일이다. 체결 과정에서 전략상 자세한 사항을 공개하긴 힘들었겠지만 이제는 국민적 합의를 통한 국회비준을 받아야할 때이므로 당연히 협정 전문을 공개해야 한다. 정부에서 일방적으로 발췌한 소개는 정당하지 못하다. 방대한 협정문을 비전문가들이 대다수인 국회의원들에게만 개방한다는 태도도 매우 의심스러운 일이다. 무슨 수를 써서라도 협정을 통과시키겠다는 생각은 바람직하지 못하다. 협정 비준이 좀 늦어지더라도 협정 전문을 공개하고 자유롭게 토론하도록 하는 게 모두를 위해 좋다.

총리를 비롯한 정부 당국자들이 비교적 빠른 시일 안에 협정 전문을 공개하겠다고 약속한 것은 매우 바람직한 일이다. 혹자는 국제적으로 협정 문안들이 공개된 적이 없다거나 상대국과의 약속 때문에 공개할 수 없다고 주장할 수 있다.

이러한 주장은 타당치 않다. 협정작성 과정에서는 협상전략이므로 공개할 수 없고, 협상초안이 작성되고 난 후에는 국제적 관례 때문에 공개할 수 없다면 국민은 오로지 몇몇 통상관료의 결정에 무조건 따르라는 주장이 될 수 있기 때문이다. 여타 민주적 국가와 달리 우리는 협상 착수 이전에 충분히 토론을 거치지 않았기 때문에 비준 과정에 있어서라도 투명한 토론이 필요하다.

이러한 투명성을 기초로 한 국민적 토론을 거치고 난 후에 이루어지는 국회비준이 아니라면 노무현 정부는 정략적 목적을 이루기 위해 야당 혹은 일부 계층과 야합하였다는 비난을 면치 못하게 된다. 설사 대통령의 순수한 의지와 결단이 기초라 할지라도 이 과정은 필요하다. 이 나라는 대통령 혼자의 나라가 아니기 때문이다.

우리는 이미 1997년의 외환위기를 통해 이 점에 대해 충분히 학습한 바 있다. '부산지역의 삼성자동차 캠페인-나이키 사건-세계화 선언-외환위기'로 이어지는 김영삼 정부의 허무한 에피소드는 개방만이 최선이라고 부르짖던 대책 없는 자유주의 이데올로그들의 지지를 받았었다. 문제는 이 이데올로기적이고 독선적인 리더십으로 인해 온 국민이 파멸적 고통을 맛보았다는 점이다. 동일한 실패를 노무현 정부가 되풀이해서는 안 된다.

협정에 반대하는 입장에 선 사람들도 민주시민의 교양을 지켜야 한다. 현 정부는 합법적 절차를 거쳐 선출된 정통성 있는 정부이다. 그러므로 반대를 하는 일에 있어서도 법적 절차를 준수해야 한다. 예컨대 과거처럼 토론장을 물리적으로 봉쇄하고 이 일이 성공했다고 만세를 부르는 행위는 민주주의와 자신들의 이익을 해치는 태도이다. 이들이 무질서로 얻을 수 있는 것은 없다. 무질서한 사회가 되면 언제나 강자들이 일방적 이익을 얻게 마련이다. 사회적 약자들일수록 이 점을 명심해야 한다.

▲ '한미FTA 무효 범국민대회'가 7일 오후 서울 대학로에서 한미FTA 저지 범국본 주최로 열렸다.
ⓒ 오마이뉴스 권우성

투명한 한미FTA 협정 문안 공개 시급히 이뤄져야

간곡히 당부하건대 정부 자신이 자유무역 이데올로기에서 벗어나는 것이 좋다. 자유무역이 미래의 추세이기 때문에 무조건 참여해야한다는 주장은 국가이익을 책임지고 있는 정부 당국자가 할 수 있는 발언이 아니다.

자유무역에 참여하면 모두가 이익을 얻게 된다는 믿음은 마치 공산주의 체제를 이룩하면 계급없는 사회가 나타난다는 주장과 마찬가지로 비현실적이고 오도된 이데올로기이다.

공산주의가 전위정당에 걸려 넘어진 것처럼, 자유무역주의도 주권에 걸려 넘어지게 되어있다. 만일 어떤 종류의 자유무역이 있어서 상품이나 서비스뿐만 아니라 노동까지 자유롭게 교환하게 된다면 이 자유무역의 이상은 달성된다.

그러나 노동의 자유로운 이동은 주권의 소멸을 상정하는 것이다. 주권의 소멸에 기초를 둔 자유무역을 상정하는 것은 매개의 변증법을 극복한 공산당을 상정하는 것만큼이나 기대하기 어려운 일이다. 멕시코와의 자유무역협정을 체결한 미국이 멕시코와의 국경지대에 1130㎞ 길이의 새로운 장벽을 쌓고 있는 현실을 보아도 잘 알 수 있다. 도덕적 인간들로 구성된 비도덕적 사회라는 모순은 아마 이 세상이 끝날 때까지 인간들이 극복하지 못할 것이다.

한미FTA에 대한 절차적 해법을 다음과 같이 정리할 수 있다. 일단 투명성을 확보하고, 국민적 논의를 거치고, 법적 절차를 거쳐, 어느 쪽이든 국민적 합의를 도출하면 된다. 서두를 필요가 없다. 물론 합리적 설득이 불가능한 이데올로그들도 있을 수 있다. 그러나 국민적 합의가 달성되면 이들의 반대는 관용할만한 다양성으로 남게 된다. 정부 자신은 최대한 이데올로기적 태도를 배제하고 왜 이것이 국가이익에 부합되는 지만을 최선을 다해 합리적으로 설명하면 된다. 정부의 보다 건전하고 전향적인 태도를 기대해 본다.

댓글(2)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파란여우 2007-04-20 14:1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정부가 하는 거짓말에 더 이상 속지도 않고 충격도 받지 않습니다.
지극히 개인적인 방식으로, 어떻게 살까 궁리나 해봐야 겠어요. 끙~

전역 하신건 알고 있었는데 인사가 늦었어요.
축하 늦었다고 서운해하심 어쩌나...*.* . 알콩달콩 잘 지내시죠?^^

외로운 발바닥 2007-04-21 09:5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무슨 말씀을...축하해주시는 것 자체가 영광이죠. ^^
지금은 새로운 생활에 적응해가는 중입니다. 파란여우님 오래간 만에 뵈니까 너무 반갑네요. *^0^*
 

"조중동이 <시사저널> 사태에 침묵하는 이유는?"
[프레시안 2007-01-22 12:03]    
[방담]전·현직 기자ㆍ언론운동가가 본 <시사저널> 사태

 [프레시안 정리=강이현/기자]

   어찌보면 한 주간지의 내부 홍역으로 치부될 수도 있는 문제였다. 지난해 6월 <시사저널> 금창태 사장이 삼성 기사를 일방적으로 삭제하며 불거졌던 금 사장과 기자들 간의 갈등은 이윤삼 편집국장의 사표, 이 사태에 반발하는 기자들에 대한 잇따른 징계로 이어졌다. 기자들이 '편집권 독립'을 주장하며 제기했던 단체협상은 결렬됐다. 지난 5일부터 파업에 돌입한 기자들은 금창태 사장 퇴진과 심상기 회장의 사태 해결 노력을 요구했다.
  
  그러나 <시사저널> 사태는 지난 9일 기자들이 빠진 채 잡지가 발행되면서 또 다른 국면을 맞았다. 발행인 겸 편집인으로 있는 금창태 사장의 지휘 아래 편집위원 및 외부 필자들의 기고로 채워진 잡지가 지난 9일 899호에 이어 지난 16일에는 900호로 발행됐다.
  
  기자들과 독자들은 이를 '짝퉁 <시사저널>'이라고 부르며 강하게 비난하고 있다. 그러나 금창태 사장은 편집인인 자신이 지휘하는 이상 아무런 법적 문제가 없다고 주장하며 '짝퉁'이란 용어를 쓴 필자들과 언론들을 상대로 명예훼손 소송을 제기하겠다고 밝혔다.
  
  그러자 이번에는 독자 및 일반 시민들이 '나를 고소하라'며 행동에 나섰다. 이들은 19일 저녁 서울 충정로 <시사저널> 사옥 앞에서 '부활하라! 진품 시사저널' 문화제를 열었다. 고종석 전 <한국일보> 논설위원, 홍세화 <한겨레> 시민편집위원, 손석희 성신여대 교수 등 '시사저널을 사랑하는 사람들의 모임'을 꾸린 독자 및 언론계 인사들은 앞으로도 사태 해결을 위해 앞장서겠다는 의견을 곳곳에서 밝히고 있다.
  
  이번 사태를 관심있게 지켜보고 있는 이들은 모두 '초유의 사태'라고 말한다. 그러나 다른 한편으로 <시사저널>의 문제가 결코 우연히 발생한 일이 아니라고도 말한다. 또 결코 한 주간지의 내홍 정도로 치부할 일도 아니라고 한다.

  
  <시사저널> 사태는 민주화 이후 언론을 통제하는 가장 막강한 권력으로 군림하고 있는 자본의 힘을 여실히 보여준 사례이기 때문이다.
  
  <프레시안>은 언론과 자본의 관계를 화두로 이번 <시사저널> 사태가 갖고 있는 함의 등에 대해 논의하는 자리를 마련했다. 류이근 <한겨레21> 기자, 최성진 전 <뉴스메이커> 기자, 이송지혜 민주언론시민연합 기획부장, 신호철 <시사저널> 기자가 참석한 이 방담은 지난 16일 서울 마포의 한 사무실에서 열렸다. <편집자>

  
  <시사저널> 사태 뜯어보기
  
  프레시안 : 여기 모인 분들은 현재 <시사저널>의 사태가 어떻게 진행되고 있는지 잘 알고 계신 분들이라 편하게 얘기했으면 한다. 다양한 각도에서 사태를 바라볼 수 있을 듯 하다. 이번 사태의 성격을 어떻게 보고 있나? 현재 발행되고 있는 잡지에 대한 소감부터 이야기를 시작해보자.
  
  신호철: 지난 899호에는 '조중동 죽이려다 친여 매체 다 죽이나'라는 제목이 뽑혀 있었다. 이분법적으로 조중동과 친여매체로 구분하는 것 자체가 초등학생과 같은 사고다. <시사저널>이 산업잡지가 되는 것은 상관이 없는데 정치적인 성격이 변해가니까 문제가 있는 거다.
  
  
▲ <한겨레21> 류이근 기자 ⓒ프레시안

  류이근 :
'짝퉁' <시사저널>이라고 이야기하는 이유는 기존 우리가 읽어 왔던 <시사저널>이 진품이었다는 얘기다. 지금의 <시사저널>을 메꾸고 있는 기사들이 진품과 어울리지 않게 돼버렸는데 앞으로도 이런 일이 되풀이 될 것 같다. 크게 보면 국민들이 원하는 잡지가 아니라고 믿고 싶다.
  
  그런데 <한겨레>도 자유롭지 못한 편인데 다른 언론들이 이 문제에 너무 침묵해 왔다. 어느 언론사도 지금 <시사저널>이 겪고 있는 문제로부터 자유롭지 않기 때문이다. 즉, 자본으로부터 자유롭지 않다. 미시적으로는 언론사 내 편집권 독립이라는 것이 어느 정도 지켜지고 있는지도 회의적이다. 대부분 언론들이 대기업 광고에 전적으로 의지하고 있다.
  
  그래서 언론들이 스스로 발언할 용기도 없을 뿐더러 발언할 때 불이익을 겪을 수도 있다. 구조적으로 그런 것들을 기자들이 발언할 수 없는 위치에 처해 있다는 얘기다.
  
  서명숙 전 <시사저널> 편집장과 김선주 전 <한겨레> 논설위원 등 전직 언론인 선배들이 칼럼 등을 통해 '이게 기사가 아니라면 도대체 어떤게 기사가 되는 것이냐'며 직접적으로 현직에 있는 기자들에게 질문을 던졌다. 이제 기자들이 답해야 되지 않나 생각한다.
  
  
▲ 민주언론시민연합 기획부장 이송지혜 ⓒ프레시안

  이송지혜 :
저도 이번 사태가 참 가슴아프다. 언론재단이 지속적으로 기자들을 대상으로 실시한 여론조사 결과를 보면, 과거에는 언론 자유를 침해하는 가장 큰 세력이 (정치)권력이라는 답이 가장 높은 비율을 차지했다. 그러나 87년 이후 민주화 과정 속에서는 1위가 사주, 2위가 재벌 또는 광고주의 입김이라는 여론조사 결과가 반복적으로 나오고 있다. <시사저널> 사태는 그것과 딱 맞닿아 있다. 삼성이라는 대기업의 외압을 경영진이 방어해줘야 할 텐데 오히려 기사를 빼고 편집권을 훼손했다. 그동안 언론재단의 조사에 나타났던 언론자유 침해의 가장 큰 두 가지 요소가 단적으로 드러난 것으로 본다.
  
  "더 이상 상식과 선의에 기댈 수 없는 문제"
  
  최성진: 899호 이후부터 굉장히 혼란스러워졌다. 그 이유는 기자가 마지노선으로 생각하고 의지해 왔던 부분은 법보다는 상식이라는 잣대였고 그것을 믿고 기사를 썼는데, 899호 만드는 시점부터 사측에서 상식을 가지고 잡지를 만들고 있는 건지 의심이 들었기 때문이다. 삼성 기사 삭제 문제가 불거져서 장기간 파행을 겪고 있는 이때에 삼성 측과 관련된 인사가 와서 편집에 개입한다든가, 전직 <중앙일보> 기자들이 와서 편집을 한다든가 하는 부분은 또 다른 문제인 것 같다. 더군다나 이번에는 현직 중앙일보 기자가 커버스토리 썼는데 이런 행태가 상식 수준에서 이해될 수 있는 건지 근본적인 회의가 든다.
  
  류이근: 상식에 지나치게 기대해서는 안된다고 본다. 사실 899호를 이렇게 만들수 있을까 생각했는데 우려했던 대로 만들었다. 자칫 상식에 기대하면 문제의 성격이나 사태의 해결을 더 어렵게 만들 수도 있다. 1인 사주의 선의를 기대하긴 참 어렵기 때문이다. 1인 사주가 운영하는 매체들의 폐해를 우리는 지난 수십 년 동안 봐 왔다. 정권, 자본의 압력이 그대로 편집국이나 기자들에게 투영되어 문제가 부각된 사례들은 많이 있었다. 사주들의 선의는 어디까지나 기업으로서의 매체를 운영하고 관리하는 데 집중되어 있기 때문에 편집국과는 많이 다르다. 그것을 제도화시켜내지 못했을 때 편집권은 쉽게 위험에 노출된다. 최소한 사주가 갖는 소유구조를 벗어날 수 없다면 기자들은 편집권 문제를 제도화, 명문화 하지 않았을 때 사주의 선의에 쉽게 배반당할 수 있다는 생각이다.
  
  최성진: 류 기자는 '선의'라고 했고 나는 '상식'이라고 말했다. 상식이면 '마땅히 그러해야 하는 것'이라고 규정할 수 있다.
  
  류이근: 취재 과정에서 금창태 사장을 만나서 깜짝 놀랐다. 편집국장의 사표를 수리하고, 기사를 들어낸 것에 대해 문제제기를 하는 편집국 간부와 기자들을 징계조치 하는 것에 대해 아무런 문제의식이 없었다. 형식 논리로 보면, 또 사주의 상식으로 보면 자신이 발행인 겸 대표이사이기 때문에 그렇다고 주장했다.
  
  또 놀랐던 것은 지난번 899호 발행 뒤 사태가 새롭게 전개된 점이다. 초유의 일이라고 하던데, 일을 저지른 것에 대한 뒷감당을 할 수 없어서 그런지 현재 잡지를 만들고 있는 책임있는 사람들이 아무도 말을 안하고 언론을 피하고 있다. 그 이전까지 인터뷰 등에도 떳떳하게 응하던 태도에서 바뀌었다.
  
  신호철: 폭풍이 지나가길 바라는 것 아닌가 본다.
  
  류이근: 그렇다면 궁극적으로 금 사장이 원하는 것이 이런 형태의 잡지가 계속 생산되는 것인지, 아니면 기자들로부터 양보를 받아내기 위해 강행하는 것인지 잘 모르겠다. 만약 전자라면 가장 비극적인 결과가 나올 것 같다.
  
  이송지혜: 금 사장이 공동대책위원회로 꾸려진 시민단체들의 면담도 거부했다.
  
  최성진: <중앙일보> 기자들이 대거 참여하고 있는 것도 문제다.
  
  류이근: <중앙일보> 계열사가 899호부터 많이 참여했다. 실제 만들고 있는 편집위원들의 상당수가 <중앙일보> 출신이고, 그런데 정작 <중앙일보> 지면을 통해서는 시사저널 사태를 볼 수 없다.
  
  "언론의 자유 외치던 조중동은 왜 아무 말도 없을까?"
  
  최성진: 899호가 나오기 전까지는 냉정하게 말하면 <시사저널>의 문제였는데, 이제 더 이상 <시사저널>만의 문제가 아니다. 그런데 언론에는 '왠만하면 다른 회사의 문제는 그냥 넘어가거나 침묵한다'는 암묵적인 규칙이 있는 것이 사실이다.
  
  류이근: 경쟁사 혹은 타 언론사의 문제이기 때문에 침묵하는 것은 비겁한 태도라고 본다. 취재하면서 '이제 그만해라', '경쟁지에 대해서는 무슨 일이 있어도 침묵하는 것이 관행 아니냐, 이걸 깨도 되는 건가' 라는 소리를 많이 들었는데 굉장히 불편했다.
  
  문제에 대해 방관, 동조, 침묵하라는 말이다. 기자가 갖고 있는 사회적인 역할이 사회 감시라면 그 사회라는 공간 안에는 언론도 들어간다.
  
  
▲ 전 <뉴스메이커> 최성진 기자 ⓒ프레시안

  최성진:
애초 이 사태의 발단이 삼성 기사에 있었고, 상식적으로 <중앙일보>와 삼성의 관계가 충분히 오해의 소지를 안고 있는 것으로 알고 있는데, 이 사태의 와중에 <중앙일보> 기자가 <시사저널> 기사를 쓴다는 것이 문제다.
  
  이송지혜: 언론의 자유에 대해 목소리 높이고 있는 조중동이 시사저널 사태에 대해서는 한마디도 하지 않고 있는 것도 우습다.
  
  류이근: <시사저널> 자체가 한국 사회 내에서 가지는 독특한 역할이 있었다. 그런 잡지가 없어지는 것에 대해 조중동은 명시적으로 밝히고 있지 않지만 좋아하는 것 아닌가? 언론의 자유를 말했는데, 조중동은 이 문제를 언론의 자유라기보다는 자본의 자유로 인식하고 있는 것 아닌가 싶다.
  
  "편집권은 기자의 근로조건이다"
  
  프레시안: 이번 사태를 대강 아는 독자들은 '기자들의 파업은 결국 독자들의 손해가 아니냐'고 말하기도 한다.
  
  류이근: 노사갈등으로 보더라도 <시사저널>의 행태는 문제가 있다. 임명된 적 없는 편집위원들의 기사는 독자들에게 손해가 되고 있다. 독자들에게 제대로 된 인식을 제공해야 하는 것이 언론이다. 그런데 조중동은 정확한 정보 제공을 하지 않고 아예 악의적인 침묵으로 일관하고 있다.
  
  이송지혜: 또 사측이 대화 자체를 거부하지 않나?
  
  신호철 : 미온적이다. '이거 이거 안 받으면 너네 맘대로 하라'는 식이다.
  
  이송지혜 : 답답한 것이, 지금 시사저널 기자들은 과도하게 월급을 올려달라거나 후생복지와 관련된 파업을 하고 있는 것이 아니다. 물론 그 문제로 하는 파업도 정당하지만, 이번 문제는 그것이 핵심이 아니라 삼성이라는 기업의 압력을 받아 편집권이 부당하게 유린당한 점이다. 문제의 본질이 제대로만 전달된다면 대부분의 국민들이 사측이 잘못됐다고 할 수밖에 없다.
  
  
▲ <시사저널> 신호철 기자 ⓒ프레시안

  신호철 :
편집인은 편집권을 경영의 문제로 본다. 그런데 편집권은 기자의 근로조건이며, 노동의 권리 중 하나다. 노사관계에서 가장 중요한 것이 근로조건이다.
  
  류이근: 기자들의 요구사항이나 정당한 편집권에 대해 명시적인 장치를 <시사저널>에서는 갖고 있지 않았다. 이것이 문제가 될 수 있을 수 있는 경우에 대한 대비가 너무 소홀했던 것 같다. <한겨레>는 사장이 발행인까지 맡고 있다. 그러나 편집인과 편집국장이 따로 있고, 편집국장이 최후 보루로서의 역할을 하고 편집인은 징검다리와 같은 역할을 맡는다.
  
  "오만하고 예민한 기업의 '언론 검열'"
  
  프레시안 : 물론 편집인, 편집국장의 편집권 문제도 언급돼야 한다. 그러나 결국은 경영과 맞물리는 광고 문제를 생각하지 않을 수 없지 않을까?
  
  류이근: 사실 현업에 있는 기자들도 거기에 대한 고민을 많이 하고 있다. 사실 언론사의 광고국와 광고주는 통상적인 갑을관계가 역전돼 있는 상황이다. 그래서 한 기업에 대한 기사가 크게 다뤄지면 광고국의 의견이 곧바로 기자한테 또는 데스크한테 간다. 이에 대한 명시적인 규정이 없다. 언제든지 그런 일이 재발할 수 있고, 가장 약한 고리 중 하나다.
  
  최성진: 기자로서 재벌 관련된 기사 쓰는 것은 매우 어렵다. 보통 미담이나 선행으로 기사를 쓰는 경우가 아니라 재벌의 비리 문제 등에 관한 기사를 쓸 때면 필수적으로 해당 기업의 입장을 들어보기 위해 취재해야 한다. 그럴 때 홍보실을 통해 취재하는 것이 가장 쉬운 방법인데 그렇게 되면 바로 광고국으로 접촉이 들어와 일종의 딜을 제의하는 경우가 태반이다. 그래서 기자 개개인 스스로도 일종의 자기검열 비슷하게, 최소한 귀찮아서라도, 재벌관련 기사는 잘 쓰지 않게 된다.
  
  프레시안 : 예전에는 권력을 가진 기관이 검열을 했다면 이제는 결과적으로 재벌들이 검열을 하는 격인 것 같다.
  
  류이근: 재미있는 것이 사람들이 부당한 권력에 대한 저항은 쉽게 받아들이지만, 자본의 횡포나 부당한 압력에 대해서는 조금 느낌이 다른 것 같다.
  
  또 우리가 잡지를 만들어서 파는 과정도 일종의 자본의 행위이기도 하다. 자본주, 재벌들의 문제제기와 간섭에 대해 기자들이 체감적으로 가장 큰 압력 중의 하나라고 꼽기도 하지만 역으로 그에 대한 문제의식은 덜하다.
  
  이송지혜: 이번 사태를 촉발시킨 삼성은 언론인들을 잘 관리하기로 유명하다. 쟁쟁한 언론인 출신들이 그 홍보실에서 활동하고 있고, 이렇게 밖으로 표출된 <시사저널> 사태 외에 드러나지 않은 삼성과 관련된 이런 일들이 굉장히 많을 것 같다. 어제 에버랜드에서 사고가 났는데 몇몇 언론에 의해 알려졌는데도 '모 놀이동산'이라고 한 언론도 있었다.
  
  최성진: 심지어 몇몇 경제지는 이 에버랜드 사고를 쓰지도 않았다.
  
  류이근: 대기업들이 자신의 이익에 반하는 기사를 막으려는 것은 본능에 가까운 몸부림이다. 당위적으로 그러지 말라고 얘기하는 것은 현실적으로는 설득력이 없다. 결국 문제는 기자들 자신에게로 돌아오는 것 같다. 사주, 조직이 그런 압력을 이겨내야 한다. 모기가 들어오지 못하게 모기장을 촘촘히 하는 것과 마찬가지다.
  
  최성진: 해당 기자가 대응할 수 있는 문제는 아닌 것 같다. 피땀 흘려서 생산한 기사를 끝까지 지켜내는 경우도 있겠지만 그렇지 못한 경우가 더 많다. 기자 개인의 영역이나 시사저널처럼 상대적으로 작은 조직에서 그걸 지켜내는 것은 매우 어려운 과제일 수도 있다. 내 생각에는 민언련, 기자협회, 언론노조 등에서 기구나 제도적 차원으로 접근해 보는 것은 어떨까 하는 생각이 든다.
  
  이송지혜: 그런 측면에서 공영방송이나 특정한 사주가 없는 <한겨레> 같은 매체에 기대를 가질 수밖에 없다. 기업은 물론 자신의 이해관계와 관련해 회사에 불이익이 돌아가는 기사를 막는 데에 나설 수밖에 없는 측면이 있지만, 삼성같은 그룹은 우리나라 최대의 기업이라는 점에서 그에 따른 사회적 책임도 분명 있다.
  
  따라서 언론으로부터 감시받고, 사회의 여러 다른 관계 속에서 감시받고 견제받는 가운데 운영해 나가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따라서 이것을 부당한 개입이나 외압을 통해 해결하려 한 것은 삼성이 마땅한 비판 받아야 할 문제다. 삼성은 'X파일' 사건부터 시작해 계속 영향력을 행사하려고 하는데 제대로 단죄받지 않고 유야무야 넘어가고 있다. 그러다보니 자꾸 이런 식으로 편법으로라도 자신과 관련된 부당한 기사를 막으려는 태도를 보이는 것 같다. 이런 기업이 우리나라 최고의 기업이라는 것이 가슴아프다. 누구로부터도 비판받고 평가받지 않겠다는 태도는 정치권력보다 더 오만한 태도다.
  
  최성진: 기업에 해가 되는 기사를 막는 것도 있지만 사주와 관련된 평범한 기사들마저도 무조건 내지 말라고 요구한다. 오만한 자세와 더불어 상식적으로 설명이 되지 않는 예민한 자세라고 본다.
  
  "실제보다 더 무서운 건 사람들이 상상하는 '삼성의 힘'이다"
  
  프레시안 : 요즘 언론의 경제적 종속의 문제는 꼭 기업에 의해서만 제기되는 것은 아닌 것 같다. 최근 <한겨레>나 <경향신문>이 금속노조의 의견 광고를 거절했던 일도 있다. 이미 언론 자체 내부에 상당히 기업 또는 재벌의 속성이 들어와 내면화된 결과가 아닌가 생각되는데….
  
  류이근: 기본적으로 수입의 80~90%를 광고에 의존하니까 발생하는 문제다.
  
  신호철 : 그 중에서도 삼성과 기타의 기업은 차원이 다른 것 같다. 이번 사태가 진행되는 가운데 사람들을 접촉하면서 곳곳에 삼성의 힘이 계측된다. '시사모' 등에 이름을 넣어달라고 얘기해보면 그 사람이 얼마나 삼성을 의식하는가, '삼성 의식지수'가 나타난다. 삼성의 일이라 그런 일은 안 하겠다는 사람들도 상당수 있었다. 당장 오늘 방담도 섭외하는 과정에서 두 명이 안 됐다.
  
  사람들은 삼성의 실제적인 힘을 의식하는 게 아니라 사회 전반에 걸쳐 있는 힘을 상상한다. 그래서 더 무서운 것이다. 다른 기업하고는 차원이 달라지는 문제가 있는 것 같다.
  
  "명시적인 편집권 규약과 사회적 기구 마련, 대안 될 수 있다"
  
  프레시안 : 삼성이라는 권력이 언론과 닿아 있을 수밖에 없는 구조는 광고 때문 아니냐. 그 고리를 끊기 위해 언론사의 수익구조를 개편해야 하나?
  
  류이근: 상당히 본질적인 문제다. 모든 잡지들 마찬가지일 텐데 삼성의 광고가 수입의 상당 부분을 차지한다. 수익구조 개편은 현재의 사태를 해결하는 방식이 될 수는 없으며 대략 열 발자국쯤 앞서나간 생각인 것 같다. 삼성으로부터 광고를 받으면서 발생하는 긴장감, 이것을 어떻게 관리해 나가느냐의 문제다.
  
  사주의 의지도 중요하고 편집권을 지켜내려고 하는 기자의 의지도 중요한 것 같다. 미시적으로는 광고주와 관련된 기사를 넣고 빼고, 톤을 조절하는 문제와 관련해 편집국과 광고국 간에 어떤 관계가 설정되어야 하는지 좀 더 명시적으로 규정할 필요도 있다고 생각한다.
  
  이송지혜: 재벌의 언론관리가 단지 광고만 갖고 하는 것은 아니지 않나. 연수 등으로 언론인들을 관리하는 수단은 많다.
  
  류이근: 어쩔 수 없는 현실적인 모순이다. 영세한 언론사에 종사하는 기자들의 경우는 자본주들이 제공하는 기회를 통해서 연수도 가고 때로는 그들의 협찬을 통해 취재를 할 수도 있다. 그런 것을 모두 떠나 청정지역에 살고 싶다? 현실성이 없다. 오히려 돈 많은 언론사는 현실적으로 자유로울 수 있다.
  
  최성진: 지금 <시사저널> 사태와 같은 일을 어떤 개인의 영역이나 하나의 매체에서 막는 데에는 한계가 있는 것 아닌가. 연대의 틀을 모색해보는 것이 필요한 것 같다. 기자협회라든지 관련 단체들이 많이 있지 않나. 재벌 관련 기사로 인한 연대 같은 것을 하나 설치하는 것도 방법일 수 있겠다 생각한다.
  
  이송지혜: <시사저널> 공대위가 사실 그 두 가지에 대한 고민을 같이 안고 있다. 당면해서는 '시사저널 편집권 독립'과 관련된 공대위이지만 그 공대위에서 근본적으로 고민하는 것은 '자본으로부터 언론 독립'이다.
  
  <시사저널>의 건강한 기자들이 있기 때문에 사회적으로 문제가 제기되고 함께 풀어가야 할 숙제로 던져진 것 같다. 암담하지만 쓰레기통에서 핀 장미와 같다는 생각이 든다. 사실 그냥 묻히고 넘어갈 수도 있던 문제였는데 한가닥 희망을 본 것 같다.
  
  프레시안: 오랜 시간 좋은 말씀 감사하다.

정리=강이현/기자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한겨레] 산자부 3월31일 ‘위해성 평가 생략 등 추진한다’
‘미, 우리 입장 따라 양허개선’ 섬유와 연계 시사


<한겨레>가 입수한 협상단 내부 문건(‘한-미 자유무역협정 연장 1일차 협상계획’)을 보면, 협상이 타결되기 직전에 섬유 관세양허(개방)와 유전자 조작 생물체(LMO)가 연계돼 논의됐다는 정황이 명백히 드러난다. 또 한국 협상단이 섬유 관세양허 품목을 더 확보하려고 엘엠오의 위생검역 절차 간소화 합의를 추진한 것으로 나와 있다. 하지만 정부는 잇따른 해명자료를 통해 이런 사실을 전면 부인하고 있다. 문건에 나온 표현들을 통해 정부 해명의 허구성을 짚어본다.

‘섬유-엘엠오 연계’ 없었다?=산업자원부는 ‘섬유-엘엠오 연계’ 의혹에 대해 6일 해명자료에서 “섬유협상에서 미국 쪽으로부터 엘엠오의 수입규제 완화를 조건으로 자국의 섬유시장 개방을 확대하겠다는 제안을 받은 바 없다”고 밝혔다.



또 “미국 쪽이 섬유산업 희생을 바탕으로 다른 분야 이익을 추구하는 것은 생각하기 어렵다”고 주장했다. 김종훈 한국협상단 수석대표도 5일 밤 <문화방송> ‘100분 토론’에 출연해 “엘엠오 문제는 전문가들끼리 기술협의에서 논의됐지, 섬유분과나 수석대표 차원에서 거론된 적이 없다”고 말했다.

하지만 협상단 문건에는, ‘어제(3월30일) 퀴전베리 미 섬유수석협상관은 엘엠오에 대한 우리쪽 입장 개선 여부에 따라 양허 개선을 할 수 있다는 입장을 표명했다’고 돼 있다. 또 ‘향후 엘엠오 이슈는 잔여 핵심쟁점인 농산물·섬유 등과 연계되어 논의가 될 것으로 예상된다’고 나와 있다. ‘3월30일 수석대표 회의 때 미국이 (엘엠오) 수정안을 제시했다’는 표현도 있어, 김종훈 대표 발언의 사실 여부도 의심스럽다.

실제로 미국의 섬유 관세철폐 수준은 8차 협상 때까지 대미 수출액 기준 35%에 불과했는데, 최종 합의는 61%였다. ‘섬유-엘엠오 연계’ 의혹을 뒷받침하는 대목이다.

엘엠오 위생검역 절차 간소화 합의 없었다?=산자부는 지난 4일 해명자료에서 “엘엠오 사안은 에프티에이와는 별도로 기술협의가 추진됐고, 협의 결과는 회의록 양식으로 정리했다”고 밝혔다. 또 “협의에서 국내 제도 변경 관련 사항도 수용할 수 없다는 입장을 관철했다”고 주장했다.

하지만 문건을 보면, 미국 쪽은 8차 협상 첫날인 지난달 12일에 이어 최종 장관급 협상이 진행중이던 30일 양국 수석대표 회의 때 엘엠오 관련 수정안을 제시했다. 이는 ‘미국에서 안전성이 확인된 식용·사료용·가공용 엘엠오 수출 때 한국내 위해성 평가 생략’ 등 국내 안전검사와 수입승인 권한을 무력화시키는 조항 6가지로 구성되어 있다. 지난달 31일 새벽 1시 산자부는 미국 쪽의 수정안에 대해 우리의 최종 입장을 전달했는데, 핵심 쟁점인 한 가지만 제외한 나머지에 대해서는 ‘양국간 원칙적으로 내용에 대해 이해를 같이하고 문안에 대한 세부 합의를 추진한다’고 문건에 명시돼 있다. 다만 양쪽의 합의가 실제 어떤 방식으로 이루어졌는지는 이 문건에 나와 있지 않다. 김수헌 기자 minerva@hani.co.kr






* 유전자 조작 생물체(Living Modified Organisms: LMOs) = 유전공학 기술을 적용해 다른 종의 유전자를 섞거나 변형시켜 자연적으로는 존재할 수 없는 형질을 지니도록 만들어진 생물체다. 이런 유전자 뒤섞기는 종은 물론 식물과 동물의 경계까지 넘나든다. 해충에 저항력이 강한 작물을 만들기 위해 미생물의 독소 유전자를 집어넣는 것이 그런 예다. 그 과정에서 변형된 유전자가 인간과 환경에 위험할 수 있다는 우려 때문에 국제적으로 생산과 유통에 대한 통제가 강화되는 추세다. 지엠오(Genetically Modified Organisms: GMOs)란 이런 유전자 조작 농산물의 줄임말이다.






정부 · 협상단 궁해진 해명
“설명했다” → ‘협의‘ ‘합의’로


미국의 유전자 조작 생물체(LMO) 수입과 관련해 정부가 한-미 자유무역협정(FTA) 협상 테이블에서 어떤 합의를 해줬는지는 아무도 모른다. 다만 정부가 실체적 진실을 감추고 있는 것만은 확실해 보인다. 이렇게 판단할 수 있는 근거는 정부 스스로 제공했다. 관련 당사자들의 발언이 서로 맞지 않고, 심지어 같은 사람의 입에서 어제와 오늘 다른 말들이 나오기까지 하고 있다.

애초 이 문제와 관련한 보도(<한겨레> 4월2일치 1면 참조)가 나온 뒤, 담당 부처인 산업자원부 실무자는 “에프티에이와는 별도의 양국 위생검역 관련 기술협의를 통해 국내 관련 제도의 변경을 설명해 줬을 뿐”이라고 해명했다. 그러다가 이틀 뒤인 4일 산자부는 해명자료를 내, “기술협의가 추진되었고 협의결과를 회의록 양식으로 정리했다”고 설명한다.

하지만 같은 날 김종훈 협상단 수석대표가 국회 통일외교통상위원회에서 좀더 진전된 발언을 했다. 그는 무소속 최재천 의원이 정부의 대외비 협상 문건을 보여주며 추궁을 하자, “(합의는) 사실이다. 그 부분은 별도 합의됐고 유관부서에서 별도 합의문 형태로 작성된 것으로 알고 있다”며 “(다만) 6개 항 중 5개 항은 전혀 문제가 없다고 판단하고 있고 나머지 1개 항은 생물다양성 협약으로 우리가 현재 가입하려 하고 있는데, 가입한다는 전제 하에 이행하기 위한 것이기 때문에 계류중”이라고 말했다. 구체적인 내용은 공개하지 않았지만 엘엠오 수입 조건과 관련해 애초는 “설명했다”고 했다가 점차, ‘협의’와 ‘합의’ 등으로 수위가 높아진 셈이다.

환경운동연합 임지애 생명안전본부 부장은 “정부의 대외비 문건을 보면 미국의 섬유시장을 좀더 개방하려고 국민들의 식탁 안전과 생명을 팔아먹지 않았느냐는 의혹이 든다”며 “정부가 이런 의혹을 씻으려면 엘엠오 작물과 관련해 한-미 에프티에이 협상 과정에서 오간 문건들을 모두 공개하고, 필요할 경우 감사원 감사나 국회 차원의 국정감사도 받아야 한다”고 말했다.

박순빈 기자 sbpark@hani.co.kr




표시 없애고 국제규제강화 허물기
미국이 LMO에 목매는 까닭은


미국이 에프티에이 협상과 ‘유전자 조작 생물체’(LMO) 문제를 연계시킨 것은 점차 두터워지는 유전자 조작 생물체에 대한 국제적인 규제 장벽에 구멍을 내는 한편으로, 최근 몇년 사이 감소해온 대한국 ‘유전자 조작 작물’(GMO) 수출을 늘려보려는 의도로 풀이된다.

미국은 세계 최대 유전자 조작 작물 생산국이자 수출국이다. 세계 유전자 조작 농작물 생산면적의 절반 이상을 차지하고 있을 뿐 아니라, 승인된 유전자 조작 작물 품목수도 2006년 1월 말 현재 111건으로 세계 최대다.

이런 생산·기술력 우위는 미국 내에서 유전자 조작 농산물이 일반 농산물과 구성성분, 특징 등의 면에서 큰 차이가 없을 경우 안전성 면에서도 두 가지를 동일한 것으로 보는 ‘실질적 동등성의 원칙’이 인정되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런 원칙에 따른 미국의 유전자 조작 작물 수출은 세계 곳곳에서 소비자들의 저항에 부닥쳐 어려움을 겪고 있다. 한국은 유럽연합, 일본과 함께 유전자 조작 작물의 안전성이 입증되지 않는 한 위험성이 있다고 간주하는 ‘사전예방의 원칙’에 따라 유전자 조작 농산물 표시제를 시행하고 있는 국가다. 미국이 한국에 실질적 동등성의 원칙 쪽에 기울어 있는 세계무역기구(WTO)의 기준을 따르라고 요구하는 것은 바로 이 ‘사전예방의 원칙’을 허물려는 의도가 숨겨진 것으로 보인다.

이를 통해 유전자 조작 작물 표시제가 완화될 경우 감소 추세인 대한국 옥수수와 콩 수출량이 증대될 것이라는 계산도 깔려 있다는 것이 전문가들의 분석이다.

미국은 옥수수 자급률이 1%에 불과한 한국에서 2001년까지 브라질과 함께 수출국 1위를 다투었다. 하지만 2001년 67만1438t이던 미국의 대한국 옥수수 수출량은 2005년에는 5만9136t으로 10분의 1 이하로 줄어들었다. 유전자 조작 작물에 대한 소비자들의 거부감이 확산되면서 대한국 콩 수출량만 해도 2003년 118만6645t에서 2004년 101만2650t, 2005년 79만4322t으로 줄어드는 추세다.

이번 협상에서 유전자 조작 생물체 문제를 연계시킨 또다른 의도는, 한국의 유전자 조작 생물체에 대한 관리가 현재보다 강화되는 것을 막으려는 것으로 보인다. 이는 국내 ‘유전자변형생물체법’ 발효 이전에 미국과 별도 협정을 체결하라는 요구에서 노골적으로 드러난다.

한국의 유전자 조작 작물 수입검사는 서류심사로만 진행되며, 유전자 조작 농산물의 비의도적 혼입률도 유럽연합의 3배인 3%까지 인정해 주는 등 허술하게 이뤄지고 있다.

김은진 환경농업단체연합회 정책위원은 “환경·소비자 단체들에서는 바이오안전성 의정서 비준 뒤 이뤄질 하위 규정 정비 때 시험재배 의무화와 비의도적 혼입률 축소 등을 이뤄내겠다고 벼르고 있다”며 “미국이 이런 움직임을 파악하고 쐐기를 박으려는 것 같다”고 말했다. 김정수 기자 jsk21@hani.co.kr

<< 온라인미디어의 새로운 시작. 인터넷한겨레가 바꿔갑니다. >>

ⓒ 한겨레(http://www.hani.co.kr),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한겨레는 한국온라인신문협회(www.kona.or.kr)의 디지털뉴스이용규칙에 따른 저작권을 행사합니다. >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