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8년 어느 봄날, 가로수길. 
"우와, 안녕하세요." 그를 향해 꾸벅, 인사했다. 
그의 단골 카페 2층의 한 귀퉁이 테이블에서 만났다.

그땐, 커피를 한창 배우고 있던 즈음. 
가로수길에서 나름 유명세를 떨치는 카페, 그것만으로 좋았다. 
인터뷰 의뢰를 받고 나갔던 그날, 내게 그는 연예인이라기보다 음악인이었다. 
=> 슬프고 외로운 너에게 보내는 노래 


당시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눴던 것으로 기억한다. 
그리고 무엇보다 지금 TV에서 볼 수 있는 모습과는 딴판이었다. 
조용하고 나긋나긋했다. 답변은 신중했고, 은근한 우수가 묻어 나왔다.
푼수끼? 당시로선 그런 모습, 상상하기 힘들었다. 지금 그의 캐릭터, 그것으로 굳어졌지만.

그리고,
구체적인 내용은 기억나지 않지만 질문 하나를 조심스레 던졌다.
그는 정색했다. 그 얘긴 꺼내지 않았음 좋겠다고 했다. 화들짝, '앗, 뜨거'.
요절한 서지원에 대한 물음이었다. 유작인 '내 눈물 모아'의 작곡자에게 향한. 

서지원이라는 이름, 당시 그에겐 아마도 너무 힘든 이름이었나보다.

그런데, 오늘 정재형. 
<유희열의 스케치북>에서 '내 눈물 모아'를 불렀다. 
이전에 다른 프로그램에서 정재형이 그 노랠 불렀겠지만,
그가 서지원을 제대로 애도하고 있다는 생각이 문득 들었다. 

아, 정재형은 서지원을 잘 떠나보냈구나.

노랠 부를 때의, 
음색과 표정, 목소리와 톤, 분위기 모든 것이 그것을 증명하고 있었다.
2008년이나 지금이나 정재형이 서지원을 생각하고 있음은 분명히 같아도, 
그때의 정색과 지금은 완전하게 다르다. 온전하게 애도하고 있다는 확인 같은 것.

애도는 '잘 떠나보내는 것'이고,
그것을 내 삶의 일부로, 피하지 않고 정면으로 마주하고 받아들이는 것이다. 

'내 눈물 모아'를 부르는 정재형의 표정이 벅차보였다. 
'상실의 시간과 화해하는 기술'을 터득한 이의 표정이었다.

내가 사랑하는 당신도, 
힘들고 아프면 그냥... 눈물을 흘리길. 

그저 눈물이 나니까, 눈물이 흐르는 대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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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생에서 정말 중요한 것은 당신에게 실제로 벌어진 일이 아니라, 
당신이 기억하고 있는 일과 당신이 그것을 기억하는 방식이다."


책의 날을 맞아, 
며칠 전 영면한 가브리엘 가르시아 마르케스의 말을 곱씹는다. 

내가 기억하고 우리가 기억해야 하는 일과 너와 나 우리가 그것을 기억하는 방식에 대하여. 잊지 않기 위하여. 왜 이 사회는 어른이 되는 법을 제대로 알려주지 않은 것일까. 왜 우리는 어른이 되는 법을 배우지 못한 것일까. 

그리하여, 지금 이것이 나의 화두다. 
왜 어른인가, 누가 어른인가. 어떻게 어른이 되는가. 



노란 나비효과를 기다리는 마음들의 간절함을 본다. 

켜켜이 쌓인 마음은 어떤 나비효과를 가져올까. 그럼에도, 

세상은 결코 저절로 좋아지지 않는다! 


마종기 시인의 '익숙지 않다'를 소리내 읽어본다. 

그렇다 나는 아직
세상을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 
익숙지 않다 

가난한 마음이란 어떤 삶인지 
따뜻한 삶이란 무슨 뜻인지
나는 모두 익숙지 않다 

어느 빈 땅에 벗고 나서야
세상의 만사가 환히 보이고 
웃고 포기하는 일이 편해질까 



그래, 책의 날이 접힌다. 

오르한 파묵의 소설 [새로운 인생]을 보면, 이스탄불의 평범한 공대생 오스만은 한 권의 책을 만나면서 돌연 학업을 중단한다. 그리고 터키의 방방곡곡을 순례한다. 소설의 첫 문장, 인상적이다. 

"어느 날 한 권의 책을 읽었다. 그리고 나의 인생은 송두리째 바뀌었다."



그것은 계시였을 것이다. 
카뮈가 장 그르니에의 [섬]을 처음 읽고 말했던 그 계시. 
카뮈 왈, 한 인간의 생에서 위대한 계시란 기껏 한두 번이지만 그 계시는 행운처럼 생의 모습을 바꾸어놓는다고 했다. 

책 속에 길이 있다고? 아니, 내 생각은 그렇지 않다. 
책을 나와서 삶과 세상을 살아갈 때 길은 본격적으로 만들어진다. 

지금 우리의 모습은 우리가 읽은 것의 결과일 것이다. 

우리가 그동안 어떤 쓰레기 책을 읽어댔는지, 아니면 책을 얼마나 읽지 않고 살아왔는지 보여주는 모습일 것이다.


나는 지금 마르케스를 읽고 있다. [이야기하기 위해 살다]. 

당신은 어떤 책을 읽고 있는가. 


세상이 저절로 좋아지지 않기에, 이 슬픈 세상을 아주 조금이라도 덜 슬프게 만들기 위해 우리, 어떤 책을 읽어야할지 이야기하면 좋겠다. 

사회적 독서가 필요한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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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제나 끝까지 잊어버리지 않는 것은 글 쓰는 사람들이다. 

사실은 잊어버리지 않는 사람만 글 쓰는 사람이 된다." 


도정일, 채현국 선생님과 더불어, 

내가 진정으로 존경하는 어른이자 노장 황현산 선생님의 말씀이다.


괴담을 양산하는 것이 아니라, 

진짜를 짚어내고 성찰을 이끌어낼 줄 아는 글(쟁이)을 기다리는 이유이기도 하다.


망각의 과잉에서 탈피하고, 기억의 과잉을 걷어내는 것.

그리하여 제대로 우리의 삶과 우리가 사는 세상을 바라보고 움직이게 하는 힘.

그런 글과 글쟁이를 만나는 것이 지금 우리에겐 필요하다. 


가브리엘 가르시아 마르케스의 영면은 그런 면에서 너무도 안타깝고 슬픈 일이다.

오랫동안 알츠하이머로 고생하다가 지난 17일 87세의 나이로 타계한 그는 잊어버리지 않기 위해 글을 쓴 사람이었다. 이야기하기 위해 살았고, 이야기하고 죽었다. '마술적 리얼리즘'으로 이 집단적 슬픔과 고통의 기억을 잊지 않으면서 삶에 대한 통찰과 혜안의 단초를 제공해 줄 수 있는 글쟁이가 있으면 좋겠다.


윤민석은 그런 면에서 '노래'로 그것을 대신한다. 


맞다. 우리는 더 이상 이 사회도, 정부도, 믿을 수도 기댈 수도 없게 됐다.

그렇다고 모든 것을 놓아버릴 수는 없지 않겠는가. 지켜야 할, 끝까지 버려야 할 무언가가 우리에겐 있어야 한다. 


에코가 말했듯, 자기 안에 있는 타자를 발견할 때 사람은 비로소 윤리를 얻는다.


커피노동자이자, 추출노동자, 조리노동자, 마감노동자로서,

노동자협동조합연합회 창립과 출범을 맞이하며, 떠오른 단상 중 하나는 이것이었다.

내 노동윤리와 내 직업윤리가 제대로 작동하길 바라며, 지킬 수 있기를. 

그리하여, 이번 노동절의 내 선언은 "만국의 노동자여, 연결하고, 협동하라." 


 

이번 주, 가보(가브리엘 가르시아 마르케스의 애칭)를 애도하는 주간이 될 것이다. 

다행이라면, 내 주변에 가보를 알고 얘기할 사람이 한 명 있다는 것.

작년에 그와 가보의 알츠하이머에 대해 안타까움과 슬픔을 이야기하기도 했었다.


그와 함께 '내 슬픈 가보의 추억'을 이야기하면 좋겠다. 

그것이 '책의 날'에 하면 더욱 좋겠지만, 아니면 어떠랴. 


중요한 것은, 

가보가 이야기를 하게 된 것에도 '연결의 상상력'을 제공한 사람이 있던 덕분이었다.


아디오스! 가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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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옥을 (아마도 자발적으로) 임대한 대한민국은, 

도대체 이리 비싸디 비싼 임대료를 내면서도 지옥도를 탈피할 생각을 않는 것일까.


사망자, 실종자, 구조자. 

모든 것이 숫자로 성큼 다가온다. 지옥은 그렇게 단순하게 숫자로 치환할 수 있는 것이다. 



그제의 영화<한공주>에 이어 진도해상 '세월호' 침몰 앞에, 

아이들은 꼭 내게 물어오는 것 같다. 


"얼마나 더 많은 아이들이 죽고 또 죽어가야 어른들은 정신을 차릴 것인가요?"

"어른이란 작자들은 왜 이 모양인가요? 잘 봐둘게요." 


적당한 망각은 삶의 축복이다. 

'유쾌한 망각의 철학'을 설파한 니체의 잠언에는 의당 고개를 끄덕인다. "망각한 자에겐 복이 있나니, 자신의 실수조차 잊기 때문이다." 미셸 공드리의 <이터널 선샤인>은 기억의 적당한 망각에 대한 예찬이었다. (그럼에도 기억을 지우면 내가 나 일 수 없음을 확인한!) 


문제는 망각의 과잉이다. 

지옥의 유황불에 익숙해진 우리는 과잉의 망각을 통해 현재의 노예가 됐다. 삶의 의미와 방향을 상실했다. 그것은 되레 현재를 위기로 몰아넣고 있다. 침몰하고 붕괴하며 절멸한다. 


봄은 누구에게나 소리와 향기, 색채 등으로 다가오는 것이지만, 겨울의 꽁꽁 얼어붙음에서 소생과 부활의 기회가 평등하게 스며들지만, 


누군가에겐 그 봄이 없다. 

자연의 세계에 봄은 평등하게 다가오지만, 인간의 세계에서 봄은 그렇지 않다.

소생의 기회는 평등하지 않고, 부활의 가능성은 들쑥날쑥이다. 불평등과 불공정이 난무한다. 그 불평등은 이곳을 무간지옥으로 타오르게 만든다. 


살아야 할 것은 살지 못하고, 피어나야 할 것은 피어나지 피어나지 못한다. 

일어나야 할 것은 일어나지 못하고, 구조돼야 할 것은 구조되지 못한다. 


이것이 인간의 '질서'다. 이 질서가 인간 세계를 초라하고 천박하게 만든다. 어른은 어른답지 못하고 책임을 회피하기에 바쁘다. 망각은 어른의 가장 큰 특징이다. 어른을 믿지 않고, 사회를 믿지 않는 아이들은 그래서 당연하다.   


도정일 선생님의 질문을 되새김질한다. 봄은 어디에 와야 하는가. 

자연의 봄은 왔지만, 인간의 봄, 사회의 봄을 결국 망실하고야 만 희생자들에게 나는 봄을 다시 물을 수밖에 없다. 


세월호만 침몰한 것이 아니다. 또 침몰한 것은 우리의 봄이요, 그들의 봄이다. 

나는 이 지옥도를, 이 격한 아비규환을 물려받아야 할 아이들에게 미안하고 또 미안하며 한 없이 미안하다. 


이 지옥은 또 망각할 것을 강요할 것이기에, 

기억해야 한다. 4월의 봄이 잔인할 수밖에 없는 이유를. 

그리고 당신도 함께 기억해주길 바란다. 최소한 우리는 망각하지 않아야 할 것이 있음을. 나도, 당신도 저 침몰에 분명 책임이 있다. 우리는 이 지옥도에서 구조되지 못할 것이지만, 아이들 다음 세대에까지 그것을 강요할 순 없지 않는가. 물귀신 작전을 펴는 것도 비겁하지 않은가. 


우리는 지옥을 임대한 채로, 그것도 비싼 임대료를 치러야 하겠지만,

그 자발적 임대차 계약은 우리에게서 쫑내야 하지 않겠는가.   


부디, 명복을 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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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론 기업도 이윤을 내야 한다. 그러나 시장이 사회의 목적이 아니듯이 이윤도 어떤 다른 목적을 위한 수단이지 그 자체로 목적이 아니다. 그 '다른 목적'은 아주 간단하게도 '사람이 사람답게 살 수 있는 사회'의 실현이다. 이 목적을 빼고 나면 무엇이 이윤 창출을 정당화할 것인가?" 



봄밤.

도정일 교수님의 바리톤 같은 음색을 떠올리며, 

[쓰잘데기없이 고귀한 것들의 목록]에 코를 박고 있다가 찌리릿 했다. 죽비소리다!


아, '이윤이 목적'이라는 기존 경제학의 기업 논리에 회의적이면서,

나도 이윤을 먼저 생각하는 이윤중심주의에 허우적대고 있던 것은 아닐까. 


문득 이런 반성과 함께, 

문학을 거세한 기업의 야만과 만행을 떠올렸다.


덕분에, 우리는 지옥을 임대한 '대한민국 주식회사'에 살고 있는 셈이다. 


문학을 안드로메다의 것이라고 치부하고, 

전혀 고려할 것이 아니라고 여기는 기업이라면, 

과격하게 말해, 짐승의 불안을 뜯어 먹고 사는 하이에나와 무엇이 다른가. 개쩌리들.


문학과 기업(경영)은 별개의 것이 아닌 게다. 

이윤유일주의의 노예가 된 기업들이 탈출해야 할 것은 불황이 아닌 '인간의 얼굴을 지운 자본'이라는 악덕 지주다.  


도 교수님, 다시 한 마디 덧붙인다. 

"기업이 선택해야 할 방향은 자본, 주주, 투자자 들의 최대 이익만을 챙기는 일이 아니라 최소한 여섯 가지 가치들을 함께 고려하는 쪽으로의 '패러다임 전환'이다. 고객, 노동자, 투자자, 하청업체와 대리점, 사회 공동체, 환경이 그 여섯 가지 가치다." 


그러니, 이 향기로운 봄밤. 봄밤만 올라치면, 

내 마음에서 울컥 올라와 읊게되는 김수영의 '봄밤'에 슬쩍 취해본다. 



애타도록 마음에 서둘지 말라

강물 위에 떨어진 불빛처럼

혁혁한 업적을 바라지 말라

개가 울고 종이 들리고 달이 떠도

너는 조금도 당황하지 말라

술에서 깨어난 무거운 몸이여

오오 봄이여

한없이 풀어지는 피곤한 마음에도

너는 결코 서둘지 말라

너의 꿈이 달의 행로와 비슷한 회전을 하더라도

개가 울고 종이 들리고

기적소리가 과연 슬프다 하더라도

너는 결코 서둘지 말라

서둘지 말라 나의 빛이여

오오 인생이여

재앙과 불행과 격투와 청춘과 천만인의 생활과

그러한 모든 것이 보이는 밤

눈을 뜨지 않은 땅속의 벌레같이

아둔하고 가난한 마음은 서둘지 말라

애타도록 마음에 서둘지 말라

절제여

나의 귀여운 아들이여

오오 나의 영감(靈感)이여


봄이 흐드러질라치면, 내 마음에서 연주되는 이 음악과 함께다. 

봄날, 벚꽃 그리고 너. 


4월 1일, '1분의 예술사 장국영'만큼 김수영이 떠오르는 밤이다. 

4월 1일의 봄밤은 그러니까, 장국영과 김수영을 읊을 줄 아는 낭만가객과 한 술 나누어야 한다.

둘을 이야기할 수 없다면, 이날만큼은 당신은 그냥 쩌리다. 


만우절 뻥 아니냐고?

김수영, 장국영 그 이름 걸고 뻥 치는 인간 아니다!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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